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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그 작은 가시나무 새

이사야 박창원............... 조회 수 2813 추천 수 0 2008.06.20 12: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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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9:6-7 
설교자 : 박창원 형제 
참고 : 새길교회 
 여기서 뵈니까 다들 평안하시군요. 찬양대의 아름다운 찬송과 천세영 형제 님의 기도와 여러 형제·자매 님들의 따뜻한 눈길을 받으니 저의 발걸음이 무거워집니다. 15년 전에 교회에 처음 나와서 한박사님의 설교를 듣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오늘 바로 그 한박사님 앞에서 말씀증거를 하게되니, 저는 '귀신 앞에서 머리를 푸는' 그런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고, 기도원개 삼년이면 방언을 한다는데 신학교를 늦게나마 3년을 다녔으니 무슨 말이든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설교 요청에 그만 응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성경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분명히 "아니오" 하라는 말이 있는데, 그 "아니오"를 못해서 초라한 모습으로 귀신 앞에서 머리를 풀게 되었습니다.
15세 된 아들을 미국에 유학 보낸 아버지와 아들의 전화통화 내용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애야, 네가 있는 곳에는 한국 교포는 살지도 않고 한국 학생도 한 명도 없다는데, 어린 네가, 영어도 못하는 네가 외롭고 고독하게 지내는 걸 생각하니 이 아빠는 잠을 잘 이룰 수 없구나. 그래 요사이 어떻게 지내고 있니?
- 아빠! 전 요즘 외롭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따금 옆 동네에 있는 교회에 가거든요. 찬송이 너무 좋고요. 끝나면 점심 식사가 아주 훌륭해요. 그래서 저는 요새 헌금도 해요.
- 헌금을 한다고? 그래 얼마씩이나 헌금을 하니?
- 지난 주일엔 5달러나 한 걸요!
- 애야! 너무 많다. 학생 신분에 5달러는 너무 많다. 아, 보는 사람도 없는데 1달러만 해도 된다.
- 그런데 아빠! 저도 큰 돈 인줄은 아는데 꼭 그렇게 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요사이는 햄버거를 먹을 때 콜라대신 냉수를 마셔요. 이발도 2달에 한번씩 해요. 5달러를 내려 구요. 교회에 가면 목사님이 저를 꼭 안아 주시거든요. 또 교인들이 데려오고, 데려다 주고, 제 손을 꼭 잡고 어떤 할머니는 기도를 해 주시거든요. 저는 그때 한번 감동·감화를 받으면 1∼2주일은 버틸 수 있거든요. 그래서 5달러를 꼭하고 싶거든요.
- 네가 감동·감화를 받는다니 그보다 더 귀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니? 얘야 5달러는 너무 적다. 앞으로는 10달러를 내도록 해라. 그리고 말이야 교회는 이따금씩 가지 말고 매주 가도록 하고 꼭 10달러를 내도록 해라.

이것은 실화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몸에도 광야가 있고 사막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눈이 사막이고, 우리의 가슴이 광야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사막을 없애고, 광야를 없앴다는 말이 없습니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생수가 솟게 한다고만 쓰여있습니다. 교회에서 받은 감동·감화가 그 어린 유학생의 눈에 생수를, 그리고 그 가슴에 길을 낸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IMF 때문에 사막과 같았던 그 아버지의 눈에, 이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광야와 같았던 그 가슴에 큰길을 낸 것입니다. 사막과 광야, 큰길과 생수를 이렇게 쉬운 이야기로 전하는 것을 이야기 신학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사막과 같은 우리의 눈에 생수 같은 눈물이 고여 촉촉해지고, 광야 같은 우리의 가슴에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리는 곳입니다. 빅토르 유고의 작품 중에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의 주인공 쟝발쟝은 빵 하나 훔친 죄로 17년간을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됩니다. 국가는 예산을 투입해서 17년간 교화를 시킵니다. 쟝발쟝은 그 안에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신부님 집에서 결국은 또 촛대를 훔칩니다. 경찰에게 붙잡혀 신부님에게 끌려온 쟝발쟝에게 신부님은 "이 촛대는 내가 이 사람에게 준걸세." 하는 사랑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 사랑의 말 한마디가 쟝발쟝의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17년 동안 국가의 교정정책이 못한 일을, 17년 동안 스스로가 다짐하고도 못한 일을 그 사랑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때 쟝발쟝의 느낌을 유고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신부님의 얼굴에는 조금도 분노의 빛이 보이지 않았고 그의 눈은 항상 눈물이 고여 있는 듯 그렇게 촉촉해 보였으며 마치 어린양과 같았다."
감동·감화는 이렇듯 보잘것없는 사람을 성숙한 인간으로 변화시킵니다. 감동·감화는 이렇듯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생수를 솟게 하는 그와 같은 아름다운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내용을 '이사야서'로 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사야 라는 뜻은 히브리어로 '예샤야후' 라고 발음하며 그 뜻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 라는 뜻의 개인이름입니다.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그의 경고는 통렬하였으나 그는 여전히 회개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따뜻한 용서의 소망을 호소하였고(사1:18-31), 하나님께서 어둠을 거두시고 평화의 새 날을 주신다고 선포하였습니다.(사2:1-4, 4:2-6) 그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을 성취함에 있어서 주된 역할을 할 다윗의 자손인 메시야를 약속하였고(사9:2-7, 11:1-9) 세 번이나 반복되는 '거룩'은 무한한 정도의 감동을 자아냅니다.(사6:3)
조선호텔에 가면 '예스터데이'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아주 잘 됩니다. 누구에게나 지난날에 대한 향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너나할것없이 지난날들, 즉 Yesterday라는 말에 진한 향수를 느끼는 모양입니다. 저는 광화문에 있는 '범문사'라는 책방 옆의 '무과수'라는 제과점을 좋아합니다. 40년 전에 그곳에서 어렵사리 빵을 사먹던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40년 전에 즐겨 앉던 그 자리에 앉아 곰보빵을 먹으면 지금은 할아버지가 된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라 재미있습니다.
구약의 큰 사건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출애굽이고 또 하나는 바벨론 포로 사건입니다. 이사야는 옛일을 잊으라고 하면서 옛일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옛일 즉 출애굽 사건입니다. 왜 하나님은 옛일을 잊으라고 하면서 옛일을 진하게 상기시켜 줄까요? 그것은 부끄럽고 아픈 기억으로부터 자유스러워져야 한다는 뜻과 함께 영화롭고 찬란했던 과거의 추억으로부터도 자유스러워져야만 새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은퇴한 장성 한 사람과 식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군 인사 때마다 new face가 신문에 거론되면 그 애는 내 부관이었고, 또 저 애는 나한테 기압 받고 쩔쩔매던 군인이고, 이 애는 내가 봐줘서 대령이 되었는데 벌써 소장이 된다고 하면서 쓸쓸하게 웃습니다. 바로 그러한 과거에 도취되는 생활로부터 자유스러워져야 하며 다시 새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너희의 일과 다르고 내가 하는 말은 너희들의 말과 다르니라" 즉 과거로부터 자유로움을 얻어 새 일을 하는 나를 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은 추억으로부터 기대로 우리를 불러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두 나의 실수, 실패 때문에 내 인생이 사막이 되고 광야가 된 적이 있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 부활 후 모든 것을 청산하고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갑니다. 즉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기까지 찾아갑니다. 그 때 그 유명한 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말이 세 번 되풀이됩니다. 네가 나를 신의 경지에서 사랑할 수 있느냐? 네가 나를 친구로서 사랑하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그 때 베드로의 말 "주여! 당신만은 아시나이다." 라는 그 애잔한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예수님에게 제일 귀한 것은 양떼입니다. 그 귀한 양떼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양떼를, 자기를 세 번이나 배신한 베드로에게 맡깁니다. 베드로에게 새 일을 맡기시는 극적인 장면입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이 구절을 공부할 때 가슴이 뛰어 북소리가 되고, 다시 고동소리가 되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의 불행한 과거, 실수 때문에 내 마음이 광야가 되고 사막이 될지라도 주님을 붙잡으면-야곱처럼 붙잡으면-신작로 같은 영의 큰 길이 열리고 내게도 생수가 샘솟을 수 있구나! 그리고 주님께서는 내게도 큰 일을 맡기실 수 있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일을 맡기신다는 그 이야기, 새 일 중에서도 당신의 가장 귀한 일은 새 일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맡기신다는 이 이야기-이 이야기들이 우리를 감동하게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는 것을 신앙의 의식화 과정이라고 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신앙의 생활화 과정이라고 하고,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아주 쉽게 풀어서 누구든지, 이를테면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로부터 초등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도구를 이야기 신학이라고 하고 그 이야기 신학을 통해서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며 왜 해야하고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규준한 것을 '기독교 윤리학'이라고 합니다. 그 기독교 윤리학 중에서도 성서를 기초로 한 학문을 성서 윤리학(Biblical Ethics)이라고 하며 오늘 우리는 그 성서 윤리학을 이야기 신학으로 풀어서 듣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은혜스러운 예배가 창출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노년의 유다왕 웃시야가 죽은 해 B.C 740년경에 성전에서 그가 경험한 감동·감화를 주는 놀라운 계시 가운데서 여호와의 선지자로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이사야에게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을 인간에게 맡길 때 감동·감화를 일으켜 예언자로 하여금 새 일을 시작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주의 Collen McCullough라는 여류 작가는 미국 ABC TV방송국에 10시간 짜리 드라마인 "가시나무 새(The Thorn Birds)"로 유명한 에미상을 받았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전설의 새가 있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소리보다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동지를 떠나는 그 순간부터 그 새는 가시나무를 찾아 헤맵니다. 그러다가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를 찾아 스스로 자기 몸이 찔리게 합니다. 죽어 가는 새는 그 고통을 초월하면서 이윽고 종달새나 나이팅게일도 따를 수 없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릅니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와 귀한 생명을 맞바꾸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은 침묵 속에서 귀를 기울이며 감격해 합니다. 신까지도 감동의 미소를 짓습니다. 그 이유는 가장 훌륭한 것은 위대한 고통을 치러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부패한 유다왕국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면서 자신을 불살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언제 죽었는지, 어디에서 죽었는지 그 무덤조차 없습니다. 이사야는 그렇게 갔습니다. 기독교는 그렇게 가는 종교입니다. 실존 앞에 서 있는 고독한 종교입니다. 그래서 성서 윤리학에서는 이사야를 가리켜 old disciple in long standing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항상 함께 하는 오랜 제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귀한 안목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씨를 받은 새로운 메시아의 도래를 그의 청사진에 담은 사건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삶과 바꾼 메시아의 청사진입니다. 이렇게 하여 신약시대의 위대한 메시아의 도래는 이사야의 이러한 서원기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이사야-그 작은 가시나무새 라고 이름 지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사야는 역사가는 아니지만 이 세상에 진한 감동·감화를 하나님의 기억의 역사에 남기고 그렇게 갔습니다. 문호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 역사의 창출에 참여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사람은 역사에 기록되는 사람이다." 구약은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에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희망을 갖게 해 주는 이야기 묶음입니다. 그래서 에릭 프롬은 인간을 가리켜 '희망을 먹고사는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 랍비가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제자들의 질문은 이러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어둠을 몰아 낼 수 있습니까?"
"빗자루를 가지고 그 어둠을 쓸어내 보아라."
그래서 제자들은 열심히 빗자루 질을 했지만 그 어둠은 그대로였습니다.
다시 랍비에게 갑니다.
"아무리 빗질을 해도 어둠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면 몽둥이로 쳐 부셔 보아라."
제자들은 몽둥이를 휘둘러보았지만 역시 어둠은 그대로였습니다.
다시 랍비에게 가지요.
"아무리 몽둥이질을 해도 어둠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면 큰 소리로 고함을 쳐보아라."
제자들은 큰 소리로 욕을 했지만 어둠은 그대로였습니다.
실망한 제자들이 풀이 죽어 다시 왔을 때
랍비는 이렇게 말합니다.
"각자 초를 한 자루씩 가져오너라 그리고 불을 밝혀 보아라."
그러자 어둠이 점점 걷히기 시작하고 사방은 점점 밝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데 싹 쓸어버릴 사람 쓸어버린다고, 부셔 버리고 싶은 사회제도 부셔버리고 싶어 몽둥이질을 한다고, 큰 소리로 욕을 퍼붓는다고 해서, 그래서 세상이 달라집니까? 이사야 그는 이 모든 것-욕하고, 부시고, 쓸어 버려 달라고-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삼손의 기도를 들어 주셨던 하나님, 그리고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한 마리의 작은 가시나무 새가 되어 아픔의 가시에 스스로 찔림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740년 후에 임대할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서원하였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모든 것-생명까지도 내어주며 낮게 앉아주시고 용서해 주시며 먼저 사랑을 베푸는 메시아를 서원했습니다. 그리고 갔습니다. 기독교는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낭만주의(Romanticism)가 아닙니다. 실존 앞에, 역사 앞에 서있는 고독한 종교입니다. 이사야 그는 하나님 앞에 고독하게 선 단독자로서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때부터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이 걷히고 세상이 점점 밝아진다는 것을 사람이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초가 타 녹아 내릴 때 아픔은 있었겠지만 자신을 내어주면서 이사야-그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한 마리의 작은 가시나무 새가 되어, 이사야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 세상은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를 통해서 인간은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6절 - 21절
내가 바다 가운데 길을 내고, 거센 물결 위에 통로를 냈다. 내가 병거와 말과 병력과 용사들을 모두 이끌어 내어 쓰러뜨려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을 마치 꺼져가는 등잔 심지같이 꺼 버렸다. 나 주가 말한다.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들짐승들도 나를 공경할 것이다. 이리와 타조도 나를 찬양할 것이다. 내가 택한 내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 물을 대고, 사막에 강을 내었기 때문이다.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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