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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뜻

마태복음 박옥진............... 조회 수 3464 추천 수 0 2008.07.09 17: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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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5:35-40 
설교자 : 박옥진 자매 
참고 : 새길교회 2000.1.9 주일설교 
오늘 말씀은 마태복음 25장 35절-40절입니다. 제가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오늘 이야기를 한 여학생의 애틋한 마음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할까 합니다. 이 여학생은 절망적인 목소리와 움츠려진 모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미래가 암담해,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꼭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졸업 후의 임용고시에 합격할 줄로 믿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하늘에 별 따기처럼 힘들 뿐 아니라 그 길로 가고 싶지 않아서 시험준비도 하지 않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너무나 불안하고 이대로 있으면 충동적으로 무슨 일을 저질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피아노나 성악으로 학부편입을 하고 싶은데 그 길은 막막해서 아무 대책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태어나서 어머니의 존재를 의식했을 때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이 학생에게 사랑과 애정의 감정을 전혀 표현하지 않았고 아주 강하고 엄격하였답니다. 어린 아기일 때부터 엄마의 눈치를 살피면서 엄마의 마음에 꼭 드는 모범생의 역할을 하려고 온힘을 다하였답니다. 온 가족의 성격이 외향적이고 결단력과 계획성이 있어 마음먹은 것은 척척 잘해 내기 때문에 자신과 달라 열등감과 소외감과 무력감으로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엄마의 눈짓하나로 자기의 모든 행동이 통제되었고 잘못한 일에 대해 매를 많이 맞았다고 합니다. 우등생인 동생과 늘 비교를 당하면서 패배감을 맛보았고 고등학교에 가서도 자신의 뜻보다는 엄마의 의견에 강요당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공부보다는 예능계통에 적성이 맞는다며 애원하였으나, 집안 형편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데 그 길로 가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고 공부를 강요당하였습니다. 이 여학생은 한 인격체로 그의 진정한 감정이 가족들에게 받아들여진 경험이 거의 없었고, 특히 가장 가까워야 할 엄마가 습관적인 분노로 괴롭혔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자학의 그늘에서 자신의 동굴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학생처럼 다른 사람이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절되어 있을 때에 너무나도 외롭고 애처로울 것은 당연합니다. 이 학생은 자신의 뜻이 통하지 않는 수많은 세월로 인해 깊은 상처와 앞으로의 희망까지 잃은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이 학생의 가슴아픈 사연에 비추어 보면 예수님의 뜻이 우리와 잘 통하게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많은 사람들이 뜻을 올바로 알지 못하고 왜곡하여 해석하므로 정말로 고민이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이 우리에게 전달되어 예수님과의 사귐에 일치됨 상태가 코이노니아라고 들었습니다. 또 유도케오라는 희랍어는 마음에 흡족하다는 뜻인데 이는 예수님의 뜻에 일치되어 예수님과 눈길이 맞고 그의 뜻에 합하여 초점거리가 맞았을 때의 상태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과의 코이노니아 정도가 어느 수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도케오에 도달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세계를 타고 다니시다가 어느 나라에서 일할까 생각하셨더랍니다. 구름 위에서 보시니 미국이 좋을 것 같았더랍니다. 땅덩어리도 시원하고, 그래서 Mayflower호를 타고 미국에서 일하셨더랍니다. 그런데 땅이 너무 넓고 사람들이 다양하고 인륜도덕을 점점 더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므로 일 하실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구름을 타고 찾아다니는데 한국 위에 오셔서 보니 좋아 보이더랍니다. 땅덩어리도 작고 민족이 다양하지도 않고 예로부터 도덕도 중요시여기고 사람들도 순진해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한국에 오셔서 열심히 일하셨대요. 열심히 일하시면서 일제시대, 육이오 사변, 분단 군사독재도 같이 겪으셨드래요. 열심히 일하신 덕분인지 수가 아주 많이 늘었더랍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우리 예수 대학 졸업장이 필요해요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아직도 학점도 다 이수하지 못하였는데 웬 졸업장이냐? 하시다가 하도 졸라서 졸업장을 주셨대요. 그랬더니 예수대학 졸업장 간판만 내세우고 이제는 예수님을 거들떠보지도 않더래요.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들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럼 나 이제 떠난다고 으름장을 놓으셨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예수님을 붙잡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 세기 전에 죽은, 한 고대의 철학자가 고생 고생하여서 참 진리를 후계자들에게 가르쳐놓고 하늘에 갔더니 간지 얼마 안되어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후계자들이 그의 사상을 잘못해석하고 있었답니다. 자비심과 진리에 대한 사랑에 넘친 그 철학자는 많은 노력 끝에 겨우 신의 허락을 얻어 며칠 동안만 지상에 다시 내려올 수가 있었답니다. 후계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데만 여러 날이 걸렸답니다. 일단 그의 존재를 알자 후계자들은 그가 설명해 주는 사상의 본질에 대해선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가 어떻게 다시 지상으로 내려 올 수 있었는가, 천국이 어떤가에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순수하게 예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교훈의 참 의미는 무엇일까 저 나름대로 고민을 하였습니다. 저는 완전하게 주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일생동안의 과업이며 부단한 노력 없이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부분적으로나마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점을 통하여 예수님의 뜻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통하여 내게 전달되기를 바랬고 성경 구절을 제나름대로 찾은 것이 오늘 읽어드린 마태복음 25장 말씀입니다. 우리가 많이 들어서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생애 동안 주신 교훈 중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주신 교훈입니다. 대개 누구나 참으로 중요한 말을 임종 전에 합니다. 예수님도 죽으실 날을 알고 계셨으므로 중요한 교훈을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 중요한 교훈을 이해하면 예수님의 뜻을 어느 정도 알게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작은 자를 돌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에 우리가 힘을 합하여 작은 자들은 보살펴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겠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과연 이러한 행위만 강조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위를 강조하면 인습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성경공부에서 배웠습니다. 다시 여러번 읽었더니 예수님은 저에게 다른 의미를 전달하고 계셨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따르면 우선 작은 자를 돌보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우선의 가치로 여기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 가치관의 우선순위 설정에 중요한 교훈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가치관에서 끝나려니 무엇인가 빠진 것 같았습니다. 다시 깊이 생각하여 보니 예수님은 우리에게 따뜻한 마음을 강조하고 계시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자들을 돌보는데는 따뜻함이 필요하다. 의무감이나 자기 만족을 위하여 작은자들을 돌보지 말고 진정한 따뜻함을 가지고 돌보아라. 그리고 이 따뜻함은 내게서 배우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예수님의 따뜻함 (저는 사랑이라는 표현보다 따뜻함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즉 한완상형제님이 자주 강조하시는 돌아온 탕자를 받아들이시는 마음이 아닐까 그리고 옥합을 깨뜨리는 여인의 마음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기시며 너희는 나의 진정한 친구다 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따뜻함이 매우 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따뜻함을 늘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무척 많습니다. 생명력이 소실되어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 존재를 변화시키는 힘이 없어지면 이렇게 됩니다.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 없으면 그렇습니다.
저는 50 평생 살아오면서 세상 특히 교회에서 솔직히 남에게 일을 잘 수행하는 사람으로 비추어지기를 바랬고 또 이를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한번도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따뜻함을 가진 사람으로 비추어지기를 더 원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는 예수님에 대한 저의 관념의 초점은 따뜻함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공동체적인 운명으로 받아들었지 개인적으로 감동하여서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신 지도자로 여겼던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니, 하나님께 갈 때 징검다리가 되어주실 분으로만 평가하였지, 따뜻함을 풍성히 가지고 계셔서 제가 이 따뜻함을 받아가기를 원하시는 분으로는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한완상 형제님이 가르쳐 주신 보그 박사의 'I am meeting Jesus again for the first time'의 의미의 뜨거운 만남의 신앙상태가 아니라 의무적인 신앙의 태도가 더 강하였던 것 같습니다. 책임감, 의무감이 교회생활, 신앙생활의 동기로 더 강하게 자리잡았던 것 같습니다. 이 땅에 예수님의 정의가 사라지고 있으므로 지켜야한다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는 복종심이 더 강하게 작용하였습니다. 우리 집 둘째 남자아이는 대학 기독교 동아리도 너무 열심히 하고 일주일에 3-4번 교회에 가는 열성파입니다. 그래서 부모 특히 부와 신앙에 대하여 갈등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름방학에 제가 한번 물어보았습니다. 왜 예수를 믿고 열심히 교회를 섬기느냐고. 아들은 나를 향하여 물었습니다. "엄마 그런 질문하시면 하나님이 섭섭해 하셔요. 예수가 좋아서 그래요." 하였습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아들이 예수님에 대한 관점 그 자체는 저보다 낫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 후 예수님의 따뜻함을 깨달아야지 하는 인습적인 생각만 들었지 너무 어려웠습니다. 물론 기도와 성경 읽기를 통해 매일 주님을 만나면 가능하겠지요. 그런데 이것이 그렇게 간단히 되지 않더라고요. 그러던 중 카톨릭신자인 한 자매로부터 명상에 관해 배웠습니다. 제가 좀 변형하여서 실행하였습니다. 얼마 안되었지만 저에게는 좋은 수단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세기에는 직접적인 생활체험이 모든 면에서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실행 중심의 신앙수단을 소개하겠습니다.
다른 생각을 버리고 집중하여 가슴에 예수님을 품는 것같이 생각합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귀중한 생각을 가지고 품은 다음 '예수님 제가 따뜻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탕자를 받아들이셨던 예수님의 따뜻함을 저에게 주시옵소서' 하면서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 따뜻함을 주소서. 주님의 불쌍히 여김을 이해하게 하여주소서 하면서 명상을 하고 시간이 나는 데로 하루에 3-4번씩 합니다. 눈을 감은 체로 자궁으로 내려가서 또 명상을 합니다. 자궁에 나와 갈등관계에 있는 사람, 어려움을 겪는 사람, 미래가 긍정적으로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사람을 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여기 품은 생명은 너무 소중합니다. 특별한 생명이기에 소중합니다. 이 아주 귀한 생명이 간절한 소망에 의하여 빛을 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원합니다. 어떤 자매님은 자궁요법을 하고 나서 말로 타이른 것이 아닌데 오랫동안 지속된 반항 끼와 세상의 냉소적인 태도의 아들의 눈빛이 따뜻하게 달라지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효험을 보았습니다. 딸아이가 마음이 여리고 약간 의존적이고 아프고 피곤하기 잘하여서 저에게 애정의 손길을 많이 요구합니다. 저는 주중에는 근무하고 주말에도 여러 일로 바빠서 집에 오면 축 처지게 됩니다. 그 것이 딸에게는 불만이었고 저는 딸에게 이제 대학생이면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의지로 어려움도 극복하고 씩씩하기를 은연중에 바래고 있고 마음속으로의 평가도 의지가 약하다고 내리고 있습니다. 자궁요법을 하였더니 딸아이에 대한 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너그러워지고 안쓰러웠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부탁을 하거나 음식을 만들어 주어도 힘들지 않고 기쁜 마음이 생겼습니다. 전에는 의무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언젠가는 독립적으로 만들어 주실 것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생명의식이라는 것인데 이는 전홍준의 생활의료 5단계 생명 건강법을 다룬 책인 '완전한 몸, 완전한 마음, 완전한 생명'에서 배운 것입니다. 모든 사물과 생명이 하나의 생명체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모든 사물, 모든 생명을 나와 연결된 고리로 여겨서 평등하며 귀하게 여깁니다. 모든 사람, 사물에게 눈을 맞추고 '사랑해요, 감사해요, 좋은 날들이 되세요'하고 사랑을 보내는 것이랍니다. 남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계산적이고 판단 적인 저를 바꿀 수 있는 방법 같아서 자주 실천하려고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부모님과 윗 형제 자매들이 제를 무척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유학당시 공부를 하여 과학자가 되겠다는 사람들 중에서 마음이 따뜻한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과 결혼하여 잘 살고 있습니다.(그러나 100% 따뜻하지는 않아요. 엄격할 때도 있어요) 너무 많은 것을 받았지만 남에게는 따뜻함을 받은 것의 백분의 일도 베풀지 못하였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따뜻한데 우리는 차갑게 있으면 우리가 주님의 뜻을 올바로 이해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저의 모습은 따뜻함의 근원이신 예수님에게서 따뜻함을 받기에 힘쓰기보다는 그늘에 쪼그리고 앉아서 나 자신의 힘으로 따뜻하게 되려고 힘을 쓴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마가복음 8장에서 베드로에게 물으셨던"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물음을 물으시며 주님의 뜻을 이해하시기를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형식적으로 주님을 인정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대답에 칭찬은 하셨어도 베드로도 그 때는 깊이 인식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주님이 사랑에 찬 뜨거운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가? 하고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차가운 마음이 뜨겁게 변할 수 있는 분임을 참으로 아는가? 하고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작은 자들에게 의무감에서가 아닌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뜨거움을 나눌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하시는 것 같습니다. 요한 1서 4장 12절에서도 이미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진정으로 자신을 보여주시기를 원하고 계시며 이는 사랑이라는 매체를 통하여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배울 자세가 되어있으면 예수님이 우리 마음의 확신을 주실 것이고 이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사랑 즉 뜨거움을 필요한 작은 자들에게 베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부분적으로나마 바로 이해한 후에 나야 예수님을 소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 기독교는 무조건 예수님 소개에 중점을 둡니다. 잘못 소개하면 소개 안 하는 것만도 못할 것 같습니다. 어떤 비평가들은 한국교회가 자폐증에 걸렸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세계는 있으나 외부와 단절된 그리고 교회의 존재 의미를 외부에 전달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존재 의미가 자기네만의 성곽을 쌓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주님의 원하시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일 것입니다.
진리, 생명이라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모습을 참으로 모르고 겉으로만 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진리, 생명의 경우도 우리가 참 모습을 모르고 겉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우리는 예수님이 강조하신 불쌍히 여김, 공의를 사모함을 말로만 되뇌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접목되어 우리의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도록 서로 북돋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그동안 저는 너무나도 약삭 바르고 이기적이었습니다. 새해에는 좀더 예수님의 뜻을 진정으로 살피어서 마음 깊이 따뜻하게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각자가 다른 모양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애타게 알기를 원하시는 뜻을 깊이 생각하여 간직하기로 합시다. 과거 천년은 예수님이 너무나 갇혀 사신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천년에도 희망이 밝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뜻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적어지고 또 알아도 예수님의 세계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우리 새길교우들은 생각이 깊으시고 올바른 것을 추구하기 위하여 부단히 애쓰다 이 교회까지 선택하게 된 것으로 압니다. 우리마저 예수님을 깊게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님은 너무나도 외로우시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여학생은 상담선생님에게서 상담을 6회 이상 받고 많이 밝아졌다는 것을 알고 무척 위안이 되었습니다. 새천년을 맞이하여서 사람들은 매우 들떠 있지만 예수님은 아직도 답답해하시고 계실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답답하심을 풀어 드리도록 같이 노력하십시다. 예수님에게 눈길을 맞추고 주파수를 맞추어 예수님이 너무나 원하셨던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하여 예수님의 따뜻함을 힘껏 펼치는 새길인이 됩시다. 너무 부족한 저의 말을 참고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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