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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년 풍년, 칠년 흉년

창세기 최만자............... 조회 수 1719 추천 수 0 2008.03.10 14: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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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41:1-8 
설교자 : 최만자 자매 
참고 : 새길교회 
오늘은 1997년 새해의 첫 주일 아침입니다. 새해를 맞는 마음은 언제나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나 금년 새해는 어떤 기대에 부푸는 마음보다는 앞으로 감당해야 할 삶의 과제들의 무게를 더 느끼게 됩니다. 어느 해 보다도 커다란 시련과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진 해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연말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의 날치기 통과로 인한 노동자와 시민운동 단체들의 반발과 노동자들의 파업이 계속 될 조짐이 있어 보입니다. 이 법안들의 변칙통과는 무엇보다 여당이 한국 민주사회를 후퇴시켰다는 배신감으로 인한 분노를 갖게 합니다. 그것은 1987년, 꼭 10년 전에 시민 항쟁에 의하여 민주화의 정치와 사회적 기틀이 우리 사회에 이루어져서 그 결과 문민정치 시대로 들어왔고 개혁정치의 실현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가졌었는데, 그러나 문민정부가 그 기대를 점차 약화시켜 오다가 드디어 지난 연말에 치명적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며 수구역신의 본색을 극명하게 드러내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건은 한국 민주사회에 대한 절망감을 안겨준 충격이었습니다. 아직도 법안이 여당의 數의 논리로 변칙 처리되는 파행정치 형태에 우리 정치가 머무르고 있음을 보는 비애감을 준 것입니다. 이 결과로 생기게 될 사회적 혼란은 새해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무거운 과제입니다.
그리고 또한 경제적 위기가 매우 심각한 문제로 이미 다가와 있습니다. 그 위기감은 일반적인 감각보다 훨씬 심각하여서 산업과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연쇄부도의 불안이 팽배해 있고 서민들의 생활 속에서는 가계가 위협받는 어려운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는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문제입니다.
또 하나 새해 벽두부터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과제는 북한과의 관계문제이며 바로 통일의 과제입니다. 잠수함 침투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받은 이후 이제는 4자 회담을 성사시켜서 통일문제를 풀어가야 할 일에 마주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남북관계의 정치적 풀이가 순조롭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의 실정이 참혹한 상태에 있다는 소식들은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듭니다. 연변을 통하여 접하게 된 소식에 의하면 기아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같은 무거운 과제들과 함께 또 우리가 새해에 생각하여야 할 문제는 금년은 김영삼 정권의 임기가 마감되고 대선을 치러야 하는 새로운 선택의 기회를 가지는 해이기도 하며 또 21세기라는 새로운 천년을 맞이할 시기를 3년 앞에 놓고 있는 새로운 선택과 도전에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우리 역사를 보면 거의 10년을 주기로 민중들의 항쟁 곧 새 역사변혁의 운동이 터져 나왔는데 올해가 그 주기에 해당하는 때이고 참으로 올바른 주권의 행사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천년에 일어날(이미 그 징표들은 시작되었는데) 증후군으로는 인간주체의 두뇌산업, 의술 발달에 의한 고령화와 인구급증, 경제의 세계화 등의 현상들이며 이에 따르는 자동화, 정보화, 국제화, 여가, 장수와 평생복지의 외형적 번영의 측면이 생겨나는 것과 동시에 스트레스, 긴장의 증가, 정보 홍수로 인한 쓰레기 문화의 증가, 사라지는 공동체 의식, 민족 고유의 문화와 정서의 사라짐과 변질, 노령화 등의 부정적 측면의 문제들이 쏟아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처럼 안팎으로 어려운 과제들을 앞에 놓고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 심각한 마찰과 갈등이 계속되는데 우리들의 감각은 무디어저 있어서 사회 일반은 소비성향으로 만연해 있고, 도덕성과 윤리도 타락의 나락을 헤매고 있으며 또 새로운 도전들에 대응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어 보입니다.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국민들이 지향해야 할 가치관과 비전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들이 이 어려운 한 해를 맞이하고 잘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교훈을 성서의 요셉 이야기로부터 얻고자 합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구약성서 창세기 37장에서 50장에 걸쳐 나와 있습니다. 성서에서 이렇게 긴 내용으로 한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꾸며진 설화가 없을 정도로 창세기의 이 부분은 요셉 중심의 긴 설화입니다(앞뒤로는 족장 야곱의 이야기에 끼워 있어 야곱의 이야기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기독교인들이 잘 아는 이야기인데 요약해 보면,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 꿈을 잘 꾸는 독특한 인물이며, 아버지의 편애를 받지만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사서 형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고비에서 애굽으로 팔려 갔고, 보디발 장군의 집에 노예로 있다가 그 부인의 간계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고, 꿈풀이를 잘하여 결국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하고 애굽의 총리대신 자리까지 올랐으며, 7년 흉년을 대비하는 정책을 잘 세워 나라의 위기를 구하고 주변국의 기아상태 까지 도와주며, 마지막에 아버지와 형들의 기근으로 인한 어려움을 돕고 함께 애굽에서 잘 살게 되었다는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요셉의 이야기 가운데서 그가 가졌던 지혜의 능력과 그에게서 제시되는 새로운 인간성의 모델을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시대를 위한 지혜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인 41장1-8절은 바로가 꾼 이상한 꿈의 이야기입니다. 일곱 마리의 살찐 소가 나일강에서 올라오고 뒤이어 일곱 마리의 흉측하게 여윈 소가 올라와서 여윈 소들이 살찐 소들을 삼켜버리는 꿈과 또 일곱 단의 충실한 벼이삭이 일곱 단의 바싹 마른 벼에 의해 삼켜지는 꿈을 꾸었고 이 꿈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해진 바로가 이집트의 현자들과 술사를 모두 불러 해몽하게 하였으나 그들이 꿈을 해몽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 감옥에서 자기의 꿈을 풀어주던 요셉을 기억한 관리인에 의해 요셉이 불려오고 그는 그 꿈을 명백하게 풀어 설명합니다. 꿈풀이 내용은 41: 25이하에서 나옵니다. 요셉이 풀어놓는 그 꿈의 해석은 그 꿈이 시대의 징조로서 앞으로 일곱 해 동안 풍년이 올 것이고 그 다음 일곱 해는 흉년이 들 것을 하나님이 왕에게 알려준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것을 단순한 상징으로만 끝내지 않고 실질적이며 구체적인 대안까지 왕에게 제시하여 줍니다. 33절에 보면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을 뽑아 이집트를 다스리게 하고 감독자를 세워 풍년 동안에 소출의 1/5씩 비축하여 곡물창고에 저장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시대의 위기를 읽어내고 대비하는 정치적 지혜를 가진 요셉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보면 바로는 꿈을 꾸는 정치인이기는 합니다. 꿈이란 당시에는 신적 계시,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시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특히 한나라의 통치자의 꿈은 미래 자신의 나라에 대한 일을 예시 받는 일로 생각 하였습니다. 이것은 나라의 미래에 대한 꿈을 꾸는 지도자는 그래도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지도자로 보일 수 있습니다. 요셉의 이야기 안에서는 실제로 이집트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알 수 있는 내용은 전혀 없으며 또한 바로 왕이 어떠한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상당기간 경제적 풍요와 상당기간 빈곤의 상황을 가질 수 있는 국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고대 근동 세계는 사실 기근이 때때로 극심하여 곡물이 풍부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창세기에 아브라함도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내려갔다는 이야기가 있음, 창세기 20장). 오늘 본문의 흉년 이야기는 사실은 야곱의 일가가 결국 이집트로 이주하여 살게되는 뒷 이야기에 연결된 것이므로 이집트라는 사회 전반에 대한 배경이나 바로의 인물이나 특성 등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고대 이집트가 기원전 1720-1570년 동안에 셈족인 힉소스족에 의해 침략을 당했는데 학자들간에는 요셉의 연대가 그때일 가능성이 높다고도 봅니다. 셈족인 왕이 요셉을 국무총리로 등용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입니다(이집트인들도 배타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셉을 애굽 왕궁에 들여놓는 이야기가 거리낌이 없음은 아직 이교세계에 대하여 신앙적으로 부정적인 경험을 겪지 않았던 시대가 반영된 것이다. 다니엘서와 비교된다). 그러나 정확한 연대의 설정은 어렵습니다.
아무튼 이집트 왕은 꿈만 꾸고 해석은 못하는 한계의 인물입니다. 그리고 애굽의 지혜자와 술사들도 한계를 가진 사람들로 나타납니다. 이에 대조적으로 요셉은 지혜롭고 해박한 인물로 돋보입니다(요셉 이야기를 지혜 문학적 내용으로 간주하는 것에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요셉은 애굽의 현자들과 대조되는 지혜의 인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이집트의 지혜와 이스라엘의 지혜의 대비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바로와 힘없는 히브리 산파와의 대결에서 히브리 산파의 지혜가 왕권을 이겨 승리하는 장면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세계에서 꿈의 해석은 하나의 학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꿈 해석의 기법을 배우기도 하였고 꿈을 해석하는 책들도 있었습니다. 이 기법을 습득한 사람들은 존경받는 학문적 대가로 행세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꿈의 해석을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답변합니다. 요셉에 의한 꿈 해석은 인간적인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은사입니다. 미래의 해석에 관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 고대 이스라엘인의 신앙이었으며, 즉 그것은 인간(정치)의 절대권을 거부하는 신념입니다. 전제 군주제인 이집트의 정치상황, 피라미드 문화에서 왕권중심의 그리고 관료중심의 사회에서는 시대의 징조가 해몽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민심은 천심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언제나 시대의 징조는 우리 앞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징조를 읽는 관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집니다. 특히 집권자들에게는 시대의 징조가 이상하게 해석되며 민심 천심을 바로 읽어 내지 못합니다. 집권의 유지와 옹호에 집착하기 때문에 모든 징조들이 그것 안에서만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상력을 동원하여 본다면 이집트의 현자들은 감히 바로에게 7년 후 당신의 왕권이 망하게 될 수도 있는 흉년이 신이 내리신 계시라고 말하기가 겁났을 것입니다. 시대의 징조 그것은 역사의 교훈이며 우리가 경험해 온 나날들 안에 축적된 진리이고 교훈입니다. 그래서 사실 시대의 징조는 우리가 얼마든지 알 수 있고 해석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집권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안들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변칙형태의 해법을 겁 없이 수행합니다. 자기의 자리를 객관적 입장에서 평가 분석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며 더구나 권력이 개입되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 그 속성인가 봅니다.
요셉은 그 꿈을 해몽하였고 그리고 대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여기 41장33절에 나오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의 히브리어는 지혜자인 '카캄'과 총명한 자를 의미하는 '나본'의 결합어로, 열왕기상 3장12절에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지혜와 총명을 주셨다고 한 내용에서도 나옵니다. 여기서 나본은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뜻을 가지며, 카캄은 경험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집니다(이사야 10:13, 잠언 8:14, 욥기 12:2 등과도 연결됩니다). 41장8절에서 애굽인의 경우에는 학자를 의미하고 41장33절에는 어려운 과제를 책임질 사람을 말하는데 열왕기상 3장12절과 연결해 보면 심판의 능력을 가진 자, 경험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자라는 의미가 됩니다. 카캄과 나본은 여기에서는 중요한 경제적 계산으로 계획하고 수행하는 능력을 가진 자를 의미합니다. 즉 인생의 경륜으로 지난 경험들과 역사의 교훈들을 명백하게 알고 판단의 능력을 가진 자가 지혜로운 자라는 것입니다. 꿈을 잘 해몽하는 요셉은 이러한 능력을 가진 자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요셉이 흉년에 대비하는 대안을 제시하였습니다. 1/5을 비축해 나간 구체적 수행에서 근검, 절제를 제도적으로 실행해 낸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확한 판단력을 가진 요셉의 눈을 열어 지혜와 함께 현실을 볼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근검 절제를 제도화해서라도 실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도적 장치를 동원하여서라도 청강(淸康)한 삶을 이룰 필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의식의 전환이 요청된다는 말입니다. 풍부한 가운데 절약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자율적 자기규제의 힘을 가지는 자가 이 시대의 지혜로운 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이러한 지혜의 능력이나 국가적 위기에 대한 대안의 제시 그리고 삶의 태도의 전환과 미래의 비전의 제시 등은 보다 더 근본적으로 그의 성숙한 인간성에 근거하여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분출되어집니다. 요셉의 고귀한 인간성의 극치는 형제들과의 화해에서 드러납니다. 요셉은 자기를 해친 형제들을 보복하지 않고 결국 용납하고 받아들이며 안정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나 요셉의 이러한 행동은 그의 고난의 경험이 그를 변화시켰기에 형성되어진 인간성이었습니다. 질고를 겪은 인생, 풍상을 지낸 그의 인생행로는 그를 관용과 덕의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젊은 시절 철부지일 때 그는 오만한 꿈을 꾸고 자랑하였던 사람이었으나 형제들에게 배신당하고, 이국 땅에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그러한 고난의 역경을 겪으며 복수보다는 오히려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풀이하는 큰 관점을 터득하였습니다. 고난의 세월 속에서도 그의 신실한 삶이 결국 그를 고양시켰다는 믿음이 또한 그러한 인간성 형성에 큰 작용을 하였습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먼저 이곳으로 보내셨다고 하는 신앙 고백이 요셉 인품의 절정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꿈의 해석의 능력도 그리고 위기에 대한 대안의 제시 능력도 새롭게 형성되어져 간 그의 인간성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학적 풀이에 의하면 대안문화 창출의 능력과 그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는 집단은 소외집단에서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을 통하여 터득하게 되는 더 큰 자연의 섭리와 삶의 의미의 획득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은 창조의 자리라고 말해질 것입니다. 이것을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의 인식론적 특권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요셉을 그러한 인간성으로 나가게 한 것은 형들의 변화된 모습에서도 기인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동생을 팔아버린 죄책감으로 살아온 세월을 가졌고 그래서 돈독해진 형제애로 베냐민을 보호하기 위해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형들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이야기의 앞부분에서는 지혜로운 자요 위엄 있는 관료로 보이지만 형제들과 만난 이후의 장면에서는 매우 잘 우는 인물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가진 깊은 애정과 연민, 동생을 사랑하고, 형들의 회개에 감동하고, 아버지의 연로하심에 슬퍼하는 지극히 감수성이 예민한 인간성의 소유자로 나타납니다. 그는 애굽 전체를 바로 대신 통치하는 자가 아니었습니까? 잘 우는 요셉, 그래서 복지를 위한 정책도 어쩌면 더 잘 세웠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그의 구원 계획을 위하여 먼저 고난의 자리로 보내신, 즉 그의 고난을 통하여 구원의 사건이 이루어졌다는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예시로 해석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성서 자체 안에서는 오히려 요셉에 대한 어떤 방향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에서 요셉을 이상적인 인간상의 모델로서 제시하는 경향을 가집니다. 이제 위기의 문턱에 그리고 새로운 도전의 문턱에 이른 우리들은 요셉의 이야기를 한번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7년 흉년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스스로에게 강제적 규율들을 만들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근검, 절제는 몰라서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실행할 계기를 절박하게 만들어 낼 때가 온 것을 알아야 하며, 국가차원에서도 그러한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어야 하고, 요셉 같은 지혜의 능력과 인간성을 가진 정치가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북한동포를 바라보면서 가식의 눈물이 아니라 창자 속에서 우러나오는 그렇게 우는 정치, 빈곤하고 고난 당하는 형제자매를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보고 깊은 연민의 사랑을 앓는 인간으로 우리는 살고, 또 그런 정치를 실현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위기와 도전 앞에서 너무 위축될 필요는 없습니다. 상식적 도덕성을 가지고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며 묵묵히 선을 행하는 신실한 삶의 경험에서 터득하게 되는 정확한 판단력으로 이 시대를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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