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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배려만이 정의가 되는 세상

이사야 최만자............... 조회 수 2409 추천 수 0 2007.12.05 01:4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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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11:1-9 
설교자 : 최만자 원장 
참고 : 새길교회 
1. 무엇이 문제인가

오늘 제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고자 하는 문제는 그야말로 국제화. 개방화된 사회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윤리의식의 문제에 대한 것이다. 국제화. 개방화 그리고 국경이 없는 지구촌화 라는 말들을 우리는 계속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사회의 현실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개방사회에서 자기 주체성을 지키는 일은 매우 중요할 것이며 이것은 우리민족이 당면한 하나의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주체성의 문제보다도 지구촌화 혹은 개방된 환경 안에서 어떻게 나와 다른 것과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다.
개방은 다양한 것들을 교류하고 상호보완적 정치, 경제 관계를 이룬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또 실제로 그러한 장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개방은 경쟁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여 약자는 희생되고 자멸되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게 된다. 거기에는 철저한 집단적 경제 이익주의에 따른 질서가 만들어 질 것이며 적자생존의 논리에 의해 운영될 조짐이 크다. 국제화. 개방화 시대가 가져오는 적자생존의 원리는 강자의 이익을 보장해주지만 힘없는 자는 힘있는 자에게 예속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UR협정의 과정에서 이를 경험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지고 경제적 희생자가 국제적으로 생겨나게 된다. 이미 우리사회 안에도 동남아시아나 중국의 조선족과 한족의 가난한 사람들이 노동자로 들어와서 당하는 고통의 현실을 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양한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할 때 다시 말해 함께 공존하는 삶을 위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윤리는 무엇인가를 성서로부터 찾아보려는 것이다. 이런 관심이 이사야 11장을 함께 읽게 한다.
2. 성서 본문의 배경
성서에는 이상적인 세상을 그리는 몇 개의 본문들이 있다.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에덴동산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인류 최초의 낙원이며, 요한 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종말에 영원한 구원의 세상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사야 11장 바로 오늘 읽은 성서 본문에도 이상적인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이상적인 세상들은 현실의 불의와 모순을 극복하는 상태를 지향하는 부정적인 현실세계에 대한 대안적인 세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사야는 요담(742-734 B.C.) 아하스(734-729 B.C.) 히스기야( 728-699 B.C.) 등 3대에 걸친 왕정하의 예루살렘을 무대로 40여 년 간 활동을 하였다. 그는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국 모두의 멸망을 고지한 예언자이며, 실제로 722 B.C.에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멸망당하고 701 B.C.에 유다도 속국이 되는 쓰라린 경험을 하였다. 이사야에 의해 두 왕국의 멸망이 선포된 이유는 그 통치자들이 부와 권력을 단시간 내에 획득하기 위하여 평민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을 이루려고 하는 그들의 저돌성 때문이었다(이사야 1:12-17, 3: 13-15, 5:1-10). 그리고 이사야는 유다가 대외관계에서 중립적 입장을 견지할 것과 아울러 국내에서는 강력한 사회정의를 추구할 것을 권고하였지만 특히 아하스왕은 아시리아에 의존하여 아시리아 정책에 따르다가 결국 항복하였다. 아하스의 비열한 정치로 이스라엘은 날로 황폐하여 갔고 이 아하스 시대를 암흑의 시대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에서도 이사야에 의한 예언에는 절망만이 아닌 희망이 함께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정치적으로 그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은 부정하였으며 다윗 왕조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였다(이사야 7:13). 그의 희망은 메시아 사상과 메시아 시대의 유토피아적 환상으로 발전하고 그것이 바로 11장의 노래이다. 그는 이 새날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 의하여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이사야 10:20-22). 사실 희망은 절망으로부터 나온다. 강한 희망은 그 배경에 불행한 현실을 가지고 있다. 안정과 평화 속에서는 갈망이 없다. 갈등, 가난, 질병, 불행과 같은 것들은 그 자체는 고난이지만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로부터 창조적 힘이 창출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아하스왕의 학정 속에서 새로운 세상의 꿈을 가졌고 그것이 이사야 11장 오늘의 본문이다.
3. 성서가 말하는 이상적인 세상
이 11장은 아주 원초적 시대를 보여준다. 인간과 동물이 서로 상해않고 식물을 음식으로 만족하는 세상(창1:29 참고)이다. 이 내용은 미가서 4:1-4절과 잘 연결되고 있는데 아무튼 이상적 세상을 꿈꾸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그 이상적 세상, 서로 공존하는 사회가 어떻게 가능하게 되고 있는가? 우리는 본문 안에서 우주적 평화를 도래케 하는 몇 가지 기준을 볼 수 있다.
(1) 오직 돌봄과 배려의 정의가 기준이 된다.
이 본문의 세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세상이다. 그럼에도 그런 세상이 새로운 왕에 의하여 왔다는 것이다. 강한 것과 약한 것 사이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것은 돌봄과 배려의 윤리, 곧 배려의 정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것이 공존을 위한 정의이다. 평등하다는 것은 모든 것이 똑같다는 것을 말하지만 똑같지 아니한 것들을 어떻게 평등하게 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모자라고 약한 것에 대한 돌봄과 배려의 차원이 배제되면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만다. 표범이 어린양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어린양에 대한 표범의 특별한 배려와 돌봄이 전재되는 것이다. 사자가 어린양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그 힘으로 복종케 하고 다스리며 폭행하는 그런 일은 없다. 오히려 아무런 해함도 상함도 없이 서로 어울려 놀고 있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통치는 약한 것에 대한 배려와 돌봄의 윤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러한 것임을 보여준다.
(2) 강자의 체질 개선
그런데 돌봄과 배려의 정의는 어떤 시혜적이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 그렇지 않은 대상을 대하는 관계로서가 아니라 강자가, 힘있는 자가 약한 것의 생활양식을 그대로 수용하여 같은 수준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자가 풀을 먹는다는 표현이 바로 그것을 암시하여, 그러한 삶이 바로 공존의 정의를 실현하는 윤리적 실천이다. 성서에는 동물과 인간의 음식물이 노아 홍수 이전에는 식물(풀)로만 하나님이 허락하시었다. 홍수 이후에 동물까지 허락하고 있다. 이것은 피를 흘리는 생명을 죽이지 않는 것이 원초적 평화의 상태라고 성서가 이해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성서에서 피는 생명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므로 사자가 다른 동물 곧 피를 먹지 않고 풀을 뜯고 있다는 표현은 새 세상에서는 생명이 절대 보장 존중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한 자연적 현상으로서만이 아니라 강자의 자기 체질의 개선 곧 공존을 위한 스스로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3)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
이 본문은 또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인간이 자연의 생명을 느끼고 그 생명에 연대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져야하는 것을 말한다. 이사야 11장에서 인간은 단지 어린아이로만 나타난다. 그리고 그 우주적 공간에서 매우 약하고 왜소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창세기 1장에서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는 다른, 기술과 문명으로 자연을 해치며 파괴하는 힘있는 어른이 아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인간은 생태계의 중심이 아니다. 인간은 이 지구가 생성되고 생명이 그 위에 존재하기 시작한 후로 가장 늦게 지구상에 나타난 손님이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 3장에서 범죄한 모습으로 자연과 갈등관계를 가진 인간은 이사야 11장에서 자연과의 화해의 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창세기 3장에는 뱀과 여자의 관계가 원수로 나와 있지만 그러나 이사야 11장은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모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라고 하여 저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화해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상징해주고 있다. 창세기의 창조는 처음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었지만 그러나 곧 죄의 문제를 그 중심에 놓아서 창조의 축복을 보이지 않게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창조의 축복이 다시 회복되며 만물의 조화로운 삶, 곧 창조의 보존이 이루어지고 있다.
4. 새로운 세상을 오게 하기 위하여
국제화 개방화를 맞은 오늘의 현실에서 국제적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일이다. 개방은 다양한 것들을 교류하고 상호보완적 정치, 경제 관계를 이룬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러나 실제로 개방은 적자생존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될 위험이 크다. 무기, 핵, 돈, 기술의 위력 곧 힘의 맘몬이 세상을 지배할 시대가 될 수 있다.
또한 우리에게는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의 과제가 무겁게 놓여 있다. 통일을 전망하면서 어떻게 상이한 체제와 사고와 경제력과 세계관을 가진 동족이 공존해 갈 수 있는가의 문제도 심각한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과 나라와 세계와 사상과 종교와 공존해야 하는 세상, 더 좁은 의미에서는 내가 속한 작은 집단 안에서도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힘의 논리로 그 세상을 지배해 나간다면 그것은 21세기적 인류의 불행을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이사야 11장의 말씀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단순하게 유토피아적 이상으로 상상의 세계에만 둘 것이 아니다. 이 본문이 보여주는 의미 곧 공존하는 윤리의 제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것은 물론 다양함 안에 있는 가장 약한 것에 대한 배려요 그것에 대한 연대이다. 한 집단 안에 있는 가장 작은 자의 소리가 들려지는 윤리의식을 말한다. 공존의 윤리가 그것에 기초하지 않으면 공존할 수 없게 된다.
동시에 성서는 힘있는 자의 스스로에 의한 체질개선을 요구한다. 생명을 위하고 살리기 위한 힘있는 자의 자기 포기가 있어야만 공존은 가능해진다. 즉 성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윤리적 존재가 되기를 요청하고 있다.
위기는 언제나 새로운 기회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돌봄과 배려의 정의만이 행동과 정책의 규범이 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때를 열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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