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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의 빛

아모스 최만자............... 조회 수 1706 추천 수 0 2008.04.11 19: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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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암1:3-10 
설교자 : 최만자 원장 
참고 : 새길교회 
요즈음 주위가 온통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듯 합니다. 어떤 이들은 깊은 우울증에 또 어떤 이들은 희망과 용기를 잃고 체념상태에 있다고도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입에 올리기도 싫은 한보와 김현철사건 그리고 대권에 도전하는데 정신이 팔린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고역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큰 문제는 북한의 굶주린 동포의 미래일 것이며 그에 따른 한반도의 미래문제일 것입니다. 아사자들이 즐비하여 공동묘지로 시체들이 쏟아 부어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남북 적십자 회담은 또 결렬되었고 이제는 6∼7월 위기설이 전쟁론이나 붕괴론으로 떠돌고 있어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움만 커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러한 위기상황 앞에서 이 나라가 어디로 가야하며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말하는 일은 너무나 힘듭니다. 그럼에도 이 난관을 뚫고 미래의 새 역사를 이끌어 내어야 하는 것이 동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운명적 사명입니다. 혹자는 이 어려움을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계기로 삼자고도 하고 또 혹은 최선을 다하여 함께 노력하자는 등의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이와 같은 우리들의 현실 속에서 무엇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며, 우리가 책임지고 이루어내어야 할 과제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문제 해결의 희망을 남북적십자 대표 접촉에 걸었는데, 이 모임은 합의 없이 끝이 났습니다. 남북적십자 회담의 결렬은 우리들에게는 그저 의견이 맞지 않았나보다라는 생각에 머무를 수 있겠지만 북한의 동포들에게는 하루 수백 수천 명이 굶어죽는 일로서, 곧 생사의 문제입니다. 어떻게 좀더 빨리 좀더 많은 식량을 전할가를 의논해야 하는 긴박한 접촉이었으며, 옥수수 보내기 범국민운동 본부에서는 1만5천톤 중국산 옥수수를 준비해 놓고 북한 행의 허락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회담은 결과 없이 끝났습니다. 1만5천 톤이면 1인당 하루 3백50그램 기준으로 1백만 명의 생존을 한달 간 보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비록 세계식량계획이 상정하는 1인당 하루 양인 650그램에는 절반이지만 생존을 이을 수 있는 생명의 밥인데 '지원절차를 먼저 정하자(남)', '지원규모와 시기를 먼저 정하자(북)'는 차이 때문에 생명의 옥수수는 강을 건너지 못하였습니다. 이번 회담의 결렬로 하루를 살기가 다급하여진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전달이 늦춰진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습니다. 북한 돕기의 단일 창구인 한국적십자가 이같이 회담결렬이라는 결과를 가져옴으로 인해 이제 단일 창구라는 문제의 심각함은 드러났습니다.

사실 적십자사라는 이름을 가진 남북 단체들이 그 이름 본질대로의 정신만 가졌다해도 회담이 결렬될 리가 없지요. 철저한 인도주의적 정신 아래 적군이라도 그 생명을 존엄하게 여겨 상처를 치료하고 살려야 한다는 정신에서 시작된 적십자운동이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죽어가고 있는 북한동포의 생명을 앞에 놓고 정치거래를 하였으니 그 이름의 정신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죽임의 행위를 한 것입니다.
북한의 왜곡된 정치적 고집은 식량지원 자체를 번번이 무산시켰습니다. 이런 태도는 진짜 그들이 굶주리는가를 의심하게 하고, 지원의 당위성을 약화시키고, 남한의 여론을 왜곡시킵니다. 북한당국의 완고한 정치논리가 결국 북한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 정부도 도움을 받는 쪽의 체면과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모든 것에 우선하여 식량전달을 목적으로 해야 할 터인데도 굶주림에 찬 북한주민들의 밥을 담보로 정치거래를 하는 비인도주의적 행태를 보인 것입니다. 적십자 대표단 접촉이라 하였지만 이것이 순수하게 민간단체의 대표라기보다는 사실상 정부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 돕기를 민간단체가 직접 하도록 허용하거나 또는 민간단체의 연합체로 창구를 단일화해서라도 이를 터주는 것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나라 대북 정책에서 인도주의적 태도를 보인 것은 이인모 노인을 북송한 것뿐입니다. 그때도 북한의 엉뚱한 반응으로 남한의 극우적 입지를 도리어 강하게 만들었던 일을 상기하게 됩니다.

이제 정부는 4자 회담을 수락하지 않는 한 정부차원의 대북 지원은 없다는 기본원칙을 고수하되 적십자를 통한 민간지원을 강화하여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다시 끌어내기 위해 12일 한적이 민간단체들과 경제계를 모아 설명회를 갖게 하여 민간차원의 지원에 힘을 실어주려 합니다. 또 한편에서는 북한체제의 붕괴가 예상보다 빨리 진행돼 이로 인한 혼란과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일정정도의 식량지원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정부가 내린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북한에 분배과정에 대한 감시보장, 육로를 통한 직접수송, 원산지 표시 등 5개 조건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북한 지원규모와 시기확정 요구에 대해서는 옥수수 보내기 1만5천 톤을 바탕으로 협상 재 개시까지 모인 모금 액을 제시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겨레신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성의에 따라 추가지원도 가능함을 전달할 것이랍니다. 전경련도 정부요청이 있으면 식량지원에 나서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북한식량위기에 대한 이러한 비인도주의적 태도들을 보면서 저는 성서의 아모스 예언자의 예언신탁이 생각났습니다. 아모스 예언자는 일반적으로 정의의 예언자로 알고 있으며, 하나님의 공의를 가장 중요한 신적 본성으로 이해하고, 공의의 윤리적 삶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외친 사람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10키로 떨어진 드고아라고 하는 시골에서 목축업을 하는 사람이었으나, 당시의 불의한 세태를 보고 의를 외치라는 소명을 받아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예언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받은 신탁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의에 대한 이 예언자의 이해가 본질적으로 '인도주의적' 사랑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모스는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고, 그 정의에 관심을 집중시킨 예언자라고 이해하고 있으며,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 예언자라고 이해합니다. 그런데 아모스가 말하는 하나님의 공의는 철저히 하나님의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아모스 예언의 신탁은 1:3-2:5까지와 2:6-27까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지는데 앞부분은 이스라엘이 아닌 주위의 다른 나라들에 대한 저주신탁이고 뒷부분은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신탁입니다. 사실 이 본문의 논조는 계속 심판과 저주로 나타나고 있어서 무섭고, 읽기에도 거북한 내용들입니다. 폭력적이며 심판자로서의 하나님 이미지는 평화주의자들로부터는 반 평화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여성주의자들로부터는 군림하는 가부장적 왕권, 부권의 이미지로 비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깊이 살펴보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은 바로 인간을 사랑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격렬한 분노의 표시입니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은 열정적으로 인간애를 가지셨고 그것에 집착하신다는 말이 됩니다.
조금 전에 읽은 부분에서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말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포로를 철 타작기로 내리친 것, 포로를 매매한 것, 포로 가운데 아이를 벤 여인의 태를 가른 것 등 그들의 잔인한 행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 철 타작기는 전쟁포로를 다루는 일반적 방법으로,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고문에도 사용되었습니다. "모든 포로를 에돔에게 부쳤다"라는 뜻은 당시 무역통로에 있으면서 전쟁에서 잡힌 자들을 에돔에 노예로 팔았다는 말로서, 이웃에게 행한 잔인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임신한 여자의 배를 갈랐다"는 것은 잔인의 극한 상태로서, 그 당시 외국과의 전쟁에서는 보통 일어나는 일들이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잔인성도 나오는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먼지를 탐낸다"는 것은 창31:5에서 보면 타박상, 난장질하다로 번역되고 있어 가난한 자에 대한 잔인한 행동을 암시합니다. 1장 3절에 나타나는 '죄'는 반역을 뜻하는데, 우리는 주로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만 죄의 이야기를 해왔으나, 아모스는 일반적 도덕성의 위반으로 인간에 대한 부도덕성 곧 여기에서는 가난한자, 전쟁이나 국제관계에서의 희생자에 대한 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이 이스라엘과 적국관계이기 때문에 이러한 저주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나라들이 정작 잡은 포로들의 나라 명단에 이스라엘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고 있으며, 더구나 그 나라가 잔인하게 행동한 상대국들은 오히려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에 있는 나라들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웃나라들과의 구체적인 관계를 보면, 1장 3-5절에 언급된 다메섹은 시리아의 수도인데, 시리아의 벤하닷 때부터 이스라엘 바사왕과 양국간에는 전쟁이 일어났으며,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의하여 늘 큰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아모스 당시에는 시리아 남부의 영토가 이스라엘의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또 블레셋은 노예로 팔 포로를 얻기 위하여 유다와 이스라엘의 국경지역을 자주 침략하였는데, 성서에서는 가장 큰 이스라엘 적국 가운데 하나로 나타납니다. 모압은 고대로부터 이스라엘의 적이며 다윗왕 때의 침략자였습니다. 또 시리아의 길르앗에 대한 잔인함을 비난하는데, 길르앗은 다윗왕 때부터 이스라엘의 영토였기 때문에 이 침략은 이스라엘 자체에 대한 침략처럼 생각될 수도 있으며, 아람과 암몬이 이 땅을 소유하였을 때는 그곳을 다시 찾으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침략적인 관계의 나라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것은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그 나라들이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는 것과 그들에 대한 잔인한 행동에 대하여 심판하고 있습니다. 블레셋의 노예무역도 피해를 입은 나라들이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2장 1절에서 아모스가 만약 이스라엘 침략에 대한 비난을 목적으로 하였다면 이스라엘과의 역사적 관계에서 빚어진 수많은 사건들 중의 하나를 택했을 터인데도 이스라엘간의 문제는 전혀 취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대적관계인 나라들에게 특별히 옹호적인 태도를 가질 아무런 이유도 없습니다.

당시 근동 세상은 무역이 활발하였고 전쟁 또한 빈번하여 전쟁포로가 많이 생겼으며 노예매매가 성행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때는 정치 경제적으로 발전의 절정에 달하고 있어서 살기 좋은 경제적 호황의 시대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경제적 풍요 속에 침식하는 병적 요소들을 예언자는 예리하게 통찰하였고 이로 인한 미래의 심판을 일깨워 당시의 생활을 변화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국제관계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 행태들에 대해서 아모스는 극렬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당시 국제관계적 불문율을 나라들이 위반한 것에 대하여 강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 간에도 세워진 국제법의 기존질서를 감시하고 있어 당시에 세워진 국제간의 법질서가 있었음을 전제한 것으로 보입니다. 학자들은 아모스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적국인 에돔이 어떻게 야훼의 우주적 법칙의 축복을 나누는가를 주목하라면서 이것은 역사에 있어서 국제법의 첫 자취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는 당시 정치, 경제적 국제교류의 빈번으로 생겨난 국제관계의 영향입니다.

아모스의 세계 인류애적 관심과 온 인류가 평등하게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정신은 9장 7절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며 동시에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이디오피아인은 그들의 검은 피부로 인해 경멸 당했고, 자주 노예로 팔렸으며, 야훼의 백성 이스라엘과는 많은 격차를 가진 백성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이러한 이디오피아인을 이스라엘과 비교할 뿐만 아니라 야훼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그들 이상의 다른 어떤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는다고 선포함으로써 야훼와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를 완전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었듯이 블레셋을 갑돌에서, 아람을 길에서 구하여 내었다고 합니다. 사실 출애굽사건은 이스라엘과 야훼하나님이 계약관계를 맺어 이스라엘이 야훼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는 결정적 사건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결정적 사건이 이스라엘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똑같이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역사를 그들에게도 이루셨다는 엄청난 주장을 이 예언자는 소리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계 모든 나라와 사람들을 똑같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적이 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고통과 불행, 비참한 상황을 괴로워하시며 그러한 불행은 하나님의 의에 벗어나는 잔인한 행위이며 따라서 그 잔인성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9장 7절은 이스라엘의 적에게조차도 야훼의 애정이 풍성하다는 진리를 보이고 있으며, 이 책의 영감의 최고조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예언자의 이와 같은 발언은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경이로운 것이며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모스 예언자는, 그 당시의 호세아, 미가, 이사야 같은 동시대의 예언자들과 견주어볼 때, 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 문제인 바알과의 관계도 관심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는 철저히 사회정의의 질서에 관심을 표하고 있습니다. 아모스는 야훼의 의를 중심으로 세계와 이스라엘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모스는 신적 문제보다는 도덕적 요구에 집착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가나안과의 대결이 심각하여 종교적 관심이 지배적이던 시대에 그것보다는 사회적 불의와 인간애에 입각하지 않은 인간성의 본질문제를 근본적인 것으로 본 이 예언자의 통찰력은 참으로 위대하며, 인간애의 사상과 그 개방성은 현 시대적 사고를 능가하고 있어 보입니다.

아모스 당시의 신에 대한 지배적 생각은 나라마다 각각 민족 신이 있고 그 신은 그의 백성과 땅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에 있어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는 그 주위에 있는 다른 여러 나라들을 심판하시며, 야훼의 능력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야훼 하나님은 온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시며 또한 다스리신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만의 지방 신이 아니라 세계의 하나님이시며, 역사의 주로 보았음이 분명합니다.
아모스는 유일 신관이 가지는 배타성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 세상 사람들에 대해 존엄성을 가져야 함과, 인간애로 동등하게 관심을 표현하고 있음이 다른 예언서들의 관심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 부르고 특별한 관계임을 표현하면서 그들이 이웃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하나님을 찾으면(하나님을 찾는다는 것과 의를 행하는 것이 동일한 것으로 표현되고 있음) 구원될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 희망을 포기하였다고 합니다. 즉 세계를 위한 이스라엘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모스는 모든 나라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잘못 때문이나 혹은 야훼 이외의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과 자비의 자연법의 원리'인 우주법 파괴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됨을 예언합니다. 공동 인간성의 자연법을 파괴한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잡힌 자와 도움 없는 여인들에 대한 잔인한 폭행은 일반적인 인도주의적 도덕의 위반이라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세계의 모든 백성이 야훼의 의의 요구 아래 있음을 알았고 그 의를 만국 공동윤리의 기준으로 삼았으며 그것을 곧 잔인하지 않는 인간성으로 본 것입니다. 이 인간성에 대한 요구는 어떤 계명이나 율법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아모스에게서는 율법의 권위에 대한 인용이나 계명의 인용이 전혀 없습니다. 당시에 잘 알려진 자연법을 야훼의 관심과 연결시키고, 그렇게 인도주의적 윤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 우선한 인간애 정신입니다. 인도주의는 엄격히 정의해서 동정의 제도화입니다. 인간애는 물론 일상적으로 말해지지만 인도주의는 어떤 가치를 결정하는 상황에 있어서 모든 것에 우선하며(이념, 민족 등) 인간 생명을 우선시 한다는 정신적 차원의 결단행동을 의미함에서 인간애와는 차이를 갖습니다. 인도주의는 실천적입니다.
이렇게 북한의 위기 앞에서 인도주의적 정신의 필요성을 생각하고 그 정신을 성서의 아모스 예언자로부터 조명해 보면서 이 인도주의적 정신이 오늘날 인류가 다시 회복하고 확장시켜야 할 소중한 가치라는 생각이 다른 측면에서도 듭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부모에 대한 효도도 결국 본질적으로는 인간애에 기초한 정신입니다. 성서의 십계명에서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혈연의 의무를 강조합니다. 신명기에서는 부모공경을 하나님 공경과 같은 수준으로 생각하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벌은 하나님에 대한 불경의 경우와 같이 사형으로 처벌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 중요한 의미는 늙고 힘이 없게 된 부모를 돕고 보살펴야 한다는 정신에도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구약성서 전면에 흐르는 약자보호 정신은 부모와 자녀관계에도 해당됩니다. 능력 있는 부모를 모시기는 쉽지만 능력 없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노인문제가 심각해지는 때에 사회적 복지제도가 더 확장되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점차로 줄어드는 인간애 인도주의적 정신을 고양시키는 일은 더욱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는 점점 인간애가 줄어드는 세상으로 보입니다. 사이버 넷 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인간애라든가 인도주의적 정신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는 듯합니다. 생명이 있는 것과 관계를 맺는 것이 점점 서툴러진다고 합니다. 무생명적인 것,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에 익숙해진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반응하며 예상과 다른 대응태도로 나타나는 생명체와 관계를 맺는 방법을 점점 모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들은 골목에서 줄넘기를 하고 숨바꼭질하면서 무리 지어 놀았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골목은 넘쳐나는 차들 때문에 주차장으로 변하여 아이들이 놀 공간이 없어졌으며, 아이들 또한 공부하고 과외하고 학원 다니느라(그것도 몇 가지씩) 골목에 나갈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교회공동체가 집중적으로 이제는 인간애 회복운동에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감히 현재의 교회모습을 탈피하여 인간애를 회복하는 공동체운동에 주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18-19세기 기독교의 대각성 부흥운동은 수많은 자선단체들을 이 세상에 출현시켰던 역사를 가졌습니다. 그 변화는 세상 속에 사회복지의 장을 확대시켰고 인도주의적 박애정신을 온 인류에게 심어주는 계기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제 21세기 앞에서 더구나 북한의 긴박한 위기 앞에서 한국교회 아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지금까지의 신앙행태를 회개하고 철저한 인도주의적 인간애를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인도주의적 정신과 깊은 인간애를 발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진정으로 따르는 길입니다. 정부가 권력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인간애를 상실했듯이 기독교는 이제 더 이상 종교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진정한 인간 생명사랑을 외면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끌어온 모든 복지적 차원의 활동들을 다시 점검하고 공동체적 치유의 형태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비인간적 전쟁과 노예매매와 여성폭력이 횡행하던 세상에서 깊은 인간애 정신을 인류가 살길이라고 비추어준 아모스 예언자가 보인 인도주의의 빛은 오늘 이 한반도에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정신입니다. 아모스 예언자가 이 정신을 하나님과의 깊은 내면적 관계에서 그리고 목축을 하면서 경험한 자연의 진리와 생명에 대한 경외감에서 공급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모스 예언자의 인도주의의 빛은 우리들의 북한에 대한 태도 그리고 우리들의 부모공경에도 또 불행한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늘 비추어보아야 할 성서의 귀한 자원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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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4 아모스 생명, 진리, 빛 암5:21-26  서공석 형제  2008-03-17 1938
1093 아모스 한국교회에 하나님이 계신가? 암5:21-24  권진관 교수  2003-06-05 4576
1092 호세아 이 명절에 무엇을 하려느냐? 호9:1-5  전원준 목사  2008-09-06 2045
1091 호세아 왜 믿느냐고 물으면 호1:8-10  류상태 형제  2008-08-26 1650
1090 호세아 하늘, 땅. 짐승, 사람 호2:21-23  민영진 목사  2007-12-18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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