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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은총의 두 빛깔 - 녹색과 적색

창세기 이정배 목사............... 조회 수 3594 추천 수 0 2008.05.16 10:5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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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9:1-7 
설교자 : 이정배 목사 
참고 : 새길교회 
성탄의 절기를 뒤로 하고 이제 우리는 그 은총을 축으로 하여 98년 새해를 열심히 살아가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 모두들 한마디씩 하는 IMF 위기 상황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은총의 힘으로 능히 시련을 극복할 수 있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주제는 '하나님 은총'에 관한 것입니다. 혹시 오늘의 말씀이 여러 성도님들의 기존 생각과 신조와 부합되지 않아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지만 오늘의 주제가 마음 속 깊이 부딪치는 경험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1. 오늘 우리는 실재적 무신론자는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인, 크리스천이란 이름으로 불리어지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의식 속에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만의 노력에 의해 이만큼의 삶을 이루어 내었다는 생각이 넘쳐나고 있지요. 우리는 종종 성서에 나오는 어리석은 농부와도 같이 "나는 이만큼의 재산과 학식과 명성을 지니고 있다." 등등, 자신의 삶의 기반을 확고하게 해 줄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곰곰이 헤아리며 안심합니다. 그러나 때론 그 기반을 더욱 든든히 하기 위하여 안달하며 욕심꾸러기로 변해가고 그리고는 다른 사람과 견주어 스스로 우쭐해 하기도 하며 시기심으로 괴로워하기도 하지요. 이러한 우리들 삶의 실상은 은총의 감각이 희미해져 가고 있으며 영의 세계에 대한 느낌, 감수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누군가가 오늘의 우리를 향해 실재적 무신론자들이라고 말한다면 조금도 틀린 평가가 아니겠지요. 다시 한번 반문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과연 자신들의 노력에 의해서만 인생을 살아왔습니까? 오늘의 삶이 자신의 땀의 결과뿐입니까? 내가 심지도 않았으나 거두어 드린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난 삶을 돌이켜 볼 때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라고 노래하던 한 신앙인의 고백은 어떻게 들리는지요? 여자 신학자 죌레(D. S lle)는 "은총이란 최상의 것을 거저 얻었다는 고백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최상의 것을 거저 얻는 삶! 그렇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최상의 것은 무엇일까요? 이제 우리는 나의 노력과 관계없이 주어진 은총, 곧 최상의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덧 욕망의 노예가 되어 더 많고, 크고, 좋은 것에 집착하여 삶을 살아 왔기에 은총의 영역을 망각하였거나 축소해 왔으나 우리는 이 물음을 피하고서는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을 것이며, 우리가 원하는 참된 삶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2. 하나님 은총의 두 빛깔 - 녹색과 붉은 색

하나님의 은총을 색으로 빛깔로 표현한다면 먼저는 녹색이요, 다음은 적색, 붉은 색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봅니다. 녹색은총이란 인간 삶의 근거이자 토대를 이루는 자연세계, 환경과 관계된 고백이며, 적색 은총이란 인간을 참된 인간으로 인도하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그리스도교인들의 이해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적색은총 곧 십자가의 은총만을 강조하고 그것에만 강한 집착을 보여왔으나 실상 전자에 대한 고백 없이는 후자에 대한 믿음은 현실적이지 못하고 공허해지기 십상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두 은총, 곧 '우주의 마음'이신 하나님이 자연 속에서 베푸시는 치유와 회복의 은총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 계시되고 베풀어진 은총, 즉 고난과 희생의 은총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며 상호 연관 속에서 우주의 충만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자연 속에서 자연을 통하여 베푸시는 하나님 은총을 우리는 녹색은총으로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자연이란 인간 삶의 근거이자 생명력을 지닌 공간이기 때문이지요. 실상 이스라엘 민족들이 전 자연 속에서 거룩한 지혜를 만나고 영적 차원을 경험한 예를 우리는 구약성서를 통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 공중의 새와 들판의 꽃을 보며 하나님을 느끼고 체험하는 방식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자연이란 이처럼 인간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하는 영적 안내자이며, 그 자체로서 아이콘(icon)이 되는 것이지요. 모든 종교와 도덕체계들은 한결같이 자연이 영구불변하다는 전제 속에서 자신의 가르침을 터닦아 왔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개발 이데올로기, 곧 성장과 발전에 눈이 어두워 자연을 물질획득의 대상으로만 보아왔던 우리의 삶이 고쳐지지 않고서는 자연 내에서 하나님의 숨결과 현존을 느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성장, 발전, 욕망, 물질적 부 등 오늘 우리의 자연스러운 가치관이 되어버린 인습적 지혜, 문화화된 종교들을 향해 예수께서 실재적 무신론자들이라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함이지요. 오늘 우리가 IMF 시대의 국가부도만이 아니라 환경부도, 자연부도 등도 염려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 비단 이는 경제적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 정신적 차원에서 성찰해야 할 사항입니다.

3. 녹색은총을 받는다는 것

그렇다면 오늘, 이 각박한 경쟁의 시대에, 욕망만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녹색은총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들이 하나님의 녹색은총을 받고 있는지를 알기 원한다면, 아니 녹색의 의미를 깨닫기 원한다면 다음 질문들에 대해서 응답할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는 공간에 대한 감사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를 성스럽게 깨닫는 일이며 우리의 근거를 파악하고 그 근거와 친밀해지는 일이 가능해야만 합니다. 예컨대 우리가 매일 밟고 다니는 땅은 어떤 토양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물 다섯 가지 이상을 말할 수 있는가? 지난 1년간 어떤 생명체가 당신 지역에서 멸종되었는가? 당신이 오르는 산에서 만나게 되는 풀 종류 다섯 가지의 이름을 댈 수 있는가 등등. 이것 모두는 우리 자신이 발 딛고 사는 공간에 대한 지각능력, 인지도에 관한 질문들입니다.
둘째는 이러한 공간 지각력을 바탕으로 생명, 생명력 그 자체에 대한 존엄성, 경외감이 있어야만 합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살려고 하는 의지들로 가득 찬 곳'으로 보았던 슈바이처와도 같은 통찰이 요구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들판의 꽃이 인간에게 꺾이기 위하여 존재하지 않고 바다의 물고기가 인간에게 먹히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모두 그 스스로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는 생명체라는 자각이기도 합니다. 어떤 인위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는 애벌레를 보며 "나는 수백 수천 마리의 애벌레를 발로 밟아 죽일 수는 있어도 자신의 갈 곳을 향해 움직이는 애벌레의 생리 그 자체를 이길 수 없었다"는 목사님의 외침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셋째로 녹색은총은 우리 몸에 대한 자각과 긴밀히 연루되고 있습니다. 지금껏 1초의 1/10까지 잴 수 있는 손목시계에 의지하여 살아온 인간 몸은 자신의 한계 능력을 넘어서 있기에 고통을 당해 왔습니다. 자연 그 자체이기도 한 인간 몸이 기계(시계)에 의해 조정되고, 길들여짐으로써 그의 자연성이 파괴되어 버린 것이지요. 따라서 지금껏 간과되어 온 인간 몸의 재발견, 상처받은 몸에 대한 새로운 지각이야말로 하나님 녹색은총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녹색은총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 다른 존재의 소리를 듣게 해줍니다. 산에 올라 나무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산에서 우는 새의 울음소리를 진정 새의 소리로서 들은 바가 있었습니까? 바람 소리는? 오염되어 흐르는 강의 절규는? 지금껏 우리는 자기 소리만 내고 살아 왔었습니다. 그것도 지나치리 만치 크게.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도 우리는 자기 소리만 내었었지요. 정작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내적 고요, 기다림도 잊은 채 말입니다. 이제 녹색은총은 내 소리, 자기 소리만이 아니라 그들의 소리를 그들의 소리로, 그들의 언어로 듣게 해줍니다. 그래서 타자와의 일치를 경험하게 합니다. 노자가 말했던 以觀之觀, 곧 눈으로 눈을 보는 경지는 바로 타자의 언어로 들을 수 있는 내적 고요의 상태, 녹색은총의 상태와도 다름 아니겠지요. 그것이 나무이든, 돌이든, 바람이든, 아니면 나의 이웃이든지 그들의 소리를 그들의 언어로서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의 부재, 바로 우리가 실재적 무신론자로서 살고 있는 구체적 징표이겠지요.

4. 적색은총의 새로운 발견

그렇다면 이제 적색은총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녹색은총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겠는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녹색은총으로 인해 내적 평정을 얻고 타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들려지는 소리는 자연으로부터 공간으로부터 그리고 우리 이웃들로부터 들려지는 소리들이 모두 비명이며 고통뿐이라는 데에 문제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로부터 십자가은총, 곧 적색은총의 요청이 강하게 대두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아는 바, 노아 홍수 이후 새 세상의 존립 요건으로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두 가지 단서를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첫째로 사람들의 눈에서 억울한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할 것이며, 둘째로는 동물들을 피 채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었지요(창 9:1-7). 동물들을 생명 그 자체로서 취해서는 안 된다고, 탐욕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자가 인간세계 속에서 인간 간의 형평성(정의) 물음이었다면 후자는 인간과 자연 간의 생태학적 균형에 대한 언급이라 짐작됩니다. 바로 이 두 가지 단서가 지켜지지 않음으로 해서 오늘의 세계는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고 고통 하는 현실로 변해 버리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17절 이하의 말씀,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신음한 채 하나님 아들들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실상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지요. 바로 이러한 신음과 고통으로 인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녹색은총만으로 충족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적색은총, 곧 십자가 사건이 필요로 되는 것입니다. 붉은 색 은총이란 바로 밖으로부터 들려지는 아픔, 고통, 비탄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게 하는 힘이며 또한 그 소리와 내적으로 하나되게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적색은총은 인간을 참으로 인간 되게 하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는 내 밖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사건은 이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오늘 우리에게 은총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첫째로 적색은총은 세상의 고통에 대해, 그 고통을 향해 우리 자신을 개방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상의 고통을 자신의 몫으로 인정하고 고통 속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과 연대할 수 있는 힘을 적색은총은 선사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어디선가 울고 있는 사람은 다 나를 향해 울고 있다"는 릴케의 시 한 구절을 우리에게 환기시켜 줍니다. 고통받고 탄식하는 존재들이 더 이상 부담스러운 존재, 실체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을 구원시키는 동인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적색은총은 우리들 자신 속에 숨겨진 폭력을 승인하고 인정하도록 도와줍니다.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고 완전을 지향하며 끝 모르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릴 때 그로부터 폭력이 발생하며 파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동안 그리스도교가 타민족, 타문화 그리고 인간 외적인 피조물(자연)에 대해서 얼마나 악마적 존재가 되어 왔는지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는 바입니다. 십자가 은총은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내재된 폭력과 우리 자신을 당당히 맞서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적색은총은 우리 자신 내의 폭력만이 아니라 세계의 폭력에 대해 대항하도록, 그러나 비폭력적 방식으로, 자신 스스로가 십자가에 달리는 방식으로 세상의 악과 싸우도록 인도합니다. 비폭력이란 예수 십자가의 길이자 적색은총의 힘으로만 가능할 수 있는 세계 구원의 길입니다. 교회에서 절기마다 행하는 성만찬 예식은 우리에게 이 길을 가도록 촉구합니다. 믿음으로 먹고 마신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 예수의 살과 피로 변했다고 고백한다면, 우리의 몸은 더 이상 내 몸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고 믿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남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는데 그 본질이 있는 것이기에 적색은총이란 이러한 자기 희생, 비폭력의 삶을 가능케 하는 것입니다.

5. 녹색은총과 적색은총의 하나됨을 향하여

지금까지 한국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붉은 색 은총만을 강조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입장이 정당하긴 하여도 충분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붉은 색 은총만을 강조한 나머지 모든 피조물들 속에 자리하신 하나님 현존에 대해 무관심하였으며, 그 속에서 들려나오는 소리들이 고통과 탄식인 것을 종종 망각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 신학이 크나 큰 공헌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계시를 문자(성서)에 한정시킴으로 인해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을 축소시켜 버린 것이지요. 이렇게 됨으로써 그리스도교는 인간만의 구원, 인간의 이기적인 종교생활로서 그리스도인 됨의 정체성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앞서 보았듯이 녹색은총만으로 우리가 충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녹색은총은 우리 모두가 폭력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예리하게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모든 고통과 내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적극적 힘도 여기서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오로지 우리 모두가 이러한 두 빛깔의 은총을 함께 경험할 때, 이러한 은총 속에서만 인간의 참된 삶(구원)이 영위된다고 믿을 때, 그리스도교 신앙은 세상에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중국 시인이 말했듯이 본래 희망이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그가 말하길 희망이란 것은 산 속에 있는 오솔길과 같은 것이라 하였습니다. 산 속에는 본래 어떤 길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씩 늘 같은 곳으로 걸어다니게 되면서 그곳에 길이 생겨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은총의 두 차원을 자각한 우리들로부터 시작하여 깊은 산 속에 조그마한 길은 생겨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듬어 걸어가는 길, 더듬어 찾아가는 삶, 아무도 가지 않는 그곳에 첫걸음을 내딛는 용기, 바로 그것이 신앙의 길이요, 은총의 삶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은총으로 관계된 새로운 삶은 98년 힘겨운 한국 땅에 희망을 선사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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