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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는 사랑

마태복음 차옥숭 자매............... 조회 수 2850 추천 수 0 2008.08.08 17:3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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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5:31-46 
설교자 : 차옥숭 자매 
참고 : 새길교회 2002. 6.16 주일설교 
오늘 저는 이용도 목사의 삶을 형제 자매님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1년 저는 신비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상반기에는 지성적 신비주의자인 Meister Ekhart에게 빠져 있었고 하반기에는 사랑의 신비주의자였던 이용도 목사에게 빠져 있었습니다. 한 분은 13세기 유럽에서, 한 분은 일제의 암흑기에 한국에서 살았던 분입니다. 두 분의 공통점은 신비주의자였고 결국 이단 정죄를 받았다가 최근에 복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작년 한해 이용도, 유영모, 함석헌 세 분의 탄신 100주년 기념 행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행사에 맞추어 "이용도 목사의 종교적 영성"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한편 발표했습니다.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용도 목사의 일기와 서간집을 보면서 이렇게 이단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異端史만 한번 연구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른 한편 저는 제가 어떻게 이용도 목사의 영성을 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한숨부터 나왔읍니다. 그렇게 생명을 다 바쳐 기도하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용도 목사를, 기도도 부족하고 그러한 삶에 가까이 가보지 못한 내가 무미건조한, 더욱이 짧은 지식으로 조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이러한 심정을 아는 목사님께 말씀드렸더니 대뜸 "계시 받고 쓰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계시가 올리도 없었고 결국 쓰는 것은 시작했는데 글을 쓰는 동안 내심 걱정이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용도 목사에게 너무 매료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학문연구란 객관성을 빼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인데, 매료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객관성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스스로를 위로하였습니다. 주관과 절대 무관한 객관이 어디 있으며, 삶에 닿아 있지 않은 어디 참 객관이 있겠는가. 특히나 신비주의자를 다루면서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생각들로부터 자유롭게 아름다운 삶을 살다간 이용도 목사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이용도 목사는 어려서부터 병약했습니다. 대주가(大酒家)인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이용도 목사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를 보고 듣고 자란 이용도 목사는 벌써 13세의 어린 나이에 예배당의 종각에 올라가서 여러 시간 혹은 밤새도록 기도하는 소년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병중에 낳은 누이동생 순례는 젖을 한 방울도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 젖 못 먹는 어린 누이를 위해 이용도 목사는 이 집 저 집으로 젖을 얻어 먹이러 다녔습니다. 어린 누이가 울 때 이용도 목사는 함께 울고 누이가 배고플 때 함께 굶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학비를 벌기 위해 막노동도 하고, 학교 부설 직조장(織組場)에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기간에 1919년부터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4차례 체포되고 투옥되어 3년여의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4년이면 마치는 중학생활에 9년이 걸리었고 결국 정식 졸업장도 받질 못했습니다. 중학교 교장의 추천으로 협성신학교에 입학한 이용도 목사는 처음에는 자신이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은 크게 갖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이용도 목사는 1925년 2학년 둘째 학기 말 겨울에 폐병 3기로, 공부를 그만두고 쉬라는 의사의 명령을 받습니다. 그 당시 폐병 3기는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 때가 이용도 목사의 삶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 동안 살아왔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감회가 깊었을 것입니다.

이용도 목사는 친구와 함께 휴양차 친구의 고향 강동에 내려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곳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그는 강권에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하고 기도에 매달립니다. 대동강 상류 얼음 위에 나가서 밤이 깊도록 기도하고, 그 이튿날도 새벽부터 나가 열심히 기도하고, 집회가 시작할 저녁에 돌아왔습니다. 첫날 친구가 설교하고 이용도 목사가 사회를 맡았는데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다가 이용도 목사는 울기 시작합니다. 그 것을 본 회중이 따라 울고 예배당 안이 통곡의 마당으로 변합니다. 다음날 설교를 하게된 이용도 목사는 기도로 밤을 밝히고 새벽에 강단에 섰는데 설교를 해도 기도를 해도 눈물과 감동과 감격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용도 목사는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외치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열정으로 한 주일을 보내면서 죽음의 공포도 사라지고 원기도 얻게됩니다. 이때의 경험이 이용도 목사의 삶을 뒤바꾸어 놓습니다. 그후 그는 그의 모든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살게 됩니다. 그 동안 나라 잃은 서러움, 극심한 가난의 문제 등을 구조적으로 개혁해 보려고 몸부림쳐 보았으나 아무런 변화는 없고 몸은 병들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던 그가 강동에서 가졌던 체험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전혀 새로운 삶의 양태로 전환시켰던 것입니다.

학교로 돌아온 이용도 목사는 다시 활기를 찾고 열심히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그가 몸바쳐 일하고 싶은 교회의 모습은 무력하고 쓸쓸하기만 합니다. 이용도 목사는 교회가 그 시대의 참혹함에 눈을 감고, 시기와 분쟁만이 가득한 채 냉랭하게 죽어 가는 것을 한탄합니다.

이용도 목사는 더욱 간절히 기도에 매달리게 됩니다. 기회만 있으면 산으로, 교회로, 어느 곳에서든지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서 용기도 얻고 위로도 얻었습니다. 기도를 통해 마음이 정화가 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기도가 없을 때 나의 영이 마르는 때입니다. 가뭄이 오래면 논과 밭 그 바닥은 갈라지고 터지는 것처럼 기도의 가뭄이 오랠수록 나의 마음 밭은 풀삭풀삭 먼지가 날 뿐 아니라 갈라지고 터지어 나의 영은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기도로만 나의 영은 윤택하여 지고 은혜의 비에 젖게 되는 까닭입니다..."

"苦는 나의 先生, 貧은 나의 愛妻, 卑는 나의 宮殿, 자연은 나의 애인의 집"으로 하고 거기에서 주님과 더불어 살겠다고 고백하는 이용도 목사는 민족의 고난의 역사와 자신이 처한 가난과 고난의 인생을 예수의 삶과 십자가의 고난으로 연결시켜, 가는 곳마다 눈물로 기도하고 설교합니다. 이러한 그의 눈물어린 설교와 기도는 사람들을 감동과 통곡의 분위기로 몰아 갔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1929년 한해에만 20여 개의 교회에서 부흥회를 합니다. 이용도 목사의 명성은 널리 퍼졌고 원산을 비롯하여 30년 벽두에는 인천에 있는 덕적도에서 부흥회를 갖고, 2월말에서 3월 초순까지 평양에서 부흥회를 갖게 됩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성황을 이루게 됩니다. 그 당시 가장 큰 평양교회에서 이용도 목사를 담임목사로 모시려 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부흥목사로 남게 됩니다. 그 당시 부흥회에 참여했던 사람의 증언을 통해 이용도 목사의 부흥회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때쯤에는 회당이 정말 터지도록 사람이 모였다. 그 예배당이 오백명 수용하는 집인데 천수백명이 모여들었다. 안에 사람이 어찌나 모여들어 복작거렸는지 벽돌담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예배당이 무너진다는 큰 소동까지 났었다. 사람이 겹겹이 몰리어 무릎을 움직여 볼 수도 없고 등을 펴볼 수도 없었다. 이렇게 전신에 고랑을 채워놓고는 몇 분 동안도 참기 어려우련만 그래도 괴로움을 모르고 그의 말에 취하고 열정에 녹아지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설교를 한 시간이나 두 시간만은 안 하신다. 대게 세시간 네 시간이요, 어떤 때는 선 자리에서 다섯 시간 여섯 시간 일곱 시간까지도 힘차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긴 시간을 그렇게 쪼그리고 있어도 졸음이 오거나 아픔을 느끼는 자가 없고 죄를 회개하고 주를 만나는 기쁨에 그저 찬송이요, 그저 춤만 추는 것이었다."

그의 부흥회에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를 민경배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부흥 운동에 그만한 군중이 모이고 그의 설교나 기도에 그만큼 끌렸다고 하는 것은, 그에게 어떤 뚜렷한 시대적 메시지가 있었다는 증거였다. 고난을 남달리 주제로 하였다는 것은 그 시대가 일제치하의 가혹한 현실적 곤고에 몸부림치던 형극의 때였으니 만큼, 통절한 아픔의 위로라는 시대적 호소가 그의 눈물 어린 절규 속에 메아리 쳤기 때문이다."

1931년은 이용도 목사의 인기는 절정을 이루었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때로는 목이 터지지 않아 눈물로 설교를 하고 통변을 세워 설교를 하면서 전국 방방 곳곳을 돌아다닙니다.

이때 이용도 목사는 건강 또한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용도 목사는 삶과 죽음을 철저하게 하나님께 맡기고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일이야. 내가 오늘 사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는 오늘을 완전히 하나님을 위해서만 쓰고싶네. 주님께서 내일도 날 쓸 수 있다면, 내 생명을 연장해 주실 것으로 믿네. 내가 모임에 가면 나는 이렇게 기도를 하지. '주님, 내가 이 모임이 끝나기 전에 죽는다면, 나의 마지막 힘과 생각을 당신께 바치게 하소서."라고. 그리고 그는 "죽어야 산다"는 동·서양 모든 종교들이 공유하고 있는 진리 즉 "死卽生"의 진리를 가슴으로 받아들입니다.

""죽음! 이것만이 나의 수단이요 방법이요 원리라고 할까 그리하여 날마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냥 무식스럽게 돌진하려는 것뿐이다. 어느 날이던가 나의 빛 없는 죽음! 그것이 나의 완성일 것이다."

이렇게 이용도 목사는 삶 속에서 철저히 죽어 죽음을 넘어서 살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생명, 몸, 생각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께로 솟아오르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 행진이 그대로 지속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해 9월에 아현 성결 교회에서 집회 도중 축출 당하여 부득이 집회가 중단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무렵 황해노회에서 이용도 목사를 황해노회 지경 안에서는 청하지 않기로 결의를 합니다. 이유는 "1. 이용도는 재령교회를 훼방한다. 2. 여신도들과 서신거래를 자주 한다. 3. 불을 끄고 기도한다. 4. 교역자를 공격한다. 5.「성서조선」이라는 잡지를 선전한다. 그러니 그는 무교회주의자요 교회를 혼란케 하는 자이니 황해노회 지경 안에는 청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이용도 목사의 생각은 김린서에게 보내는 편지글 속에 상세히 나타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모두 소개 할 수는 없고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읍니다.

""일일이 변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형! 나는 별 것 다 봅니다. 무교회지도 보고 순복음지도 보고 장로회지도 보고 감리회지도 보고 사회주의지도 보고 별 것 다 봅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 본다고 그 주의자는 아니올시다. 나는 어떤 형제에게는 불경 좀 보기를 권하고 또 어떤 교역자에게는 사회주의지 좀 보기를 권하기도 합니다... 나는 아이에게서나 무식한 자에게서나 불교인에게서나 무교회주의자에게서나 누구에서든지 다 배울 바를 찾는 자이외다... 종교는 설교에 있지 않고 삶에 있지 않습니까? 인형! 우리는 삶에 거합니다. 설교문서 다 좋지만 그 뒤에 우리의 삶이 없으면 이는 무익한 것이 될것이외다."

여기에서 이용도 목사는 배우는 자세뿐만 아니라 행이 없는 가르침, 행이 뒤따르지 않는앎의 무익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도 이용도 목사는 부르는 곳이 있으면 달려가 설교를 했고, 이곳 저곳, 멀고 가까운 곳에서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위로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1931년 12월 평양의 명촌교회와 산정현 교회를 집회를 마지막으로 32년에는 정월 초하룻날부터 전국 곳곳에 무려 23곳에서 집회를 합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추운 겨울인데도 땀을 흘리며 열변을 토하고, 여름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면 예배당도 아니고 마당에서 하루에 10여 시간씩 땀에 젖어 열변을 토하는 이용도 목사의 설교에 사람들은 감격을 합니다.

그러나 10월 17일 평양노회에서 이용도 목사 금족령이 내려집니다. 황해노회와 평양노회의 조치는 이용도목사 자신이나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그리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조치와는 관계없이 집회마다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이용도 목사 또한 오히려 핍박을 받고 멸시를 받아도 저희들을 관용(寬容)하며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다면, 이는 바로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32년 10월 말에 있었던 소위 入流사건(몇몇 사람들이 무아지경에 빠져서 예언을 하는 일이 있었음)은 이용도목사로부터 가까운 사람들마저도 멀어져 가게 했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평양에 자신이 추천했던 사람이 입류사건과 관련이 되어 문제가 생기면서, 평양교계의 몇몇 사람들이 이용도 목사가 소개했으니 그 사람의 잘못과 그 사람을 소개한 것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고 그와 인연을 끊는다고 대외적으로 성명을 하라는 것에 대해서 이용도 목사가 거절을 하면서 사건에 휩싸여 지탄을 받게 됩니다. 이때의 이용도 목사의 뜻은 분명합니다. 김린서에게 보낸 편지글에 그의 뜻이 잘 밝혀져 있습니다. 인간을 판단하고 책벌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며 이용도 목사 자신은 누가 악접신하였다고 혹은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책벌하고 쫓아낼 권리가 없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은 그들의 뜻을 찬동해서도 아니고, 단지 그들이 축출과 멸시를 당하니 오히려 그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일어남을 밝히고, 혹 후일에 불행히 형도 악접신했다고 축출을 당하거나 악명을 쓰고 피할 곳이 없거든 자신에게 오면 그때는 같이 욕을 먹겠노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용도 목사는 축출된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합니다.

여기에서 경험의 眞僞는 물을 수 없습니다. 종교경험은 단순히 흑과 백, 긍정과 부정의 도식을 넘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세상에서 쫓겨나 몰리는 사람의 손을 잡고 더불어 욕을 먹고살겠다는 이용도 목사의 태도에 대해서, 기독신보는 이세벨의 무리라고 비방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이에 그 동안 장로교회에서 먼저 시작한 감리회 소속인 이용도 목사의 금족령에도 침묵하던 감리회 경성지방 교역자 회에서는 이용도 목사 사문위원회를 조직합니다.

그와 가깝게 지냈던 피터스 목사는 수년 동안 거의 매일 죽음을 경험했던 이용도 목사는 다른 신비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영혼의 내적인 빛을 충실히 따라갔을 뿐, 이런 비판에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그 때의 심정을 "사방에서 핍박과 멸시가 조수같이 밀려 들어와 나는 거리를 걸을 용기조차 잃을 때가 있구려. 마음이 민망한 때도 있고! 그래도 주님 도우심으로 이겨 나갑니다."라고 토로합니다.

1932년 말부터 엎드려 "오 아버지여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나를 버리사 죽일 자와 같이 끌려감을 두어두시고 내가 버림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여 아버지께 영광이 되겠사옵거든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기도만 드리던 이용도 목사는 33년 2월 해주집회를 마지막으로 하고 감리교 중부연회에서 휴직처분을 받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병석에 누워 "주님이 나를 고요히 두고 쉬라 하심이니, 감사와 침묵으로 지낼 따름"이라고 말하면서 기도와 침묵 속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가 평소에 "내가 만일 주께 은총을 입었사옵거든 내 생명이 다 할 때에 발가벗은 몸으로 地下에 돌아가게 하시고 나의 소유라고는 생전에 다 주를 위하여 無가 되게 하여 주시기 바라옵나이다. 주께서 나를 위하여 無가 되어졌사오니 나는 주를 위하여 無가 됨은 마땅한 일이니이다."라고 기도하던 이용도 목사는 그가 갖고 있던 모든 것을 피와 땀과 눈물로 다 쏟아내고 빈 마음으로 無가 되어, 33세의 나이에 몇몇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그리던 님의 품으로 온전히 하나가 되어 갔습니다.

여기에서 이용도 목사의 사랑의 영성을 잠깐 언급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신비 안에 있던 이용도 목사는 상처받은 영혼의 탄식과 기쁨의 소리에 열려 있었습니다. 이호빈 목사는, 이용도 목사가 만주 땅 간도에 갔을 때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중국인 대지주가 사는 큰집 마당가에 농노 일을 하면서 사는 우리동포들의 오두막집을 보고서 가슴이 미어지듯 견딜 수 가 없어서 기차 안에서 큰소리로 내내 울면서 와서 동행했던 이호빈 목사가 민망했음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상처받은 영혼의 탄식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용도 목사는 그래서 항상 설교를 하다가도, 기도를 하다가도, 찬송을 하다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먹을 때 먹는 나를 기뻐하여 감사하지 않고 먹지 못하는 친구들과 슬퍼하여 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는 이용도 목사의 집에는 식객이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그의 집에서 식객으로 있던 이호운은 그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나에게는 큰 걱정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보내주겠다는 곳에서 학비가 올 수 없게 됨이었다. 그렇다고 목사님의 댁에서는 하루도 더 있을 형편이 못됨으로 나는 걱정 아니치 못하였다. 이 때에도 목사님은 벌써 눈치를 다 짐작하시고서 '내 호운이한테 청이 하나 있어. 다른데 갈 생각 말고 나와 같이 있어야 돼'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안 그러려고 하면서도 미안한 빛을 보였던 모양이다. 이때에도 목사님은 '호운이 조금도 미안해하지 말아요. 이 집이나 이밥은 내 것이 아니어요. 이 집에는 주인도 없고 손님도 없으니 염려 말고 주인 노릇이나 잘하라구'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황공(惶恐)하고 감사하였다... 내게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있는 눈치를 보시면 무엇이든지 당장 주시기에 급급하시었다. 부인께 말씀 드리기가 바빠서 손수 궤짝을 들추고 가방을 털어 가며 내의, 양말, 수건 같은 것을 있는 대로 털어 주시는 것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가 오든지 다 내 식구로 대하고 누구든지 이 집에 들어오는 이에게는 이 집 식구의 자격과 권리를 주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사정을 미리 헤아려 줄 줄 아는 이용도 목사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사랑 없는 신앙의 허위성과 생명 없음을 지적합니다. 이용도 목사는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용도 목사는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행하면서 사랑을 하고 있다는 의식의 찌꺼기가 남아 있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가르쳐 줍니다. 또한 성령을 받으면, 즉 사랑이신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늘의 사랑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지금 예수를 사랑하는 것은 어떤 조건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말하자면 폐병을 고쳐 주었기 때문에 예수를 사랑함도 아니오 모든 슬픈 문제를 해결하여 주었기 때문에 예수를 사랑함도 아니요 또한 나를 천당에 보내 주시겠는 고로 예수를 사랑함도 아니라 아무 조건도 없이 그저 예수를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어 예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일찍 가르치시기를 [너희들이 나의 동생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하는 것은 곧 나에게 행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사랑하려면 형제를 사랑하고 그들을 섬길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치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의 열정으로 형제를 사랑하라. 내가 남을 사랑한다는 의식(意識)조차 없이 사랑하라. 내가 선을 행한다 의를 행한다 하는 계획조차 없이 사랑하라.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사랑하라. 이런 형제의 사랑이야말로 참 봉사(奉仕) 하늘의 사랑일지니 우리는 성령을 받아서 이 하늘의 사랑을 실행하여야겠습니다. 성령은 곧 그리스도의 신(神)이요 그리스도의 신은 곧 사랑의 신이올시다. 그러면 성령은 진리의 신이신 동시에 또한 사랑의 신이심으로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천적애를 능히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조건 없는 사랑 때문이었을까? 어린 거지 아이 억성이에 대한 이용도 목사의 연민과 사랑 이야기는 아무리 보아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예배당은 너무 추워서 말을 하기가 힘들다. 意氣 저상하여 설교도 힘이 없다. 돌아오는 길에 조그만 거지아이. 뚜껑 없는 주전자를 손에 들고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손과 발은 홍도같이 빨갛게 얼었다. 바람은 눈 위에 칼같이 사나운데, 저런, 인간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 신기하였다. 하나님의 保佑之澤이었는가. 아 죄악의 세상이라. 자기만 살려고 눈에 불이난 인간들 어찌 이 가련한 乞兒를 본 척이나 하고 지나가랴. 마음에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여 여관으로 대리고 와서 두루마기를 벗어 둘러 주고 아랫목으로 인도하여 이불로 둘러 줄 때 나의 마음 너무 민망하여 슬픔을 이길 길이 없었다. 오 주여 이 아이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너 조반 먹었니? 못 얻어먹었시오. 때는 열한시 반이다. 뜻뜻이 먹어도 떨리어 견딜 수 없는데 아, 어이 생명이 살아 남았노? 엊저녁은 어디서 잤니? 家街에서 잤어요 그래 무엇을 덮고 잤니? 아무 것도 안 덮고 잤어요. 어제 저녁같이 추운 밤에 아무 것도 덮지 않고 밖에서 잤다. 밤에 물그릇이 땡땡 언 어제 저녁에 아, 나는 너무도 호강스러웠다. 北風寒雪 추운 밤에 거리에서 울며 떨고 있는 아이를 생각지 않고 나만 혼자 이불을 두 개씩, 포대기 깔고 편안히 자고 있었구나. 오 나에게 禍가 있으리로다. 너 혼자 잤니? 네. 아 혼자서 어떻게 밤을 샜노. 엊저녁에 밥은 얻어먹었니? 네. 무슨 밥? 찬밥이오. 그래 찬밥을 주드냐? 네. 아이의 눈에는 원망과 고독이 아직도 끝이지 않았다. 나의 눈에도 참회의 눈물이 그칠줄을 모르노라. 몇 살이냐 여덟 살이에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쌈하고 양잿물 먹고 죽고 아버지는 미쳐서 달아났어요... 아, 엄동설한에 거리에서 기한에 우는 乞兒. 네게는 죄가 없다. 네게 무슨 죄가 있으리. 눈물이 앞을 가리워 日記를 쓸 수 없어 수건을 눈에 대고 그냥 한참 울었다... 오 하나님이시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이 가련한 乞兒를. 네 이름이 무어냐? 億成이에요. 성은 崔가요. 오 崔億成이로구나... 너 예배당 아니? 알아요 예수 믿는 사람 너의 동리에 있니? 많아요 여기도 예수 믿는 사람 많아요 오 그래. 예수 믿는 사람은 도처에 많거니와 너를 긍휼히 여길 신자는 없었구나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고 다만 自己의 욕심만 위하여 믿는 체 하는 現代 교인아. 너에게 禍가 있을진저. 여관 主人이 문을 연다. 이는 주인집 아이가 나의 乞兒 데리고 들오옴을 보고 들어가서 告하였기 때문이었다. 떡국 한 그릇 시켜오라고 하고 나는 조금 未安을 느꼈다... 여관에 부탁하여 물을 끓여다가 乞兒의 얼굴과 手足을 씻기고 얼어터진 발가락을 헝겊으로 처맨 것을 끌르고 씻고 빅쓰를 발러 줄세 나의 憐恤이 극하여 눈물이 쏟아졌다. 울면서 씻어주고 싸맨 후 나의 內衣와 저고리 입었든 것을 입혀주고 양말을 신기고 버선을 덧 신겨 줄 세, 아, 이는 乞兒가 아니요 我子요 愛兒인 感이 興起하였도다. 그러나 저에게 맞는 것으로 입혀주지 못하고 나의 입었든 헌 것, 큰 것을 억지로 입히매 主님을 이리도 소홀히 대접한다는 感이 끓어올라 적이 민망하다. 주인 마누라 드려다 보더니 버선이 어찌 큰지 長靴 신은 것 같구나 하고 웃고 가는지라. 저녁밥을 같이 먹고 밤에 같이 자다... 나의 옆에서 자는 더벅머리를 보니 이는 꼭 羊과 같었다. 이는 나의 羊이 었든가? 아, 귀엽고 可愛로운 어린 羊아 기한에 울며 거리에서 방황하던 孤羊을 찾었노라. 오 주여 나는 목자 노릇하기 어렵사옵니다. 내가 이 어린것을 어이 하오리까 주여 나를 도우사 이 어린것을 도울 수 있게 하옵소서. 저의 얼굴이 미소가 나타나고 그의 입은 平和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볼 때 나의 마음은 기쁨이 가득하였도다. 저의 울음은 나의 울음이었고 저의 웃음은 나의 웃음이었다. 오 네가 울어 내가 울었고 네가 웃어 내가 웃었으니 이 어인 인연인고. 이것이 과연 목자와 양의 인연이었는가?..."

거지 아이를 씻기우고 상처를 매만져주고 먹여서 재워 놓고도 가슴이 아파서 우는 이용도 목사의 사랑의 영성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 많지만, 그 중에 그의 사랑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산정현 집회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겨울 산정현 집회 때에 회당에서 밤을 세워 기도할 때, 내 맥박은 끝이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 숨이 곧 끊어질 것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안수기도를 원하는 이가 한 분 왔습니다. 나는 숨도 쉴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으니 기도를 드리지 못하고 그 머리 위에 손만 얹고 있었습니다. 이 때에 내 심중에 일어나는 감격은 컸습니다. 내 숨이 끊어지려는 순간에 남을 축복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격했습니다. 내가 숨이 지더라도 그 부인은 축복을 받을지니 나는 죽어도 내 대신 주님께서 그를 축복하실 것이 믿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기도는 축복의 기도가 아니라 '나는 남을 도울 힘이 없사오니 주 친히 축복하옵소서.'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힘이 나고 말문이 터져서 둘이 다 충분히 감격할 수 있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 다른 사람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할 수 있었던 이용도 목사. "예수를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또 사람을 사랑하게"되었다고 고백하는 이용도 목사의 산정현 집회에서 보여준 사랑은 예수의 사랑의 신비 속에 하나가 되어 보여준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이용도 목사의 사랑의 영성은 자연을 포함합니다. 이용도 목사는 아무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고독해 보이는 까마귀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하고,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모든 분별지로부터 벗어나 만물과도 화합하고 서로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어머니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속에서 자란 이용도 목사는 섬세하고 부드럽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감싸안을 줄 아는 모성적 영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어려서 그를 폭은하게 감싸주고 안아 주고 업어주던 어머니의 모습과 일치되고 있습니다.

""유한 물이 강한 돌을 굴려간다. 유한 골짜기 물이 단단한 굳은 반석을 쪼개고 깨쳐 모래를 만든다. 강한 것(石)의 힘보다 유한 것(水)의 조화가 실로 묘하도다. 유는 우주의 본성이었나니 유가 강을 주관하였나니라. 우주 만유의 본성은 小요 弱이요 柔이었나이다."

이용도 목사는 여성성인 유약함이 강함을 이긴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우주의 본성인 부드러움이 강함을 주관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대목은 도덕경의 上善若水를 생각하게 합니다. 노자는 최고의 선덕은 물과 같은 것이어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고, 남이 싫어하는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용도 목사 또한 마음은 늘 겸비하여 낮은 데 처해 있어야 되고, 비천은 늘 그가 처하여 있을 궁전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이용도 목사의 삶은 포용적이고, 여성적이며, 그의 내면은 부드럽고, 섬세하고, 생명력이 있었으며, 優位보다는 無位에 높아짐보다는 낮아짐에 처해 있었습니다.

일제하의 가난과 질고 속에서 몸부림치던 힘없는 민중들의 상처받은 영혼의 탄식 소리를 들을 줄 알던 사람, 그들의 아픔에 통곡할 줄 알던 사람, 민족의 고난과 예수의 고난을 눈물의 설교를 통해 뭇 영혼들을 생명수로 촉촉이 적셔주던 사람, 배가 고프면 물로 배를 채우고 웃으면서 가야금을 뜯을 줄 알던 사람, 무언, 겸비, 기도, 순종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던 사람, 날마다 죽음을 무릅쓰고 그냥 무식하게 돌진하던 사람, 쫓기고 버림받은 사람을 조건 없이 끌어안는 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 오직 예수를 그리워하고 예수만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무교회 서적도, 사회주의 서적도, 불경 서적도 읽기를 권했던 한없이 열린 영성을 갖고 있던 사람.

이용도 목사는 삶 속에서 철저히 죽어, 죽음을 넘어서 살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천년 같이 천년을 하루 같이 살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생명, 몸, 생각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께 솟아오르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주와 하나가되는 삶,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고 깨어져 無가 되고 空이 되고자 했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자신을 온전히 비워 영원히 넘쳐흐르는 생명의 물결 위에 자신을 실으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용도목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치겠습니다.

""나는 나의 일에 아무 계획도 없습니다. 그냥 생명강수 넘쳐흐르는 대로 떠나려 갈 모양! 그러다가 어디 걸리면 머무르고 또 쓸려 가면 가다가 깨어지면 깨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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