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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하시는 하느님

여호수아 권진관............... 조회 수 2121 추천 수 0 2008.06.06 20: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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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수1:1-9 
설교자 : 권진관 형제 
참고 : 새길교회 
어느덧 우리는 1998년을 보내고 1999년 새로운 해를 맞이했습니다. 지난 해는 너무나 다사다난한 해였습니다. 정말로 견디기가 어려웠던 해였습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를 IMF 관리체제 아래에서 허덕이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들 삶 속에는 여러 가지의 일들이 일어났던 해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그것이 잘 된 일이었든 못된 일이었든 그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신년을 맞이해서 지난 한 해 동안 하느님께서 우리를 직접 인도하셨음을 고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를 가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게 해주셨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댈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요 며칠 동안 여러분들께서는 지난 한 해 동안에 무엇을 이루어 놓았고, 무엇이 아쉬웠던가를 하나하나 반성하며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아쉬운 일도 많았고, 부족한 모습도 많았지만, 또 기쁜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우리 모두는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지난 한해 동안 정말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은총을 입고 도움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올해는 지난해 보다 더 큰 은혜와 도움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저는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야훼의 종 모세가 죽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모세의 죽음처럼 자세하게 그리고 장렬하게 성서에서 보도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전 페이지는 신명기 34장인데, 그 34장 전체는 모세의 인생의 마지막의 장면을 자세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 34장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한 충실한 종,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위대한 영웅인 모세를 보내는 야훼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과 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위대한 업적을 이룬 모세도 이제 나이가 들어 임종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보기 위해 모세는 모압 광야에 솟은 느보산 비스가 봉우리에 올라갔습니다. 이 모세에게 하느님은 친히 당신이 약속한 땅을 모세에게 보여줍니다. 인간이기에 나이가 들면 죽을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세를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야훼 하느님은 그 약속의 땅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세가 모압 광야에서 예리고 맞은편에 있는 느보산 비스가 봉우리에 오르자, 야훼께서 그에게 온 땅을 보여 주셨다. 단에 이르는 길르앗 지방,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나쎄 지방, 서쪽 바다에 이르는 유다 지방, 네겝과 종려 도시 예리고 골짜기의 분지를 소알에 이르기까지 보이시며 야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한 땅이다'" (신명기 34:1-4).

이것이 모세에게 주는 하느님의 마지막 사랑의 표시였습니다. 모세가 죽은 나이는 백 이십세 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명기 34장에 있는 말씀 중에서 아주 인상적인 말씀있는데 그것은 모세가 나이 백 이십세에 죽을 때에 그의 눈에는 아직 정기가 있었고, 그의 정력은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것은 약속과 희망으로 가득찬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일 것입니다. 모세와 같이 약속에 충만하고 희망에 가득한 사람은 그가 아무리 육신적으로 나이를 먹어도 정기와 정력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 됩니다. 요즘 수명이 길어져서 예전에는 60이면 노인이고 장수했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60이면 청춘이고 육십에 죽으면 요절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80쯤되야 이제 좀 늙었다고 합니다. 이제 앞으로는 70이면 아직 젊었다고 하고, 90이 되어야 늙었다고 할 것입니다마는 아직도 120세까지 정력이 왕성한 사람은 없습니다.
본문에서 그러한 것처럼, 우리는 1998년을 보내듯이 모세를 보냈습니다. 이제 1999년을 여호수아와 함께 맞이하려고 합니다. 여호수아는 모든 면에서 모세보다 모자란 사람이었습닏. 그러나 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우리와 같이 보통사람이었지만 그는 모세를 이어 출애굽을 성공시킨 사람입니다. 모세는 직접 하느님과 만나서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율법과 계명을 받은 사람이지만, 여호수아는 모세의 부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출애굽을 인도했고, 그래서 에집트왕 파라오와 대적하여 이긴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그에 비해 약한 사람입니다. 모세가 지도자였다면 여호수아는 부관에 지나지 않았고,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의 지휘가 맡겨졌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주어진 약속을 이어서 그 약속을 붙든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성서에 여호수아가 처음 나온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요르단강 동쪽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때 모세는 이스라엘 열두지파 사람들에게 대표 한 사람씩을 뽑아 오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대표 중에 한사람이었습니다. 원래 이름은 호세아였는데 나중에 모세가 여호수아라고 이름을 고쳐주었습니다. 이 12지파의 대표들을 뽑은 곳이 유명한 땅 가데스 바네아라고 하는 광야였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의 대표들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 깊숙이 들어가 에스골 골짜기까지 정탐하고 돌아와서 한 보고는 상반된 것이었습니다. 12개 지파 중에서 10개 지파 대표들은 가나안 땅은 척박한 곳이고 거인족이 살고 있어서 그곳을 점령할 수 없고 쳐들어가면 우리는 거인들한테 모두 잡혀 죽게 될 것이라고 보고 했고, 이것을 반대한 사람은 두 사람이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이었는데 이들은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약속의 희망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10사람의 책략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가는 것은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대신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데스 바네아라고 하는 광야를 중심으로 40년간을 떠돌게 됩니다. 성서는 이것을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고 하느님이 주신 약속을 믿지 않고 그 약속의 희망을 품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리는 징벌이라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그리고 그 미래 속에서 이루어질 약속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는 사람들은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너무 미약한 존재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성서에 나온 바대로 (민수기 13:33) 약속의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거인으로 보고, 자신은 메뚜기와 같은 초라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대로 읽으면, "우리가 만난 거인들 가운데는 아나킴 말고도 다른 거인족이 또 있더라.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 사람들 보기에도 그랬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40년동안의 광야 생활 속에서 모두 죽고 남은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민수기 14:38).
이렇게 희망을 갖지 못하고, 스스로를 아주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이 열 사람은 오래 살지도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40년간의 긴 크로노스(Chronos: 자신의 아들을 잡아먹는다는 희랍신화의 신인데, 우리들을 늙어 죽게하는 시간을 상징함)의 세월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같이 약속의 희망을 품은 사람은 그 긴 세월을 강건하게 이겨 나갔고 결국은 약속의 땅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약속의 희망을 갖지 못하고 패배의식에 찌들려있는 사람들은 육신적으로 연약할 뿐 아니라, 그러한 이유로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올해는 모세와 같이 그리고 여호수아와 같이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약속을 품고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삶을 말합니다. 저의 사무실에 화초가 있는 화분이 하나 있습니다. 그 화초는 원래 뜨거운 히터공기가 나오는 창가에 놓여있었는데, 이 뜨거운 공기 때문에 화초가 시들해 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창문에서 멀리 떨어진 그늘진 곳으로 화초를 옮겼습니다. 잘 살 줄 알고 그냥 놓아 두었는데, 한 일 주일쯤 지나니까, 화초가 형편없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꺼운 종이로 히터 공기를 차단하고 햇볕이 쪼이는 창문가로 이 화초를 옮겼습니다. 그랬더니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싱싱하고 푸르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이 화초를 건강하게 살게 하는 햇볕과 유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은혜를 인정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마치 화초가 그늘에서 사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희망도 빛도 광명도 없는 삶을 말합니다. 살아 있으되 죽은 삶을 말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느님의 약속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나아가서는 그것을 위해서 분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는 기적을 믿지 않고 약속을 믿으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약속을 믿는 것은 기적을 믿는 것과 다릅니다. 약속을 믿는 것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자세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약속을 기억하며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해 행동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가 보여 주었던 자세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로부터 약속을 전수받았고, 그것을 마음 속에 간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성취를 위해 행동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근거없는 기적을 기다리고 바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세기말인 올해에는 이러한 근거없는 기적을 보여준다고 나서는 종교집단들이 많을 것은 분명합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에게 기적을 보여달라고 할 때 말씀하신 탄식의 말씀에 귀기울여 보아야 합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기적을 보여달라고 하는가?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에 보여 줄 징조는 하나도 없다." (막 8:12)

위의 예수의 말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기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선언입니다. 예수가 행한 기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그것은 전연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정의를 내리면, 기적이란 인간의 의지나 믿음이 개입됨이 없이 나와 무관한 상태에서 주술 등에 의지해서 자연법칙에 거슬러 일어나는 사건을 말한다면, 예수의 오병이어의 기사는 예수의 제자들과 거기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 모두 합심단결하여 가진 것들을 내어놓는 믿음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사건이었지 그것을 결코 기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적을 바라는 것과 약속을 품는 것은 전연 다릅니다. 기적은 자기의 결단없이 이루기를 원하는 것이지만, 약속은 우리의 믿음의 결단을 요구하하는 것입니다. 약속은 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믿고 기억하며 희망하는 사람들의 결단과 행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약속은 우리들이 일반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뛰어넘는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불가능한 것을 믿고 바라는 것이 진정한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요르단강 너머 가나안 땅을 정찰했던 12 명 중 대다수가 가나안 땅을 들어가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러한 상식적인 판단을 넘어선 약속을 믿었고, 그것을 희망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차원이 약속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저는 지난 주일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읽으며 매우 커다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시편에 있는 말씀인데, 예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셨던 것입니다.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 (막 12:10-11)

이 말씀이야말로 놀라운 약속입니다. 이것은 혁명적인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버려진 돌이 머릿돌이 된다는 것은 바로 지금까지 우리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천지개벽을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안에 잠재되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을 우리가 새롭게 깨달아 그것을 이룰 수도 있다는 희망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날같이 IMF로 고통받고 있는 실의에 빠진 모든 사람들도 다 이렇게 운명이 뒤바뀔 수 있다는 약속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삶 속에는 기적은 없고 오직 약속과 희망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기적이 아니라, 십자가의 결단의 산물인 것입니다. 따라서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믿는 믿음의 결단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 주어진 약속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새해를 맞이 하여 첫 번째 예배를 드리고 있는 지금은 우리들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약속의 내용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께서는 친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약속한 것은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큰 가능성을 실현시키라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약속을 잊고 지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 약속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달란트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약속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달란트를 사용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안에 숨어 있는 달란트와 하느님께서 주신 약속을 발견해 내는 일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 지금은 우리가 교회적으로 우리 모두가 합심하여 이루어야 할 약속의 내용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들에게 약속의 땅이 허락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야훼 하느님이 다시 여호수아를 불러서 모세에게 했던 약속을 다시 들려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너는 이제 이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떠나 이 요르단강을 건너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땅으로 들어가라. 너희 발바닥이 닿기만 하면 어디든지 그 곳을 모세에게 약속한 대로 내가 너희에게 주리라. 이 광야에서 시작하여 레바논을 거쳐 큰 강 유프라테스에 이르고 거기에서 헷족의 땅을 거쳐 해지는 쪽 대해에 이르기까지 너희의 영토가 될 것이다. 네 평생에 아무도 네 앞길을 막지 못할 것이다. 내가 모세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처럼 네 곁을 떠나지않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여호수아 1:2-5)
"그러니 힘을 내고 용기를 가져라. 무서워 떨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느님 야훼가 너를 떠나지 않고 함께 하리라."(1:9)

여호수아에게 전해진 약속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지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시간 우리들의 양심 속에 들려지는 하느님의 약속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그 약속을 분명하게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이루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내내 떠나시지 않고 용기와 힘을 주시기 위해 함께 하시겠다는 그 말씀이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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