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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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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2년 4월 14일 주일 |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포도나무가지와 가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저가 어릴 때 저의 아버님께서는 과수원을 경영하고 계셨습니다. 겨울 동안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아버님께서 감나무의 가지를 잘라 주었습니다. 즉 가지치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감나무 밑에서 잘려 떨어진 가지를 주워 모아 집 뜰에 쌓아놓는 일을 했습니다. 그 가지들이 마르면 땔감으로 사용했습니다. 잘려진 가지는 그냥 가지에 불과합니다. 감나무에서 잘려졌으므로 감나무와 관계가 끊어졌으며 아무 진액도 받지 못함으로 그냥 말라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포도나무와 가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와 잘라진 가지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포도나무 가지와 그냥 가지의 차이가 무엇인지 우리가 마음속에 알아보아야 되겠습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로 포도나무와 하나가 되어 있는 가지는 포도나무 가지입니다. 포도나무 가지. 그것은 포도나무는 아니지만은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로써 포도나무와 생명일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려진 그냥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고 스스로 있는 가지로 홀로 된 가지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사람과 그냥 사람의 비유를 하나님께서는 포도나무 가지와 그냥 가지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예수 사람은 예수님께 붙어 있는 사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믿으며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예수 사람을 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가 되어 삽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성찬을 뗄 때 이것을 분명하게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오시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일체된 삶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믿는 사람들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그냥 사람입니다. 그냥 사람이에요.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그냥 인간의 힘을 의지하고 스스로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렘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사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의 삶의 실상을 주님께서 주님께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과 관계가 없습니다.
인본주의적으로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써 서로 우물을 팠으나 그 우물은 터진 우물입니다. 아무리 물을 갖다 부어도 물이 차있지 않습니다. 다빠져 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포도나무 가지와 그냥 가지, 예수 사람과 그냥 사람은 하늘과 땅과 같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와 생명일체가 되고 그냥 가지는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말라진 가지요 죽는 가지인 것입니다. 예수 사람은 그리스도와 일체 되어서 그리스도의 생명에 동참하는 사람이고 그냥 사람은 생명의 근원에서 끊어지고 인본주의적으로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스스로 살다가 파멸당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자리에서 농부로 표시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사람들을 통하여 농사를 지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냥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이 아니라 오늘 인생들을 통해서 농사를 지으시는데 그것도 그냥 사람을 통해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종자나무요,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가지들를 통해서 하나님이 농사를 지으시지 예수 그리스도의 종자 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는 떨어진 가진데 그를 통해선 하나님이 농사를 지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15장 1절로 3절은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농부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종자나무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우리 가지를 언제나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벌레를 잡아 주고 약을 쳐주고 비료를 주고 우리를 전지를 해주고 해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 맺지 않은 가지는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우리가 하나된 존재와 홀로 있는 존재가 어떻게 다른지를 마음속에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포도나무 가지 즉, 예수 사람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요한복음 15장 4절로 5절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가 붙잡아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폭풍우가 불어도 가지 혼자 날라가지 않습니다. 포도나무가 꽉 붙잡고 뿌리로부터 나무 등허리가 가지를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지를 보호하고 끊임없이 수액과 진액을 공급하여 주어서 잎피고 꽃피며 열매 맺게 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있어 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므로 말미암아 포도나무가 가지를 붙들어 주고 보호하고 진액을 공급하므로 그를 통해서 열매를 맺게해 주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중국 내지 선교사였던 허디슨 테일러 목사님은 중국에 들어가서 내지에서 일을 하는데 모든 것이 궁핍합니다. 양식도 부족하고 옷도 없고 의약품도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너무나 너무나 핍절한 가운데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없는 의약품을 가지고 모자라는 의복을 가지고 식량의 모자람을 참아가며 중국 사람들을 섬기다가 나중에는 지칠대로 지치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자기 힘으론 감당을 할 수 없어요. 매일같이 다가오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 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낙심했습니다. 이제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좌절하고 낙심해서 엎드려서 기도하는데 자기 여동생에게서 편지가 한 통 날라 왔습니다. 그 편지를 펴서 읽어 보니까 요한복음 15장에 있는 말씀으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내가 너안에 너가 내안에 있으면 저가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라는 성경구절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말씀이 그 영혼속에 아예 하늘에서 내려온 계시처럼 벼락이 치는 것 같았습니다.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요 나는 예수님께 붙어 있는 지상 가지에 불과한데 내힘으로 내가 이 사람들에게 먹이고 입히고 치료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할수 없지 않은가! 내가 하나님 아들 예수께 붙어 있는 가지니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므로 나는 나무에 붙어 있으므로 자연적으로 잎피고 꽃피고 열매 맺는 가지고 같지 않은가! 이때부터 내가 예수님께 구해야지. 내 힘으로 할 수 없다”. 그래서 마음에 큰 안심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예수님이 그의 생명의 원천인 것을 알고 그는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무슨 일을 하지 예수님께 떨어져서는 아무일도 할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에게 엎드려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나는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내 힘과 능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전적으로 주님께만 의지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엔 잡히는 것 없어도 주님께만 의지하오니 주님이 나를 들어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주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는데 미국에 있는 성도들 가운데 갑자기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전혀 허디슨 테일러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허디슨 테일러는 영국서 파견된 선교사인데 미국에 있는 교인들이 풍문(성)으로 듣고 “아! 중국 내지에서 일하는 허디슨 테일러를 위해서 우리가 도움을 베풀어야 되겠다”. 그래서 각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일어나서 허디슨 테일러를 위해서 의약품을 모집해서 보내고 옷을 모집해서 보내고 양식을 모집하고 선교비를 모집해서 보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중국 내지의 그 험악한 산지에 있는 허디슨 테일러에게 놀랍게도 옷이 트럭으로 실려오고 의약품이 실려오고 양식이 실려오고 선교비가 왔습니다. 그가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발버둥을 치고 고통과 괴로움과 좌절과 절망으로 신경 쇠약증에 걸릴 지경이었는데 그러지 않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라는 것을 알고 그의 생애속에 예수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전적으로 예수께만 의지하며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 주님께로부터 진액이 넘쳐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님이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중국 내지 선교를 크게 성공했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되고 난 다음 그가 중국에서 쫓겨났지만 중국이 다시 자유화되자 들어가 보니까 그 옛날에 있던 기독교 신자보다 수백갑절 수천갑절로 많이 부흥이 되어 있었습니다. 중국 내지 선교에 허디슨 테일러는 크게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힘으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포도나무에 붙은 한 가지에 불과 하므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맡길 때 나무가 가지를 통해서 꽃피고 잎피고 열매맺게 해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 가지와 그냥 가지는 다릅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냥 가지는 스스로 의지하기 때문에 말라 버리는 것입니다. 그냥 사람과 예수 사람은 다릅니다. 예수 사람은 예수님께서 붙잡아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며 은혜를 주셔서 열매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여러분을 붙잡고 있는 종자 포도나무입니다. 여러분의 그에 붙어 있는 가지인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은 예수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 사람은 예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이요 예수께서 여러분을 붙잡고 보호하고 여러분을 통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이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앙망하고 주님께 고하면 주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은 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내심으로 어떻게 우리가 의롭게 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께로부터 넘치는 성령의 은혜가 오십니다. 육체의 고난을 당한 자가 죄를 그쳤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의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고 죄를 걷힌 그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넘쳐 나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의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생각이 의로워지고 말이 어려워지고 행동이 의로워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 힘으로 발버둥쳐도 안되는 것입니다. 주께 의지할 때 기적적으로 주의 의의 진액이 넘쳐 나서 우리를 의의 열매 맺는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지할 때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성결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는 세상과 마귀에게 잡혀서 세상이 시키는데로 탐욕의 노예가 되고 정욕의 노예가 되고 마귀 시키는데로 음란하고 방탕하고 세속적으로 살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과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주님 십자가에서 세속과 마귀를 이기시고 우리에게 천국과 성령을 보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께 의지하면 그리스도 이기신 그 능력을 통해서 성령이 넘쳐 남으로 우리를 세상에서 분리시켜 성결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결함이 우리 마음데로 되나요? 우리는 구정물 속에 사는데 이 구정물이 어떻게 맑아집니까? 맑은 물이 넘쳐 들어오면 구정물이 서서히 없어지지 않습니까? 잉크병에 잉크에 맑은 물을 어떻게 합니까? 자꾸 맑은 물을 부어 넣으면 먹물은 다 사라지고 맑은 물이 가득한 것입니다. 우리 속에 끊임없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성령의 생수가 넘쳐나면 세속이 다 물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우리가 붙어 있을 때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그를 통하여 세상과 마귀를 이긴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넘쳐 들어와서 성결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은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병들고 연약한 인생의 몸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치료와 새로 지음받은 새생명을 받아 입게 되는 것입니다. 병이란 것은 불법 주차와 같습니다. 여러분 집앞에 불법 주차를 해놓으면 그대로 내버려 두겠습니까? 경찰에 고발해서 불법주차한 차를 끌고 가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신지가 2천년 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로 상함 받기를 원하사 우리 질고를 당케 하신 것이 2천년 전입니다. 2천년 전에 주님께서 우리 병을 다 청산했는데 지금도 병이 우리 몸에 있다는 것은 마귀의 불법주차입니다. 여러분 몸에 불법으로 갖다 놓은 것입니다. 합법적으로 갖다 놓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알면 여러분이 단호하게 대결해서 이 병을 물리쳐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를 내어 쫓고 질병을 물리쳐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여러분 질병은 불법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이야 당당하게 마귀가 와서 불법주차를 하지요. 불법으로 병을 갖다 놓지요.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주님께서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2천년 전에 다 값을 지불하고 청산해 버리고 이겨 버렸는데 이제와서 우리 몸에 병을 주차시킨다는 것은 불법입니다. 불법을 허락해서는 안되지요. 기도와 믿음으로 물리쳐야 되는 것이요. 하나님께 간구하여 멸하여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예수 사람들은 병에서 치료받고 해방과 자유를 얻는 열매를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으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여러분 저주를 정복하셨습니다. 가난을 정복하셨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유하신 자로써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저희 가난하심으로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리라 하심이라고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때문에 가난했었으니 그 가난을 통해서 우리를 부요케 하겠다는 그 예수에게 우리가 붙어 있습니다. 여러분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詛呪)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贖良)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께서 나무에 달려서 저주를 받아 우리 저주를 다 청산했다고 했으니 우리의 생애 위에 저주의 먹장 구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켜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사람은 예수에게 붙어 있으면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넘쳐 나서 저주가 사라지고 가난이 사라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냥 사람은 그렇지 않아요. 그냥 사람은 스스로 웅덩이를 파서 물을 채워 놓을 수 없는 터진 웅덩이입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아무리 연못을 파도 물을 고이게 할 수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생명의 근원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예수 사람입니다. 그냥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사람 속에는 여러분 우리가 의지할 때 그리스도가 그 은혜를 통해서 저주를 재하시고 가난을 재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부어 주시는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마땅한 것이지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게 진액을 받아서 포도나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지만 그냥 가지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라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냥 가지가 아니라 포도나무 가지요. 그냥 사람이 아니라 예수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겨 놓으신 승리의 은혜의 진액을 받아들이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부어 주시고 예수님의 은총을 부어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내 안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너가 내안에 내가 너안에 있으면 너가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한 것입니다. 열매를 맺게 되어 있어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열매를 못맺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이고 열매를 맺고 사는 것은 정상적인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고를 고쳐야 되요. 나는 못한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실패한다. 나는 낭패자다. 그러한 어둡고 캄캄한 생각을 마음에서 내어쫓아 버리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 나는 예수 사람으로써 그리스도의 모든 대속의 은총과 축복이 나의 것이라는 그러한 것을 확실히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복락의 열매를 당연히 맺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가 나의 부활이요, 생명이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했었는데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데 그것이 자연히 우리에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되고 말고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네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 이것이 예수 사람의 희망인 것입니다. 예수 사람 아닌 그냥 사람은 이런 희망이 없어요. 예수 사람만이 이런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매 맺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요.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여러분 주님이 간절히 원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원하는 것 아닙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소원을 우리가 받아 들여서 이루어 드려야 될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닌 것입니까?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즉 우리는 기도하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열매 맺는 것이 여러분과 나의 소원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소원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이요,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종자 씨앗 나무인 예수를 보내 주셔서 여러분을 불러서 그리스도의 몸의 가지로 붙여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그 나무를 통해서 넘쳐 나오는 승리의 진액의 은혜를 받아서 여러분이 열매 맺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의 열매로 가득하고 성결의 열매로 가득하고 건강의 열매를 맺으며 축복의 열매를 맺고 천국복락의 열매를 맺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이를 위해서 아버지께서 농부로써 일하고 계시므로 여러분께서 이 열매를 맺을 기대를 항상 마음에 갖고 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냥 가지, 그냥 사람 정말 불쌍한 이름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6절에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 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냥 가지는 나무에서 끊어졌기 때문에 생명의 진액을 공급받지 못하므로 말라서 썩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닙니까? 그냥 가지는 생명을 받을수가 없어요. 그냥 사람은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독립하여서 서로 존재하기 때문에 버림받고 말라지고 부패해 지고 맙니다. 그것이 현실이 아닙니까 여러분! 갈라디아서 5장 19절로 21절에 보십시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육체의 사람인데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그냥 사람들의 삶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냥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생명의 원천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패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윤리나 도덕을 가르치고 법을 만들고 형무소에 집어 넣고 해도 스스로 속에 부패되어 있는데 거기에 서서 어떻게 올바른 열매를 맺을수가 있겠습니까? 로마서 1장 28절로 32절에도 보면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 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별도리 없이 예수 사람 아닌 그냥 사람은 그 속에 생명이 없으므로 이와같은 부패와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별도리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결국에는 말라져서 불태워 버리고 말죠.
셋째로, 우리가 열매 맺는 삶을 더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놀라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인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거기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항상 그러므로 주 예수님 안에 거해야 되겠는데 어떻게 해서 항상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습니까? 항상 어떻게 예수님 몸에 붙어 있어서 예수 사람이 될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님께 붙어 있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우리는 예수님 안에 들어가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행위나 의식을 통해서 예수님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심을 믿을때 용서와 의를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우리의 삶속에 성령충만을 구하므로 성령이 오실 때 예수님이 항상 우리 가운데 계시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4절에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계신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예수님의 영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항상 우리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며 성령 충만하기를 간구할 때 우리가 주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항상 주안에서 생활할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육신적으로 사는 것도 늘 우리는 먹고 그리고 대화하고 살지 않습니까? 나는 가정이 가정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함께 식탁에 앉고 서로 대화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양식을 먹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 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압니까?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어떤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갭니다. 말씀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습니다. 인간의 말은 살아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적인 생명에서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든 사람이 늘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라고 말 할 때 그 말씀은 살아서 그 몸을 수술하고 치료하는 것입니다. 죄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여러분 베드로전서 4장 1절에 있는 말씀대로 육체의 고난을 받은자가 죄를 그쳤느니라. 하나님 말씀입니다. 육체의 고난을 받으자가 죄를 그쳐 버렸습니다. 그 예수를 구주로 모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아 들여서 늘 시인합니다. 육체의 고난을 받는 자가 죄를 그쳤느니라. 육체의 고난을 받는 자가 죄를 그쳤느니라. 그 말씀이 속에 들어와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여러분 속에 들어오면 역사 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우리가 읽고 듣고 묵상하고 받아 들여서 시인하면 이 말씀이 들어와서 우리 가운데서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고 우리가 기도 생활을 하면 주님과 교통하고 주님이 내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게 되지요.
예레미아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 을 네게 보이리라" 끊임없이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주님이 역사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야 뭐 특별히 주님께 기도할 것 없지요.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가 모르는 일들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우리를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항상 예수님 안에 있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예수님 안에 있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수주일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주님께 섬기고 이런 생활은 주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이를 통해서 주님이 내안에 내가 주님 안에 같이 있죠. 자식들이 부모님께 순종할 때 같이 집에 있지만은 부모를 반역하면 집밖에 나가지 않아요? 예수 믿는 사람도 그리스도 밖에 나가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불순종하기 때문이에요.
마태복음 6장 332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7장 12절로 15절 말씀 한번 들어 보세요.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로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우승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사 너희가 아는바 그 애굽의 악질이 네게 임하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임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내가 알지 못해도 하나님 명령이 임하시면 순종하는 것입니다.
한 선교사 가족이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어린 아이가 뒤뜰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갑자기 아빠가 급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얼른 땅에 바짝 엎드려라”. 아이는 대꾸하지 않고 바짝 엎드렸습니다. “자 이제는 내게로 기어오너라”. 아이는 시키는데로 벌렁벌렁 빨리 기어왔습니다. “이제 일어나 나에게 뛰어 오너라”. 뛰어서 아버지 품에 안겼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가 놀고 있던 그곳에 나무를 쳐다보니 거기에는 길이가 5미터나 되는 무서운 독사가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그 아이를 잡아먹으려고 얼릉얼릉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 아이가 아빠에게 짜증을 내고 “지금 놀고 있는데 당장 가야 하나요? 뭘 그렇게 빨리 오라고 합니까?”. 꾸물거렸다면 그 뱀에 물려서 치명상을 당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즉각적인 순종은 믿음과 사랑의 증거입니다. 주님 음성에 즉각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와같이 주안에 거하고 그 다음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 들어오면 믿음을 따라 고하십시오.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 마음속에 확신이 들어오면 확신을 따라 구해야 됩니다.
마태복음 7장 7절로 11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좋은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실려고 하나님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심어지고 믿어 지면 구하고 그 구함에 따라서 또한 여러번 심고 거두는 법칙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농부가 심어야 거두지 심지 않고는 아무것도 거둘수가 없지 않습니까? 심지 않고 풍년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모든 것이 심고 거두는 법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십일조와 헌물을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심어야 하나님께서 그것을 삼십배, 육십배, 백배해서 거두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마태복음 7장 12절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내가 먼저 남을 대접하면 남에게 심는 것이요 그러면 남이 반드시 그에게 대접을 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여러분께서 단호하게 우리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실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젠 믿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넘치는 은혜를 주실 것을 믿고 열매 맺을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보다 간절하게 열매 맺기를 원하기 때문에 여러분 보다 더 여러분이 응답 받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언어생활에 항상 긍정적이 되어야 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여러분께서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낙관적인 말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이 여러분의 삶의 씨앗이 됩니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며 절망적이고 비관적인 말을 자꾸 심어 놓으면 그대로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언제나 여러분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이고 희망차고 낙관적인 그런 말을 심어 놓으십시오. 그런 선언을 하십시오. 그리고는 여러분 사랑이 하나님의 은총을 가져옵니다. 늘 용서할줄 알아야 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5절에서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용서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상처를 받았는데요. 그 상처에 피를 흘리고 있는데 그 상처에 아물어지지 않은채 용서하려면 굉장히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용서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린 큰 고통을 통해서 용서를 주셨습니다. 용서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해야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지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기도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모를 용서할 수 있어야 되고 남편을 아내를 형제를 이웃을 용서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용서의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 여러분 결심하고 용서를 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수없이 용서한다고 하고도 돌이켜 보면 용서 안했어요. 그러나 수없이 자꾸 용서한다고 하고 용서를 하십시오. 용서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큰 은혜의 역사를 일으키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농부의 기대는 과실의 수확을 풍성히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께 기대하는 것도 여러분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열매를 맺고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며 우리의 선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열매 맺어서 우리 혼자 열매를 즐기라고 열매 맺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열매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나누어주어야 되요. 여러분 알지 못하기를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선한 사람들’을 통해서 매일마다 북한에 있는 1만 5천명을 먹이고 있습니다. 미숫가루를 보내서 매일 만5천명의 아동들, 약 30여개 학교에서 애들을 급식하고 있습니다. 먹여야 되요. 배고픈 사람 먹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은 우리만 복을 누리겠다하면 그 복은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았으면 그것을 가지고서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과 사랑을 나누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삶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복을 서로 나눌 때 복은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기쁨은 나누면 많아지고 슬픔은 나누면 작아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8절로 9절에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주님의 끝없는 사랑으로 우리의 포도나무가 되시고 우리의 몸체가 되셔서 우리를 끌어안고 보호하고 우리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진액을 공급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포도나무 가지지 그냥 가지가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 사람이지 그냥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사람인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고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게 우리 하나님께 모든 삶에 구하십시오. 탐욕을 가지고 고하지 말고 더 이웃의 축복의 원천이 되기 위해서 고하십시오. 올바른 동기로 구할 때,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열매를 맺되 풍성히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소원이 여러분 생애속에 이루어져서 여러분께서 많은 하나님의 은총과 열매를 맺어 선한 사업을 크게 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린 아담과 하와 이후로 하나님께 끊어져서 버림받아 살았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용서와 의와 영광을 회복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붙어있는 예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냥 사람이 아니라 예수 사람되고 그냥 가지가 아니라 포도나무 가지가 되었사오니 이제 우리 힘으로 살지 않고 우리는 예수께 의지해서 예수님의 진액을 받아 삽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의 열매가 풍성하고 성결의 열매가 넘쳐나며 치료와 건강의 열매가 넘쳐나고 축복과 형통의 열매가 가득차며 영생복락의 열매가 넘쳐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그래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저가 어릴 때 저의 아버님께서는 과수원을 경영하고 계셨습니다. 겨울 동안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아버님께서 감나무의 가지를 잘라 주었습니다. 즉 가지치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감나무 밑에서 잘려 떨어진 가지를 주워 모아 집 뜰에 쌓아놓는 일을 했습니다. 그 가지들이 마르면 땔감으로 사용했습니다. 잘려진 가지는 그냥 가지에 불과합니다. 감나무에서 잘려졌으므로 감나무와 관계가 끊어졌으며 아무 진액도 받지 못함으로 그냥 말라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포도나무와 가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와 잘라진 가지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포도나무 가지와 그냥 가지의 차이가 무엇인지 우리가 마음속에 알아보아야 되겠습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로 포도나무와 하나가 되어 있는 가지는 포도나무 가지입니다. 포도나무 가지. 그것은 포도나무는 아니지만은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로써 포도나무와 생명일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려진 그냥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고 스스로 있는 가지로 홀로 된 가지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사람과 그냥 사람의 비유를 하나님께서는 포도나무 가지와 그냥 가지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예수 사람은 예수님께 붙어 있는 사람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믿으며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바울 선생이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예수 사람을 말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가 되어 삽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성찬을 뗄 때 이것을 분명하게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오시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일체된 삶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믿는 사람들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그냥 사람입니다. 그냥 사람이에요.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그냥 인간의 힘을 의지하고 스스로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렘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사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의 삶의 실상을 주님께서 주님께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과 관계가 없습니다.
인본주의적으로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써 서로 우물을 팠으나 그 우물은 터진 우물입니다. 아무리 물을 갖다 부어도 물이 차있지 않습니다. 다빠져 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포도나무 가지와 그냥 가지, 예수 사람과 그냥 사람은 하늘과 땅과 같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와 생명일체가 되고 그냥 가지는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말라진 가지요 죽는 가지인 것입니다. 예수 사람은 그리스도와 일체 되어서 그리스도의 생명에 동참하는 사람이고 그냥 사람은 생명의 근원에서 끊어지고 인본주의적으로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스스로 살다가 파멸당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자리에서 농부로 표시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사람들을 통하여 농사를 지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냥 보좌에 앉아 계신 것이 아니라 오늘 인생들을 통해서 농사를 지으시는데 그것도 그냥 사람을 통해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종자나무요,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가지들를 통해서 하나님이 농사를 지으시지 예수 그리스도의 종자 나무에 붙어 있지 않은 가지는 떨어진 가진데 그를 통해선 하나님이 농사를 지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 15장 1절로 3절은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농부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종자나무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우리 가지를 언제나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벌레를 잡아 주고 약을 쳐주고 비료를 주고 우리를 전지를 해주고 해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매 맺지 않은 가지는 잘라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우리가 하나된 존재와 홀로 있는 존재가 어떻게 다른지를 마음속에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포도나무 가지 즉, 예수 사람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요한복음 15장 4절로 5절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가 붙잡아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폭풍우가 불어도 가지 혼자 날라가지 않습니다. 포도나무가 꽉 붙잡고 뿌리로부터 나무 등허리가 가지를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지를 보호하고 끊임없이 수액과 진액을 공급하여 주어서 잎피고 꽃피며 열매 맺게 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있어 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므로 말미암아 포도나무가 가지를 붙들어 주고 보호하고 진액을 공급하므로 그를 통해서 열매를 맺게해 주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중국 내지 선교사였던 허디슨 테일러 목사님은 중국에 들어가서 내지에서 일을 하는데 모든 것이 궁핍합니다. 양식도 부족하고 옷도 없고 의약품도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너무나 너무나 핍절한 가운데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없는 의약품을 가지고 모자라는 의복을 가지고 식량의 모자람을 참아가며 중국 사람들을 섬기다가 나중에는 지칠대로 지치고 말았습니다. 도저히 자기 힘으론 감당을 할 수 없어요. 매일같이 다가오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 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낙심했습니다. 이제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좌절하고 낙심해서 엎드려서 기도하는데 자기 여동생에게서 편지가 한 통 날라 왔습니다. 그 편지를 펴서 읽어 보니까 요한복음 15장에 있는 말씀으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내가 너안에 너가 내안에 있으면 저가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라는 성경구절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말씀이 그 영혼속에 아예 하늘에서 내려온 계시처럼 벼락이 치는 것 같았습니다.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요 나는 예수님께 붙어 있는 지상 가지에 불과한데 내힘으로 내가 이 사람들에게 먹이고 입히고 치료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할수 없지 않은가! 내가 하나님 아들 예수께 붙어 있는 가지니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므로 나는 나무에 붙어 있으므로 자연적으로 잎피고 꽃피고 열매 맺는 가지고 같지 않은가! 이때부터 내가 예수님께 구해야지. 내 힘으로 할 수 없다”. 그래서 마음에 큰 안심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예수님이 그의 생명의 원천인 것을 알고 그는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무슨 일을 하지 예수님께 떨어져서는 아무일도 할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리스도에게 엎드려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나는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내 힘과 능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전적으로 주님께만 의지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엔 잡히는 것 없어도 주님께만 의지하오니 주님이 나를 들어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주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는데 미국에 있는 성도들 가운데 갑자기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전혀 허디슨 테일러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허디슨 테일러는 영국서 파견된 선교사인데 미국에 있는 교인들이 풍문(성)으로 듣고 “아! 중국 내지에서 일하는 허디슨 테일러를 위해서 우리가 도움을 베풀어야 되겠다”. 그래서 각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일어나서 허디슨 테일러를 위해서 의약품을 모집해서 보내고 옷을 모집해서 보내고 양식을 모집하고 선교비를 모집해서 보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중국 내지의 그 험악한 산지에 있는 허디슨 테일러에게 놀랍게도 옷이 트럭으로 실려오고 의약품이 실려오고 양식이 실려오고 선교비가 왔습니다. 그가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발버둥을 치고 고통과 괴로움과 좌절과 절망으로 신경 쇠약증에 걸릴 지경이었는데 그러지 않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라는 것을 알고 그의 생애속에 예수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전적으로 예수께만 의지하며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 주님께로부터 진액이 넘쳐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님이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중국 내지 선교를 크게 성공했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되고 난 다음 그가 중국에서 쫓겨났지만 중국이 다시 자유화되자 들어가 보니까 그 옛날에 있던 기독교 신자보다 수백갑절 수천갑절로 많이 부흥이 되어 있었습니다. 중국 내지 선교에 허디슨 테일러는 크게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힘으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포도나무에 붙은 한 가지에 불과 하므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주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맡길 때 나무가 가지를 통해서 꽃피고 잎피고 열매맺게 해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 가지와 그냥 가지는 다릅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냥 가지는 스스로 의지하기 때문에 말라 버리는 것입니다. 그냥 사람과 예수 사람은 다릅니다. 예수 사람은 예수님께서 붙잡아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며 은혜를 주셔서 열매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여러분을 붙잡고 있는 종자 포도나무입니다. 여러분의 그에 붙어 있는 가지인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은 예수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 사람은 예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이요 예수께서 여러분을 붙잡고 보호하고 여러분을 통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이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앙망하고 주님께 고하면 주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주님은 의의 열매를 맺습니다. 내심으로 어떻게 우리가 의롭게 살 수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께로부터 넘치는 성령의 은혜가 오십니다. 육체의 고난을 당한 자가 죄를 그쳤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의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고 죄를 걷힌 그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넘쳐 나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의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생각이 의로워지고 말이 어려워지고 행동이 의로워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 힘으로 발버둥쳐도 안되는 것입니다. 주께 의지할 때 기적적으로 주의 의의 진액이 넘쳐 나서 우리를 의의 열매 맺는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지할 때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성결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는 세상과 마귀에게 잡혀서 세상이 시키는데로 탐욕의 노예가 되고 정욕의 노예가 되고 마귀 시키는데로 음란하고 방탕하고 세속적으로 살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과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주님 십자가에서 세속과 마귀를 이기시고 우리에게 천국과 성령을 보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께 의지하면 그리스도 이기신 그 능력을 통해서 성령이 넘쳐 남으로 우리를 세상에서 분리시켜 성결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성결함이 우리 마음데로 되나요? 우리는 구정물 속에 사는데 이 구정물이 어떻게 맑아집니까? 맑은 물이 넘쳐 들어오면 구정물이 서서히 없어지지 않습니까? 잉크병에 잉크에 맑은 물을 어떻게 합니까? 자꾸 맑은 물을 부어 넣으면 먹물은 다 사라지고 맑은 물이 가득한 것입니다. 우리 속에 끊임없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서 성령의 생수가 넘쳐나면 세속이 다 물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우리가 붙어 있을 때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그를 통하여 세상과 마귀를 이긴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넘쳐 들어와서 성결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은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병들고 연약한 인생의 몸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치료와 새로 지음받은 새생명을 받아 입게 되는 것입니다. 병이란 것은 불법 주차와 같습니다. 여러분 집앞에 불법 주차를 해놓으면 그대로 내버려 두겠습니까? 경찰에 고발해서 불법주차한 차를 끌고 가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신지가 2천년 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로 상함 받기를 원하사 우리 질고를 당케 하신 것이 2천년 전입니다. 2천년 전에 주님께서 우리 병을 다 청산했는데 지금도 병이 우리 몸에 있다는 것은 마귀의 불법주차입니다. 여러분 몸에 불법으로 갖다 놓은 것입니다. 합법적으로 갖다 놓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알면 여러분이 단호하게 대결해서 이 병을 물리쳐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를 내어 쫓고 질병을 물리쳐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여러분 질병은 불법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이야 당당하게 마귀가 와서 불법주차를 하지요. 불법으로 병을 갖다 놓지요.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주님께서 다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2천년 전에 다 값을 지불하고 청산해 버리고 이겨 버렸는데 이제와서 우리 몸에 병을 주차시킨다는 것은 불법입니다. 불법을 허락해서는 안되지요. 기도와 믿음으로 물리쳐야 되는 것이요. 하나님께 간구하여 멸하여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예수 사람들은 병에서 치료받고 해방과 자유를 얻는 열매를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으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여러분 저주를 정복하셨습니다. 가난을 정복하셨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저가 부유하신 자로써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저희 가난하심으로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리라 하심이라고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때문에 가난했었으니 그 가난을 통해서 우리를 부요케 하겠다는 그 예수에게 우리가 붙어 있습니다. 여러분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詛呪)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贖良)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께서 나무에 달려서 저주를 받아 우리 저주를 다 청산했다고 했으니 우리의 생애 위에 저주의 먹장 구름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제켜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사람은 예수에게 붙어 있으면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넘쳐 나서 저주가 사라지고 가난이 사라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냥 사람은 그렇지 않아요. 그냥 사람은 스스로 웅덩이를 파서 물을 채워 놓을 수 없는 터진 웅덩이입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아무리 연못을 파도 물을 고이게 할 수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생명의 근원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예수 사람입니다. 그냥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사람 속에는 여러분 우리가 의지할 때 그리스도가 그 은혜를 통해서 저주를 재하시고 가난을 재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부어 주시는 역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마땅한 것이지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게 진액을 받아서 포도나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지만 그냥 가지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라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냥 가지가 아니라 포도나무 가지요. 그냥 사람이 아니라 예수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겨 놓으신 승리의 은혜의 진액을 받아들이는 것은 마땅한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브라함의 복을 부어 주시고 예수님의 은총을 부어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내 안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너가 내안에 내가 너안에 있으면 너가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한 것입니다. 열매를 맺게 되어 있어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열매를 못맺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이고 열매를 맺고 사는 것은 정상적인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고를 고쳐야 되요. 나는 못한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가난하다. 나는 실패한다. 나는 낭패자다. 그러한 어둡고 캄캄한 생각을 마음에서 내어쫓아 버리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 나는 예수 사람으로써 그리스도의 모든 대속의 은총과 축복이 나의 것이라는 그러한 것을 확실히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복락의 열매를 당연히 맺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가 나의 부활이요, 생명이요,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했었는데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데 그것이 자연히 우리에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되고 말고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네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 이것이 예수 사람의 희망인 것입니다. 예수 사람 아닌 그냥 사람은 이런 희망이 없어요. 예수 사람만이 이런 희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매 맺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요.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여러분 주님이 간절히 원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원하는 것 아닙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소원을 우리가 받아 들여서 이루어 드려야 될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닌 것입니까?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즉 우리는 기도하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열매 맺는 것이 여러분과 나의 소원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소원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이요, 이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종자 씨앗 나무인 예수를 보내 주셔서 여러분을 불러서 그리스도의 몸의 가지로 붙여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그 나무를 통해서 넘쳐 나오는 승리의 진액의 은혜를 받아서 여러분이 열매 맺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의 열매로 가득하고 성결의 열매로 가득하고 건강의 열매를 맺으며 축복의 열매를 맺고 천국복락의 열매를 맺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이를 위해서 아버지께서 농부로써 일하고 계시므로 여러분께서 이 열매를 맺을 기대를 항상 마음에 갖고 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냥 가지, 그냥 사람 정말 불쌍한 이름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6절에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 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냥 가지는 나무에서 끊어졌기 때문에 생명의 진액을 공급받지 못하므로 말라서 썩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닙니까? 그냥 가지는 생명을 받을수가 없어요. 그냥 사람은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고 독립하여서 서로 존재하기 때문에 버림받고 말라지고 부패해 지고 맙니다. 그것이 현실이 아닙니까 여러분! 갈라디아서 5장 19절로 21절에 보십시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육체의 사람인데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그냥 사람들의 삶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냥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생명의 원천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패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윤리나 도덕을 가르치고 법을 만들고 형무소에 집어 넣고 해도 스스로 속에 부패되어 있는데 거기에 서서 어떻게 올바른 열매를 맺을수가 있겠습니까? 로마서 1장 28절로 32절에도 보면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 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별도리 없이 예수 사람 아닌 그냥 사람은 그 속에 생명이 없으므로 이와같은 부패와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별도리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결국에는 말라져서 불태워 버리고 말죠.
셋째로, 우리가 열매 맺는 삶을 더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놀라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인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거기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항상 그러므로 주 예수님 안에 거해야 되겠는데 어떻게 해서 항상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습니까? 항상 어떻게 예수님 몸에 붙어 있어서 예수 사람이 될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님께 붙어 있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우리는 예수님 안에 들어가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행위나 의식을 통해서 예수님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심을 믿을때 용서와 의를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늘 우리의 삶속에 성령충만을 구하므로 성령이 오실 때 예수님이 항상 우리 가운데 계시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4절에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계신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바로 예수님의 영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항상 우리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며 성령 충만하기를 간구할 때 우리가 주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항상 주안에서 생활할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육신적으로 사는 것도 늘 우리는 먹고 그리고 대화하고 살지 않습니까? 나는 가정이 가정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함께 식탁에 앉고 서로 대화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시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양식을 먹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 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압니까? 말씀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어떤 날선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갭니다. 말씀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습니다. 인간의 말은 살아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적인 생명에서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든 사람이 늘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내가 나음을 입었다라고 말 할 때 그 말씀은 살아서 그 몸을 수술하고 치료하는 것입니다. 죄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은 여러분 베드로전서 4장 1절에 있는 말씀대로 육체의 고난을 받은자가 죄를 그쳤느니라. 하나님 말씀입니다. 육체의 고난을 받으자가 죄를 그쳐 버렸습니다. 그 예수를 구주로 모셨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아 들여서 늘 시인합니다. 육체의 고난을 받는 자가 죄를 그쳤느니라. 육체의 고난을 받는 자가 죄를 그쳤느니라. 그 말씀이 속에 들어와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여러분 속에 들어오면 역사 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우리가 읽고 듣고 묵상하고 받아 들여서 시인하면 이 말씀이 들어와서 우리 가운데서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받고 우리가 기도 생활을 하면 주님과 교통하고 주님이 내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게 되지요.
예레미아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 을 네게 보이리라" 끊임없이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주님이 역사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야 뭐 특별히 주님께 기도할 것 없지요.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가 모르는 일들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우리를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항상 예수님 안에 있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예수님 안에 있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수주일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주님께 섬기고 이런 생활은 주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이를 통해서 주님이 내안에 내가 주님 안에 같이 있죠. 자식들이 부모님께 순종할 때 같이 집에 있지만은 부모를 반역하면 집밖에 나가지 않아요? 예수 믿는 사람도 그리스도 밖에 나가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불순종하기 때문이에요.
마태복음 6장 332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7장 12절로 15절 말씀 한번 들어 보세요.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로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우승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하사 너희가 아는바 그 애굽의 악질이 네게 임하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임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종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내가 알지 못해도 하나님 명령이 임하시면 순종하는 것입니다.
한 선교사 가족이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어린 아이가 뒤뜰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갑자기 아빠가 급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얼른 땅에 바짝 엎드려라”. 아이는 대꾸하지 않고 바짝 엎드렸습니다. “자 이제는 내게로 기어오너라”. 아이는 시키는데로 벌렁벌렁 빨리 기어왔습니다. “이제 일어나 나에게 뛰어 오너라”. 뛰어서 아버지 품에 안겼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가 놀고 있던 그곳에 나무를 쳐다보니 거기에는 길이가 5미터나 되는 무서운 독사가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그 아이를 잡아먹으려고 얼릉얼릉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 아이가 아빠에게 짜증을 내고 “지금 놀고 있는데 당장 가야 하나요? 뭘 그렇게 빨리 오라고 합니까?”. 꾸물거렸다면 그 뱀에 물려서 치명상을 당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즉각적인 순종은 믿음과 사랑의 증거입니다. 주님 음성에 즉각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와같이 주안에 거하고 그 다음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 들어오면 믿음을 따라 고하십시오.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 마음속에 확신이 들어오면 확신을 따라 구해야 됩니다.
마태복음 7장 7절로 11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좋은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실려고 하나님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심어지고 믿어 지면 구하고 그 구함에 따라서 또한 여러번 심고 거두는 법칙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농부가 심어야 거두지 심지 않고는 아무것도 거둘수가 없지 않습니까? 심지 않고 풍년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모든 것이 심고 거두는 법칙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하나님께 십일조와 헌물을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심어야 하나님께서 그것을 삼십배, 육십배, 백배해서 거두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마태복음 7장 12절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내가 먼저 남을 대접하면 남에게 심는 것이요 그러면 남이 반드시 그에게 대접을 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여러분께서 단호하게 우리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실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젠 믿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넘치는 은혜를 주실 것을 믿고 열매 맺을 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보다 간절하게 열매 맺기를 원하기 때문에 여러분 보다 더 여러분이 응답 받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언어생활에 항상 긍정적이 되어야 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여러분께서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낙관적인 말을 사용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이 여러분의 삶의 씨앗이 됩니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며 절망적이고 비관적인 말을 자꾸 심어 놓으면 그대로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언제나 여러분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이고 희망차고 낙관적인 그런 말을 심어 놓으십시오. 그런 선언을 하십시오. 그리고는 여러분 사랑이 하나님의 은총을 가져옵니다. 늘 용서할줄 알아야 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5절에서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용서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상처를 받았는데요. 그 상처에 피를 흘리고 있는데 그 상처에 아물어지지 않은채 용서하려면 굉장히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을 용서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린 큰 고통을 통해서 용서를 주셨습니다. 용서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해야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지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기도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모를 용서할 수 있어야 되고 남편을 아내를 형제를 이웃을 용서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용서의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 여러분 결심하고 용서를 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수없이 용서한다고 하고도 돌이켜 보면 용서 안했어요. 그러나 수없이 자꾸 용서한다고 하고 용서를 하십시오. 용서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큰 은혜의 역사를 일으키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농부의 기대는 과실의 수확을 풍성히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께 기대하는 것도 여러분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열매를 맺고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며 우리의 선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열매 맺어서 우리 혼자 열매를 즐기라고 열매 맺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열매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나누어주어야 되요. 여러분 알지 못하기를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선한 사람들’을 통해서 매일마다 북한에 있는 1만 5천명을 먹이고 있습니다. 미숫가루를 보내서 매일 만5천명의 아동들, 약 30여개 학교에서 애들을 급식하고 있습니다. 먹여야 되요. 배고픈 사람 먹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은 우리만 복을 누리겠다하면 그 복은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우리가 복을 받았으면 그것을 가지고서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과 사랑을 나누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삶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복을 서로 나눌 때 복은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기쁨은 나누면 많아지고 슬픔은 나누면 작아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8절로 9절에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주님의 끝없는 사랑으로 우리의 포도나무가 되시고 우리의 몸체가 되셔서 우리를 끌어안고 보호하고 우리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진액을 공급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포도나무 가지지 그냥 가지가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 사람이지 그냥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사람인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고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게 우리 하나님께 모든 삶에 구하십시오. 탐욕을 가지고 고하지 말고 더 이웃의 축복의 원천이 되기 위해서 고하십시오. 올바른 동기로 구할 때,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열매를 맺되 풍성히 맺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소원이 여러분 생애속에 이루어져서 여러분께서 많은 하나님의 은총과 열매를 맺어 선한 사업을 크게 하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린 아담과 하와 이후로 하나님께 끊어져서 버림받아 살았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용서와 의와 영광을 회복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붙어있는 예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냥 사람이 아니라 예수 사람되고 그냥 가지가 아니라 포도나무 가지가 되었사오니 이제 우리 힘으로 살지 않고 우리는 예수께 의지해서 예수님의 진액을 받아 삽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의 열매가 풍성하고 성결의 열매가 넘쳐나며 치료와 건강의 열매가 넘쳐나고 축복과 형통의 열매가 가득차며 영생복락의 열매가 넘쳐나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그래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우리들이 다 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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