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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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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04-04-04 열린교회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 19:30)
가상칠언 중 여섯 번째 : “다 이루었다”
1. 서론 :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하신 때
- 일곱 번째 말씀(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이 개인적인 고백인 것을 감안할 때, 여섯 번째 말씀은 사실상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행하신 마지막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신의 생애 가운데 한번도 반복된 적 없는 유일무이한 말씀이다. 예수님의 생애에는 괄목할만한 일이 많았다(사단의 시험을 마치시고 갈릴리로 돌아가신 것, 벳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신 것,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 등). 그러나 그런 수많은 일을 행하시고도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이 순간에 그분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2. 본론
1) 망가진 피조세계의 회복을 위해
-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에는 죄가 가득차게 되었고, 하나님의 신성의 충만을 드러내던 태초의 아름다움은 모두 깨뜨려져 버렸다. 인간 안에 깃들었던 찬란한 영광도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망가진 이 세상에서 죄의 저주를 한 몸에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두 가지 은총을 주셨다. 첫째는 육체의 죽음을 유보해주셔서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를 주신 것이고, 둘째는 그들을 절망적인 상태에서 구원해 낼 메시아를 약속하신 것이다.
- 하나님께서 인간을 많이 사랑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 안에 있는 죄는 사랑하실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은 죄를 지을 능력은 있어도 죄에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은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제사제도를 통해 바쳐진 제물이 헌제자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게 하셨고, 그것을 통해 한시적으로나마 하나님을 뵈올 수 있게 하셨다. 이것을 통해 인간은 죄에 대한 끔찍한 하나님의 심판과 자기가 지은 죄를 짐승에게 전가하셔서 죄 있는 자기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 그러나 이러한 제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이것은 메시아가 오셔서 죄인들을 위해 죽을 것을 예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 태어나셔서 율법의 요구대로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죄 있는 제물이 되어 죽으셨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많이 사랑하셨고 끔찍이 아끼셨지만, 자기의 아들보다는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
2)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자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은 구원받을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신 희생 제물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우리는 피로 물든 십자가에서 본다. 예수님은 마지막 남은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까지 우리를 위해 모두 흘리시고 죽으셨다. 하나님 자신이시고 생명 자체이신 그분, 하나님과 탁월한 친교 속에 살던 그분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으셨을 때 예수님이 느끼셨을 고통은 어떠하셨을지 우리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의 심장이 있어야 한다. 예수의 마음이 살아 역사하는 만큼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일평생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고 그 인식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항상 사랑의 부채의식이 있다. 믿음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내게는 그분 밖에는 의지할 분이 없다는 고백이다. 믿음이 생길수록 우리에게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주님이 죽으신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처침히 죽으셨으니 나는 이제 그분의 사랑을 어떻게 감당할까, 눈물 흘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3) 은혜에서 미끄러진 사람들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명한 복음을 알고 그 피로 속죄함을 받은 사실을 고백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전에 행하던 더러운 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단정하고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모든 죄를 용서받은 사람답게 새 삶을 살고 싶어 하였다. 그런데 이제 그 은혜 가운데서 미끄러진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이 있다.
- 우리의 두 눈에서 그리스도로 인한 눈물이 멈추고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던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이전에 행하던 죄보다 더 더럽고 악한 죄 가운데로 걸어 들어갈 때 우리는 우리 주위 지체들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십자가 앞에 자신을 목 박는 삶이 없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무슨 좋은 일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없는데 세상에서 조금 더 누리는 것으로 행복할 수 있겠는가?
- 일주일 동안 한 번도 기도하지 않고 주일에 나와서 그래도 은혜받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를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실을 조사하여 방종하고 오만한 신앙생활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지 복음이 울려 퍼지는 예배당을 드나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원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오만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돌아보아야 한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원의 역사를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 그 길을 따라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것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보다 더 더러운 죄인이었던 때에도 우리의 공로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다. 구원받은 신자인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용서의 십자가이고, 정결케 하는 십자가이다. 우리 모두 다시금 그 피로 깨끗이 씻겨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2004-04-04
가상칠언 중 여섯 번째 : “다 이루었다”
1. 서론 :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하신 때
- 일곱 번째 말씀(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이 개인적인 고백인 것을 감안할 때, 여섯 번째 말씀은 사실상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행하신 마지막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신의 생애 가운데 한번도 반복된 적 없는 유일무이한 말씀이다. 예수님의 생애에는 괄목할만한 일이 많았다(사단의 시험을 마치시고 갈릴리로 돌아가신 것, 벳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신 것,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 등). 그러나 그런 수많은 일을 행하시고도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이 순간에 그분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2. 본론
1) 망가진 피조세계의 회복을 위해
-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에는 죄가 가득차게 되었고, 하나님의 신성의 충만을 드러내던 태초의 아름다움은 모두 깨뜨려져 버렸다. 인간 안에 깃들었던 찬란한 영광도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망가진 이 세상에서 죄의 저주를 한 몸에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두 가지 은총을 주셨다. 첫째는 육체의 죽음을 유보해주셔서 하나님께 돌아올 기회를 주신 것이고, 둘째는 그들을 절망적인 상태에서 구원해 낼 메시아를 약속하신 것이다.
- 하나님께서 인간을 많이 사랑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 안에 있는 죄는 사랑하실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은 죄를 지을 능력은 있어도 죄에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은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제사제도를 통해 바쳐진 제물이 헌제자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게 하셨고, 그것을 통해 한시적으로나마 하나님을 뵈올 수 있게 하셨다. 이것을 통해 인간은 죄에 대한 끔찍한 하나님의 심판과 자기가 지은 죄를 짐승에게 전가하셔서 죄 있는 자기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 그러나 이러한 제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이것은 메시아가 오셔서 죄인들을 위해 죽을 것을 예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율법 아래 태어나셔서 율법의 요구대로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죄 있는 제물이 되어 죽으셨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많이 사랑하셨고 끔찍이 아끼셨지만, 자기의 아들보다는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
2)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자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은 구원받을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신 희생 제물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우리는 피로 물든 십자가에서 본다. 예수님은 마지막 남은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까지 우리를 위해 모두 흘리시고 죽으셨다. 하나님 자신이시고 생명 자체이신 그분, 하나님과 탁월한 친교 속에 살던 그분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으셨을 때 예수님이 느끼셨을 고통은 어떠하셨을지 우리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의 심장이 있어야 한다. 예수의 마음이 살아 역사하는 만큼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일평생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고 그 인식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항상 사랑의 부채의식이 있다. 믿음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내게는 그분 밖에는 의지할 분이 없다는 고백이다. 믿음이 생길수록 우리에게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주님이 죽으신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처침히 죽으셨으니 나는 이제 그분의 사랑을 어떻게 감당할까, 눈물 흘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3) 은혜에서 미끄러진 사람들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명한 복음을 알고 그 피로 속죄함을 받은 사실을 고백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전에 행하던 더러운 죄를 십자가에 못 박고 단정하고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모든 죄를 용서받은 사람답게 새 삶을 살고 싶어 하였다. 그런데 이제 그 은혜 가운데서 미끄러진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이 있다.
- 우리의 두 눈에서 그리스도로 인한 눈물이 멈추고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던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이전에 행하던 죄보다 더 더럽고 악한 죄 가운데로 걸어 들어갈 때 우리는 우리 주위 지체들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십자가 앞에 자신을 목 박는 삶이 없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무슨 좋은 일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없는데 세상에서 조금 더 누리는 것으로 행복할 수 있겠는가?
- 일주일 동안 한 번도 기도하지 않고 주일에 나와서 그래도 은혜받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를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실을 조사하여 방종하고 오만한 신앙생활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지 복음이 울려 퍼지는 예배당을 드나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원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오만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돌아보아야 한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구원의 역사를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 그 길을 따라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루신 것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보다 더 더러운 죄인이었던 때에도 우리의 공로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다. 구원받은 신자인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용서의 십자가이고, 정결케 하는 십자가이다. 우리 모두 다시금 그 피로 깨끗이 씻겨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200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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