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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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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3년 4월 6일 주일2부 |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서론>
오늘 저는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제목으로 제 세 번째 말씀을 연속해서 전하겠습니다.
이라크 전쟁이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라크 및 이슬람 국가간에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원치 않지만 늘크고 작은 원수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하셨으니 하물며 타인이야 어떠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섬기며 살고 예수님을 목자로 의지하고 살면 원수에 대한 문제를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23편 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본론>
1. 원수의 목전에서 밥상을 베푸시고
첫째로, 주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밥상을 베푸시겠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말씀은 원수가 오면 내게 주님이 밥상을 차려 주시겠다. 적은 원수가 오면 작은 밥상 차리고 큰 원수가 오면 큰 밥상 차린다. 원수가 전혀 없으면 굶어라 그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크고 작은 마음에 스트레스를 주는 원수들이 올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 것은 그러한 경험이 올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밥상을 차려 주신다.
여러분! 다윗이 어떻게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까? 그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이라는 원수를 만나서 골리앗 밥상의 밥을 먹고 난 다음에 그는 위대한 장군이 된것입니다.
사울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 군대의 골리앗 앞에 완전히 주눅이 들었습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크게 무서워 했고 모든 사람이 골리앗을 보고 심히 두려워서 도망치기에 바빴습니다. 마침 그때 다윗은 불과 17살 내지 18살 먹은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세의 여덟 번째 아들로서 전쟁터에 나간 세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가지고 안부를 살피러 갔을 때 골리앗이 말한 것을 듣고 온 사울과 이스라엘 군인들이 벌벌 떠는 것을 보고 마음속에 분개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가?” 그는 굉장히 마음에 분개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서 9척 장신의 골리앗과 싸우겠다는 말을 했고 그말이 곧 사울왕에게 전해지니 사울왕이 다윗을 불렀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여러분 원수가 오면 원수 앞에서 하나님에 대한 강력한 신앙을 가지고 또 타협하지 않는 긍정적인 신앙고백을 하면 원수가 밥으로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군인들은 모두 다 원수 앞에서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벌벌 떨고 원수를 과대평가했기 때문에 그들은 원수에게 패배했으나 다윗은 원수를 보았을 때 그는 담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강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다윗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어마어마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체험적으로 알고 그가 곰과 사자도 쳐서 물리치고 죽였는데 하물며 이 블레셋 장군인 골리앗 쯤이야 문제가 없다고 골리앗을 내 손에 붙이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나님에 대한 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아무리 마음속에 자기가 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입으로 고백하지 아니하면 그 신앙은 잠자는 신앙에 불과합니다. 마음에 믿었으면 입으로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말했습니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신앙고백입니다.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자와 곰의 발톱에도 건져 주었는데 이 블레셋 사람 골리앗에게서도 나를 건져내어 주실것이라고 그는 강한 신앙과 입술의 고백을 했습니다. 그것을 듣고 사울이 감동해서 말하기를 “가라 야웨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다윗을 보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서 가니까 골리앗이 대장군이 나오는줄 알고 찾고 있다가 보니까 조그마한 17-18살 먹은 초립동이 오는 것을 보고 그는 분개했습니다. 골리앗이 말하기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 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다윗은 투구도 쓰지 않고 갑옷도 입지 않고 칼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목자의 지팡이 하나 집고 그의 목자의 도구에 물맷돌 다섯 개를 넣고 골리앗에게 나갔으니 골리앗이 보고서 기가 막혔습니다. 불과 17-18살 먹은 초립동이 군복도 입지 않고 무장도 하지 아니하고 지팡이 하나들고 자기 찾아오니 자기를 무시해도 유분수가 있지 뭐 저런게 다있냐? 나를 개로 알고 부지깽이 들고 찾아 오느냐? 그때 다윗은 또다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강하고 담대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이것이 전쟁에 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제 전쟁보다 더 먼저 영적전쟁에 이겨야 되는데 영적인 전쟁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입술의 고백으로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벌써 제압하면 실제적으로 제압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싸움이 다 그렇습니다. 죄와 싸우는데 있어서도 세속과 싸우는데 있어서도 혹은 병과 혹은 저주와 혹은 가난과 싸우는데 있어서도 먼저 영적으로 내가 신앙이 확실하게 서있고 그 신앙고백을 해서 영적싸움에서 이겨야 현실적인 싸움에서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보고 말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하나님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그는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제는 그 신앙을 마음속에 있는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간다고 말하고 그 다음에는 그는 승리에 대한 확실한 신앙고백을 한것입니다. 그것이 벌써 영적으로 골리앗을 제켜 버린 것입니다.
그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입술의 강력한 고백에 이미 골리앗은 다윗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 물맷돌 가지고서 던져서 골리앗이 이마에 물맷돌을 맞고 쓰러지매 골리앗의 칼을 뽑아서 그 목을 베었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의 밥상이되고 밥이 되고 말은 것입니다. 원수의 목전앞에 내게 상을 베푸신다. 만일 골리앗이라는 원수가 없었으면 다윗은 절대로 이스라엘의 대장군이 안되었을 것입니다. 골리앗 덕분에 골리앗 밥상에서 골리앗 밥을 먹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대장군이 되고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원수가 손해나는 것 아닙니다. 사울과 이스라엘의 군대는 골리앗을 두려워 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잃어버리고 신앙고백도 없었기 때문에 골리앗에 쫓겼지만은 다윗은 그 원수가 자기가 앞으로 위대하게 출세하는 밥상이 된것입니다. 그것은 믿음과 신앙고백이 그렇게 만들어 준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법칙을 우리가 단단히 알아야 됩니다. 믿음의 법칙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강한 믿음과 고백이 있어야 됩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신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앙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고백입니다. 하나님 능력에 대한 믿음과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능력을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신앙고백하면 벌써 영적전쟁에 이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로 23절에도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담대한 신앙고백은 원수를 밥으로 원수를 만난 사건을 밥상으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평소에 하나님의 전지전능, 무소부지하심과 그 위대한 기적을 우리가 늘 묵상하고 마음속에 확실히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건을 만나더라도 그 사건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 하면 안돼요.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만군의 야웨, 하나님을 바라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믿고서 나가야 됩니다. 죄보다 크신 하나님, 마귀보다 크신 하나님, 병보다 크신 하나님, 실패보다 크신 하나님, 죽음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강하게 고백하면 내게 다가오는 모든 인간적인 원수, 환경적인 원수들이 밥상으로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에게 쫓기어서 밟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수가 밥상이 되어 위대한 삶을 가져오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목자는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에게 밥상 차리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작은 원수도 큰 원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것은 이것을 밥으로 만들어 먹으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반야에 왔었을 때 열정탐꾼은 우리가 들어가서 가나안 땅을 점령하지 못한다. 그곳의 성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고 그곳에 사는 사람은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 대장부라 우리 눈에 보기에도 우리는 메뚜기 같더라. 완전히 패배주의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니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들의 보호자는 떠나갔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우리가 들어가서 점령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앙과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가나안의 모든 원수들은 우리 밥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열정탐꾼과 그 말을 들었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광야에서 다 죽었지만은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신앙고백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고백이란 어떠한 역경도 우리의 밥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우리의 목자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목자되신 예수님이 여러분과 다 같이 계시면서 여러분 마음속에 믿음과 신앙고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라. 이 산들은 명하여 바다에 던져라 하고 그것이 이룰 줄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 믿음과 신앙고백은 여러분 모든 환경을 밥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기름을 머리에 바르시니
둘째로, 성경에는 기름으로 내머리에 바르셨다.
기름으로 머리에 바르시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영광스럽게 해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기름을 발라서 왕으로 만들고 기름을 발라서 제사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기름이란 성령을 상징하는데 오늘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모두다 성령을 부어 주셔서 오늘 예수 믿는 사람은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를 다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기름발라서 왕을 만들고 제사장 만들 듯이 우리 모든 성도에게 성령이 임하시므로 우리가 왕같은 제사장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다스리는 자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자로써 왕같은 제사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원수를 만나면 밥으로 삼으시고 기름을 부어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골리앗 밥상에 밥만 먹었을뿐 아니라 주님이 기름을 부으셔서 대장군이요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만들어 준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지 않습니까? 원수들에게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23절에 보면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으나"
예수님은 저 팔레스타인의 한 구석에서 십자가에 처형 당했습니다.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주는 자 없이 역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 나온 하나의 혁명가였으나 실패하고 처형당했다. 그로써 그의 존재는 잊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으신지 50일만에 성령이 임하시자 성령께서 순식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사건이 우주적인 구세주,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써 높이게 된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은 성령이 오지 않았으면 그냥 한 팔레스타인의 구석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잊어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우주적인 구원사건으로 높여 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2절로 33절에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성령이 오셔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온 천하에 알게 되고 만민이 듣게 되고 구원의 위대한 사건이 된것입니다. 이것처럼 성령은 고난을 영광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부활의 영이요, 영광의 영으로 보혜사 즉, 돕는자가 되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다 성령으로 기름부인 자들이므로 왕같은 제사장들이 되어서 성령과 함께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가 좋을때만 함께 계신 것이 아니라 고난 받을때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더큰 영광을 가져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영광으로 변화된 것처럼 베드로전서 4장 14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성령이 계시면 고난이 영광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창조에도 보십시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 하시니라"
성령이 운행하시니까 흑암은 광명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추함은 아름다움으로 죽음은 생명으로 가난은 부요로 변화되고 아름다운 창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우리의 가정이 얼마나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지라도 성령이 와서 운행하시면 가난은 부요로 어두움은 빛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죽음은 삶으로 변화시키는 역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와같이 우리 가운데 기름 부어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역사를 베풉니다. 우리의 목자되신 주님은 우리와 같이 계셔서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는자. 예수를 구주로 모실 때 성령을 부어 주시는 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중생 시키지 않습니까? 우리를 거듭나게 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옛사람은 청산해 버리고 새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새 생각, 새 말, 새 노래, 새 삶을 살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것은 성령이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생활에서 부활과 영광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령이 오시면 우리 죽을 몸도 살리는 것입니다. 죽은 몸을 살리는 것 아닙니다. 지금 우리 죽을몸이 아닙니까? 이 죽을몸도 주님 생기를 주어서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다. 성령이 오셔서 아침마다 새롭게 되고 저녁마다 새 생명을 부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마음도 건강하고 몸도 건강하고 생활도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주를 믿는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고 성령의 기름부음이 함께 있다는 것을 여러분 알아야 되고 이러므로 우리의 삶속에 항상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곁에 계신 분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시간에 여러분 혼자 외롭게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목자되신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름을 부어서 성령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계셔서 여러분과 나를 도와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는 마음속에 큰 평안과 기쁨을 가질수 있지 않겠습니까? 성령이 함께 계신다. 우리 예수 믿는 것에 가장 큰 역사는 주님이 우리에게 무슨 종교를 덮어 씌운것도 아니고 차디찬 율법을 주신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돕는자 어머니 같은 성령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어머니와 같습니다. 우리를 품에 품으시고 우리를 도와 주시고 연약함을 돌보아 주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창조, 우리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기적을 베푸시기 때문에 항상 기도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면 성령이 오늘 기름부음이 되어서 우리에게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다윗을 들어서 만성천자로 만든 것은 오늘날 성령은 여러분과 나를 들어서 기름부음을 받게 해서 높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3. 내 잔이 넘치나이다
셋째로, 우리 목자는 우리 잔을 넘치게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요한복음 10장 9절로 10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잔이 넘치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한다. 그러므로 잔이 넘치는 삶을 주님이 주신다. 넘치는 기쁨, 넘치는 소망, 넘치는 사랑, 넘치는 의, 넘치는 평강, 넘치는 희락.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조금 주시는 것이 아니라 넘치게 주신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주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회개하고 우리를 비우는 것은 주님이 채워 주실 수 있도록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고 헌물을 드리고 우리의 삶에 빈공간을 만들면 그곳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 빈공간을 만들어야 돼요. 주라 그리하면 돌려 줄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주리라. 저는 그것을 생각하면 언제나 친정 어머니 같은 생각이 납니다. 시집살이 고생하고 친정집에 왔다가 돌아갈때는 옛날에 어머니가 그 자기 딸에게 뭐라도 주기 위해서 옛날에는 다른 것 없지 않아요. 쌀이나 팥이나 콩이나 눌러서 흔들어서 넘치게해서 부어서 묶어 가져가라. 가져가라. 우리 주님께서는 목자가 되셔서 우리에게 잔이 넘치게 해주시려고 하는데 잔이 비어 있어야지 잔이 세상것으로 차있으면 채울수가 없지 않습니까? 빈공간을 만들어야 돼요. 잔이 흙이 꽉 들어차고 모래가 꽉들어 차고 돌맹이가 꽉 들어가 있으면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그러므로 탐욕을 다 부어 버리고 죄악을 다 부어 버리고 빈 공간을 만들면 은혜로 채워 주시고 십일조와 헌물로서 물질을 비워 버리면 물질로서 채워 주시고 사랑을 주어서 비워 버리면 사랑으로 채워 주시고 우리의 삶속에 우리는 항상 공간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워지는 것은 주님이 채우려고 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이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야 되는 것입니다. 채워놓고 꽉 쥐고 있으면 안돼요. 돈도 그래요. 내가 벌면 번대로 자꾸 하나님께 드리고 사용하면 자꾸 벌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놈을 잔뜩 쥐고 있으면 자꾸 쥐가 와서 밑에 구멍을 뚫어서 밑으로 자꾸 뽑아가 버리고 나중에 쥐고 있어서 가득한 줄 알고 보면 텅비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자꾸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비워 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자꾸 채우시는 것입니다. 빈잔을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습니다. 잔이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삶이 넘치게 되는 것은 여러분과 내가 정체성과 신분이 확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정체 불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신 누구요?” “몰라요” “어디서 왔어요?” “어머니 뱃속에서 왔지요” “어디를 가나요?” “공동묘지로 가지요” 정체불명입니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우리 잔이 넘치게 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누군지 확실히 알게 되는 정체가 확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 누구요?” 그러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고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나는 용서 받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여러분은 모두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된것입니다. 여러분 정체불명의 사람이 아닙니다. 용서받은 의인이 된것입니다.
“당신 누구요?” “나는 거룩함을 입고 성령께서 함께 계시는 사람입니다. 세상과 마귀를 벗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과 성령 충만을 입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갈라디아서 4장 6절에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정체불명이 아닙니다. “당신 누구요?” “성령이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보혜사가 되셔서 나를 품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당신 누구요?” “아! 나? 치료받은 사람입니다. 괴질도 안무섭습니다” 괴질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무서워 할까 싶어서 이제 이름을 바꿔서 ‘사스’라고 했는데 사스라고 하나 괴질이라고 하나 병은 병입니다. 괴질이 온 동남아 일대를 휩쓸고 세계를 휩쓸고 있잖아요. 그러나 우리의 정체성이 분명하면 괴질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정체불명이면 자신이 없지만 우리 정체가 확실하잖아요. 어떤 정체가 확실합니까?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도다. 저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도다. 야웨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니 저가 나를 새 사냥꾼을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라. 정체가 확실한데요. 그러므로 괴질이 오면 벌벌 떨지말고 “괴질아! 물러가라! 너와 나는 전혀 상관이 없다. 내 정체 불명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벌써 고침받은 사람이요 주님이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므로 너 같은 것 겁나지 않는다”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라 했는데 그 염병이 바로 괴질입니다. 아무리 정체불명으로 캄캄하게 다가와도 나는 정체가 분명한 하나님의 사람이므로 악을 대적하라 저희가 너희를 피하리라.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할때마다 “너희 괴질아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 물리쳐 괴질이 다가올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미리 물리쳐 버리면 되는데 어디 감히 하나님의 백성에게 다가옵니까? 정체가 확실한 사람은 이런 것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치료받은 사람인데 왜 병이 다가와요?
“또 당신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복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복받은 사람이므로 들에 나가면 들이 복을 받고 집에 들어오면 집이 복을 받고 떡반죽 그릇을 만지면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습니다. 나는 복받은 사람입니다”
왜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요 저주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복받은 사람입니다. 저주가 오면 “물러가라! 나는 너하고 상관이 없다. 나는 정체불명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복이 깃들은 사람이니까 저주가 우리집에 들어오느냐? 들어올 자격이 없지 않느냐? 내가 빈집이 되어 있으면 들어오거니와 나는 빈집이 아니다. 복이 꽉 들어찬 사람이다. 저주야 물러갈지어다” 여러분이 정체가 불명하면 벌벌 떨거니와 정체가 확실한데 왜 벌벌 떨어요?
“당신 정체가 누구요?” “나는 부활, 영생, 천국은 얻은 사람이요. 죽음이 다가와도 나는 내 정체가 확실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아요”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 떠날때는 혼자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와서 손잡고 가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내 부모도 같이 못가고 내 처자도 같이 못갑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동행하지 못하는 것 죽음의 길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께서 내가 와서 너희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정체가 확실한 사람은 두려워 할필요 없습니다. 정체 불명의 사람을 주님이 데려오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 정체가 확실하니까 주님이 데려 오시지요. 그러므로 내정체가 확실하기 때문에 내가 삶에 잔이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정체불명으로 있을 동안에는 온갖 잡귀들이 다 다가오는 것입니다. 빈집에 우환이 있지 않습니까? 빈집에는 쥐도 고양이도 개도 들개도 온갖것 다 들어와요. 집에 주인이 딱 들어 앉았으면 그런 것이 못들어 오지요. 정체 불명이면 온갖 것들이 다 들어오지만 정체가 확실한 사람은 자기가 누군지 알기 때문에 자기를 지킬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포대교구 김윤업 집사님의 간증을 보니까 친정 아버지가 무당이 굿하는 날짜를 잡아주는 일을 했습니다. 일치고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에요. 우상소굴 속에서 자라는 동안 늘 신경성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시집 직후 집한채 값이 되는 큰 돈을 사기당한 후에 화병이 들어 목뒤가 불이 타는 것같고 가슴이 뛰고 환청과 불면증으로 밥도 못먹게 되어 3년간 고통을 당했습니다. 집터가 나쁘다고 해서 네 번이나 이사를 갔고 굿을 해도 아무 소용도 없고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 전도하러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정체불명 아닙니까? 내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시달리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정체 불명이 전도를 받아서 예수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것입니다. 이웃에 사는 우리교회 집사님들이 교회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성전에 누워 있어도 도무지 설교가 귀에 들리지 않는데 어느날 제가 기도하고 난 다음 “오늘 이시간 온갖 귀신이 들린 30대 여인을 하나님이 고치십니다” 하시는 그 음성만 귀에 들리더랍니다. 그 즉시로 기력이 회복되어 일어나 앉고 두통과 온갖 병이 낫기 시작하여 6개월 만에 깨끗이 나아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집사님이 정체성을 확신한 뒤에 기도마다 기적의 연속입니다. 내가 누군지 알고 나니까 내 스스로의 권리를 찾을수가 있다 말입니다. 그래서 천식으로 고생하던 두 자녀가 기도한 뒤 한달내 낫고 남편도 월남전에 갔다온후 가슴뼈를 다쳐 돌아 눕지도 못하는 것을 기도받고 고침을 받고 주님을 믿게 되고 물질적 축복도 받고 온 가족이 감기한번 안걸릴 정도로 건강하게 생활하고 금요철야기도로 우상 섬기던 친정 부모님과 일곱남매 모두 예수 믿고 한명은 목사가 되었으며 사돈 8촌까지 다 구원받았다.
내가 누군지 알면 나의 권리를 주장하게 되므로 잔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지 모르면 내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지요. 내가 누군지 알면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니까 내가 잔이 넘치는 삶을 살수가 있지요.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만 확실한 것이 아니라 신분이 확실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우리 신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정체성만 확실한게 아니라 신분이 뚜렷합니다. “너희 신분이 뭐냐?” “나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다. 하나님이 너무 나를 좋아해서 만인중에 책해 주셔서 택함받은 사람이야. 나는 기름부음 받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왕같은 제사장이다. 왕은 다스리고 제사장은 하나님 섬기는데 내가 무슨 왕이냐? 죄를 다스리는 왕이요. 세상과 마귀를 다스리는 왕이요, 병을 다스리는 왕이요, 저주를 다스리는 왕이요, 죽음을 다스리는 왕이요. 나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감사드리고 물질 드리고 찬송 드리고 전도하는 제사장이다” 신분이 확실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거룩한 나라로 삼아서 임금되신 우리 주 예수님의 거룩한 나라다. 나는 미니 천국이다. 오늘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 미니 천국이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하나님이 피값으로 우리 사서 우리를 품에 앉고 계신다. 이러한 분명한 정체성과 신분을 알게 되면 잔이 넘치게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반드시 이 시간에 여러분의 정체성이 분명하고 여러분의 신분이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확실히 아십시오. 그러면 강하고 담대하여 어떠한 어두운 길도 걸어갈 수 있으며 어떠한 흑암의 세력도 내가 당당하게 물리치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되며 잔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목자 되신 예수님은 삶의 원수를 성장의 복의 기회로 삼아 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변화와 부활과 영광에 참여케 하시고 삶에 정체성과 확실한 신분을 주시므로 두려움 없이 당당하고 확신에 찬 삶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23편 5절 다같이 읽으십시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주께서 우리에게 확실한 신앙과 신앙고백을 통해서 원수를 밥상으로 만들어 주시고
우리에게 성령으로 기름부어서 우리를 높여 주시고 왕같은 제사장으로 만들어 주시고
우리에게 분명한 정체성과 신분을 알게 하시므로 잔이 넘치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목자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고
우리의 것으로 만들 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사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사랑하는 목자를 우리 가운데 계시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내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놀라운 목자 우리 주님 감사합니다. 이 목자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확실히 좌정하고 계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서론>
오늘 저는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제목으로 제 세 번째 말씀을 연속해서 전하겠습니다.
이라크 전쟁이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라크 및 이슬람 국가간에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 원치 않지만 늘크고 작은 원수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하셨으니 하물며 타인이야 어떠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섬기며 살고 예수님을 목자로 의지하고 살면 원수에 대한 문제를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23편 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본론>
1. 원수의 목전에서 밥상을 베푸시고
첫째로, 주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밥상을 베푸시겠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말씀은 원수가 오면 내게 주님이 밥상을 차려 주시겠다. 적은 원수가 오면 작은 밥상 차리고 큰 원수가 오면 큰 밥상 차린다. 원수가 전혀 없으면 굶어라 그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크고 작은 마음에 스트레스를 주는 원수들이 올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 것은 그러한 경험이 올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밥상을 차려 주신다.
여러분! 다윗이 어떻게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까? 그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이라는 원수를 만나서 골리앗 밥상의 밥을 먹고 난 다음에 그는 위대한 장군이 된것입니다.
사울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 군대의 골리앗 앞에 완전히 주눅이 들었습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크게 무서워 했고 모든 사람이 골리앗을 보고 심히 두려워서 도망치기에 바빴습니다. 마침 그때 다윗은 불과 17살 내지 18살 먹은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세의 여덟 번째 아들로서 전쟁터에 나간 세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가지고 안부를 살피러 갔을 때 골리앗이 말한 것을 듣고 온 사울과 이스라엘 군인들이 벌벌 떠는 것을 보고 마음속에 분개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이 할례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가?” 그는 굉장히 마음에 분개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서 9척 장신의 골리앗과 싸우겠다는 말을 했고 그말이 곧 사울왕에게 전해지니 사울왕이 다윗을 불렀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여러분 원수가 오면 원수 앞에서 하나님에 대한 강력한 신앙을 가지고 또 타협하지 않는 긍정적인 신앙고백을 하면 원수가 밥으로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군인들은 모두 다 원수 앞에서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벌벌 떨고 원수를 과대평가했기 때문에 그들은 원수에게 패배했으나 다윗은 원수를 보았을 때 그는 담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강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다윗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어마어마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체험적으로 알고 그가 곰과 사자도 쳐서 물리치고 죽였는데 하물며 이 블레셋 장군인 골리앗 쯤이야 문제가 없다고 골리앗을 내 손에 붙이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나님에 대한 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그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아무리 마음속에 자기가 강한 신앙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입으로 고백하지 아니하면 그 신앙은 잠자는 신앙에 불과합니다. 마음에 믿었으면 입으로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말했습니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신앙고백입니다.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자와 곰의 발톱에도 건져 주었는데 이 블레셋 사람 골리앗에게서도 나를 건져내어 주실것이라고 그는 강한 신앙과 입술의 고백을 했습니다. 그것을 듣고 사울이 감동해서 말하기를 “가라 야웨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다윗을 보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서 가니까 골리앗이 대장군이 나오는줄 알고 찾고 있다가 보니까 조그마한 17-18살 먹은 초립동이 오는 것을 보고 그는 분개했습니다. 골리앗이 말하기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 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다윗은 투구도 쓰지 않고 갑옷도 입지 않고 칼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목자의 지팡이 하나 집고 그의 목자의 도구에 물맷돌 다섯 개를 넣고 골리앗에게 나갔으니 골리앗이 보고서 기가 막혔습니다. 불과 17-18살 먹은 초립동이 군복도 입지 않고 무장도 하지 아니하고 지팡이 하나들고 자기 찾아오니 자기를 무시해도 유분수가 있지 뭐 저런게 다있냐? 나를 개로 알고 부지깽이 들고 찾아 오느냐? 그때 다윗은 또다시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강하고 담대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이것이 전쟁에 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제 전쟁보다 더 먼저 영적전쟁에 이겨야 되는데 영적인 전쟁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입술의 고백으로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벌써 제압하면 실제적으로 제압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싸움이 다 그렇습니다. 죄와 싸우는데 있어서도 세속과 싸우는데 있어서도 혹은 병과 혹은 저주와 혹은 가난과 싸우는데 있어서도 먼저 영적으로 내가 신앙이 확실하게 서있고 그 신앙고백을 해서 영적싸움에서 이겨야 현실적인 싸움에서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보고 말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하나님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그는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제는 그 신앙을 마음속에 있는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간다고 말하고 그 다음에는 그는 승리에 대한 확실한 신앙고백을 한것입니다. 그것이 벌써 영적으로 골리앗을 제켜 버린 것입니다.
그 다윗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입술의 강력한 고백에 이미 골리앗은 다윗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 물맷돌 가지고서 던져서 골리앗이 이마에 물맷돌을 맞고 쓰러지매 골리앗의 칼을 뽑아서 그 목을 베었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의 밥상이되고 밥이 되고 말은 것입니다. 원수의 목전앞에 내게 상을 베푸신다. 만일 골리앗이라는 원수가 없었으면 다윗은 절대로 이스라엘의 대장군이 안되었을 것입니다. 골리앗 덕분에 골리앗 밥상에서 골리앗 밥을 먹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대장군이 되고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원수가 손해나는 것 아닙니다. 사울과 이스라엘의 군대는 골리앗을 두려워 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잃어버리고 신앙고백도 없었기 때문에 골리앗에 쫓겼지만은 다윗은 그 원수가 자기가 앞으로 위대하게 출세하는 밥상이 된것입니다. 그것은 믿음과 신앙고백이 그렇게 만들어 준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법칙을 우리가 단단히 알아야 됩니다. 믿음의 법칙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강한 믿음과 고백이 있어야 됩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신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앙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고백입니다. 하나님 능력에 대한 믿음과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능력을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신앙고백하면 벌써 영적전쟁에 이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로 23절에도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담대한 신앙고백은 원수를 밥으로 원수를 만난 사건을 밥상으로 만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평소에 하나님의 전지전능, 무소부지하심과 그 위대한 기적을 우리가 늘 묵상하고 마음속에 확실히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건을 만나더라도 그 사건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고 두려워 하면 안돼요.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만군의 야웨, 하나님을 바라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믿고서 나가야 됩니다. 죄보다 크신 하나님, 마귀보다 크신 하나님, 병보다 크신 하나님, 실패보다 크신 하나님, 죽음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강하게 고백하면 내게 다가오는 모든 인간적인 원수, 환경적인 원수들이 밥상으로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에게 쫓기어서 밟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수가 밥상이 되어 위대한 삶을 가져오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목자는 원수의 목전에서 우리에게 밥상 차리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작은 원수도 큰 원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것은 이것을 밥으로 만들어 먹으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반야에 왔었을 때 열정탐꾼은 우리가 들어가서 가나안 땅을 점령하지 못한다. 그곳의 성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고 그곳에 사는 사람은 네피림의 후손 아낙자손 대장부라 우리 눈에 보기에도 우리는 메뚜기 같더라. 완전히 패배주의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니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그들의 보호자는 떠나갔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우리가 들어가서 점령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앙과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가나안의 모든 원수들은 우리 밥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열정탐꾼과 그 말을 들었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광야에서 다 죽었지만은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신앙고백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고백이란 어떠한 역경도 우리의 밥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우리의 목자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목자되신 예수님이 여러분과 다 같이 계시면서 여러분 마음속에 믿음과 신앙고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라. 이 산들은 명하여 바다에 던져라 하고 그것이 이룰 줄 믿고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 믿음과 신앙고백은 여러분 모든 환경을 밥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기름을 머리에 바르시니
둘째로, 성경에는 기름으로 내머리에 바르셨다.
기름으로 머리에 바르시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영광스럽게 해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기름을 발라서 왕으로 만들고 기름을 발라서 제사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기름이란 성령을 상징하는데 오늘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모두다 성령을 부어 주셔서 오늘 예수 믿는 사람은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뭐라고 말합니까? 우리를 다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기름발라서 왕을 만들고 제사장 만들 듯이 우리 모든 성도에게 성령이 임하시므로 우리가 왕같은 제사장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다스리는 자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자로써 왕같은 제사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원수를 만나면 밥으로 삼으시고 기름을 부어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골리앗 밥상에 밥만 먹었을뿐 아니라 주님이 기름을 부으셔서 대장군이요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만들어 준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지 않습니까? 원수들에게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23절에 보면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으나"
예수님은 저 팔레스타인의 한 구석에서 십자가에 처형 당했습니다.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주는 자 없이 역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 나온 하나의 혁명가였으나 실패하고 처형당했다. 그로써 그의 존재는 잊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으신지 50일만에 성령이 임하시자 성령께서 순식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사건이 우주적인 구세주,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써 높이게 된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사건은 성령이 오지 않았으면 그냥 한 팔레스타인의 구석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잊어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우주적인 구원사건으로 높여 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2절로 33절에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성령이 오셔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온 천하에 알게 되고 만민이 듣게 되고 구원의 위대한 사건이 된것입니다. 이것처럼 성령은 고난을 영광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부활의 영이요, 영광의 영으로 보혜사 즉, 돕는자가 되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다 성령으로 기름부인 자들이므로 왕같은 제사장들이 되어서 성령과 함께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가 좋을때만 함께 계신 것이 아니라 고난 받을때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더큰 영광을 가져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위대한 영광으로 변화된 것처럼 베드로전서 4장 14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성령이 계시면 고난이 영광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창조에도 보십시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 하시니라"
성령이 운행하시니까 흑암은 광명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추함은 아름다움으로 죽음은 생명으로 가난은 부요로 변화되고 아름다운 창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우리의 가정이 얼마나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지라도 성령이 와서 운행하시면 가난은 부요로 어두움은 빛으로 무질서는 질서로 죽음은 삶으로 변화시키는 역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와같이 우리 가운데 기름 부어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역사를 베풉니다. 우리의 목자되신 주님은 우리와 같이 계셔서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는자. 예수를 구주로 모실 때 성령을 부어 주시는 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 성령이 오셔서 우리를 중생 시키지 않습니까? 우리를 거듭나게 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옛사람은 청산해 버리고 새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새 생각, 새 말, 새 노래, 새 삶을 살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는 것은 성령이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생활에서 부활과 영광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령이 오시면 우리 죽을 몸도 살리는 것입니다. 죽은 몸을 살리는 것 아닙니다. 지금 우리 죽을몸이 아닙니까? 이 죽을몸도 주님 생기를 주어서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다. 성령이 오셔서 아침마다 새롭게 되고 저녁마다 새 생명을 부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마음도 건강하고 몸도 건강하고 생활도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주를 믿는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고 성령의 기름부음이 함께 있다는 것을 여러분 알아야 되고 이러므로 우리의 삶속에 항상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찬양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곁에 계신 분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시간에 여러분 혼자 외롭게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목자되신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름을 부어서 성령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계셔서 여러분과 나를 도와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는 마음속에 큰 평안과 기쁨을 가질수 있지 않겠습니까? 성령이 함께 계신다. 우리 예수 믿는 것에 가장 큰 역사는 주님이 우리에게 무슨 종교를 덮어 씌운것도 아니고 차디찬 율법을 주신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돕는자 어머니 같은 성령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어머니와 같습니다. 우리를 품에 품으시고 우리를 도와 주시고 연약함을 돌보아 주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창조, 우리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기적을 베푸시기 때문에 항상 기도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면 성령이 오늘 기름부음이 되어서 우리에게 운행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다윗을 들어서 만성천자로 만든 것은 오늘날 성령은 여러분과 나를 들어서 기름부음을 받게 해서 높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3. 내 잔이 넘치나이다
셋째로, 우리 목자는 우리 잔을 넘치게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요한복음 10장 9절로 10절에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잔이 넘치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한다. 그러므로 잔이 넘치는 삶을 주님이 주신다. 넘치는 기쁨, 넘치는 소망, 넘치는 사랑, 넘치는 의, 넘치는 평강, 넘치는 희락.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조금 주시는 것이 아니라 넘치게 주신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주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회개하고 우리를 비우는 것은 주님이 채워 주실 수 있도록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고 헌물을 드리고 우리의 삶에 빈공간을 만들면 그곳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 빈공간을 만들어야 돼요. 주라 그리하면 돌려 줄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서 안겨주리라. 저는 그것을 생각하면 언제나 친정 어머니 같은 생각이 납니다. 시집살이 고생하고 친정집에 왔다가 돌아갈때는 옛날에 어머니가 그 자기 딸에게 뭐라도 주기 위해서 옛날에는 다른 것 없지 않아요. 쌀이나 팥이나 콩이나 눌러서 흔들어서 넘치게해서 부어서 묶어 가져가라. 가져가라. 우리 주님께서는 목자가 되셔서 우리에게 잔이 넘치게 해주시려고 하는데 잔이 비어 있어야지 잔이 세상것으로 차있으면 채울수가 없지 않습니까? 빈공간을 만들어야 돼요. 잔이 흙이 꽉 들어차고 모래가 꽉들어 차고 돌맹이가 꽉 들어가 있으면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그러므로 탐욕을 다 부어 버리고 죄악을 다 부어 버리고 빈 공간을 만들면 은혜로 채워 주시고 십일조와 헌물로서 물질을 비워 버리면 물질로서 채워 주시고 사랑을 주어서 비워 버리면 사랑으로 채워 주시고 우리의 삶속에 우리는 항상 공간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워지는 것은 주님이 채우려고 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이 채우기 위해서는 비워야 되는 것입니다. 채워놓고 꽉 쥐고 있으면 안돼요. 돈도 그래요. 내가 벌면 번대로 자꾸 하나님께 드리고 사용하면 자꾸 벌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놈을 잔뜩 쥐고 있으면 자꾸 쥐가 와서 밑에 구멍을 뚫어서 밑으로 자꾸 뽑아가 버리고 나중에 쥐고 있어서 가득한 줄 알고 보면 텅비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자꾸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비워 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주님이 자꾸 채우시는 것입니다. 빈잔을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습니다. 잔이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삶이 넘치게 되는 것은 여러분과 내가 정체성과 신분이 확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정체 불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신 누구요?” “몰라요” “어디서 왔어요?” “어머니 뱃속에서 왔지요” “어디를 가나요?” “공동묘지로 가지요” 정체불명입니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우리 잔이 넘치게 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누군지 확실히 알게 되는 정체가 확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 누구요?” 그러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고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나는 용서 받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여러분은 모두다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된것입니다. 여러분 정체불명의 사람이 아닙니다. 용서받은 의인이 된것입니다.
“당신 누구요?” “나는 거룩함을 입고 성령께서 함께 계시는 사람입니다. 세상과 마귀를 벗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과 성령 충만을 입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갈라디아서 4장 6절에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정체불명이 아닙니다. “당신 누구요?” “성령이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보혜사가 되셔서 나를 품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당신 누구요?” “아! 나? 치료받은 사람입니다. 괴질도 안무섭습니다” 괴질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무서워 할까 싶어서 이제 이름을 바꿔서 ‘사스’라고 했는데 사스라고 하나 괴질이라고 하나 병은 병입니다. 괴질이 온 동남아 일대를 휩쓸고 세계를 휩쓸고 있잖아요. 그러나 우리의 정체성이 분명하면 괴질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정체불명이면 자신이 없지만 우리 정체가 확실하잖아요. 어떤 정체가 확실합니까?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도다. 저가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셨도다. 야웨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니 저가 나를 새 사냥꾼을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라. 정체가 확실한데요. 그러므로 괴질이 오면 벌벌 떨지말고 “괴질아! 물러가라! 너와 나는 전혀 상관이 없다. 내 정체 불명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벌써 고침받은 사람이요 주님이 나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므로 너 같은 것 겁나지 않는다”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라 했는데 그 염병이 바로 괴질입니다. 아무리 정체불명으로 캄캄하게 다가와도 나는 정체가 분명한 하나님의 사람이므로 악을 대적하라 저희가 너희를 피하리라.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할때마다 “너희 괴질아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 물리쳐 괴질이 다가올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미리 물리쳐 버리면 되는데 어디 감히 하나님의 백성에게 다가옵니까? 정체가 확실한 사람은 이런 것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치료받은 사람인데 왜 병이 다가와요?
“또 당신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복받은 사람입니다. 나는 복받은 사람이므로 들에 나가면 들이 복을 받고 집에 들어오면 집이 복을 받고 떡반죽 그릇을 만지면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습니다. 나는 복받은 사람입니다”
왜 갈라디아서 3장 13절로 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은 사람이요 저주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복받은 사람입니다. 저주가 오면 “물러가라! 나는 너하고 상관이 없다. 나는 정체불명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복이 깃들은 사람이니까 저주가 우리집에 들어오느냐? 들어올 자격이 없지 않느냐? 내가 빈집이 되어 있으면 들어오거니와 나는 빈집이 아니다. 복이 꽉 들어찬 사람이다. 저주야 물러갈지어다” 여러분이 정체가 불명하면 벌벌 떨거니와 정체가 확실한데 왜 벌벌 떨어요?
“당신 정체가 누구요?” “나는 부활, 영생, 천국은 얻은 사람이요. 죽음이 다가와도 나는 내 정체가 확실하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아요”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 떠날때는 혼자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와서 손잡고 가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내 부모도 같이 못가고 내 처자도 같이 못갑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동행하지 못하는 것 죽음의 길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께서 내가 와서 너희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정체가 확실한 사람은 두려워 할필요 없습니다. 정체 불명의 사람을 주님이 데려오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 정체가 확실하니까 주님이 데려 오시지요. 그러므로 내정체가 확실하기 때문에 내가 삶에 잔이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정체불명으로 있을 동안에는 온갖 잡귀들이 다 다가오는 것입니다. 빈집에 우환이 있지 않습니까? 빈집에는 쥐도 고양이도 개도 들개도 온갖것 다 들어와요. 집에 주인이 딱 들어 앉았으면 그런 것이 못들어 오지요. 정체 불명이면 온갖 것들이 다 들어오지만 정체가 확실한 사람은 자기가 누군지 알기 때문에 자기를 지킬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포대교구 김윤업 집사님의 간증을 보니까 친정 아버지가 무당이 굿하는 날짜를 잡아주는 일을 했습니다. 일치고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에요. 우상소굴 속에서 자라는 동안 늘 신경성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시집 직후 집한채 값이 되는 큰 돈을 사기당한 후에 화병이 들어 목뒤가 불이 타는 것같고 가슴이 뛰고 환청과 불면증으로 밥도 못먹게 되어 3년간 고통을 당했습니다. 집터가 나쁘다고 해서 네 번이나 이사를 갔고 굿을 해도 아무 소용도 없고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 전도하러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정체불명 아닙니까? 내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시달리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정체 불명이 전도를 받아서 예수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것입니다. 이웃에 사는 우리교회 집사님들이 교회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성전에 누워 있어도 도무지 설교가 귀에 들리지 않는데 어느날 제가 기도하고 난 다음 “오늘 이시간 온갖 귀신이 들린 30대 여인을 하나님이 고치십니다” 하시는 그 음성만 귀에 들리더랍니다. 그 즉시로 기력이 회복되어 일어나 앉고 두통과 온갖 병이 낫기 시작하여 6개월 만에 깨끗이 나아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집사님이 정체성을 확신한 뒤에 기도마다 기적의 연속입니다. 내가 누군지 알고 나니까 내 스스로의 권리를 찾을수가 있다 말입니다. 그래서 천식으로 고생하던 두 자녀가 기도한 뒤 한달내 낫고 남편도 월남전에 갔다온후 가슴뼈를 다쳐 돌아 눕지도 못하는 것을 기도받고 고침을 받고 주님을 믿게 되고 물질적 축복도 받고 온 가족이 감기한번 안걸릴 정도로 건강하게 생활하고 금요철야기도로 우상 섬기던 친정 부모님과 일곱남매 모두 예수 믿고 한명은 목사가 되었으며 사돈 8촌까지 다 구원받았다.
내가 누군지 알면 나의 권리를 주장하게 되므로 잔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지 모르면 내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지요. 내가 누군지 알면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니까 내가 잔이 넘치는 삶을 살수가 있지요.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만 확실한 것이 아니라 신분이 확실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우리 신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정체성만 확실한게 아니라 신분이 뚜렷합니다. “너희 신분이 뭐냐?” “나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다. 하나님이 너무 나를 좋아해서 만인중에 책해 주셔서 택함받은 사람이야. 나는 기름부음 받아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왕같은 제사장이다. 왕은 다스리고 제사장은 하나님 섬기는데 내가 무슨 왕이냐? 죄를 다스리는 왕이요. 세상과 마귀를 다스리는 왕이요, 병을 다스리는 왕이요, 저주를 다스리는 왕이요, 죽음을 다스리는 왕이요. 나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감사드리고 물질 드리고 찬송 드리고 전도하는 제사장이다” 신분이 확실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거룩한 나라로 삼아서 임금되신 우리 주 예수님의 거룩한 나라다. 나는 미니 천국이다. 오늘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 미니 천국이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하나님이 피값으로 우리 사서 우리를 품에 앉고 계신다. 이러한 분명한 정체성과 신분을 알게 되면 잔이 넘치게 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반드시 이 시간에 여러분의 정체성이 분명하고 여러분의 신분이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확실히 아십시오. 그러면 강하고 담대하여 어떠한 어두운 길도 걸어갈 수 있으며 어떠한 흑암의 세력도 내가 당당하게 물리치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되며 잔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목자 되신 예수님은 삶의 원수를 성장의 복의 기회로 삼아 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변화와 부활과 영광에 참여케 하시고 삶에 정체성과 확실한 신분을 주시므로 두려움 없이 당당하고 확신에 찬 삶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23편 5절 다같이 읽으십시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주께서 우리에게 확실한 신앙과 신앙고백을 통해서 원수를 밥상으로 만들어 주시고
우리에게 성령으로 기름부어서 우리를 높여 주시고 왕같은 제사장으로 만들어 주시고
우리에게 분명한 정체성과 신분을 알게 하시므로 잔이 넘치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 목자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고
우리의 것으로 만들 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사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사랑하는 목자를 우리 가운데 계시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내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놀라운 목자 우리 주님 감사합니다. 이 목자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확실히 좌정하고 계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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