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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과 그의 나귀

민수기 정미현 목사............... 조회 수 3462 추천 수 0 2008.08.10 0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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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민22:21-35 
설교자 : 정미현 목사 
참고 : 새길교회 2002.11.3주일설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크신 능력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한국의 지성인들이 모이고, 새로운 교회 형태를 추구하여 국내외로 주목받는 새길 교회에 초청되어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 볼 수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먼저 저는 왜 우리가 개혁교회의 신앙의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인가를 오늘 다시 한번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흔히 우리는 종교개혁자라고 하면 마틴 루터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마틴 루터보다 100년 앞서 종교개혁을 주도한 종교개혁의 샛별을 여러분에게 소개할까 합니다. 그 사람은 얀 후스입니다. 우리에게 몰다우라는 곡으로 잘 알려진 체코의 국민주의 작곡가 스메타나는 바로 얀 후스의 개혁사상을 "나의 조국"이라고 제목이 붙은 그의 교향곡에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미 체코 프라하에 다녀오신 분이 계실 줄로 압니다. 또한 앞으로도 가실 기회가 많이 있으실텐데, 기회가 닿으시면 프라하 구 시가지 한가운데에 있는 동상을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마치 중앙청 앞, 세종로 거리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지나쳐 버릴 수 없는 것처럼, 프라하의 한 복판에는 후스의 동상이 있습니다. 바로 그 밑에 후스가 죽음으로까지 열렬히 외쳤던 진리가 승리한다라는 문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여, 진리를 들으라, 진리를 전하라, 진리를 따르라'하는 후스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럼 그 진리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의미에서의 진리가 아니라, 성서에서 증언되는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진리를 지키고자 외치며 죽어간 얀 후스는 14세기에 살았던 체코사람입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후스는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사제가 되어 체코 프라하에 있는 베들레헴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였고 또한 챨스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당시는 중세 교회가 점차로 부패해 지면서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해 가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권위를 드높이고 사람들이 그 앞에서 위압감을 느끼도록 교회의 건물을 크게 세웠습니다. 지금까지 유럽에 남아있는 훌륭한 교회 건축물들은 모두 그 당시에 지어진 것입니다. 교황은 해, 국왕은 달에 비유될 정도로 교황과 교회의 위세가 드높았던 중세교회는 로마의 바티칸에 베드로 성당을 지어 교회의 권위를 만방에 과시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건축 비용을 충당할 길이 없었고, 또한 그리스도교 역사상 저질러진 가장 추악한 십자군 전쟁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면죄부가 판매되었습니다. 즉 이러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돈으로 산 종이가 인간의 죄를 사하여 준다고 선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었음을 선포하기 보다, 성서도 읽을 수 없었던 무지한 중세기의 사람들을 교회는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급기야 이러한 방법으로 많은 부를 축적해 가던 중세교회는 교회 본연의 모습을 상실하고 부패해 버려 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후스는 교회가 저지르는 이런 엄청난 죄악을 외면하지 않고,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의 소리가 기득권을 장악하던 교회 지도자와 이들과 결탁한 정치 지도자들에게 달가울 리 없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후스는 교회 재판에 회부되었고, 자신에 대한 아무러한 변호를 할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은 채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화형에 처해 지게 되었습니다. 몇 번에 걸친 회유의 유혹도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시인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는 식으로 후스가 비판하던 모든 소리들을 철회하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스는 담대히 해야 할 말을 함으로써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후스는 산 채로 화형을 당하는 가장 극심한 형벌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데어도 얼마나 아픕니까! 그러니 화형 당할 때의 고통이란 가히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6 세기에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인물들은 각기 다른 모습의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루터와 칼빈은 노쇠현상으로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한 반면, 츠빙글리라는 스위스의 종교개혁자는 개혁을 반대하는 가톨릭 교도와의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스는 이들과는 또 달리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화형 당하면서 순교하였던 것입니다. 최근 로마 교황청은 후스에게 내려진 콘스탄츠 공의회의 당시 결정이 부당하였다는 것을 시인한 적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샛별인 후스가 억울한 죽음을 맞은 뒤 약 600여년이 지나서 역사는 그 진실을 밝혀 준 것이었습니다. 역사가 진실을 밝혀 준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차원에서 보게 되지만 후스의 사건은 우리에게 그러한 사실을 또 한번 확증하여 주는 좋은 예입니다.

우리가 종교개혁자들의 수고한 모습을 기념하며 개신교 탄생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는 것은 우리 자신과 달리 여전히 가톨릭 신앙을 가진 이들을 적대시하려는데 있지 않습니다. 한국 개신교가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 뿐 아니라, 한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에큐메니칼 정신을 갖지 못하고 적대시하는 것은 참으로 문제적입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두 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다만 우리와는 다른 신앙의 형태를 지닐 뿐입니다. 우리는 신앙적인 차이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도 관용적으로 서로 어우러지고 연합하여야하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필요로 하는 다원화된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지닌 개혁 교회의 정체성을 버려도 좋다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몸담고 있는 개혁교회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대가를 치루고 이룩한 개혁교회의 의미에 맞는 교인들인지 물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의 본문과 연관된 후스의 대표적인 한 설교 말씀에 비추어 함께 이제 그 본문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민수기 22장에는 브올의 아들 발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발람은 어느 날 모압사람들과 함께 길을 나서려고 했으나,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이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21절 이하에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므로 주의 천사가 나귀를 타고 가는 발람의 길 앞에 막고 섰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그 주의 천사를 보지 못하고, 단지 발람의 나귀만이 그 주의 천사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나귀는 발람이 이 길을 제대로 걸어 나아가지 못하도록 평소와는 달리 발람을 편하게 인도하지 않고 발람을 벽에 부딪히게도 하고 주저앉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여 그의 주인 발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지 않고 모압 사람들과 길을 떠나지 않게 하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나귀의 이러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나귀가 보게 된 주의 천사가 길을 막고 서 있음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발람은 나귀를 지팡이로 때리고 칼이 있었더라면 그 나귀를 죽여버렸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에 의해 입이 열려진 나귀가 주인을 깨달음으로 인도합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발람은 두 눈이 열려서 앞에 주의 천사가 서 있음을 보게됩니다. 주의 천사에 설명을 듣고 난 연후에야 발람은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행동할뻔 하였다는 것과 그것을 자신의 나귀가 막아주게 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뉘우치게 됩니다.

이것이 발람과 그의 나귀이야기입니다. 후스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을까요? 우리 신앙인들이 바로 발람의 나귀와 같은 역할을 해야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발람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할 적에 또한 당시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교황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할 때, 일반 평신도가 오히려 깨어 일어나 발람과 같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려고 하는 것을 막아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중세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던 한 종교개혁자의 설교말씀일 수만은 없습니다.

당시 후스는 일반 신도들도 성서를 직접 읽고 그 뜻을 이해하게 도왔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에게 쉽고 간편하게 다가가게 하기 위하여 어려운 라틴어로부터 각자의 모국어로 성서를 번역한 것은 종교개혁자들이 가장 역점을 두고 우선적으로 시행한 일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이전까지는 사제만이, 교육받은 소수의 특권층만이 성서를 읽고 이해하였습니다. 대다수의 평신도들은 무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담긴 성서를 직접 읽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제들은 복음의 빛을 가리우고, 마치 자신들의 이익과 이권에 관련된 말씀들을 전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왜곡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잘못을 종교개혁자들이 바로 잡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가 어느 특정인, 어느 특정 계층 사람들만의 독점물일 수 없다는 것이 종교개혁자들의 핵심사상입니다. 모두가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둔 것이 바로 종교개혁자들의 소중한 작업이었습니다. 읽기 쉬운 각 국의 모국어로 번역된 성서는 그 당시 발명된 인쇄술에 힘입어 대중에게 확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후스는 봉건 영주들과 기득권자들과 손을 잡고 종교개혁을 이끌어 나갔던 루터와는 달리 억압당하는 자들과 끝까지 연대하며 개혁을 시도했었습니다. 당시 후스를 따르고 그의 뜻에 동조한 무리가운데는 많은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결혼이 법적으로 허락되지 않은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숨겨진 아내와 애인노릇을 하던 많은 창녀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후스의 추종자인 여성들의 활약은 대단한 것이었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열렬히 장터와 거리에서 전파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후스 추종자 여성들에 대해 조사를 하러 나왔던 그 당시 로마 교황청의 한 관리는 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쓰기도 합니다. 이 여성들이 바티칸에 앉아있는 교황보다 성서를 더 잘 이해하고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더 잘 알고 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손에 이렇게 편안하게 주어지기 까지에는 이처럼 종교개혁자들의 수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또한 얀 후스와 같은 인물은 그러한 종교개혁을 수행하고자 자기의 생명까지 바쳐야 했던 것입니다. 교회의 권위, 인간적 권위 앞에 굴복하지 않고, 오로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힘을 얻었던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그 진리 자체가 승리한다는 믿음은 그를 화형도 두렵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개혁교회 전통을 가진 신앙인들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소중하게 이루어낸 이러한 개혁교회 전통의 유산을 우리는 이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당하게 되는 불의,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불의에 우리는 침묵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후스의 구호가 된 말씀, 진리가 승리한다는 그 믿음 위에 우리도 굳건히 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그리스도교가 승리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개혁을 지향하고 실현하여 가는 데에는 남녀 신도의 구별, 연령의 구별, 인종간의, 계층 간의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발람의 나귀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지도자가 깨어나지 못할 때,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깨어나지 못할 때, 우리들은 더 한층 분발하여 분별력을 지닌 발람의 나귀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목사는 일요일에 교회 안에서 사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여러분 모두는 평일에 여러분의 삶의 자리인 이 세상 가운데에서 사제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귀중한 발람의 나귀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나귀의 모습으로 오로지 하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지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달음질쳐야 할 것입니다.

바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푯대를 향하며 우리는 달려 나아가야 할 줄로 압니다. 바로 그 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시고, 포로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눈 먼 사람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도록 요청하십니다.

우리는 새로운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하는 그러한 민족적 과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지도자 감이 없다는 회의적인 생각도 많이 하게도 됩니다. 정치지도자 뿐 아니라, 우리는 진정한 종교 지도자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누가 발람이 되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고, 왜 발람이 저 모양인가를 비판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발람의 나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발람의 나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를 겸허히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만인 사제설을 오늘의 한반도에서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실현시킬 수 있는 길이고 가능성이라 봅니다. 새길교회는 이 점에서도 한국교회의 귀중한 본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사회, 종교 각 부분에서 판단력을 잃고 헤메는 발람에게 잘못됨을 깨우쳐 줄 수 있는 나귀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땅에서 종교개혁을 수행하여 가는 길이며, 개혁교인으로 살아가는 의미라고 봅니다. 그러한 일들을 여러분들이 수행하여 가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의 영이 늘 함께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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