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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레22:31-33 |
|---|---|
| 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 참고 : | 새길교회 |
아담의 셋째 아들인 셋이 자기 아들에게 지어 준 이름은 ‘에노스’입니다. 이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란 의미입니다. 셋 시대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모든 인간은 ‘에노스’, 즉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한 것입니다. 셋은 그 중요한 깨달음을 자기 아들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 자기 한계, 자기 실상을 일평생 잊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염원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인간들은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이름을 한번 호칭해 보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생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자신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몰랐으면 모르되 자기 죽음을 자각한 이상,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 즉 인생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인생 사용설명서를 좇아 살아가는 것 이외의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본능과 욕망에 계속 사로잡혀 사느라 천하보다 더 귀한 생명을 더 이상 허망하게 갉아먹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때 자신들이 ‘에노스’, 즉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지 못했던들 그들은 창조주를 마냥 외면하는 삶을 계속 살면서도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통감한 자만이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자신의 생명을 가꾸게 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2:21)
수년전 미국에서 라이나 화이트라는 18세 된 소년이 에이즈로 죽어가는 모습을 TV와 신문들이 앞 다퉈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 젊은이는 13세 때 혈루병 치료 중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됐습니다. 이 소년은 5년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때 아버지에게 남긴 말이 미국 국민을 감동시켰습니다.
“네가 이렇게 빨리 가야 한다니 가슴이 아프구나”
아버지의 말을 들은 아들은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 대신 아버지는 제게 소중한 선물을 주셨어요. 아버지는 제게 예수님을 알게 해주셨잖아요. 저는 예수님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인데 나는 조금 빨리 가는 것 뿐이에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예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예수”라는 이름은 사람이 지어준 이름이 아닙니다. 그의 부모 마리아나 요셉이 지어준 이름도 아닙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마음에 풍랑이 일어날 때 근심과 염려로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세상에 혼자 있는 듯이 느껴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떠났을 때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마음으로 간절히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마음의 모든 풍랑은 사라지며 당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고요하고 깊은 평안이, 사랑이 부드럽게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지옥은 끝이 나며 아름다운 천국이 시작됩니다. 모든 파도는 가라앉고 평화의 바다가 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교회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불신자 중 일부는 하나님의 이름(성호)를 욕되게 하기도 합니다. 특히 인터넷 세계는 반기독교적 세력의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지만 또한 공중의 권세잡은 자가 그 세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 믿는 자들이 핍박을 받고 사단의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후 맞이한 현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앞에 펼쳐진 현실은 광야였습니다. 광야는 구원받은 자들의 삶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신 소망을 담금질 하십니다. 그것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꿈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수없이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를 배반하였습니다. 일생 노예로 살다 죽을 인생들을 구원하여 주셨지만 그들은 조금만 어려워도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사명은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존재의미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간절한 기도제목입니다.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셀라)"(시편44:8)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시편69:30)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신 아도나이 즉 ‘주님’이라고 불렀을 정도입니다.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온 백성을 위하여 기도할 때 그 이름을 불렀을 뿐입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까.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애굽기20:7) 하셨습니다. ‘망령되이’란 무엇을 뜻하는 말입니까? 히브리어에서 살펴보면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실제로 계시지 않은 것처럼 또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치없는 것처럼 다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귀하게 여긴 아굴의 소원을 살펴봅시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어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잠 30:7∼9)
열심히 믿는데 생활이 궁색하면 너같이 될까봐 예수 믿지 못하겠다는 욕이 하나님께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 성도에게는 남을 구제할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이관대 남을 도울 수 있는 자리에 있게 하시나이까”라고 감사히 여기며 이웃을 도와 하나님의 이름이 나를 통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들을 통해 발현됩니다. 따라서 나누고 서로 보살피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서로 도와 특별히 못사는 사람이 없도록 보살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업에 실패하면 같은 민족이 앞장서서 도와줍니다. 유대인으로서 가난하게 살면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망신이라는 것이 그들의 기저에 깔린 의식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면서도 똘똘 뭉쳐 서로 도와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에 나의 마지막 생명을 의지해야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하나님!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게 해 주십시오. 내가 행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다같이 찬송가 36장을 부르고 마치겠습니다.
주 예수 이름 높이어
1.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 금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금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2. 주 예수 당한 고난을 못잊을 죄인아 네 귀한 보배 바쳐서 만유의 주 찬양 네 귀한 보배 바쳐서 만유의 주 찬양
3. 이 지구위에 거하는 온 지파 족속들 그 크신 위엄 높여서 만유의 주 찬양 그 크신 위엄 높여서 만유의 주 찬양
4. 주 믿는 성도 다함께 주 앞에 엎드려 무궁한 노래 불러서 만유의 주 찬양 무궁한 노래 불러서 만유의 주 찬양 아멘
* 기도: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세세토록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우리를 모태에서부터 조성하시고 구속하신 후 성령의 전으로 삼아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이름을 높여드립니다. 주의 나라 찬양속에 임하시니 능력의 주께 찬송합니다. 전능하시고 언제나 동일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나 주의 이름을 높이겠나이다. 하늘 높이 올린 깃발처럼 주의 이름 높이겠나이다. 영광 홀로 받으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리고 그때부터 인간들은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이름을 한번 호칭해 보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생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자신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몰랐으면 모르되 자기 죽음을 자각한 이상,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 즉 인생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인생 사용설명서를 좇아 살아가는 것 이외의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본능과 욕망에 계속 사로잡혀 사느라 천하보다 더 귀한 생명을 더 이상 허망하게 갉아먹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때 자신들이 ‘에노스’, 즉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지 못했던들 그들은 창조주를 마냥 외면하는 삶을 계속 살면서도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통감한 자만이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자신의 생명을 가꾸게 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2:21)
수년전 미국에서 라이나 화이트라는 18세 된 소년이 에이즈로 죽어가는 모습을 TV와 신문들이 앞 다퉈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 젊은이는 13세 때 혈루병 치료 중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됐습니다. 이 소년은 5년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때 아버지에게 남긴 말이 미국 국민을 감동시켰습니다.
“네가 이렇게 빨리 가야 한다니 가슴이 아프구나”
아버지의 말을 들은 아들은 편안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 대신 아버지는 제게 소중한 선물을 주셨어요. 아버지는 제게 예수님을 알게 해주셨잖아요. 저는 예수님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인데 나는 조금 빨리 가는 것 뿐이에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예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예수”라는 이름은 사람이 지어준 이름이 아닙니다. 그의 부모 마리아나 요셉이 지어준 이름도 아닙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마음에 풍랑이 일어날 때 근심과 염려로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세상에 혼자 있는 듯이 느껴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떠났을 때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마음으로 간절히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마음의 모든 풍랑은 사라지며 당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고요하고 깊은 평안이, 사랑이 부드럽게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지옥은 끝이 나며 아름다운 천국이 시작됩니다. 모든 파도는 가라앉고 평화의 바다가 열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교회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불신자 중 일부는 하나님의 이름(성호)를 욕되게 하기도 합니다. 특히 인터넷 세계는 반기독교적 세력의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지만 또한 공중의 권세잡은 자가 그 세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 가운데 믿는 자들이 핍박을 받고 사단의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후 맞이한 현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앞에 펼쳐진 현실은 광야였습니다. 광야는 구원받은 자들의 삶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신 소망을 담금질 하십니다. 그것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꿈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수없이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를 배반하였습니다. 일생 노예로 살다 죽을 인생들을 구원하여 주셨지만 그들은 조금만 어려워도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사명은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존재의미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간절한 기도제목입니다.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셀라)"(시편44:8)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시편69:30)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신 아도나이 즉 ‘주님’이라고 불렀을 정도입니다.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온 백성을 위하여 기도할 때 그 이름을 불렀을 뿐입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까.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애굽기20:7) 하셨습니다. ‘망령되이’란 무엇을 뜻하는 말입니까? 히브리어에서 살펴보면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실제로 계시지 않은 것처럼 또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치없는 것처럼 다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귀하게 여긴 아굴의 소원을 살펴봅시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어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잠 30:7∼9)
열심히 믿는데 생활이 궁색하면 너같이 될까봐 예수 믿지 못하겠다는 욕이 하나님께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또 우리 성도에게는 남을 구제할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이관대 남을 도울 수 있는 자리에 있게 하시나이까”라고 감사히 여기며 이웃을 도와 하나님의 이름이 나를 통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들을 통해 발현됩니다. 따라서 나누고 서로 보살피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서로 도와 특별히 못사는 사람이 없도록 보살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업에 실패하면 같은 민족이 앞장서서 도와줍니다. 유대인으로서 가난하게 살면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망신이라는 것이 그들의 기저에 깔린 의식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면서도 똘똘 뭉쳐 서로 도와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에 나의 마지막 생명을 의지해야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하나님! 나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게 해 주십시오. 내가 행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다같이 찬송가 36장을 부르고 마치겠습니다.
주 예수 이름 높이어
1.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 금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금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 찬양
2. 주 예수 당한 고난을 못잊을 죄인아 네 귀한 보배 바쳐서 만유의 주 찬양 네 귀한 보배 바쳐서 만유의 주 찬양
3. 이 지구위에 거하는 온 지파 족속들 그 크신 위엄 높여서 만유의 주 찬양 그 크신 위엄 높여서 만유의 주 찬양
4. 주 믿는 성도 다함께 주 앞에 엎드려 무궁한 노래 불러서 만유의 주 찬양 무궁한 노래 불러서 만유의 주 찬양 아멘
* 기도: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세세토록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우리를 모태에서부터 조성하시고 구속하신 후 성령의 전으로 삼아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이름을 높여드립니다. 주의 나라 찬양속에 임하시니 능력의 주께 찬송합니다. 전능하시고 언제나 동일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나 주의 이름을 높이겠나이다. 하늘 높이 올린 깃발처럼 주의 이름 높이겠나이다. 영광 홀로 받으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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