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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과거

잠언 권진관............... 조회 수 1786 추천 수 0 2008.04.02 09:36:29
.........
성경본문 : 잠5:15-18 
설교자 : 권진관 형제 
참고 : 새길교회 
"네 우물의 물을 마셔라. 네 샘에서 솟는 물을 마셔라. 어찌하여 네 샘을 바깥으로 흘려 보내고 그 물줄기를 거리로 흘려 보내느냐? 그 물은 너 혼자 마셔라. 다른 사람과 함께 마시지 말아라. 네 샘터가 복된 줄 알아라."
과거에 있었던 희망의 기억과 복된 기억을 말씀드리기 전에 과거에 대한 망각, 즉 과거를 잊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한 많은 일들을 기억하고 그 한을 풀어 한과 원을 극복합니다. 이것을 해원상생이라고 합니다. 해원하여, 즉 원을 풀고 용서하여 함께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남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서로의 생명을 북돋아 주는 것이 해원상생입니다. 해원상생을 위한 망각은 좋은 것입니다. 과거에 입은 상처를 씻어 버리고, 그것을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것은 복된 것입니다. 그것을 용서하고 극복하지 않고, 계속 원한 속에 있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망각은 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의 하시모토 총리의 발언에 대해서 쓴 조정래씨의 글을 보면 역사적 과거에 대한 망각의 위험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총리가 우리 나라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을 할 때는 머리를 몇 번이고 조아리면서 과거사에 대해 사과했는데, 그 4일 후에 그는 자신의 사과는 외교상의 예의였을 뿐 정신대에 대한 자기네 장관의 발언에 대한 사과는 아니었다고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했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과거사에 대한 망언이 일본의 장관들 입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정신대는 없었고, 침략도 없었으며, 일본의 지배 때문에 한국이 도움을 받았고, 오히려 한국인들이 원하는 일을 해주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는 일본 지배세력의 약점은, 그들은 철저히 과거를 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라는 위험합니다. 독일은 2차대전 이후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고, 전범들을 처단했습니다. 불란서에서는 나치를 도왔던 배반자들에 대해 수천 명을 법으로 처단했다고 합니다. 과거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는 자세입니다. 과거는 잊는 것이 아니라 반추하여 반성하는 것입니다.

독일 신 나치주의자들의 경우가 있습니다. 과거사를 잊으려고 하는 세력들로 이들을 신 나치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의 전후세대들 중에 전쟁은 자신들이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하는 세대가 있는데 이것은 과거를 망각하려고 하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과거는 묻지 마세요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현철씨가 대표적인 경우겠지만, 다른 차원에서 보면,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오직 현재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비단 젊은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한보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온 사람들은 모조리 오늘과 내일만이 있을 뿐이지 과거에 대해서는 일체 잊으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청문회 의원들 중 야당의원들, 그리고 여당의 극히 일부의 의원들은 이러한 과거를 들춰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만, 또 다른 의원들은 증언대에 선 사람들과 동조하여 과거를 덮어두고 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 우리 사회에 만연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횡재해서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들 돈과 명예와 권력을 향해 달려갑니다. 수단방법을 안 가리는 경쟁주의, 물질만능주의, 권력지상주의가 생깁니다. 이것이 현대인들의 삶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역사, 과거를 무시하며, 물질적인 안락의 현재만을 구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를 덮어버리고, 과거의 잘못을 망각하는 민족은 잘못 가게 되어 있다는 역사적 진실을 우리 나라는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일을 망각하는 개인은 마찬가지로 잘못될 수 있습니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말라는 이 말은 사연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부르는 가사이겠지요.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일까요? 아마 과거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요즘 한참 문제되고 있는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는 정말 과거를 묻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과거에 후회되는 일, 좋지 않았던 일, 죄스러운 일들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과거가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가 부담스럽고 기억하기 싫다고 해서 과거를 폐기처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너의 과거가 복된 줄을 알라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의 지나온 자취와 족적, 즉 너의 과거 속에 복이 있으므로 그것을 헛되이 버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본문은 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생각을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겠는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물은 너 혼자 마셔라. 다른 사람과 함께 마시지 말아라. 네 샘터가 복된 줄 알아라"라고 하고 있는데 여기서 '샘터'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살펴봅시다. 오늘 읽은 잠언서 5장 전체의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 샘터는 분명히 조강지처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강지처가 복된 줄 알라는 것이고, 그 복을 남들하고 나누는 것이 아니라, 너만 가지라는 것이며, 다른 여자들에게 눈을 돌리지 말라는 당부의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샘터와 샘물을 우리의 시간 중에서 특히 과거를 상징한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독일어에서는 모든 명사는 성을 가집니다. 즉 남성, 여성, 중성으로 나뉩니다. 그래서 여성명사, 남성명사, 중성명사가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를 나타내는 시간(Zeit), 미래(Zukunft), 현재(Gegenwart), 과거(Vergangenheit)와 같은 말은 모두 여성명사입니다. 또 과거에 대한 기억이라고 하는 memoria란 라틴어도 여성명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 그 중에서 과거와 조강지처를 은유적으로 동류의 것으로 보면서 오늘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과거와 과거에 대한 기억, 즉 메모리아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조강지처와 같이 나와 함께 해온 과거는 나를 위해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조강지처"란 우리가 몹시 가난하고 천할 때에 고생을 함께 겪은 아내를 일컫는 말입니다. 남자에게는 조강지처일 것이지만, 여자에게는 조강지남 쯤 되는 것이겠지요. 조강지처처럼 과거는 우리가 몹시 어려웠을 때부터 우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워서 버리려고 해도 버려서는 안될 것이 조강지처와 같은 과거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예전의 것으로서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만, 기억이라는 것을 통해서 현재화되며 나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메시지는 그 과거가 우리와 함께 할 뿐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복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과거가 우리에게 복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 험한 과거를 생각하면 지긋지긋한데 그것을 '어떻게' 기억할 때, 그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복이 된다는 말인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과거는 일정한 관점, 즉 믿음의 관점, 신앙의 관점에서 기억해 나갈 때 그 과거는 우리들에게 힘을 솟게 하는 우리의 영혼을 위한 샘물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이러한 신앙과 믿음의 관점 없이 그냥 떠올리고 반추한다면 과거는 복된 샘물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험악했던 과거의 기억이 우리의 약한 영혼을 해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약한 영혼과 그 영혼이 깃들여 있는 정신을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힘든 과거가 있는 사람들이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많이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를 신앙의 관점에서 기억하고 새롭게 이해한다면, 즉 믿음으로 과거를 보살피고, 사랑하고 반추한다면, 과거는 조강지처처럼 우리들에게 복의 근원이 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저는 저희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아이들로부터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왔고, 누구로부터 사랑을 받아왔고, 그래서 그 사랑의 영향으로 나는 어떤 꿈과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그 뿐 아니라 어려운 일은 어떠한 것들이었고, 그 어려운 일을 경험하면서 어떠한 것을 소망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들을 아버지인 나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부모들은 그 아이가 이젠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아이가 자신의 희망과 자신의 꿈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자아의 성장이요 자아의 성숙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삶의 과정을 해석할 수 있고 그것을 이야기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은 바로 성숙해져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저는 더 나아가서 우리 아이가 자신의 지나온 경험을 이야기하되 히브리서 11장 1절에 나오는 믿음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의 관점에서 자신의 지나온 경험들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아이들로부터 바라고 싶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첫째로 바라는 것들과, 둘째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바라는 것들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나의 경험 속에 존재해 있으나,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을 말합니다. 바라는 것들은 그것이 비록 과거에 생긴 것이지만, 과거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므로 미래에 속한 것입니다. 또 보이지 않는 것은 과거에 생긴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순수히 새로운 것을 말하며, 그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부터 우리에게 도래할 것입니다. 그것은 시간의 충만이 이루어질 때에 보여지는 종말론적인 희망을 말합니다. 따라서 믿음은 그것이 미래에 대한 소망을 향하여 있지만,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차원에서는 과거와 관련되고, 과거에 뿌리박은 미래의 희망을 지칭합니다. 그 뿐 아니라, 믿음은 과거에 상상할 수 없었던 전연 새로운 차원의 현실, 즉 보이지 않는 것을 확증해 주는 차원도 있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차원에서 믿음은 우리의 과거를 미래의 희망으로 부활시켜줍니다. 죽은 과거를 산 과거로 만들어 줍니다. 믿음은 과거의 샘터에서 생수를 퍼 올리는 양동이와 같아서, 그 생수를 마시는 우리들에게 복된 희망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을 믿는 그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약속하신 새로운 삶, 새로운 역사, 그리고 새롭게 펼쳐질 구원의 삶의 가능성의 빛 아래에서 과거를 기억할 때에, 그 과거는 우리에게 복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희망은 공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의'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과거의 경험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게 하는 신앙만이 과거를 복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과거는 그것이 아무리 잊어버리고 싶은 것일지라도, 또 그것이 아무리 가난한 과거였을지라도, 그것이 아무리 고난에 가득한 것이었으며 고통스러운 것이었을지라도 그것을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의 빛에서 들여다 볼 때 그것은 우리들을 위한 복과 희망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 전연 새로운 것을 증거해 줍니다. 동시에 믿음은 우리가 과거에 그렇게 바라고 원했던 것들을 실현해 주는 실상이 된다는 것을 히브리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전의 과거는 우리의 앞으로의 믿음의 삶 자체를 완전히 규정해 놓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 즉 이제까지 없었던 전연 새로운 것을 증거 해주고 보장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과거에 우리가 그렇게 바라고 원했던 것을 실현시켜 주는 동력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과거를 볼 때, 우리의 과거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과거에 가졌던 꿈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꿈이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면, 그 꿈은 분명 믿음의 힘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믿음은 동시에 우리가 꿈꾸어 오던 모든 것을 뛰어넘는 전연 새로운 것을 증거 해줍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우리의 과거를 복된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우리가 꿈꾸던 것들의 실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우리에게 은혜요 구원이 됩니다. 믿음의 힘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뛰어 넘어 보이지 않는 것, 우리가 꿈꾸어 보지도 못했던 전연 새로운 현실과 희망을 이루어 주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믿음의 신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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