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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

신명기 복음............... 조회 수 2880 추천 수 0 2007.12.07 16: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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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신6:5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8)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요3:16)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님께서도 제자와 우리들을 끝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요13:1) 그러므로 그 베풀어 주신 사랑으로 자녀가 된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과 마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떤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아와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 계명을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우리 기독교는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의 종교입니다. 이 사랑은 크게 나눠서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총괄해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생각하게 되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크고 첫째되는 계명입니다. 이 말씀은 모든 계명의 기초가 됩니다. 다른 모든 계명이 이 계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좋을 것 입니다. 따라서, 이 계명은 모든 계명을 포함하는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 하나만 잘 지키면 자연히 다른 계명은 잘 지키게 될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상을 만들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연히 하나님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힘쓸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 일서 4장 20 - 2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한 이 계명은 모든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계명이요, 모든 계명의 총괄이요, 제일 먼저 순종해야 할 계명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여러분, 여기 "사랑하라" 고 하신 말씀을 주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또한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존경만 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런데 경외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모든 은혜를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은 다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봉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다하면서도 당신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우리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다른 면은 질투입니다. 사랑하면 질투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는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가 있는 것을 느낄 때 질투의 감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감정입니다. 만일에 자기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가있는 것을 알면서도 질투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를 사랑하면 그가 나만을 사랑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의 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무엇으로 다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놀라운 사랑입니다.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을 또한 요구하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해서 정성을 쏟으면 쏟는 만큼 자녀에 대한 기대가 큰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의 사랑을 요구하십니까? 오늘 주신 말씀 신명기 6장 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초신자에게는 예수를 믿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숙된 성도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주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2:13)

1. 마음을 다하라
마음이란 사람의 가장 깊고 중요한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서 '심장'(렘11:20)이나 '중심'(애3:21)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이곳은 생명의 근원이며(잠4:23), 성령에 의해 말씀이 기록되는 곳이며(렘31:33),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엡3:17) 그리고 이 마음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시33:15) 따라서 마음을 다하는 것은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참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또 여기 "마음" 이란 말은 우리가 겉모양으로 하지 말고, 말로만 하지 말고, 중심대로 사랑하라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려오는 말에 "비둘기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인데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내 몸은 어디 있든지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언제나 그 마음이 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랑하면 그 사랑의 대상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관심이 없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나쁜 말 중에 하나는 무관심이라는 말입니다. 남편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교회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지 관심이 없다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께 향해 있어야 합니다.

2. 성품을 다하라
성품이란 '둘러싸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나파쉬'에서 온 것으로 '생명(창9:5), '사람'(레24:17), ' 영혼'(시124:7), '뜻과 의지'(창23:8)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품을 다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뜻과 의지, 생명을 다하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의 의지와 생명을 다바쳐서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성품을 다해서, 그러니까 모든 지력과 지식 그리고 지혜를 다해서 사랑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목숨을 다하고"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데는 혼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생명 전체를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대한 우리들의 사랑은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한 최선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 전체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 부분으로 사랑함으로써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3. 힘을 다하라.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육체의 능력이든지 심령의 능력이든지 내게 무슨 힘이 있든지, 가령 재력이든지 권력이든지 능력이든지 그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심령 전체를 드려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영과 육 전체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부분적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고, 머리로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고, 혹은 감정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고, 외부적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고, 지, 정, 의 우리의 인격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라우디게아 교회처럼 미지근하게 사랑하지 말고 온 힘을 다해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두 마음이 아니라(약1:6- 8) 한 마음, 곧 전심으로, 온 힘을 다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시도 바울은 복음을 위함에는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행20:24) 주님도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했습니다.(마16:24) 이는 우리가 오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사랑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제일 먼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지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 극진히 사랑하라고 하면서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주심같이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아내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요구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또,우리는 부모님을 극진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자녀를 위해서는 아까운 것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우리의 생명을 사랑합니다. 가령 나이 많이 드신 분이 이젠, 빨리 죽어야지. 하는 말을 늘 외듯 합니다. 그러나 정말 죽으라고 하면 몹시 섭섭해 합니다. 왜요? 내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한 말씀은 내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순교의 자리에까지 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문자 그대로 자기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전적으로,우선적으로, 지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여기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극진히 사랑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우선 소극적으로 세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동안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한 공간 속에 두 가지가 같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과는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소극적으로 세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지나가기 때문입니 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한다고 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 따라 살기를 힘씁니다. 이것은 사랑의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요한 일서 5장 1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 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그 계명을 지키려면 그것이 무거운 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이 그 계명을 지키려면 힘들어서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23절에도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면 남편이 한 말을 꼭 기억하고 그대로 지키려고 힘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앙망합니다. 시편 42편 1절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합니다. 시편 84편 2절에 보면 이런 갈급이 있습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 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궁정을 사모해서 육체와 정신이 쇠약해질 정도로 생각하고 앙망하는 모습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을 앙망합니다. 그럴 때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어도 새 힘을 얻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어려운 세상을 힘있게 살아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랑에는 힘이 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넷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성막을 지으려고 할 때 모든 백성에게 선포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명령에 의지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막을 지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성막을 짓기 위해서는 실도 필요하고 나무도 있어야 하고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보석도 다 필요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것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바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원해서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모세의 말을 듣고, 그들이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자원해서 실과 천과 나무와 보석, 금, 은, 동, 철을 가져오는데, 너무 많아서 그 다음엔 모세가 이제는 더 가져오지 마시오. 넉넉하니 그만두시오. 라고 선포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일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분을 위해서 하는 일이면 즐거움이 있습니다. 전에 하나님의 사람 에스라 때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백성들을 다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와서 성전을 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원해서 나아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수고를 했지만 즐겁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있으나 그 수고는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께 붓고 머리털을 풀어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왜 그런 일을 했습니까? 주님을 극진히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이 없는 가룟 유다는 이것을 보고 쓸데 없는 낭비라고 비난했습니다.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내 시간, 내 재주, 내 물질 모든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드립니다.

다섯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기쁨으로 복음을 전파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는 남이 웃는 줄도 모르고 자기 남편 자랑하기에 침이 마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이 좋아만 보이고 훌륭해 보이고 자랑스러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랑되시는 주님께 대해서도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선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전도입니다. 내게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을 말하지 않고 견딜 수가 있습니까? 이제 얼마 있으면 대학 입학 합격자 발표가 있을 것입니다. 내 아이가 합격한 통지를 받으면 이 기쁜 소식을 부모 혼자 간직하고 있을 수 있습니까? 알리고 싶고, 물어 보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 마음이 아닙니까? 옛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주님 때문에 핍박을 받으면서도, 매를 맞으면서도, 심문을 받으 면서도, 심지어 순교까지 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이 기쁜 복음의 소식을 전파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그 이유를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지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셔서 우리에게 새 나라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히 사랑할 만한 분이십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의 것을 사랑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다가는 결국 마 지막에 눈물로 끝내는 것밖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영광을 사랑합니까? 그 영광도 지나갑니다. 세상의 물질을 사랑합니까? 그 물질도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돌고 도는 것이 돈입니다. 세상의 사람을 우리가 사랑합니까? 그 사람도 지나갑니다. 젊음을 사랑하십니까? 그 젊음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 되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세상의 것도 바로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친구도 바로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물질까지도 바로 대할 수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처음 사랑을 버렸다" 고 책망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 니다. 에베소 교회는 여러 가지 다른 일은 잘 하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하나님과 상대하는 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는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주 너의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니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오늘 여러분은 크고 첫째되는 이 계명을 분명히 들으시고, 우리 평생에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만이 아는 큰 행복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랑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행복이므로 제가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자신만이 아는 큰 행복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여러분만이 아는 행복을 소유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족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고백합니다. 주여 ! 이 시간부터 하나님을 전보다 더욱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누구보다도 깊이 뜨겁게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깨끗이 살며, 세상을 이기며 참되게, 기쁘게, 만족스럽게 살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가르치고 자녀를 하나님 말씀으로 교육하는 데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자녀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태릉고등학교 교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주님을 사랑합니다.

영국의 한 시골 노인이 난생 처음 런던 관광을 왔습니다. 그는 그림에 조예가 있어서 유명한 화실에 들러 이 그림 저 그림을 구경하다가 신앙이 독실한 대 화백이 필생의 걸작으로 그린 예수님의 상을 보고 그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경건되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한참 그림을 쳐다보다가 노인의 두 눈에서 두 줄기의 눈물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못하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오 ! 주여,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관람객 중의 한 부인이 그 노인에게 가서 손목을 좌 잡으며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또 한 학생이 이 장면을 보고 "할아버지, 저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 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의 이름 아래서 그들은 서로 통했고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삽시간에 칠팔 명의 사람들이 그 앞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주님을 향하는 뜨거움이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항상 있어야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편 18:1)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 17) "

2. 묵상 및 토의
0 '사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0 나는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0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당신의 말로 표현해봅시다.
0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할 친구가 있으면 기록해봅시다.
0 사람도 자식을 이처럼 사랑하는데 하늘 아버지의 사랑은 어떠하겠습니까? 그 사랑으로 삶에 닥쳐오는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길 수 있음을 믿습니까?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 두 번째 자리

스펄젼은 어느 날 밤, 그가 수많은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엑세터 홀로 그의 약혼녀를 데리고 갔습니다. 택시가 그 홀에 도착했을 때 그의 마음은 온통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는 수잔 탐슨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이야기해놓고 예전처럼 군중 사이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이 끝난 후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찾아보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더니 그녀는 몹시 토라져 있었으며 다시는 만나지도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펄젼이 계속 만나 달라고 간청함으로 그녀는 마지못해 아래층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는 먼저 사과한 후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잘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오. 나는 무엇보다도 주님의 종이 되길 첫째로 원합니다. 주님은 항상 나의 첫째이며, 주님을 위한 일도 최우선입니다. 당신이 이 사실을 알고 기꺼이 나의 두 번째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매우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오. 나의 첫째 임무는 주님의 일입니다."
나중에 스펄젼의 부인은 그 날 밤 남편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신 분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두 번째 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보다 선행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이동 명령이 내려졌을 때 방해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 예화(2) : 높고 깊고 넓은 사랑

한 영국인이 요크셔 해안에 아름다운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해안 한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바다를 향해 불쑥 나와 있었다. 어느 날 이 영국인은 딸을 데리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갔다. 그들이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는 딸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을 주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애야, 위를 올려다 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번에는 아래를 내려다 보아라."
아버지의 말대로 딸은 하늘이 비춰지는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이번엔 저 앞을 내다보아라."
딸은 아버지의 말대로 했다.
"내 딸 도로시야, 이처럼 높고 한없이 깊고 끝없이 넓고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말을 들은 딸은 아버지를 향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이처럼 높고 깊고 끝없이 광활하다면 우리는 그 한가운데서 살고있군요." 하고 똑똑히 말했다. 아버지는 딸의 이 말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한다.

* 예화(3): 다르게 느껴지는 하나님 사랑

어느 가난한 시골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분반공부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한참 설명을 하고 있는데 한아이가 손을 들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은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잊어버리고 계신가봐요,그러니까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옷도 누더기를 입고 작은 오막살이집에서 살게 되지요."
그 때 또 다른 아이가 일어섰다. 그도 역시 가난하여 헌 누더기를 입고 있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모두 기억하고 사랑하신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좋은 부모님을 주시고 행복한 가정을 주신것이 아니겠어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가 구원받기를 원하고 계신다. 누구든지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면죄를 용서해 주신다.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 예화(4): 하나님의 짝사랑

구약성경 중 호세아서에는 이런 안타까운 Love Story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고멜은 남편을 배신하고 창녀의 소굴로 도망쳐 버리고, 남편 호세아는 보리를 싸들고 찾아가서 팔려간 고멜을 돈을 주고 사오는 겁니다. 그녀의 배은망덕한 사랑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계속되는 배신은 하나님을 짝사랑의 애닮은 연인으로 전락시킨 것입니다. 그 이후-- 하나님은 짝사랑의 아픔을 앓고 계십니다.
헌데 당신도 하나님을 짝사랑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요? 어느 날인가 복잡한 통근시간에 시내버스를 타고 있었습니다. 저만치 한 여학생이 무거워 보이는 책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앉아 있던 나는 꼭 그 여학생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손을 뻗쳐 가방을 받기에는 애매한 거리였습니다. 그저 그 학생이 한번만 돌이켜본다면 나는 그를 부를텐데, 조금만 더 다가선다면 그 가방을 받아줄텐데 --그녀는 끝내 더 먼 위치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눈뜨는 아침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돌보시는 그의 사랑을 아십니까? 당신의 먼 장래까지 보장하시는 그의 관심을 아시나요? 그런데 당신은 어쩌면 주님께 시선한번 안 돌리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주일 내내 성경 한 장 안 보고, 하루 중 기도 한 번 안하고, 그나마 주일 예배엔 늦게 나오고, 오후 집회엔 관심도 없고......
이중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 슬프다! 당신은 그 분을 짝사랑하게 만들고 있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요. 그의 도움의 손길이 끝내 근처에 머물고 있음을 기억해요.

* 예화(5):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인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는 데는 여러 방도와 형태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바치는 일입니다. 이러한 헌신은 내면적으로는 마음의 자세를 통해 전달되고, 외형적으로는 재물`·시간·은사의 헌납이라는 가시적 행위를 통해 표현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헌신의 표시로서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헌금을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고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재물을 비롯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 고로 이러한 헌납 행위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고, 따라서 이런 행위는 그분은 기쁘시게 합니다. 또한 헌금은 하나님의 너그러우심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고 향유하도록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 누리는 재물을 헌납함으로써 이 점을 인정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됩니다. 비록 우리의 헌금이 하나님의 주 되심과 너그러우심을 인정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헌금으로부터 인간 식의 유익을 얻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헌금을 통해 요구하시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 곧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헌금을 바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제물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 송인규

4. 찬송(1): (4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은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 찬송(2): (35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1. 날 대속하신 예수께 내생명 모두 드리니 늘 진실게 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2. 날 구원하신 예수를 일평생 의지하오니 날 영접하여 주소서 내 구주 예수여
3. 주 십자가에 달리사 날 자유하게 했으니 내몸과 맘을 주위해 다 쓰게 하소서

[후렴] 나 구주위해 살리라 내기쁨 한량 없으리 내 갈길 인도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아 - 멘

http://je333.com(한태완 목사 설교 예화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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