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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우주론과 창조섭리

로마서 이영욱............... 조회 수 1964 추천 수 0 2008.08.18 20: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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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1:20 
설교자 : 이영욱 교수 
참고 :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 /새길교회 2005. 1.30 주일설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로마 1장 20절).”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편 19편 1-4절).”

1. 과학과 신앙: 문제의 심각성
우리나라의 개신교가 해결해야할 시급한 문제 중 하나는 오늘 우리가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하는 기독교와 현대과학의 갈등입니다. 21세기는 과학과 지식기반의 시대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특히 오늘날 기독교에 회의적인 젊은 세대와 지식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주님께로 인도하는데 중요한 현안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크리스천 과학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는 교회와 단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다루기가 껄끄럽고도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오해를 사기도 쉽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말씀을 전하려고 하니 저도 두려움이 앞서고 아마 새길교회 교인의 수준에 대해 따로 들은 정보가 없었다면 정중히 사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가지고 이 자리에 선 것은 우리 천문학자들의 대선배인 갈릴레오가 말한 것처럼 “그래도 지구는 움직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에도 망원경으로 빅뱅(Big Bang)우주론의 강력한 증거와 우주의 나이가 6,000년 보다는 140억년에 훨씬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드릴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관측사실이 결코 성경의 우주관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너무나 잘 들어맞아 무신론자들의 반감을 살 정도라는 것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와 과학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대선배 학자들은 자신들이 관측한 사실을 말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다가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에 처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갈릴레오의 경우는 자신의 의견을 (겉으로는) 철회하여 그나마 가택연금에 머물렀습니다. 오늘날 지구가 평탄하고 움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되었습니까? 아쉽게도 요즘도 제 2, 제3의 갈릴레오 재판이 소위 “창조와 진화 논쟁”이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의 전공은 천문학 중에서도 “별, 은하, 그리고 우주의 진화”입니다. 가끔 저희 연구팀이 새로운 결과를 발견할 때마다 신문에 보도가 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인터넷 신문에 올라오는 독자들의 의견이 아주 뜨겁습니다. 최근에 우주의 나이가 130억년 이상이라는 연구결과를 <사이언스>지에 게재했을 때의 반응이 특히 그러했습니다. 독자들의 의견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1) “현대천문학은 다 틀린 것이다. 성경을 봐라. 우주의 나이는 약 6,000-10,000년이다.” 이것은 갈릴레오 재판 직후 제임스 어셔 주교가 처음 해석한 것처럼,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를 문자적인 24시간 × 6 으로 해석하고, 그 후 나오는 성서 인물의 족보에서 계산한 것입니다. (2)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주장을 하느냐. 기독교는 사기다. 너희가 잘한 게 무엇이냐?” (3) “나도 기독교인이지만 성경 어디에도 우주의 나이가 6,000년 이라는 말이 없다. 그렇게 무리하게 문자적인 해석을 하면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다. 창조의 구체적인 내용은 제 2의 성경인 우주와 자연에서 찾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현대과학과 기독교간의 갈등을 바라보는 세 가지 대표적 견해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3)번과 같이 성숙한 의견은 별로 없고, 주로 (1)번과 같은 맹목적 근본주의자들과 (2)번의 무신론자들 간의 처절한 다툼으로 독자의견은 끝을 맺곤 합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창조과학 운동은 아직 (1)번과 같은 문자적 해석에 근거한 근본주의적 입장이 주류라서, 과학과 기독교 사이의 갈등에서 조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오히려 갈등의 골을 증폭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지식인을 전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가 오히려 지식인 전도의 최대 방해꾼이 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창조과학에 식상한 많은 지식인들이 다른 종교를 찾거나 아예 신을 부정해 버리는 안타까운 일들을 제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무신론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복음주의적인 크리스천 과학자들도 이와 같은 창조과학 운동에 비판과 냉소적 입장을 취합니다.

2. 갈등의 원인과 올바른 자세
무엇이 문제입니까? 저는 기독교와 현대과학 사이에 아직도 존재하는 갈등의 원인을 두 가지로 봅니다. 첫째는 성서해석의 문제이고, 둘째는 과학에 대한 무지와 오해입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갈릴레오의 말과 같이 “성경은 틀릴 수 없을지라도, 성서해석은 틀릴 수 있고, 실제로 많은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첫 번째 갈릴레오 재판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비록 모든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지만, 이제 우리는 성경의 일부 표현은 절대자의 입장에서 과학적 용어로 기술된 것 이라기보다는 지구에 있는 관측자의 입장에서, 성서 기자가 자신이 갖고 있던 당시의 상식을 가지고, 보통사람이 보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기술한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이와 같은 입장으로 창세기 1장의 창조 순서를 바라보면 그동안 “세째 날”의 식물보다 후에 창조된 것처럼 기술되어 제일 큰 문제로 부각되곤 했던 “네째 날” 별/태양/달의 등장도 초기지구의 짙은 대기와 안개가 걷히며 지구상 관측자(천지창조의 모습을 환상을 통해 보는 성서기자)에게 이미 존재했으나 안보이던 것이 드디어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예를 든 연대문제의 경우도 살펴봅시다. 창세기 1장의 “날”(히브리어 “욤”)은 신학적 해석에 따라 24시간 하루, 혹은 아주 긴 특정기간이 되기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창조의 내용들을 일반인의 관점에서 기술하기위해 은유적으로 “날”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베드로후서(3:8)의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의 내용과 같이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 존재이고, 따라서 창세기 1장에 기술된 창조주의 “날”은 오늘날 인간의 24시간 하루의 개념과는 다르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과학적 입장에서도 시간은 결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특수상대성이론은 그 동안 수많은 실험과 관측으로 증명되었는데, 시간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관측자의 속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의 말씀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에서 엿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만약 빛의 속도에 근접한 속도로 운행하시면서 신이 우주를 창조하신 경우, 그 하루는 오늘 인간의 시간으로는 수십억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의 고백과 같이 “시간이란 신이 창조한 우주의 한 특성이며, 우주가 시작되기 이전에는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또한 현대우주론적인 시간관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현대우주론과 창세기를 조화 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신학적, 과학적 해석이 가능함에도 아직도 문자적인 해석을 고집하며 자신 만이 맞다고 고집하는 것은 신앙의 독선이고 과학적 무지의 결과이며, 심지어 우둔한 인간의 시간개념 안에 신을 가두어두는 일종의 신성모독일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종교적 독선은 그 어느 것과도 타협이 안되기 때문에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침범 당하지 않는 한, 과학과 신앙의 문제에서는 그 어느 것보다도 열린 자세가 중요합니다.

우주의 나이가 6,000년이 아닌 140억년에 가깝다는 수많은 천문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만약 주님께서 우주의 나이는 오늘 인간의 시간 개념으로 6,000년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저의 복음주의적인 믿음과 그 동안의 신앙 체험은 과감히 내가 이때껏 쌓아왔던 모든 과학지식을 포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그런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성경은 우주창조의 자세한 과학적 과정을 기술할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며,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시기 위해 쓰여 졌습니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는 창세기 2장 4절의 말씀과 같이 천지 창조의 과정은 “대략” 기술한 것으로 충분합니다. 따라서 창조 과정의 구체적인 과학적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또 한권의 책인 자연과 우주를 통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로마서 1장 20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를 포함하여 신구약 성경의 여러 말씀(시 19편 1-4절 등)들이 이러한 사실을 확실히 증거 합니다. 크리스천 과학자들에게 과학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는 학문입니다. 이미 결정된 자연법칙이 어떤 형태와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발견하는 학문이지, 왜 처음에 그렇게 되었는지, 즉 제 1 원인까지 연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모든 과정에서 항상 신의 자리는 침범 당하지 않았습니다.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면, 우리는 단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을 뿐이다”라고 고백하듯이 과학 연구는 신의 자리를 뺏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신의 성품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입니다.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과학은 신의 창조섭리를 발견하는 또 다른 구도의 길입니다. 행성의 운동법칙을 발견한 17세기 천문학자 케플러는 “성직자들이 성경을 연구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자라면, 천문학자는 우주를 연구하여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알려주는 천문학의 제사장이다”라는 표현까지 썼습니다. 우주와 생명의 진화론을 포함한 여러 과학 이론 중, 수많은 관측과 실험을 거쳐 학계의 정설로 인정된 것은 바로 신이 우주와 자연을 창조하신 방법과 섭리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보다 일찍 이러한 자세를 가졌다면 과학과 기독교의 쓸데없는 갈등은 진작부터 없었을 것입니다. 일반대중이 현대과학의 내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관측한 사실을 그대로 말해도 당시 일반 대중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지동설을 믿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과학자들이 연구한 사실 중 절대 틀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그들도 자신이 관측한 것을 말할 뿐,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갈릴레오의 시대와 같이 모든 일반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3. 현대우주론에서 느끼는 창조섭리
일단 연대문제에서 위와 같은 자유를 얻고 나서 바라보면, 우리는 현대우주론에서 놀라운 창조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빅뱅우주론은 현재 우주의 기원에 대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천문학자와 천체물리학자의 99.9%가 빅뱅우주론을 지지합니다. 그 중에 약 40%는 크리스천 과학자입니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내세운 증거보다 훨씬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관측적 증거들로 인해서 의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빅뱅우주론에 대해 잘못된 오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의 창조를 부정하고 마치 우주 스스로가 우연히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절대 아닙니다. 시간, 공간, 물질이 처음 창조되던 빅뱅의 순간은 관측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갖고 있는 물리법칙으로는 기술조차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천문학자들이 관측 가능한 우주에서 발견한 모든 사실들은 태초에 그런 일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하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빅뱅우주론의 요점입니다. 물론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빅뱅의 제 1 원인을 창세기 1장 1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연구하는 것은 그 이후에 진행되는 창조의 법칙과 과정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관측기술의 발전으로 현대 천문학자들은 빅뱅 직후 우주 전체에 존재했던 “태초의 빛”의 잔재를 관측했고 이미 노벨상도 수여되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와 의미에 대한 재평가 작업입니다. 잘 알려진 것과 같이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발견 이후 최근까지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사조가 팽배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천문학자들과 천체물리학자들은 좀 더 총체적인 면에서 우주를 이해하게 되었고, 태양과 지구의 단순한 기하학적인 위치를 떠나, 지구상에 인간이 출현하기 위해 필요한 우주의 조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하여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이 문제를 다시 공략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천문학 지식을 요구합니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탄소원자와 같은 중원소는 오직 별 속에서만 만들어집니다. 이는 곧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별들이 태어나서 핵융합반응을 통해 충분한 중원소를 만든 후, 반드시 초신성으로 죽어야만 한다는 전제조건을 요구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체계적으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매우 특별한 조건을 필요로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은 여러 가지가 있고, 플랑크 상수, 볼쯔만 상수, 빛의 속도, 허블 상수, 우주의 밀도계수 등, 자연에는 여러 기본 상수들이 특정한 값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러 자연법칙과 상수 중 하나라도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과 조금만 다르다면 별과 행성이 만들어지지 않는 우주가 되며, 그런 우주에서는 당연히 인간이 출현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우리의 존재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수많은 자연의 법칙과 상수들이 우연에 의해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이 될 확률은 너무나 적어, 마치 야생에서 갓 잡은 원숭이가 타자기를 두드릴 때 우연히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라는 시 전문이 나올 수 있는 확률보다 작습니다. 우리 우주가 우연히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확률이 그렇게 낮은 것이라면, 결국 “우주는 태초부터 인간을 만들기 위해 특별한 목적을 갖고 디자인 된 것이 아닌가?”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 사실을 “지적 항복(intellectual surrender)”이라고 표현하며, 과학이 드디어 신을 발견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인간은 우주창조의 목적이며, 창조주의 최대 걸작품입니다.

앞으로도 과학자들은 계속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연구할 것입니다. 그러고 그 속에 내재된 신의 창조섭리를 하나씩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신은 그토록 우리를 창조하시기 위해 애쓰시며 정교하게 우주의 전 역사를 진행하셨을까요?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소명이 무엇일까요? 저는 새길교회에 주님이 특별한 소명을 맡기셨다고 믿습니다. 날로 부패해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교회들에게 성숙하고 신실한 크리스천의 모습, 언행이 일치하는 크리스천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선지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소외된 자들을 돌보는 새길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고 하셨습니다. 주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새길교회가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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