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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회의 대희년 맞이

누가복음 성염 교수............... 조회 수 1961 추천 수 0 2008.07.13 09: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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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4:16-30 
설교자 : 성염 교수 
참고 : 새길교회 2000.5.28 주일설교 

로마 교회의 대희년 맞이  - 그리스도교의 개선주의(凱旋主義)를 청산할 시점에서

1. "갈라져 나간 형제들에게 용서를 청하는 바입니다."

지난 3월 12일 사순절 첫 주일을 당하여 로마 주교는 "사순 첫 주일에 베드로의 후계자 주변에 영적으로 한데 모인 교회로서는 모든 신자들의 죄과에 대해서 하느님의 용서를 구하는데 이상적인 기회라고 여겨진다."(당일 요한 바오로 2세 설교, 3)면서 특히 그리스도교가 유럽의 지배세력으로 행세한 지나간 1000년간 교회 이름으로 저질러진 죄악들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하는 예식을 거행한 바 있다.
그 참회 예절에서는 맨 먼저 "그리스도의 몸의 일치를 해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는데 「종교간 대화평의회」 의장(로저 에체가리 추기경)이 로마 교회를 대표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일치를 해치고 형제애를 손상시켜온 죄를 인정"하였고, 이어서 로마 주교 요한 바오로 2세가 "수난 전날 밤 하나되라고 기도하신 분의 뜻에 불복하여 신자들이 서로 맞서고 분열하고 서로 단죄하고 서로 대항하여 싸웠습니다."라고 고백하였다. 이로써 1520년 레오 10세의 칙서로 마르틴 루터의 41개 이단 조목을 지적하고 루터가 이 문서를 불사르자 1521년에 그를 파문한 로마 교회의 행위는 하느님과 인류 앞에서 교회의 일치를 깨뜨린, 죄되는 처사로 선언되었다.
그리고 1547년 트렌토 공의회에서 의화교리로 그를 단죄한 조처도 무효화되었다. 트렌토 공의회는 "오직 믿음으로 죄인이 의화된다고 말하면서, 의화의 은총을 얻기 위해 협력하는 일이 일체 요구되지 않는다고, 또 죄인이 자기 의지를 움직여서 준비하거나 그럴 자세를 갖추는 일이 전혀 필요치 않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자는 파문을 당할 것이다."(1547년 트렌토 공의회, Canones de iustificatione, 9: DS 1559)라고 선언하였지만, 그로부터 450년이 지난 1999년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루터교 세계연맹과 가톨릭 교회의 의화교리에 관한 합동선언문」은 의화교리에 관한 한 루터의 입장에 가깝게 기본합의를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의 구원 은총에 전적으로 의지한다고 우리는 함께 고백한다. 사람이 이 세상의 다른 사람과 사물에 대하여 갖는 자유는 구원과 관련된 자유가 아니다. 사람은 죄인으로서 하느님의 심판에 놓여 있으며, 구원을 얻기 위해 스스로 하느님께 향할 수도 없고, 하느님 앞에서 공로로 의화를 얻을 수도 없으며, 자신의 능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의화는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으로만 이루어진다."(19항)

2. 나사렛 사건의 의미

오늘 봉독한 '나사렛 사건'은 유혹사화 (누가 4,1-13) 바로 다음에 나온다. 복음사가가 나사렛 사건을 유혹 사화 바로 다음에 편집하고, 마치 예수의 첫 데뷔 설교가 실패로 끝난 것처럼 묘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기 30년경의 모월 모일 안식일[토]. 장소는 팔레스티나 갈릴리 나사렛 마을 회당 안이다. 그날 따라 마을 사람들이 온통 다 모였고 회당 안은 긴장과 흥분이 한껏 고조되어 있었으리라. 이 마을 출신, 요셉의 아들 예수가 드디어 귀향연설을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고매한 인품이며 청중을 사로잡는 언변이며 병이란 병은 모조리 낫게 한다는 기적술이 선풍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그 자리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게도 아주 중대한 자리였다. 적어도 누가복음에 의하면 설교가로서의 데뷔 무대였다. 여기서 잘못되면 그의 공생활 전체가 어긋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이 첫머리에 실수를 저지르면 벼라별 결과가 뒤따를 수 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선포 전부를 망칠 수도 있다. 커다란 기대감, 발작에 가까운 어떤 기대감이 부풀어 있음을 예수는 직감하였다. 사람들의 눈이 모두 예수에게 쏠렸다. 그토록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니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 한번 들어보자는 눈초리였다.
처음 분위기는 무척이나 호의적이다. "회당에 모인 모든 이의 눈이 예수께 쏠렸다." "모두들 그분에 대해 좋게 말하며 그분 입에서 나온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래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하고 감탄하였다(20-22절).
그러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반전된다. 22절과 23절 사이에는 분명히 복음사가가 일부러 지워버린 듯한 사건이 있었을 테고 그것을 모르는 우리들로서는 깊은 단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하튼 분위기가 급격히 악화되었고, 예수께서도 물러서지 않으신다. 사람들의 감정이 극도에 달한다. 결말은 폭력적이고 파국적이다.
그 다음 이야기는 우리도 안다. 예수께서는 동네 밖으로 끌려나가서 맞아죽을 지경이 되었고 도망가듯이 서둘러 떠나셔야 했다. 그분의 데뷰 설교는 엉망으로 끝났다. 단 하루에 만사가 절단나고 그의 공생활은 실패하고 만 것 같았다. 그분은 분명히 패배하고 떠나가신 것이다. 이것은 복음적 쇼크라고 부를 만하다. 누가가 그분의 자존심을 살려낸 유일한 언급은 예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는 글귀뿐이다(30절: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22절과 23절 사이의 문맥의 반전은 무척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최근 로마 교회의 언행을 목격하면서 복음사가 누가의 숨은 의도가 이 단절 속에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가 의도적으로 예수의 데뷔 설교를 실패로 처리하였으리라는 생각이다. 유혹사화 바로 뒤에 나사렛 사건을 배치함으로써 예수의 행적에서 개선주의(凱旋主義)를 처음부터 봉쇄해 버렸으리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로마 교회의 사건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세계적인 집단이 과거의 죄과를 인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리스도교 전체 특히 로마 가톨릭 교회는 여태까지 여러 세기를 두고 개선주의(凱旋主義)를 표방해 왔다. 로마 교회의 이번 행동은 이제는 더 이상 숫자를 과시하는 (숫자상으로는 이미 이슬람이 세계 제 1의 종교가 되었다.) 종교가 아니고 우리 무력한 양심의 힘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지경을 의식하기 시작하는 듯하다. 이제는 교회가 괴로워하고 자신을 잃고 패배하고 동시에 하느님 백성의 고통과 비참에 시선을 돌리는 교회의 겸허한 소리를 듣기 시작하였다는 느낌이 든다. 더 이상 고고하고 뽐내고 군림하는 교회가 아니기를...
지금 교황 카롤 보이티와는 80여세에 다가가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본인의 운명을 내다보기 시작한 듯하다. 황궁 같은 로마 교황청의 피라밋 식의 권위주의를 그냥 두고, 동공화하는 유럽 교회 위에 군림하는 로마 교회의 폐허를 등뒤에 남기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난 1000년 세월, 그리스도교가 유럽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해온 천년 세월 동안 로마 교회를 중심으로 저질러진 죄악, 그리스도인들의 핏속에 녹아있는 죄과를 그대로 두고 역사의 무대에서 떠나는 것이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역사상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모든 죄악의 무거운 기억, 발설이 금기시되어 가톨릭의 지성인들을 항상 곤혹스럽게 만드는, 납 덩어리같은 양심의 짐... "십자군", "유대인 박해와 학살", "이단심문과 마녀재판", "동방교회와의 분열, 개신교와의 분열, 30년 전쟁", "죠르다노 브루노, 갈릴레오 갈릴래이, 죤 휴스..." 나사렛 사건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그리스도교의 역사, 적어도 로마 가톨릭으로 대표되는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실패한 역사였다!

3.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하였다!"

그래서 교황은 무죄한 사람들의 피로 얼룩진 그리스도인들과 인류의 괴로운 "기억을 정화"할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서기 2000년을 앞두고 교황은 그리스도교 역사, 적어도 로마 가톨릭의 역사는 실패였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그리고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작정하였다. 대희년을 준비하는 교황의 회칙(回勅) 『삼천년기(Tertium Millennium)』(1994)에서 그는 대희년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교회에 있어서 희년은 정확히 이 '주님의 은총의 해'이며, 죄와 그에 따르는 벌을 사해주는 용서의 해, 상반된 집단 사이의 화해의 해, 다양한 회개와 성사적 성사외적 참회의 해입니다."(『삼천년기』 14항)
그리고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하느님과 인류 앞에 참회할 죄상을 꼽기 시작하였다(『삼천년기』 33-36항에서 참회할 내용을 미리서 열거). "교회는 자기 자녀들의 죄과를 더욱 철저하게 의식하여야 할 것이며... 반증거와 추문의 행태를 보이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에 빠져들어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의 정신에서 벗어났던 역사의 모든 시대를 그 자녀들에게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33항)
맨 먼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원하신 일치를 저해한 죄악들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반드시 그 죄들을 보상하고 간절하게 그리스도의 용서를 청하여야 한다." (『삼천년기』34항)고 다짐하였다. 두 번째로는 역사의 또 다른 고통스러운 장에서, "특히 어떤 세기들에서, 진리에 봉사한다는 미명 아래 불용과 폭력 사용마저 묵인하였던 부분"(35항)을 꼽았다. (흥미있는 것은 1520년 마르틴 루터의 이단사상을 열거한 교황의 칙서에는 "터키인들을 통해서 하느님이 우리 죄악을 찾아보시는 것이므로, 우리는 터키인들과 전쟁을 걸어서는 안된다."는 루터의 명제가 이단사상(34항)으로 지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또 "이단자를 화형에 처하는 것은 성령의 듯에 위배되는 짓이다."라는 마르틴 루터의 명제도 이단으로 꼽혀 있다.(33항)
여하튼 로마 교회 요한 바오로 2세의 행동은 교회가 역사적으로 실패하였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적어도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교회의 개념 자체가 전적으로 달라져 버린다. 교회의 존재방식과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보다는 죄인들의 모임으로 드러난다. 최근 가톨릭 신학자가 교회를 일컬어 「거룩한 창녀」라는 양의어를 띤 호칭을 만들어냈다. 악마에게든 군주들에게든 절하고서 권세를 쥐자마자 나자렛 사람의 후예들은 신성로마황제를 대관하고 십자군을 일으키고 인간들을 화형에 처하면서 권력을 행사해왔다, "악마적으로"! 지금도 세도를 부리거나 특권을 누리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고 실패한 얼굴이다.
세계제일의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이 16세기 종교분열의 상징물이듯이 어디서나 높이 솟아오르는 교회건물들은 성전꼭대기에서 몸을 날려보라는 악마에 유혹에 굴복해온, 실패한 교회의 얼굴이다. 몇 백 억의 건축비를 자랑하는 대교회들은, 비록 사막에 지천인 돌들을 빵으로 만들더라도 그 빵을 먹고 살아남아야 할 가난뱅이들이 그 빵을 다시 성전에 바치게 만드는 사슬이 교회인사들에게 있음을 폭로하는 반대 증거의 물증들이다. "중산층의 교회"라는 한국 가톨릭의 명칭은 더없이 부끄러운 모습이듯이.
나사렛 사건을 위시해서, 가톨릭 교회의 실패한 얼굴과 그 자백은 결국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밖에 설교할 것이 없다는 바울로의 결론으로, 우리가 전하려는 하느님의 신비는 "십자가에 처형되신 예수 그리스도"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으로 끌어간다(1고린 2,2).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하였다"(L'aveugle parfois a consol le voyant) 이것은 금세기 가장 훌륭한 종교화가 루오가 자기의 화첩 「MISERERE」의 한 폭 그림에 붙인 제목이다. 로마 교회의 모습에서 우리나마 그 지경에 빠지지 않았음을 위로로 삼자는 말이다. 아니면 타산지석의 교훈을 삼을 수도 있겠다. 로마 주교는 "우리 시대의 죄악들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앞에 지니고 있는, 책임에 대하여..."(『삼천년기』36항)도 진지한 양심성찰을 호소하고 있는데 이것은 신구교를 망라하는 호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반도 50년 기독교 역사에 대해서, 군사독재하의 우리의 입장과 침묵에 대해서, 우리 지성인들의 자칫 바리새적이고 율법학자적인 생활자세에 대해서 함께 참회하자고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나사렛 사건에서 건네진 하느님의 말씀은 구교와 보수교단을 "매우 치는" 곤장이면서도 우리의 삶마저 보다 더 복음에 가깝게 만드는 은총일 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양편에 날이 서 있는 까닭이다(히브리서 4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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