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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레19:3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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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해성 목사 |
| 참고 : | 새길교회 2001.7.22 주일설교 |
각국에서 이는 반한 감정
필리핀을 방문하던 한국인 사업가 두 사람이 마닐라 공항의 트랩을 내려서는 순간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와서 내리는 필리핀 청년 여섯명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았다. 즉시 출동한 경찰들에게 연행된 청년들은 한국에서의 취업기간중에 당한 학대와 모욕을 이야기했고 이에 흥분한 경찰들이 합세해 재차 폭행을 했다.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에 신고를 하여 문제를 제기했으나 결국 강제 출국을 당하고 말았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한 봉변이다. 호주에서 막 귀국했다는 할아버지는 전화를 하여 대뜸 "창피해서 못 살겠다"고 호소했다. 시드니 공항에서 한국인이 집단 구타를 당했는데, 경찰 조사결과 한국에서 취업중인 필리핀 사람들이 당하는 학대에 대한 기사를 보고 흥분한 공항 직원들이 무조건 처음으로 입국하는 한국인에게 몰매를 가하기로 작당하고 벌인 폭력사태였다. 네팔을 여행하던 대학교수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폭행당했다. 필리핀에서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 방화로 전소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놈 xx'라는 책이 출간되어 불티나게 팔린다. 이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그 모든 봉변의 이유는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중국을 여행하던 이들이 한국에서 일하다 돌아간 조선족 교포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돈을 빼았겼다는 소식은 부지기수이며, 조선족 교포에 의해 한국인이 4번째 피살된 것이 최근 보도이다. 중국 조선족 동포들은 "당신들이 정말 우리와 피를 나눈 동포인가?"라고 묻고, 심지어 "치가 떨린다. 원자탄이 있으면 남한에 떨어뜨리겠다,"며 거세게 항의하기도 한다. "남북한 사이에 다시 전쟁이나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그래야 북조선을 지원해 남한 사람들에게 복수라도 할 것 아닙니까?" 한국을 찿은 조선족 동포들 가운데 비인간적인 대우와 산업재해, 임금체불, 심지어 강간을 당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에 대한 분노는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얼마전 한국에 취업도중 산업재해로 사망한 외국인노동자들의 보상금을 전달하기 위해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 태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네팔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네팔 청년 둘이 힐끗 보더니, 저만큼 멈춰 기다리더니 영어로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 물어 왔다. "한국인"이라고 답하자 그들은 대뜸 "우리가 한국말을 할 줄 아는데 한번 들어보겠느냐?"는 것이었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겠다는데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그래보라고 했더니, 얼굴표정이 싸늘하게 굳어 지면서 "이 ××놈아! 죽어 볼래" 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빠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부터 우리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하는 질문에 "We are Nepali"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다.
재한 외국인노동자의 현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인 등 불법체류자 23명이 지난 4월 9일 오후 2시쯤 서울 종로구 삼청동 청와대 입구 부근에서 청와대 정문앞으로 진입을 시도하다 전원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 불법체류에 따른 벌금면제 등을 요구하다 묵살되자 청와대로 향했다. 조사결과 이들은 IMF 사태 이후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나 출국할 수 밖에 없는데다 그 동안 여러곳에서 일한 월급도 받지 못한 처지였는데 2백만-5백만원 수준의 벌금은 부당하다며 항의시위를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외무부 관계자는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를 3D업종에 잘 활용하다가 IMF사태가 나자 강제출국시키는 한국의 정책에 해당국가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 국가 대사관들이 이번 사태와 관련 법무부 등에 탄원서 등을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실직과 강제출국에 따른 본격적인 집단행동을 예고하는데다 해당국 대사관까지 한국정부의 강제출국정책을 비난, 자칫 외교적 갈등으로까지 확대될 조짐이 있다.
또한 많은 이들이 "요즘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 출국한다고 하는데 상황이 어떡하냐?"라는 물음을 던져 온다. 지난 연말까지 30여만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인력의 2퍼센트를 차지하는 수치이다. 대부분 관광비자를 가지고 2-3년씩 눌러 앉아 취업하는 불법체류자들이고, 근래 입국한 이들은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으로 취업하고 있는 합법체류자들이다. 산업기술연수생들도 직장을 이탈하면 불법체류자로 분류된다. 이들 대부분은 소위 3D업종으로 분류되는 영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중소기업들의 고임금과 인력난을 해결해주고 있지만 일한 만큼의 댓가나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근래 대량 실업사태속에서도 5인이하 영세 사업장이나 3D업종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쓰겠다고 하루에도 30-40여건씩의 구인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한국인 실업자는 양산되었지만 영세사업장, 3D업종에는 취업을 여전히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업주들은 "실업난 속 구인난"을 이야기하며 외국인노동자를 쓰겠다고 요청하는 것이다.
80년대 후반 이후 쉽게 중국교포나 외국인노동자를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언어나 문화의 차이, 불법체류 불법취업이라는 신분상의 약점속에서 막연한 두려움을 지닌 채 살고 있다. 이들이 겪는 문제와 고통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나누고 아파해야 할 문제이다. 아픈 배를 감싸 쥐고 진통제 몇 알에 의지하여 참다참다 결국 쓰러져 병원에 후송되었을 때는 복막염을 일으켰고 결국 8가지 합병증이 발생되어 중환자실에서 6개월을 보내야 했던 네팔인 엠 구릉. 다리를 다쳤는데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무릎 밑을 절단하고 시름에 잠긴 스리랑카인 서짓 쿠마라. 공장을 그만 두겠다고 하자 사장이 옥상에서 폭행하고 그래도 그만둔다고 하자 따귀를 때리다가 난간에서 밀어 9미터 아래로 추락해 양팔이 다 부러지고 만신창이가 된 채 6개월간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는데도, 사장은 약식기소되어 벌금 100만원만 물었다며 신세를 한탄하는 네팔인 고빈다. 플라스틱 사출공장의 천정 지붕에 창문 하나없는 숙소에서 잠자다 발생한 화재로 세명이 온통 숯덩이처럼 타버린 방글라데시인 모타레브, 굴짜르, 화룩의 처참한 모습도 지워지지 않는다. 하루에 4구의 장례를 치룬 후 시신을 방글라데시로 보내기위해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화물청사에서 세찬 눈발속에 허무하게 허공을 응시하던 방글라데시 대사관의 공사 바타차야씨와 직원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무엇일까?
초창기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비행기로 한국에 입국하면 15일간의 관광비자가 주어지고 이를 가지고 2-3년씩 불법으로 체류하며 취업을 해 왔다. 한편 우리 정부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자진 신고기간을 정하여 신고한 사람에 대하여 6개월씩 4차례에 걸쳐 94년 6월까지 체류를 연장해 주는 조치를 취했다. 체류를 연장해 주는 조건은 외국인을 고용한 사장이 '취업확인서'를 제출하고 비행기 티켓과 여권은 사장이 보관하며 기한내에 출국시키기로 하며, 이를 어기면 벌금을 두배로 내겠다는 각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출입국관리법 제 18조 2항에 의하면 '사업주는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을 채용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법무부가 취업을 조건으로 체류 연장 허가를 해 준 것이다. 외국인 노동력을 쓰기 위해 무분별하게 입국을 허용하고 취업을 하면 체류연장을 해 주는 모순되는 과정을 밟아 왔다면, 이는 외국인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같은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결과적으로는 정부가 외국노동인력을 유인하고 불법체류와 취업을 묵인하고 방조하여 문제를 자초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불법체류를 하며 일하다가 죽거나 산업재해를 당해도, 임금을 체불시키고 주지 않아도 사업주는 처벌하지 않고, 외국인만 강제로 출국시켜 버렸다. 이들이 체포되면 한달에 10만원꼴로 불법체류 기간동안에 대해 과중한 벌금을 물리고 강제출국을 시켜왔다. 요즈음은 벌금대신 감옥에서 몸으로 때우려는 경우도 많아 휘경동 외국인보호소만으로는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없어 각지 교도소나 구치소에 외국인이 넘쳐 나고 있다. 한편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서는 출국을 원하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돈을 벌어 와서 벌금을 내고 출국하도록 6개월씩 출국을 연장시켜 주거나 돌려보내는 일도 많다.
단적인 예로 중국교포 임호씨는 한국에 오기 위해 중국에서 브로커에게 300만원의 엄청난 금액을 주고 한국에 와 일하던 중 18개월만에 체포되어 출입국관리국으로 끌려 갔다. 18개월간 일을 해 번 돈은 총 400만원인데, 그 중 200만원은 친척에게 빌려줬으나 받지 못하고, 남은 200만원중 벌금 180만원을 지불한 나머지는 20만원이었다. 그 돈으로는 비행기 티켓도 살 수 없어서 배표를 구하고 나니 남은 돈은 단지 몇만원... 중국에서 꾼 돈, 빈 손으로 돌아가는 처지를 걱정하던 임호씨는 끝내 1993년 11월 9일 구로동 고가차도위에 유서를 써 놓고 뛰어 내려 생을 마감하였다. 이 피값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불법체류 외국인들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사회 문제화되자 정부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주는 '외국인산업기술 수생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연수생제도는 문제를 더 심각한 양상으로 만들고 있다. 법을 지키는 합법체류자에게는 많은 혜택을 주어야 하고 불법체류자에게는 불이익이 주어져야 하는데, 정반대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연수생에 대한 개선지침이 발표되기 전 까지 합법체류자의 경우 하루 12-16시간씩 밤낮으로 일을 하고 받는 월급은 고작 15-20만원이었다. 특히 연수생 중에서도 '해외 현지 합작투자기업'에서 계약해 들어온 약 1만 7천여명은 월 4만원부터 8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고있다. 현지의 임금이나 물가에 비하면 적은 액수가 아닐지 몰라도 한국에서의 생활이라면 빵 하나 제대로 사 먹을 수 없는 조건이다. 더구나 폭행, 성추행까지를 일삼고 있다. 이에 비해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의 경우 대부분 50-100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다. 일을 하다가 산업재해를 당했을 경우에도 합법체류자는 사망일지라도 최고 1.500만원까지만 상해보험회사에서 받을 수 있지만, 그나마 회사나 송출업체가 보상금을 가로채거나 보상금으로 병원비를 지불하고 실제 산재를 당한 연수생은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도 많다. 그러나 불법체류자의 경우는 노동부의 산업재해보상과 회사측의 민사보상을 동시에 받을 수 있고 불법체류 사망자의 경우 총 8.880만원을 받은 경우도 있다. 이러한 모순의 이유는 연수생은 합법체류자이지만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일 뿐이기에 노동자로서의 보상을 해 주지 않고, 불법체류 노동자는 체류는 불법이지만 노동자로 인정을 하여 산업재해 보상을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돈을 벌기 위해 온 합법체류자들은 어떻게든지 불법체류자가 되고자 애를 써 직장을 이탈하는 것이다. 그 결과 연수생중 2년 기한이 다 되었을 시점에 90퍼센트 이상이 이탈했다. 각 사업장에서는 이탈자가 생겨나면 일손이 끊기고 추가배정도 되지 않으므로 전화통화, 편지, 외출을 금지하고 여권을 압수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행하고, 고의적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붙잡아 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송출업체는 작업장을 이탈한 외국인노동자를 붙잡아 수갑을 채우고 폭행하고, 일주일간 감금한채 하루 종일 물 한 컵과 빵 한 조각만 주어 아사직전에 이르게 하는 야만적 행위를 자행하기도 했다.
결국 이런 결과가 작년 1월 9일부터 17일까지 9일동안 전 국민을 충격속에 몰아 넣었던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들의 명동성당 농성사건이었다. 이는 정부가 자초한 정책의 결과이며 필연적으로 터질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이었다. 그때 농성장에는 1월 8일 새벽에 경기도 광주의 한 가구공장에서 외국인 여성노동자가 공장장에게 강간당했다는 속보가 들어왔다. 결국 농성장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은 엄동설한의 추위속에 목에 쇠사슬을 감고 꽁꽁 언 손을 모아 쥔 채 "우리는 노예가 아닙니다" "제발 때리지 마세요!" "월급을 직접 제 손에 주세요!" "강간하지 마세요!" 라고 외쳤다. 이들의 절규는 해방 50돌을 맞이하는 새해 벽두부터 일그러진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하여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연수생들의 농성은 파장이 컸고 연수제도의 문제점이 폭로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당국은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제도의 개선지침을 발표하고 연수생들에게도 의료보험 적용, 산업재해 보상보험 적용, 최저임금 적용 등을 95년 3월 1일부터 실시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의료보험의 실시에 대해 사업주가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거나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기에 몸이 아파도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질병에 시달리는 연수생들이 많고 질병이 도져 중도에 귀국을 당하거나 사망하는 일들이 계속되어 지고 있다. 또한 산업재해 보상보험에 있어서도 잘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이에 대해 정부당국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관리감독을 소홀이 하거나 설령 이를 어기는 사업주에 대해 처벌을 하거나 개선시키지 않는 답답한 현실이다. 최저임금제의 실시에 대해서도 많은 연수생들이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라며 분노한다. 그 이유는 최저임금제가 적용되기 전에는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는데 최저임금을 적용하면서부터는 월급은 30만원으로 올랐지만 규정이 바뀌어 아침, 저녁 식사를 사먹도록 했고 식사비를 월급에서 공제한 결과 이전보다 월급이 줄었다. 또 연수생 산업재해자의 경우 95년 3월 1일 이후의 사고는 산재보상을 추진하면서 그 이전의 사고는 보상해 주지 않고 있는 바 이는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이전에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보상을 적용하면서 3년전 사고까지 소급하여 적용해 주었고, 이미 출국을 한 이들은 해외 공관을 통해 접수를 하면 보상을 해 주기까지 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95년 3월 1일 이전의 연수생에게도 산재보상을 추진해야만 한다.
한국에 취업한 외국인 노동자들중 거의 100%에 가까운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을 했는데도 임금을 다 받지 못하고 5-6개월에서 2년치까지의 임금을 떼이고 있으면서도 불법체류라는 신분적인 약점때문에 관공서 어디에도 호소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일전 방글라데시 출신 M. D 알리라는 이는 예일산업이라는 가구공장에서 2년동안 하루에 12-16시간까지 죽도록 일을 했다. 일을 한 기간의 월급이 천만원이 넘었는데 사장은 한푼도 주지 않고 부도를 낸 후 잠적했다. 알리는 한국에 오기 위해 브로커에게 한국돈으로 300만원정도를 지불하고 왔다. 그는 우리에게 찿아와 큰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노동부사무소에 진정서를 냈지만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불법체류 외국인이기에 다른 방도를 강구하라'는 통지만 보내왔다. 재차 노동부에 고소장을 접수했더니 그제서야 사업주와 알리 양자를 조사하고서 그 의견을 검찰에 송치하였고 의정부 지청(검찰)에서 결정문이 도착하였다. 결과는 '혐의없음'으로, 그 이유로 이었다. 고소인의 주장이 모두 사실로 인정이 되지만 알리가 불법체류자인 관계로 사업주는 범죄혐의 없음이라는 것이다.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불법체류자의 일한 임금, 그것도 2년간의 피땀어린 노동의 댓가를 떼어 먹고 주지 않아도 범죄혐의조차 없단 말인가? 차라리 결정 내용중 표현을 조금 바꾸어 라고 하여 처벌은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범죄혐의만큼은 인정하는 태도가 아쉽기만 하다.
이 같은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체불사건 처리에 대해 노동부 근로감독과에 항의했더니 근로감독관들은 한결같이 "나도 꼭 받아 주고 싶다. 그러나 내 목이 몇개냐? 하나뿐이다. 장관이 해 주지 말라는 것을 어떻게 일개 감독관이 마음대로 해 줄 수 있느냐?"고 거꾸로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대체 장관이 해 주지 말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노동부장관 명의의 지침을 보여 주었다. 그 내용에는 불법취업 외국인이 지방관서에 체불임금 청산요구 등의 신고사건을 제기했을 경우에는 1.근로자 수가 5인이상 되는지를 우선 확인하고 2.사업주 입건등의 조치는 취하지 못하더라도 3.사업주 소재는 파악되나 재산이 전무하여 체불 등의 해결이 곤란할 경우에는 자술서 등을 받아 종결처리하고 성의있게 처리된다는 점을 진정인에게 주지시킬 것 4.사업주 잠적등으로 해결이 곤란할 경우 [소재수사 결과 보고서]를 첨부하여 기관장 결재후 종결처리 할 것등의 업무 지침이었다. 노동부장관의 이 지침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체불 사업주에 대해서 입건 등의 조치를 취하지 말라고 지시한 사실은 없다. 다만 '사업주 입건 등의 조치는 취하지 못하더라도'고 기준을 제시하고서 근로감독관들이 알아서 처벌을 하지 않도록 교묘히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임금체불을 해결하기 위해 사업주를 찿아가면 사업주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금은 떼어먹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법대로 하라"며 큰소리를 치는 상황이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가락이 잘리는 산업재해가 빈발하고 있다. 프레스나 사출기등의 작업이 워낙 위험해서 많은 임금을 준다고 해도 한국인들이 취업을 꺼리게 되고 그 자리를 외국인들이 채우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인에게 철저히 안전교육을 시키고 주의를 환기시켜도 재해가 빈발하는데 외국인들의 경우 언어 소통 문제로 인해 안전교육, 주의사항, 작업지시등이 대충 눈치로 이루어지고 또한 대충 알아듣고 작업에 임하기 때문에 재해는 폭발적으로 늘어만 가고 작업을 시작한지 한시간도 못되어 재해를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사업주는 보상요구에 대해 "하루라도 일을 시켰다면 충분히 보상해주겠지만 제품 몇 개 뽑아놓고 다쳤는데 어떻게 보상해주느냐?"며 난색을 표한다. 더구나 생산성을 이유로 기계의 자동안전장치를 떼어내는 등 기계를 변조하는 일도 산업재해를 부르는 원인이다. 외국인 산업재해자들은 한결같이 '아무리 못해도 산업재해로 인해 우리의 잘린 팔과 손가락이 아마 몇십가마니는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산업재해에 대해 사업주나 노동부는 대책과 보상을 외면하였고 특히 영세한 5인 미만의 사업장이 대부분이어서 노동부 보상대상에서도 제외되는 한편 사업주도 가진 것이 없어 배상하지 못하기에 대부분 최소한의 치료만 받고 강제추방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공장에서 쫓겨나 출국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노동부는 산업재해를 인정해 보상해주기는커녕 '불법취업 외국인이 임금체불, 산업재해등과 관련 소송을 제기할 경우 법원의 판결과 관계없이 이들을 우선 강제 출국 조치하도록 법무부에 요청'을 하고 있다. 이는 93년 11월 26일 서울고등법원이 필리핀인 아키노 시바은(26세)이 불법취업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산재보상을 받지 못한 것은 부당하다며 서울 동부 지방 노동사무소를 상대로 낸 요양 불승인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노동부는 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사실에 대한 노동부의 대책이었다. 그렇다면 팔이 잘리고 손가락이 잘려도 신고나 보상요구도 하지 말고 그냥 있으라는 것이다. 노동부가 산재를 방지하거나 줄이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기 보다 산재를 당한 외국인 노동자가 보상을 요구하면 먼저 강제 출국을 시키라고 요구하는 웃지 못할 내용인 것이다. 이후 소송이 잇따르고 외국인 노동자 농성사건이 터지면서 94년 2월 7일부터 산업재해 보상보험법부분에 대해서 일부 제한적으로 보상을 하겠다고 발표하고 5인 이상의 사업장에 한해서 보상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산재를 당하고서도 보상도 받지 못한채 강제 출국된 이들의 해외 농성과 집단적인 움직임, 그리고 국제적인 분쟁의 조짐이 보이면서 94년 9월부터 출국을 당한 이들에게도 소급하여 보상을 해 주기로 하고 해외 공관을 통해 접수를 받고 보상을 실시하고는 있지만 성과는 미미한 상태이다.
문제는 산업재해에 대해 보상을 해 준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장해를 입고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돌아가면 노동력을 상실하여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워 구걸하며 살아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외국인노동자들 중 방글라데시, 파키스탄등 의 이슬람국가에서는 지금도 형법에 이슬람 율법을 적용하고 있다. 지금도 도둑질을 하거나 강도 짓을 했을 경우 작두로 손가락 등을 자르는 형벌을 주고 있다. 한국에서 일을 하다가 팔이나 손가락이 잘리면 그는 평생을 범죄자로 오인받으며 살아야만 한다. 인도나 네팔, 방글라데시 등 대부분의 나라는 수저나 포크를 사용하지 않고 오른 손으로 식사를 하고, 왼손으로는 밑을 닦는다. 손을 잘린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는 '한 손으로 밥도 먹고 그 손으로 밑도 닦아야 하는것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에 많이 진출해 있고 저임금을 기반으로 생산활동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의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바로 그 나라의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지 아니하면서 현지 진출한 한국의 기업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더우기 중국에도 많은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바 교포들이 40년, 50년만에 꿈을 안고 찿아 와서 임금을 떼이고 손이나 팔이 잘려서 보상도 받지 못하고 그냥 돌아간 이들이 허다하다. 중국교포(조선족)들은 연변 자치주, 흑룡강성, 요녕성등에 밀집되어 민족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이 중국에 돌아가 교포들에게 고국에 대해 무어라 설명할 것이며, 진출한 한국의 기업들에 대해 '그래도 고국의 기업이기에 지원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할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 것인가?' 우리는 숙고해야 할 것이다. 만일 나 자신이 교포로서 그런 상황을 당하고도 그냥 추방되었다면 어떤 자세를 가질 것인가? 도시락이라도 싸들고 다니면서 불이라도 지르려고 쫓아다니지는 않을까?
산업기술연수제도 철폐하고 외국인 노동자 보호법(가칭) 제정해야
이주 노동자의 문제는 세계적인 관심사이자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과거 '자본'은 이동하지만 '노동력'은 고정되어 있다는 학설이 무너지고 '자본'도 이동하지만 '노동력'도 이동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WTO 협정에 이은 블루라운드의 논의도 그 연장선이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해결책은
첫째, 통일시대를 대비한 외국인력 도입정책의 수립이다. 통일 이전의 서독에는 200여년 저부터 500여만명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을 해 왔다. 그러나 통일이 되고 난 후 서독출신은 1등국민이요, 외국인 노동자는 이미 안정된 직장에서 일을 하는 2등 국민이고, 반면 동독출신의 독일인은 3등국민으로서 실업에 시달리며 빈곤에 헤메이게 되었고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축출을 요구하며 테러를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비추어 우리도 조만간 맞이하게 될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신중하고 정당하게 외국인력 도입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둘째,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사면조치가 있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우리도 상당한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하고, 그들이 우리의 경제에 이바지했음도 사실이다. 더 나아가 먼저 들어 온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한국의 문화나 음식에 이미 잘 적응하고 있고 한국말도 잘 할뿐더러 숙련공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생산성 향상과 산업재해 예방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게 되는 바 잘 적응한 이들은 모두 강제로 추방을 하고 초보 연수생을 새로 들여오는 경우 먼저 들어 온 이들이 겪었던 여러 가지 위험성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불법체류자 사면에 대해서는 불법체류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한다. 사면이 되면 마음을 졸이지 않고 마음놓고 고용하고 그들도 마음놓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에서도 산업기술연수생들에 대해 현재 체류기간 2년까지를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연장을 요청하고 있다)
셋째, 산업기술연수제도는 반드시 철폐해야 한다. 산업기술 연수제도는 가장 악랄한
일본의 연수제도를 모방한 제도로 처음부터 잘못된 결과를 가져 올 수 밖에 없었다. 최소한 국가간의 쌍무협정에 의거하여 법률적 근거를 바탕으로 제도가 마련되었어야 함에도 단지 법무부장관의 훈령만으로 특정부문이나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내용으로 진행되어 왔다. 도입과 관리에 있어서도 국가나 공익기관이 감당해야 할 내용을 고양이 입에 생선을 물려 놓듯이 노동자의 도입과 관리를 사업주의 연합단체인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에 모두 위임한 결과 최소한도의 인권도 보장되지 않은 채 이익집단의 논리만이 관철되어 왔다. 그토록 파문을 일으키며 파행을 가져 왔고 여러 가지 개선책이 보완되었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기에 산업기술연수제도는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
넷째, 외국인 노동자 보호법(가칭)을 제정해야 한다. 한국에 들어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자체 조직(방글라데시협회, 네팔협회, 중국노동자 협회등)들과 외국인 노동자 상담센타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지원단체들이 함께 모여 지난해 '외국인 노동자 보호법'을 제정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고 외국인노동자 보호법 초안을 작성하였다. 내용은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노동허가제를 축으로 하여 고용허가제 등의 장점을 반영하되 최소한도의 인권이 유린되지 아니하도록 짜여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당하게 도입하고 최소한도의 권리가 보장되어 지도록 이제 정기국회에 이 4개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 계류중에 있다.
동, 서남 아시아의 빈곤과 세계선교
나는 해외선교 또는 세계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져왔다. 우리가 사는 한국땅에도 해방의 복음이 전파될 곳이 너무나 많이 널려 있기 때문이고, 요즘 한국교회의 물량적이고 무분별한 선교는 참된 복음의 이미지를 심각히 훼손시킨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현지를 둘러 본 후부터는 해외선교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도의 갠지즈 강이 있는 '바라나시'의 기차 역에서 연착이 되어 늦은 밤 3시간을 기다리는데 그 사이에 두사람이 역 구내에서 잠을 자다가 영양실조로 사망해 실려 나가는 것이었다. 보자기를 살짝 들쳐 본 순간 마를대로 말라 피골만이 상접한 몰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도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절반을 쥐가 먹어 치우고 쥐를 통해 페스트 등 전염병이 창궐하는데도 쥐를 잡지 않는다. 소가 부른 배를 흔들며 굶주린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를 활보한다. 캘커타의 경우 겨울에는 하루밤에 15.000명씩 얼어죽는다. 일부 부유층을 뺀 거의 모든 사람이 뼈에 가죽만 둘러쓰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네팔의 경우 극빈자 한사람이 살아가는 돈의 액수는 단지 1루피(한국돈 약 15원)에 불과하다.
인도나 네팔의 경우 힌두교가 지배종교이다. 힌두들은 관용에 대한 파격적 자세를 갖고 있다. 하나의 사원을 힌두승려와 불교승려가 함께 사용을 하기도 하고, 백미러 없는 차들의 홍수속에 버스나 화물차 뒷편에는 '클락션을 울리고 추월하라'는 안내판이 대부분이다. 원수 사이를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고 하는데 그곳에서는 원숭이와 개도 함께 뒹글며 장난친다. 그런데 이 관용이 지나쳐 가난과 질병에 대해서도, 나아가 독재와 무지에 대해서도 저항하지 않고 관용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자기 위치와 현실을 운명으로 알고, 유일한 희망은 환생할때 최고계급 브라만으로 태어나는 것뿐이다. 캘커타에는 가장 크고 유명한 칼리 사원이 있는데 하늘에서 떨어 진 '돌'을 모시고 매일 염소의 목을 쳐 피를 뿌리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런데 마더 테레사의 '죽음을 기다리는 집'이 같은 담장을 사이로 맞대고 있다. 캘커타 최고의 사원이 있는 거룩한 곳이 최고의 극빈지역으로서 마더 테레사의 선교와 세계에서 몰려 온 자원봉사자들의 사랑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고 선교가 펼쳐져야 하는 곳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해외의 선교지로 진출을 하고 많은 선교사들이 목숨을 건 희생과 헌신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러나 물량적이고도 무분별한 선교를 감행함으로 참된 복음의 이미지를 심각히 훼손시킨다는 생각은 여전히 지울 수 없다. 얼마전 러시아나 중국에서는 현지 정부가 공식적으로 우리 외무부에 항의문을 작성해 선교차원의 입국이나 활동을 금지시켜달라는 사태에 직면해 있다. 얼마전 외국인노동자의 보상금을 전달해 주려 네팔을 방문했을 때 성결교 김 선교사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네팔에서 대형부흥집회를 열고 돌아간 직후 네팔인 400여명이 연행되고 목사 13명이 구속되어 감옥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번 다녀가면 그만이지만 계속 남아 있는 선교사들이나 현지인 목회자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인도등도 다를 바 없다. 캘커타의 감리교 선교사 박목사도 "나는 목사이지만, 현지교회에서는 집사로 통한다. 내 직업은 글을 쓰는 '작가'이고, 다른 곳에서는 '사회봉사자'로 소개하기도 한다. 그리고 비자여행을 3개월에 한번씩 해야 하는 일이 최고의 어려움이다."고 토로한다. 중국 용정을 방문해 용정교회 예배에 참석했는데, 좌석에 앉은 직후 조그만 쪽지가 한 장 전해져 왔다. "남편에 대해 제발 정 '원장'이라고 불러 주세요."라는 것이었다.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에 대한 선교를 고민해 온 나로서는 현지의 선교상황을 이해하고 우리의 바람직한 역할을 찾아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현재 한국에 머물러 있는 중국교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따뜻이 대하고, 복음을 전하며, 더 나아가 이들에게 신학훈련을 거치도록 하여 목회자를 양성하고 본국으로 역파송하여 복음을 전하는 방안이 최고의 방법이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적인 선교라는데 일치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서로 논의하며 협력을 한다면 해외선교의 획기적인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1.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선교를 해 온것에 대한 많은 문제점과 폐해를 지적하였다. 그러기에 자기네들에 의해 스스로에게 복음이 전해 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것이 최선이다.
2. 현재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최고대학의 학부이상을 나온 인텔리들이며, 최고의 계급(예를 들어 힌두교도중 브라만에서도 최고의 계층임)에 속해 있어 앞으로 그 사회의 지도자들이 될 사람들이며, 신학교육을 하는데 있어서도 거의 대부분이 영어에는 능통하며, 한국에 3년이상 머문 이들은 한국어에도 능란하기에 별 어려움이 없이 교육에 임할 수 있다.
3. 한편 이들은 자기 직장에서 수입을 얻고 있기에 야간에 수업을 하면 시간도 충분히 낼 수 있다.
외국인을 학대하지 말고 자기같이 사랑하라!
우리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는 활동한지 5년이 되었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당하는 부당한 억압과 고통을 호소해 와 벌써 10.000여건 이상의 상담을 받아 처리 중에 있으나 역부족이다. 가장 많은 것이 임금체불이고, 산업재해, 질병, 폭행, 사고 등이 주를 이룬다. 외국인노동자의 집에는 평일에는 질병이나 산재로 인해 통원치료를 받는 사람들과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며칠 머물러 가는 이들 등 약 80여명이 머물고 있다. 주일에는 각국 외국인 노동자들이 중국어예배, 러시아어예배, 영어예배를 드리고 있고, 지난 부활주일에는 64명이 세례를 받기도 했다. 한편 각국 노동자들이 몰려와 갖가지 상담을 하고 함께 식사를 나누며 한글교육, 노래연습, 무료진료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집에 있던 몽골인 호일다르는 한신대학원 신학석사과정에 입학하여 신학수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도 함께 생활을 나누어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기독교의 사랑이 이런 것인 줄 몰랐다며 세례를 받는 이들이고 늘고 있고, 혹 신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조심스레 물어 오는 이들도 있다. 평생 신봉하며 추구했던 공산당원에서 이제 예수당원이 되어 평생을 주님의 품 안에서 살아가겠다며 잘린 한 손을 모아 쥐고 눈물로 기도하는 류정기 할아버지를 비롯한 교포들도 모여 있다.
두 딸을 내어 주면서까지 나그네를 사랑하라?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위기 19장 33-4)하고 말씀하고 계신다. 아브라함은 집 앞 을 지나는 나그네 세사람을 보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영접하여 송아지를 잡아 대접했는데 그 나그네는 하나님의 사자들이었다. 천사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제 아들을 낳을 터인데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고 알려 주었다. (창세기 18:1-19) 소돔성에 사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길가는 나그네 두명을 영접하여 식사를 대접하고 하룻밤 머물고 가도록 했다. 잠자리에 들기전 소돔성의 모든 남자가 몰려와서 집을 둘러싸고 그 남자들과 상관해야겠다라고 한다. 롯은 뒤로 문을 걸어 잠그고는 호소하기를 "나에게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이 있네. 그 아이들을 자네들에게 줄 터이니, 그 아이들을 자네들 좋을대로 하게. 그러나 이 남자들은 나의 집에 보호받으러 온 손님들이니까, 그들에게는 아무일도 저지르지 말게." 그러자 소돔의 남자들이 롯에게 달려들어 밀치며 문을 부수려 하자 두 사람이 소돔남자들을 쳐서 눈을 어둡게 하여 대문을 찾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롯의 가족을 성에서 끌어 낸 후 뒤를 돌아보지 말고 피하도록 하였다. 결국 소돔성은 불과 유황으로 멸망을 당했다 (창세기 19:1-29) 길가는 나그네를 영접한 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의 출발임은 분명하다. 롯이 길가는 나그네를 영접한 것이 구원받은 이유이다. 우리의 축복과 구원은 나그네, 이방 타국인을 영접하는 것에서도 출발을 한다. 그런데 저도 공교롭게 딸 둘을 키우고 있는데 나그네를 손님으로 대하는 것이야 이해가 되지만 차마 '나의 두 딸을 내어 주면서까지 나그네를 보호해야 만 하는가?'하는 의문이 채 가시지 않는다. 한국에는 현재 25만명이 넘는 중국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불법체류라고 하는 신분적인 약점 때문에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을 당하면서도 어디에도 호소하지 못하는 딱한 처지이다.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하나님이 보내신 손님들이고 강도만난 사람일 수도 있다. 이들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필요하다. 또한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더 나아가 신학훈련을 통해 목회자로서 파송된다면 해외선교의 획기적이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웃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를 자문해 본다. 우리의 조그만 정성과 따뜻한 손길이 이들에게 다가갈 때 이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보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들을 인도함으로 이들로 말미암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지켜 갈 수 있을 것이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필리핀을 방문하던 한국인 사업가 두 사람이 마닐라 공항의 트랩을 내려서는 순간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와서 내리는 필리핀 청년 여섯명에게 둘러싸여 몰매를 맞았다. 즉시 출동한 경찰들에게 연행된 청년들은 한국에서의 취업기간중에 당한 학대와 모욕을 이야기했고 이에 흥분한 경찰들이 합세해 재차 폭행을 했다.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에 신고를 하여 문제를 제기했으나 결국 강제 출국을 당하고 말았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한 봉변이다. 호주에서 막 귀국했다는 할아버지는 전화를 하여 대뜸 "창피해서 못 살겠다"고 호소했다. 시드니 공항에서 한국인이 집단 구타를 당했는데, 경찰 조사결과 한국에서 취업중인 필리핀 사람들이 당하는 학대에 대한 기사를 보고 흥분한 공항 직원들이 무조건 처음으로 입국하는 한국인에게 몰매를 가하기로 작당하고 벌인 폭력사태였다. 네팔을 여행하던 대학교수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폭행당했다. 필리핀에서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 방화로 전소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놈 xx'라는 책이 출간되어 불티나게 팔린다. 이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다. 그 모든 봉변의 이유는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중국을 여행하던 이들이 한국에서 일하다 돌아간 조선족 교포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돈을 빼았겼다는 소식은 부지기수이며, 조선족 교포에 의해 한국인이 4번째 피살된 것이 최근 보도이다. 중국 조선족 동포들은 "당신들이 정말 우리와 피를 나눈 동포인가?"라고 묻고, 심지어 "치가 떨린다. 원자탄이 있으면 남한에 떨어뜨리겠다,"며 거세게 항의하기도 한다. "남북한 사이에 다시 전쟁이나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그래야 북조선을 지원해 남한 사람들에게 복수라도 할 것 아닙니까?" 한국을 찿은 조선족 동포들 가운데 비인간적인 대우와 산업재해, 임금체불, 심지어 강간을 당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에 대한 분노는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얼마전 한국에 취업도중 산업재해로 사망한 외국인노동자들의 보상금을 전달하기 위해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 태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네팔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네팔 청년 둘이 힐끗 보더니, 저만큼 멈춰 기다리더니 영어로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 물어 왔다. "한국인"이라고 답하자 그들은 대뜸 "우리가 한국말을 할 줄 아는데 한번 들어보겠느냐?"는 것이었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겠다는데 반갑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그래보라고 했더니, 얼굴표정이 싸늘하게 굳어 지면서 "이 ××놈아! 죽어 볼래" 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빠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부터 우리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하는 질문에 "We are Nepali"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다.
재한 외국인노동자의 현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인 등 불법체류자 23명이 지난 4월 9일 오후 2시쯤 서울 종로구 삼청동 청와대 입구 부근에서 청와대 정문앞으로 진입을 시도하다 전원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들은 이날 오전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 불법체류에 따른 벌금면제 등을 요구하다 묵살되자 청와대로 향했다. 조사결과 이들은 IMF 사태 이후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나 출국할 수 밖에 없는데다 그 동안 여러곳에서 일한 월급도 받지 못한 처지였는데 2백만-5백만원 수준의 벌금은 부당하다며 항의시위를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외무부 관계자는 "그동안 외국인 노동자를 3D업종에 잘 활용하다가 IMF사태가 나자 강제출국시키는 한국의 정책에 해당국가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 국가 대사관들이 이번 사태와 관련 법무부 등에 탄원서 등을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실직과 강제출국에 따른 본격적인 집단행동을 예고하는데다 해당국 대사관까지 한국정부의 강제출국정책을 비난, 자칫 외교적 갈등으로까지 확대될 조짐이 있다.
또한 많은 이들이 "요즘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 출국한다고 하는데 상황이 어떡하냐?"라는 물음을 던져 온다. 지난 연말까지 30여만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인력의 2퍼센트를 차지하는 수치이다. 대부분 관광비자를 가지고 2-3년씩 눌러 앉아 취업하는 불법체류자들이고, 근래 입국한 이들은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으로 취업하고 있는 합법체류자들이다. 산업기술연수생들도 직장을 이탈하면 불법체류자로 분류된다. 이들 대부분은 소위 3D업종으로 분류되는 영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중소기업들의 고임금과 인력난을 해결해주고 있지만 일한 만큼의 댓가나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근래 대량 실업사태속에서도 5인이하 영세 사업장이나 3D업종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쓰겠다고 하루에도 30-40여건씩의 구인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한국인 실업자는 양산되었지만 영세사업장, 3D업종에는 취업을 여전히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업주들은 "실업난 속 구인난"을 이야기하며 외국인노동자를 쓰겠다고 요청하는 것이다.
80년대 후반 이후 쉽게 중국교포나 외국인노동자를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언어나 문화의 차이, 불법체류 불법취업이라는 신분상의 약점속에서 막연한 두려움을 지닌 채 살고 있다. 이들이 겪는 문제와 고통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나누고 아파해야 할 문제이다. 아픈 배를 감싸 쥐고 진통제 몇 알에 의지하여 참다참다 결국 쓰러져 병원에 후송되었을 때는 복막염을 일으켰고 결국 8가지 합병증이 발생되어 중환자실에서 6개월을 보내야 했던 네팔인 엠 구릉. 다리를 다쳤는데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무릎 밑을 절단하고 시름에 잠긴 스리랑카인 서짓 쿠마라. 공장을 그만 두겠다고 하자 사장이 옥상에서 폭행하고 그래도 그만둔다고 하자 따귀를 때리다가 난간에서 밀어 9미터 아래로 추락해 양팔이 다 부러지고 만신창이가 된 채 6개월간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는데도, 사장은 약식기소되어 벌금 100만원만 물었다며 신세를 한탄하는 네팔인 고빈다. 플라스틱 사출공장의 천정 지붕에 창문 하나없는 숙소에서 잠자다 발생한 화재로 세명이 온통 숯덩이처럼 타버린 방글라데시인 모타레브, 굴짜르, 화룩의 처참한 모습도 지워지지 않는다. 하루에 4구의 장례를 치룬 후 시신을 방글라데시로 보내기위해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화물청사에서 세찬 눈발속에 허무하게 허공을 응시하던 방글라데시 대사관의 공사 바타차야씨와 직원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무엇일까?
초창기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비행기로 한국에 입국하면 15일간의 관광비자가 주어지고 이를 가지고 2-3년씩 불법으로 체류하며 취업을 해 왔다. 한편 우리 정부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자진 신고기간을 정하여 신고한 사람에 대하여 6개월씩 4차례에 걸쳐 94년 6월까지 체류를 연장해 주는 조치를 취했다. 체류를 연장해 주는 조건은 외국인을 고용한 사장이 '취업확인서'를 제출하고 비행기 티켓과 여권은 사장이 보관하며 기한내에 출국시키기로 하며, 이를 어기면 벌금을 두배로 내겠다는 각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출입국관리법 제 18조 2항에 의하면 '사업주는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인을 채용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법무부가 취업을 조건으로 체류 연장 허가를 해 준 것이다. 외국인 노동력을 쓰기 위해 무분별하게 입국을 허용하고 취업을 하면 체류연장을 해 주는 모순되는 과정을 밟아 왔다면, 이는 외국인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같은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결과적으로는 정부가 외국노동인력을 유인하고 불법체류와 취업을 묵인하고 방조하여 문제를 자초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불법체류를 하며 일하다가 죽거나 산업재해를 당해도, 임금을 체불시키고 주지 않아도 사업주는 처벌하지 않고, 외국인만 강제로 출국시켜 버렸다. 이들이 체포되면 한달에 10만원꼴로 불법체류 기간동안에 대해 과중한 벌금을 물리고 강제출국을 시켜왔다. 요즈음은 벌금대신 감옥에서 몸으로 때우려는 경우도 많아 휘경동 외국인보호소만으로는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없어 각지 교도소나 구치소에 외국인이 넘쳐 나고 있다. 한편 법무부 출입국관리소에서는 출국을 원하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돈을 벌어 와서 벌금을 내고 출국하도록 6개월씩 출국을 연장시켜 주거나 돌려보내는 일도 많다.
단적인 예로 중국교포 임호씨는 한국에 오기 위해 중국에서 브로커에게 300만원의 엄청난 금액을 주고 한국에 와 일하던 중 18개월만에 체포되어 출입국관리국으로 끌려 갔다. 18개월간 일을 해 번 돈은 총 400만원인데, 그 중 200만원은 친척에게 빌려줬으나 받지 못하고, 남은 200만원중 벌금 180만원을 지불한 나머지는 20만원이었다. 그 돈으로는 비행기 티켓도 살 수 없어서 배표를 구하고 나니 남은 돈은 단지 몇만원... 중국에서 꾼 돈, 빈 손으로 돌아가는 처지를 걱정하던 임호씨는 끝내 1993년 11월 9일 구로동 고가차도위에 유서를 써 놓고 뛰어 내려 생을 마감하였다. 이 피값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불법체류 외국인들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사회 문제화되자 정부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주는 '외국인산업기술 수생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연수생제도는 문제를 더 심각한 양상으로 만들고 있다. 법을 지키는 합법체류자에게는 많은 혜택을 주어야 하고 불법체류자에게는 불이익이 주어져야 하는데, 정반대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연수생에 대한 개선지침이 발표되기 전 까지 합법체류자의 경우 하루 12-16시간씩 밤낮으로 일을 하고 받는 월급은 고작 15-20만원이었다. 특히 연수생 중에서도 '해외 현지 합작투자기업'에서 계약해 들어온 약 1만 7천여명은 월 4만원부터 8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고있다. 현지의 임금이나 물가에 비하면 적은 액수가 아닐지 몰라도 한국에서의 생활이라면 빵 하나 제대로 사 먹을 수 없는 조건이다. 더구나 폭행, 성추행까지를 일삼고 있다. 이에 비해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의 경우 대부분 50-100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다. 일을 하다가 산업재해를 당했을 경우에도 합법체류자는 사망일지라도 최고 1.500만원까지만 상해보험회사에서 받을 수 있지만, 그나마 회사나 송출업체가 보상금을 가로채거나 보상금으로 병원비를 지불하고 실제 산재를 당한 연수생은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도 많다. 그러나 불법체류자의 경우는 노동부의 산업재해보상과 회사측의 민사보상을 동시에 받을 수 있고 불법체류 사망자의 경우 총 8.880만원을 받은 경우도 있다. 이러한 모순의 이유는 연수생은 합법체류자이지만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일 뿐이기에 노동자로서의 보상을 해 주지 않고, 불법체류 노동자는 체류는 불법이지만 노동자로 인정을 하여 산업재해 보상을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돈을 벌기 위해 온 합법체류자들은 어떻게든지 불법체류자가 되고자 애를 써 직장을 이탈하는 것이다. 그 결과 연수생중 2년 기한이 다 되었을 시점에 90퍼센트 이상이 이탈했다. 각 사업장에서는 이탈자가 생겨나면 일손이 끊기고 추가배정도 되지 않으므로 전화통화, 편지, 외출을 금지하고 여권을 압수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행하고, 고의적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붙잡아 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송출업체는 작업장을 이탈한 외국인노동자를 붙잡아 수갑을 채우고 폭행하고, 일주일간 감금한채 하루 종일 물 한 컵과 빵 한 조각만 주어 아사직전에 이르게 하는 야만적 행위를 자행하기도 했다.
결국 이런 결과가 작년 1월 9일부터 17일까지 9일동안 전 국민을 충격속에 몰아 넣었던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들의 명동성당 농성사건이었다. 이는 정부가 자초한 정책의 결과이며 필연적으로 터질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이었다. 그때 농성장에는 1월 8일 새벽에 경기도 광주의 한 가구공장에서 외국인 여성노동자가 공장장에게 강간당했다는 속보가 들어왔다. 결국 농성장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은 엄동설한의 추위속에 목에 쇠사슬을 감고 꽁꽁 언 손을 모아 쥔 채 "우리는 노예가 아닙니다" "제발 때리지 마세요!" "월급을 직접 제 손에 주세요!" "강간하지 마세요!" 라고 외쳤다. 이들의 절규는 해방 50돌을 맞이하는 새해 벽두부터 일그러진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 하여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연수생들의 농성은 파장이 컸고 연수제도의 문제점이 폭로되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당국은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제도의 개선지침을 발표하고 연수생들에게도 의료보험 적용, 산업재해 보상보험 적용, 최저임금 적용 등을 95년 3월 1일부터 실시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의료보험의 실시에 대해 사업주가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거나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기에 몸이 아파도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질병에 시달리는 연수생들이 많고 질병이 도져 중도에 귀국을 당하거나 사망하는 일들이 계속되어 지고 있다. 또한 산업재해 보상보험에 있어서도 잘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이에 대해 정부당국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관리감독을 소홀이 하거나 설령 이를 어기는 사업주에 대해 처벌을 하거나 개선시키지 않는 답답한 현실이다. 최저임금제의 실시에 대해서도 많은 연수생들이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라며 분노한다. 그 이유는 최저임금제가 적용되기 전에는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는데 최저임금을 적용하면서부터는 월급은 30만원으로 올랐지만 규정이 바뀌어 아침, 저녁 식사를 사먹도록 했고 식사비를 월급에서 공제한 결과 이전보다 월급이 줄었다. 또 연수생 산업재해자의 경우 95년 3월 1일 이후의 사고는 산재보상을 추진하면서 그 이전의 사고는 보상해 주지 않고 있는 바 이는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이전에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보상을 적용하면서 3년전 사고까지 소급하여 적용해 주었고, 이미 출국을 한 이들은 해외 공관을 통해 접수를 하면 보상을 해 주기까지 하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95년 3월 1일 이전의 연수생에게도 산재보상을 추진해야만 한다.
한국에 취업한 외국인 노동자들중 거의 100%에 가까운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을 했는데도 임금을 다 받지 못하고 5-6개월에서 2년치까지의 임금을 떼이고 있으면서도 불법체류라는 신분적인 약점때문에 관공서 어디에도 호소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일전 방글라데시 출신 M. D 알리라는 이는 예일산업이라는 가구공장에서 2년동안 하루에 12-16시간까지 죽도록 일을 했다. 일을 한 기간의 월급이 천만원이 넘었는데 사장은 한푼도 주지 않고 부도를 낸 후 잠적했다. 알리는 한국에 오기 위해 브로커에게 한국돈으로 300만원정도를 지불하고 왔다. 그는 우리에게 찿아와 큰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노동부사무소에 진정서를 냈지만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불법체류 외국인이기에 다른 방도를 강구하라'는 통지만 보내왔다. 재차 노동부에 고소장을 접수했더니 그제서야 사업주와 알리 양자를 조사하고서 그 의견을 검찰에 송치하였고 의정부 지청(검찰)에서 결정문이 도착하였다. 결과는 '혐의없음'으로, 그 이유로 이었다. 고소인의 주장이 모두 사실로 인정이 되지만 알리가 불법체류자인 관계로 사업주는 범죄혐의 없음이라는 것이다.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불법체류자의 일한 임금, 그것도 2년간의 피땀어린 노동의 댓가를 떼어 먹고 주지 않아도 범죄혐의조차 없단 말인가? 차라리 결정 내용중 표현을 조금 바꾸어 라고 하여 처벌은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범죄혐의만큼은 인정하는 태도가 아쉽기만 하다.
이 같은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체불사건 처리에 대해 노동부 근로감독과에 항의했더니 근로감독관들은 한결같이 "나도 꼭 받아 주고 싶다. 그러나 내 목이 몇개냐? 하나뿐이다. 장관이 해 주지 말라는 것을 어떻게 일개 감독관이 마음대로 해 줄 수 있느냐?"고 거꾸로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대체 장관이 해 주지 말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노동부장관 명의의 지침을 보여 주었다. 그 내용에는 불법취업 외국인이 지방관서에 체불임금 청산요구 등의 신고사건을 제기했을 경우에는 1.근로자 수가 5인이상 되는지를 우선 확인하고 2.사업주 입건등의 조치는 취하지 못하더라도 3.사업주 소재는 파악되나 재산이 전무하여 체불 등의 해결이 곤란할 경우에는 자술서 등을 받아 종결처리하고 성의있게 처리된다는 점을 진정인에게 주지시킬 것 4.사업주 잠적등으로 해결이 곤란할 경우 [소재수사 결과 보고서]를 첨부하여 기관장 결재후 종결처리 할 것등의 업무 지침이었다. 노동부장관의 이 지침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체불 사업주에 대해서 입건 등의 조치를 취하지 말라고 지시한 사실은 없다. 다만 '사업주 입건 등의 조치는 취하지 못하더라도'고 기준을 제시하고서 근로감독관들이 알아서 처벌을 하지 않도록 교묘히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임금체불을 해결하기 위해 사업주를 찿아가면 사업주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금은 떼어먹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법대로 하라"며 큰소리를 치는 상황이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가락이 잘리는 산업재해가 빈발하고 있다. 프레스나 사출기등의 작업이 워낙 위험해서 많은 임금을 준다고 해도 한국인들이 취업을 꺼리게 되고 그 자리를 외국인들이 채우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인에게 철저히 안전교육을 시키고 주의를 환기시켜도 재해가 빈발하는데 외국인들의 경우 언어 소통 문제로 인해 안전교육, 주의사항, 작업지시등이 대충 눈치로 이루어지고 또한 대충 알아듣고 작업에 임하기 때문에 재해는 폭발적으로 늘어만 가고 작업을 시작한지 한시간도 못되어 재해를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사업주는 보상요구에 대해 "하루라도 일을 시켰다면 충분히 보상해주겠지만 제품 몇 개 뽑아놓고 다쳤는데 어떻게 보상해주느냐?"며 난색을 표한다. 더구나 생산성을 이유로 기계의 자동안전장치를 떼어내는 등 기계를 변조하는 일도 산업재해를 부르는 원인이다. 외국인 산업재해자들은 한결같이 '아무리 못해도 산업재해로 인해 우리의 잘린 팔과 손가락이 아마 몇십가마니는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산업재해에 대해 사업주나 노동부는 대책과 보상을 외면하였고 특히 영세한 5인 미만의 사업장이 대부분이어서 노동부 보상대상에서도 제외되는 한편 사업주도 가진 것이 없어 배상하지 못하기에 대부분 최소한의 치료만 받고 강제추방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공장에서 쫓겨나 출국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노동부는 산업재해를 인정해 보상해주기는커녕 '불법취업 외국인이 임금체불, 산업재해등과 관련 소송을 제기할 경우 법원의 판결과 관계없이 이들을 우선 강제 출국 조치하도록 법무부에 요청'을 하고 있다. 이는 93년 11월 26일 서울고등법원이 필리핀인 아키노 시바은(26세)이 불법취업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산재보상을 받지 못한 것은 부당하다며 서울 동부 지방 노동사무소를 상대로 낸 요양 불승인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노동부는 요양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사실에 대한 노동부의 대책이었다. 그렇다면 팔이 잘리고 손가락이 잘려도 신고나 보상요구도 하지 말고 그냥 있으라는 것이다. 노동부가 산재를 방지하거나 줄이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기 보다 산재를 당한 외국인 노동자가 보상을 요구하면 먼저 강제 출국을 시키라고 요구하는 웃지 못할 내용인 것이다. 이후 소송이 잇따르고 외국인 노동자 농성사건이 터지면서 94년 2월 7일부터 산업재해 보상보험법부분에 대해서 일부 제한적으로 보상을 하겠다고 발표하고 5인 이상의 사업장에 한해서 보상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산재를 당하고서도 보상도 받지 못한채 강제 출국된 이들의 해외 농성과 집단적인 움직임, 그리고 국제적인 분쟁의 조짐이 보이면서 94년 9월부터 출국을 당한 이들에게도 소급하여 보상을 해 주기로 하고 해외 공관을 통해 접수를 받고 보상을 실시하고는 있지만 성과는 미미한 상태이다.
문제는 산업재해에 대해 보상을 해 준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장해를 입고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돌아가면 노동력을 상실하여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워 구걸하며 살아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외국인노동자들 중 방글라데시, 파키스탄등 의 이슬람국가에서는 지금도 형법에 이슬람 율법을 적용하고 있다. 지금도 도둑질을 하거나 강도 짓을 했을 경우 작두로 손가락 등을 자르는 형벌을 주고 있다. 한국에서 일을 하다가 팔이나 손가락이 잘리면 그는 평생을 범죄자로 오인받으며 살아야만 한다. 인도나 네팔, 방글라데시 등 대부분의 나라는 수저나 포크를 사용하지 않고 오른 손으로 식사를 하고, 왼손으로는 밑을 닦는다. 손을 잘린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는 '한 손으로 밥도 먹고 그 손으로 밑도 닦아야 하는것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에 많이 진출해 있고 저임금을 기반으로 생산활동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의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바로 그 나라의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지 아니하면서 현지 진출한 한국의 기업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더우기 중국에도 많은 기업들이 진출해 있는 바 교포들이 40년, 50년만에 꿈을 안고 찿아 와서 임금을 떼이고 손이나 팔이 잘려서 보상도 받지 못하고 그냥 돌아간 이들이 허다하다. 중국교포(조선족)들은 연변 자치주, 흑룡강성, 요녕성등에 밀집되어 민족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이 중국에 돌아가 교포들에게 고국에 대해 무어라 설명할 것이며, 진출한 한국의 기업들에 대해 '그래도 고국의 기업이기에 지원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할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 것인가?' 우리는 숙고해야 할 것이다. 만일 나 자신이 교포로서 그런 상황을 당하고도 그냥 추방되었다면 어떤 자세를 가질 것인가? 도시락이라도 싸들고 다니면서 불이라도 지르려고 쫓아다니지는 않을까?
산업기술연수제도 철폐하고 외국인 노동자 보호법(가칭) 제정해야
이주 노동자의 문제는 세계적인 관심사이자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과거 '자본'은 이동하지만 '노동력'은 고정되어 있다는 학설이 무너지고 '자본'도 이동하지만 '노동력'도 이동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WTO 협정에 이은 블루라운드의 논의도 그 연장선이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해결책은
첫째, 통일시대를 대비한 외국인력 도입정책의 수립이다. 통일 이전의 서독에는 200여년 저부터 500여만명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을 해 왔다. 그러나 통일이 되고 난 후 서독출신은 1등국민이요, 외국인 노동자는 이미 안정된 직장에서 일을 하는 2등 국민이고, 반면 동독출신의 독일인은 3등국민으로서 실업에 시달리며 빈곤에 헤메이게 되었고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축출을 요구하며 테러를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비추어 우리도 조만간 맞이하게 될 통일시대를 대비하여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신중하고 정당하게 외국인력 도입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둘째,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의 사면조치가 있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우리도 상당한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하고, 그들이 우리의 경제에 이바지했음도 사실이다. 더 나아가 먼저 들어 온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한국의 문화나 음식에 이미 잘 적응하고 있고 한국말도 잘 할뿐더러 숙련공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생산성 향상과 산업재해 예방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게 되는 바 잘 적응한 이들은 모두 강제로 추방을 하고 초보 연수생을 새로 들여오는 경우 먼저 들어 온 이들이 겪었던 여러 가지 위험성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불법체류자 사면에 대해서는 불법체류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한다. 사면이 되면 마음을 졸이지 않고 마음놓고 고용하고 그들도 마음놓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에서도 산업기술연수생들에 대해 현재 체류기간 2년까지를 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연장을 요청하고 있다)
셋째, 산업기술연수제도는 반드시 철폐해야 한다. 산업기술 연수제도는 가장 악랄한
일본의 연수제도를 모방한 제도로 처음부터 잘못된 결과를 가져 올 수 밖에 없었다. 최소한 국가간의 쌍무협정에 의거하여 법률적 근거를 바탕으로 제도가 마련되었어야 함에도 단지 법무부장관의 훈령만으로 특정부문이나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내용으로 진행되어 왔다. 도입과 관리에 있어서도 국가나 공익기관이 감당해야 할 내용을 고양이 입에 생선을 물려 놓듯이 노동자의 도입과 관리를 사업주의 연합단체인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에 모두 위임한 결과 최소한도의 인권도 보장되지 않은 채 이익집단의 논리만이 관철되어 왔다. 그토록 파문을 일으키며 파행을 가져 왔고 여러 가지 개선책이 보완되었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상존하고 있기에 산업기술연수제도는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
넷째, 외국인 노동자 보호법(가칭)을 제정해야 한다. 한국에 들어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자체 조직(방글라데시협회, 네팔협회, 중국노동자 협회등)들과 외국인 노동자 상담센타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지원단체들이 함께 모여 지난해 '외국인 노동자 보호법'을 제정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고 외국인노동자 보호법 초안을 작성하였다. 내용은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노동허가제를 축으로 하여 고용허가제 등의 장점을 반영하되 최소한도의 인권이 유린되지 아니하도록 짜여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당하게 도입하고 최소한도의 권리가 보장되어 지도록 이제 정기국회에 이 4개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 계류중에 있다.
동, 서남 아시아의 빈곤과 세계선교
나는 해외선교 또는 세계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져왔다. 우리가 사는 한국땅에도 해방의 복음이 전파될 곳이 너무나 많이 널려 있기 때문이고, 요즘 한국교회의 물량적이고 무분별한 선교는 참된 복음의 이미지를 심각히 훼손시킨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현지를 둘러 본 후부터는 해외선교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도의 갠지즈 강이 있는 '바라나시'의 기차 역에서 연착이 되어 늦은 밤 3시간을 기다리는데 그 사이에 두사람이 역 구내에서 잠을 자다가 영양실조로 사망해 실려 나가는 것이었다. 보자기를 살짝 들쳐 본 순간 마를대로 말라 피골만이 상접한 몰골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도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절반을 쥐가 먹어 치우고 쥐를 통해 페스트 등 전염병이 창궐하는데도 쥐를 잡지 않는다. 소가 부른 배를 흔들며 굶주린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를 활보한다. 캘커타의 경우 겨울에는 하루밤에 15.000명씩 얼어죽는다. 일부 부유층을 뺀 거의 모든 사람이 뼈에 가죽만 둘러쓰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네팔의 경우 극빈자 한사람이 살아가는 돈의 액수는 단지 1루피(한국돈 약 15원)에 불과하다.
인도나 네팔의 경우 힌두교가 지배종교이다. 힌두들은 관용에 대한 파격적 자세를 갖고 있다. 하나의 사원을 힌두승려와 불교승려가 함께 사용을 하기도 하고, 백미러 없는 차들의 홍수속에 버스나 화물차 뒷편에는 '클락션을 울리고 추월하라'는 안내판이 대부분이다. 원수 사이를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고 하는데 그곳에서는 원숭이와 개도 함께 뒹글며 장난친다. 그런데 이 관용이 지나쳐 가난과 질병에 대해서도, 나아가 독재와 무지에 대해서도 저항하지 않고 관용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자기 위치와 현실을 운명으로 알고, 유일한 희망은 환생할때 최고계급 브라만으로 태어나는 것뿐이다. 캘커타에는 가장 크고 유명한 칼리 사원이 있는데 하늘에서 떨어 진 '돌'을 모시고 매일 염소의 목을 쳐 피를 뿌리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그런데 마더 테레사의 '죽음을 기다리는 집'이 같은 담장을 사이로 맞대고 있다. 캘커타 최고의 사원이 있는 거룩한 곳이 최고의 극빈지역으로서 마더 테레사의 선교와 세계에서 몰려 온 자원봉사자들의 사랑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고 선교가 펼쳐져야 하는 곳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해외의 선교지로 진출을 하고 많은 선교사들이 목숨을 건 희생과 헌신으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러나 물량적이고도 무분별한 선교를 감행함으로 참된 복음의 이미지를 심각히 훼손시킨다는 생각은 여전히 지울 수 없다. 얼마전 러시아나 중국에서는 현지 정부가 공식적으로 우리 외무부에 항의문을 작성해 선교차원의 입국이나 활동을 금지시켜달라는 사태에 직면해 있다. 얼마전 외국인노동자의 보상금을 전달해 주려 네팔을 방문했을 때 성결교 김 선교사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네팔에서 대형부흥집회를 열고 돌아간 직후 네팔인 400여명이 연행되고 목사 13명이 구속되어 감옥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번 다녀가면 그만이지만 계속 남아 있는 선교사들이나 현지인 목회자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인도등도 다를 바 없다. 캘커타의 감리교 선교사 박목사도 "나는 목사이지만, 현지교회에서는 집사로 통한다. 내 직업은 글을 쓰는 '작가'이고, 다른 곳에서는 '사회봉사자'로 소개하기도 한다. 그리고 비자여행을 3개월에 한번씩 해야 하는 일이 최고의 어려움이다."고 토로한다. 중국 용정을 방문해 용정교회 예배에 참석했는데, 좌석에 앉은 직후 조그만 쪽지가 한 장 전해져 왔다. "남편에 대해 제발 정 '원장'이라고 불러 주세요."라는 것이었다.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에 대한 선교를 고민해 온 나로서는 현지의 선교상황을 이해하고 우리의 바람직한 역할을 찾아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현재 한국에 머물러 있는 중국교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을 따뜻이 대하고, 복음을 전하며, 더 나아가 이들에게 신학훈련을 거치도록 하여 목회자를 양성하고 본국으로 역파송하여 복음을 전하는 방안이 최고의 방법이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적인 선교라는데 일치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서로 논의하며 협력을 한다면 해외선교의 획기적인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1.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선교를 해 온것에 대한 많은 문제점과 폐해를 지적하였다. 그러기에 자기네들에 의해 스스로에게 복음이 전해 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것이 최선이다.
2. 현재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최고대학의 학부이상을 나온 인텔리들이며, 최고의 계급(예를 들어 힌두교도중 브라만에서도 최고의 계층임)에 속해 있어 앞으로 그 사회의 지도자들이 될 사람들이며, 신학교육을 하는데 있어서도 거의 대부분이 영어에는 능통하며, 한국에 3년이상 머문 이들은 한국어에도 능란하기에 별 어려움이 없이 교육에 임할 수 있다.
3. 한편 이들은 자기 직장에서 수입을 얻고 있기에 야간에 수업을 하면 시간도 충분히 낼 수 있다.
외국인을 학대하지 말고 자기같이 사랑하라!
우리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는 활동한지 5년이 되었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당하는 부당한 억압과 고통을 호소해 와 벌써 10.000여건 이상의 상담을 받아 처리 중에 있으나 역부족이다. 가장 많은 것이 임금체불이고, 산업재해, 질병, 폭행, 사고 등이 주를 이룬다. 외국인노동자의 집에는 평일에는 질병이나 산재로 인해 통원치료를 받는 사람들과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며칠 머물러 가는 이들 등 약 80여명이 머물고 있다. 주일에는 각국 외국인 노동자들이 중국어예배, 러시아어예배, 영어예배를 드리고 있고, 지난 부활주일에는 64명이 세례를 받기도 했다. 한편 각국 노동자들이 몰려와 갖가지 상담을 하고 함께 식사를 나누며 한글교육, 노래연습, 무료진료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집에 있던 몽골인 호일다르는 한신대학원 신학석사과정에 입학하여 신학수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도 함께 생활을 나누어 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기독교의 사랑이 이런 것인 줄 몰랐다며 세례를 받는 이들이고 늘고 있고, 혹 신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조심스레 물어 오는 이들도 있다. 평생 신봉하며 추구했던 공산당원에서 이제 예수당원이 되어 평생을 주님의 품 안에서 살아가겠다며 잘린 한 손을 모아 쥐고 눈물로 기도하는 류정기 할아버지를 비롯한 교포들도 모여 있다.
두 딸을 내어 주면서까지 나그네를 사랑하라?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위기 19장 33-4)하고 말씀하고 계신다. 아브라함은 집 앞 을 지나는 나그네 세사람을 보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영접하여 송아지를 잡아 대접했는데 그 나그네는 하나님의 사자들이었다. 천사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제 아들을 낳을 터인데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고 알려 주었다. (창세기 18:1-19) 소돔성에 사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길가는 나그네 두명을 영접하여 식사를 대접하고 하룻밤 머물고 가도록 했다. 잠자리에 들기전 소돔성의 모든 남자가 몰려와서 집을 둘러싸고 그 남자들과 상관해야겠다라고 한다. 롯은 뒤로 문을 걸어 잠그고는 호소하기를 "나에게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이 있네. 그 아이들을 자네들에게 줄 터이니, 그 아이들을 자네들 좋을대로 하게. 그러나 이 남자들은 나의 집에 보호받으러 온 손님들이니까, 그들에게는 아무일도 저지르지 말게." 그러자 소돔의 남자들이 롯에게 달려들어 밀치며 문을 부수려 하자 두 사람이 소돔남자들을 쳐서 눈을 어둡게 하여 대문을 찾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롯의 가족을 성에서 끌어 낸 후 뒤를 돌아보지 말고 피하도록 하였다. 결국 소돔성은 불과 유황으로 멸망을 당했다 (창세기 19:1-29) 길가는 나그네를 영접한 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의 출발임은 분명하다. 롯이 길가는 나그네를 영접한 것이 구원받은 이유이다. 우리의 축복과 구원은 나그네, 이방 타국인을 영접하는 것에서도 출발을 한다. 그런데 저도 공교롭게 딸 둘을 키우고 있는데 나그네를 손님으로 대하는 것이야 이해가 되지만 차마 '나의 두 딸을 내어 주면서까지 나그네를 보호해야 만 하는가?'하는 의문이 채 가시지 않는다. 한국에는 현재 25만명이 넘는 중국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불법체류라고 하는 신분적인 약점 때문에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을 당하면서도 어디에도 호소하지 못하는 딱한 처지이다.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하나님이 보내신 손님들이고 강도만난 사람일 수도 있다. 이들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필요하다. 또한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더 나아가 신학훈련을 통해 목회자로서 파송된다면 해외선교의 획기적이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웃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를 자문해 본다. 우리의 조그만 정성과 따뜻한 손길이 이들에게 다가갈 때 이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보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들을 인도함으로 이들로 말미암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지켜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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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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