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살림으로 가는 길

열왕기상 왕대일 목사............... 조회 수 3694 추천 수 0 2003.11.14 17:01:48
.........
성경본문 : 왕상17:8-16 
설교자 : 왕대일 목사 
참고 : 감신대신과 교수/새길교회 

Giovanni Lanfranco, "사르밧 과부에게서 빵을 받는 엘리야"
Italian, Rome, about 1621-1624  

감자탕 교회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여자 집사 한 분이 교회에 전 재산을 기증하겠다고 담임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이 여인은 남편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고 혼자 사는 부인입니다. 평소 하나님께 전 재산을 드리기로 서원했던 것을 실천에 옮기고자 수년 전에 사놓은 상가의 등기 권리증을 가지고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상가는 시가로 1억 원 정도 하는 건물인데 현재 보증금 2500만원, 월세 50만 원에 임대해 주었습니다. 그 때 받은 보증금으로 그 집사가 전세방을 얻어 생활해 왔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재산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자'는 결심에 끌려 그 돈마저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같이 가져왔습니다.

  담임 목사가 관련 교회 임원들과 의논했습니다. 그리고는 전 재산을 바친 그 집사를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집사님, 집사님이 하나님께 드린 전 재산을 교회는 받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매 달 재정 잔고를 100만원만 남기고 다 집행하는 것 아시지요? 몇천만 원이나 되는 돈을 쌓아두지 않고 오늘 이 자리에서 집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을 집사님께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전해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집사님, 교회는 분명 집사님의 전 재산을 받았습니다.... 이제 이 상가는 어제의 상가가 아닙니다....오늘 이후 이 상가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집사님께 주신 선물입니다...." "...... 이 상가는 이제 집사님 가정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상가에서 나오는 월세는 집사님의 생활비가 되어야 하고, 필요하면 팔아서 아이들 결혼시키는 데도 쓰셔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려다 되돌려 받은 상가가 아닙니다." 그리고 나서 교회의 자산관리 부장이 등기 권리증과 전세 계약서를 담은 교회 봉투를 그 집사에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전 재산을 바치려는 여인의 신앙이 놀랍습니다. 그 여인에게 하나님의 선물을 듬뿍 전달하는 목회자의 결단도 지혜롭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목회! 생명을 사랑하는 교회! 삶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우리 마음을 훈훈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한 과부가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오늘날 레바논에 속한 시돈 땅 사르밧에 살던 사람입니다. 이 여인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가난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의 여인입니다. 본문 12절을 보세요.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 17:12).

  여인이 지금 죽음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 뿐인 자기 아들과 동반 자살 할 수밖에 없는 극도의 시련 앞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여인이 가난하게 된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짐작하기에 이 여인을 괴롭히는 가난은 개인적인 이유 때문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탓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여인은 고아, 나그네와 함께 불쌍한 사람으로 속하는 "과부"로 불립니다. 과부이기에 가난하게 된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더구나 이 여인이 살던 때는 수년 간 비가 오지 않고, 이슬도 맺히지 않으며, 시냇물마저 말라버릴 정도로 가뭄이 극심하던 때입니다(왕상 17: 1b, 7). 그랬기에 그가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이라야 "통에 남은 가루 한 움큼과 병에 남은 몇 방울의 기름"에 지나지 않습니다(왕상 17:12).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런 형편의 여인에게 엘리야를 보내셨다는 데 있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왕상 17:9)

  극심한 가뭄을 피해 살아가야 하는 것은 엘리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피난처를 주선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 가뭄 중에 엘리야가 더부살이해야 할 곳이 다름 아닌 시돈 땅 사르밧의 과부 집입니다. 여기에 이해되지 않는 문제가 도사립니다. 엘리야가 더부살이 할 곳이 왜 하필이면 극도로 가난한 과부의 집입니까? 왜 하나님은 엘리야를 가진 자의 집, 있는 자의 집, 높은 자의 집이 아닌, 먹을 것이 없어서 이제 곧 죽으려고 작정한 기막히게 가난한 집으로 파송하고 있습니까? 어째서 하나님은 이방 여인 사르밧의 과부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먹여 살리도록 작정하고 계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엘리야의 됨됨이에서 주어집니다. 엘리야는 주전 9세기 북왕국 이스라엘 땅에서 활약한 위대한 예언자입니다. 그런데 구약성서에서 이 엘리야에 대한 기사는 열왕기상 17-19장에만 나옵니다. 열왕기상 17-19는 엘리야의 공생애를 전하는 구도로 짜여 있습니다. 17장에서 엘리야는 아직 예언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한 소양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18장에서 엘리야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홀로 맞서 싸워 이깁니다. 19장에서 엘리야는 공직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즉 열왕기상 17-19장은 엘리야의 등장→ 엘리야의 활약→ 엘리야의 은퇴라는 순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틀에서 볼 때 오늘 본문 열왕기상 17장의 엘리야는 아직 도상에 있는 존재입니다. 배우고 익히는 수련생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본문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고 하는 자를 사르밧의 과부에게로 보내셔서 사르밧 여인이 토로하는 탄식소리를 일부러 듣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세요. 엘리야는 먼 길을 달려가서인지 사르밧의 과부를 보자마자 앞 뒤 가리지 않고 물과 양식을 달라고 주문합니다(왕상 17:10-12). 시냇물도 말라버릴 정도의 가뭄입니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기근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때인데 엘리야는 겁도 없이(!) 낯선 여인에게 이 것 저 것 먹게 해달라고 주문합니다. 여인이 엘리야의 요청에 물을 가지러 갑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떡 한 조각도 만들어 달라고 염치없이 요청합니다. 그 말에 여인이 참고 참았던 자기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웅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왕상 17:12).

  여인은 지금 절규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 웅쿰의 가루와 조금 남은 기름밖에 없으니 그것으로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 한다고 소리칩니다. 그러니 어떻게 엘리야에게 떡을 만들어 줄 수 있겠느냐고 탄식합니다.

  지금 이 여인은 가난으로 인한 시련에 지쳐 있습니다. 배고픔 때문에 주려 죽을 수밖에 없다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여인의 탄식은 "없음" 때문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어려워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자식을 제대로 못 키워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엘리야를 사르밧의 여인에게로 보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되겠다는 엘리야로 하여금 가난한 사람의 탄식소리를 듣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엘리야야말로 여인의 탄식을 들어야될 당사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에 있는 자에게 가난한 자의 탄식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울부짖음을 듣고 나서야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감당할지가 파악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한반도 구석구석에서 새어나오는 탄식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모여 교회의 세력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구조적으로 삶에 지쳐 통곡하는 이 땅의 사르밧 사람들의 고통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성공하기를 신앙생활의 가치로 삼을 것이 아니라 내 주위의 낮고 천한 곳에서 통곡하는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귀를 열어놓아야 합니다.

  다일 공동체를 일군 최일도 목사가 저희 학교에 와서 강연할 때 한 고백입니다. 그가 어느 날 정오 기도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그의 귀를 때린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바로 야고보 1:27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

  이 말씀을 가슴에 품게 된 것이 그가 청량리 588 일대를 섬기기 시작한 동기였습니다. 교회는 세력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됩니다. 구성원의 면면으로 평가되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섬김으로, 낮아짐으로, 자기 비움으로, 세상을 살리는 일에 헌신함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에 가뭄이 들이닥쳤을 때 엘리야를 굳이 사르밧으로 파송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길에 들어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걸머져야 할 사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여인의 통곡 소리에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본문의 후반부인 열왕기상 17:13-16은 가난의 시련 속에 있는 여인에게 삶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주는 엘리야를 전합니다. 엘리야가 어떻게 사르밧의 과부를 살리게 됩니까? 이런 시각에서 우리는 사르밧 과부의 탄식 앞에 엘리야가 내린 처방을 다시 읽어보아야 합니다. 엘리야가 여인에게 말합니다.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왕상 17:13-14).  

  '떡을 만들되 먼저 나에게 주고, 그 다음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그리하면 '가뭄이 끝날 때까지 네 통의 가루가 없어지지 아니하고 네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으리라!' 엘리야는 지금 사르밧의 여인에게 죽지 않고 사는 길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르밧의 여인도 살고, 엘리야 자기도 덩달아 사는 길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것은 한 마디로 살림에 이르는 처방입니다. 가난 속에서도 풍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털어놓습니다. 엘리야의 처방에는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살림으로 가는 길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떡을 만들되 먼저 나에게 주고, 그 다음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그리하면 '가뭄이 끝날 때까지 네 통의 가루가 없어지지 아니하고 네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해 보면 이 지시는 불가능한 처방입니다. 상식적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대답입니다. 내 것이라고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것을 남에게 주면 내게 남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게 됩니다. 1-1=0이라는 상식에서는 이 산수가 풀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왜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이 산수는 하나님의 산수입니다. 1-1=0이 아니라 1-1=무한대가 될 수도 있다는 산수입니다. 내 처지를 생각하고 난 뒤 너를 생각하면 내게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시련 속에 살던 사르밧 여인의 셈 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엘리야의 말은 바로 이 순서를 뒤집고 있습니다. 먼저 너의 처지를 생각한 뒤 나를 생각하면 너와 나, 우리가 생존하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사르밧 여인의 계산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이 계산 순서를 바꾸어야 합니다. 나에서 시작해서 너에 이르는 방식이 아닌, 너에서 나에 이르는 순서로 계산해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 상식을 뛰어넘는 대역전극이 펼쳐지게 됩니다. 거기에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공존으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한 번쯤 들어보았을 인도의 썬다 씽 이야기입니다.『TV동화 행복한 세상』에도 실려 있더군요.

  두 남자가 네팔의 눈 덮인 산길을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에 눈보라 심하게 몰아쳐 눈뜨기조차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묵묵히 걸어가는데 눈길에 웬 노인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대로 두면 눈에 묻히고 추위에 얼어죽을 게 분명했습니다. 한 남자가 동행하는 사람에게 제안했습니다. '이 사람을 데리고 갑시다.' 하지만 그 동행자는 이런 악천후엔 내 몸 추스리기도 힘겹다며 화를 내면서 혼자서 가 버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사람은 노인을 자기 등에 업고 길을 재촉하였습니다. 얼마쯤 가다보니 그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더운 기운에 등에 업힌 노인의 얼었던 몸까지 녹아 차츰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을 난로 삼아 무사히 마을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그 사람이 인파를 헤치고 들여다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에워싼 눈길 모퉁이엔 한 남자가 꽁꽁 언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바로 혼자서만 살겠다고 앞서갔던 그 동행자이었습니다.

  살림으로 가는 길! 그것은 정녕 나눔입니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은 "나눔"(sharing)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이 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아니 교회는 먼저 이 진리를 스스로 구현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약할 때부터, 어려울 때일 수록 이런 나눔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 나눔을 실현할 때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놀라운 기적이 뒤따라 일어나게 됩니다. 기적이 일어나기에 나눠주고 베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눠주고 베풀어주기에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입니다. 이 길을 걸어가는 도우(道友)가 되지 않으시렵니까?

(사르밧의 과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 17:15-16).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927 열왕기상 강력해지기 위해 꼭 붙잡아야 할 것 왕상10:1-7  박승규 목사  2009-03-03 1655
926 열왕기상 역사하는 힘 왕상18:20-40  이진천 목사  2009-02-24 1968
925 열왕기상 이방인을 옹호하며 왕상12:25-33  권진관 목사  2008-06-25 1811
924 열왕기상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라 왕상18:30-46  조용기 목사  2008-04-06 3837
923 열왕기상 하나님의 심장 박동 소리 듣기 왕상19:9-13  정미현 교수  2005-05-16 3767
» 열왕기상 살림으로 가는 길 file 왕상17:8-16  왕대일 목사  2003-11-14 3694
921 열왕기상 솔로몬과 지혜 왕상3:4-13  한태완 목사  2007-11-07 2716
920 사무엘하 리스바의 운명과 말없는 항거 삼하21:10-12  이경숙 교수  2008-06-20 2366
919 사무엘하 다윗의 지도력을 다시 생각하며 삼하23:3-4  한완상 형제  2007-12-20 2353
918 사무엘하 하나님의 보호 삼하22:3  한태완 목사  2007-11-18 3069
917 사무엘상 여호와는 나의 힘 삼상30:1-6  김삼환 목사  2009-03-03 2235
916 사무엘상 하나님을 힘입어 30:1-10  박조준 목사  2009-02-25 1898
915 사무엘상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삼하12:15-25  이한규 목사  2008-12-23 2069
914 사무엘상 에벤에셀,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 삼상7:12  조용기 목사  2008-10-22 3708
913 사무엘상 다윗의 친구 요나단 삼상20:35-42  한태완 목사  2007-11-19 3801
912 룻기 도덕적 행위자들로 인하여 룻1:15-22  최만자 자매  2007-12-18 1800
911 룻기 룻의 믿음 룻1:15-18  한태완 목사  2007-11-07 2578
910 사사기 창조적 소수의 힘 삿7:2-6  김문훈 목사  2009-02-24 2544
909 사사기 내 삶을 가로막는 철병거 [1] 삿1:18-21  전원준 목사  2008-11-28 2400
908 사사기 기드온을 부리신 성령 삿6:1-6  박동현 목사  2008-01-13 2876
907 사사기 낮은 고난을 향하여 삿19:22-30  최만자 자매  2008-01-10 2014
906 사사기 135,000대 300의 싸움 삿7:2-14  김필곤 목사  2007-12-25 3189
905 사사기 회상의 힘 [1] 삿11:34-40  최만자 자매  2007-12-22 2491
904 사사기 세속 속의 크리스챤 삿16:15-19  왕대일 목사  2004-05-05 4030
903 여호수아 약속하시는 하느님 수1:1-9  권진관 형제  2008-06-06 2125
902 여호수아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창조적 특권의식). 수14:6-12  김필곤 목사  2008-04-14 2984
901 여호수아 실패의 교훈 수7:2-15  김필곤 목사  2008-02-06 2779
900 여호수아 주님의 손길 수4:24  한태완 목사  2007-11-26 2652
899 신명기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신16:13-15  김기동 자매  2008-12-06 1439
898 신명기 선택의 자유 신30:19-20  조용기 목사  2008-11-21 2044
897 신명기 하느님의 나라, 동무들의 나라 신10:19  박경미 교수  2008-10-26 1478
896 신명기 너를 낮추시며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이라 신8:14-17  조용기 목사  2008-10-22 3662
895 신명기 네 귀를 뚫어라. 신15:12-18  강교자 자매  2008-09-29 2400
894 신명기 손과 이름 신6:20-27  민영진 목사  2008-06-20 1779
893 신명기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신11:8-12  최창모 교수  2008-06-17 2591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