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레25:23-27 |
|---|---|
| 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 참고 : | http://je333.com |
농부가 새를 잡기 위해서 여기저기 그물을 쳐 놓았습니다. 어느 날 여러 마리의 참새들이 그물에 걸려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물에 걸린 참새 가운데 한 마리가 외쳤습니다.
"이대로 잡힐 순 없다. 살아야 한다. 자아, 우리 모두 동시에 힘껏 날아 올라 이 그물을 저 큰 나무에 걸어 보도록 하자. 그러면 우린 무사히 빠져 나갈 수 있다." 라고 말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참새떼들이 동시에 힘껏 솟구쳐 날아 올랐습니다. 그러자 그 무겁게 쳐져 있던 그물이 움직였습니다. 참새들은 그물을 큰 나무에 걸고서 모두 빠져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함께 사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참새처럼 모두가 한 곳에 힘을 합하면 힘든 일도 잘 풀리게 마련입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의 속뜻을 실감나게 합니다. 주어진 일에 체념만 하고 앉아 있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 9- 12)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에 '레드우드'라는 공원이 있습니다. 사막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공원에는 우람한 적송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심한 더위와 가뭄 때문에 아무 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사막에 어떻게 레드우드 공원과 같은 숲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물을 주기도 하지만, 여러 나무가 함께 자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많은 나무가 함께 자라면서 바닥엔 늘 그늘이 지고 습기의 증발이 억제되어 나무가 죽지 않고 숲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 울창했던 밀림의 나무들도 한 그루씩 자꾸 베어지면, 앞서의 경우와는 반대로 점차 땅이 보습(保濕) 기능을 잃고 메마르게 되어 나머지 나무들도 전부 말라 죽고 맙니다.
성도 여러분! 요즈음 우리 주변에는 이웃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 혼자만 잘 살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이웃과 더불어 함께 할 때, 레드우드 공원의 숲처럼 사막도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잘 살기 위해 힘쓰는 것보다 서로를 사랑하며 보람 있게 사는 일일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고전 12: 25)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50년이 되는 희년에 모든 토지를 원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난이 영원히 고착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근거는 모든 토지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땅의 소유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그 사용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욕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 합니다. 자손대대로 물려주며 소유하려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은 자본과 소유의 관계가 너무나 복잡한 시대가 되어 고대농경사회처럼 땅을 돌려준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이 주는 진리를 깊이 새겨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할 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소유의 원주인이 누구인가 생각하게 하십니다.
이제 한국 사회는 더불어 사는 지혜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민족뿐 아니라 시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 기도: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 아버지, 내게는 가정과 부모와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또 일할 수 있는 직장과 조국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당신을 마음껏 섬길 수 있는 교회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나처럼 그렇게 행복한 삶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거처할 가정이 없이 방황하는 자들과 신앙이 박해받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근로 환경이 열악한 상태에서 낮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격무에 시달려 일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과 가정에서 동정을 받지 못함은 물론 심지어 학대를 당하는 자들과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자들과 정신 이상에 걸려 정신요양소에 수용되어 있는 자들과 옥에 갇혀 있는 자들과 사람들로부터 멸시 당하고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은총을 베푸시옵소서. 오! 하나님, 내가 행복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그들의 불행을 결코 잊지 않게 하옵소서 더불어 사는 훈련을 하게 하소서. 우리 믿음의 가족들이 서로 돕게 하소서. 우리나라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참다운 사랑과 협력을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대로 잡힐 순 없다. 살아야 한다. 자아, 우리 모두 동시에 힘껏 날아 올라 이 그물을 저 큰 나무에 걸어 보도록 하자. 그러면 우린 무사히 빠져 나갈 수 있다." 라고 말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참새떼들이 동시에 힘껏 솟구쳐 날아 올랐습니다. 그러자 그 무겁게 쳐져 있던 그물이 움직였습니다. 참새들은 그물을 큰 나무에 걸고서 모두 빠져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함께 사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참새처럼 모두가 한 곳에 힘을 합하면 힘든 일도 잘 풀리게 마련입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의 속뜻을 실감나게 합니다. 주어진 일에 체념만 하고 앉아 있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 9- 12)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에 '레드우드'라는 공원이 있습니다. 사막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공원에는 우람한 적송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심한 더위와 가뭄 때문에 아무 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사막에 어떻게 레드우드 공원과 같은 숲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물을 주기도 하지만, 여러 나무가 함께 자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많은 나무가 함께 자라면서 바닥엔 늘 그늘이 지고 습기의 증발이 억제되어 나무가 죽지 않고 숲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 울창했던 밀림의 나무들도 한 그루씩 자꾸 베어지면, 앞서의 경우와는 반대로 점차 땅이 보습(保濕) 기능을 잃고 메마르게 되어 나머지 나무들도 전부 말라 죽고 맙니다.
성도 여러분! 요즈음 우리 주변에는 이웃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 혼자만 잘 살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이웃과 더불어 함께 할 때, 레드우드 공원의 숲처럼 사막도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잘 살기 위해 힘쓰는 것보다 서로를 사랑하며 보람 있게 사는 일일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고전 12: 25)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7)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50년이 되는 희년에 모든 토지를 원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난이 영원히 고착되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근거는 모든 토지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땅의 소유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그 사용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욕심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 합니다. 자손대대로 물려주며 소유하려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은 자본과 소유의 관계가 너무나 복잡한 시대가 되어 고대농경사회처럼 땅을 돌려준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이 주는 진리를 깊이 새겨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할 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소유의 원주인이 누구인가 생각하게 하십니다.
이제 한국 사회는 더불어 사는 지혜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민족뿐 아니라 시계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 기도: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 아버지, 내게는 가정과 부모와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또 일할 수 있는 직장과 조국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당신을 마음껏 섬길 수 있는 교회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나처럼 그렇게 행복한 삶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거처할 가정이 없이 방황하는 자들과 신앙이 박해받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근로 환경이 열악한 상태에서 낮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격무에 시달려 일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과 가정에서 동정을 받지 못함은 물론 심지어 학대를 당하는 자들과 병원에 입원해 있는 자들과 정신 이상에 걸려 정신요양소에 수용되어 있는 자들과 옥에 갇혀 있는 자들과 사람들로부터 멸시 당하고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은총을 베푸시옵소서. 오! 하나님, 내가 행복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그들의 불행을 결코 잊지 않게 하옵소서 더불어 사는 훈련을 하게 하소서. 우리 믿음의 가족들이 서로 돕게 하소서. 우리나라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참다운 사랑과 협력을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