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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작

요한복음 김민웅 목사............... 조회 수 2680 추천 수 0 2008.08.07 07:5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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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6:8-11 
설교자 : 김민웅 목사 
참고 : 새길교회 2002. 3. 17 주일설교 
새길교회의 벗들, 형제자매들을 다시 만나 하나님 나라를 향한 마음을 나누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어떤 소녀가 할머니와 끝말잇기 놀이를 하는데, 이건 못하겠지 하고 "오뎅!" 했답니다. 우리말에 "오"자로 시작하는 말은 오빠, 오리, 오지명, 등등 수두룩하지만 "뎅"으로 시작하는 말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 할머니 아주 느긋한 표정으로, "뎅? 뎅장찌개" 하시더랍니다. 그런데 가령 우리 중 누가, "새길" 하면 "길? 길벗"하면 됩니다. 물론 길로 만들어질 수 있는 말은 많지만, 저와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길로 서로 이어져서 하나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인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 가슴속에는 언제나 생명의 길에 대한 깊은 열정과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교회 이름도 그렇게 지은 것 아니겠습니까? 이야기가 나온 김에, 끝말잇기 놀이의 뜻을 가만히 새겨보자면 그 끝에 남은 것, 그것도 얼핏보기에 최초의 새로운 시작이 되기 어려운 것으로 새로운 출발의 근거를 삼을 수 있겠는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병이어(五餠二漁)의 기적, 즉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생선을 가지고 남자들만 오 천 명이나 되는 무리를 먹였다고 기록된 이 사건은 그 핵심을 보자면, 한 소년이 가지고 있던 보잘것없는 양식의 진정한 의미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성서의 본문 대목은 이것이 이들의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생명의 길로 이어지는 능력이 넘치는 출발점이 된 기쁨을 우리들에게 증언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들판에 모여 나사렛 예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던 사람들이 끼니때가 되자 먹을 것이 없다는 현실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말씀 공동체가 빵의 문제, 현실의 문제에 직면하자 동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적지 않게 일어납니다. 좋은 말씀을 듣고 서로 마음에 평안을 얻고 사랑을 나누는 일에 희망을 품다가, 갑자기 현실적인 어려움이 예기치 않게 습격하면 그 공동체에 위기가 발생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병이어의 사건이 식량위기를 해결한 기적으로 여겨지게 될 수 있습니다. 이후 사람들이 와서 나사렛 예수를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는 것은 양식의 위기를 해결한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그를 이해했음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사건은 빵의 문제에 부딪힌 말씀 공동체의 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위기는 빵이 없다는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로 말미암아 그렇지 않아도 힘들게 모여 결속의 과정을 거치고 있던 말씀 공동체가 분해되고 해체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기초 공동체가 이상은 좋은데 현실을 감당하기 어려워 이리저리 흩어지게 생긴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에게 건의하기를 "이들이 각자 알아서 양식을 구해먹도록 무리를 흩어 보내소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국도 지난 1997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공동체 해체의 가혹한 현실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잘 나갈 때에는, 우리는 가족이요 하던 직장에서, 상황이 어려워지자, 각자들 알아서 살 길 찾으시오 하고 쫓겨나는 일을 한국사회는 겪어야 했습니다. 실로 오병이어의 기적이 발생한 현장의 문제는 하나님 나라의 역량을 길러나가기 위해 고난의 과정에서 일치단결해야 할 공동체가 현실에 압도되어 모래알처럼 무너지게 된 것에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후 예수께서 이들 무리들을 오십 명 백 명으로 모여 앉아 식사를 하도록 하신 것은 빵을 나누기 편리하도록 사람들을 조직하신 것이라기보다는 해체될 뻔했던 공동체를 생명의 양식으로 복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본질적인 위기는 사실 식량이 없어서도 아니요,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깨어져 나가게 생긴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위기의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곧 위기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푸는 능력이 이 공동체 안에 존재할 때 그것은 단지 도전이 되고, 그로써 그 공동체의 역량은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됩니다.

모인 무리들을 먹일 양식이 없다는 보고를 듣자 예수께서 너희들이 이를 해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당연히 이러한 현실을 해결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돈도 없었고, 근처에 인가(人家)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양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복음서 전체를 보면, 이 사건과 관련한 여러 가지 증언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제자들은 객관적인 정세를 들어 스승 예수를 설득하려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설득의 골자는 이러합니다. "날은 이미 이슥하고 여기는 빈들이며, 게다가 이들에게 조금씩이라고 먹일 요량이면 무려 거의 일년 치 봉급을 다 털어놔도 힘든 판국인데 그 돈이 또 우리에게 어디에 있습니까?" 제자 빌립은 이백 데나리온이라는 예산을 들먹이면서 현실을 좀 똑바로 보시고 그런 말씀을 하시지요 하는 투가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공동체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스승 예수에게 브리핑이랍시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거론한 현실의 조건들에 대해서 예수께서 무지하셨기에 "너희들이 해결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위기의 진정한 원인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것이다"라고 그동안 훈련받아온 제자들이 막상 현실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자, 하나님 나라의 방식에 대한 신념과 자신을 저버리고 그들이 뒤집어엎어야 할 세상의 방식으로 복귀해버린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들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해결하라고 하신 것은 그들의 영혼 내부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시선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문제를 풀도록 하라는 일깨움이셨습니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내밀라고 하신 것은 양쪽 다 얻어맞고 그냥 참고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른 뺨을 맞은 것이 현실이라면, 그에 대응하는 것은 왼뺨을 내미는 것으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에 있다는 일깨움입니다. 그 선택에 왼뺨을 한대 더 맞는 것이 포함될 수도 있겠지만 본질은 하나님 나라의 방식에 자기를 걸라는 것입니다. 실로, 정작의 위기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의 문제 해결방식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갖지 못한 채 다시 옛날 습관으로 돌아가 충분히 돌파할 수 있는 현실 앞에서 주저앉아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그래서 언제나 우리 자신의 정신적 역량에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되면 아무 것도 아닌 것도 큰 병이 되고, 엄청난 역경과 고난으로 보이는 일일지라도 힘들이지 않고 풀어나가는 저력을 갖추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때 이들이 마침 발견했던 것은 한 소년이 가지고 있던 보리 떡 다섯 개와 마른 생선 두 마리였습니다. 하지만 그걸 가지고 이들이 직면해있던 현실을 감당하는 것은 실로 턱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제자 안드레가 예수님에게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한 말은 이들이 처한 막막하고 난감한 처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드레의 말은 소년이 가지고 있는 양식의 가치에 대한 현실적 평가를 의미합니다. 그것으로 자신들에게 닥친 현실을 해결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들을 덮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에는 너무도 미력하다, 소년이 내놓은 떡과 생선은 우리의 좌절스러운 현실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등등 오병이어는 이들이 직면한 위기를 보다 절감하게 하는 증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라는 말은 기독교 신앙 속에서 은혜의 암호처럼 사용되고 있지만, 현실의 자리에서 막상 그것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처참한 지경에 처해 있는가를 부인할 길 없이 드러내주는 것이 됩니다. 아, 정말 큰일이로구나, 아니 어떻게 그것 밖에 없나, 그걸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거냐, 자꾸 이런 쪽으로만 가다 보면 소년의 떡과 생선은 "현실이 어떤지 도대체 모르는 구만"하고 빈정거림의 대상이 되거나 또는 낙심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소년의 양식이 별로 고맙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결코 그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까짓 걸 가지고 뭘 어떻게 하겠다고"하는 생각과, "이것으로 시작하면 되지"하는 마음 사이에 놓인 경계선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생과 사의 경계선이기도 합니다. 안드레를 비롯한 제자들과 사람들이 미처 깨우치지 못하고 있었던 바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것이 비록 현실의 눈으로 볼 때 미미하고 보잘 것 없게 여겨지더라도 거기에 우리의 감사와 하나님의 축복이 하나가 되면 그로부터 새로운 가치가 발생하는 것을 믿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엄청난 차이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에게는 보잘것없는 오병이어가 감사하고, 이것을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오병이어가 불만과 좌절의 소재가 됩니다. 사람들은 실로 믿는 대로 삽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떡과 생선을 들고 감사하시며 그것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풍요하게 보여도 감사와 축복이 없으면 그것은 우리를 부패하게 하는 독이 되며, 아무리 부족해 보여도 감사와 축복이 넘치면 그것은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힘이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보리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밖에 없다는 절박한 현실이 아니라, 거기에서부터라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축복에 대한 무지와 불신입니다.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그것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의 삶에는 그 어떤 것도 축복이 되나 그렇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도 언제나 불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됩니다. 적은 것을 무시하고 감사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정작 자신에게 어떤 기적이 준비되어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가장 작은 겨자씨 안에도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담아놓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복됩니다.

역경인 것 같지만 사실은 놀라운 성숙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며, 불행인 것 같지만 사실은 축복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며 끝인 것 같으나 실로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는 현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 어떤 경우에도 끝말잇기로 새로운 시작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게 마지막이다 싶은데 사실은 그것이 새로운 시작의 복된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되어 가는 겉모양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내시는 섭리의 비밀에 눈을 뜨면 우리는 고난의 자리에서 결코 후퇴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능력 있는 역군(役軍)으로 성장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이 세상에 오병이어의 존재로 내어놓고 하나님 나라의 거대한 시작을 이루어 가는 열정의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현실에서 뚫어야 할 새 길이며, 그 길을 함께 가는 벗이 되는 감격이 또한 우리가 나누어야 할 사랑과 희망의 실체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사건 이후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선포하시는 대목은 그가 누구인가를 말하기도 하거니와, 그가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로 다가오시는가를 고백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또한 세상에 대한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현실 앞에서 우리의 수가 적고 그 힘이 감당하기 어려운 듯해도 우리 자신이 이 영적으로 허기진 세상에 내어놓는 오병이어가 될 때, 그리고 그 일에 우리자신의 감사와 하나님의 축복이 하나로 어우러지면 이 세상을 먹이고도 남는 사건의 출발이 될 수 있음을 뜨겁게 확신하는 감격이 있게 되기를 빕니다.

진정, 세상의 오만과 좌절을 넘어서 미미한 듯 한 것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 나라의 거대한 은총, 그것을 알아보고 감사하는 능력을 풍족하게 가지는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에서 그 어떤 경우이든 최선의 기회와 최선의 가치를 이루는 복된 지혜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인생이 자신에게도 행복하며 뭇 사람들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감격이 넘쳐날 것입니다. 오늘의 이 시대, 한국사회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가 그런 감사와 믿음으로 충만하신 하루 하루가 되어가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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