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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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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고전13:1-3 |
|---|---|
| 설교자 : | 이주향 자매 |
| 참고 : | 새길교회 주일설교 |
인간은 사랑의 긴장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랑이 자주, 불행해지는 이유가요. 그래도 사랑이 없으면, 사랑이라는 꽃이 없으면 삶은 얼마나 심심하고 권태로울까 생각해봅니다. 성서의 유명한 사랑의 장 고린도전서 13장이 강조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요. 그러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가페 사랑과 에로스 사랑은 분명히 다른 거라고. 인간의 사랑과 말씀의 사랑은 다른 거라고.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럴까요? 정말 그럴까요? 인간의 사랑으로 육화되지 않는 말씀의 사랑이 공허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종교영화라고 봐야 제대로 보일 것입니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라는 영국영화. 주인공 베쓰가 매력적입니다. 말씀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정중하게, 그렇지만 습관적으로 무덤덤하게 기도하는 남자장로를 향해 베쓰가 신들린 듯 자연스럽게 말합니다. "말씀을 사랑할 수는 없어요. 사람을 사랑하는 거지." 물론 사람을 사랑한 베쓰는 말씀을 사랑하느라 사람 사랑을 하지 못하는 남자들에 의해 지옥으로 보내집니다. 그래서 베쓰의 말은 더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말씀을 사랑할 수는 없어요. 사람을 사랑하는 거지."
농부의 딸을 사랑한 사자가 있었습니다. 가부장 사회였으니까 사자는 농부에게 딸을 달라고 했습니다. 무지막지한 야수의 비위를 건드리고싶지 않은 농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의 크고 날카로운 이빨을 보면 딸아이 기겁을 할걸세. 그러니 그 이빨을 뽑고 올 수 없겠나?" 사랑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닌 사자는 이빨을 뽑았습니다. 평생 옥수수 죽을 먹고사는 한이 있어도 사랑하는 이 곁에서 살고 싶었으니까요. 이빨 빠진 사자를 보고 이번엔 농부가 주문합니다. "자네 그 발톱 말이야, 어디 꽃같은 처녀의 가슴에 낭만을 심을 수 있겠나?" 사랑에 눈 먼 사자는 물론 발톱도 뽑았습니다. 그 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타고난 야수성을 잃어버린 사자를 농부는 사위로 삼은 게 아니라 문 밖으로 쫓아내 버렸습니다.
[파라독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우화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랑으로 맹목이 되면 사랑도 지키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쩔까요. 생각해보면, '맹목'이야 말로 사랑의 본질일텐데요.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인생의 의미는 사랑이라고. 동의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명제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사랑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 인생의 의미일지라도 그것은 선험적인 요구일 수도, 구호일수도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일까, 사랑합시다, 사랑합시다, 라고 열심히 외치는 사람 중에 사랑하고싶은 사람 별로 없습니다.
박완서의 [미망]에는 선교사들이 나옵니다. 선교사들은 문명국 미국에서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대부분인 한반도에 찾아왔습니다. 와보니까 기막힙니다. 머리는 일년에 한번 단오날 창포로 감고, 옷은 일년에 네 번 춘하추동 갈아입고, 위생시설은 형편없고. 그들이 보기에 더럽고 냄새나고 무지한 이 한반도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저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 기도는, 저들은 사랑 받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하는 확인 기도 아닙니까?
만일 내가 그 선교사의 기도의 대상이었다면 기도해줘서 고마운 게 아니라 너 사랑하고 싶은 맘 나도 없으니까 나 사랑하려고 노력하지마, 내 삶에 끼여들려 하지마, 라고 냉정해졌을 것입니다. 사랑은 칸트식의 선험적 요구일 수도 없고 캠페인성 구호일 수도 없습니다. 사실 사랑이 구호가 되면 짜증이 납니다. 사랑을 통해서도 사랑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가진 자의 선행에 고마워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가 되면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성금도 내고 보육원에도 가고 양로원에도 갑니다. 사진 찍고 홍보하고... 정치인이라면 그 선행의 기록을 홍보지에 실어 돌릴 수도 있겠습니다. 의문이 듭니다. 홍보지 만들어 돌리는 그 이유 때문에 어쨌든 혜택을 입은 보육원의 고아들이, 양로원의 외로운 노인들이, 그리고 그 행동을 보는 우리들이 그런 행동을 '위선'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베푼다는 이유로 그걸 받아야 사는 자의 마음을 우리들이 무시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랑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너의 마음에 녹아들어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너를 내 삶의 장신구로 쓰려 하면 단박에 벽을 세워 경계하는 게 사람마음입니다. 사람은 영물입니다. 잠깐 스친 인연이라도 마음을 주고받으면 정말 마음이 맑아져서 마음을 열게 됩니다.
사랑은 선험적인 요구도 아니고 말로 해서 선행으로 실천할 수 있는 그런 구호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왜 사랑이 화두가 될까요.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우는 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할 때 사람이 깊어집니다. 성서의 말대로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많이 하는 말. 사랑은 받는 자가 행복한 게 아니라 하는 자가 행복하다고. 말 그대로는 말이 안 됩니다. 세상에 불행한 사랑도 얼마나 많습니까? 내 책 『나는 만화를 통해 철학을 본다』에서 내가 분석해 놓은 만화 서현주의 [건망증]은 그 불행한 사랑의 전형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지칠 줄을 모르고 티격태격 싸움을 합니다. 도대체 명랑한 여자와 건강한 남자는 왜 그렇게 싸울까요? 바로 남자의 건망증 때문입니다.
-5시간이나 기다렸어. 이제 그만 만나고 싶어진 거라면 그렇다고 솔직히 말하면 되잖아... 따발총처럼 기다림의 분노를 토해내는 남자의 말 사이에 황망해진 여자가 조심스레 끼어든다.
-저기, 나 말 한마디만 해도 되니? 오늘은 우리 만나기로 한 적이 없어.
아무 때나 기다리는 남자는 5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약속시간 잃어버리기는 게 특기인 남자는 여자 바람맞히기 일쑤다. 화가 난 여자가 이별을 선언한다. 이젠 끝이다.
그런데 끝이 끝이 되어본 적이 없다. 남자가 제일 잘 잊어먹는 게 여자와 이별했다는
사실이니까.
-이봐, 설마 그것마저 잊었다는 건 아니겠지. 우리가 어제 날짜로 헤어졌다는 거.
헤어졌다는 게 슬퍼서 밤새 씩씩댄 여자가 긴장이 탁 풀어져 화를 내며 말한다. 그러면 남자가 모르겠다는 듯 대꾸한다. 우리가 언제 헤어졌는데...
잘 잊어버리는 남자였지만 잊어버리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기억이 그렇게 찬바람이 될 기억이길래 이토록 남자는 잃어버리는 연습을 할까? 어둠이 내린 어느날 저녁 남자가 여자에게 투덜댄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하루종일 기다렸잖아.
-또 잊어버렸니? 우리 이제 다시 만나지 않기로 했잖아.
-온종일 기다린 대가가 겨우 이거야?...그런 약속 따위, 나, 기억 안나!
-지긋지긋한 건망증 환자... 나, 지난 달에 죽었잖아!...우리가 만났던 모든 곳들...이 공원...나...모두 다 잊어버려. 너, 그건 잘 할 수 있잖니.
그건 잘 할 수 있잖니, 남자가 걱정되어 지상을 떠나지 못하는 여자의 혼이 간절하게 남자를 감싸안지만 남자는 무표정하다. 여자의 혼이 바람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진 자리에서 갑자기 외로워진 남자가 눈물 한 방울을 뚝, 떨어뜨린다. 눈에 뭐가 들어간 것처럼 눈을 비비며 남자가 혼자 중얼거리는 게 마지막이다.
-방금 뭔가 지나간 것 같은데...에이 눈부셔, 아무래도 나 오늘 또 바람 맞았나봐.
여자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는데! 그런데 그 여자를 사랑한다는 기억을 버리지 못하는 남자, 그 남자의 건망증은 병이 아니라 행위다. 잊어버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젊은이의 무의식의 의도다.
그렇게 불행한 사랑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자가 행복하다는 건 사랑은 사랑하는 자의 것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사랑을 함으로써 배울 수 있는 생의 깊이가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받기만 하는 사랑은 사람의 깊이를 만들지 못합니다. 사랑으로 세계와 교감하지 못하니까요. 사랑을 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본능적으로 예민해져서 상대의 작은 변화를 민감하게 느낍니다. 그가 다치면 내가 다친 것이고, 그가 기쁘면 내 마음이 기쁩니다. 뭘까요? 함께 느끼는 능력입니다. 사랑은 내가 아닌 남을 나로 느끼는 능력입니다. 신비한 능력입니다.
그 사랑의 힘을 강조하는 철학자가 야스퍼스 입니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인간은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실존주의자인 야스퍼스는 사랑의 교통으로 인간은 실존으로 회복된다고 합니다. 실존으로 회복되는 사랑, 그 사랑은 어떤 걸까요? 무엇인지를 생각하는데 무엇이 아닌 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은... 사랑은 자기만족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사랑에는 자기만족이라고 해도 좋을 충족감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만족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사랑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 지 배려하는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름다운 영화 [아름다운 비행]에는 사랑이 뭔지를 생각케 하는 풍경이 있습니다. 아직 여인이라고 부를 수 없는 소녀는 철새인 기러기를 사랑합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기러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기러기 날개 끝을 가위로 잘라주라고. 그래야 기러기는 거위가 되어 집을 떠나지 않는다고. 가위로 날개 끝을 잘라주면 기러기는 높이 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집을 떠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소녀는 거절합니다. 기러기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육'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거위가 되면 기러기는 본성인 날개를, 하늘을 상실하고 사육되는 짐승이 되는 거니까요.
사육하면 거위와 함께 잘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댓가는 기러기의 본질을 잃는 것입니다. 그걸 아는 소녀는 기러기에게 절대로 가위질을 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 기러기의 야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 속에서 교통하기 때문에 실존은 사랑으로 연결된 그이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 열정으로 삶이 고달파진다 해도 거기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열정. 그것이 사랑에는 자기만족의 요소가 있는데도, 단순한 자기만족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 아닐까요? 사랑은 상대를 배려하는 능력으로 성장하니까요.
사랑 때문에 행복했던 자는 사랑 때문에 참담해지고 사랑 때문에 활짝 웃었던 자는 사랑으로 인해 깊은 눈물을 흘립니다. 사랑과 함께 희로애락이 그림을 그리며 인생을 증거 할 때 그 그림은 비록 막막하고 캄캄한 톤을 갖는다해도 살아있는 그림이 아닐까요?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종교영화라고 봐야 제대로 보일 것입니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라는 영국영화. 주인공 베쓰가 매력적입니다. 말씀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정중하게, 그렇지만 습관적으로 무덤덤하게 기도하는 남자장로를 향해 베쓰가 신들린 듯 자연스럽게 말합니다. "말씀을 사랑할 수는 없어요. 사람을 사랑하는 거지." 물론 사람을 사랑한 베쓰는 말씀을 사랑하느라 사람 사랑을 하지 못하는 남자들에 의해 지옥으로 보내집니다. 그래서 베쓰의 말은 더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말씀을 사랑할 수는 없어요. 사람을 사랑하는 거지."
농부의 딸을 사랑한 사자가 있었습니다. 가부장 사회였으니까 사자는 농부에게 딸을 달라고 했습니다. 무지막지한 야수의 비위를 건드리고싶지 않은 농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의 크고 날카로운 이빨을 보면 딸아이 기겁을 할걸세. 그러니 그 이빨을 뽑고 올 수 없겠나?" 사랑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닌 사자는 이빨을 뽑았습니다. 평생 옥수수 죽을 먹고사는 한이 있어도 사랑하는 이 곁에서 살고 싶었으니까요. 이빨 빠진 사자를 보고 이번엔 농부가 주문합니다. "자네 그 발톱 말이야, 어디 꽃같은 처녀의 가슴에 낭만을 심을 수 있겠나?" 사랑에 눈 먼 사자는 물론 발톱도 뽑았습니다. 그 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타고난 야수성을 잃어버린 사자를 농부는 사위로 삼은 게 아니라 문 밖으로 쫓아내 버렸습니다.
[파라독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우화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랑으로 맹목이 되면 사랑도 지키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쩔까요. 생각해보면, '맹목'이야 말로 사랑의 본질일텐데요.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인생의 의미는 사랑이라고. 동의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명제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사랑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 인생의 의미일지라도 그것은 선험적인 요구일 수도, 구호일수도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일까, 사랑합시다, 사랑합시다, 라고 열심히 외치는 사람 중에 사랑하고싶은 사람 별로 없습니다.
박완서의 [미망]에는 선교사들이 나옵니다. 선교사들은 문명국 미국에서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대부분인 한반도에 찾아왔습니다. 와보니까 기막힙니다. 머리는 일년에 한번 단오날 창포로 감고, 옷은 일년에 네 번 춘하추동 갈아입고, 위생시설은 형편없고. 그들이 보기에 더럽고 냄새나고 무지한 이 한반도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저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 기도는, 저들은 사랑 받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하는 확인 기도 아닙니까?
만일 내가 그 선교사의 기도의 대상이었다면 기도해줘서 고마운 게 아니라 너 사랑하고 싶은 맘 나도 없으니까 나 사랑하려고 노력하지마, 내 삶에 끼여들려 하지마, 라고 냉정해졌을 것입니다. 사랑은 칸트식의 선험적 요구일 수도 없고 캠페인성 구호일 수도 없습니다. 사실 사랑이 구호가 되면 짜증이 납니다. 사랑을 통해서도 사랑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가진 자의 선행에 고마워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가 되면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성금도 내고 보육원에도 가고 양로원에도 갑니다. 사진 찍고 홍보하고... 정치인이라면 그 선행의 기록을 홍보지에 실어 돌릴 수도 있겠습니다. 의문이 듭니다. 홍보지 만들어 돌리는 그 이유 때문에 어쨌든 혜택을 입은 보육원의 고아들이, 양로원의 외로운 노인들이, 그리고 그 행동을 보는 우리들이 그런 행동을 '위선'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요? 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베푼다는 이유로 그걸 받아야 사는 자의 마음을 우리들이 무시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랑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너의 마음에 녹아들어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너를 내 삶의 장신구로 쓰려 하면 단박에 벽을 세워 경계하는 게 사람마음입니다. 사람은 영물입니다. 잠깐 스친 인연이라도 마음을 주고받으면 정말 마음이 맑아져서 마음을 열게 됩니다.
사랑은 선험적인 요구도 아니고 말로 해서 선행으로 실천할 수 있는 그런 구호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왜 사랑이 화두가 될까요.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우는 게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할 때 사람이 깊어집니다. 성서의 말대로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많이 하는 말. 사랑은 받는 자가 행복한 게 아니라 하는 자가 행복하다고. 말 그대로는 말이 안 됩니다. 세상에 불행한 사랑도 얼마나 많습니까? 내 책 『나는 만화를 통해 철학을 본다』에서 내가 분석해 놓은 만화 서현주의 [건망증]은 그 불행한 사랑의 전형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지칠 줄을 모르고 티격태격 싸움을 합니다. 도대체 명랑한 여자와 건강한 남자는 왜 그렇게 싸울까요? 바로 남자의 건망증 때문입니다.
-5시간이나 기다렸어. 이제 그만 만나고 싶어진 거라면 그렇다고 솔직히 말하면 되잖아... 따발총처럼 기다림의 분노를 토해내는 남자의 말 사이에 황망해진 여자가 조심스레 끼어든다.
-저기, 나 말 한마디만 해도 되니? 오늘은 우리 만나기로 한 적이 없어.
아무 때나 기다리는 남자는 5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약속시간 잃어버리기는 게 특기인 남자는 여자 바람맞히기 일쑤다. 화가 난 여자가 이별을 선언한다. 이젠 끝이다.
그런데 끝이 끝이 되어본 적이 없다. 남자가 제일 잘 잊어먹는 게 여자와 이별했다는
사실이니까.
-이봐, 설마 그것마저 잊었다는 건 아니겠지. 우리가 어제 날짜로 헤어졌다는 거.
헤어졌다는 게 슬퍼서 밤새 씩씩댄 여자가 긴장이 탁 풀어져 화를 내며 말한다. 그러면 남자가 모르겠다는 듯 대꾸한다. 우리가 언제 헤어졌는데...
잘 잊어버리는 남자였지만 잊어버리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기억이 그렇게 찬바람이 될 기억이길래 이토록 남자는 잃어버리는 연습을 할까? 어둠이 내린 어느날 저녁 남자가 여자에게 투덜댄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하루종일 기다렸잖아.
-또 잊어버렸니? 우리 이제 다시 만나지 않기로 했잖아.
-온종일 기다린 대가가 겨우 이거야?...그런 약속 따위, 나, 기억 안나!
-지긋지긋한 건망증 환자... 나, 지난 달에 죽었잖아!...우리가 만났던 모든 곳들...이 공원...나...모두 다 잊어버려. 너, 그건 잘 할 수 있잖니.
그건 잘 할 수 있잖니, 남자가 걱정되어 지상을 떠나지 못하는 여자의 혼이 간절하게 남자를 감싸안지만 남자는 무표정하다. 여자의 혼이 바람 따라 어둠 속으로 사라진 자리에서 갑자기 외로워진 남자가 눈물 한 방울을 뚝, 떨어뜨린다. 눈에 뭐가 들어간 것처럼 눈을 비비며 남자가 혼자 중얼거리는 게 마지막이다.
-방금 뭔가 지나간 것 같은데...에이 눈부셔, 아무래도 나 오늘 또 바람 맞았나봐.
여자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는데! 그런데 그 여자를 사랑한다는 기억을 버리지 못하는 남자, 그 남자의 건망증은 병이 아니라 행위다. 잊어버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젊은이의 무의식의 의도다.
그렇게 불행한 사랑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자가 행복하다는 건 사랑은 사랑하는 자의 것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사랑을 함으로써 배울 수 있는 생의 깊이가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받기만 하는 사랑은 사람의 깊이를 만들지 못합니다. 사랑으로 세계와 교감하지 못하니까요. 사랑을 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본능적으로 예민해져서 상대의 작은 변화를 민감하게 느낍니다. 그가 다치면 내가 다친 것이고, 그가 기쁘면 내 마음이 기쁩니다. 뭘까요? 함께 느끼는 능력입니다. 사랑은 내가 아닌 남을 나로 느끼는 능력입니다. 신비한 능력입니다.
그 사랑의 힘을 강조하는 철학자가 야스퍼스 입니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인간은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실존주의자인 야스퍼스는 사랑의 교통으로 인간은 실존으로 회복된다고 합니다. 실존으로 회복되는 사랑, 그 사랑은 어떤 걸까요? 무엇인지를 생각하는데 무엇이 아닌 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은... 사랑은 자기만족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사랑에는 자기만족이라고 해도 좋을 충족감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만족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무얼까요? 사랑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 지 배려하는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름다운 영화 [아름다운 비행]에는 사랑이 뭔지를 생각케 하는 풍경이 있습니다. 아직 여인이라고 부를 수 없는 소녀는 철새인 기러기를 사랑합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기러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기러기 날개 끝을 가위로 잘라주라고. 그래야 기러기는 거위가 되어 집을 떠나지 않는다고. 가위로 날개 끝을 잘라주면 기러기는 높이 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집을 떠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소녀는 거절합니다. 기러기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육'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거위가 되면 기러기는 본성인 날개를, 하늘을 상실하고 사육되는 짐승이 되는 거니까요.
사육하면 거위와 함께 잘먹고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댓가는 기러기의 본질을 잃는 것입니다. 그걸 아는 소녀는 기러기에게 절대로 가위질을 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 기러기의 야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 속에서 교통하기 때문에 실존은 사랑으로 연결된 그이에게 무엇이 필요한 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 열정으로 삶이 고달파진다 해도 거기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열정. 그것이 사랑에는 자기만족의 요소가 있는데도, 단순한 자기만족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 아닐까요? 사랑은 상대를 배려하는 능력으로 성장하니까요.
사랑 때문에 행복했던 자는 사랑 때문에 참담해지고 사랑 때문에 활짝 웃었던 자는 사랑으로 인해 깊은 눈물을 흘립니다. 사랑과 함께 희로애락이 그림을 그리며 인생을 증거 할 때 그 그림은 비록 막막하고 캄캄한 톤을 갖는다해도 살아있는 그림이 아닐까요?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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