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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웨는 나의 목자시니(Ⅳ)

시편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673 추천 수 0 2008.10.22 20: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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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23:6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3년 4월 27일 주일2부설교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서론>
「야웨는 나의 목자시니」 네 번째 강의를 여러분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한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부라도 상대를 정확하게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정확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되어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희미하게나마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 복음의 가장 위대한 사실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서 사람가운데 사시면서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과 교통하면서 영광을 나타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어떤 종교보다 위대한 점인 것입니다. 한번은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주님께서는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인자와 긍휼이 넘치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 시편 23편 마지막 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신 목자이신 것입니다.

<본론>
1. 선하시고 인자하신 목자 하나님
누가복음 10장 30절로 37절에 보면 한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를 만나 강도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게된 것을 버리고 간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되어서 피범벅이된 진흙위에 드러 누워서 도와줄 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 옵니다. 굉장한 기대를 가지고 “제사장이여 나를 도와달라”고 고함쳤지만 제사장은 그를 보고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고 꾸짖고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법을 가르치고 시행하는 직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은 법을 어긴자를 정죄하고 벌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제사장은 이 강도만난 사람을 율법의 눈으로 보고 부주의 함을 꾸짖고 정죄하고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상의 역할은 할 수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강도 만나 피투성이 된 이 사람은 절망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강도만나 죽게 되었는데 자기를 도와주지 아니하고 헐뜯고 꾸짖고 지나가니 얼마나 통탄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그 뒤에 총총 걸음으로 따라오는 레위인이 있었습니다. “레위인이여, 레위인이여 나를 도와달라”고 고함을 쳤습니다. 레위인은 잠시와서 그를 보고 종교의식을 집행하고는 떠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레위인은 성전에서 종교의식을 행하는 사람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죽은자에게 성수를 뿌리고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하고 종교적인 의식을 베풀어도 그 죽은자는 살아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강도만난 사람은 너무 절망에 차였습니다. 지금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종교의식이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한참만에 사마리아인 한 사람이 그리로 오게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3절로 34절에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 사마리아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지만 와서 불쌍히 여겼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율법의 안경을 쓰고 보면 모두다 허물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율법은 허물을 찾아 정죄하는 것이 그 사명이기 때문에 율법의 안경은 언제나 상대의 허물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비와 긍휼의 안경을 끼고 보면 모든 허물을 덮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떠한 사람도 남의 자식을 볼때는 허물을 발견해도 자기 자식을 볼때에는 좋은점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남의 자식을 볼때는 율법의 안경을 쓰고 보니까 허물을 보지만 자기 자식을 볼때는 자비의 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에 허다한 허물을 덮어 버리고 불쌍히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율법의 안경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처럼 꾸짖고 돌아가지 않았었습니다. 또한 레위인처럼 종교의식이나 집행하고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자비와 긍휼로서 이 사람을 보았습니다. 지금 당장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도움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응급처치를 했습니다.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고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준것입니다. 바로 이 사마리아인은 선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성경에 선한분이라고 스스로 고백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로 11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 스스로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주님은 우리를 돕고 치료하고 살리기 위해서 오신 것이지 우리의 결점을 지적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며 종교나 의식을 가르치기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니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한없으신 선하심과 인자하신 모습을 나타내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독생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몸을 찢고 피를 흘리며 우리를 위해서 고생하신 것을 바라보고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을 우리는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인들을 무한이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죄인들의 죄를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그 맑은 눈으로 우리 죄를 들여다 보시면 견딜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가 대낮같이 드러날 터이니 정죄감을 느끼고 심판을 당하고 우리는 좌절하고 말것입니다.

2. 십자가 상의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우리에게 용서와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의 눈으로 우리를 보시지 아니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서 사랑과 긍휼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용서를 바라보지 심판과 정죄를 바라보지 않으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로 7절에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비와 긍휼의 눈으로 보시기 때문에 손을 내밀어 우리를 건져 내시고 살리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으키사 하늘에 앉혀 주시는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양은 연약할 뿐 아니라 다른 동물과 달리 길을 잃으면 다시 되돌아 오는 귀소본능이 없기 때문에 목자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자기가 떠난 자리를 찾아오는데 양은 자기 떠난 자리를 찾아오지 못합니다. 성경엔 말하기를 “우리가 다 양같이 그릇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웨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5절에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양은 길을 잃습니다. 귀소본능이 없습니다. 집을 떠나면 집을 찾아와야 되는데 못찾아 옵니다. 우리 사람들도 하나님을 떠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스스로 찾아오지를 못합니다. 귀소본능이 없어서 멀리멀리 자꾸 죄악의 길로 들어서고 맙니다. 양은 목자가 찾아서 데리고 와야 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셔서 길잃어 버린 우리들을 찾아서 죄악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품으로 데리고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려 우리죄를 사하시고 죄악에 빠진 우리를 친히 찾아 오셔서 건져 내어 집으로 데리고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선하신 주님이신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세상과 마귀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세상과 마귀에게 팔려서 종이되어 세상과 마귀가 시키는데로 부정부패속에 살아왔습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2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
우리는 예수 안에서 놀라운 해방의 기쁨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해방이라는 것은 자기 힘으로 해방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와서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내가 강한자에게 잡혀 있을 때 더 강한자가 와서 나를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포로가 되어서 죄의 종노릇 하는데 강한자 우리 주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밧줄을 끌러 버리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해방을 주었으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얼마나 놀라운 은총을 받았는지 형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거룩함 성령을 주셔서 거룩하게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거룩하게 살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모든 사람들은 극도록 부패해져서 재기 불능의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보혈로 우리를 씻어주실 뿐 아니라 성령을 주셔서 우리에게 거룩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거룩한 성령이 우리속에 계시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본심으로 이제는 더러운 것을 피하고 거룩함을 쫓아 행할 수 있는 힘도 주시고 소원도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에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진리의 영 성령은 거룩한 영인 것입니다. 거룩한 영이 우리속에 오시면 우리가 거룩하게 살수 있습니다. 거룩한 영이 없을때는 우리의 힘으로 절대로 거룩하게 살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성령의 능력이 우리를 붙잡아 주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소원할뿐 아니라 거룩하게 살수 있는 힘과 능력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선하신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마귀에게 눌려 병들고 고통 당하는 심신을 치료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 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말하셨습니다.
천국복음과 함께 병을 고치고 약한자를 치료해준 주님은 좋으신 주님이신 것입니다. 자비하심과 선하심이 넘치는 주님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 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세상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동작대교구 최윤옥 성도님께서 간증하신 것을 읽어보면 친정아버지가 치질로 고생했는데 하혈이 심해서 급히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직장암 말기로 희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큰 병원으로 옮겨 정밀검사를 받아본 결과에 직장뿐 아니라 방광까지 암덩어리가 꽉들어 찼는데 달리 손쓸 방도가 없다고 병원에서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친을 살리는 길은 오직 기도 이외는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구장, 셀구역 식구들과 성도님들이 합심기도하고 심방와서 예배를 꼬박 드렸는데 사흘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 병원에 가서 조사하니까 암투성이었던 방광에서 암이 깨끗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흘만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의사와 간호사들도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수가 있는가? 이런 것은 처음 보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놀라고 감탄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 셀식구들도 서로 얼싸안고 성령께서 고쳐주신 것을 눈물로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남아있는 직장암은 덩어리가 너무 크고 여러곳에 붙어 있어 위험하니 5주간 방사선 치료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통원치료 후에 집에 퇴원한 날부터 그 부모님은 기도처에 나가 새벽기도를 드렸고 성도들도 5주간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작년 12월 11일 수요안수를 받고 마음속에 낳았다는 확신이 들어오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방사선 치료 날짜를 앞둔 어느날 부친이 꿈을 꾸었는데 꿈에 커다란 것이 몸에서 쑥 빠져 나가는 듯 그날 모친 꿈에도 암덩어리를 비닐에 담아서 들고있는 모습을 보았고 그 딸의 꿈에는 하나님께서 ‘네 아버지가 낳았다’ 그런꿈을 꾸었고 며느리의 꿈에는 올케가 와서 “아버님이 낳았으니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 준비하라” 그꿈을 꾸었습니다. 가족 식구가 다 똑같은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자 부친이 일주일간 하루에 4,5번 검은 핏덩어리를 아래로 쏟아낸 후 치질이 깨끗이 나았고 암세포도 줄기 시작했습니다. 부친은 모든 제사를 없애고 추도 예배로 대신하고 주님만 믿고 섬길 것을 다짐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해보니 온몸에 퍼졌던 직장암 세포는 거의다 사라졌지만 암이 있던 자리를 떼어 내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여 보통 4시간 걸리는 수술을 2시간 만에 쉽게 제하고 다시 조직 검사한 결과 직장암은 깨끗이 사라지고 없어졌습니다. 이 기적으로 친정 아버지는 물론 일가친척 모두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주께 부르짖어 기도한즉 오히려 병도 낫고 마귀에게 속한 수많은 일가 친척들을 예수께로 인도하여 구원을 받게 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가면 언제나 우리에게 플러스의 보탬이 되지 마이너스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선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복을 주시지 화를 주시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보십시오. 우리 때문에 주님이 가난해 졌다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요, 천산의 짐승과 모든 은과 금을 다 가지고 계신 분인데 무엇 때문에 걸식하며 노심초사하고 풍찬노숙을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성경에 분명히 말하기를 너희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의 주님이 아니십니까? 자비와 긍휼 선하신 주님이 아니십니까?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기 위해서 주님이 가난을 자원해서 짊어지고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천국을 주십니다.
베드로후서 3장 12절로 13절에
(벧후3:12-13)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이 험한 세상이 불에 타서 없어지겠다. 여러분 말세에는 처처에 온역과 지진과 기근이 있으리 했는데 요사이 여러분 괴질 ‘사스’를 보십시오. 우리가 병명균도 찾지 못하는 괴질입니다. 그리고 치사율이 너무나 높습니다. 제일 처음에는 5%라고 말하더니 13%라고 말하더니 지금은 중국에서는 38%의 치사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어떤 병도 이렇게 강한 치사율을 가진적이 없습니다. 이게 말세의 병 아닙니까? 이름도 모릅니다. 괴질입니다. 이 세상은 마지막을 향해서 줄달음질 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주님의 심판의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지만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의에 거하는 바 새하늘과 새땅이 나타난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우리를 이 새하늘과 새땅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5절로 17절에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이 얼마나 좋습니까? 주님의 보좌 앞에서 주님이 친히 목자가 되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생명수 강가에서 생명수를 마시게 하시고 우리 스스로의 눈에 눈물을 다 씻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하심을 우리에게 나타내주신 목자이신 것입니다.

3. 야웨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하심
그뿐 아니라 우리를 야웨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다 죽어야 됩니다. 사람들은 모두다 죽음을 두려워 하고 죽음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말속에는 언제나 죽는다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배고파 죽겠네. 배불러 죽겠네. 추워 죽겠네. 더워 죽겠네. 무서워 죽겠네. 임마~ 죽여 버린다.” 항상 죽음이란 것이 인간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안죽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사람이 한번나서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수 있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의 죽음을 다 끌어 안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무덤에 들어간지 사흘만에 죽음을 다 청산해 버리고 부활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죽음에 빚을지지 않았습니다. 안믿는 사람은 죽음에 빚을 졌기 때문에 죽음의 빚쟁이에게 끌려서 사망으로 들어가지만 우리는 죽음의 빚을 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빚을 청산해 버렸기 때문에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이 오더라도 우리는 죽음을 능가하고 영광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죽음은 우리가 잠시 지나는 그림자요 터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림자가 잠시 지나가도 곧장 햇빛이 비춰오고 터널은 잠시 지나가면 광명한 천지로 나가는 것처럼 죽음은 잠시 우리가 경험하는 그림자요 터널에 불과한 것은 예수께서 사망을 정복하고 우리에게 부활과 생명을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지상 이스라엘 국가와 장차 지상에 이룩할 천년왕국에 관하여 주로 말씀하시고 사후 영혼에 관해서나 천국에 관해서는 거의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사후 영혼의 문제와 천상 천국에 관한 계시는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하여서 분명히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혼불멸과 천국에 관해서 거듭거듭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이 세상에 아무리 시험, 환난, 핍박이 다가와도 몸은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못죽인다는 것입니다. 영혼은 하나님께 소속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몸도 죽이고 영혼도 죽일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주님께서 분명히 영혼은 몸을 떠났어도 영혼이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절로 17절에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가르침에 보면 죽음이란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보다 먼저 잠자는 자들도 주님과 함께 있다가 주님 오시는 날에 함께 데리고 와서 부활의 몸을 얻을 것이고 우리는 이땅에서 주님 강림하심을 맞이하게 되면 부활의 몸을 얻을 것이라고 주님 말씀하셨으니 죽음이란 아무런 힘도 없다는 것을 이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시면 이 죽음이 사스와 같이 맹렬한 힘을 발휘했으나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죽음은 이제 아무 힘도 없이 우리에게 와서 히죽히죽 웃다가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제는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위대한 생명의 능력이 속에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저는 항상 우리 노동수 장로님께서 천당가는 그 모습을 마음속에 잊을수가 없습니다. 우리 노동수 장로님이 천국가게 되셨다고 예배를 보와 달라고 연락이 와서 가니까 장로님이 이미 말도 못하시고 눈도 못뜨시고 그런데 내가 “조목사 왔습니다. 내 말이 귀에 들리거든 손가락으로 내 손바닥을 좀 눌러 주십시오.” 하니까 꼭 눌러 주시더라구요. 그래 찬송을 부르니까 이 분이 말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이제는 임종에 처했는데도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춥니다. 죽을때까지 박자를 맞춰요. 얼굴에 하나님의 광명이 충만하고 평안이 넘쳤습니다.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고 끝까지 박자를 맞추다가 숨이 끈어지니까 박자도 끊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운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주님께서 데리러 오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목자니까요. 양은 귀소본능이 없으므로 집으로 찾아가지 못합니다. 이러므로 우리 목자가 우리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질 때 목자가와서 우리 손잡고 데리고 가시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로 21절에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기는 것이 뭡니까?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믿음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자는 이긴자인 것입니다. 믿는자는 이긴자요, 이긴자는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게 해주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시면 ‘아멘’하십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긴자인 것입니다. 여러분 불신앙을 이긴 자인 것입니다. 마귀를 이긴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처럼 여러분도 믿음으로 이겼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좌에 함께 앉게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더 영광스러운 보좌로 나아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선생도 늘 영혼불멸과 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장막집이란 천막집입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날라가고 찢어지고 없어지는 장막집입니다. 이 장막집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않은 영혼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을 지냈던 아담스씨가 나이 늙어서 자기 고향에서 하루는 지팡이를 짚고 산책을 하는데 한 사람을 만나서 “아이고~ 아담스 대통령 평안하십니까?” “아담스는 평안하지만 그 집이 말이 아닙니다.” “집이 말이 아니다뇨?” “기왓장이 날라가고 벽이 허물어지고 기둥이 흔들려서 바쳐놓고 있습니다.” “아이고~ 대통령까지 지내신 분이 그렇게 가난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 안되지요. 우리 모금을 해서라도 집을 새로 지어 드려야죠.” 씽긋 웃으시면서 “정말 지어주시겠어요? 보세요. 기왓장이 다 날라갔습니다.” 그러더니 옷을 찢으면서 “벽이 허물어져서 뼈다귀만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지팡이를 가르키면서 “이 기둥이 흔들려서 지팡이로 받쳐 놓아야 돼요. 아담스는 까닥없지만 아담스 집은 다 낡았습니다. 이제 어느날 이 집은 허물어질 것이요. 그러면 나는 이사를 갑니다. 그런데 내가 겁날것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에게 영원히 있을 집을 예비해 놓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이집이 무너지더라도 안심하고 갈수가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5장 8절로 10절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니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약하고 추하고 더러운 몸으로 영원히 살 것은 아닙니다. 부활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로 54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 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이 말씀이 바로 여러분과 나의 미래의 신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장차 어떻게 될것인가를 이 성경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썩을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겠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추한 것이 영광스러운 것을 육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우리 다 주님앞에 환호성을 부르면서 얼싸안고 기뻐뛰며 춤출날이 다가오게 될 것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선생은 이 삼층천에 갔다와서 이 사실을 보고 난 다음에는 늘 마음속에 그리워하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떠한 사람들은 소똥밭에 굴러도 세상에 사는 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울선생은 늘 천국 천성을 바라보고 그곳에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로 23절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찐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주의 사업 때문에 할수없이 머물러 있지만 차라리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것이 더 좋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 이와같은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요한이 기록한 천국의 모습은 더 아름답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콩나물 장사를 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고 늦게 주무시며 일하시어 세 아들을 다 대학까지 공부시켜서 출세를 시켰습니다. 아들들이 다 출세해서 잘살게 되고 돈을 벌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역시 그 다 늙어빠진 집에서 콩나물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들들이 의논을 해서 어머니께 왔습니다. “어머니 그러지 말고 우리 아들네집 어느 어느 집에도 한집에 오시던지 안오시면 우리가 집을 하나 좋은 것 지어 드리겠습니다. 주문만 하세요. 지어드릴께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정말 지어 주겠니?” “지어 드리죠.” “그러면 내가 주문한다. 나의 집을 너희들이 짓되 내 정원은 전부 금으로 깔아라. 그리고 대리석으로 열두기둥을 세우고 열두 기둥 사이사이에 문을 다 다는데 진주 한짝으로 달아라. 그리고 내 안방에서부터 생물강물이 흘러 넘치게 하고 생명나무가 거기에 서게 하라.” 아들들이 “어머니 농담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진담을 말씀하십시오.” “너 이런집 지어 못주겠단 말이지?” “어머니 이 세상에 그런집 지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사를 안가는 거다. 나는 왜냐하면 그집을 지어주신 분이 계신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하늘에 영광의 집을 지으셨는데 황금으로 길을 닦아 놓으시고 거기에 들어가는 성은 열두 진주문을 통해서 들어간다. 그리고 보좌가 있고 생수강이 흐른다. 그집이 준비되어 있는데 내가 거기갈 나이가 다된 사람이 무슨 세상에 집을 짓겠느냐?” 그렇게 말해서 아들들이 전부다 어머니 앞에서 놀라고 그 어머니 전도를 받아 들이고 무릎을 꿇어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간증을 읽어 본적이 있습니다. 요한이 바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로 7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 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여기에도 이기는 자가 들어간다 했습니다. 우리의 이김은 이것이니 곧 믿음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자는 주님이 예비한 이 영광스러운 곳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에 못가봤다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사도요한을 통해서 대표적으로 이미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우리가 들어갈 곳을 신문기자가 상황을 보고 하듯이 우리에게 보고해 놓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절로 5절에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 로부터 나서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미래의 초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마음에 희망과 꿈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의 모든 삶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수밖에 없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달은 금번달보다 영원한 미래는 현재보다 영원히 좋아질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결론>
시편 23편의 결론은 우리가 평생토록 선하심과 인자하신 목자 예수님과 함께 살다가 죽음이 오면 저 건너편에 예비된 아버지의 집 천국에 들어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것이 여러분과 내가 오늘 살아가는 형편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고아와 같이 버려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목자되신 예수님이 오셔서 잃어 버린 우리를 찾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몸찢고 피흘려서 피값으로 마귀와 죄악의 소굴에 빠진 우리를 건져내고 찾아 주셨고 이 땅에서 성령을 보내사 같이 하여 주셨고 육신의 장막집을 떠날때는 우리를 데리고 아버지 집에 가도록 인도해 주시는 우리 목자가 되신 것입니다. 이 목자께서 오늘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고 함께 계시므로 우리가 성령 안에서 예수를 믿고 아버지 품에 안겨서 승리의 삶을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에게 만일 목자가 없다면 우리는 다시 떠나온 에덴을 찾아오지 못하고
영원히 마귀의 소굴에서 죄악의 포로가 되어 살다가 멸망당하고 말것입니다.
양은 집을 찾아오는 귀소본능이 없는것처럼 우리는 다 그릇행하여 각기 제길로 가버리고
하나님께로 찾아오지 못합니다.
우리를 도로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 목자되신 예수님이 하늘 보좌 버리시고
이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를 찾아준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님 아니고는 우리가 아버지를 찾을수가 없고 아버지 품에 안길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버지를 찾고 아버지 품에 안기고
아버지의 상에서 먹을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다시는 목자를 떠나지 말게 도와 주시옵시고 항상 목자의 인도를 받게 도와 주시옵시고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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