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

갈라디아 조용기 목사............... 조회 수 3243 추천 수 0 2008.07.31 09:01:21
.........
성경본문 : 갈2:20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2년 2월 17일여의도순복음교회)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내 몫에 태인 십자가』라는 말씀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가 싫었습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당하실 심적, 육체적 고통을 내다보시고 몸서리 치셨습니다. 여북(오죽)하셔야 하나님께서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를 면하게 해주시라고 하나님께 간청을 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걸머질 마음의 힘을 얻기 위하여 사력을 다하여 기도하셨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의 간청을 거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어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달리셨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되셨고 삼일만에 지극히 큰 영광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없이 영광의 부활은 결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날 예수 믿고 살아가면서 우리에게도 십자가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 각자가 내 몫의 태인 십자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십자가는 사형틀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새싹이 나는 것처럼 부활의 새 생명은 죽음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말하기를 기독교는 모든 종교 위의 종교다. 한알의 밀알의 진리를 가진 종교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구원을 받은 모든 성도들에게는 다 제몫의 태인 십자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육에 속한 자아가 죽고 신령한 나로 변화를 받는 곳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 아담과 하와의 혈통을 통해서 태어나서 부패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데 예수 믿고 난 다음 이 부패한 자아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육체는 수양과 도덕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육체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는 모든 자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다가오는 체험인 것입니다.
(고후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 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십자가라는 이 환란을 통해서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는 크고 작은 십자가가 일생에 반드시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이것은 하나의 이론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우리의 삶속에 십자가를 걸머질 때 우리 정과 육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내가 달려 죽어야 없어지지 내가 달려서 죽지 않고는 십자가의 형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를 피하려고 발버둥을 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도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해도 아버지께서 들어주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십자가의 잔을 옮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한가지입니다. 아무리 십자가를 옮겨 달라고 부르짖어도 십자가는 옮겨지지 않습니다. 왜! 십자가는 여러분이 매달려 죽으라고 보내신 것이기 때문에 옮길것이 아니라 매달려 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가 받아야 되요. 십자가를 자꾸 멀리 멀리 밀어내려고 하지말고 내 몫의 태인 나의 분깃으로 알고 받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하신 말씀대로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주님께서는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했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았으니까 내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십자가를 걸머지시고 난 다음에 영광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를 걸머져야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삶속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십자가 다가오면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우리 부모님 때문에 십자가를 걸머진다. 내 남편 때문에, 내 아내 때문에, 내 아내 때문에, 자식 때문에, 이웃 때문에, 내 상사 때문에... 남에게 십자가의 이유를 돌립니다. 그러나 여러분 십자가를 남의 탓으로 원망하지 말아야 됩니다. 십자가는 내 몫에 태인 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 몫의 태인 것입니다. 남 때문에 내게 십자가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그 십자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십자가를 보내신 것입니다.
(눅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아가 강한 사람은 그 몫에 태인 십자가가 더 고통스러운 것이고 자아가 약한 사람은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가 가벼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에서 보면 그대가 어디로 가던지 십자가를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대가 가는 곳에는 항상 그대의 자아가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대가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면 오히려 십자가가 그대를 지고 원하는 목표까지 그대를 인도하리니 만약 그대가 십자가를 벗어버리면 틀림없이 또 다른 십자가가 닥칠 터인데 그 십자가는 어쩌면 더 무거울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입니다. 내 십자가를 피하면 피해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다음에는 그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담대하게 십자가를 나의 운명으로 알고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십자가에 매달리면 그곳은 기적이 나타납니다.
(고후4:10-11)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도 우리속에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쁨과 소망과 사랑의 체험은 십자가를 걸머질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기쁨과 소망과 사랑으로 다가오는데 이것은 십자가를 걸머질 때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인격적인 깊은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후4: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살리는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서 신령한 영광스러운 인격적인 변화를 체험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내가 십자가를 걸머지면 생명의 역사가 이웃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를 거부하면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이웃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에는 유교가 심하고 전통적인 종교가 심한 나란데 예수 믿는 며느리가 들어가서 한없는 구박을 받고 십자가를 걸머지고 고통을 당한 이후로 생명이 그를 통해서 온 집안에 다 넘쳐나서 온 집안 식구가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 백성이 된 그러한 예가 비일비재합니다. 불신의 가정에 들어가서 한사람이 십자가를 걸머지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그를 통해서 온 가정에 넘쳐나는 사실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고후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십자가로써 죽어야 생명의 역사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게 십자가가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 부활의 생명이 전달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지방에 철도가 있었는데 한 소년이 이 철도옆을 지나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이 소년이 철도를 지날때면 반드시 기차가 지나가곤 했습니다. 하루는 소년이 철도연변을 지나 학교를 가는데 간밤에 내린 폭우로 철도가 끊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시간을 보니 기차가 지나갈 때였습니다. 소년은 기차를 멈추게 하지 않으면 수 백명이 죽게 된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소년은 다급하여 입고있던 하얀 셔츠를 벗었습니다. 책가방속에 있던 필통에서 칼을 꺼내어 넓적 다리의 동맥을 잘라서 셔츠를 피로 물들였습니다. 그것을 깃발처럼 흔들며 기차가 달려오는 쪽으로 뛰어가며 "STOP! STOP! STOP!!"하고 외쳤습니다. 기관사가 멀리서 소년이 붉은 깃발을 흔들며 달려오는 것을 보며 기차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갖갖으로 기차가 소년 앞에 멈춰섰고 기관사가 내려보니 철로가 끊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맥을 끊어 피를 너무나 많이 흘린 소년은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기차가 갑자기 정지하자 무슨일인가 뛰어내린 승객들은 그 소년을 끌어 안고 “이 소년의 피값으로 우리가 살았다”고 다 통곡을 했습니다. 승객들은 그 자리에서 모금을 하여 소년의 동상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소년이 갖고 다니던 책가방 속에는 신약성경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주일학교 때부터 들었던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생명이 산다는 진리를 그의 생활속에 실천해 보인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많은 사람을 살리지 나도 살고 남도 함께 살린다는 그런일을 있을수가 없습니다. 한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거니와 그대로 있으면 한알 그대로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고 우리가 죽음으로 이웃이 살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아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둘째로, 그러면 무엇이 우리의 삶속에 십자가가 아닌가?
어떤 것이 나의 십자가고 어떤 것이 나의 십자가가 아닌가를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내가 당하는 고난은 다 십자가로 생각하면 그것은 큰 혼돈입니다. 참된 십자가의 고난은 달게 받아야 하나 그렇지 않은 것은 짊어지지 말아야 됩니다. 죄의 유혹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술, 담배, 도박, 음란등의 유혹은 마귀의 시험이요, 십자가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 담배, 도박, 음란등의 유혹을 가지고 “아~ 내인생의 십자가다 내가 짊어지고 가야한다” 웃기는 소리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십자가가 아니라 마귀의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도구인 것입니다.
(갈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術數)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그러므로 이것은 십자가가 아니고 지옥으로 끌고 가는 마귀의 궤궤인 것입니다.
여러분 경기도 한 도시에 전 경찰서 집계에 의하면 작년 한해 살인, 강간, 절도, 폭력등 강력범죄와 교통사고 특례범의 절반이 음주상태에서 범행했고 특히, 강력범죄의 63% 가량이 음주상태에서 범행한 것으로 조사되고 발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술취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방탕을 가져오며 우리의 생명의 위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이것은 마귀의 저주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범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는 것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자기가 죄지어서 감옥에 갖혀 있으면서 “아~ 십자가로다. 십자가로다. 내가 감옥에서 십자가를 짊어졌다.” 자기 죄를 짓고 죄값으로 들어간 것이 어떻게 십자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전도하다가 억울하게 들어갔으면 십자가가 되지만 자기 죄값으로 형벌을 받는 것은 십자가가 아닌 것입니다.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죄에서 종노릇 하지 말아야지 죄값으로 벌을 받는 것은 십자가가 아닌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대속하신 병은 마귀의 일이요, 십자가가 아닙니다. 병들어서 고통 당하면서 이것은 내게 십자가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마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이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는데 그것을 우리가 또다시 짊어지고 간다면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모욕인 것입니다. 병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행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 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 라"
그러므로 예수님이 고치기를 원하시는 그 병은 십자가가 아니고 마귀의 역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1998년 여름, 사람들과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쉽게 멍드는 것이 이상해서 병원에 가서 검사한 우리 성북성전 김병원 집사님은 곧 그것이 골수 백혈병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진학을 앞둔 자녀도 있어 돈을 벌어야 되는데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면역력이 약해 독방 병실비도 비싸서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고침을 받은 혈루병 여인과 많은 병자를 고쳐주신 주님을 기억하고 스므하루 동안 작정기도하며 저들을 고쳐주신 예수님께 기도하고 기적을 허락해 달라고 간구했었습니다. 셀원들도 열심히 중보기도를 했고 집사님도 먼저 회개를 했습니다. 아내가 11년 앓던 축농증과 딸아이의 심한 피부병을 고쳐주신 주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봉사하지 못한 죄를 깊이 회개했습니다. 몸은 면역력의 저하로 갈수록 약해지던 어느날 아내가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깜짝 놀라 일어나 꿈에 누가 남편을 아주 어린 아이처럼 보호하며 앉고서 컵에 든 것을 손수 먹여주자 아무것도 못 먹던 남편이 맛있게 받아먹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날 오후 5시경 회진을 돌던 의사는 상태가 호전되었다면서 6인실로 옮겨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뒤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무것도 못먹었는데 식욕이 왕성해져 잘 먹자 얼마안가 일어나 걷게 되었고 말을 하는데 전혀 힘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시 며칠 밤이 지난 밤 11시경 잠을 자다가 소리 치며 놀라서 깨어났습니다. 이건 아내에게 말하기를 "방금 누군가 내 엉덩이를 힘껏 발로 차고서 고개를 훽 돌리며 나갔다"고 하자 아내는 "아~ 마귀가 화가나서 이제는 엉덩이를 한번 차버리고 나갔다고 너무나 좋다고 “할렐루야”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급속도로 병이 호전되어 기적이 일어나서 작년 11월 의사가 “이제는 완전히 나았으니 퇴원하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보다 물질을 섬기고 봉사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요사히는 우리 남선교회에서 크게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그 골수 백혈병은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귀가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궤궤였습니다. 단호한 믿음으로 대결하니까 나중에 너무 화가나서 엉덩이를 발길로 차고 마귀가 나갔던 것입니다. 이러므로 병은 십자가가 아닌 것을 알고 단호하게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하고 기도하고 물리쳐 버렸다는 것입니다. 저주와 가난도 십자가가 아닙니다. 저주와 가난은 짊어져야 될 것이 아니고 벗어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짊어져야 되지만 저주와 가난은 벗어야 되요.
(갈3:13-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짊어지신 저주를 우리가 또다시 짊어진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보답이 아닌 것입니다. 저주는 짊어질 것이 아니라 벗어 버려야 될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저주가 십자가가 아닌 것입니다. 가난도 십자가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이 “아~ 이 가난은 대대로 내려오는 십자가로다” 웃기는 소리하네요.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을 짊어지셨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 그러므로 가난과 저주는 십자가가 아닙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므로 말미암아 다가온 저주와 고난이기 때문에 벗어 버려야 될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야 될 것입니다. 죽음도 십자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죽음이 다가올 때 이는 나의 십자가로다. 짊어 지고 죽어야지. 그거 아닙니다. 죽음이란 것은 여러분 가장 큰 원수 마귀의 마지막 무기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을 얻어야지 죽음을 십자가라고 받아 들여 가지고 지옥으로 내려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우리는 죽음을 극복해야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짊어져야 될 십자가가 아닙니다.
(요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했으므로 예수 믿고 우리는 죽음을 벗어 버리고 영생 복락을 얻어야만 할 것인 것입니다.

셋째로, 무엇이 십자가입니까? 무엇이 내게 다가온 십자가입니까? 내 몫에 태인 십자가인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핍박과 고난은 십자가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내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핍박을 당하고 고난 당할 때 그것은 걸머져야 됩니다.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내가 걸머지므로 그리스도의 생명과 부활의 역사가 이웃에 나타나게 됩니다.
(살후1: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하나님 나라 때문에 고난 받을 때 그 고난은 피할 것이 아닙니다. 그 고난은 달려 짊어지고 가야할 십자가인 것입니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아니라 또한 그 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믿기 때문에 짐을 짊어지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고통을 주는 남편과 살아야 되겠는가? 아내와 살아야 되겠는가? 혹은 자녀 때문에 고통 당하고, 가족 때문에 고통 당합니다.
그런 편지가 내가 많이 옵니다. 이렇게 고통을 주는 남편하고 내가 살아야만 합니까? 얼마까지 견뎌야 합니까? 이렇게 괴로움을 주는 아내하고 내가 살아야 됩니까? 이혼해야 됩니까? 그런 질문을 많이 해옵니다. 그것에 대한 해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님 믿기 때문에, 안믿었으면 이혼도 할수 있고 벗어 버릴수도 있죠. 예수님 믿기 때문에 주님 영광 위해서 그 십자가는 짊어 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입니다. 아내가 고통을 주면 그 아내는 십자가입니다. 거기에 매달려 죽으라고 주는 것입니다. 그 아내 덕분에 죽어야 돼요. 남편이 고통을 주면 그것은 아내의 몫에 태인 십자가입니다. 짊어져야 돼요.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눈물을 흘리고 고통을 당하며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벗어버리면 되지 싶어도 벗어 버리면 또 더 큰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벗어 버려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거기에 매달려 죽으면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갈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십자가의 짐을 짊어져야 돼요. 얼마나 짊어져야 될까요? 내가 완전히 죽을 때까지 짊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완전히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 버리면 그 다음엔 고통을 가하던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가족도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 있을 동안엔 변화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위하여 자원하여 고통을 짊어지는 것도 십자가입니다. 여러분. 자원하여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집도 직장도 버리고 저 먼나라 오지 선교사로 사역을 가는 것은 십자가를 자원해서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총600명 선교사 중에 외국 오지에 들어가서 선교하는 사람들이 86명이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자원해서 우리 한국보다 살기가 훨씬 어려운 저 아프리카나 동남아 일대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들은 굉장히 고생이 많습니다. 내가 인도 성회 갔을때도 우리 선교사들이 전부 나를 만나러 왔는데 인도에서 청춘을 바쳐서 그곳에서 선교한다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너무나 바보같습니다. 저렇게 젊으나 젊은 청춘을 이렇게 가난하고 절망적인 어둠의 땅에서 보내다니 이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곳에 있는 선교사들은 마음에 불타는 영혼 사랑을 가지고 그 고난에 참여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짊어지기 때문에 많은 생명의 역사가 그 어두운데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딤후1: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고통 당하는 이웃과 자원해서 짐을 지는 것도 십자가인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자원해서 이웃의 고통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같은 사람은 자기 나라에서 동구에서 편안하게 살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켈커타의 빈민촌에 들어가서 일생을 그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것은 자원해서 십자가를 짊어진 것입니다. 그를 통해서 생명의 역사가 강물처럼 넘쳐 났습니다. 검은 대륙의 성자였던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독일에 있었으면 대접받고 돈 많이 벌고 편안하게 잘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던져 저 아프리카의 잠비아에 가서 일생을 문둥병 환자들과 나환자촌을 만들어서 같이 살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리스도를 위해서 스스로 자원해서 십자가를 짊어진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를 짊어 지므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이 널리 전파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적은 십자가는 우리 교회 셀리더나 봉사자들 제직들입니다. 셀리더들이나 봉사자들이나 제직들 자원해서 큰 십자가는 아니지만 적은 십자가를 짊어집니다. 다리가 퉁퉁 붓도록 서서 봉사하고 바깥에서 추운데서 교통 정리하고 이것다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진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짊어진 이상 하나님께서는 그에 해당하는 부활의 생명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딤전6: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 게 하라"
이런 일을 할때 주님께서는 30배, 60배, 100배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한 봉사도 십자가입니다. 그 봉사한다는 것이 괴롭잖아요. 십자가는 괴로운 것입니다. 괴로움을 능히 감당하며 그리스도를 위해서 헌신한 것은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고 칭찬을 받아야 될것입니다.

넷째로, 우리는 이 성경말씀 가운데 바울 선생의 십자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는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가 그 몸에 있었습니다. 사단의 사자 즉, 타락은 악의 천사가 그를 따라 다니며 끝없이 훼방을 했습니다. 그 바울 선생은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이 사탄이 따라 다니면서 가는곳마다 군중들을 충동해서 대적하게 하고 감옥에 처넣도록 하고 매를 맞게 하고 고난을 당하게 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탄이 떠나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 세 번이나 기도했으나 주님이 응답해 주지 않았습니다. 왜냐 그것이 바울에게 얹혀준 십자가이기 때문에 떠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가 아닌 것은 떠나가 버려요. 십자가는 아무리 기도해도 떠나가지 않습니다. 이 사단을 내게서 옮기시 옶소서 해도 안옮깁니다. 바울은 그 사탄의 사자가 떠나가게 하기 위해서 세 번이나 기도해도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고후12:7-9)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 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 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 넘치게 주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바울에게 사탄의 사자를 허락했습니다. 그것이 바울이 매달려 죽는 십자가입니다. 그 사탄의 사자에게 달려서 그는 고통을 당하므로 자아가 깨어지고 더욱 주님께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더 넘치게 받을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의 유명한 전도자였던 워치만 리의 간증을 들으면 그는 젊었을 때 몸이 굉장히 허약해서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젊어서 죽을 것이고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굉장히 매달려 “하나님이여 저를 허약에서 훼방시켜 주시고 건강을 주시면 주를 위해서 일을 많이 하겠다”고 했는데 하룻밤 꿈을 꾸었는데 그가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갔는데 앞에 큰 바위 덩어리가 있어서 배가 거기에 부딪혀서 갈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바위를 건너가게 하소서”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꿈에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바위를 옮겨주랴? 물을 더 넘치게 해서 바위위로 배를 타고 지나가게 해주랴?” 그래서 워치만 리가 말했습니다. “바위를 옮기는 것보다는 양자강 수위를 높여서 바위가 물에 가라앉게 만들어 주시고 물위로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자 갑자가 양자강의 물이 높아져서 그는 바위 위로 배를 타고 지나갔습니다. 그 꿈을 깨고 난 다음 크게 깨달았습니다. “하~ 내 몸에 허약을 옮겨 달라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서 이 허약을 능히 극복하고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구나. 이 허약이 내게는 십자가구나”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여 허약을 옮겨 주시지 마시고 은혜를 넘치게 해주셔서 이 허약을 견디고 나가게 해주시옵소서” 기도한 결과에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임하여 그는 하나님께 크게 사용하는 종이 되고 80세 까지 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허약을 극복할 수가 있게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동안 고난의 가시가 다가옵니다. 이 고난의 가시를 주님께서는 더 큰 은혜로 극복을 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선생은 십자가 고난을 자랑했습니다. 그는 다멕셋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에 아나니아에게 말했습니다. 그가 내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그것은 바울 선생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많은 고통 중에서 큰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타낼 것을 말해준 것입니다.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주의 종들도 그래요. 편안하게 공부하고 편안하게 목회하는 사람은 은혜가 없어요. 그러나 교회를 개척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고통을 많이 당하고 핍박을 많이 당하고 깨어지고 울기도 많이 울고 가슴도 친 사람은 그에 비례해서 은혜가 많아요. 왜! 십자가를 짊어지면 질수록 부활의 생명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그 고난을 이겨낼수 있도록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 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선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온천하에 넘쳐나게 된 것입니다.
(딤후2:11-12)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 하실 것이라"
여러분 핍박자 바울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뒤 이방 선교를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복음을 전하며 신약의 절반 이상을 기록하고 결국에는 붙잡혀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네로 황제때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짊어진 십자가 덕분으로 오늘날 우리는 신약 성경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해서 받고 있습니다. 바울의 짊어진 십자가는 오늘날도 우리 은혜의 샘물이 되어서 우리의 목을 축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죽음의 형틀을 짊어지고 즐거울 리가 만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 때문에 십자가를 짊어지면 주님의 은혜가 마음속에 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그리고 부활의 능력이 우리를 통하여 내 이웃과 내 가정에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우리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짊어지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체험을 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을 마음속에 넘치게 받게 되고 그 은혜로 말미암에 모든 환경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크고 작은 십자가가 있사옵니다.
십자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은 자아가 있는 이상
자아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형틀에 못박아야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아가 깨어졌으면 적은 십자가, 자아가 강하면 더 큰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십자가를 멀리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로 알고 내 몫에 태인 운명으로
알고 끌어안고 매달려 죽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고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며 죽을 때 부활의 영광이 나타나서 나만
살것이 아니라 이웃이 다 변화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 일생을 살면서 십자가 없는 크리스챤의 생활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내 몫에 태인 십자가 원망 불평하지 말고 짊어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1207 요한복음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요4:3-9  한인섭 형제  2008-08-04 1873
1206 잠언 지혜로운 삶 잠16:16-26  길희성 형제  2008-08-04 2055
1205 요한복음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6:66-71  서중석 목사  2008-08-04 2009
1204 골로새서 참다운 감사 골3:12-17  주선경 자매  2008-08-04 2147
1203 시편 주께서 노하시면 시90:1-12  길희성 형제  2008-08-04 1478
1202 요한복음 예수를 잃어버린 크리스챤 요1:13  박충구 목사  2008-08-04 2341
1201 골로새서 예수님을 바라보자 골3:1-4  한태완 목사  2008-08-03 3108
1200 창세기 최고의 가치, 최고의 복 창12:1-4  한태완 목사  2008-08-01 2359
1199 사도행전 유라굴로 라는 폭풍 행27:9-26  조용기 목사  2008-07-31 2622
1198 시편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103:1-6  조용기 목사  2008-07-31 2137
» 갈라디아 내 몫에 태인 십자가 갈2:20  조용기 목사  2008-07-31 3243
1196 디모데후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3:13-14  조용기 목사  2008-07-31 2243
1195 요한일서 하나님은 참으로 사랑이신가? 요일4:9-12  조용기 목사  2008-07-31 1976
1194 요한일서 두려움 요일4:18  조용기 목사  2008-07-31 2762
1193 에배소서 영적 전쟁 엡6:12-17  조용기 목사  2008-07-31 2530
1192 로마서 플러스 인생과 마이너스 인생 롬8:28  조용기 목사  2008-07-31 2967
1191 잠언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의 준비 잠4:20-27  조용기 목사  2008-07-31 2267
1190 마태복음 회개로 떠나 보내는 한해 마4:17  조용기 목사  2008-07-31 7430
1189 잠언 네 길을 야웨께 맡겨 버려라 잠3:6  조용기 목사  2008-07-31 2451
1188 마태복음 근본적 변화 - '검'으로 존재하기 마10:34-39  이정배 교수  2008-07-29 1576
1187 창세기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원소 창1:1  김희준 형제  2008-07-29 1605
1186 마태복음 참다운 안식의 길 마11:25-30  길희성 형제  2008-07-29 1947
1185 요한복음 흔들리는 빌라도 요18:35-38  김이수 형제  2008-07-29 1690
1184 누가복음 그가 기도하실 때에 눅9:28-36  나현숙 전도사  2008-07-29 1759
1183 신명기 복 주시려고 신8:6  김남준 목사  2008-07-29 2058
1182 이사야 달콤한 연단 사48:10  김남준 목사  2008-07-29 2300
1181 시편 은을 단련함 같이 시66:10  김남준 목사  2008-07-29 3010
1180 사무엘하 아버지의 통곡 삼하18:33  김남준 목사  2008-07-29 1969
1179 에배소서 부모 공경과 순종 엡6:1-9  김남준 목사  2008-07-29 2867
1178 여호수아 먼저 내 부모를 구원하라 수2:1-21  김남준 목사  2008-07-28 1885
1177 에스겔 부모를 업신여긴 자의 결국 겔22:7  김남준 목사  2008-07-28 2103
1176 신명기 네 부모를 업신여기지 말라 신27:16  김남준 목사  2008-07-28 2178
1175 마태복음 가르치는 자의 정서 마9:35-38  강종수 목사  2008-07-27 1749
1174 창세기 가인의 표 창4:1-16  김이곤 목사  2008-07-26 2704
1173 마태복음 잃어버린 영혼 70년 마4:1-4  길희성 형제  2008-07-26 1788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