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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영적 의미

시편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771 추천 수 0 2008.06.20 12:2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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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22:3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순복음중앙교회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 하시니이다.”

<서론>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감사의 영적 의미”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보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며 은혜를 베풀어 주신 이웃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감사는 객관적으로 볼 때 지극히 자기중심 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감사는 자기 개인의 이해관계에 직접, 간접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내게 유익되지 못할 때 내가 손해가 오고 고통이 다가올 때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감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그만큼 천박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유익 될 때 뿐 아니라 손해와 고통이 될 때에도 범사에 감사하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본론>
1. 불평은 마귀가 우리 마음을 여는 열쇠
첫째로, 불평은 마귀가 우리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타락했습니까? 마귀가 성공적으로 저들의 마음속에 불평을 심어 주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귀가 하와에게 와서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렇게 괴변을 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모든 실과의 나무를 다 먹되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 말라. 너희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했는데 그것을 거꾸로 해석해서 모든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 이것은 벌써 아담과 하와의 마음속에 불평을 심어 주는 마귀의 궤궤인 것입니다. 하와는 말하기를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반드시 죽을 것 이라고 말하였지 죽을까 하노라고 말하지 않았었습니다. 마귀는 말하기를 “너희가 결코 죽지 않으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선악을 안다는 것은 주권적인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너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도 좋고 나쁜 것을 마음대로 판단할 수 있는 주권적인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되는 것이 샘이 나서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불평을 심어 주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평이 결국 반역죄를 짓게 하고 타락하여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무시무시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마귀는 온갖 궤궤를 다해서 결국에는 하나님께 불평을 말하게 말하고 불평을 말하니 그 마음 문을 열고 들어가서 반역의 죄를 짓게 만들어 버리고 만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은 마귀가 사람의 마음을 점령하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민21:4~6에 보면 광야에서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하다가 불 뱀에 물려 죽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야훼께서 불뱀 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건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 할 만합니다. 그들은 광야를 지나면서 길이 험하고 고달프고 괴로웠습니다. 그리고 충분한 음식도 없고 물이 없었습니다. 불평 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원망과 불평은 결국 그들에게 심판을 가져오고 만 것입니다. 광야에는 원래 불 뱀이 많이 서식했습니다. 하나님이 막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을 할 때 하나님은 그 막는 손길을 떼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광야에 서식하는 불 뱀 들이 달라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서 많이 죽게 만든 것입니다. 결국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마귀의 궤궤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산 사건은 민11장에도 있습니다. 그들이 악한말로 하나님을 원망하매 하나님이 불을 보내어서 그들의 진을 사른 적이 있습니다. 여리고 정탐 후에 그들은 악평한 열 명은 재앙으로 죽고 그 말 듣고 백성이 밤새 통곡하고 원망하자 그 백성들을 다 광야로 회진시켜 광야에서 멸함을 받게 한 것입니다.
민14:27~30에 보면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야훼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 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얼마나 무시무시한 심판이요 하나님의 진노인 것입니까? 그들이 하나님 앞에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해서 정탐해 들어가 보니 아주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성은 높은 그곳에 거하는 사람은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 대장부라 도저히 그들이 비교해 보아도 그들은 메뚜기와 같았습니다. 들어가 차지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평할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고 불평하고 원망하자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그들은 버림을 받고 만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원망과 불평은 마귀에게 열쇠를 열어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와 심판을 재촉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해무익 한 것이 원망과 불평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감사와 찬양은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하고 우리 스스로를 훈련하지 않고는 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 이후로 타락한 우리들은 원래 심성이 불평하고 원망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마음에 변화를 받지 않고는 원망과 불평의 세계를 떠날 수 없고 떠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마귀에게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하나님께 꾸중을 듣고 심판을 당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살 때가 많은 것입니다.

2. 감사의 영적 의미
둘째로, 우리는 감사의 영적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시50:23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과 은혜를 받는 열쇠인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과 탄식이 마귀에게 우리 마음 문을 열고 우리를 점령하게 하는 열쇠가 되는 것과 같이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께 열쇠를 드려서 우리 마음 문을 열어서 우리에게 들어와서 구원과 축복과 은혜를 줄 수 있는 길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사밧과 모압과 암몬과 마온 연합군과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여호사밧 왕이 유다를 다스릴 때에 모압과 암몬과 마온 연합군이 쳐들어 왔습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은 갑자기 적의 침공을 받아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는 놀랍고 떨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서 부르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대하20:12~13에 보면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야훼 앞에 섰더라”
그렇게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할 때 야훼의 신이 레위 사람 야시엘에게 임하여 말씀하기를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내일 마주 내려가라. 야훼가 함께 하시고 구원한 것을 보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역대 전쟁사에 해보지 않은 희한한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전쟁에 나가면서 군사들 앞에 성가대를 조직해서 성가대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찬양을 부르면서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 기사는 대하20:20~23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 찌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야훼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야훼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 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야훼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을 치게 하시므로 저희가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육 하였더라”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인 것입니다. 그들이 노래를 시작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가만히 있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았어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과 탄식은 마귀를 초청하는 동기가 될 수 있지만 감사와 찬송은 야훼 하나님을 초청하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야훼를 감사하고 찬미한 결과로 대 승리를 거두고 전리품을 거두는 데도 3일간 걸렸습니다. 하나님이 감사와 찬송 가운데 거하여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우리 신약성경에도 보면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증가하다가 잡혀서 빌립보 감옥에 갇힌 사건이 있습니다. 그들은 빌립보에서 점치는 여종을 구출해 주었습니다. 귀신이 들려서 점을 치면서 매일같이 그들을 따라 다니면서 그들을 괴롭히기 때문에 바울이 “이 귀신아!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나가라!” 귀신이 나가고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종의 주인이 이제는 그 여종의 점을 쳐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그것을 못하게 되자 바울과 실라를 잡아다가 관원에 넘겼습니다. 관원들이 옷을 벗기고 많이 매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빌립보 감옥 깊숙한 곳에 쇠고랑에 채워서 투옥시켜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는 조건이 많습니다. 복음을 증거 했는데 왜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감옥에 들어가게 했습니까? 원망할 수 있잖아요. 많이 맞아서 등에 피가 흐르고 배는 고픈데 캄캄하고 습기 찬 깊은 감옥 속에 쇠고랑을 차고 들어갔으니 탄식 할 만 하지요.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행16:25~26에 보면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고 말했습니다.
한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자 하나님이 보내신 지진이 일어난 것입니다. 진동해서 보통 지진이 아닙니다. 보통 지진이면 왜 쇠고랑이 다 열립니까? 천사들이 와서 그 옥토를 뒤 흔들어 버리고 모든 사람의 쇠고랑을 끌러 버린 것입니다. 찬송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자유와 해방을 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답답하고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 찬송하면 그 묶임에서 해방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과 환경이 고통과 괴로움으로 묶였을 때 찬송하면 하나님께서 자유와 해방을 갖다 주는 큰 지진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진동, 우리의 생활에 진동을 일으켜서 흑암의 세력을 쫓아내고 자유와 해방을 갖다 주는 능력이 바로 찬송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오셔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옥문이 열리니 간수가 죄수들 다 도망친 줄 알고 놀래서 자살하려고 할 때 바울이 말하기를 “자살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 그러니까 그가 뛰어와서 “선생들아 내가 어찌하여 구원을 얻을까” 그때 바울이 말하기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말을 듣고 간수와 그 식구들이 다 회개하고 세례 받고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이 자유와 해방을 가져 왔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도 열어준 것입니다. 여러분 믿지 않는 사람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항상 원망, 불평, 탄식하는 것만 보면 어떻게 마음에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고통과 괴로움 속에도 감사하고 찬송하며 눈물을 흘리고 주께 영광을 돌리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희한하게 여길 것입니다. 어찌하여 이런 곤고 가운데서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를 드리는가. 그 연유가 어디에 있는가 물을 것이고 그들은 그 연유를 듣고 마음에 감동하여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와 찬송은 우리의 원수를 물리치는 힘이 되고 감사와 찬송은 우리를 속박에서 해방과 자유를 주는 놀라운 역사가 되며 복음증거의 큰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3. 감사하기 위하여
그러면 셋째로, 우리가 감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전에도 말씀한 것처럼 아담과 하와는 태어날 때부터 그 자손들이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세상에는 원망과 불평과 탄식이 가득 찹니다. 여러분께서 어느 곳에 가든지 두세 사람만 모인데 가보십시오. 원망과 불평과 탄식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것은 심리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마귀에게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합니다. 마귀에게 우리를 점령할 수 있는 열쇠를 주어서 우리 마음의 아파트에 문을 열고 들어와서 아예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귀를 내어 쫓고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총을 베풀기 위해서는 우리가 감사하는 것을 배우고 훈련하고 그리고 항상 관심을 가지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불평한 말을 하는 것보다는 감사한 말을 하는 그 일을 찾아야 됩니다. 불평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 중에도 감사할 일들을 우리가 찾아야만 우리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시50:14~15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말한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지내고 난 다음에 환난 날에 야훼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건지시고 그리고 결국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는 먼저 감사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금년 11월 10일 신문방송보도에 나온 것처럼 19살 된 딸이 한 달에 4백만원씩 하는 고액과외비를 주지 않는다고 몸싸움을 벌이다가 탈진한 어머니의 얼굴을 손으로 눌러서 숨지게 한 비통한 사건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에 어머니가 얼마나 애를 써서 4백만원씩 한달에 과외비를 주었겠습니까? 4백만원이라 하면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여러분! 그 어머니가 그 많은 돈을 어디에서 마련을 했는지 상상을 할 수 없어요. 그러나 그 과외를 시켜도 효과가 없으니까 어머니가 그만하자고 하는데 어머니하고 몸싸움을 하고 결국에는 목을 졸려 죽였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할 줄 모르는 오늘 세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해준 일에 대해서 추호라도 감사했더라면 그런 일을 하지 않았잖습니까? 자식이 아니라 원수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에 비교해서 미국에 건너간 청교도들의 불행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한 사건을 기억해 보십시오. 1620년 9월 영국의 102명의 청교도들이 영국 제임스 1세의 국교정책으로 심한 박해를 받자 그를 피해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라는 작은 범선을 타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두 달 넘게 대서양을 항해하는데 그 조그마한 범선이 큰 파도를 헤치며 나가니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었겠습니까? 66일 만에 구사일생으로 북아메리카에 상륙하여 정착할 곳을 찾다가 성탄절 다음날 플리머스트록에 정착하여 겨울을 나는 동안 혹독한 추위와 풍토병과 아메리칸 인디언의 습격을 받아 온 사람의 태반이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굽히지 않는 믿음으로 제일먼저 교회를 지었고 천신만고로 땅을 개간하여 봄에 옥수수 씨를 심어 가을에 대풍작을 이루게 되어서 그들은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재단을 쌓고 또 농사법을 도와준 이후 인디안 들을 초청하여 3일간 큰 잔치를 베푼 것이 오늘날 미국이 가지고 있는 추수감사절기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그 추수감사의 행사가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서 온 세계로 뻗어 나갔고 우리 한국에도 우리 교회에도 추수감사절을 지내게 된 것입니다. 그때에 그 청교도들이 자녀들의 성경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세운 학교가 오늘날 하버드대학, 프린스턴 대학 같은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케네디 대통령 때 법으로 학교에서 기도와 말씀 공부를 금지시킨 뒤에는 미국의 청소년들의 범죄가 급증하고 성적으로 타락하고 신생종교의 온상이 되고 급기야는 뉴욕의 쌍둥이 무역센터 테러사건이 일어나고 아프칸 전쟁이 일어나고 이 결과로 미국이 통회하고 자복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고 말은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삶속에 불평할 것을 찾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그러나 여러 가지 불평할 사건 중에도 감사할 일들을 찾으면 또 많이 감사할 것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평할 것을 헤치고 그 가운데 있는 감사할 보화를 찾아서 그것을 가지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원망과 불평이냐 감사냐 찬송이냐 영적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은 우리 마음속에 불평이냐 감사냐 찬양이냐 원망이냐 전쟁입니다. 영적인 전쟁이에요. 이 전쟁에 지면 낭패를 당하고 전쟁에 이기면 축복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불평하고 싶은 유혹을 대적하고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을 하고 싶은 유혹이 있어요. 아담과 하와도 유혹을 받았는데 우리라고 유혹 안 받을 턱 있어요? 원망과 불평하고 싶은 생각이 늘 나와요.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의 유혹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잠4:23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한 것 입니다. 마음에서 감사와 찬송을 하면 생명이 넘쳐나고 원망과 불평을 하면 사망이 넘쳐 나오지 않겠습니까? 어느 마을에 한곳에서 부글부글 끓는 온천이 솟고 그 옆에는 얼음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는 신기한 곳이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빨래 감을 가지고 와서 더운물에 적셔서 빨래를 그곳에서 삶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옆에 아주 찬물이 있는 곳에 가서 빨래를 헹궈 내니까 참 좋습니다. 그래서 많은 구경꾼들이 그곳에 와서 “희한하다. 더운 온천이 있는가 하면 그 옆에 냉천이 있어서 빨래를 삼고 또 빨래를 씻고 참 좋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좋은 환경을 주신 하나님께 참 감사하지 않겠냐고 하니까 관광 안내자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불평 투성이 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니까 그가 하는 말이 “하나님이 더운물도 주시고 찬물도 주셨으면 기왕에 줄 바에는 비눗물도 주지 않고서 우리가 비누를 가지고 오게 하신다.” 그러면서 빨래를 삼고 헹굴 때마다 원망과 불평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불평을 하려 하면 언제나 불평할 수 있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려면 얼마나 감사할 수 있는 조건도 우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과의 대화중에서 감사보다 불평을 말하도록 심리적으로 타락해 있습니다. 이제 사람 만나면 벌써 남의 흉을 보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하도록 심리적으로 타락해 있어요. 시34:13~14에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 찌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 찌어다”고 말씀했습니다.
엡5:4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명령하셨으며
시141:3에 “야훼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를 정도로 우리들은 마음에 결심을 하고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서 원망, 불평이 못 들어오게 하고 가사를 하도록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웃과 대화중에서 우리들은 감사한 말이 나오고 원망과 불평이 나오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우리가 입술로 먼저 감사를 해야 됩니다. 빌4:6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감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놓는 길이 되지 않습니까?
히13:15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늘 드리는 것이 우리 구원받은 사람의 입술의 열매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사모가 위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50세도 안된 나이에 위암에 걸린 것 생각하니 너무나 억울해서 예전에 신학교에 남편과 함께 공부하고 그리고 개척하면서 고생하던 것이 생각이 나서 “이렇게 일찍이 위암에 걸려 죽는 것은 시집 잘못 가서 그렇다. 유능하지 못한 남편 따라 목회하고 개척한다고 너무나 고생하고 속상하고 괴로웠기 때문에 위암에 걸렸다.” 그래서 밤이면 기도하지 않고 남편 멱살을 잡고 “왜 내가 먼저 죽어야 되느냐? 같이 죽자!” 그리고 고함 고함을 쳤습니다. 남편이 하루는 노트를 가지고 오더니만 부인에게 “당신 내내 불평을 하는데 불평하다가도 죽을 수 있고 감사하다가도 죽을 수가 있는데 하나님 앞에 나갈 때 감사하다가 죽는 것이 낫지 불평하다가 죽는 것이 낫겠느냐? 그러므로 이 노트에 감사할 사람을 과거에 감사를 드리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감사할 조건을 적고서 차에 다니면서 감사를 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부인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감사할 사람들의 이름을 다 적어가지고서 그 이튿날부터 힘이 있을 동안에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그저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도와줘서 감사합니다. 떠나기 전에 인사하러 왔습니다.”하면서 감사했는데 죽는다는 사람이 감사하러 돌아다니면서 더 살아났어요. 그래서 감사를 다 하고 난 다음 병원에 가서 조사해 보니까 암이 나아 버렸어요. 원망과 불평은 암에게 생명을 주지만 감사와 찬송은 암을 멸하는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서 감사하고 있을 동안에 치료가 계속되어 그는 병에서 고침을 받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로 감사한다는 것은 굉장히 치료의 역사와 은혜를 받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또 우리가 재물을 드려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96:8~9에 “야훼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 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 찌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야훼께 경배할 찌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마6:20에는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빌4:18~19에는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 입술로 감사의 제사를 드릴뿐 아니라 실제로 예물을 가지고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눅6:38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했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에게 넘치게 보답해 주시겠습니까?
우리가 물질로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물질로 우리에게 보답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성경에 우리 주님께서 가장 크게 감격하고 감사하게 여긴 것이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린 것입니다. 유대 나라에는 처녀가 시집 갈 때에 옥합에 기름을 담아서 가지고 갑니다. 그런데 이 마리아는 시집가기 위해서 그동안 오랫동안 모아놓은 기름을 가지고 와서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붓고 발에 붓고 그 머리털로 발을 닦았습니다. 모든 제자들이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이 여자가 나에게 참으로 좋은 일을 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곳에는 이 여자의 선한 행위도 늘 전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죽음을 앞둔 그 자리에서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은혜와 구원에 너무 감사해서 그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옥합을 깨뜨려서 그 기름으로 머리에 바르고 발을 닦은 것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주님께서는 큰 용기와 힘을 얻은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이 무슨 낭비냐고 고함을 쳤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낭비하는 것은 얼마든지 해도 좋습니다. 내 육체를 위해서 낭비하는 것은 나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위해서 그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낭비하는 것은 거룩한 낭비요, 아무리 낭비해도 그것은 아깝지가 않은 것입니다.
기독신문에 보니까 이영희 집사님의 간증이 기록되어 있는데 교회학교 1학년 아들이 좋은 바이올린을 구입하려고 2년간 저금한 통장을 여름성경학교 헌금으로 드려 버렸습니다. 아이는 생일을 앞두고 가장 귀한 것을 드리고 싶어서 기도하다가 어머니와 의논하기를 “내가 2년 동안 바이올린 사기 위해서 모아놓은 돈을 하나님께 감사예물로 드리겠다.”고 해서 어머니가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이 아이가 감사예물로 드리고 말았습니다. 마침 그때 남편이 사업이 가장 힘든 고비라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드렸는데 한 달도 채 못 되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수금이 잘 안되어 애먹었던 수금이 쉽게 들어오고 직원도 겨우 1명이었는데 6명까지 늘리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어려운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이 그 가정에 축복으로 하나님이 보답하여 주신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나를 영화롭게 한다.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구원으로 보이겠다고 하신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미국의 한 사업가가 자동차 사고로 무남독녀 외딸이 정신병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자동차에 부딪혀서 뇌가 손상당한 것입니다. 3년 후에 차를 몰고 딸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가다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 통곡을 하고 우는데 하나님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딸이 자동차 사고 나서 뇌손상을 받아 미친 것을 감사해 본적이 있느냐?’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 딸이 사고 나서 뇌손상을 입어 미쳤는데 그것이 뭐가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사건 자체가 감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같이 계시고 하나님이 돌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네가 감사했으면 감사를 통해서 내가 역사할 수 있을 것인데 항상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했으므로 그것이 너와 나의 장벽이 되어서 내가 너의 딸을 도와 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 아버지가 크게 회개하고 “하나님 내 딸이 사고가 나서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3년 동안 있는 것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를 회개시킨 것 감사합니다. 우리 딸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하고 자동차를 운전해서 병원에 가니까 의사들이 놀란 눈으로 크게 뜨고 그를 맞이했습니다. “당신 딸에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인사불성이었는데 오늘 아침부터는 사람을 알아보고 아버지, 아버지하고 아버지를 찾고 있습니다.” 그가 정신병원에 들어간 딸이 “아버지 내가 왜 여기 와있어? 아버지 왜 아버지 나를 버렸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고침을 받았다는 간증을 제가 읽어 본적이 있습니다. 감사를 할 때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손길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왜 감사를 하느냐. 환경이 감사할 수 없는데 왜 감사를 해야 되느냐? 그것은 내가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손길을 초청해 오는 길이 되기 때문에 병자가 의사를 찾는 것처럼 배고픈 자가 음식을 찾는 것처럼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도움을 찾는 길이 바로 감사의 길인 것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을 초청해 올수 있는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서 항상 영적인 전쟁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전쟁 중 확실하게 마귀를 끌어들이는 길은 불평이요, 원망입니다. 그러나 감사 또한 확실하게 하나님을 모셔 들이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와 찬양이 있는 곳에 보좌를 배설하고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적은 일에서 큰일까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과 마귀가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로 문을 열면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하면 하나님을 몰아내시고 마귀를 받아 들여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선택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영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감사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원망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영원히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으며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 결과를 얻고 싶으면 감사를 하십시오. 그러나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며 고통과 슬픔을 당하기를 원하면 원망과 불평을 하십시오. 선택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시22:3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 하시니이다.”
이스라엘이 찬송할 때 그 가운데 주님이 와 계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와 계시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살전5: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에요. 사람의 뜻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이 일을 힘껏 행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셔서 큰 은총과 축복과 영광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담과 하와 이후로 우리들은 끊임없는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영적전쟁에 패배해서 하나님께 감사, 찬양,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마귀의 암시를 받아서 원망과 불평으로 탄식하다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처참한 파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오늘날 구원받은 우리들도 끊임없이 마귀의 암시와 유혹에 넘어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쉽게 하는 심리적인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마음을 점령하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힘을 주셔서 원망과 불평할 곳에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도와 주시 옵소서. 원망과 불평을 택하지 말고 감사와 찬양을 택하므로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게 하여 주시 옵시고 하늘나라가 우리 마음속에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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