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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시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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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 참고 : | 순복음중앙교회 |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주님" 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기쁨은 함께 나누면 더 커지고 슬픔은 함께 나누면 작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혼자 살도록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담에게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5세 이상 독신 남자는 결혼한 남자릿?질병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23% 더 높은 것은 영국 통계청 발표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혼자 산다는 것이 심리적 육체적으로 굉장한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때를 지날 때는 짐을 함께 나누고 질수 있는 이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함께 당하는 이웃이 있을 때 힘과 위로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대한 은혜의 말씀을 주십니다.
첫째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의 삶은 바로 빛과 어두움이 중첩된 삶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그가 거할 때는 너무나 영광스럽고 찬란한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에덴 동산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하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시고 예비해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생명의 원천 되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 때에 그들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형통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고 사망이란 형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교만을 부리다가 심판을 받고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타락으로 에덴을 떠난 그때부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그 자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였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에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 떠나 만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저주받은 땅이요. 가시와 엉겅퀴가 나온 땅이요 고생과 수고의 땅이요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가는 비극적인 땅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갖고 온 이 세상은 바로 성경이 말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곳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것입니다. 이곳은 죄악이 판치는 사망의 골짜기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없어요. 한사람이 남김 없이 다 죄를 짓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어두움이 덮은 죄악의 골짜기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아담이 만들어 놓은 곳은 탐욕과 세속과 마귀가 득실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것입니다.
요한 일서 2장 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정욕과 탐심이 꽉 들어찬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 유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물고 찢고 싸우고 죽입니다. 뉴욕 무역센타에서 일어난 대 테러의 참사도 결국에는 인간 탐욕의 소산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탐욕과 세속과 마귀가 득실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그리고 절망과 허무와 무의미한 삶의 어두운 골짜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우울증이 심각하게 걸려 있다고 말합니다. 내일을 맡아서 이끌어갈 청소년들의 마음 속에 이미 깊은 우울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명중에 한 명이 우울 증상을 보이고 다섯 명중에서 한 명 정도는 정신 치료가 꼭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적인 현상입니다.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리고 좌절에 빠졌습니다. 이러므로 마귀의 노략물이 되어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여러분, 비행기를 몰고 현재 5만명이나 일하는 쌍둥이 무역 센타에 추돌해서 자살을 합니까.. 정상적인 마음으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것입니다.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좌절에 빠졌습니다. 삶이 될 때로 되라고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오늘날 세계 팽배하고 있습니다. 절망과 허무와 무의미한 삶의 어두운 골짜기가 우리에게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질병과 고통과 캄캄한 골짜기입니다. 최근에도 보면 팔순 노모를 모시는 문제로 3형제가 다투다가 노모와 장남이 동반 자살한 사건이 신문에 났습니다. 부모를 서로 안 모시려고 부모가 이리 체이고 저리 체이고 돌아다닙니다. 나중에 장남이 그 부모와 함께 자살을 합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마음이 병들은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가? 가난과 굶주림의 사망의 골짜기에 우리는 처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세계에서 잘먹고 잘 사는 문명국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굶주린 아프리카 대륙을 보십시오. 동남 아시아, 저 남미... 세계는 바야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헐벗고 굶주림의 고통 속에 처해 있습니다. 더구나 미국의 대 공황을 통해서 온 세계의 경제는 곤두박질 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경제적인 찬바람이 불어닥치고 있습니다. 가난과 굶주림은 이 세계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지금까지 경험하는 고통인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로 죽음과 무의미의 절망적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우리는 처해 있습니다. 모두다 죽어요.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여러분 모든 인생은 풀과 같습니다. 영화로운 꽃과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세상 이라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태어나서 항상 존재적인 절망을 품고 살다가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전반적인 세계의 현상이지만 또 각자 개별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습니다. 크고 작은 삶의 개인적인 가정적인 사회적 국가적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때에 우리는 어떻게 이 골짜기를 견뎌 낼 수 있습니까? 우리가 좋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벗이 되어 함께 하기를 원하지만 우리가 낭패를 당하고 실망을 당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 갈 때는 점점 외로워집니다. 친구도 형제도 심지어는 나중에 부모와 친해도 같이 갈 수 없는 외로운 골짜기를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내려가면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울 때에도 우리가 항상 마음 속에 기억해야 할 것은 비록 보이지 않고 붙잡을 수 없고 음성은 들을 수 없어도 우리는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고 항상 같이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함께 걸어가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 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는 하늘에서 우리에게 깨달음이나 해탈이나 체념의 지식을 계시해 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친히 하늘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쓰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이 세상 또 우리 개인이 경험하는 낭패와 실망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찾아 와서 우리와 함께 짐을 짊어지시고 우리가 함께 걸어가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와 함께 고통 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친히 사망의 골짜기를 찾아 와서 여러분과 함께 손을 잡고 이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고통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십자가를 걸머지셨습니다. 누가 강제로 걸머지게 한 것이 아닙니다. 자원해서 우리들의 고통을 들어 주기 위해서 우리의 고통을 대신 청산하기 위하여 그는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 우리들에게 우리의 피난처가 되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요새가 되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대속의 죽으심을 통해서 오늘 이 시간에 손을 활짝 내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해요? 피난처가 되게 해주겠다. 내가 너희들의 요새가 되어주겠다, 내가 너를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어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둡고 캄캄하고 온 사방이 폭풍에 휘말렸을지라도 우리에게 도움을 베풀기 위해서 와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 아래 우리들을 피하도록 초청하는데 그는 용서와 의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에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 피함으로 용서함을 받고 의로움을 얻고 영광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우리에게 마귀가 세상을 피하여 성령 충만할 수 있는 피난처입니다. 마귀와 세상의 소낙비를 피해서 그리스도 밑에 들어가면 그는 우리에게 오히려 성령충만과 평안을 주는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디도서 3장 6절에서 7절에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 한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고통과 육체의 질병 속에서 몸부림치며 이 풍랑을 어떻게 이겨갈까 알지 못하고 있을 때에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홀연히 나타난 우리의 피난처요, 치료의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께 뛰어가면 그리스도가 우리의 치유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예수께서 바로 우리에게 손을 활짝 내밀고 피난처가 되시기로 합니다 내게 피하라.. 다른데 피난처가 없으니 내 품에 피하라, 나의 등뒤에 숨어라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리니 어떠한 풍파가 와도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둡고 캄캄한 굶주림과 헐벗음이 있는 세계 속에서 우리에게 축복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 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어둡고 캄캄한 저주받은 땅에 우리가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할 수 있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우리를 떠나지 않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때에 우리와 같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생 천국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죽지 않아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혹독한 절망의 회오리 바람에 불려서 영원한 지옥으로 수 없는 영혼들이 낙엽처럼 떨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 중에서도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생명의 팔을 활짝 내밀고 있습니다. 그의 사망에 이른 사람들이 피난처를 들 수 있습니다. 그의 요새가 됩니다.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어서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바 되고 승리의 삶을 살아 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백혈병에 걸린 딸을 치료하신 하나님에 대한 간증을 하시는 용산 대교구 김서주 집사님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딸이 중학교 1학년 때에 소풍을 갔다 와서 몸에 열이 나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냥 감기 일거니 생각하고 약을 조제해 먹였는데 점점 병이 악화되는데 나중에 검사해 보니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백혈병에 걸리면 치료함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 의학적으로는 불치의 병입니다. 항암제를 썼으나 차도가 없고 몸은 점점 약해져가고 머리를 다 빠져 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본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건장하던 자녀가 순식간에 백혈병에 걸려 팔이 휘어지고 머리는 빠지고 뼈만 앙상해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될 때에 부모의 마음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시댁에서는 부적을 써와서 부적을 붙어 놓았으나 백혈병에 걸려 죽는데 부적이 무슨 효과를 발생합니까? 이것은 인간이 물에 빠져서 마지막 지푸라기 집는 형태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1년 반 뒤에 이제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는데 온 가족 전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된 것입니다. 이웃집에 여의순복음교회 지역장이 와서 전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딸을 치료 해 줄 수 있으니 딸을 데리고 우리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절망에 처한자가 무슨 말을 안 듣겠습니까? 딸을 살려 주신 다니깐 그 어머니가 교회를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면서 열심히 지역 구역 식구들 모여 작정 기도를 해 주고 또 새벽 기도를 나가기로 작정을 했는데 그 전날 밤에 딸은 물만 먹고 잠도 못자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새벽기도에 나왔는데 아버지가 딸을 지키고 있습니다. 잠 못 자고 열이 나고 고통 당하고 괴로워하고 있다가 갑자기 그 딸이 하는 말이 아빠, 우리 집에서 마귀 할멈이 나가면서 나보고 차비를 달라고 그래요. 그때가 어머니가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비몽사몽간에 마귀 할멈이 나와서 이제 나는 너희 집을 떠나겠으니 차비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 말을 하고 난 다음에 그 딸은 깊은 잠 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온 집안 식구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조그마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살아 날 수 있겠구나 그런데 91년 5월 셋째 주일 엄마가 딸을 엎고 주일 예배에 참석했는데 그 날 예배를 마친 후 백혈병으로 나온 사람은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셨다는 치료의 말씀을 전해 주더랍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어머니도 우리 딸이구나 엄마 등에 엎혀서 자리에 앉은 딸도 이것을 날보고 하는구나.. 그들이 마음 속에 뜨거움이 들어오고 믿음이 중천 했습니다. 그러자 그 날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몸에 살이 오르고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의사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생겼났다고.. 백혈병은 흔적도 없이 살아지고 온전히 건강을 얻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진실로 온 가족 전체가 백혈병이라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온갖 것을 다 의지하였어도 허무했으나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도 같이 계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의지했을 때 주님께서 그들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저 내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 그곳에서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사망의 골짜기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야말로 진실로 오늘날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의뢰하고 그 품에 안길때에 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사망의 골짜기를 천국의 영광으로 변화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예수님은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우리가 지날지라도 주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국가 적으로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 성령으로 예수님이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리자로서 여러분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성경은 말하기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 주님을 발견하고 의지하면 주께서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안위해 주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팡이와 막대기는 목자의 도구입니다. 목자가 양을 인도할 때에, 지팡이는 양을 인도하는 데에 사용하고 막대기는 사나운 짐승을 치고 쫓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에 주님은 지팡이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도, 밤에는 불기둥으로 저들을 인도했는데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인도하는 지팡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안 따랐다면 그 광야를 방황하다가 다 죽었을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서 2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막대기는 보호하는 막대기입니다. 주님의 권능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에도 주님의 막대기가 적군을 물리치고 홍해수를 가르고 건너게 했으며 굶주림, 목마름, 헐벗음, 질병, 환경 즉 고통과 적의 공격 등을 막아 보호하여서 무사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목자로서 그이 지팡이인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그 권세와 능력으로 양을 이끌 듯이 인도하여 가나안 복지에 들어오는 것이지 이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아니었으면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와서도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시편 28장 7절에서 9절에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는 저희의 힘이시요 그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산성이시로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라고 했습니다.
시편 138장 7절에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 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목자이시며, 구주이신 것입니까 여러분 이 주님은 우리들을 돌보는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지금도 가지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의 지팡이를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시죠... 우리가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성령의 말씀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20절에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危境)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말씀이 우리의 발에 등불이 되고 빛이 되어서 우리가 참으로 가야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自意)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말씀과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서 와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시고 총명이 되시며 몰약이 되시고 재능이 되시며 지식이 되시고 여러분과 나를 흑암에서 인도하여 광명한 대지로 나아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할 때 기도와 믿음을 통하여 나타나는 원수를 물리치는 하나님의 막대기를 오늘날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주께로 나아갈 때에 주님이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다스립니다. 원수를 물리치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18편 5절로 6절에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라고 했습니다.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냐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환란을 당하고 고난 당할때에 주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부르짖고 믿으면 오늘날도 주님의 권능의 막대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목자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목자가 주무시면 짐승들이 와서 양을 물고 찢죠? 우리가 목자를 주무시게 하면 안됩니다. 우리 목자이신 주님을 섬기고 예배드리고 받들면 목자가 살아서 우리를 인도하는데 그 손에는 우리를 이끄는 지팡이가 있고 우리를 지켜주는 막대기가 있는데 어디에 우리가 길을 잃겠으며 사나운 짐승에게 희생당하겠습니까?.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 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했는데 오늘날도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만 사람이 상상 할 수 없는 비밀한 것을 보여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 말씀처럼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생을 위해서 이미 우리 갈 길을 예배해 놓은 것입니다. 기도하고 믿고 순종할때에 하나님의 예비한 길을 찾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주님은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디로 봐도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너무나 희망과 기쁨을 주시는 복된 소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골짜기에 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참된 피난처와 요새와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 두손을 활짝 펴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음과 같이 오늘 주님은 여러분을 날개로 덮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전능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사 우리에게 크나큰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우리 바람 소리 파도소리 무서운 전쟁과 전쟁의 소문이 천지에 퍼질지라도 천지간 어둡고 캄캄한 사망의 골짜기에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고 결코 떠나지 않는 우리의 목자되신 주님이 함께 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사망의 골짜기인 이 세상 찾아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부르짖기 때문에 오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개인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주님이 자원해서 찾아 와서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제가 여호와를 가르켜 나의 피난처라고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의 장막이 이르지 못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버림받은 자가 아닙니다. 고아도 아닙니다. 도울자가 없는 자도 아닙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조성하시고 다스리시며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시며 우리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이 오늘 여러분과 함께 계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놀라지 마십시오 강하고 담대하여 깨어지고 회개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모시십시오. 주님은 여러분과 지금부터 영원토록 같이 하여 주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 바라보고 어둡고 캄캄한 사면을 바라보고 버림받았다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죽습니다. 내 아버지시여 인간의 지성이나 감각이란 그런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우리의 감각이나 이성을 초월해서 주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우리들과 같이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미 십자가 걸머지셔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모든 원수들을 멸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진실한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옵니다, 저가 그 깃으로 우리를 덮으시니 우리가 그 날개 아래 거하게 되옵니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나니 밤의 놀램과 낮의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내 곁에서 만인이 내 우편에서 넘어지나 그 재앙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여 그러므로 돈을 의지하면 돈으로 망하고 권력을 의지하면 권력으로 망하고 청춘을 의지하는 자는 청춘과 함께 망하지만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의지하는 자는 영원히 보호를 받고 천국의 영광 속에 들어가게 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그러므로 밤에도 낮에도 자도 깨어도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중심으로 섬기고 의지하며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기쁨은 함께 나누면 더 커지고 슬픔은 함께 나누면 작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혼자 살도록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담에게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5세 이상 독신 남자는 결혼한 남자릿?질병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23% 더 높은 것은 영국 통계청 발표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혼자 산다는 것이 심리적 육체적으로 굉장한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때를 지날 때는 짐을 함께 나누고 질수 있는 이웃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함께 당하는 이웃이 있을 때 힘과 위로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대한 은혜의 말씀을 주십니다.
첫째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아담의 삶은 바로 빛과 어두움이 중첩된 삶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그가 거할 때는 너무나 영광스럽고 찬란한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에덴 동산에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하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시고 예비해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생명의 원천 되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 때에 그들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형통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고 사망이란 형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교만을 부리다가 심판을 받고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타락으로 에덴을 떠난 그때부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그 자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였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에서 19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 떠나 만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저주받은 땅이요. 가시와 엉겅퀴가 나온 땅이요 고생과 수고의 땅이요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가는 비극적인 땅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갖고 온 이 세상은 바로 성경이 말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곳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것입니다. 이곳은 죄악이 판치는 사망의 골짜기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없어요. 한사람이 남김 없이 다 죄를 짓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어두움이 덮은 죄악의 골짜기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아담이 만들어 놓은 곳은 탐욕과 세속과 마귀가 득실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것입니다.
요한 일서 2장 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정욕과 탐심이 꽉 들어찬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 유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물고 찢고 싸우고 죽입니다. 뉴욕 무역센타에서 일어난 대 테러의 참사도 결국에는 인간 탐욕의 소산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탐욕과 세속과 마귀가 득실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그리고 절망과 허무와 무의미한 삶의 어두운 골짜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우울증이 심각하게 걸려 있다고 말합니다. 내일을 맡아서 이끌어갈 청소년들의 마음 속에 이미 깊은 우울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명중에 한 명이 우울 증상을 보이고 다섯 명중에서 한 명 정도는 정신 치료가 꼭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적인 현상입니다.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리고 좌절에 빠졌습니다. 이러므로 마귀의 노략물이 되어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여러분, 비행기를 몰고 현재 5만명이나 일하는 쌍둥이 무역 센타에 추돌해서 자살을 합니까.. 정상적인 마음으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것입니다.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좌절에 빠졌습니다. 삶이 될 때로 되라고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오늘날 세계 팽배하고 있습니다. 절망과 허무와 무의미한 삶의 어두운 골짜기가 우리에게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질병과 고통과 캄캄한 골짜기입니다. 최근에도 보면 팔순 노모를 모시는 문제로 3형제가 다투다가 노모와 장남이 동반 자살한 사건이 신문에 났습니다. 부모를 서로 안 모시려고 부모가 이리 체이고 저리 체이고 돌아다닙니다. 나중에 장남이 그 부모와 함께 자살을 합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마음이 병들은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가? 가난과 굶주림의 사망의 골짜기에 우리는 처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세계에서 잘먹고 잘 사는 문명국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굶주린 아프리카 대륙을 보십시오. 동남 아시아, 저 남미... 세계는 바야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헐벗고 굶주림의 고통 속에 처해 있습니다. 더구나 미국의 대 공황을 통해서 온 세계의 경제는 곤두박질 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경제적인 찬바람이 불어닥치고 있습니다. 가난과 굶주림은 이 세계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지금까지 경험하는 고통인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로 죽음과 무의미의 절망적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우리는 처해 있습니다. 모두다 죽어요. 사람이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여러분 모든 인생은 풀과 같습니다. 영화로운 꽃과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세상 이라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태어나서 항상 존재적인 절망을 품고 살다가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전반적인 세계의 현상이지만 또 각자 개별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습니다. 크고 작은 삶의 개인적인 가정적인 사회적 국가적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때에 우리는 어떻게 이 골짜기를 견뎌 낼 수 있습니까? 우리가 좋을 때는 수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벗이 되어 함께 하기를 원하지만 우리가 낭패를 당하고 실망을 당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 갈 때는 점점 외로워집니다. 친구도 형제도 심지어는 나중에 부모와 친해도 같이 갈 수 없는 외로운 골짜기를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내려가면서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흑같이 어두울 때에도 우리가 항상 마음 속에 기억해야 할 것은 비록 보이지 않고 붙잡을 수 없고 음성은 들을 수 없어도 우리는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고 항상 같이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함께 걸어가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 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는 하늘에서 우리에게 깨달음이나 해탈이나 체념의 지식을 계시해 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친히 하늘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쓰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이 세상 또 우리 개인이 경험하는 낭패와 실망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찾아 와서 우리와 함께 짐을 짊어지시고 우리가 함께 걸어가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와 함께 고통 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친히 사망의 골짜기를 찾아 와서 여러분과 함께 손을 잡고 이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고통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십자가를 걸머지셨습니다. 누가 강제로 걸머지게 한 것이 아닙니다. 자원해서 우리들의 고통을 들어 주기 위해서 우리의 고통을 대신 청산하기 위하여 그는 십자가를 걸머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 우리들에게 우리의 피난처가 되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요새가 되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대속의 죽으심을 통해서 오늘 이 시간에 손을 활짝 내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해요? 피난처가 되게 해주겠다. 내가 너희들의 요새가 되어주겠다, 내가 너를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어주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둡고 캄캄하고 온 사방이 폭풍에 휘말렸을지라도 우리에게 도움을 베풀기 위해서 와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 아래 우리들을 피하도록 초청하는데 그는 용서와 의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에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 피함으로 용서함을 받고 의로움을 얻고 영광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우리에게 마귀가 세상을 피하여 성령 충만할 수 있는 피난처입니다. 마귀와 세상의 소낙비를 피해서 그리스도 밑에 들어가면 그는 우리에게 오히려 성령충만과 평안을 주는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디도서 3장 6절에서 7절에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 한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고통과 육체의 질병 속에서 몸부림치며 이 풍랑을 어떻게 이겨갈까 알지 못하고 있을 때에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홀연히 나타난 우리의 피난처요, 치료의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께 뛰어가면 그리스도가 우리의 치유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예수께서 바로 우리에게 손을 활짝 내밀고 피난처가 되시기로 합니다 내게 피하라.. 다른데 피난처가 없으니 내 품에 피하라, 나의 등뒤에 숨어라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리니 어떠한 풍파가 와도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둡고 캄캄한 굶주림과 헐벗음이 있는 세계 속에서 우리에게 축복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 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어둡고 캄캄한 저주받은 땅에 우리가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할 수 있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우리를 떠나지 않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때에 우리와 같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생 천국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죽지 않아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혹독한 절망의 회오리 바람에 불려서 영원한 지옥으로 수 없는 영혼들이 낙엽처럼 떨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 중에서도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생명의 팔을 활짝 내밀고 있습니다. 그의 사망에 이른 사람들이 피난처를 들 수 있습니다. 그의 요새가 됩니다.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어서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바 되고 승리의 삶을 살아 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백혈병에 걸린 딸을 치료하신 하나님에 대한 간증을 하시는 용산 대교구 김서주 집사님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딸이 중학교 1학년 때에 소풍을 갔다 와서 몸에 열이 나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냥 감기 일거니 생각하고 약을 조제해 먹였는데 점점 병이 악화되는데 나중에 검사해 보니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백혈병에 걸리면 치료함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 의학적으로는 불치의 병입니다. 항암제를 썼으나 차도가 없고 몸은 점점 약해져가고 머리를 다 빠져 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본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건장하던 자녀가 순식간에 백혈병에 걸려 팔이 휘어지고 머리는 빠지고 뼈만 앙상해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될 때에 부모의 마음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시댁에서는 부적을 써와서 부적을 붙어 놓았으나 백혈병에 걸려 죽는데 부적이 무슨 효과를 발생합니까? 이것은 인간이 물에 빠져서 마지막 지푸라기 집는 형태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1년 반 뒤에 이제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는데 온 가족 전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된 것입니다. 이웃집에 여의순복음교회 지역장이 와서 전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딸을 치료 해 줄 수 있으니 딸을 데리고 우리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절망에 처한자가 무슨 말을 안 듣겠습니까? 딸을 살려 주신 다니깐 그 어머니가 교회를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면서 열심히 지역 구역 식구들 모여 작정 기도를 해 주고 또 새벽 기도를 나가기로 작정을 했는데 그 전날 밤에 딸은 물만 먹고 잠도 못자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새벽기도에 나왔는데 아버지가 딸을 지키고 있습니다. 잠 못 자고 열이 나고 고통 당하고 괴로워하고 있다가 갑자기 그 딸이 하는 말이 아빠, 우리 집에서 마귀 할멈이 나가면서 나보고 차비를 달라고 그래요. 그때가 어머니가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비몽사몽간에 마귀 할멈이 나와서 이제 나는 너희 집을 떠나겠으니 차비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 말을 하고 난 다음에 그 딸은 깊은 잠 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온 집안 식구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조그마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살아 날 수 있겠구나 그런데 91년 5월 셋째 주일 엄마가 딸을 엎고 주일 예배에 참석했는데 그 날 예배를 마친 후 백혈병으로 나온 사람은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셨다는 치료의 말씀을 전해 주더랍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어머니도 우리 딸이구나 엄마 등에 엎혀서 자리에 앉은 딸도 이것을 날보고 하는구나.. 그들이 마음 속에 뜨거움이 들어오고 믿음이 중천 했습니다. 그러자 그 날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몸에 살이 오르고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의사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생겼났다고.. 백혈병은 흔적도 없이 살아지고 온전히 건강을 얻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진실로 온 가족 전체가 백혈병이라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온갖 것을 다 의지하였어도 허무했으나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도 같이 계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의지했을 때 주님께서 그들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저 내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 그곳에서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사망의 골짜기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야말로 진실로 오늘날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의뢰하고 그 품에 안길때에 주의 권세와 능력으로 사망의 골짜기를 천국의 영광으로 변화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예수님은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우리가 지날지라도 주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국가 적으로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 성령으로 예수님이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리자로서 여러분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성경은 말하기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 주님을 발견하고 의지하면 주께서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안위해 주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지팡이와 막대기는 목자의 도구입니다. 목자가 양을 인도할 때에, 지팡이는 양을 인도하는 데에 사용하고 막대기는 사나운 짐승을 치고 쫓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에 주님은 지팡이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도, 밤에는 불기둥으로 저들을 인도했는데 이것이 바로 주님의 인도하는 지팡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안 따랐다면 그 광야를 방황하다가 다 죽었을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서 2절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막대기는 보호하는 막대기입니다. 주님의 권능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에도 주님의 막대기가 적군을 물리치고 홍해수를 가르고 건너게 했으며 굶주림, 목마름, 헐벗음, 질병, 환경 즉 고통과 적의 공격 등을 막아 보호하여서 무사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목자로서 그이 지팡이인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그 권세와 능력으로 양을 이끌 듯이 인도하여 가나안 복지에 들어오는 것이지 이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아니었으면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와서도 멸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시편 28장 7절에서 9절에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는 저희의 힘이시요 그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산성이시로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저희의 목자가 되사 영원토록 드십소서"라고 했습니다.
시편 138장 7절에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 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목자이시며, 구주이신 것입니까 여러분 이 주님은 우리들을 돌보는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지금도 가지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의 지팡이를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시죠... 우리가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성령의 말씀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 20절에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危境)에서 건지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말씀이 우리의 발에 등불이 되고 빛이 되어서 우리가 참으로 가야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自意)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말씀과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서 와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시고 총명이 되시며 몰약이 되시고 재능이 되시며 지식이 되시고 여러분과 나를 흑암에서 인도하여 광명한 대지로 나아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할 때 기도와 믿음을 통하여 나타나는 원수를 물리치는 하나님의 막대기를 오늘날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주께로 나아갈 때에 주님이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다스립니다. 원수를 물리치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18편 5절로 6절에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라고 했습니다.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냐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환란을 당하고 고난 당할때에 주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부르짖고 믿으면 오늘날도 주님의 권능의 막대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목자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목자가 주무시면 짐승들이 와서 양을 물고 찢죠? 우리가 목자를 주무시게 하면 안됩니다. 우리 목자이신 주님을 섬기고 예배드리고 받들면 목자가 살아서 우리를 인도하는데 그 손에는 우리를 이끄는 지팡이가 있고 우리를 지켜주는 막대기가 있는데 어디에 우리가 길을 잃겠으며 사나운 짐승에게 희생당하겠습니까?.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 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했는데 오늘날도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만 사람이 상상 할 수 없는 비밀한 것을 보여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 말씀처럼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생을 위해서 이미 우리 갈 길을 예배해 놓은 것입니다. 기도하고 믿고 순종할때에 하나님의 예비한 길을 찾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주님은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디로 봐도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너무나 희망과 기쁨을 주시는 복된 소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골짜기에 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우리의 참된 피난처와 요새와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 두손을 활짝 펴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음과 같이 오늘 주님은 여러분을 날개로 덮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전능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사 우리에게 크나큰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우리 바람 소리 파도소리 무서운 전쟁과 전쟁의 소문이 천지에 퍼질지라도 천지간 어둡고 캄캄한 사망의 골짜기에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고 결코 떠나지 않는 우리의 목자되신 주님이 함께 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찾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사망의 골짜기인 이 세상 찾아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부르짖기 때문에 오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개인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주님이 자원해서 찾아 와서 여러분을 돕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제가 여호와를 가르켜 나의 피난처라고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의 장막이 이르지 못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버림받은 자가 아닙니다. 고아도 아닙니다. 도울자가 없는 자도 아닙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조성하시고 다스리시며 알파와 오메가 되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시며 우리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이 오늘 여러분과 함께 계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놀라지 마십시오 강하고 담대하여 깨어지고 회개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모시십시오. 주님은 여러분과 지금부터 영원토록 같이 하여 주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 바라보고 어둡고 캄캄한 사면을 바라보고 버림받았다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죽습니다. 내 아버지시여 인간의 지성이나 감각이란 그런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우리의 감각이나 이성을 초월해서 주님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우리들과 같이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미 십자가 걸머지셔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의 모든 원수들을 멸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진실한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옵니다, 저가 그 깃으로 우리를 덮으시니 우리가 그 날개 아래 거하게 되옵니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방패가 되나니 밤의 놀램과 낮의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내 곁에서 만인이 내 우편에서 넘어지나 그 재앙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여 그러므로 돈을 의지하면 돈으로 망하고 권력을 의지하면 권력으로 망하고 청춘을 의지하는 자는 청춘과 함께 망하지만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의지하는 자는 영원히 보호를 받고 천국의 영광 속에 들어가게 되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그러므로 밤에도 낮에도 자도 깨어도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중심으로 섬기고 의지하며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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