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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길, 생명의 길

창세기 박동현 목사............... 조회 수 2137 추천 수 0 2008.02.15 13: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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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45:5 
설교자 : 박동현 목사 
참고 : 새길교회 
창세기 45장 5절에서 요셉은 형들에게 "하나님이 . . . 우리 목숨을 살려주시려고" 자기를 형들에 앞서 이집트로 보내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로 옮긴 히브리 낱말은 "생명을 보존하시려고"하는 뜻을 지닙니다. 50장 20절에서는 형들은 자기를 해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좋게 만드셔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다"고 합니다. "생명을 구원하셨다"로 옮긴 히브리 낱말은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보존하도록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요셉의 한평생을 생명보존의 길, 짧게는 생명의 길이었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요셉의 길, 생명의 길"이라는 제목 아래 창세기 37장에서부터 50장의 내용을, 특히 45장과 50장을 중심으로 기억하면서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려는 바가 무엇일는지 함께 귀 기울여 들어보도록 하십시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특별히 사랑하던 아들로서 바로 그 때문에 어려서부터 형들의 시기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형들이 그를 아버지 몰래 상인들의 손에 팔아 넘겼고, 요셉은 상인들에 의해 낯선 이집트 땅에 와서, 남의집살이부터 시작하여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다가 마침내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집트와 가나안 일대에 몇 해 동안 계속해서 큰 가뭄이 들자 야곱은 곡식을 구하러 아들들을 이집트로 보냅니다. 양식을 사려고 자기 앞에 나타난 형들을 얼른 알아본 요셉은 짐짓 모른 체하고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 세웁니다. 이에 형들은 자기들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가족 상황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요셉은 막내 베냐민을 데려와야 그 말을 믿겠노라 하면서, 시므온을 인질로 잡아두고 나머지 형들은 곡식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루에 돈까지 도로 넣어 돌려보냅니다. 가나안으로 돌아간 형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사정을 자세히 말씀드리고 간신히 허락을 받아 베냐민을 데리고 이집트로 다시 옵니다. 그리고 지난번 곡식 자루에 들었던 돈만 다시 내어놓을 뿐만 아니라 준비해간 선물까지 요셉에게 바칩니다. 첫번과는 달리 따뜻한 대접을 요셉으로부터 받은 이들은 곡식까지 다시 사서 안심하고 돌아가는데, 몰래 베냐민의 곡식자루에 자기의 금잔을 넣은 요셉은 이들을 잡아오게 하여 도둑으로 몰아 붙이고, 베냐민을 종으로 삼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형들 가운데 유다가 나서서 베냐민이 함께 돌아가지 않으면 아버지 야곱에겐 큰 일이므로 차라리 자기가 동생 대신 종살이하도록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제 45장에서 더 이상 정을 억누를 수 없게 된 요셉은 옆에서 시중들던 사람들을 큰 소리로 물리치고,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형들과 베냐민 앞에 목놓아 울면서 자신의 정체를 밝힌 다음, 그들에게 길게 말합니다. "제가 바로,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 넘기셨던 아우 요셉입니다. 그렇지만, 형님들이 저를 이리로 팔아 넘기셨다고 해서 지금 괴로워하지도 마시고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생명을 보존하도록 나를 하나님께서 형님들 앞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히브리어 성경으로 보면 이 "생명을 보존하도록"이란 말이 문장 맨 앞에 나와서 강조되어 있습니다). 가뭄이 이 땅에 두 해째 들었습니다만 땅을 갈지도 못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지도 못할 때가 아직 다섯 해나 더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형님들 앞서 보내셔서 형님들에게 후손도 남게 하시고 형님들의 목숨을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건져주시려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형님들이 저를 여기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하셔서 저를 바로의 아비로, 그의 온 집의 주로,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습니다. 서둘러 아버지께 올라가셔서 제가 드리는 말씀을 전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얼른 아버지를 모시고 이리로 내려오십시오. 제가 아버지와 형님들 가족 모두를 잘 봉양하겠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아우 베냐민의 목을 끌어안고 웁니다.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끌어안고 웁니다. 그런 다음 요셉은 그의 형님들에게 한 사람씩 입을 맞추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 다음에서야 형들도 요셉에게 말을 걸게 됩니다.
이리하여 야곱 일가는 이집트로 옮겨와 타향이기는 하지만 요셉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47장 28절에 따르면, 야곱은 이집트 땅에서 17년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창세기 50장은 요셉을 비롯하여 그 후손들이 야곱의 장례를 성대히 치르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야곱의 장례가 끝난 다음 요셉의 형들은 불안에 떱니다.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요셉이 자기들에게 복수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우의 앙갚음이 있을까 불안에 떨던 형들은 의논 끝에 사람을 보내어 아우의 마음을 떠봅니다. 그리곤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을 앞세워 요셉이 자신들의 잘못을 용서해 줄 것을 빕니다. 야곱이 아직 살아 있을 때 요셉더러 형들을 용서해주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하면서 자기들을 용서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형들이 사람을 시켜 전해 온, 이런 말을 들은 요셉은 웁니다. 마침내 형들이 직접 요셉을 찾아옵니다. 와서 아우 앞에 코가 땅에 닿도록 엎드리고는 목숨만 살려준다면, 기꺼이 종노릇이라도 하겠노라고 합니다. 이러한 형들에게 요셉은 먼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라고 한 다음에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고 합니다. 형들이 한 짓을 보면 하나님께서 형들을 벌하실 것이지만, 자신은 그리할 뜻이 없음을 알려 줍니다. 그러니까, 형들의 잘못을 무조건 눈감아준다는 것이 아니라 형들이 잘못한 것은 잘못임을 말하면서도, 그에 대한 앙갚음은 자신이 하지 않을 것임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셈입니다. 그 까닭은 다른데 있지 아니합니다. 형님들은 그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음을 요셉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깨달아 안 요셉은 오히려 다시 한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라고 한 다음, "나는 형님들을 모시고, 형님들의 자식들을 돌보겠노라"고 간곡한 말로 위로합니다.
이것이 창세기 45장과 50장을 중심으로 요셉과 그의 형들의 관계를 정리해 본 것입니다. 요셉의 이야기 가운데 담긴 깊고 넓고 높은 가르침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만 이 시간에는 특별히 요셉이 걸어간 생명의 길에 대해 네 가지로 줄여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십시다.

첫째, 요셉이 걸어간 생명의 길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그를 도우셨기에 그가 어떤 어려움에서도 벗어나 복된 삶을 누리게 된 길이었습니다. 요셉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9장이 이를 여러 번 말합니다. 맨 먼저 2절은, 요셉이 이스마엘 사람들에 의해서 이집트로 끌려가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렸을 때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고 합니다. 바로 그 다음절에서도 다시 한번 "그 주인은,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되도록, 주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신임을 얻어 가정을 관리하게 되었지만 보디발 아내의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도 21절을 보면 "주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 주셔서" 요셉이 간수로부터 사랑을 받고 심지어는 다른 죄수들까지 맡아보게 되었다 합니다. 23절에서는 "그렇게 된 것은,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며, 주께서 요셉을 돌보셔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잘되게 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다시 말합니다.
이처럼 창세기는 흔히 생각하듯이 요셉의 훌륭함을 말하려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요셉과 함께 하셔서 그를 생명의 길로 이끄신 하나님을 똑똑히 드러냅니다. 곧 요셉이 걸어 온 길이 생명의 길일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이 남달리 똑똑하거나 믿음이 좋아서였다기보다는 오로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생명의 길은 요셉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그의 별명이 임마누엘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 이 임마누엘이란 이름의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마지막 절에 따르면, 예수께서 이 땅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그 분을 구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우리들이라면 우리는 모두 본문의 요셉처럼 이미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생명의 길에 들어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여러 가지로 모자라고 문제되는 바가 적지 않은 우리들이지만, 그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생명을 보존하게 된 사람들이 우리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까지 우리가 생명을 보존하게 된 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남 보기에는 내가 똑똑하고 힘써 무엇이 된 것 같지만, 나 스스로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셨더라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은혜를 베푸셨고 베푸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 알기에, 우리는 이렇게 한데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또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섬기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셉이 간 생명의 길은 하나님이 그저 은혜로 함께 하시기에 갈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둘째, 요셉이 걸어간 생명의 길은 인내로써 온전히 이룬 화해의 길이었습니다. 앞서 우리는 요셉이 창세기 45장 5절에서 이미 형들을 받아들였지만, 형들은 50장에 이르러서야 안심하게 된 것을 알아보았는데, 그 사이에 흐른 세월이 17년이었습니다. 여기서, 화해란 일방적인 용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서로의 사이에 신뢰감이 되살아나야 완전해짐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화해가 무엇입니까? 화해란 낱말의 뜻을 우리말 큰 사전에서는 그냥 간단하게 "다툼질을 풂"이라고 쉽게 풀이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사람 사이에 한번 다툼질이 있어 서로에게 아픈 상처를 준 일이 벌어졌을 때 이것이 아물고 서로가 그런 일이 있기 이전처럼 다시 사이좋게 지내게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 가운데서도 이런 저런 다툼으로 서로에게 해를 끼치고 갈라섰던 사람들이 다시 만나 묵은 감정을 풀고 사이좋게 살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전에 야곱과 에서가 다시 만나는 내용이 담긴 창세기 33장의 뜻을 새길 때 그러했던 것처럼,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겨레의 형편을 생각합니다. 앞으로 언젠가 하나님의 은혜로 휴전선이 사라지고 남북의 동포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이 온다 하더라도, 50년 이상 갈라져 살았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라도 다시 마음으로 하나되는 데는 또 다시 50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지 않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상황이 우리에게 닥칠 수 있음을 우리는 지금부터 내다보고,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낙심하거나 괘씸해하지 말고 끝까지 우리의 좋은 뜻을 간곡히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요셉이 걸어간 생명의 길을 우리도 뒤따르는 셈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참음, 기다림, 여유는 결국 앞서 이미 생각해 본 것처럼,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저런 못된 짓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까지 좋게 바꾸셔서 생명을 보존하게 하심을 굳게 믿는 믿음에서만 생겨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지닌 사람은 지난날 나에게 해를 입힌 사람에게 내가 직접 보복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어그러진 행동에 대한 처리는 하나님이 하실 것이고 나는 그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셔서 내게 생긴 여유를 그들과 나누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도와 그들을 죽을 길에서 살려내려고 합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이 시간의 셋째 교훈에 다다랐습니다. 다름 아니라, 요셉이 걸어간 생명의 길은 나를 해친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길이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가 지닌 여유로써 나를 해치려한 사람들이 지난날 자신들의 부끄러운 행동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지 않도록 오히려 위로하고 그들의 장래 생계를 책임지기로 함으로써 그들을 살리는 길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경쟁하고 다투고 싸우는 방법이요, 복수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자기만 아는 사람들은 남을 부리고 짓눌러서 이기려 하지만, 요셉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겪어 아는 사람들은 나를 해친 자들에게 오히려 더 잘 해줌으로써 그들을 이깁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 12장 21절에서 말씀하신 바처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도 요셉을 닮아서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런저런 힘을 그저 우리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제자매들을 살리는데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실 터이니, 우리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자식을 둘이나 죽인 사람을 양아들로 삼은 손양원 목사님의 행적을 칭송하고 그 분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기독교회 안에 적지 않지만, 정작 그 분을 본받는 삶을 실천하려고 나서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해방절을 전후해서 연세대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한 마디씩 하지 않은 국민들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어떤 교계 지도자로부터 "데모하는 놈들은 모조리 총으로 쏴 죽여버려야 해"하는 말을 듣고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걸어간 생명의 길은 나를 해친 사람들의 생명까지 보존하는 길이었습니다.

마지막 넷째로, 요셉이 걸어간 생명의 길은 내 가족뿐만 아니라 내 둘레 다른 사람들의 생명도 보존하는 길이었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풀이해준대로 먼저 일곱해 풍년이 든 다음 일곱해 흉년이 들었지만,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은 미리 가뭄대책을 잘 세워서 이집트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변나라 사람들까지 요셉에게서 양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를 가리켜 본문 50장 20절에서 요셉은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온갖 어려움에서 생명을 보존한 사람은 또한 스스로 다른 사람들의 생명도 보존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의 생명을 보존하신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요셉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생명도 보존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기독교를 흔히 영생의 종교, 생명의 종교라 합니다. 그 영생, 생명이란 것이 그저 죽은 뒤에 저 세상에서 누리는 것만을 뜻하지 아니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선, 하나님 지으신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 주신 생명을 잘 보존하기를 바라십니다. 그 생명이 잘 보존되도록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심은 우리를 통하여 온 누리의 모든 생명을 보존하시기 위함임을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사회 각계의 지도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분들로서, 어떤 점에서는, 본문의 요셉에 비길만한 분들이 적지 아니합니다. 그렇게 일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고 한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자리에 들어서게 되기까지 본인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앞서 생각해본 것처럼 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은혜를 하나님께서 그 분들에게 베풀어주심은 그들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함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이 분들은 일반 국민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일을 그 무엇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그렇게 하려고 하는 책임을 가져야합니다.br> 우리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동안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 가운데 우리 한국교회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였습니다. 요즈음 교회성장이 멈추었다고들 합니다만, 그래도 아직은 예배당마다 사람들이 꽉꽉 차도록 열심히 모이는 것이 우리 나라 교회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다 아시는대로 이러한 모습은 또한 우리 남한 경제의 부흥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그 동안 뼈빠지게 우리 국민들의 희생과 피땀 흘려 교회를 섬기신 교역자들과 평신도들의 노고가 우리 사회와 교회가 엄청나게 발전하는 데에 밑거름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발전을 우리가 이루어 놓은 것으로 그냥 흐뭇해하거나 뽐내는 데에만 머물 수 없습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나라와 우리 교회가 이토록 잘 살게 되고 커진 것은, 그야말로 우리를 통하여 이 땅의 숱한 사람들을 살리시려고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일이라고 고백해야 하며, 그 고백에 맡도록 우리의 가깝거나 먼 이웃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도록 힘쓰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우리보다 가난한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명이 욕심 많은 우리 한국사람들 때문에 상하고 있는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그것을 막지 못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죄를 하나님 앞에 아뢰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기독교인들은 직업이 무엇이고,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 일을 통해서 이웃의 생명을 보존하도록 더욱 더 힘쓰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교회적으로도 그러합니다. 새길교회가 남다른 각오로 새 길을 찾고자 남보다 앞서 나가시려면,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하도록 그 전보다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더 힘써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요셉의 길, 생명의 길 - 여러분, 이제 우리도 요셉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온갖 어려움 가운데서도 살아날 수 있음을, 생명을 보존할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다. 또 나를 해쳐 자책감과 불안감에 떠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도 오래 참고 기다려 마침내 그들의 신뢰를 얻어내는 온전한 화해를 이루도록 하십시다. 더 나아가서,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어려움에 빠져 있으면 보복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이 복 주셔서 내가 지니게 된 좋은 것들로써 그들을 잘 돌보아서, 그들도 우리와 함께 생명의 길에 이르도록 하십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것은 내 가족, 내 친척, 내 교회, 내 나라뿐만 아니라 이 땅의 다른 많은 사람들도 생명을 보존하도록 하는 일에 쓰일 수 있도록 하십시다.
이것이 요셉을 본받아 험한 세상 한 가운데서도 꿋꿋이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생명의 길을 가장 모범적으로 가신 분이 우리가 주로 섬기고 좇는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신 그 분이 우리더러 "나를 따르라" 하셨기에 이제 우리도 그 생명의 길을 가려는 것이고, 이미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이 생명의 길을 더 잘 갈 수 있도록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한국교회협회의가 교회연합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생명을 우습게 보는 흐름이 날로 드세어지는 이 땅에서, 갈가리 찢기고 나누어진 개교회들이 다시 뜻을 모으고 서로 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고자 할 때, 그 무엇보다도 더 힘쓸 일은 생명을 보존하는 일입니다. 생명을 보존하지 못하는 교회 일치와 교회 연합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새길교회도 이 생명의 길을 이 땅의 모든 교회들과 함께 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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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9 고린도전 제사Ⅱ 고전10:14-22  장경동 목사  2008-03-10 2216
17608 미가 미3:5-8  장경동 목사  2008-03-1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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