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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고난

시편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514 추천 수 0 2008.04.25 15: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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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22:1-21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순복음중앙교회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예수님의 고난"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이라고 말하면 얼른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 십자가의 고난은 예수님의 최후의 고난이요, 전체 고난의 완성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고난은 겟세마네의 동산의 고난이었습니다.

이 고난은 예수님의 사역 초기 40주야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당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극심한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귀의 강한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마귀는 예수께 찾아와서 메시아임을 포기하고 타협하여 생명을 구하라고 유혹했습니다.
메시아가 되는 것보다는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좋지 않으냐,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내가 메시아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구원을 받는 것이 좋지 않으냐. 어마어마한 유혹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억압을 강요했습니다. 그는 정신적인 많은 억압을 그리스도는 받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마귀는 말했습니다. 보라, 헬라인들이 초청하러 왔으니 함께 피신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성경에 보면 요한복음 12장 20절에서 21절에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헬라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헬라로 초청하기를 원했습니다. 마귀는 말합니다.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네가 이 유대 땅에 있어서 처형을 당하는 것보다는 헬라로 가서 그곳에서 가르치는 것이 좋지 않으냐, 어찌하든지 십자가를 짊어지지 말도록 유혹을 했습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계획을 파탄에 이르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심령의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제자 가룟 유다의 배신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마음 속에 가장 큰 고통과 절망을 가져오는 것은 배신입니다. 먹이고 입히고 돌봐 주고 온갖 정성을 다해 주었는데 그 사람이 돌아서서 발로 차고 배신할 때에 그 배신을 당한 사람의 고통과 쓰라림과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 중에 가룟 유다를 가장 사랑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돈주머니까지 맡겼습니다. 신뢰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돈주머니를 맡기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종의 값을 받고 팔아 넘겼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14장 21절에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그리스도가 그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여 죽음에 넘기운다는 그 생각을 할 때 그 마음에 고통이 말로 달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게 그가 기도할 때 온 세상 주의 잔을 다 마시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짓지 않는 모든 죄, 추악한 죄, 더러운 죄가 가득 들은 그 잔을 마시라는 것입니다. 책임지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42절에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주님은 마시기를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너무나 추악하고 더러운 죄악을 마시라고 하니 주께서 짓지 않는 죄를 왜 책임 져야 합니까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으로 본능적으로 죄에 대해서 무시무시한 저항감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 마시고 대신 짊어지고 심판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여러분 받아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입니까? 주님께서 이것을 수용하기 위해서 기도할 때에 그는 얼마나 애쓰고 힘을 썼든지 이마에 땅 방울이 핏방울로 변했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몸부림을 치면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이 힘을 하나님이 허락하소서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는 육체적인 정신적인 수치와 고통에 대한 공포고 휘몰아 쳐왔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은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면 그 누구를 불구하고 곧 다가올 십자가에 형틀에 못 박혀서 죽는 그 고통에 대해서 공포와 불안과 수치와 곤욕을 느끼지 아니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34절에서 37절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 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주님이 얼마나 몸서리치게 이 죄악의 잔을 마시는 것이 두려웠던지 주님께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만은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어 주지 않으셨습니다. 인류를 위해서 네가 잔을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무도 함께 기도해 주지 않는 극한의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제자들조차도 그리스도와 함께 이 극한의 고난에 처했을 때 함께 기도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기 위한 기도는 맹렬한 싸움이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정신적인 고통과 불안과 초조와 공포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들인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인 것입니다. 그의 땀방울은 핏방울이 되었으며 그곳에서 예수님은 종국에 가서 모든 것을 극복하고 마음에 평화를 얻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십자가를 걸머질 수 있는 영적, 정신적인 마음을 얻게 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43절에서 44절에 "사자(使者)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얼마나 힘쓰고 애써서 기도했겠습니까? 주님께서 그 체력으로 감당할 수 없으니깐 하늘에서 천사들이 와서 그를 도와 주고 힘을 주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싸움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에 전쟁은 이미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까지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겨 놓은 전쟁을 계속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가야바의 뜰에서 고난 당하신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가룟 유다에게 배신당해, 로마의 군인들과 유대인의 하속들에게 잡혀서 가야바에게 끌려갔었습니다. 그곳에서 대제사장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말로 당 할 수 없는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거짓 증인을 채택해 놓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거짓으로 모함하고 욕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은 죄를 충당할 때는 항복하지만은 거짓으로 모욕할 때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온갖 뜬소문과 온갖 거짓말을 다 지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고 죄를 덮어씌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온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거짓 증거를 찾았습니다. 어떤 놈은 와서 성전을 사흘만에 짓겠다고 합디다. 대제사장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추궁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이미 말한 그대로다, 이에 대제사장이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담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그를 십자가에 죽여라, 십자가에 죽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육체적인 침 뱉음과 구타를 당했습니다. 저희가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사형에 처한 자로 정죄하고 침을 뱉고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누가 때렸는지 선지자 노릇하라 하고, 손바닥으로 치고 수염을 잡아 당겼습니다. 그리스도는 얼마나 얻어맞았던지 눈이 다 부어 코와 얼굴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정황 속에서 제자 베드로의 배반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끌려갔을 때 가야바의 하수들과 불을 쬐다가 한 계집아이가 와서 너도 갈릴리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하니깐 네가 하는 말을 전혀 모르겠다. 시치미를 뗐습니다. 그 다음에 한 사람이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하니깐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계집아이가 너도 그 당이라 그 말씀을 증거 한다고 하니깐 저주하고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저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예수께서 얼굴을 돌이켜서 베드로는 쳐다보았습니다. 베드로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볼 때 닭이 세 번째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밖으로 뛰어 나와서 가슴을 치고 통곡하고 몸부림치고 울었습니다. 내가 왜 우리 주님을 배반하였는가 그러나 자기 힘으로 그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가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에 그가 의지하던 수제자가 그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할 때 마지막에는 저주까지 맹세하면서 가로되 내가 저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할 때 그리스도의 고독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곳에서 너무나 큰마음의 타격과 고통을 입었습니다.

세 번째 고통을 빌라도의 뜰에서였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우유 부단함에 너무나 마음의 실망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없이 유대인의 시기로 고소당하고 있는 것을 알고 수차 예수님을 도우려고 했으나 군중의 압력과 정치적인 입장의 안정 때문에 정의를 짓밟았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가는 길인 것입니다. 세상은 정치적인 타협, 군중들에게 호응하기 위해서 정의의 길이 확연하게 보임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짓밟아 버리고 정의를 던져 버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의 법정에서 그는 빌라도에게 배신을 당했으며 군중들에게 배신을 당했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12절에서 13절에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나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히브리말로 가바다)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고 몇 일 전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꺾어서 나귀 밑에 갈고 옷을 벗어서 그 밑에 깔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서 환영하는 그 군중들이 순식간에 변하여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하는 변화무쌍한 인심을 보고 주님은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얼만 전까지 당신이 죄를 용서하고 먹여주고 살려주고 어루만져주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환영하며 박수를 치던 그 군중들이 돌아서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하니 인심이 조작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주님이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장 14절에서 15절에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저희가 소리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누가복음 23장 23절에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十字架)에 못박기를 구(求)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마태복음 27장 25절에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여러분 그들이 이 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지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죄악은 그들의 자손에게 돌아갔습니다. 주후 70년에 기도대장이 예루살렘 성을 공격해서 100만여 명의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고 이스라엘 나라는 망하고 풍지박산 되었습니다. 그 후에 2천년동안 유대민족들은 나라 없는 민족으로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가는 곳마다 멸시와 천대와 핍박을 받았으며 2차 대전 때에는 히틀러에 의해서 600만 명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피와 우리의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여러분 무엇을 알고 그렇게 말했나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힌 그 피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했는데 그대로 되었지 않습니까?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총독의 병에 의해서 혹독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15절에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滿足)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 예수님이 때린 채찍은 여러분 다섯 가지의 끝에는 납으로 만든 쇠고리가 달렸습니다. 때릴 때마다 몸에 휘어 감기는 다섯 번 고랑이 몸에 파였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께서 서른 아홉 차례 매를 맞았습니다. 그의 몸 덩어리와 가슴은 파헤쳐 졌습니다. 천지에 피가 줄기줄기 흘렀습니다.
마태복음 27장 27절에서 30절에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 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여러분 그 모욕을 당한 그리스도는 그 손으로 하늘과 땅을 지으셨으며 우주와 만물을 만드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입니다.
그가 사람의 몸을 쓰고 이 땅에 왔는데 이 땅의 백성들이 그 땅을 지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처참한 모욕을 가합니다. 천사들이 아마 하늘에서 통곡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총독의 병역에서 갈기갈기 찢어 얻어맞았는데 성경은 말씀하기를 저가 채찍에 맡음으로 저희가 병 고침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고통을 대속하기 위해서 채찍에 맞은 것입니다.

그러고 네 번째 고난은 마지막 고난인 십자가의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골고다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실 때 육체적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초밀시편 22편 14절에서 18절에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예언해서 말하기를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 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塵土)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이 주님의 육체적 고통이 여러분 형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마음에 고통스러웠던지 마음이 촛밀같이 녹았습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은 십자가에서 극한 상황이었습니다. 잠도 못 주무시고 드시지 못하시고 수차의 재판과 고문 채찍질 당하시고 십자가 길에 무거운 횡목을 쥐고 몇 번이나 쓰러지고 그리고 골고다에 이르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대 파사에서 사용함으로 로마 제국에 도입되어 주 4세기까지 가장 잔인하고 치욕적인 사형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대게 노예나 외국인 반역자, 그러한 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손목과 발목에 약 20cm 미터에 대못을 박아두면 몸에 못 이겨 살이 찢어집니다. 손발의 신경이 다 끊어지는 그런 끝없는 육체적인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고 늘어져 있으니깐 가슴에 근육이 땡겨서 호흡을 할 수가 없습니다. 호흡을 할 수 없으니 온 몸에 산소가 부족함으로 몸 전체가 경련이 일어 난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손과 발에서 흐르는 출혈로 말미암아 서서히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 고통은 극악의 고통인 것입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에 하나님께 버림 받은 두려움 인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과 일체였습니다.
그 영광의 광채시오 본체의 형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 죄를 다 걸머졌을 때는 하나님께 얼굴을 돌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창세 이후로 계속 그리스도와 함께 계신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버렸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3절에서 44절에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마가복음 15장 33절에서 34절에 "제 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 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여러분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았으니 그 영혼은 가장 어둡고 캄캄한 지옥의 불길에 휩싸인 것입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주님께서 이 무시무시한 고통을 당했습니까? 주님께서 구하셨으면 하나님이 열두 영이 되는 천사를 보내어서 십자가에 내려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 때문에 그는 십자가에 내려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버림받은 서러움이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고통 당할 때에 자기를 사랑하는 지휘자들이 곁에 있어 힘을 주면 그 고통을 견뎌 낼 수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 버리고 도망 칠 때에 그때에 외로움과 고독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겟세마네에서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 하속들이 예수님을 잡아 결박하고 끌어가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쳐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골고다에 가지를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9절에서 32절에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찌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니 자기는 구원하지 못한다. 예수님이 인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예수님의 원수들도 인정했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했다, 남을 용서하고 남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고 배고픈 자를 먹이고 구원했다는 사실을 전에는 늘 부인하던 그들이 이제는 십자가 밑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술로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 할 수 없도다 우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자기를 구원 할 수 없지요. 누가 지불해도 인류의 죄악이 대가를 지불해야 될 것인데 죄 지은 사람이 다른 죄 지은 사람을 위해서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죄 없는 사람이 죄있는 우리들을 위해서 대속할 수 있기 때문에 유일하게 예수님만이 우리의 대속 제물이 될 수 있으므로 그는 십자가에 내려 올 수가 없습니다.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주님은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무지한 종교인들과 군중들을 위한 연민의 정으로 더 마음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赦)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뽑을 쌔"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던 그들이 얼마 후에 불과 염으로 타는 못에 떨어질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받아 아우성 치며 그때에 몸부림치고 살려 주소서 외쳐도 소용없을 그러한 형벌을 받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다가오는 운명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향하여 머리를 흔들고 모욕하는 그들에 대한 깊은 연민의 정을 주님께서 느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전 9시경 못 박히셨으며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이 어두워 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외치시고 내가 목 마르다 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그 영혼을 아버지에게 의탁하고 주님은 운명하셨습니다. 그에 성소 휘장이 한 가운데로부터 찢어 졌습니다. 보통 때는 성소 휘장은 지성소와 막혀 있어서 사람들은 절대로 지성소에 못 들어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 운명하실 때에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 졌습니다. 이제는 성전 뜰에서 안까지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 그 보배로운 피를 의지해서 아버지의 보좌 앞에 자유로 들어 갈 수 있는 길이 열려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 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보혈을 의지하고 그리스도에게 나가면 그는 하나님 앞에 직행으로 들어 갈 수 있는 보혈의 대로가 열려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를 위해서 대속의 고난을 당하신 것은 그리스도 오시기 600년 전에 이사야가 이미 예언한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에서 12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 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困辱)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屠獸場)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審問)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强暴)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詭詐)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墓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贖愆祭物)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成就)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 (奪取)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사야 52장 13절에서 15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 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 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이미 600여년 전에 하나님의 종 이사야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우리의 죄악을 대속하기 위한 고난이었다는 것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랬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얻어 맞아 얼굴이 이그러지고 온 몬 전체가 상처투성이가 되었으니 사람이 그를 보고 말로 다 할 수 없어, 입을 벌리고 말았습니다. 어하니 벙벙했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라고 했습니다. 훗날에 바로 그 날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요, 만 인류를 구원하는 구세주로서 일어 날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 분이 그렇게 된 것을 알고 세계가 놀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십자가에 못 박혀 몸찢고 피 흘려 가진 고난과 모욕을 당하시고 세상의 버림받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일으켜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뿐 아니라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은 우리의 구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주님의 고난과 괴로움과 버림받음은 여러분과 나의 구원과 기쁨과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날 우리들은 죄의 용서와 의로움과 영광을 받아 즐거워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로 말미암아 세상과 마귀를 쫓아내고 성령 충만과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마음과 몸에 질병의 고침을 받고 건강과 생명을 얻게 되었으며 그의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서 우리는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아브라함의 축복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사망과 음부는 물러가고 부활과 영생과 천국에 영광을 우리는 값없이 얻게 된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그것이 우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또한 우리가 자랑 할 것이 없다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오늘날 남녀 노유 빈부 귀천 할 것 없이 구원을 받고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며 그 날에 주님께서 부활의 아침에 우리를 부르실 때에 우리는 사망과 음부를 박차고 일어나서 영원한 영광 속에 들어가게 되실 것입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당해야 할 고통을 다 대신하시고 찢어진 몸과 흘리신 피로 우리를 사망과 흑암에서 건져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근세와 내세에 영원히 멸망 받을 우리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속의 제물이 되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요, 빈 손든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겠다고 우리를 청하시니 내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옵니다.
주님이여, 우리를 품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를 안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직까지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이끌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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