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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빌라도

요한복음 김이수............... 조회 수 1690 추천 수 0 2008.07.29 23:04:17
.........
성경본문 : 요18:35-38 
설교자 : 김이수 형제 
참고 : 새길교회 2001.8.19 주일설교 
요한복음서 18:35-38, 19:4-16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예수가 로마 총독 빌라도의 재판을 받고 십자가형에 처해졌다는 역사적 사건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수에 대한 재판과정을 그 당시 있었던 대로 정확하게 그려내는 것은 매우 지난하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성경의 기록과 로마형법학자나 로마역사연구가들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고 난 많은 사람들의 소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사명감을 갖고 그 재판의 문제점을 찾아내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또 예수를 재판을 받았던 범죄인으로 그대로 놓아둘 수 없다고 하여 일단의 기독교 신학자들이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이스라엘 대법원에 예수에 대한 판결의 재심청구를 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스라엘 법원은 고심을 거듭하다 1967년에서야 재심청구를 각하 하였는데, 그 이유는 소송기록이 이스라엘 법원에 남아있지 않고 그 재판도 로마총독의 법정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재심청구는 이탈리아법원에 제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에 대한 재판의 소송기록은 현재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재판 절차와 내용 등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기록을 통하여 파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네 복음서의 기록들은 예수의 체포와 재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 주고 있는데 서로 다른 전승에 기초하여 작성된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차이점을 나타내고 있기도 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를 체포하는 데에 로마군인들과 성전경비병이 동원되었다고 하지만 다른 복음서에는 로마군인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마태, 마가복음에는 공회에서의 예수에 대한 신문에 관하여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으나 요한복음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습니다. 그 대신 요한복음은 빌라도의 재판절차를 드라마틱하게 관저 안과 밖으로 무대를 전환하면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빌라도가 재판 도중 예수를 무죄로 석방하기 위하여 노력한 것으로 그려져 있으나 마태, 마가복음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습니다. 학자들은 로마선교를 위한 목적으로 요한복음의 기자가 빌라도에 대하여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파악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 경중을 따지는 근거로 쓰이기도 합니다. 빌라도와 유대인들 중 누구의 책임이 더 큰가에 대하여 많은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재판을 한 빌라도의 책임보다는 고소한 유대인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예수가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 19장 11절)
일부 기독교인들은 2차대전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예수의 십자가형에 대한 유대인의 책임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어처구니 없는 해석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참으로 사건의 원인, 경과 등을 잘 따져보지 않고 나타난 결과만 보고 판단하는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체코의 프라하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폴 윈터는 나찌 치하에서 탈출하였지만 그의 어머니와 누이동생들이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20년 정도 예수에 대한 재판연구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산헤드린의 절차는 허구이고 예수에 대한 체포도 빌라도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유대인의 책임이 크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를 죽이기로 하는 모의와 체포

예수의 공생애 3년을 통해 그의 사역활동은 율법의 엄격한 적용을 중시하는 바리새인들에게는 평소에도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유월절 엿새 전 예루살렘 부근 베다니 지방에서 예수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자 민심은 예수에게 확 쏠리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신 기적은 병을 고치는 치유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에 놀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 무렵 공회를 열어 예수에 대한 대책회의를 가졌습니다. 그 회의에서 두가지 점이 논의되었습니다. 하나는 예수를 이대로 방치하면 유대의 모든 사람이 그를 믿게 될 것이라는, 종교적인 헤게모니를 상실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로마에 대한 혁명을 꿈꾸면서 예수를 정치적 메시아로 섬기고 따르는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이들이 폭동을 일으키면 로마군인들이 진압을 할텐데 그 과정에서 많은 백성들이 피를 흘리게 되고 진압 결과 로마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자치권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는, 정치적인 불안감이었습니다.(요한복음 11장 47-57절 참조)

그 대책회의에서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주도로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유익한 대책이라고 하여 예수를 제거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오면 그를 체포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에 대한 지명수배령을 내렸습니다. (요한복음 11장 57절)

최후의 만찬이 끝나고 게세마네동산에서 예수는 체포되었는데 로마군인들과 대제사장의 휘하에 있는 성전경비병들이 유다를 데리고 왔습니다.(요한18장 3절, 12절) 체포 과정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저항에 대비하여 로마군인까지 동원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를 체포한 성전경비병들은 먼저 전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안나스는 현 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며 그의 아들들도 대제사장이 된 사실상 유대인 실권자였습니다.

안나스가 예수에게 제자들과 그의 가르침에 대하여 물어 보았으나 예수는 "나는 터놓고 세상에 말하였다. 들은 사람에게 물어 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였습니다. 그 후 그들은 예수를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공회에서의 신문

예수의 체포소식을 들은 공회의원들(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이 가야바의 집에 모여들었습니다. 이른 새벽시간에 임시 공회(산헤드린)가 그 곳에서 열렸습니다. 산헤드린에서는 예수를 사형에 처할 증거를 찾기 위하여 많은 증인에 대한 신문을 하였지만 별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였습니다.(마태 26장 60절)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와서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3일만에 다시 세울 수 있다고 하였다고 증언을 하였습니다. 예수는 반대신문권을 행사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의 집요한 질문,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신문에 드디어 예수가 "그렇다. 이 후에 내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볼 것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옷을 찢었지요. "저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였으니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겠는가. 여러분도 저 모독적인 말을 다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결론을 유도하여 산헤드린 전체회의에서 예수를 고소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누가 22장 66-70절, 마태 26장 59-68절, 마가 14장 56절)

위와 같은 증거조사는 만일 고소가 허위라면 무고죄로 처벌될 수 있으므로 로마법정에 고소하여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찾으려고 하는 절차로 보아야지 산헤드린 재판절차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무튼 산헤드린 전체회의의 고소 결의는 빌라도에게 강력한 부담을 주었을 것입니다.

재판절차

산헤드린 공회가 끝난 이른 아침 유대인 지도자(대제사장, 장로)들은 예수를 끌고 로마 총독의 관저로 갔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빌라도 관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유월절 음식을 먹으려면 정결 의식을 거치지 않은 건물에 들어가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홀로 총독의 관저 안팎을 연극의 무대처럼 들어가고 나오면서 재판이 진행됩니다.

빌라도가 관저 밖으로 나오자 유대인 지도자들은 산헤드린의 결의에 따라 예수를 고소합니다. 예수에 대한 고소내용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면서 왕정을 수립하기 위하여, 즉 로마의 식민통치를 폐하기 위하여 백성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로마의 속주세에 대한 납부를 거부하라고 하는 등 폭동을 예비 음모하거나 선전 선동하였다는 것으로 결국 내란행위를 하였다는 것입니다.(누가 23장 2절) 당시의 로마형법(국가반역죄 처벌에 관한 율리우스법)에 의하면 대역죄로 다스릴 수 있는 경우로 내란죄, 황제에 대한 인격침해 등을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대역죄는 죄상에 따라 유배형, 추방형, 사형에 처하고, 재판관의 재량에 의하여 형을 감경할 수 있었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귀족은 참수형, 기타의 자는 십자가형에 처하였습니다.

(1) 관저 안에서 빌라도의 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가 왕으로서 다스리는 나라의 성격에 관한 신문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습니다. 예수는 이를 시인합니다. 빌라도는 다시 예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을 하였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내가 유대인들에게 넘어 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변하였습니다.

다시 빌라도가 " 그러면 네가 왕이란 말이냐"라고 다시 묻습니다. 예수는 " 그렇다. 네 말대로 나는 왕이다. 사실 나는 진리를 증거하려고 났으며 이것을 위해 세상에 왔다. 누구든지 진리의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듣는다."고 답변하였습니다.(요한18장 35-38절) 이어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인가하고 물었을 때에는 그는 사실상 유대인의 왕의 의미가 현실정치의 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보입니다.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 부분에 관한 신문을 마치고 다음으로 내란죄의 한 범죄사실로 되어있는 백성에게 폭동을 선동하였다는 부분을 신문하였지만 역시 무죄의 심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백성에게 폭동을 선동하는 것을 보았다는 유대 군중들의 항의(누가 23장 5절 참조)를 받고 다른 방법으로 더 진상을 파악하기로 하였습니다.

예수가 갈릴리출신이고 범죄가 주로 갈릴리지방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여 백성들을 선동하였다는 고소내용에 대해서는 때마침 예루살렘에 와 있었던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에게 예수를 보냈습니다. 진상의 파악을 수탁받은 헤롯은 여러 가지로 신문하여 보았지만 폭동을 선동하였다는 부분에 대하여 별 다른 죄를 찾지 못하고 다시 빌라도에게 예수를 돌려 보냈습니다.

또 세금납부를 거부하게 하였다는 부분에 관하여 살펴봅니다. 성경의 기록상 그 고소 부분은 근거 없음이 명백합니다. 속주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성전세를 내는 것 외에 멀리 있는 황제에게 속주세를 바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지만,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평소 갈릴리지방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새로운 법을 가르치고 있는 예수가 민중을 선동하여 로마에 저항하는 혁명운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촉각을 세워 첩보를 수집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의 활동에 대하여 로마 당국이 탄압이나 규제를 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예수의 세금납부에 관한 말씀도 이미 파악하여 로마에 정치적으로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최종 결론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시인을 결코 내란죄의 자백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한편 요한복음과는 달리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예수가 유대인의 왕임을 시인한 외에는 고소내용에 대하여 다른 변명을 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마태27장 11-12절, 마가 15장 2-5절) 로마의 형사법에 따르면 자백은 유죄의 증거로 인정되었고 자백이 있으면 증거조사 절차도 필요 없고 변호인의 변론도 필요 없이 형을 선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침묵은 묵시적 자백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로마법학자들은 위와 같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록을 근거로 유대인의 왕임을 시인한 부분을 내란죄의 자백으로 보고, 그렇다면 자백을 증거로 한 빌라도의 재판은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2)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을 소집하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을 소집하였다는 의미는 그들의 재판절차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로마의 속주재판에 관한 연구를 보면 속주 총독의 재판에 유대의 명망 인사들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빌라도는 "여러분이 직접 보는 앞에서 조사해 봤으나 여러분이 고소한 죄를 찾지 못하였소. 헤롯의 의견도 마찬가지요. 이 사람은 죽을 일을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매질하여 놓아주겠소"하고 말합니다.(누가 23장 13-16절)

백성들에게 가르친(다소 과격하게) 사실은 인정되지만 폭동을 선동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현대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유언비어의 유포 정도(경범죄처벌법위반)에 불과하니 매질이나 하여 놓아주겠다고 의견표명을 한 것입니다. 태형도 범죄에 대한 형벌의 하나이므로 태형에 처할 범죄 정도는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설령 그의 가르침이 폭동의 선동이었다고 하더라도 사회를 불안하게 할 가능성 뿐이라면 사형에 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로마의 다수의 반역죄에 판결례 참조)
그러나 빌라도는 내란죄에 대하여 무죄임을 확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형사소송법의 원칙으로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라는 무죄추정의 법리가 있습니다. 유죄의 확신이 없을 때에는 무죄의 선고를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더 나아가 무죄의 확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왕임을 시인하고 다른 고소내용에 대하여 침묵한 것을 내란죄의 자백으로 취급하여 더 이상의 증거조사절차 없이 법과 양심에 반하여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무엇이 그를 흔들고 번민하게 하였을까요?

그의 결심을 흔든 것은 무죄선고가 유대의 특수성(법, 관습)을 인정하도록 한 로마황제의 통치방침에 어긋난다는 자문위원의 의견이었습니다. 소집된 자문위원들은 "우리에게도 법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니 우리 법대로 하면 마땅히 처형되어야 합니다."라고 의견을 내세웠습니다. (요한 19장 7절) 성경은 군중들의 집요한 요구보다 이 말에 더욱 두려워 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요한 19장 8절)

넓은 영토와 다양한 민족을 다스려야 하는 제국(empire)은 왕국(kingdom)과는 달리 민족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통치가 불가능합니다. 로마제국은 유대를 속주화하면서 유대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유대지방장관(곧 총독)의 관저와 지배자 로마를 상징하는 군사력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두지 않고 그리스계 주민이 많은 교역도시 가이샤라에 두어 유대인들을 자극하지 않도록 조치하였습니다.(물론 총독은 예루살렘에 상주는 하지 아니하였지만 헤롯 궁전에 관저를 두고 업무를 처리하기도 하였습니다.) 가이샤라는 예루살렘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로마군 병사가 예루살렘으로 출동하는 경우에도 황제의 권력을 상징하는 군기는 가이샤라에 두고 출동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유대에서 통용되는 로마의 통화 중 가장 사용 빈도가 높은 동화에 황제의 옆얼굴을 새기지 않도록 하여 우상숭배를 금하는 유대교의 관습을 존중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금화, 은화에는 로마황제의 옆얼굴이 새겨져 있었으나 금화, 은화는 일반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기회가 거의 없었음) 중죄 이외의 범죄에 대한 재판권도 산헤드린에 위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지방장관들 중 유대민족의 특수성에 무지하여 그릇된 판단을 한 사람도 있었으며, 빌라도도 그러한 사람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마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군기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였고 성전수입의 일부를 공공시설을 건축하는데 사용한다면서 강제로 징수하기도 하였습니다. 평소 로마황제의 방침에 어긋나 유대지도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던 빌라도는 만일 이 문제로 다시 유대인들의 진정이 있으면 본국에 소환되는 것을 두려워 하였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번 고소는 산헤드린 전체회의 결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무죄 선고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 빌라도를 흔들리게 한 것은 자문위원들의 "이 사람을 놓아주면 로마황제의 충신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황제를 반역하는 자입니다"(요한 19장 12절)라는 의견이었습니다. 빌라도는 B급 속주인 유대의 지방장관(프로쿠라토르)으로서 직속상관인 시리아총독의 지휘를 받았고 그 자신 귀족계급이나 원로원 출신이 아니고 기사계급(제2 계급) 출신이었습니다. 본국에서의 정치적 기반이 든든하지 않았습니다. 무죄선고를 하였을 경우 유대지도자들이 로마황제의 충신이 아니라고 본국의 황제에게 보고하여 자신이 문책 당하여 본국 소환되는 것을 두려워 하였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빌라도를 흔들리게 한 것은 군중들이었습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군중들은 폭동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열기가 높았습니다. 그런데 그 군중들은 예상외로 예수의 처형을 요구합니다. 당시 빌라도는 폭동의 진압에 필요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난 군중의 집요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여론추수) 폭동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였습니다.(마태 27장 24절) 폭동발생은 자신을 해임하는 사유도 됩니다.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고 영접하던 예루살렘의 군중들은 빌라도의 예상을 뒤엎고 왜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해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하였을까요? 많은 유대민중들이 평소 예수를 정치적 의미의 왕(메시아)으로 기대하였지만 예수는 이 기대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런 예수에 크게 실망하였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는 체포 당시에는 저항도 없이 순순하게 연행되었습니다. 여기에 대제사장 측의 여론 조작-- 예수가 왕이다 메시야다 하고 다니더니 우리가 속은 것 아니냐는 취지의 소문을 퍼뜨리는 여론조작--도 군중들로 하여금 그러한 요구를 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마가 15장 11절, 마태 27장 20절 참조) 여론이란 분위기나 감정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쉽고 때로는 조작이 가능합니다. 합리적 논리에 바탕을 둔 재판은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이 필요합니다. 여론은 항상 청취하여야 하고 이를 고려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여론에 추수하여 법과 양심상에 어긋나는 재판을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3) 빌라도는 이제 관저 밖 광장 넓적한 돌이 깔린 재판석에서 예수를 피고석에 세우고 사형을 선고합니다. 때는 유월절 전날 정오 조금 전이었습니다. 빌라도의 사형선고 후 로마군인들은 예수를 총독관저 안에 있는 군 본부로 끌고 가서 그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리고, 자주색 옷을 입힌 다음 조롱하고 뺨을 치고 나서, 가짜 왕의 옷, 자주색 옷을 벗기고 다시 예수의 옷을 입힌 다음 형장에 데리고 가 십자가형을 집행하였습니다.

빌라도의 재판은 절차적인 면에서는 당시의 로마 속주의 형사법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의 법으로 속주의 로마 총독은 자문위원의 조언을 참작하여 중죄(내란, 소요 등 로마제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정치범과 살인, 강도, 방화 등 흉악범)에 대한 형사재판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자문위원에는 산헤드린 의원, 고위관직자, 저명한 법학자 등을 지명하였습니다. 물론 자문제도는 요즈음의 배심재판제도와는 다릅니다. 우리가 아는 검사라는 공직은 존재하지 않고, 검사 역할은 피고를 고발한 당사자가 직접 담당하는 사인소추의 원칙이 채택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재판장소는 오늘날처럼 따로 법정이 없었고 광장이나 공공장소 또는 공공건물 내에 설치된 장소에서 하였고 이는 일반에게 공개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최종적으로 사형선고를 결심하고 물을 가져오라고 하여 손을 씻고 예수의 피에 대하여 "나는 책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말 책임이 없을까요? 저는 말씀 증거를 준비하면서 제가 예수에 대한 재판을 맡았더라면 어떠한 재판절차를 거쳐 무슨 결론을 내렸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20여 년 동안 법관으로서 담당하였던 재판을 회고하여 봅니다. 저도 재판에 임하여 빌라도처럼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던 것은 얼마나 많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참으로 다른 사람의 재판이나 하는 일에 대해서 비판하기는 쉽지만 저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것은 자기 변명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약점 때문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백성들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하는 말을(마태 27장 24-25절) 위안으로 삼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재판을 비롯하여 모든 판단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판단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누구에게 그 탓을 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 증거를 준비하면서
당신께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하여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희를 바른 길로 인도하셔서
저희가 맡고 있는 일에서 항상 올바른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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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8 마태복음 근본적 변화 - '검'으로 존재하기 마10:34-39  이정배 교수  2008-07-29 1576
1187 창세기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원소 창1:1  김희준 형제  2008-07-29 1605
1186 마태복음 참다운 안식의 길 마11:25-30  길희성 형제  2008-07-29 1947
» 요한복음 흔들리는 빌라도 요18:35-38  김이수 형제  2008-07-29 1690
1184 누가복음 그가 기도하실 때에 눅9:28-36  나현숙 전도사  2008-07-29 1759
1183 신명기 복 주시려고 신8:6  김남준 목사  2008-07-29 2058
1182 이사야 달콤한 연단 사48:10  김남준 목사  2008-07-29 2300
1181 시편 은을 단련함 같이 시66:10  김남준 목사  2008-07-29 3010
1180 사무엘하 아버지의 통곡 삼하18:33  김남준 목사  2008-07-29 1969
1179 에배소서 부모 공경과 순종 엡6:1-9  김남준 목사  2008-07-29 2867
1178 여호수아 먼저 내 부모를 구원하라 수2:1-21  김남준 목사  2008-07-28 1885
1177 에스겔 부모를 업신여긴 자의 결국 겔22:7  김남준 목사  2008-07-28 2103
1176 신명기 네 부모를 업신여기지 말라 신27:16  김남준 목사  2008-07-28 2178
1175 마태복음 가르치는 자의 정서 마9:35-38  강종수 목사  2008-07-27 1749
1174 창세기 가인의 표 창4:1-16  김이곤 목사  2008-07-26 2704
1173 마태복음 잃어버린 영혼 70년 마4:1-4  길희성 형제  2008-07-26 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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