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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4:2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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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3년 9월 14일 주일2부설교 |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마음’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마음은 우리 삶의 근본입니다. 마음을 잘 먹으면 매사에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잘못 먹으면 큰 불행이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평안한 마음은 잔잔한 호수 같지만 어지러운 마음은 풍랑이는 바다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나쁜 마음은 불행의 근본이다
첫째로, 잘못먹은 마음은 우리 모든 삶의 불행의 근본이 됩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악한 마음을 품고 큰 불행을 당할때가 있습니다. 악한 마음은 마귀가 그 마음을 점령한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 마태복음 마태복음 12장 45절에 보면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한다고 말했습니다. 속에 있는 악한 마귀를 쫓아내고난 다음에 마음을 정리 정돈하고 지키지 못하면 악한 마귀 일곱이 들어와서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악하게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든 고통의 근원이 바로 악입니다. 악은 자기를 괴롭히고 이웃을 괴롭힙니다. 마태복음 15장 19절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이런 것이 다 마음에서 나와서 우리를 괴롭히고 이웃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9절에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라고 쓰여저 있습니다.
우리에게 큰 환난과 곤고가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에 악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 히틀러의 악행을 보십시오. 그 마음속에 악을 품으니까 온 구라파를 초토화하고 유태인 6백만명을 학살하고 자기동족 5천만명을 전사하게 만든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악행도 보면 온 동북, 동남아를 시산혈해로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민족에게 불행과 고통과 좌절과 절망을 가져온 것입니다. 악의 열매 아닙니까? 공산주의자들의 악행은 우리가 너무나 잘압니다. 소련 공산주의로부터 시작해서 전세계로 퍼져 나간 공산주의 운동이 그 혁명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희생재물로 드리게 했습니까? 악이 가져온 결과인 것입니다. 악에는 결코 평안이 있을수가 없습니다.
이사야 48장 22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 57장 20절로 21절에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악인에게는 마음의 평화가 없습니다. 부귀, 영화, 공명을 다 가진다고 해도 평화가 없으면 행복은 절대로 없습니다. 행복의 가장 근원이 마음에 평화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과 화가 머리위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3장 11절에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악을 행해도 그 보응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보응은 천천히 와도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했을 당시 세계 역사학자 회의가 있었는데 그때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인 토인비 박사가 일본 역사학자와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던중 토인비 박사가 “일본이 대동화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얻는 이익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일본 역사학자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동화 전쟁을 통해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사람 모두가 더 잘살게 될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토인비 박사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의 침략적인 악행은 패망의 씨앗을 심은 것으로 그 열매로 인해 일본 제국주의는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 이후 일본은 대동화 전쟁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재산을 약탈했으며 세계 평화를 유린했습니다. 그리고 토인비 박사의 말처럼 온갖 악행을 일삼았던 일본 제국주의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구르는 것 같아도 그 수레바퀴를 막을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자기가 행한대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악인은 신속히 망합니다.
시편 37편 1절로 2절에 "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마음이 죄에 잡히면 그것이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남몰래 죄를 짓고도 입을 쓱 닥고 지나면 행복할줄 알아도 죄는 그 근원이 불행을 가져옵니다. 죄는 누룩과 같습니다. 마음을 부패 시키는 것입니다. 부패한 가운데 있으면서 행복할 사람이 있겠어요? 양심의 심판으로 고통과 갈등을 입게 됩니다. 죄를 감추면 그것이 끊임없이 우리 양심에 심판을 가져옵니다.
시편 38장 2절로 5절에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보십시오. 죄를 가슴에 품고 있을때 이와같은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수양대군은 왕이 되기 위해 죄없는 여섯명의 충신과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인 잔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왕위에 오르자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움이 떠나지 않았으며 밤마다 꿈자리가 사나워 재대로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파고다 공원 자리에 절을 짓고 불공을 드리기도 했지만 마음을 평안해지지 않았습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밤마다 단종의 모(母)가 수양대군의 꿈에 나타나서 “네가 내 아들을 죽였지. 나도 복수하겠다.” 고 했는데 며칠후 실제로 그 아들은 이상한 병에 걸려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또 꿈에 나타나서 “이 더러운 놈아!”하고서 수양대군의 등에 침을 탁 밷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 등창이 나서 고생고생 하다가 결국 왕위에 오른지 겨우 10년 만에 수양대군은 죽고 말았습니다. 죄를 범하면 양심의 심판으로 고통과 갈등을 겪게 되며 결국 패망하게 됩니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강제로 삼촌이 왕위를 찬탈했지만 그 마음은 말할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으로 몸부림치고 정신적, 육체적 갈등과 질병에 걸려 몸부림 치다가 그는 일찍 죽게 된것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마음속에 있으면 하나님을 믿든 안믿든 양심의 꾸짖음을 항상 받게 되고 두려움이 마음속에 가득하게 됩니다. 무슨일이 생겨도 “내가 죄값을 받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그로인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사라집니다.
예레미야 5장 25절에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우리에게 오는 좋은 것을 죄가 다 막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은 위궤양 치료제인데 그중 한 종류는 1986년 시판하여 10년간 40조원이 팔렸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마음의 스트레스가 심하고 죄책과 평안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은 위궤양, 고혈압, 신경안정제, 항우울제같은 약들인데 이 모든 것은 모두다 마음에 평안과 연관된 것입니다. 죄가 마음에 평안을 빼앗아 가고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우울하게 만들고 수많은 약물로 치료하려고 해도 치료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은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자기를 과대 평가하여 높아진 마음은 참으로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비하하므로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이 오면 어느 곳에 있으나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잠언 13장 10절에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고 말했습니다. 교만하면 늘 다툽니다. 북한에 공산주의가 들어왔을때 민주주의를 주장하다가 잡혀서 순교한 조만식 장로님은 참으로 겸손한 어른이었습니다. 조만식 장로님은 오산학교에서 교장으로 있을때 주기철 목사님이 그 제자로 배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기철 목사님은 후에 목사가 되어서 시무한 교회에 조만식 교장 선생님이 그 제자의 교회에 장로로 시무했었습니다. 어느 주일 조 장로님이 급한 일로 찾아온 손님과 이야기 하다가 예배 시간에 조금 늦게 성전에 들어오셨습니다. 주 목사님은 설교를 하다가 조만식 장로님이 늦게 들어온 것을 보고 손을 딱 가르키면서 “조 장로님! 오늘은 의자에 앉지 마시고 그 문에 서서 예배 보시오. 장로가 되어서 주일 예배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의자에 앉을 자격이 없습니다.” 라고 호령하듯 꾸짖었습니다. 조 장로님은 자기 제자요, 후배 목사의 명령 그대로 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나중에 주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는 “서 계시는 조장로님 기도해 주십시오.” 하니 그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중요시 한 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이것을 본 교우들은 큰 감동을 받고 눈물 바다가 되었습니다. 장로님의 신앙이 위대한 것은, 하나님 섬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비록 자기 학교에 가르친 제자가 목사가 되었으나 하나님의 종으로써 말할 때 거기에 순복하고 겸비한 훌륭한 장로님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거만하게 행하므로 욕을 먹습니다. 거만하게 행하는 사람하고는 진실한 대화나 화목이 있을수 없으니까 불행하게 됩니다.
잠언 11장 2절에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욕이 따라와요 교만하면 욕이 따라와요. 교만은 하나님의 미움을 받습니다. 잠언 16장 5절에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슴을 쓸어 내리고 어제도 TV 뉴스를 보면서 고통스러웠습니다. 9월 13일 영호남을 강타한 태풍 ‘매미’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요, 심판인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고 구미열강이 3백년 걸려서 이룩한 산업화, 공업화를 불과 50년 만에 이룰수 있는 기적을 하나님은 우리 한국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 감사함을 잊어 버리고 지역간에 서로 물고 찢고 싸우고 노사가 갈등하고 완강하고 타협할줄 모르고 세대간에 갈등하고 사상적 갈등이 있고 정치적 갈등이 있고 온 나라가 갈등으로 부글부글 끓습니다. 화목과 단합이 어느곳에도 볼수가 없습니다. 그 가운데 교회대로 무력하게 앉아서 화합과 단결을 주도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괴씸하게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태풍 ‘매미’로 영호남을 때린 것입니다. 여러분 관측소 관측사상 유래없는 강풍이 불어서 그 어마어마한 기중기들이 폭삭 주저 앉은 것 보십시오. 거대한 배가 육지로 올라와 있습니다. 여러분 만일 태풍 매미호가 서울까지 때렸더라면 한국은 주저 앉았을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자비롭게 보셔서 가장 갈등이 심한 영호남, 가장 노사가 많이 싸우는 영호남 지역을 하나님이 때리신 것입니다. 매를 맞은 사람은 회개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매를 맞고도 회개하지 못하면 또다시 매를 자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 온 국민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복하고 갈등에서 화해와 단합으로 돌아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 길인 길입니다. 교만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미움을 받은 것을 우리가 알고 회개해야 됩니다. 교만은 패망의 첫길입니다.
잠언 16장 18절 19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그 다음 부정적인 마음을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어떠한 사람은 늘 부정적입니다. 만사를 부정적으로만 보고 생각하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마이너스 시각으로 봅니다. 플러스 시각으로 보지 않습니다. 미국의 신발 회사에서 두 사람의 신발 판매원을 아프리카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으니 아프리카에서 전보가 각각 그 회사로 왔는데 한 사람의 전보는 ‘아프리카에 신발을 팔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들이 맨발을 벗고 살아서 신발을 팔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전보가 왔는데 다른 신발 사원은 전보를 본사에 보내기를 ‘신발을 있는데로 보내 주십시오. 여기는 전부 신발을 안신었기 때문에 무한한 시장이 있습니다.’ 똑같이 파견한 두 사람이 똑같은 아프리카에 가서 보았지만 그들의 시각이 마이너스 시각으로 보았느냐 플러스 시각으로 보았냐에 따라서 한 사람은 신발을 팔아 먹을수가 없다고 말했는데 다른 사람은 무한한 시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통에 물이 반 남았는데 한 사람 들여다 보고 “허 물통에 물이 반 텅 비었네.” 다른 사람은 “와~ 물통에 물이 아직 반 가득 있구나!” 똑같은 물통의 현상을 볼때 한 사람은 마이너스 시각으로 보고 다른 사람은 플러스 시각으로 본 것입니다. 인생을 항상 마이너스 시각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이너스 발상은 부정적이고 분노를 가져오며 스트레스를 가져옵니다.
아드레날린이 몸에 온갖 질병을 가져온다고 합니다. 노화를 촉진하고 반대로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하면 뇌 세포가 활성화 되어 건강하게 하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오래 산다고 오늘날 의학자들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소망을 저버리게 됩니다. 빚은 보지 않고 어두움만 보니까 그렇습니다. 밝은 곳은 찾지 아니하고 그림자만 찾습니다. 아무리 태양이 쨍쨍 쬐이는 날에도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얼마든지 그림자를 찾을수가 있지요. 지붕밑이나 나무밑이나 다리밑이나 그림자가 언제든지 있는 것입니다. 마이너스 사고방식을 가지고 보면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 생활에 언제나 원망, 불평, 탄식을 할 조건이 가득합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하나님이 돕는자로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 플러스 우리의 시각을 가지면 전부 플러스 시각으로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이너스 시각을 가지고 좌절하며 뒤로 물러가면 안됩니다. 부정적인 시각과 생각이 우리 자신을 파멸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7절로 39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믿음을 가지고 봐야 돼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마음은 영적, 심적, 육체적 생활에 죽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철도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냉동차가 역에 정차하고 있는 동안 차 내부를 청소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냉동차 문을 열어 보니 그 안에 싸늘한 시체 한구가 있었습니다. 안에서 청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누군가 냉동차 문을 잠궈 버렸습니다. 이 일로 회사가 발칵 뒤집혀 졌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조사하는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사실들이 발견 되었습니다. 냉동차는 청소를 하기 위해서 스위치를 뽑아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내부 온도가 얼어 죽을 정도는 아니었고 또한 산소도 충분해서 질식해 죽을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사람은 자기가 갇혔다는 것을 안순간 “아~ 냉동차 안에 갇혔으니 이제 얼어 죽겠구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 잡히게 되었습니다. 실상은 냉동차의 스위치가 뽑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머리 속에는 아직 냉동차에 들어 앉아 있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의 몸은 점점 얼어갔고 맥박은 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죽을만한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으로 인해 실제로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충분히 온도도 있었고 산소도 있었는데 자기 생각에 냉동차 안에 들어 앉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얼어 죽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스스로의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 인생을 냉동차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냉동차가 되고 가정이 냉동차가 되고 사업차가 냉동차가 되고 인간관계가 싸늘한 얼음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그렇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죽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따뜻한 온기가 없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불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2. 마음을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한다
둘째,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으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삶의 환경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오직 마음이 변화되면 삶이 변화됩니다. 아무리 사람을 변화시켜 보려고 환경을 변화시켜 놓아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마음이 변해야 변화되지요. 고약하고 불효한 자식을 변화시켜 보려고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환경에 갖다 주고 좋은 음식을 먹여도 그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면 그래도 역시 불효하고 고약한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회개하는 마음이 있어야 새로워 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회개를 하지 아니하면 새로워 질수가 없어요. 언제나 자기 타당화해서 자기가 옳다고 변명하고 전부 내탓이 아니라 네 탓이다. 부모 탓이다. 형제 탓이다. 이웃 탓이다. 나라 탓이다. 남의 탓만 하고 완악한 마음을 가지면 절대로 마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변화되려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깨어져서 내 탓으로 생각하고 무릎을 꿀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을 가져야지 정말 내 마음만 꽉 완악하게 지키면 어떻게 마음이 변화될 수 있습니까? 마음이 깨어져야 돼요.
골로새서 3장 1절로 10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이와같은 변화가 어떻게 일어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므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항상 예수께서 날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을 생각하고 예수님과 나는 하나 되어 죽고 부활한 것을 마음속에 받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변화된 나의 모습을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새생명 가운데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예수를 모시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이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했는데 예수 십자가를 우리가 끌어 안고 바라볼때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는 용서받고 하나님이 의로움을 주시고 영광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기쁨과 행복을 주지 않았습니까? 이것을 믿고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나는 이렇게 변화된 사람이 되었다.
말라기 2장 5절에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고 말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나는 죄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 영광을 얻었다. 기쁨과 행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이 생각을 바꿔 먹어야 됩니다. 생각을 바꿔 먹어야 됩니다. 거룩함과 깨끗함과 성령 충만한 마음으로 바꿔 먹어야 돼요.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임하셔서 우리를 성전 삼고 계시고 성령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깨끗하게 했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마음에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치료와 건강의 생각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받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치료의 마음을 받아 들여야 마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십자가에서 주님이 행복과 형통을 주셨으니 우리 마음이 축복과 형통의 생각을 받아 들이고 저주와 낭패와 절망의 마음을 벗어 버리고 축복과 형통의 마음으로 변화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우리 마음속에 영생천국 소망으로 가득히 채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3절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항상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영생 천국을 바라보는 마음에 변화를 가져야 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언제나 품어야 됩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베드로전서 1장 22절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됩니다. 미움의 마음이 안 다가오는 것 아닙니다. 다가와도 자꾸 제켜 버리고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했으니 내 마음에 변화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받아 들이므로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근거가 없이 어떻게 변화됩니까? 솥에 물을 붓고 불을 때야 물이 끓지 않습니까? 물을 붓지 않고 불을 때어도 끓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생수를 마음속에 받아 들여야 성령의 불로써 변화되는 것입니다.
잠언 10장 12절에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미워하면 자꾸 남의 결점을 파헤치니까 다투게 됩니다. 사랑은 자꾸 허물을 덮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저렇게 맥없이 늘어져 있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허물을 몰라서 그러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인데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머리털보다 더 많은 죄를 다 알고 계신데도 주님이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그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몸을 찢고 피흘려 늘어져 있습니다 . 주님께서는 미움으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고 사랑으로 보아서 모든 허물을 당신의 피로써 다 덮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은혜를 생각하고 우리는 모두다 크고 작은 죄인이니 서로 용서하는 것을 배우고 열심히 이런 마음을 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그랬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죄를 덮고, 아내는 남편의 죄를 덮고,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의 허물을 덮어야 됩니다. 우리가 화목 할려고 하면 서로서로 덮어줘야 되지 벗기면 안되는 것입니다. 달라 들어서 자꾸 벗기면 상대편도 벗길 것 아닙니까? 그러면 상처 투성이가 됩니다. 자꾸 벗은 사람을 덮어줘야 합니다. 덮어주고 그렇게 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가 변화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야 됩니다.
3.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이 마음을 무엇보다도 간수를 해야 됩니다. 지켜야 됩니다. 우리 재물도 지키고, 건강도 지키는데 사람들이 자기 마음은 그냥 노출시켜 놓았습니다. 마음은 길거리에 던져 놓고 마음을 지키지 않습니다. 마음은 우리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마음을돌보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잠언 15장 13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고 말했습니다.
연합뉴스 2002년 7월 30일자에 보니까 마음에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오래 산다고 보도된 것을 보았습니다. 예일 연구팀은 50세이상 오하이오 주민 660명을 대상으로 23년 간에 걸쳐 조사한 연구 결과에 나이를 먹어도 마음을 긍정적으로 지키는 것이 혈압이나 콜레스톨 수치를 낮추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에 비해 긍정적인 마음을 품는 사람은 7.6년을 더 살았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품으면 약 8년을 더 산다는 얘기입니다. 또 다른 발표에는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평균수명이 79살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오래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명을 통하여 죄와 악이 마음에 못들어오게 항상 주의 계명을 들여다 봐야 됩니다. 자기 얼굴을 단장하는 사람이 거울 안들여다 보고 몸을 어떻게 단장합니까? 마음을 단장 안하면 마음의 거울인 십계명을 늘 들여다 보고 마음을 단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1절로 22절에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계명의 거울을 항상 마음에 비춰 보고 우리 마음을 다스려야 되고 다독 거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죄를 지으면 회개함으로 마음을 씻어야 됩니다. 우리가 몸이 늘 더러워지면 늘 목욕하지 않습니까? 더러운 옷은 빨래를 해야 하듯이 자꾸 씻어야 됩니다.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회개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마음에 가슴을 치고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그렇게 하는 사람하고 가까이 계시고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회개하는 것으로 마음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
또 말씀으로 마음에 생명을 공급해야 됩니다. 마음이 늘 연약해 지는데 내 마음이 늘 넘어진다고 했는데 그것은 말씀으로 강하게 해야 안넘어집니다. 말씀을 먹어야 됩니다.
시편 19편 8절에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히는 것은 말씀을 듣고 읽고 연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으니 “믿음 약하다는 말” 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안읽으니까 약해집니다. 말씀을 읽고 들으면 믿음이 강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기도로써 마음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어떠한 위대한 믿음의 용사라도 낙심하게 됩니다.
시편 28편 6절로 7절에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때 너무나 핍박이 많고 어려워서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방문을 닫아 놓고 두문불출하고 꼼짝하지 않고 방에 들어 앉았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하루는 상복을 입고 방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땅을 치고 울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놀라서 “아니 여보 왠일입니까? 누가 세상을 떴습니까?” 그러자 부인이 하는말이, “아이구~ 하나님이 세상을 떳어요. 하나님이 죽으셨어요.” 그 부인이 그렇게 웁니다. 그러니까 루터가 “그런 망발을 말합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을 떳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부인이 정색을 하고 “그렇잖으면 왜 하나님의 종인 당신이 이렇게 낙심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당신이 두문불출하고 기도도 안하고 낙심해 있는 것보니 당신의 하나님이 죽었으니까 내가 장례식을 치러야지요.” 거기에 마르틴 루터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크게 회개하고 루터가 그때부터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힘을 얻어 그 마음을 강하게 해서 종교개혁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늘 의지해야 됩니다.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놓지 않고 성령님을 하늘의 도우미로써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고 영원히 우리에게 거하시는 것이 성령인 것입니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 영국의 귀족이 영주에게 트럭을 한대 선사했는데 트럭을 선물로 받은 영주는 몹시 기뻐했습니다. 얼마후 귀족이 영주가 사는곳을 방문하고 깜짝 놀랬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주가 황소 4마리를 트럭에 걸어서 트럭위에 턱 타고 운전대를 잡고 황소가 뻘뻘 탐을 흘리면서 끌고 다닙니다. 그래서 영국 신사가 말했습니다. “영주님! 이 트럭은 황소가 끌고 다니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엔진을 걸면 황소 수십 마리를 끌고 다닐수 있는 힘이 있으니 어디 좀 내려 오시오. 내가 보여 줄테니까.” 그리고 스위치를 넣어서 엔진을 거니까 부르릉 부르릉 하는데 황소 수십마리를 묶어서 끌어도 끌려 옵니다. 영주가 기뻐하고 “세상에 이렇게 놀라운 수레는 처음봤다.” 우스운 일 같지만 여러분 하나님이 놀라운 신앙의 엔진인 성령을 주셨는데 우리는 신앙생활을 수레 끌 듯이 끌어갑니다. 나의 힘으로 땀을 뻘뻘 흘르면서 “주여, 예수 믿기 힘드네요. 이 세상이 너무 살기 힘듭니다. 기도도 힘들고, 전도도 힘들고, 말씀 읽는 것도 힘들고, 신앙생활도 힘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신앙의 수레를 끌고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 너희 속에 있는 성령의 엔진을 걸어라. 성령의 엔진을 걸어라.” 내가 신앙생활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 죄많은 세상에 이 혼탁하고 마귀가 들끊는 세상에 하나님이 우리 힘으로 예수 믿으라고 부른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신앙생활 할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너무나 잘 알고게시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않고 아버지께 고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겠다고 한것입니다. 성령이 눈에 안보이지만 바람처럼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매시매시마다 인정하고 얘기 하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의 마음을 점령하시면 여러분이 능히 이 세상을 이기고 남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희안에 계신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다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만 빈센트 필 박사는 마음의 생각을 바꾸면 자기 세계도 바꿀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로마의 시인 버지는 사람이 무엇인가 할수 있는 것은 그가 할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철학자 엘모스는 모든 사람의 열쇠는 그 마음에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로마의 황제 마크사 아우렐리우스는 사람의 일생은 자기 마음의 생각 그대로 된다고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행복, 평화, 기쁨, 영광등이 다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에는 오직 하나님의 보좌만 있어야 합니다. 자아나 마귀나 세상이 들어와서 마음을 점령하면 그때부터 악이 점령하고 죄가 점령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점령하고 무수한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 먹은 마음을 제키고 마음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롭게 하고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귀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짐승에게는 이런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 되고 하나님도 이 마음을 통해서 역사하고
마귀도 이 마음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잘못된 마음은 우리를 파멸시킵니다.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과 구속의 은총으로 변화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열심히 지키는 우리들이 되어서
마음에서 생명이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마음’ 이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마음은 우리 삶의 근본입니다. 마음을 잘 먹으면 매사에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잘못 먹으면 큰 불행이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평안한 마음은 잔잔한 호수 같지만 어지러운 마음은 풍랑이는 바다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나쁜 마음은 불행의 근본이다
첫째로, 잘못먹은 마음은 우리 모든 삶의 불행의 근본이 됩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악한 마음을 품고 큰 불행을 당할때가 있습니다. 악한 마음은 마귀가 그 마음을 점령한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 마태복음 마태복음 12장 45절에 보면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한다고 말했습니다. 속에 있는 악한 마귀를 쫓아내고난 다음에 마음을 정리 정돈하고 지키지 못하면 악한 마귀 일곱이 들어와서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악하게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든 고통의 근원이 바로 악입니다. 악은 자기를 괴롭히고 이웃을 괴롭힙니다. 마태복음 15장 19절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이런 것이 다 마음에서 나와서 우리를 괴롭히고 이웃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9절에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라고 쓰여저 있습니다.
우리에게 큰 환난과 곤고가 다가오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에 악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 히틀러의 악행을 보십시오. 그 마음속에 악을 품으니까 온 구라파를 초토화하고 유태인 6백만명을 학살하고 자기동족 5천만명을 전사하게 만든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 악행도 보면 온 동북, 동남아를 시산혈해로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민족에게 불행과 고통과 좌절과 절망을 가져온 것입니다. 악의 열매 아닙니까? 공산주의자들의 악행은 우리가 너무나 잘압니다. 소련 공산주의로부터 시작해서 전세계로 퍼져 나간 공산주의 운동이 그 혁명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희생재물로 드리게 했습니까? 악이 가져온 결과인 것입니다. 악에는 결코 평안이 있을수가 없습니다.
이사야 48장 22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 57장 20절로 21절에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악인에게는 마음의 평화가 없습니다. 부귀, 영화, 공명을 다 가진다고 해도 평화가 없으면 행복은 절대로 없습니다. 행복의 가장 근원이 마음에 평화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과 화가 머리위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3장 11절에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악을 행해도 그 보응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보응은 천천히 와도 반드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했을 당시 세계 역사학자 회의가 있었는데 그때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인 토인비 박사가 일본 역사학자와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던중 토인비 박사가 “일본이 대동화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얻는 이익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일본 역사학자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동화 전쟁을 통해 일본뿐 아니라 아시아 사람 모두가 더 잘살게 될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토인비 박사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의 침략적인 악행은 패망의 씨앗을 심은 것으로 그 열매로 인해 일본 제국주의는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 이후 일본은 대동화 전쟁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재산을 약탈했으며 세계 평화를 유린했습니다. 그리고 토인비 박사의 말처럼 온갖 악행을 일삼았던 일본 제국주의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구르는 것 같아도 그 수레바퀴를 막을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자기가 행한대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악인은 신속히 망합니다.
시편 37편 1절로 2절에 "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마음이 죄에 잡히면 그것이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남몰래 죄를 짓고도 입을 쓱 닥고 지나면 행복할줄 알아도 죄는 그 근원이 불행을 가져옵니다. 죄는 누룩과 같습니다. 마음을 부패 시키는 것입니다. 부패한 가운데 있으면서 행복할 사람이 있겠어요? 양심의 심판으로 고통과 갈등을 입게 됩니다. 죄를 감추면 그것이 끊임없이 우리 양심에 심판을 가져옵니다.
시편 38장 2절로 5절에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보십시오. 죄를 가슴에 품고 있을때 이와같은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수양대군은 왕이 되기 위해 죄없는 여섯명의 충신과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인 잔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왕위에 오르자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움이 떠나지 않았으며 밤마다 꿈자리가 사나워 재대로 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파고다 공원 자리에 절을 짓고 불공을 드리기도 했지만 마음을 평안해지지 않았습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밤마다 단종의 모(母)가 수양대군의 꿈에 나타나서 “네가 내 아들을 죽였지. 나도 복수하겠다.” 고 했는데 며칠후 실제로 그 아들은 이상한 병에 걸려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또 꿈에 나타나서 “이 더러운 놈아!”하고서 수양대군의 등에 침을 탁 밷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 등창이 나서 고생고생 하다가 결국 왕위에 오른지 겨우 10년 만에 수양대군은 죽고 말았습니다. 죄를 범하면 양심의 심판으로 고통과 갈등을 겪게 되며 결국 패망하게 됩니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강제로 삼촌이 왕위를 찬탈했지만 그 마음은 말할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으로 몸부림치고 정신적, 육체적 갈등과 질병에 걸려 몸부림 치다가 그는 일찍 죽게 된것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마음속에 있으면 하나님을 믿든 안믿든 양심의 꾸짖음을 항상 받게 되고 두려움이 마음속에 가득하게 됩니다. 무슨일이 생겨도 “내가 죄값을 받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그로인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사라집니다.
예레미야 5장 25절에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우리에게 오는 좋은 것을 죄가 다 막아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은 위궤양 치료제인데 그중 한 종류는 1986년 시판하여 10년간 40조원이 팔렸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마음의 스트레스가 심하고 죄책과 평안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은 위궤양, 고혈압, 신경안정제, 항우울제같은 약들인데 이 모든 것은 모두다 마음에 평안과 연관된 것입니다. 죄가 마음에 평안을 빼앗아 가고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우울하게 만들고 수많은 약물로 치료하려고 해도 치료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은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자기를 과대 평가하여 높아진 마음은 참으로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비하하므로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이 오면 어느 곳에 있으나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잠언 13장 10절에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고 말했습니다. 교만하면 늘 다툽니다. 북한에 공산주의가 들어왔을때 민주주의를 주장하다가 잡혀서 순교한 조만식 장로님은 참으로 겸손한 어른이었습니다. 조만식 장로님은 오산학교에서 교장으로 있을때 주기철 목사님이 그 제자로 배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기철 목사님은 후에 목사가 되어서 시무한 교회에 조만식 교장 선생님이 그 제자의 교회에 장로로 시무했었습니다. 어느 주일 조 장로님이 급한 일로 찾아온 손님과 이야기 하다가 예배 시간에 조금 늦게 성전에 들어오셨습니다. 주 목사님은 설교를 하다가 조만식 장로님이 늦게 들어온 것을 보고 손을 딱 가르키면서 “조 장로님! 오늘은 의자에 앉지 마시고 그 문에 서서 예배 보시오. 장로가 되어서 주일 예배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의자에 앉을 자격이 없습니다.” 라고 호령하듯 꾸짖었습니다. 조 장로님은 자기 제자요, 후배 목사의 명령 그대로 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나중에 주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는 “서 계시는 조장로님 기도해 주십시오.” 하니 그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중요시 한 것을 용서해 주옵소서.” 이것을 본 교우들은 큰 감동을 받고 눈물 바다가 되었습니다. 장로님의 신앙이 위대한 것은, 하나님 섬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비록 자기 학교에 가르친 제자가 목사가 되었으나 하나님의 종으로써 말할 때 거기에 순복하고 겸비한 훌륭한 장로님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거만하게 행하므로 욕을 먹습니다. 거만하게 행하는 사람하고는 진실한 대화나 화목이 있을수 없으니까 불행하게 됩니다.
잠언 11장 2절에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욕이 따라와요 교만하면 욕이 따라와요. 교만은 하나님의 미움을 받습니다. 잠언 16장 5절에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슴을 쓸어 내리고 어제도 TV 뉴스를 보면서 고통스러웠습니다. 9월 13일 영호남을 강타한 태풍 ‘매미’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요, 심판인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고 구미열강이 3백년 걸려서 이룩한 산업화, 공업화를 불과 50년 만에 이룰수 있는 기적을 하나님은 우리 한국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 감사함을 잊어 버리고 지역간에 서로 물고 찢고 싸우고 노사가 갈등하고 완강하고 타협할줄 모르고 세대간에 갈등하고 사상적 갈등이 있고 정치적 갈등이 있고 온 나라가 갈등으로 부글부글 끓습니다. 화목과 단합이 어느곳에도 볼수가 없습니다. 그 가운데 교회대로 무력하게 앉아서 화합과 단결을 주도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괴씸하게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태풍 ‘매미’로 영호남을 때린 것입니다. 여러분 관측소 관측사상 유래없는 강풍이 불어서 그 어마어마한 기중기들이 폭삭 주저 앉은 것 보십시오. 거대한 배가 육지로 올라와 있습니다. 여러분 만일 태풍 매미호가 서울까지 때렸더라면 한국은 주저 앉았을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자비롭게 보셔서 가장 갈등이 심한 영호남, 가장 노사가 많이 싸우는 영호남 지역을 하나님이 때리신 것입니다. 매를 맞은 사람은 회개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매를 맞고도 회개하지 못하면 또다시 매를 자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 온 국민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복하고 갈등에서 화해와 단합으로 돌아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 길인 길입니다. 교만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미움을 받은 것을 우리가 알고 회개해야 됩니다. 교만은 패망의 첫길입니다.
잠언 16장 18절 19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그 다음 부정적인 마음을 불행의 원인이 됩니다. 어떠한 사람은 늘 부정적입니다. 만사를 부정적으로만 보고 생각하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마이너스 시각으로 봅니다. 플러스 시각으로 보지 않습니다. 미국의 신발 회사에서 두 사람의 신발 판매원을 아프리카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으니 아프리카에서 전보가 각각 그 회사로 왔는데 한 사람의 전보는 ‘아프리카에 신발을 팔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모든 사람들이 맨발을 벗고 살아서 신발을 팔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전보가 왔는데 다른 신발 사원은 전보를 본사에 보내기를 ‘신발을 있는데로 보내 주십시오. 여기는 전부 신발을 안신었기 때문에 무한한 시장이 있습니다.’ 똑같이 파견한 두 사람이 똑같은 아프리카에 가서 보았지만 그들의 시각이 마이너스 시각으로 보았느냐 플러스 시각으로 보았냐에 따라서 한 사람은 신발을 팔아 먹을수가 없다고 말했는데 다른 사람은 무한한 시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통에 물이 반 남았는데 한 사람 들여다 보고 “허 물통에 물이 반 텅 비었네.” 다른 사람은 “와~ 물통에 물이 아직 반 가득 있구나!” 똑같은 물통의 현상을 볼때 한 사람은 마이너스 시각으로 보고 다른 사람은 플러스 시각으로 본 것입니다. 인생을 항상 마이너스 시각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이너스 발상은 부정적이고 분노를 가져오며 스트레스를 가져옵니다.
아드레날린이 몸에 온갖 질병을 가져온다고 합니다. 노화를 촉진하고 반대로 항상 긍정적인 사고를 하면 뇌 세포가 활성화 되어 건강하게 하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오래 산다고 오늘날 의학자들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소망을 저버리게 됩니다. 빚은 보지 않고 어두움만 보니까 그렇습니다. 밝은 곳은 찾지 아니하고 그림자만 찾습니다. 아무리 태양이 쨍쨍 쬐이는 날에도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얼마든지 그림자를 찾을수가 있지요. 지붕밑이나 나무밑이나 다리밑이나 그림자가 언제든지 있는 것입니다. 마이너스 사고방식을 가지고 보면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 생활에 언제나 원망, 불평, 탄식을 할 조건이 가득합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로 6절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하나님이 돕는자로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 플러스 우리의 시각을 가지면 전부 플러스 시각으로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이너스 시각을 가지고 좌절하며 뒤로 물러가면 안됩니다. 부정적인 시각과 생각이 우리 자신을 파멸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7절로 39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믿음을 가지고 봐야 돼요.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마음은 영적, 심적, 육체적 생활에 죽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철도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냉동차가 역에 정차하고 있는 동안 차 내부를 청소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냉동차 문을 열어 보니 그 안에 싸늘한 시체 한구가 있었습니다. 안에서 청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누군가 냉동차 문을 잠궈 버렸습니다. 이 일로 회사가 발칵 뒤집혀 졌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조사하는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사실들이 발견 되었습니다. 냉동차는 청소를 하기 위해서 스위치를 뽑아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내부 온도가 얼어 죽을 정도는 아니었고 또한 산소도 충분해서 질식해 죽을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사람은 자기가 갇혔다는 것을 안순간 “아~ 냉동차 안에 갇혔으니 이제 얼어 죽겠구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 잡히게 되었습니다. 실상은 냉동차의 스위치가 뽑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머리 속에는 아직 냉동차에 들어 앉아 있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의 몸은 점점 얼어갔고 맥박은 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죽을만한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으로 인해 실제로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충분히 온도도 있었고 산소도 있었는데 자기 생각에 냉동차 안에 들어 앉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얼어 죽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스스로의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 인생을 냉동차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냉동차가 되고 가정이 냉동차가 되고 사업차가 냉동차가 되고 인간관계가 싸늘한 얼음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그렇게 된것입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죽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따뜻한 온기가 없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불행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2. 마음을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한다
둘째,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으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삶의 환경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오직 마음이 변화되면 삶이 변화됩니다. 아무리 사람을 변화시켜 보려고 환경을 변화시켜 놓아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마음이 변해야 변화되지요. 고약하고 불효한 자식을 변화시켜 보려고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환경에 갖다 주고 좋은 음식을 먹여도 그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면 그래도 역시 불효하고 고약한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회개하는 마음이 있어야 새로워 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회개를 하지 아니하면 새로워 질수가 없어요. 언제나 자기 타당화해서 자기가 옳다고 변명하고 전부 내탓이 아니라 네 탓이다. 부모 탓이다. 형제 탓이다. 이웃 탓이다. 나라 탓이다. 남의 탓만 하고 완악한 마음을 가지면 절대로 마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변화되려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깨어져서 내 탓으로 생각하고 무릎을 꿀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을 가져야지 정말 내 마음만 꽉 완악하게 지키면 어떻게 마음이 변화될 수 있습니까? 마음이 깨어져야 돼요.
골로새서 3장 1절로 10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이와같은 변화가 어떻게 일어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므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항상 예수께서 날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을 생각하고 예수님과 나는 하나 되어 죽고 부활한 것을 마음속에 받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변화된 나의 모습을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4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새생명 가운데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예수를 모시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이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 했는데 예수 십자가를 우리가 끌어 안고 바라볼때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는 용서받고 하나님이 의로움을 주시고 영광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기쁨과 행복을 주지 않았습니까? 이것을 믿고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나는 이렇게 변화된 사람이 되었다.
말라기 2장 5절에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고 말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나는 죄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 영광을 얻었다. 기쁨과 행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이 생각을 바꿔 먹어야 됩니다. 생각을 바꿔 먹어야 됩니다. 거룩함과 깨끗함과 성령 충만한 마음으로 바꿔 먹어야 돼요. 고린도전서 6장 11절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임하셔서 우리를 성전 삼고 계시고 성령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깨끗하게 했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마음에 받아 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치료와 건강의 생각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받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치료의 마음을 받아 들여야 마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십자가에서 주님이 행복과 형통을 주셨으니 우리 마음이 축복과 형통의 생각을 받아 들이고 저주와 낭패와 절망의 마음을 벗어 버리고 축복과 형통의 마음으로 변화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우리 마음속에 영생천국 소망으로 가득히 채워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3절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항상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영생 천국을 바라보는 마음에 변화를 가져야 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언제나 품어야 됩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베드로전서 1장 22절에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됩니다. 미움의 마음이 안 다가오는 것 아닙니다. 다가와도 자꾸 제켜 버리고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했으니 내 마음에 변화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받아 들이므로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근거가 없이 어떻게 변화됩니까? 솥에 물을 붓고 불을 때야 물이 끓지 않습니까? 물을 붓지 않고 불을 때어도 끓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생수를 마음속에 받아 들여야 성령의 불로써 변화되는 것입니다.
잠언 10장 12절에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미워하면 자꾸 남의 결점을 파헤치니까 다투게 됩니다. 사랑은 자꾸 허물을 덮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저렇게 맥없이 늘어져 있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허물을 몰라서 그러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인데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머리털보다 더 많은 죄를 다 알고 계신데도 주님이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그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몸을 찢고 피흘려 늘어져 있습니다 . 주님께서는 미움으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고 사랑으로 보아서 모든 허물을 당신의 피로써 다 덮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은혜를 생각하고 우리는 모두다 크고 작은 죄인이니 서로 용서하는 것을 배우고 열심히 이런 마음을 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그랬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죄를 덮고, 아내는 남편의 죄를 덮고,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의 허물을 덮어야 됩니다. 우리가 화목 할려고 하면 서로서로 덮어줘야 되지 벗기면 안되는 것입니다. 달라 들어서 자꾸 벗기면 상대편도 벗길 것 아닙니까? 그러면 상처 투성이가 됩니다. 자꾸 벗은 사람을 덮어줘야 합니다. 덮어주고 그렇게 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가 변화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야 됩니다.
3.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이 마음을 무엇보다도 간수를 해야 됩니다. 지켜야 됩니다. 우리 재물도 지키고, 건강도 지키는데 사람들이 자기 마음은 그냥 노출시켜 놓았습니다. 마음은 길거리에 던져 놓고 마음을 지키지 않습니다. 마음은 우리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마음을돌보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잠언 15장 13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고 말했습니다.
연합뉴스 2002년 7월 30일자에 보니까 마음에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오래 산다고 보도된 것을 보았습니다. 예일 연구팀은 50세이상 오하이오 주민 660명을 대상으로 23년 간에 걸쳐 조사한 연구 결과에 나이를 먹어도 마음을 긍정적으로 지키는 것이 혈압이나 콜레스톨 수치를 낮추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에 비해 긍정적인 마음을 품는 사람은 7.6년을 더 살았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품으면 약 8년을 더 산다는 얘기입니다. 또 다른 발표에는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평균수명이 79살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오래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명을 통하여 죄와 악이 마음에 못들어오게 항상 주의 계명을 들여다 봐야 됩니다. 자기 얼굴을 단장하는 사람이 거울 안들여다 보고 몸을 어떻게 단장합니까? 마음을 단장 안하면 마음의 거울인 십계명을 늘 들여다 보고 마음을 단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1절로 22절에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계명의 거울을 항상 마음에 비춰 보고 우리 마음을 다스려야 되고 다독 거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죄를 지으면 회개함으로 마음을 씻어야 됩니다. 우리가 몸이 늘 더러워지면 늘 목욕하지 않습니까? 더러운 옷은 빨래를 해야 하듯이 자꾸 씻어야 됩니다. 하루에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회개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마음에 가슴을 치고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그렇게 하는 사람하고 가까이 계시고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회개하는 것으로 마음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
또 말씀으로 마음에 생명을 공급해야 됩니다. 마음이 늘 연약해 지는데 내 마음이 늘 넘어진다고 했는데 그것은 말씀으로 강하게 해야 안넘어집니다. 말씀을 먹어야 됩니다.
시편 19편 8절에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히는 것은 말씀을 듣고 읽고 연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으니 “믿음 약하다는 말” 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안읽으니까 약해집니다. 말씀을 읽고 들으면 믿음이 강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기도로써 마음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어떠한 위대한 믿음의 용사라도 낙심하게 됩니다.
시편 28편 6절로 7절에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때 너무나 핍박이 많고 어려워서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방문을 닫아 놓고 두문불출하고 꼼짝하지 않고 방에 들어 앉았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하루는 상복을 입고 방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땅을 치고 울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놀라서 “아니 여보 왠일입니까? 누가 세상을 떴습니까?” 그러자 부인이 하는말이, “아이구~ 하나님이 세상을 떳어요. 하나님이 죽으셨어요.” 그 부인이 그렇게 웁니다. 그러니까 루터가 “그런 망발을 말합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을 떳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부인이 정색을 하고 “그렇잖으면 왜 하나님의 종인 당신이 이렇게 낙심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당신이 두문불출하고 기도도 안하고 낙심해 있는 것보니 당신의 하나님이 죽었으니까 내가 장례식을 치러야지요.” 거기에 마르틴 루터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크게 회개하고 루터가 그때부터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힘을 얻어 그 마음을 강하게 해서 종교개혁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늘 의지해야 됩니다.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놓지 않고 성령님을 하늘의 도우미로써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시고 영원히 우리에게 거하시는 것이 성령인 것입니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 영국의 귀족이 영주에게 트럭을 한대 선사했는데 트럭을 선물로 받은 영주는 몹시 기뻐했습니다. 얼마후 귀족이 영주가 사는곳을 방문하고 깜짝 놀랬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주가 황소 4마리를 트럭에 걸어서 트럭위에 턱 타고 운전대를 잡고 황소가 뻘뻘 탐을 흘리면서 끌고 다닙니다. 그래서 영국 신사가 말했습니다. “영주님! 이 트럭은 황소가 끌고 다니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엔진을 걸면 황소 수십 마리를 끌고 다닐수 있는 힘이 있으니 어디 좀 내려 오시오. 내가 보여 줄테니까.” 그리고 스위치를 넣어서 엔진을 거니까 부르릉 부르릉 하는데 황소 수십마리를 묶어서 끌어도 끌려 옵니다. 영주가 기뻐하고 “세상에 이렇게 놀라운 수레는 처음봤다.” 우스운 일 같지만 여러분 하나님이 놀라운 신앙의 엔진인 성령을 주셨는데 우리는 신앙생활을 수레 끌 듯이 끌어갑니다. 나의 힘으로 땀을 뻘뻘 흘르면서 “주여, 예수 믿기 힘드네요. 이 세상이 너무 살기 힘듭니다. 기도도 힘들고, 전도도 힘들고, 말씀 읽는 것도 힘들고, 신앙생활도 힘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신앙의 수레를 끌고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 너희 속에 있는 성령의 엔진을 걸어라. 성령의 엔진을 걸어라.” 내가 신앙생활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 죄많은 세상에 이 혼탁하고 마귀가 들끊는 세상에 하나님이 우리 힘으로 예수 믿으라고 부른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힘으로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신앙생활 할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너무나 잘 알고게시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놓지 않고 아버지께 고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겠다고 한것입니다. 성령이 눈에 안보이지만 바람처럼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매시매시마다 인정하고 얘기 하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의 마음을 점령하시면 여러분이 능히 이 세상을 이기고 남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너희안에 계신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다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만 빈센트 필 박사는 마음의 생각을 바꾸면 자기 세계도 바꿀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로마의 시인 버지는 사람이 무엇인가 할수 있는 것은 그가 할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었습니다.
철학자 엘모스는 모든 사람의 열쇠는 그 마음에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로마의 황제 마크사 아우렐리우스는 사람의 일생은 자기 마음의 생각 그대로 된다고 말했었습니다.
여러분 행복, 평화, 기쁨, 영광등이 다 마음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에는 오직 하나님의 보좌만 있어야 합니다. 자아나 마귀나 세상이 들어와서 마음을 점령하면 그때부터 악이 점령하고 죄가 점령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점령하고 무수한 고통과 불행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잘못 먹은 마음을 제키고 마음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롭게 하고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귀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짐승에게는 이런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 되고 하나님도 이 마음을 통해서 역사하고
마귀도 이 마음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잘못된 마음은 우리를 파멸시킵니다.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과 구속의 은총으로 변화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열심히 지키는 우리들이 되어서
마음에서 생명이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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