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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 변화 - '검'으로 존재하기

마태복음 이정배............... 조회 수 1573 추천 수 0 2008.07.29 23: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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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0:34-39 
설교자 : 이정배 교수 
참고 : 새길교회 2001.9.2주일설교 
벌써 몇 년째 한해 한두번씩 중요한 절기나 계절이 바뀌는 때에 새길교회 성도님들과 만나왔습니다. 귀한 만남이란 생각이 들어 설교를 구상하고 작성하는 일에 신중을 기하곤 하였지요. 설교를 잘해 보겠다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진실을 나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달이 바뀌고 가을로 접어드는 지점에서 새길교회 강단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 주제를 "변화"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믿고 아는대로 예수는 본래 이땅에 새 질서, 새바람을 일으키려 했던 분입니다. 1세기 초엽 유대 팔레스틴 사회내에 만연된 인습화된 유대문화, 소위 넓은 길은 비판하고 하나님의 영이 활동하는 인간 삶의 새 토대를 꿈꾸셨던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먼저 개개인 인격의 내부에서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한 사람의 내면으로부터 새로운 세계가 열려지고 하나님의 영이 다스리는 삶이 시작될 때 그로부터 우주의 질서가 바뀌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는 길을 열심히 알리셨습니다. 성서에 기록된 천국의 비유라는 말씀이 그것들이지요.

어떤 농부가 남의 밭을 가는 도중 밭에 묻힌 보화상자를 발견하였답니다. 그 농부는 놀라서 기뻐하며 그것을 잘 묻어두고 집에 돌아가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바로 이러한 농부의 전적인 행동을 예수는 천국을 발견한 자의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진주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모으려 다니던 사람이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지금껏 보지 못했던 좋은 진주를 발견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진주를 발견하였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지금까지 수집했던 다른 진주들은 팔고 가옥과 전답을 팔아 진품의 진주를 사고 너무도 흥겨워했다는 것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천국, 하나님 나라를 자신의 일부분만을 가지고서는 얻을 수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백만장자라도 자기자신의 절반을 가지고는 천국을 살 수 없는 것이며 극빈자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면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찌 이것이 재물뿐이겠습니까? 지식, 감정, 자신의 생명까지를 다 바쳐 정말 소중한 것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즉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하여서라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믿는다면 지금까지 귀하다 여기던 것을 스스럼없이 놓아버리는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최상의 가치인 천국을 소유한 자에게 오는 기쁨이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이 없다면 복음은 복음이 아닐 것이며 더 이상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영의 인도로 인간내면 속에서 이런 기쁨이 용솟음 칠 때, 새로운 세계, 새로운 우주는 바로 그곳에 있으며 그로부터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대로 천국에 관한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이 인간의 심령 속에 임할 때 여기에는 필연코 격렬한 가치투쟁이 생겨납니다. 독일성서공회편 관주성경에 보면, 오늘 읽은 본문에 "예수 때문에 생기는 분열"이란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아비와, 딸이 어미와 분쟁하도록 했고 집안 식구들 모두가 서로에게 원수가 되도록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본문 말씀에서 '검'이란 본래 분열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더 깊게는 자기자신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지요. 큰 죽음, 곧 정신적 죽음을 죽어야만 분열이 극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자신이 절대라고 믿고 생각했왔던 가치관, 인생관, 이데올로기 등이 그리스도께서 던지신 불로 인하여 사라지고 하나님 영으로 이 땅의 삶이 새롭게 시작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봄날의 여린 꽃, 여름의 녹음, 가을하늘의 높고 청명함 그리고 겨울의 설경 등 외형적으로 아름답게 보이고, 화려하듯 보이는 자연, 그리고 부족함 없이 사는 듯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 이면에는 아픔과 상처가 깃들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성서적 표현으로 말하거나 인간을 비롯하여 자연의 모든 것들이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해방되기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롬 8:21-22). 인간을 비롯하여 식물과 동물 모두가 새 질서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천지, 개벽된 세계가 한 개인속에서 성취되고 가정과 국가 및 전우주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의 목표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사실 풀이하기도 어렵지만 그 말씀의 뜻을 새겨 실천에 옮기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껏 여러 차례 이 본문을 갖고 설교하려 했으나 제 스스로 자신이 없어 본문으로 택하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설교는 남에게 증거하기 이전에 자신의 실존과 대면하는 일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 본문 말씀을 읽게 된 것은 탄생 100주년은 맞은 위대한 신앙인 김교신의 글을 묵상하고 난 감동 때문이었습니다. 44살, 조국이 해방되기 몇 달전에 노동자들과 함께 흥남부두에서 일하다가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평신도 신학자 김교신의 그리스도에 대한 혼신의 믿음과 조선에 대한 사랑을 깊이 생각한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서와 자신의 조국 조선을 결코 둘로 나누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리선생이었던 그는 조선 땅에 성서를 올려놓고자 하고 일념으로 고독하게 이란 잡지를 만들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불태웠지요. 일본의 압제에 시달리는 망가진 조국, 그러나 재래의 문화와 도덕 등 구습에 얽매어 스스로 종의 멍에를 걸머진 조선민족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정면으로 시비걸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망했던 것은 성서의 말씀, 살아계신 하나님이었지 결코 서구신학이나 선교사들이 전달한 제도나 교리는 아니었습니다. 정교분리 원칙을 고수한 교회, 그들이 주도하는 소위 정통교회는 생명없는 형식만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인의 비판을 받았던 무교회론이 시작되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무교회주의란 교회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형식화되고 세속화된 교회를 인정치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교회주의는 결코 기성 교회만을 항쟁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지는 않았습니다. 조선민족이 살고 있는 일제하의 사회현실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김교신은 일제로부터도, 서양선교사로부터도 그리고 조선의 교회들로부터 일제히 배척을 받았습니다. 실로 김교신의 생애 전체는 그리스도 영을 따라 살다 모두와 더불어 등진 인생이었습니다. 진정 오늘 본문 말씀처럼 조선교회와 민족을 위하여 검을 주려고 오신 분이었지요. 참으로 위로부터 주시는 용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로지 성서와 복음만을 알았던 김교신, 그래서 이 민족에서 참된 기쁨을 주기 위해 모든 거짓된 것과 싸웠던 그분의 삶이 주는 감동이 비로소 본문 말씀과 저 자신을 대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실제로 김교신 선생도 이 본문을 가지고 몇 차례 설교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2000년전 예수의 말씀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30년대 김교신의 삶을 통해서 그렇게 표현되었다면 이제 21세기를 맞는 한국의 새로운 상황속에서 이 말씀이 새길을 가려는 여러분과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고 구체화되어야 하겠습니다.

21세기를 준비해온 한 학자들의 모임에서 조만간 현실이 될 - 부분적으로 이미 현실이 되고 있는 - 한국사회 및 문화의 당면과제가 다음처럼 요약된 바 있었습니다. 이데올로기 논쟁의 종언과 함께 부상된 세계자유시장경제체제의 부산물들, 즉 경쟁의 와중에서 소외된 다수에 대한 사회적 배려의 문제, 통일을 앞둔 시점에서 남북, 남남간의 이념적 가치극복,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더 이상 자연이 아니라 기술이 되어버린 상황속에서 테크놀로지에 대한 윤리적 평가, 환경호르몬을 위시한 생태환경의 파괴,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의 양식으로는 고쳐질 수 없다는 진단 - 마지막으로는 가부장제의 종식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당면한 현실앞에서 한국사회와 교회 그리고 우리 신앙인은 실상 얼마나 무력하였습니까? 시장경제논리에 세뇌되어 '많은 것이 좋다'(more means better)는 논리에 예수 복음마저 잠식시켰고, 전대미문의 기술적 축복에 매료되어 즐기려고는 하고 오래 살려고는 하되 기술문명을 비판적으로 검증할 능력과 소양을 갖추지 못한채 살고 있습니다. 소비자로서만 살고 있기에 제반 삶의 존재양식이 환경친화적이 되지 못하였고 북한 동포에 대한 냉담함을 포함하여 사회 전반에 만연된 가부장적 가치관을 수용해온 현실 역시 고쳐야 될 사안이라고 믿습니다. 미래를 누구보다 앞서 준비해야 될 책임이 있는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오늘날 현실속에 매몰되어 있다면, 이 시대와 화평하게만 지내려고 한다면 우리는 진실로 형식적 종교인들이든지, 아니면 무신론자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점에서 본문 말씀은 우리 시대를 향해 우리 모두가 '날카로운 검'으로 존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와 더불어 정신적으로 싸우며 최상의 것을 위해 큰 죽음을 죽으라는 것입니다. 검으로 오신 예수처럼, 값비싼 보화를 발견한 농부처럼 살라는 것이지요.

한때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신부 일을 하다가 교육자로서, 문명비판가로서 활약하고 있는 이반 일리치란 사상가가 있습니다. 그에게는 낭만주의자, 더욱 혹독하게는 '시대착오적인 낭만주의자'라는 부정적 평가가 뒤따르고 있지요. 왜냐하면 그는 경쟁을 근거로 경제 활동이 진화할수록 인간정신이 퇴화되어가며, 그렇기에 경쟁의 속도를 줄이고 경제를 축소시켜 인간이 황폐화되는 것을 막자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다우지수에 촉각을 세우고 환율변동에 혈안이 되고 있는 이때에, 한때 신부의 길을 가던 일리치의 주장은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차량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우리 생활은 여유대신 더 바쁘게 되고, 안정된 쉴만한 공간이 사라지며, 가질수록 상대적 박탈감으로 고민하게 되며, 안정을 추구할수록 우리 주변에는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뿌리 뽑혀진 삶이 가중되고 있음을 보기 때문입니다. 초근 한 보도에 따르면, 미국따라잡기식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다수의 불행만이 가중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세게 인구의 절반이 넘는 30억의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이지요. 분명 경쟁을 토대로 경제적 가치가 여타의 가치를 독점하게 되면서, 인간 몸이 망가지고, 이웃간의 관계도 깨어지며 자연도 파괴되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대신에 돈에 대한 신뢰가 우위를 점하면서 총체적 위기가 발생한다고 일리치는 보았던 것입니다.

모두가 2등의 존재의미를 인정치 않고 있는 이 시대에 일리치의 주장은 낭만주의적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근본적 생각을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변화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사람들이며, 인간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이점에서 저는 창세기 33장 이하에 나오는 '절뚝거리는 야곱'의 심정을 헤아려 보고 싶습니다. 자신의 목적한 바를 위해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2등의 운명을 1등으로 바꾸기 위해 어떤 경쟁, 대립, 속임수를 마다하지 않았던 야곱, 그러나 모든 것을 얻었으나 자신의 근본문제, 곧 아버지와 형과의 화해를 이루지 않고서는 삶의 안정을 누릴 수 없었던 야곱이었습니다. 이 문제로 고민하던 야곱은 압복강변에서 하느님 천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와 씨름하며 자신의 고뇌를 해결해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야곱의 환도뼈는 부러졌고 그로 인해 절뚝거리며 걷게 되었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지요. 이로써 예전처럼 빠르게 달리지 못했고, 1등이 될 수 없었으며 처음으로 멈추어 설줄 아는 인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르게만 달려갔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형제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하느님을 대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절뚝거림, 느림은 그에게 참된 은총이며 기쁨이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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