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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낮추시며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이라

신명기 조용기 목사............... 조회 수 3594 추천 수 0 2008.10.22 19: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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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신8:14-17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3년 2월 23일 주일2부설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 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서론>

『너를 낮추시며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이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평소 주님을 잘 믿고 섬기는 성도가 큰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 제게 묻는 질문이 이러합니다. “목사님, 저는 성수주일하고 십일조 잘 드리며 제딴엔 주님을 잘 믿으려고 애를 쓰는데 왜 이와같은 시련이 다가옵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한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간단한 대답은 어렵습니다만 그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대답은 오늘 읽은 신명기 말씀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로 밑바닥까지 낮아지게 하심은 장차 정상으로 높이시기 위한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본론>
1.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한 일

여러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당한일을 생각해 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목동생활로 낮아질대로 낮아진 삶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원래 모세는 바로왕의 딸의 양자로써 40세까지 애굽에서 호화롭게 자라났습니다. 그는 애굽의 모든 교육기관에서 학문에 통달하고 영광을 누리고 호의호식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있을 수 없을만한 영화를 바로의 딸의 양자가 되어서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이 40이 되자 자기 동족 생각이 나서 고난 당하는 자기 동족들을 보기 위해서 노역장에 갔다가 애굽의 간수가 이스라엘 백성을 때리는 것을 보고 달려들어서 그 애굽사람을 죽여서 모래에 파묻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모두다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생각할 줄로 기대했는데 그 이튿날 나가보니까 동족들끼리 싸우는지라. 왜 동포끼리 싸우냐고 물으니까 그중 한사람이 “어제 네가 애굽 사람을 쳐죽이더니 오늘 또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누가 너를 재판관으로 세웠느냐?” 그리고 반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곧장 당국에 고발을 해버렸습니다. 동족에게 배신을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놀란 모세는 그 길로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쳤고 애굽왕 바로는 모세를 잡아죽이려고 백방으로 그를 쫓았습니다. 그는 미디안 광야에 가서 방황하다가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집에서 데릴사위가 되어 그 집 맏딸과 결혼을 해서 데릴사위로서 그 집 머슴으로 40년 동안 목동생활을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애굽의 왕궁에서 자랐으며 애굽의 아름다운 미녀들과 같이 생활했고 그는 호의호식하고 모든 애굽의 학문에 통달하고 웅변이 능통하던 사람이 이제는 저 보잘 것 없는 미디안 광야의 족장인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얼굴에 화장끼 없는 평범한 처녀를 구해서 아내로 삼고 이름 없는 곳에서 하루하루 그는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양무리를 몰고 그는 광야를 다닐 때 앉는곳마다 그의 무덤이요, 일어서는 곳마다 그의 눈물처지였습니다. 그는 너무나 안타깝고 너무나 버림받고 너무나 좌절하고 절망한 가운데 가슴을 치고 울고 울면서 40년 세월을 지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그는 머리가 백발이 되고 80이 되었습니다. 그가 낮아져도 그렇게 낮아질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80세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 야웨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떨기나무가 불이 붙었는데 타지 안는지라 하도 신기해서 구경하러 가니까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가 선곳은 거룩하니 발의 신을 벗어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네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그는 40년의 광야생활에서 낮아질대로 낮아지고 비천해질대로 비천해진 이후에 80에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지고 일리(?)하게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길로 지팡이만 의지하고 애굽으로 건너가서 바로와 대결하여 430년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으며 오늘날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낮아진 것은 하나님이 높이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냥 목적없이 그를 광야에 40년 동안 낮춘 것은 아닙니다. 장차 높여서 위대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그를 비천하게 낮추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한가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부르실 때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족속, 여부스족속의 지방에 이르게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니 상상을 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환상을 주시되 기막힌 환상입니다. 오늘날 어떠한 케치프레이드도 이처럼 아름다운 케치프레이드가 없습니다. 젖이 흐르고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를 인도하겠다. 이 말을 듣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다 감격하고 흥분하고 그들이 뛰는 가슴을 정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이르기전에 광야를 지나듯이 그들은 홍해수가에서 애굽의 공격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살아난 그들은 홍해수를 기적으로 건너고 난 다음에 광야로 돌아가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을 했습니다. 여러분! 광야의 고생이란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쉬운 광야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지난 그 광야는 정말 풀한포기 없고 물 한방울 없는 너무나 거칠고 황막한 광야였습니다. 모래바람 불고 뜨건운 햇빛이 작열하고 밤에는 추위로 말미암아 바위 터지는 소리가 쾅쾅 들렸습니다. 그러한 곳에 그들은 천막치고서 의식주 생활이 낮아질데로 낮아진 그러한 처지에서 살았습니다. 40년을 방황했습니다. 왜 그렇게 낮추었습니까? 왜 그렇게 고생했습니까? 그것은 장차 하나님이 적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서 살게 하기 위해서 예비 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높여 주기 위해서 낮추신 것이지 목적없이 낯추신 것은 아닙니다. 마침내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에 들어왔습니다.
신명기 8장 15절로 16절에 보면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 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복을 주기위한 목적하에서 주님께서 낮추시고 시험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서도 너무나 잘압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낮아 지셨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요, 통치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하나님의 모든 역사를 행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그 영광의 보좌 버리시고 그 무수한 천군천사의 후의를 다 버리시고 비천한 나사렛 한여인의 몸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우리 사람과 같이 10달 동안 어머니 뱃속에 있었고 어린 아기로 태어나서 의지없이 어머니의 품에서 어머니의 젖을 빠는 참 하나님이 순수한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에서 수고하며 살았습니다. 양아버지 요셉의 공장에서 함께 목공일을 하면서 그는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30세에 하나님의 때가 오매 부르심을 받아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고 성령으로 충만 받으시고 40주 40야 금식하신 후 3년 반동안 공생애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산과 들에서 주무시고 노숙을 하시면서 그는 살으셨고 마침내 유대인들과 로마 사람들의 공모에 잡혀서 십자가에 처참하게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낮아진 것을 보십시오. 어떻게 하나님이 인생으로 낮아진 것도 어마어마한 일인데 극악한 강도가 죽는 그 형에 쳐해서 십자가에 발가벗고 양손과 양발에 못이 박히고 처참하게 죽으셨습니까? 주님은 낮아질대로 낮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예수님이 낮아지신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2.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

빌립보서 2장 5절로 8절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처참할 정도로 낮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낮아지게 하심은 그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여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가장 높으신 이름을 주시기 위하신 것입니다. 목적없이 낮아진 것 아닙니다. 낮아졌을 때 주님께서는 인류를 위한 대속 속죄물이 되셨고 주님은 높아지셔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기 위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9절로 11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20절로 22절에 보면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이 위대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가 높아지시기 이전에 얼마나 낮아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존경하고 사모하고 기뻐하는 사도바울 선생을 보십시오. 사도바울 선생은 모든 사도보다 낮아진 분인 것입니다. 그는 원래 베냐민 지파 사람이고 바리새인적이고 율법 권위자였습니다. 가마리엘 문화에서 랍비교육을 받았고 로마의 시민권자였고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엘리트중에 엘리트요, 귀족중에 귀족이요, 장차 산헤드린 회원중에서 가장 으뜸이 될 수 있는 그러한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중생하고 변화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하나님은 이 바울을 사용하기 위해서 낮추셨습니다. 그는 정말로 고생을 많이 하고 낮추어졌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로 30절에 보면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는 말하기를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같이 바울은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하고 낮아질대로 낮아졌습니다. 그는 천사들과 온 세상 사람들 앞에서 구경 거리가 되었다고 말했었습니다. 왜 바울선생은 이렇게 낮아졌습니까? 물은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그가 낮아지고 낮아질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그 속에 더 많이 고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바울선생을 높였습니다. 여러분 오늘 신약성경 27권중에 14권을 바울선생을 통해서 하나님이 적으셨습니다. 성경 27권 가운데 14권 그것도 가장 핵심적인 진리를 바울선생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시했으며 성경중에 성경이라고 하는 로마서를 바울선생을 통해서 기록했습니다. 만일 성경에 로마서가 없었으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결정적인 신학을 우리는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 다 우리가 잃어 버린다 하더라도 로마서 한권만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핵심적인 진리를 알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위대한 계시를 하나님은 바울선생을 통해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선생을 심히 낮추신 것은 그를 인류 역사를 통해서 이렇게 위대한 계시를 통하여 높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선생은 하늘나라에 올라 가서도 높고 위대한 자리를 얻었을 것이고 그 기대가 넘쳤습니다.
그는 디모데후서 4장 7절로 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라는 그러한 담대한 믿음의 기대와 소망을 가질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 말하기를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약하게 하시는 것은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약하게 하는 것이지 약하게 하기 위해서 약하게 하지 않습니다. 낮추신 것은 높이기 위해서 낮추시는 것이지 낮추어서 멸할려고 하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신 후에 높이시겠습니까? 그냥 높이시지 왜 낮춘 기간을 가지시겠어요? 그것은 우리 아집을 깨뜨리기 위한 것입니다. 내 중심이 아닌 주님 중심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한 성품을 통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내 중심의 인간생활을 살려고 합니다. 아집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 내중심의 아집을 무너뜨리고 주님 중심으로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무너뜨려야 돼요. 여러분 낡은 건물을 없애고 좋은 건물을 지으려면 먼저 낡은 건물을 폭파해야 돼요. 무너뜨려야 돼요. 그래야 그 자리에 좋은 건물을 짓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훌륭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옛 아담의 성품을 깨뜨려야 돼요.

3. 왜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신 후 높이시는가?

신명기 8장 17절에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내 능력과 내 손으로 내가 오늘날 승리하고 성공하고 복을 받았다고 이렇게 하는 아집이 인간에게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3절로 4절에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깨어지고 변화받고 인내를 가진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낮추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낮아졌을 때 깨어지고 하나님 앞에 손들고 들어 옵니다. 자기가 부귀, 영화, 공명이 있고 높아졌을 때는 아집에 꽉 들어차서 주님이 들어오실 곳이 없어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것이라 했는데 가난하고 빈곳에 채울수가 있지요. 꽉 들어찬 곳에는 아무것도 채울수가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잔에 물을 가득 채워놓고 난 다음 자꾸 와서 뭘좀 채워 주십시오 하면 못채우잖아요. 먼저 물부터 부어야 되잖아요. 그래야 빈그릇에 채우지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빈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낮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채울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김포성전 원유희 안수집사와 김경자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14년전 권사님은 이웃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집이 강해 믿기를 거부했습니다. 자녀들과 남편구원을 위해서 우리 권사님이 기도를 많이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권사님 목에서 피가 넘쳐 나와요. 뚜렷한 통증은 없고 믿음도 약한 때라 남편 몰래 자기 마음대로 결핵약을 사서 결핵약을 먹었는데 그러나 병은 점점 더해졌습니다. 6개월째 되니까 얼굴도 시꺼멓게 되고 기침도 하고 피도 많이 토한지라 남편에게 발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큰 병원에 가보니 폐암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암세포가 오른폐 전체에 여기저기에 퍼져 있어 손을 쓰기엔 너무 늦었으니 수술도 못하고 아마 오래 살아봤자 두달밖에 못산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남편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완강하던 그 아집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지고 하나님께 납작 엎드려서 아내를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며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느끼고 무릎을 꿇고 불신앙을 통회, 자복하며 믿음의 기도를 계속했는데 의사가 죽는다고 하던 한달이 지났는데도 권사님은 점점 그때부터 얼굴이 더 좋아지고 광채가 나고 몸에 활기가 돋았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재검사를 해달라고 하니까 안해줘요. 왜냐하면 필요없다고 암이라는 것이 그렇게 한달만에 좋아지지 않는다고 필요없다고 그러나 억지를 쓰니까 할수없이 병원에서 다시 조사를 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의사는 너무나 믿기 어려운 일을 발견했습니다. 온 폐전체에 퍼져있던 암이 한곳으로 똘똘 뭉쳐서 모여 있어요. 그래서 병원에서 모여있는 것을 드러내어 버렸습니다. 그 남편이 눈으로 보니까 분명히 암덩어리입니다. 하나님이 온 폐전체에 퍼져있던 암을 한곳으로 모아서 그것을 적출해 내게.. 그러고 난 다음에 재발해서 죽었으면 문제가 복잡하게 될 것인데 수술한 이후 14년째 지금까지 건강하게 열심히 부부가 봉사하며 하나님을 섬기고 살고 있습니다. 그는 왜냐, 남편을 구원하기 위해서 부인이 십자가를 짊어진 것입니다. 남편이 완악하니까 남편을 낮추기 위해서 그 아내가 십자가를 짊어진 것입니다. 그 고난이 다가오니 아집이 깨어지고 납작하고 아내 때문에 통곡하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고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교만을 깨드리는 것은 우리가 낮아지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신명기 8장 18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했는데 우리가 이 세상에 영적인 재물, 마음의 재물, 육신의 재물, 생활의 재물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이렇게 그냥 얻으면 교만해져 가지고서 날좀 보시오. 내 지혜와 능력과 내 능으로 이 일을 이루었다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교만을 깨뜨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낮추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받은 후 세상으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 주님이 미리 낮추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쉽게 축복을 받으면 쉽게 타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돈번 사람 따로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록펠러 1세는 억만장자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항상 사무실에서 식당에 내려와서 점심시간에 2달러짜리 샌드위치를 먹습니다. 2달러짜리 샌드위치를 먹는데 그 아들은 친구들을 데리고 저 윗층 좋은 식당에 가서 수백달러 음식을 먹습니다. 그래서 그 웨이터가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어서 “록펠러씨 어떻게 하여 당신은 이렇게 억만장자이면서 매 점심때 2달러짜리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아들은 저렇게 친구들을 데리고 좋은곳에 가서 많은 돈을 풍덩풍덩 쓰면서 식사를 하는데 왜 그러십니까?” 샌드위치를 씹어서 꿀꺽 삼키고 난 다음에 웨이터를 쳐다보고 싱긋 웃으시면서 “이 사람아! 나는 부자 아버지가 없지 않느냐?” 맞았어요. 부자 아버지가 없이 혼자 너무 수수하고 고생하면서 자수성가했기 때문에 억만장자가 되어도 돈을 못써요. 겁이나서 돈을 못써요. 아들은 공짜로 그냥 얻어 쓰니까 아버지 의지하고 총나가라 칼나가라 쓰는거라. 그렇기 때문에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복을 받아 나가면 그냥 총나가라 탈나가라 세상으로 그냥 나가서 세상과 짝을 하여 타락해 버리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고생고생을 시키는 겁니다. 아예 처음부터 낮추시고 기합을 잔뜩 넣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1절로 14절에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찌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부귀, 영화, 공명이 오면 하나님을 잊어 버립니다. 타락해 버려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미리부터 굉장히 낮추어서 자기가 얼마나 무능력하고 무력한 인간인 것을 깨닫게 하시고 난 다음 나중에 복을 받아도 이 복이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그 복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에 가장 근본이 뭔지 압니까? 신앙의 근본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신앙이 안됩니다. 사람들은 쉽게 예수 믿고 난 다음 하나님을 이용해서 축복만 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타락하죠.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하나님 앞에서 떨어야 돼요. 자녀 교육도 그렇잖아요? 집에 무서운 분이 있어야 돼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무서워하지 않고 그냥 오냐오냐만 하면 완전히 자식 망치는 것입니다. 집에 어떤 사람 무서운 사람 있어야 돼요. 아버지가 무서워서 아버지 앞에 떨어야 돼요. 그래서 어머니가 중재를 서고 이렇게 해야 올바르게 자식이 자라지 요사히 같이 아버지는 자식을 만날수가 없으니 죄책감에 돈만 자꾸 주고 엄마는 치마바람 날리고 집비워 놓고 떠나 다니고 자식은 부모하고 교제할 시간도 없고 인격적으로 지도받을 수도 없으니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고 완전히 망나니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가정에도 어린아이가 자라는데 제일 먼저 배워야 될 것은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그 다음 사랑도 하고 기뻐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도 먼저 하나님을 경외할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돼요. 하나님을 겁내야 돼요. 그래야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지으려고 할 때 하나님이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보시는 하나님이 보이는데 어떻게 죄를 지어요? 오늘날 우리 한국 기독교회의 큰 잘못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교회와 성도에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유혹에 빠지고 죄와 타협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만하게 생각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축복 받은후에 세상으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 두려움을 배우기 위해서 낮추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낮아질 때 순종함을 배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했는데 히브리서 5장 8절로 9절에 보면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했습니다.
아들인데도 고난을 통해서 순종함을 배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위대합니까? 아브라함의 생애는 참으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 고생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 순종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고생을 안하면 오만하고 교만해져요. 그러나 고생을 많이 하면 겸허해지고 마음이 낮아지고 순종함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순종함을 배우기 위해서 우리를 낮추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낮아질 때 강인한 믿음을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생 안하면 인내력이 없잖아요. 요사이 자녀들이 인내력이 없는 것은 고생하지 않고 키웠기 때문에 조금만 어려움을 당하면 박살이 나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파산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에 고생고생하고 사는 사람은 어떠한 역경이 다가와도 움직이지 않고 굳건하게 서서 나갑니다. 인내력이 길러진 것입니다. 인내력은 그냥 호사스럽게 해서 배우는 것도 아니요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인내력은 고생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강한 훈련을 하는 것은 육체에 고생을 시켜서 인내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강하게 하지 않고 힘을 얻을수는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고생하지 않은 사람은 고난 당하면 쉽게 낙심하고 뒤로 물러 갑니다. 그러나 인내를 길른 사람은 뒤로 물러가지 않지요. 군대가 왜 강인한 훈련을 시킵니까? 어마어마하고 고생시키는 것은 전쟁났을 때 뒤로 물러가지 않고 이기기 위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는데 이 믿음이 어떻게 생깁니까?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불로 연단해야 돼요. 불같은 시험 당해야 돼요. 그래서 하나님이 연단하시고 낮추셔서 믿음을 강인하게 만들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마침내 하나님 복을 주시면 이것을 누릴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골짜기가 깊으면 산도 높습니다. 시련과 고난의 골이 깊으면 영광의 상급도 커집니다. 밑바닥 인생을 체험한 자만이 고귀한 삶을 누릴수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적과 꿀이 흐르는 땅에 가기전에 광야를 지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낮추신 후에 마침내 복을 주시고 높여 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낮추심으로 아집을 깨뜨리시고 주님 중심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며 교만을 깨뜨려서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고 복을 받은 후에 세상으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서 주님께서 시련을 주시며 불순종을 버리고 순종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시련의 불을 통하게 하시며 약한 믿음을 버리고 강인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 낮추시고 훈련하여 마침내 복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훌륭하게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믿고 일생을 사는 동안 크고 많은 일에 낮춤을 당하는 경험을 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심은 마침내 높여 주시기 위함이여
시련을 통하게 한 것은 마침내 복을 주기 위해서 시련을 통하게 하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낮춤을 받을 때 낙심하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며
더욱 회개하고 깨어지고 변화받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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