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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의 씨름

창세기 권진관............... 조회 수 3924 추천 수 0 2005.02.16 11: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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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32:23-3 
설교자 : 권진관 형제 
참고 : 새길교회 
이번에 우리 교회 수련회는 우리의 정체성에 관하여 성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체성에 대해 논의하게 되는 이유로서는 첫째로, 우리가 창립했을 당시에 선언했던 내용이 지금에도 잘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혹시 변화된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등을 발견하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최근에 우리 교회에 새로운 형제 자매들이 많이 참여하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냐에 대해서 새로 들어온 형제 자매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이분들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을 놓고 함께 고민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교회론적인 특징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분명 한국 교회에서 새롭게 추진해 보는 실험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소위 삼무 교회라고 합니다. 담임목사가 없고, 교회건물이 없으며, 교단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외에 다른 없음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교회는 위계질서주의가 없다는 것,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교회의 권력이 독점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중심이 되며, 동시에 그 성령은 우리 전체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예수 중심, 성령 중심의 평등 공동체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교회는 비제도적 교회입니다. 제도라는 것은 목회자, 건물, 위계질서 (목사, 장로, 권사, 집사 혹은 주교-사제-평신도) 등 수단적인 것인데, 오늘날 교회는 이 제도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므로 제도교회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멀리합니다.

우리 교회는 한국 교회가 매우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항해서 대안적인 교회를 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어떠하고, 그것에 대한 대안적인 정체성, 아이덴티티는 무엇인가가 우리의 주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 대한 미화가 아니라, 보다 겸허하게 대안적인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다양성이 있습니다.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으며, 젊은이도 있고, 연세 있는 분도 있으며, 남자와 여자가 공존하고, 소위 강남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직업에 있어서도 다양합니다.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우리가 지향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를 말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다양성 속에서도 우리가 중심적으로 뭉칠 수 있는 정신적인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새길 신앙고백과 결단”이라는 다짐문에 잘 기록되어 있는 것같습니다. 이 다짐문 혹은 고백문은 정말로 좋은 것이며,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선교적 명제입니다. “창조의 보전과 완성을 위해 우리의 삶을 바칩니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삶을 바칩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 우리의 삶을 바칩니다.” “사랑으로 서로 사귀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단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우리 교회는 초창기에 천명하고, 출발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젊었을 때의 결단, 그리고 포부, 그리고 희망과 상상력과 창조력을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더 매너리즘에 빠지고, 일상 속으로 빠져들어가 우리의 처음의 출발점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젊은 마음을 되찾기 위해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위대한 신학자들이 좋은 책을 내 놓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처음의 작품을 뛰어 넘기가 어려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젊은 시절은 비록 경험이 부족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창조력과 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가장 처음의 작품이 가장 훌륭한 것이 되는 것을 우리는 신학자들의 일생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시작했던 분들이 아직 한참 젊었을 때 만든 그 고백문을 우리는 뛰어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만한 것을 창조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문장은 가다듬을 수 있어서 보고 읽기에 좀더 좋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힘과 영혼을 나이든 새길 교회가 다시 불어넣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지금 제가 쓴 책 중에서 가장 처음 쓴 책, 즉 30대 말과 40대 초에 쓴 책을 제가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때의 상상력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발견하면서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전 제가 2년동안 공부했던 피츠버그 신학교를 찾아간 일이 있습니다. 거기 도서관을 들렀습니다. 검색 컴퓨터에 제 이름을 쳐보니, 제가 썼던 석사 논문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걸 다시 읽어 보니까, 그 내용 중 상당한 부분이 그 나의 신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한 인생이란 자신의 젊은 시기(즉 자신에게 배당된 시간 즉 자신의 크로노스)와 지속적으로 싸우는 것, 즉 젊은 시기를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또한 나이 든 사람이 젊었을 때의 열정과 창조성을 뛰어넘어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가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에서도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젊은 날의 순수, 열정, 그리고 창조력은 세월이 지나서도 계속해서 우리를 이끄는 지표가 되고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스승을 넘어서는 제자”가 되어야 하듯이 우리는 크로노스를 뛰어넘어 우리의 젊은 날에 대해 도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곧 크로노스를 카이로스로 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카이로스는 시간적인 흐름이 아니라, 의미의 시간으로 영적인 시간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이 영적인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곧 새로움, 창조성, 그리고 거듭남이 깃들어 있는 삶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길 교회의 시간이 카이로스적인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늙어 버리게 하는 크로노스적인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내적인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는 창조적이며 역동적인 삶이 우리 교회에 일어나기를 바라게 됩니다.

저는 오늘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한 야곱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야곱은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했습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는 인생과 대결한 것입니다. 그 대결은 사실은 자신과의 대면이었고, 자신과의 씨름이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대면하고,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싸우지 않는 사람은 돕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자기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 까지도 싸웠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부상을 입었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몸이 상했지만, 그러나 그렇게 최선을 다한 연후에 승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씨름은 곧 내 운명과의 씨름이며, 결국 지나온 나와의 싸움인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지난날에 도전해야 하고, 거기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힘든 싸움입니다. 이제 세상에 나가서 나의 일을 하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싸움입니다. 여기서 이기면 세상을 이기지만, 여기에서 지면 세상에서도 지게 되는 싸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마치 신과 씨름하는 것과 같이 힘겨운 것입니다. 야곱은 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결국 대답을 얻어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젊음을 이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도전할 뿐입니다. 그 도전에서 우리는 지기가 일쑤입니다. 결국 승리한다는 것은 열에 하나요, 백에 하나일 것입니다. 승리한다고 해도 우리는 이 싸움에서 우리는 부상을 입고,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야곱처럼 환도뼈를 다칠 정도로 큰 부상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절뚝거리는 불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도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붙들고 늘어질 때 그야말로 기적처럼 우리에게 희망의 약속이 내려질 수도 있다는 것이 야곱의 이야기의 의미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최선을 다할 때에만이 은총이 내려진다는 것, 그리하여 값싼 은총이 아니라, 값비싼 은총이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과 싸움을 할 때, 그리고 우리의 지난날과 씨름할 때,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입니까? 야곱은 지난날 형 에서와의 깊이 쌓인 불신을 극복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날을 대면하여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야곱은 자신의 것을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무장해제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 무장해제하고 자신의 전체로 싸움을 걸었던 야곱의 진정한 상대는 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얍복 강가에서 만난 그 하나님 앞에서 그는 완전히 모든 것을 버리고 홀로 하나님과 맞붙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이 싸움을 위해서 가진 것들 소, 양, 염소, 낙타, 심지어 자신의 가족까지도 내놓았습니다. 야곱은 자기가 가진 가장 귀중한 것들을 내 놓고, 홀로 얍복강가에서 신이라고 하는 운명에 맞부닥친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재산이 도움이 되기는 할지언정 그리하여 에서의 마음을 돌리게 하는 데에 도움은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러나 신과의 싸움 자신의 운명과의 싸움에서는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 벌거벗고 아무것도 가진 것없이 홀로 선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야곱은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얍복 강가는 우리의 삶의 씨름 장소입니다. 지나온 날들을 넘어서기 위한 투쟁의 장소입니다. 얍복강가는 벌거벗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자신과의 씨름장입니다. 이 얍복강가에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자신의 경력, 자신의 재산, 자신의 명성과 명예, 그리고 지위 이러한 모든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오직 우리 온몸을 가지고 온 정신을 가진 우리 자신만이 이 씨름터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나 가족, 그리고 배우자가 대신 설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 자신만이 설 수 있는 곳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과거에 쌓아놓은 공로로 앞으로의 삶을 삽니다. 그런 사람은 얍복강가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삶의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을 거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동안에 모아둔 것을 살아가는 것을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학벌이나 재물이나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자신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얍복강가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새로이 시작하는 자세로 아무 것도 내세움없이 얍복강가에 나타나야 합니다. 겁쟁이들은 이곳을 외면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른 곳으로 우회하다가 결국 강을 건널 수 없게 됩니다. 용기를 내어 얍복강가에 들어섰다고 해도, 내가 누구였는데, 내가 어떤 직위를 가졌었는데 하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섰다가는 그곳에서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강을 건널 수가 없습니다. 지나온 것을 다 벗고 나설 때만이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이 30-40대에 이루어 놓은 업적을 가지고 계속해서 욹거 먹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어떤 점에서 우리는 젊었을 때 했던 것을 재해석하고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일 수록 얍복강가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나를 겹겹이 싸고 있는 치장물들 옷들을 벗어야만 하나님과 씨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오히려 씨름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얍복 강가에서 우리는 오직 우리 각자의 힘과 지혜와 정성을 다 해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고 그 가지고 있는 것에 기대고 의지하여 운명에 능동적으로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젊은 날의 기가 쇠진해 진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젊은 날의 氣를 지금 써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삶의 기를 자가 발전적으로 생산하지 못하고 예전에 있던 기를 서서히 써먹으면서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 새길 교회도 예전의 생기발랄했던 그 기상을 지금까지 써먹으면서 기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젊음의 생기를 생산해 내어 영적으로 젊어지는 길을 택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얍복 강가에 우리를 던져야 할 것입니다. 그 얍복강가에서의 씨름을 위하여 우리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나서야 합니다. 즉 나의 진면목으로 씨름의 상대인 나와 우리의 운명을 대면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난날들을 넘어서기 위해서 씨름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씨름을 거쳐야만, 그리고 비록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붙들고 늘어질 때에만 우리는 얍복강을 건널 수 있는 축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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