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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명만 있어도

창세기 손운산 목사............... 조회 수 2266 추천 수 0 2008.01.10 1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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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18:32-33 
설교자 : 손운산 목사 
참고 : 새길교회 
 이태리의 어느 깊은 산중에 수도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수도원으로, 많은 수도사들을 길러 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곳을 방문하여 영적인 새 힘을 얻어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 수도원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도사가 되겠다고 지원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졌고, 그 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지더니 마침내 다섯 명의 늙은 수도사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원인을 몰라 안타까워하던 수도사들은 논의한 끝에 인근의 암자에 살고 있는 유대교 랍비를 찾아가 도움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수도원 원장이 유대교 랍비를 찾아가 수도원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하였을 때, 랍비가 말했습니다. "원장님, 그런 현상은 우리 유대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유대교 회당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와 해결의 도움을 요청하는 수도원장에게 유대교 랍비가 다시 말합니다. "원장님, 저도 그 원인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믿기로는 사람들 가운데서 영이 떠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영이 떠난 것 같다"는 알쏭달쏭한 말을 들은 수도원장은 그 랍비와 함께 그 암자에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수도 원 원장이 떠나는 날 다시 물었습니다. "랍비님, 수도원을 다시 살리는 방법이 있겠습니까?" 유대교 랍비가 말합니다. "원장님, 저도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남아 있는 다섯 명의 수도사들 중에 한 사람이 메시아인 것 같습니다." 역시 알쏭달쏭한 말이었습니다. 수도원 원장이 수도원에 돌아와서 거기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다섯 명의 수도사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영이 떠난 것 같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메시아인 것 같다."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수도사들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위해 보내신 메시아가 우리 가운데 있다면 그는 누굴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원장님이실거야. 평생을 수도하신 분... 인자하신 분... 그분일꺼야. 만일 그분이 아니면 누굴까? 옆방에 자고 있는 친구일까? 그럴지도 몰라. 정의감에 불타는 그가 메시아일지 몰라." 그렇게 한 사람씩 다 꼽아 가다가 마지막에 "만일 나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나는 정말 자격이 없어.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나를 이 시대의 메시아로 보내셨다면, 나는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으로 모두 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었습니다. 뜬눈으로 지샌 수도사들이 동료 수도사를 만나 아침 인사를 나누게 될 때 그 인사가 달랐습니다. "저 친구가 메시아일지 몰라. 최고의 존경과 경의로 존중해 주어야지" 하면서 대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만일 내가 이 시대에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아라면 나도 나 자신을 존중하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지" 하면서 말씨와 태도를 바꿨습니다. 자신과 타인을 최고로 존중하면서 보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가고 꽃피는 봄이 되었습니다. 수도원에는 여전히 다섯명의 수도사들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과 달리 서로가 서로를 최고로 존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산으로 꽃구경하러 왔다가 수도원에 들렸습니다. 성당문을 열어 봅니다. 예전 같으면 그냥 닫고 내려갔을 터인데 그 봄에는 성당문을 열어 보고 다른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들도 모르게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묵상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달라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성당 안에서도, 수도사들의 표정에서도 다른 무엇을 느꼈습니다. 주일이면 사람들이 점점 더 수도원으로 와서 영적으로 새로워짐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수도원을 찾아왔으며 수도사가 되겠다고 자원하는 젊은 사람들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해서 그 수도원이 되살아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모습을 잘 말해 줍니다. 어쩌면 우리는 영이 떠난 시대, 우리들 가운데서 영적인 면이 소멸된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은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시켜 주는 능력이며, 인간의 고귀성을 나타내 주는 요소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저런 일들로 정신없이 바쁩니다. 이 일도 해 내고 저 일도 해 냅니다. 그런데 기쁨과 만족은 순간적이고 여전히 무엇인가 텅 비어 있고, 마땅히 있어야 될 것이 없는 느낌입니다. 영적인 면이 소멸될 때, 한 인간의 고귀성과 존엄성은 사라지고 동물적 본능 혹은 기계와 같은 모습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교회마다 회사마다 학교마다 거리마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영이 떠난 모습입니다.
우리는 또한 메시아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메시아란 말은 성경에 보면 기름부음 받은 자란 말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뽑힌 사람을 말합니다. 구원자, 하나님이 보낸 사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으로 바꾸어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 시대에 자신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 여기고 사는 사람은 적습니다.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는 거룩한 존재로 보지도 않습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소중히 여기지도 않고, 이웃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존중하지도 않습니다. 자신과 이웃을 함부로 대합니다. 자칭 메시아들은 많습니다. 지배하는 메시아, 억압하는 메시아,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남을 짓밟는 메시아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메시아, 즉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 봉사하는 메시아, 이 땅의 아픔과 비극을 치유하는 메시아는 찾기 힘듭니다.

오늘 성경 이야기는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 성이 무너지게 되리라는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드리는 중보의 간구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엎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믿는 하나님은 의롭고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 아무리 그 성이 타락했다 해도 그 성안에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성의 비극과 부정을 참으로 안타까워하면서, 정직하게 진실되게 사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그 성에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50명 있다면 그 사람들을 보시고 나머지 모두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러마, 내가 그들을 보고 다 용서해 주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아브라함의 중보의 간구는 45명에서 40명으로 다시 30명, 20명으로 그 숫자를 낮추어 갑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그만한 수의 사람만 있어도 나머지 모두를 다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마지막으로 10명의 의인만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건의하고 하나님은 그 10명만 있어도 나머지 모두를 용서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핵심은 아브라함과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성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조사하지 않고, 대신 그 성안에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지를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그 성안에 있는 사람들 몇 명이 타락했는가를 계산하지 않고, 성안에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정말 있는지를 찾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은 그 성안에서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골라내어 그들만 구원하시기 위해 세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은 그 성안에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열 사람, 아니 한 두 사람만 있어도 그들을 보고 나머지 모두를, 그들이 아무리 악하다 할지라도 다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은 악한 다수가 꾸며 가는 그 죄악의 역사 때문에도 걱정하지만, 그보다 그 가운데서 한 두 사람의 의인이라도 있는지 안타깝게 찾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그 성이 타락했다고 해도 몇 사람의 의인만 있어도 그들과 함께 그 죄악의 역사를 구원의 역사로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성이 얼마나 캄캄한지를 문제 삼지 않으시고 그 성안에 한 두 사람이라도 그 어둠을 밝히기 위해 촛불을 켜고 있는지 찾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열 사람만 있으면 그 열 사람을 보고 나머지 모두를 다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열 사람과 손잡고, 그 거짓과 폭력의 역사를 의로운 역사로 바꾸려고 하는데, 그 성안엔 열 사람의 의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성은 의인 없는 역사가 이어져가고 있었으며, 결국 의인 없는 역사는 파멸되고 말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의 무너짐은 그 성이 너무 타락해서가 아니라 그 성에 의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윗, 솔로몬, 모세, 아브라함... 그런데 성경을 다른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간 다른 무리들이 나옵니다. 하나님과 함께 타락한 역사를 부여잡고 몸부림치면서 새롭게 가꾸어 간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단지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의인, 혹은 남은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남은 자, 의인들은 하늘의 뜻을 따라 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아무리 타락한 시대라고 해도 이 역사는 하나님이 주관하신다고 믿으며 살아 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믿고,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거룩한 역사가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통해 이 땅에 드러남을 생각하며 참으로 진실되게 살아간 사람들이 남은 자, 의인입니다. 하나님은 이들과 손잡고 타락한 역사를 구원하시며, 죄 많은 인생을 용서하시며 거룩한 역사를 이어 가십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한 나라, 한 시대의 역사가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은 위대한 지도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소위 남은 자 혹은 의인들이 사라질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타락했습니까? 그 타락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합니까? 그것도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시대의 의인이 어디에 있는 가입니다. 하나님과 손잡고 악의 역사를 의의 역사로 바꿔갈 의인들이 있는 가입니다. 의인 없는 역사를 안타까워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아브라함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땅의 역사는 절대로 악인들, 힘있는 자들이 만들고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고백입니다. 비록 악의 역사에 의해 수없는 희생자들이 생겨나는 안타까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역사는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과 그와 손잡고 일하시는 하나님이 일구어 가신다는 것이 우리의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어진 삶에 진실하면서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하나님이 역사를 일구어 갑니다. 비록 악의 세력에 의해 순간적으로 역사에 굴곡, 그로 인한 고난은 있을 수 있습니다. 악의 세력 때문에 역사에 일시적 파장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기울어 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다시 의롭고 진실되게 살아가는 땅의 사람들과 이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늘의 하나님이 함께 이루어 갑니다.
역사는 절대로 밤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침이 되면 어둠에 가린 것들은 드러나게 되며, 아침을 기다리며 긴 밤 동안 촛불을 밝혀 온 사람들과 아침을 주시는 하나님이 새 날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어딘가에 남겨진 의인들과 손잡고 일해오십니다.

엘리야는 유명한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아합왕 시대, 이세벨 왕후의 후원하는 바알신앙 때문에 야훼신앙이 위협을 받던 때에 일하던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홀로 외롭게 야훼신앙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지쳤습니다. 그를 잡기 위해 추격해 오는 이세벨을 피해 깊은 산 속 동굴에 숨은 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 때 엘리야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000 명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자기 혼자 남을 줄 알았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그는 회개하고 두말하지 않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 가야될 예언자의 남은 길을 갔습니다. 남겨진 사람들, 그루터기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이어간 사람들입니다.

저는 예레미야 5장 1절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보고 예루살렘성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의롭고 진실한 사람 하나만 찾아내면 그를 인하여 모두를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이대로 존재하는 것은 이 시대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보다 덜 악해서가 아닙니다. 어딘가에 숨겨진 채로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 많은 우리가 저질러 놓은 이 땅의 역사가 지금도 이어지는 것은 우리가 소돔성 사람들보다 덜 타락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남은 자들, 그 의인들을 보시고 불의한 우리 모두를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얼마나 악한지를 알아내고 분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한다고 믿는 우리가 이 시대의 의인 10명 중에 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목사의 고민은 유창한 설교를 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한 번 기도하면 죽은 사람이 되살아 나는 기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안타까운 것이 아닙니다. 목사의 고민은 아브라함처럼 이 시대의 의인 10명을 찾아 하나님께 천거하면서, "하나님, 우리 모두 죄인입니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악한 시대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그러나 여기 이 10명을 보시고 우리 모두를 용서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역사를 계속하십시오"라고 말씀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아침해가 어김없이 동천에 떠올랐고 우리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 당연한 일로 받아드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이라고 하는 역사를 이어가시기 위해, 어제 이 땅에서 열 사람의 의인을 찾으셨고 그 열 사람 때문에 죄 많은 우리 모두를 용서하시고 오늘의 새 날을 주신 것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딘가에서 의롭고 진실하게 사는 열 사람을 찾으시고 어제 우리가 망쳐 놓은 역사를 용서하시고 고치시고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일의 역사를 계속하시기 위해 오늘 우리들 가운데서 10명의 의인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이 시간 여기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친구여, 어제는 네 친구, 이 시대의 비극을 아파하며 하루라도 의롭고 진실되게 살려고 애쓰는 네 친구 때문에 오늘의 너의 역사가 이어졌단다. 친구야, 내일의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 네가 오늘 한 사람의 의인이 되어 줄 수 있겠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의 존재이유, 이런 시대에 신앙함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 시대의 의인을 길러내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의인 없는 역사를 보고 안타까워하며, 우리는 이 시대의 의인으로 훈련받고 거듭나야 됩니다. 저는 이것이 교회의 전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암담한 역사 가운데 이 시대의 의인이 되십시다. 그 누군가가 이 시대의 의인의 역할을 할 것인가를 기대하지 말고, 여기에 있는 우리가 이 시대의 10명의 의인이 됩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이 땅의 암울한 역사, 가슴아픈 역사를 의인의 역사로 바꾸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이 땅의 의인 없는 역사, 고난의 역사를 의인의 역사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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