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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무화과 철

마가복음 민영진 목사............... 조회 수 2657 추천 수 0 2008.07.15 13:07:02
.........
성경본문 : 막11:12-14 
설교자 : 민영진 목사 
참고 : 새길교회 2000.7.23 주일설교 
마가복음 11장 12-25절의 말씀은 다음 같습니다.

(12)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마가 11:12-14)

(15)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16)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마가 11:15-18)

(20)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容恕)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마가 11:20-25)

예수께서 배가 고프셨습니다. 마침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서 무화과를 따서 드시려고 가까이 가셔서 무화과를 찾으시는데, 정작, 기대하셨던 과일이 없습니다. 일이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잎사귀만 무성한 그 무화과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 나무에 대한 저주(詛呪)입니다. 마가복음서 기자는 예수께서 그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때가 아직 무화과가 열릴 철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마가 11:12-14).
다음 날 아침 같은 곳을 지나다 보니 그 나무가 말라서 죽어 있습니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이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버린 것"이 놀라워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가 말랐다는 사실을 예수께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같으면, 무화과가 열릴 철이 아닌데 왜 무화과를 찾으셨느냐고, 또는 철이 무화과 철이 아닌 때 무화과나무를 찾는 것이 잘못이지, 왜 애매하게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느냐고 여쭈어보았을 법 한데,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그렇게 쉽게 말라버린 것만이 놀라웠던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 말씀이,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容恕)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고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마태 21:22-25).

제자들은 무화과 철도 아닌데 무화과를 찾으시는 예수님의 예외적인 행동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무성한 잎의 무화과나무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말라 죽어버리는 것, 싱싱하던 나무를 그렇게 말라 죽이는 그러한 "능력"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한다면 이 정도의 기적뿐만 아니라 산을 뽑아 바다에 던질 수도 있다고 대답하십니다. 이까짓 것 나무 하나 말라서 죽는 것을 보고 뭘 그리 놀라느냐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드나들던 제자들의 관심과, 오늘날 그런 기록을 읽고 있는 우리의 관심은 사뭇 다릅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잎이 무성하던 그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고 곧바로 말라버린 것이 놀랍고 신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저주를 받고 나무가 말라죽는 것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놀라움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한 기적도 베푸시는 분인 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어째서 예수께서는 무화과가 결실되는 철을 모르시고 그 나무에 접근을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직은 무화과 열매가 달릴 계절이 아닌데, 그래서 아직은 아무도 무화과나무에서 그 열매를 기대하지 않는 철인데, 바로 그런 때에 예수께서는 무화과를 딸 수 있을까 기대하시면서 그 무성한 잎을 헤쳐보신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바로 이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둘째는, 왜 아무런 잘못도 없이 잘 자라고 있는 무화과나무를,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고 함부로 생명을 저주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직 열매 맺힐 철이 아니어서 열매가 맺지 않은 것뿐인데, 그러기에 그 나무가 저주를 받아야 할 아무런 까닭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그 나무를 열매가 없다고 저주하셨으니 우리로서는 예수님의 행위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제자들의 태도입니다. 예수께, 왜 우리처럼 이런 궁금한 것, 곧 아무런 잘못도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느냐고 여쭙지 않고, 기껏 잎이 무성하게 살아있던 나무가 어떻게 그렇게 마르게 되었는지, 그것만을 문제 삼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의심하지 않고 믿고 기도할 것, 남을 용서하고 자신도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것, 그러면 이런 놀라운 기적을 베풀 수 있다는 것, 아니, 이보다 더 큰 기적, 곧 산을 바다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시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꼭 그렇게 멀쩡한 무화과나무를 애매하게 말라서 죽게 하시면서 그런 교훈을 가르치셔야 한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차라리 능력을 보이실 생각이셨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가나무가 기적적으로 열매를 맺는 쪽으로 기적을 베푸셔야 했던 것은 아닙니까?

그런데, 예루살렘 부근에서 자라나는 무화과를 자세히 관찰할 수 없는 우리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주변의 무화과나무는 일반적으로 3, 4월에 잎이 파릇파릇 돋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는 것은,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6, 7월경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 본문에서 눈 여겨 보아야할 것이 또 하나 더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무화과철도 아닌데 무화과를 찾으신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 무화과 철도 아닌 때에, 그것도 한 무화과나무에만 "잎이 무성(茂盛)한" 것도 실은 대단히 예외적인 것입니다. 무화과 철도 아닌 유월절(踰越節) 기간(3, 4월)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라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대단히 예외적인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마가복음서 기자가 "지금이 무화과 철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다만 과일이 달릴 철이 아니라는 말만이 아니고, 잎이 무성할 철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무화과 잎이 무성하면 그 나무는 당연히 과일을 맺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잎이 무성할 철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잎이 무성했다면, 보는 이는 비록 무화과 철이 아니라 하더라도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잎이 무성하면 으레 거기에는 과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주를 받은 그 나무는 "잎만 무성했지" "과일을 맺지는 않았습니다". 초점은 내실(內實)이 없이, 허장성세(虛張聲勢), 거품만 요란(搖亂)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자마자,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지고 곧바로 사형언도를 받고 처형을 받아 죽게 되십니다 (15장). 예수께서 무화과나무에 접근하셨을 때, 예수께서는 그 무화과나무를 하나의 실례(實例)로 그리고 하나의 경고(警告)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곧,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어떤 일이 미칠지를 경고하시는 실례로 무화과나무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 오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이란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입니다. 유대교는 전세계 모든 민족을 위한 복의 근원이 되기보다는 전세계 모든 민족에게 베풀 유익한 열매를 맺기보다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그 민족 자신의 특권을 잘못 사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구체적 사례가 "만민(萬民)의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掘穴)"로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마가 11:12-18).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기도(祈禱)를 통하여 산을 뽑아 바다로 옮길 수 있는 능력(能力)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능력은, 신비한 능력을 사사롭게 사적인 욕망을 위해 사용하는,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을 놀라게 하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 희망을 가지게 하는 데 악용되는 그런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말씀하고자 하신 것은 그러한 능력의 발휘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은 오직, "믿음"과 "용서(容恕)"에서만 나온다고 하는 것입니다(마가 11:25).
이제 여러분들의 오해가 풀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결코, 당신 자신이 배가 고프다고 하여 과일나무가 과일을 맺지 않은 것을 저주하는 것과 같은, 사사로이 사적인 욕망을 위해, 거룩하게 부여받은 능력을 사사로이 사용할 수 있음을 과시하려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철도 아닌데, 잎사귀만 무성해 가지고 마치 그 속에 열매가 가득 달렸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주고 있는 당시의 유대교를, 당신 자신의 종교를, 저주하신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거듭 말씀 드립니다마는 예수께서는 당신의 신비한 능력을 사사로이 사적인 욕망을 위해 마음대로 사용하여 관중들에게 거짓 희망을 과시하려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하나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겉만 화려한 열매 없는 종교의 운명을 말씀하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살아있는 나무를 말라죽게 하는 능력 그 이상의 능력을 제자들도 가지게 될 터인데, 곧 하늘과 땅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터인데, 그런 능력은 "의심 없는 믿음"과 "원수(怨讐)를 향(向)한 자비(慈悲)"에서 나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 나라 기독교는 큰 성장을 지속해 왔습니다. 4천만 인구 중에서 1천만이 기독교인이라고 본다면 이러한 "교회 성장(成長)"은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속에 무화과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대 그 열매란 사도 바울이 말한 "성령의 열매"라고 생각하여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잎사귀가 무성한 성령나무!
따라서, 우리의 선교적 관심이 어디로 쏠려야 하는 것인지 분명합니다. 우리 나라 기독교는 자신이 확보한 1천만 교인을 그리스도 안에서 양육하기에 역부족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교인의 수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교인 수가 줄어들면 우라는 큰일 나는 것처럼 생각하고, 기독교인들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거나 속수무책입니다. 좋은 예가 있었습니다.
한참 기독교인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을 때, 한 신문의 칼럼 기사를 보니까, 시장에서 채소 장수를 하는 할머니 한 분이, 자기에게서 야채를 사서 가지고 가는 한 부인을 가리키면서 '저 부인은 기독교인데도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만큼 우라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서 신임을 잃고 있는 형편입니다. 퍽 오래 전 일입니다 마는 어떤 글에 보니까 어떤 목사를 가리키면서, "그 사람은 목사지만 믿을 만 하다"고 말하는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이것도 유인물로 나온 기록입니다. 모 교단 총회에서 그 교단 소속 교인 수 보고가 있었는데, 전년에 비해 700명이나 줄어들었더랍니다. 이 보고가 끝나자 의장 석에 앉아 있던 총회장이 "우리가 신도 700을 잃었으니 참회의 통성 기도를 하자"고 하여 총대들이 3분 동안 7백 명 잃은 것에 대하여 참회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말하여 준 그 필자는, 교인 칠백 명 잃은 것을 통회하여 3분간 참회의 통성 기도를 해야 한다면, 오늘날 교회의 위신이 바닥에 떨어진 것에 관해서는 과연 얼마나 참회의 기도를 해야할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교인의 수에는 민감한 한국 기독교가 왜 내실에는 둔감한지를 묻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본문에 나오는 용어로 말한다면, 잎사귀를 무성하게 하는 데에는 민감하면서 열매를 맺게 하는 일에는 왜 둔감하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당신 자신의 종교였던 "당시의 유대교"를 저주하심으로써, 새로운 종교 기독교가 탄생하게 하였습니다. 2,000년 동안 성장했고, 꽃을 피웠고, 열매를 맺었고, 세계 교회는 우리 나라에 까지 와서 우리의 토양에 이 나무를 심었습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놀라운 성장을 했습니다. 잎사귀가 무성해 졌습니다. 어쩌면 이만큼 성장할 철이 안 되었는데도 예외적으로 이렇게 잎사귀가 무성해 졌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 나라 기독교의 예외적인 성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외국 교회들도 우리 나라 교회의 급성장을 보고 탄복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렵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서 열매를 못 따실 것 같아 두려운 것입니다. 열매가 없으려면 잎이라도 무성하지 말 것이지, 잎은 무성한데 그 무성한 그 무화과 잎이 반드시 함께 가지고 있어야할 무화과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예수께서는 다시 한 번, 우리에게서, 당신 자신의 종교인 기독교를 포기하셔야 하는 모험을 감행하셔야 할 것입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그러한 믿음의 경지에까지 이르면, 우리의 기도는 산을 옮겨 바다에 빠트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능력은 "용서(容恕)"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갑자기 "용서"입니까? 현재의 문맥에는 맞지 않는 것 같은 말이어서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도 별로 주목하지 못한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용서와 능력 사이의 인과 관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계십니다.
지난 4-5년 동안 우리나라 교회들이 총회를 할 때마다 일본 교단 대표들이 그 총회에 참석하여 일본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 때마다 각 교단은 그 죄 고백을 접수(接受)만 했지 한 번도 용서한다는 용서의 선언을 한 바가 없습니다. 이젠 일본을 용서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베트남에 대해서도 양민학살을 했네 안 했네 하는 갑론을박(甲論乙駁)보다는 어쨌든 우리군대가 관련하여 벌인 전투에서 결과적으로 양민이 희생된 것에 대해서는 용서를 비는 것이 마땅합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북침(北侵)이다 남침(南侵)이다 하는 논쟁 이전에 지난 반세기 동안 분단되어 있던 동안 우리가 북한에 대하여 직접 간접으로 잘못한 것에 관해서는 먼저 용서를 비는 것이 용서받는 절차이고 북한의 사과를 받을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우리가 피차에 용서하여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시고, 이렇게 용서하고 용서받을 때 우리에게서 "산을 옮길 만한 능력"이 작용할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이 아니고서는, 오늘의 우리의 말라죽기 직전의 개인적 사회적 세계적 중병(重病)을 고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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