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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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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04-04-11 열린교회 |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요 20:15)
1. 부활의 첫 영광을 본 여인들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영광의 모습을 먼저 본 것은 사도들이 아니라 여인들이었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은 안식 후 첫날(오늘날 주일 아침) 예수님이 누웠던 무덤에 찾아갔다. 그러나 그분이 입으셨던 수의는 개켜있고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달려가 사실을 고하자 사도들이 달려왔고 그들은 예수님이 안 계신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고, 이 여인들만 남았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보이셨다.
- 왜 예수님은 이 이름 없는 여인들에게 당신의 부활하신 첫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주신 것일까? 우리는 이 질문 앞에 먼저 예수님의 고난의 현장을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그 십자가 앞에 참회했던 사람들은 사도들이 아니라 이 여인들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여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 속에는 예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부끄러움과 수치밖에 아무 것도 돌아오는 것이 없는 고난의 행렬에 동참하게 되었고,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그들은 이미 시체가 되어버렸을 예수님의 무덤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 그 때문에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의 첫 영광을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인들에게 보이신 것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빈부나 귀천이나 차별이 없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영광을 보이셨고, 당신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셔서 그들의 영혼을 만지셨다. 그분의 인생이 그러했기에 예수님의 부활의 첫 영광을 이 여인들에게 보이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 오늘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한 사랑이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알고, 그분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랑의 열렬함이 결핍되어 있다. 오늘날 신자들이 모인 교회의 냉담함은 거의 배교에 가깝다. 매 주일 교회에 밀려드는 수많은 인파들 가운데에는 이미 인생의 관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매 주일 빈 무덤과 같은 교회에 찾아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실 때 그분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생각해보라.
2.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현재완료의 사건
-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분과 함께 삶의 현장에서 죽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부활의 영광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마음에 남아있는 부패한 자기 사랑으로부터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다.
-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을 선포할 때 그들은 항상 현재완료 동사를 사용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신 사신 사건은 예전에 일어났지만, 그 효과는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존재를 통해 반복적으로 경험되고 있음을 그들은 말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고백하는 사도바울의 고백 속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바이다. 하나님 앞에 충성된 일꾼으로 살아가기 위해 고난을 당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다시 깨닫게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옛 사람을 못 박았고, 그리스도 안에 새로워진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실 때 우리에게 기대하셨던 존재가 되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흘리며 이 순례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난의 길에서 말할 수 없는 지혜와 권능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 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순례의 길에서 하나님 앞에 진실한 신자로 살기 위해, 그리고 우리 자신의 허물을 인해 많은 고난을 받게 되지만, 우리는 그 고난의 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 안에 깊이 스며들어오는 것을 보게 된다.
3. 부활의 영광에 참여함
- 그래서 우리는 죽음의 놀라운 경험 때문에 이 세상이 하찮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또한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비록 고통스러운 것이나 그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동안 고통만 느끼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 빈 무덤 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인들에게 죽음의 큰 슬픔과 고통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부활의 첫 영광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다시 사는 비밀이 무엇인지 알게 하신다.
- 부활은 20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또한 주의 호령 소리와 함께 우리의 영혼이 영광스런 육체와 만날 그 사건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부활은 그 사이의 삶을 사는 동안 우리의 인생 가운데 끊임없이 경험되어야 할 사건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무엇인지 삶으로 경험하는 사람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된다.
-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람들, 주를 더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그들을 만나주신다. 날마다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을 알고,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을 보여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매일의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영광을 경험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2004-04-11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요 20:15)
1. 부활의 첫 영광을 본 여인들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영광의 모습을 먼저 본 것은 사도들이 아니라 여인들이었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은 안식 후 첫날(오늘날 주일 아침) 예수님이 누웠던 무덤에 찾아갔다. 그러나 그분이 입으셨던 수의는 개켜있고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달려가 사실을 고하자 사도들이 달려왔고 그들은 예수님이 안 계신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고, 이 여인들만 남았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보이셨다.
- 왜 예수님은 이 이름 없는 여인들에게 당신의 부활하신 첫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주신 것일까? 우리는 이 질문 앞에 먼저 예수님의 고난의 현장을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그 십자가 앞에 참회했던 사람들은 사도들이 아니라 이 여인들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여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 속에는 예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부끄러움과 수치밖에 아무 것도 돌아오는 것이 없는 고난의 행렬에 동참하게 되었고,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그들은 이미 시체가 되어버렸을 예수님의 무덤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 그 때문에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의 첫 영광을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인들에게 보이신 것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빈부나 귀천이나 차별이 없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영광을 보이셨고, 당신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셔서 그들의 영혼을 만지셨다. 그분의 인생이 그러했기에 예수님의 부활의 첫 영광을 이 여인들에게 보이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 오늘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한 사랑이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알고, 그분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랑의 열렬함이 결핍되어 있다. 오늘날 신자들이 모인 교회의 냉담함은 거의 배교에 가깝다. 매 주일 교회에 밀려드는 수많은 인파들 가운데에는 이미 인생의 관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매 주일 빈 무덤과 같은 교회에 찾아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그런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실 때 그분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생각해보라.
2.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현재완료의 사건
-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분과 함께 삶의 현장에서 죽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부활의 영광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마음에 남아있는 부패한 자기 사랑으로부터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것을 통해서 가능하다.
-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을 선포할 때 그들은 항상 현재완료 동사를 사용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신 사신 사건은 예전에 일어났지만, 그 효과는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존재를 통해 반복적으로 경험되고 있음을 그들은 말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고백하는 사도바울의 고백 속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바이다. 하나님 앞에 충성된 일꾼으로 살아가기 위해 고난을 당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다시 깨닫게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옛 사람을 못 박았고, 그리스도 안에 새로워진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실 때 우리에게 기대하셨던 존재가 되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흘리며 이 순례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난의 길에서 말할 수 없는 지혜와 권능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줄 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순례의 길에서 하나님 앞에 진실한 신자로 살기 위해, 그리고 우리 자신의 허물을 인해 많은 고난을 받게 되지만, 우리는 그 고난의 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 안에 깊이 스며들어오는 것을 보게 된다.
3. 부활의 영광에 참여함
- 그래서 우리는 죽음의 놀라운 경험 때문에 이 세상이 하찮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또한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비록 고통스러운 것이나 그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동안 고통만 느끼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 빈 무덤 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인들에게 죽음의 큰 슬픔과 고통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부활의 첫 영광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다시 사는 비밀이 무엇인지 알게 하신다.
- 부활은 20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또한 주의 호령 소리와 함께 우리의 영혼이 영광스런 육체와 만날 그 사건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부활은 그 사이의 삶을 사는 동안 우리의 인생 가운데 끊임없이 경험되어야 할 사건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무엇인지 삶으로 경험하는 사람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된다.
-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람들, 주를 더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그들을 만나주신다. 날마다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고,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을 알고,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을 보여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매일의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영광을 경험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200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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