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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창세기 천세영............... 조회 수 2342 추천 수 0 2007.12.07 00: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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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14:17-21 
설교자 : 천세영 형제 
참고 : 새길교회 
기독자로서의 저의 처음은 교회의 여러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병아리 신자에 불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매주 예배 때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 수 없었습니다. 입으로 되뇌는 기도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입으로만 하는 형식적 기도가 아닌 경건한 기도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구절을 덧붙임으로써 허전함을 달랬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다는 것 또한 제대로 깨달을 리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정확히 무슨 죄를 진 것인지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은 읽지 않았고, 열심히 기도도 하지 않았으며, 전도는 해 볼 엄두도 못 냈으니 열매맺지 못하는 죄인일 수 있었습니다만 그것조차도 확신이 없는 의문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기도 중에는 죄를 생각해내야 했고, 죄 중에는 모르고 지은 죄도 많다 하니 "하나님 제가 지은 죄는 죄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여튼 그 모든 죄를 제가 설사 모른다 할지라도 좌우간 제가 잘못한 걸로 할 테니 무조건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제 친구들에게 제가 교회 다닌다는 것 혹은 예수 믿는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고 전도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홉해 전에 저에게, "아! 하나님이 계시다면 좋겠다"고 할 일이 생겼습니다. 제 선친께서 간암 말기 선고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정말 진심으로 이른 새벽 교회에 나가 조용히 간구 했었습니다. 제발 살려달라구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럴 뜻만 계시다면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어 보았습니다. 기도원이라는 곳에도 갔었습니다. 얼마 전 TV에서 문제삼았던 기도원이긴 했지만 마지막 희망이었던 것이지요. 기도가 이루어진 건지, 안 이루어진 건지는 모르겠으되 선친은 타계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통해 저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이성이나 과학 등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힘을 저희에게 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임종을 맞이하여 열시간 가량이나 목사님께서 꼬박 저희 식구들과 함께 한 가닥 기적에 대한 희망을 안고 같이 기도하고, 찬송해주던 모습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랑의 은사를 저희에게 내리고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바보 같은 모습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큰 위안이었습니다. 그 두 가지 생각은 바로 그와 같이 한 없이 약해지고, 인간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 존재의 본질적 모습이었습니다.
여섯해 전 아파트 우편함에 작은 교회 전도지가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새길교회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 여섯 해를 지나면서야 겨우 저도 새길교회의 교인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리 느지막하게 새길교인 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은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 여러 형제, 자매님들께서도 비슷하였으리라 여겨봅니다.
제가 새길교회에 머루를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좋은 하나님의 은사가 있어서 이었겠지만 '새싹회'와 같은 여섯 젊은 가정간의 아름다운 친교가 그 하나였습니다. 한 일년여 제가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혼자 새길교회를 다녔던 제 아내가 여선교회의 여러 자매 님들로부터 고운 사랑과 가르침을 받았던 것도 그 하나일 것입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연 중의 하나는 중고등부 아이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저는 그 맑은 아이들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것 없이 그냥 미안한 맘 하나만을 가지고 있었고, 오히려 제가 그들에게 배우는 맘 하나로 교회를 빠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많은 기억들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만남들, 얘기들, 느낌들이 모여 제가 점차로 새길교회의 교인이 되어 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어느 교회의 식구가 되고 친교가 깊어진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조용한 변화의 과정이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거듭남의 비밀'이라 해도 좋을만한 큰 변화를 제 안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제 저는 기도함에 있어 두려움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방언의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니고 말솜씨가 늘어 유창한 대표기도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아닙니다. 그냥 때에 따라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기도는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여행 중 오래된 성당 안에서 왠지 옷깃이 여며지고, 한적한 절터의 일주문을 들어서서 한 걸음씩 뗄 때마다 자연스럽게 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참 좋은 기도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변화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죄를 알게 된 것입니다. 새길교회와 연을 맺기 시작한 1989-1990년은 한국사회가 요동치던 해였습니다. 특히나 제 일터였던 교육계는 전교조 사태로 온통 시끄러웠던 때였습니다. 그러한 소용돌이 가운데 새길교회에서 저는 조금씩 예수의 행적, 창세기의 비밀을 배우게 되었고, 조금씩 제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다른 말로 종교적인 양심이 자리잡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보통 교회에서 얘기하는 죄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십일조를 안 내서가 아니고, 수요예배에 안 나와서가 아니고, 전도를 못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 학교에서 배운 말로 인간적 양심에 거스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그것을 하나님에 거스른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것이 인간이고, 인간의 양심은 곧 하나님께서 지어준 것이니 그것을 어길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졌고 그러고 보니 저는 늘 죄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저도 누구에게나 제가 교회 다닌다는 것을, 그리고 예수교를 믿는다는 것을, 그리고는 당신도 한번 교회에 와 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 교회는 다 그렇고 그렇지 하면, 새길교회에 와 보라고 합니다. 다른 것을 발견할 것이라고, 또 불교신자라고 하면, 나도 부처님을 공경하는데 나중에 혹시 법회라도 가면 저도 데려가 달라고 합니다. 참 불교신자라면 예수님도 좋아하고 하나님도 좋아해야만 한다고 말해줍니다. 큰일 날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저는 이렇게 새길교회에서 좀 색다른 기독교인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오늘 봉독한 창세기 14장의 얘기에 나오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의 엉뚱한 얘기를 포용해 줄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믿는 하나님은 중동 땅 한 조그마하고 불쌍한 아브라함 가문에서만 섬겨지고 말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의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모두 다 한가지인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었듯이 단군에게 홍익인간의 뜻을 내려 우리 민족을 다스리게 했던 상제님도 정화수 한 그릇에 지성으로 손주 점지를 빌었던 우리 할머니들의 칠성님네도 모두 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일 것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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