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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할 수 없도다

이사야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023 추천 수 0 2008.10.22 20: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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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51:1-8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3년 4월 13일 주일2부설교 
"의를 좇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나를 들을찌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움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 부터 발할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내 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 이 옷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서론>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하지 못하는도다」 이 말씀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주일날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고난의 행진을 하시다가 금요일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과 수모를 당하고 계실 때 대제사장, 서기관, 교법사들이 주님을 향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하지 못하는도다” 예수님의 생전에는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그렇게 부인하던 그들이 부지불식간에 예수님이 위대하신 구원사역을 하셨다는 것을 십자가 밑에서 인정했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다”. 그들이 스스로 주님의 위대한 역사를 고백한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말중에는 그들의 의구심도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즉, 예수님께서 그렇게 크신 능력으로 남을 구원하신 이가 왜 저렇게 무력하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담이 섞인 조롱으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원수들의 도전을 받으시면서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아니하셨을까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원수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충분히 십자가에서 내려오고도 남음이 있는 권세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무력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냐는 것입니다.
6?25사변동안 우리들은 굉장한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제가 철둑가에 나가서 피난민들이 구름떼같이 화차에 올라가서 석탄을 끌어내리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40대 중반의 남자가 10살쯤 되는 아들을 데리고 석탄을 훔치러 왔습니다. 요사히 텔리비젼을 보면 바그다드 시내에 이라크사람들이 무법천지로 물건을 훔쳐가듯이 그때 우리도 한가지였습니다. 화차에 석탄을 싣고 나오면 개미떼같이 올라가서 그 석탄을 훔쳐냅니다. 그러면 군인들이 뛰어오고 모두다 화차에서 뛰어내려 도망을 칩니다. 그런데 그날 사람들이 개미떼같이 올라가서 석탄을 끌어 내리는데 그 어린아이가 올라가서 석탄을 끌어내리고 아버지는 밑에서 줍는데 큰 석탄덩어리 하나가 떨어져서 화차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군인들이 뛰어오니까 사람들이 다 뛰어 내렸는데 이 어린 소년도 뛰어 내렸으나 큰 석탄덩어리가 화차 밑에 있으니까 그것을 끄집어 내겠다고 화차밑으로 기어가자마자 기차가 철커덕하고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모든사람들이 고함을 쳤지요. 아이가 죽는다고.. 저도 고함을 쳤죠. 그러나 아무도 그 아이를 구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바퀴가 굴러 오는데요. 그런데 손살같이 그 철뚝을 향해서 뛰어들어가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였습니다. 그 애를 밀어내니까 허리는 철로에 걸쳤으니까 기차가 그 허리위를 지나갑니다. 저는 지금도 저의 귀에 뼈부러지는 소리가 분명히 들립니다. 탁탁하면서 배가 터지더니만 창자가 튀어 나옵니다. 그 아버지는 콧물을 주루룩 흘리고 눈에 불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죽어가면서도 그 어린아이를 밀어내고 난 다음 빨리 멀리 가라고 손을 이렇게 하면서 기차가 다 지나갈때까지 바퀴가 그 허리로 지나니까 두동강이 나서 죽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왜 저사람이 뛰어 들어가서 어린아이를 밀쳐내고 자기는 철길에 몸을 걸치고 바퀴에 치어서 죽었는가? 바보아닌가? 어린애는 죽더라도 자기는 장가들어 다시 낳으면 될 것 아닌가? 무엇 때문에 어린아이 때문에 자기가 죽는가?” 그때는 아직 제가 중학교 3학년때였으니까 자식을 낳은 부모의 애정을 이해할 수가 없지요. 거기에 무슨 이론이나 논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기 때문에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뛰어가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는 능히 자기를 구원할 수 있고 능히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식 때문에 자기를 희생한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6-700여년 전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이사야 53장을 기록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자세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내려 온 것이 아니라 내려오기를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기 위해서 당신이 사망속에 뛰어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의 이유를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론>
1.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심
첫째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다”.
이사야 53장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우리가 십자가에 고난받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 하고 실제 내용하고는 틀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라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당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피상적인 생각이고 실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내용인즉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에 매달린 것은 우리 인생들이 마음과 몸에 질고로 고통을 당하면서 슬퍼하는 것을 주님이 대신 짊어지고 속량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8장 17절에는 이사야 53장 4절의 말씀을 마태가 성경을 통해서 더 자세하게 풀이를 해놓았습니다. 그 풀이한 말씀은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이사야 53장에 기록한 말씀을 마태의 입을 통해서 해석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 마태가 바로 이 말을 할 때 그는 예수님이 수많은 병든자를 고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라고 말했습니다.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 내시고 병든자를 하나없이 다 고치셨다. 그래서 마태는 그를보고 감동해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저는 우리의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고 외칠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일생은 죄를 용서해 주심과 병고치는 일에 다보냈습니다. 거의 3분의 1은 병고치는 사역에 보내셨습니다. 주님은 한사람의 병자도 그대로 돌려 보낸적이 없습니다. 다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12제자나 70인의 제자에게 복음을 증거하러 보낼 때 꼭 부탁한 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하시고 병든자를 고치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에게는 용서와 치료는 분리할래야 분리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우리의 죄만 짊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과 병도 짊어지고 가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고난주간에 깊이 묵상해야 될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의 죄와 더불어 병도 짊어지고 가셨다는 것을 깊이 묵상하고 그것을 믿고 받아 들여야 될것인 것입니다.

2.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둘째로,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율법과 도덕을 어긴 허물은 우리가 다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우리가 어기고 그로 말미암아 허물진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털어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고 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다 죄를 지었습니다.
로마서 3장 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말했습니다.
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에베소서 2장 1절에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허물과 죄가 뭐가 다릅니까? 같은 것이지만 다른점이 있습니다. 죄는 뿌리고 허물은 뿌리에서 나온 줄기요, 입사귀요, 꽃이요, 열매입니다. 원래 속에 죄가 있기 때문에 그 죄로 말미암아 허물진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죄가 있기 때문에 거짓말하고 죄가 있기 때문에 살인하고 죄가 있기 때문에 간음하고 죄가 있기 때문에 도둑질합니다. 죄의 뿌리에서 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허물이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죄의 열매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허물진 인생을 삽니다. 그것은 그속에 죄의 뿌리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그는 우리 허물 때문에 대못에 찔렸다는 것입니다. 양손과 양발은 인간의 행위를 상징합니다. 우리 손으로 행동하고 발로써 걸어다니지 않습니까? 우리행위가 허물진 것을 주님께서 갚기 위해서 손에 대못이 찔리고 발에 대못이 찔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일생에 지은 모든 허물들이 다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허물의 사함을 받았다 할지라도 죄의 뿌리가 뽑히지 않은 이상 또 돋아나고 또 돋아나지요. 뿌리를 뽑지 아니하면 풀을 베어 버리면 풀은 또 돋아나고 또 돋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허물을 용서를 받아도 우리 속에는 죄의 뿌리를 뽑지 아니하면 그 허물은 또다시 돋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주님께서는 상함을 받으셔서 우리 죄의 뿌리를 뽑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한 원죄, 영원의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2장 14절에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혼이 얼마나 우리 죄 때문에 상처를 입었던지 그 영혼의 모습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인생보다 상하여서 사람들이 다보고 놀랬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못박힌 고통과 괴로움만 당한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이 우리로 말미암아 상처를 입어 이지러지고 사람의 모습이 아니되도록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 영혼이 우리의 속에 있는 영혼의 죄의 뿌리를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율법이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이는 죄로 인하여 그 아들을 죄있는 육신으로 보내사 육신의 죄를 정하사 육신을 쫓지 않고 그 영을 쫓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영혼이 우리의 원죄를 담당하시고 그 죄를 주님께서 친히 도말하시므로 이제는 우리가 원죄와 자범죄에서 해방되어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살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4절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완전히 다 청산하셨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다 갚으셨습니다.
히브리서 8장 12절에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우리의 과거사라는 허물과 우리속에 있는 죄를 기억한다면 주님 앞에 결코 설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정죄를 느끼고 주님앞에서 도망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허물을 다 청산하시고 우리의 원죄에 영혼의 죄도 다 뿌리 뽑아서 없애 버렸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를 철저히 받고 의롭다함을 얻고 영광을 얻어서 당당하게 우리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를 믿지 않는 사람은 천당에 데려가도 못견딥니다. 어두움에 사는 벌레가 햇빛에 나오면 견디지 못하여 어두움을 향하여 도망치는 것처럼 허물과 죄지은 인생이 하나님 앞에 도저히 설 수 없습니다. 그 강한 죄책과 정죄감으로 말미암아 지옥보다 더 괴로운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예수를 안믿는 사람은 천당에 데려다 놓아도 스스로 돌아서서 지옥으로 줄달음질을 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허물과 죄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허물이 사함을 받고 죄가 씻음을 얻고 완전히 의롭다함과 영광을 얻은 사람들은 주님앞에 설때에 그 영광스러움과 기쁨과 그 행복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3.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셋째로,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린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계실때야 십자가에 못박힐턱이 있나요?
예수님이 하나님께 버림 당하므로 원수들이 예수님 붙잡아서 십자가에 못박힌 것입니다. 버림받은 징계를 입은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징계 받아 세상으로 쫓겨난 아담의 징계를 대신 짊어진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자 하나님께 버림을 당해 에덴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그것은 징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한 동산에 쫓겨나서 이제는 밖에 나와서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게 되며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는 징계를 받았던 것입니다. 인생은 그때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징계인 저주와 가난과 죽음을 당하면서 살고 있다. 이것은 축복이 아니고 하나님의 징계인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장 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버리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살아 보겠다고 웅덩이를 아무리 팠으나 물이 고이지 않는 터진 웅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수고하고 애쓰고 노력해도 잘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담과 하와와 그 후손들이 받은 징계를 대신 짊어져서 하나님에게 쫓겨나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도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징계받아 쫓겨난 사람이 그리스도가 대신 징계를 받음으로 그를 통해서 그 보혈을 의지해서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 품에 안길수 있게 된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로 21절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용서와 의를 받은 우리들은 또다시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성경은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용서받는 것하고 화목을 얻는 것하고는 틀림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말할때가 있잖아요? “나는 그사람 용서는 해도 그사람을 사랑하지는 못한다” 성경말씀은 용서하라 했으니 난 용서한다. 그러나 나는 사랑은 못하겠다. 그것은 용서는 했어도 아직 화목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화목하면 사랑을 하게 되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허물과 죄가 용서만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와 화목케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나게 되는 것이고 그 사랑을 통해서 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과 화목 되었으므로 징계에서 해방되었지요. 쫓겨난 우리가 주님 품으로 도로 돌아갔으니 이제 주님이 예비한 낙원에서 살수있게 된것입니다. 장차 위해서 주님이 예비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도 이제 화목했으니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한 곳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놀라운 은혜를 하나님은 우리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화목하지 않을때는 그 예비한 것을 누리지 못하지만 하나님과 화목하고 나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은 것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그 예비한 것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는 좋으신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동산에 들어가서 살수 있게 된것입니다. 징계가 다풀렸습니다. 이제는 주님 앞에 우리가 웅크리고 앉아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허리를 피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주님의 밥상에 함께 앉아서 주님이 예비한 것을 즐길수가 있게 된것입니다.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될것입니다.

4.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넷째로, 성경은 말하기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 사람들은 존재적으로 병든 인생입니다. 영적으로 병들어서 죽었지요. 마음으로 병들어서 시기, 분노, 질투, 미움, 원한이 꽉들어차서 있지요. 마음이 병들었지요. 그리고 우리 육체가 병들지요. 우리 생활이 병들었습니다. 온 인류는 통째로 병든 인생인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떠나자 마자 인간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병든 인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병든인간이 만든 가정은 병든 가정이요, 사회는 병든 사회요, 국가는 병든 국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늘 전쟁과 싸움을 일삼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보십시오. 어떠한 명분으로 전쟁을 했던지 좌우간 그 결과로 얼마나 많은 어린이와 부녀자와 노역자가 고통을 당하고 죽어가는 것을 우리가 보았지 않습니까? 이것다 인류의 문명이 병들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 병든 인류를 대속하기 위해서 채찍에 맞으신 것입니다. 빌라도의 뜰에서 그가 통상 사십에 하나 매를 맞아 등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선지피가 흘렀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하기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병든 영과 병든 마음과 병든 몸과 병든 가정과 병든 사회와 생활이 그리스도의 채찍에 맞으신 공로를 통해서 치료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님은 우리 전인을 치료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사람, 새가정, 새사업, 새국가를 만들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효과를 발생합니다. “주여! 주님이 채찍에 맞으신 공로로 우리의 영도 마음도 몸도 우리 가정도 우리의 사회도 이웃도 국가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더구나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민족적인 분열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남북이 갈리진 것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사회 계층간의 분열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주님께 치료를 구할 자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온전히 구원을 받은 우리들은 전인이 온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시편103편 3절로 5절처럼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전인구원인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주님께서는 이제 우리를 치료하사 전인을 온전케 하시고 우리의 구하는 바를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송파성전 박미자 집사님 간증을 보니까 87년도에 중이염으로 양쪽 귀에서 고름이 흐르고 심한 통증과 두통과 냄새가 나서 약을 먹어도 낫질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귀에 고름이 너무 차서 길의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할수없이 병원에 치료하러 가니까 병원에서는 곧장 수술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수술하는 것이 두려워서 저녁마다 남편과 합심하여 하나님앞에 지은죄와 믿음없는 것을 깊이 회개하고 이사야 53장 5절의 주님이 채찍이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는 말씀을 붙잡고 이 말씀을 인용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하나님이 기도응답을 주셨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대개 하나님께 우리 간절히 기도하면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한데로 받은줄 믿는 믿음이 생겨납니다. 응답 받았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마음속에 고요하고 잠잠하게 확신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마치 안개가 끼어 오듯이 믿음이 싹 들어와서 “아~ 응답 받았다” 그런 체험을 한것입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무의식적으로 고름이 흐를까 닦으려고 손을 대는 순간에 깜짝 놀란 것은 고름 한방울없이 귀가 간밤에 깨끗이 나아 버린 것입니다. 이 기적을 통해서 신앙이 불붙기 시작해서 구역셀장, 셀지역장으로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2001년 두달간 하혈이 쏟아져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자궁근종이라고 수술날짜를 잡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믿고 봉사했는데 결과가 이것인가 원망, 불평이 나오려고 하다가 마음에 오기가 나서 “이놈의 마귀가 또 달려 왔구나” 그래서 오산리최자실금식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 나흘간 금식기도하자 심한 빈혈과 수족마비증세가 생겼습니다만 확신을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주일3부예배후 하혈하시는 집사님이 계시는데 주님께서 치료해 주셨다는 저의 선언을 듣고 아멘을 하고 갔는데도 불구하고 병은 안나았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바라봄의 법칙으로 자기 나은 것을 바라보고 입술로 시인을 했는데 수요일날 예배에 나오니까 또다시 제가 그말을 하더랍니다. 하혈을 하는 분이 고침을 받았다는데 순식간에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나니.. 영도 마음도 몸도 고침을 받고 신앙으로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이 예비하신 제물
다섯째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제물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했는데 이사야 53장 6절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은 세상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이다. 구약시대에는 죄를 지으면 반드시 재물을 드려야 되었습니다. 속죄제물, 속건제물, 번제물 그다음에는 감사제물, 화목제물같은 제물을 드려야 됐습니다. 제물없이 죄용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로 예수께서는 이 구약에 그렇게 많이 잡아서 드린 양과 염소와 송아지와 이런 제물을 주님께서 통째 대신해서 드려줬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예배 드릴 때 제물드릴 필요가 없는 것은 예수님이 한제사로 영원한 제물이 되어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 한분이면 우리는 속죄제물, 속건제물, 번제물, 화목제물, 감사제물이 다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히브리서 9장 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송아지나 염소의 피가 아닌 주님의 피로서 우리를 속죄해 버렸다. 우리의 속에 있는 원죄를 완전히 주님께서 없애시고 자범죄도 없애버린 것입니다.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이 다른 것은 속죄제물은 하나님 앞에 원죄를 말하고 속건제물은 행위의 죄를 말합니다. 허물의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도둑질하고 사기치고 고통주고 하는 이런 허물죄를 말합니다. 하나님앞에 행위의 허물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속건제물도 주님이 다 속건제물이 되어서 청산한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10절에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주님께서는 속건제물이 되어 우리의 행위의 모든죄, 허물을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그다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매일 번제물을 드렸습니다. 번제물은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고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미하는 제물인데 예수님이 우리의 속건제물이 속죄제물이 될뿐아니라 번제물이 되어서 우리는 매일매일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1절로 12절에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영원한 제사를 드렸는데 이제는 제사드릴 필요가 없어요. 영원히 제사 드렸기 때문에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예수께서 우리의 번제물이 되셔서 매일매일 예배하고 찬미하고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고 도움을 구하는 완전한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용서만 받는 것이 아니라 화해했다. 화목했다. 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용서를 하고 난 다음에는 사랑을 할 수 없어도 화목을 하고 나면 사랑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우리가 용서만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와 화목제물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가운데 부은바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도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론>
이사야 53장 7절로 8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 당하실 때 아무도 그가 당한 고난은 마땅히 죄악으로 형벌을 받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신한 것이라고 깨닫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냥 그는 위대한 선생이요, 지도자로서 실패하고 잡혀서 죽는다. 혁명가로서 로마의 정부에 체포되어 죽는다. 종교가로서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이단으로 낙인찍혀 죽는다고 생각했지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할 하나님의 백성들을 건지기 위해서 대신 죽는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신후 성령님의 계시를 통하여 비로소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우리의 죄를 위한 것이란 것을 다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나의 죄를 속량하시고 나를 구속하시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성령이 그렇게 해주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고 할 자가 없다고 성경은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오게 하지 않았으면 내게 올자가 없다고 했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선택하사 성령을 보내셔서 여러분을 깨닫게 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위한 속죄제물, 속건제물, 번제물, 감사제물, 화목제물이 된 것을 알고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믿음을 활용할 수 있게 된것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여러분과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한것입니다. 이전 것은 다 청산해 버리고 새롭게 만들어서 새사람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 당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내려 온 것이 아닙니다. 안내려 왔습니다. 예수님의 원수들은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했으나 그가 못내려 온 것이 아니라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그분이 왜 못내려 오겠어요? 그러나 안내려 온 것은 우리를 대신해서 제물이 되려고 안내려 오신 것입니다. 그 크신 사랑과 그 은혜로 말미암아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우리들이 죄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든 그대로 주님 앞에 나와서 용서와 의와 영광과 기쁨과 행복과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된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허물진 인생 죄로 말미암아 죽은 인생들을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짊어질 필요도 없거니와 그 능력과 권세로 십자가에서 능히 내려올 수 있는 분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끝까지 고통당하고 안내려 온 것은 우리의 죄를 청산하고 허물을 다값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 은혜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여서 하나님의 자녀로 예배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며 영원한 소망을 마음속에 가질수가 없을 것이요 하늘나라에 있을 곳을 얻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고난 당하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너무나 감사하고 이를 깨닫게 해주신 성령님의 은혜를 진실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라도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성령이여 마음문을 열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를 분명히 깨달아 알고 믿고 구원받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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