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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로마서 조용기 목사............... 조회 수 1709 추천 수 0 2008.08.19 22:58:02
.........
성경본문 : 롬7:14-25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2년 6월 2일 주일설교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갈등>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불광동에서 목회할 때 행상을 하시던 홀로된 자매님이 계셨는데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기뻐하고 열심히 새벽기도에 나오시고 주일 예배는 반드시 지키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가 제게 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이 늙어 은퇴할때까지 예수님을 그만 믿을까 합니다.”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예수 믿고 중생한 후는 옛날처럼 장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먹고 살 도리가 없습니다.” 왜그러냐 물으니까 “행상을 하면 물건값을 적당히 속여서 파는데 이제 그렇게 할 때마다 너무나 양심이 괴롭고 마음에 심한 갈등이 오기 때문에 예수 믿고 장사하며 살수가 없습니다. 예수 믿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밤낮으로 너무 괴로워 당분간 믿음을 쉬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 마음속에 크고 작은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마음에 갈등을 어떻게 처리해야만 하겠습니까?

첫째로, 왜 마음에 갈등이 오느냐?

원래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 있을 때 마음에 갈등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죄가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범하고 죄를 지었을 때 양심에 갈등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마음에 고통을 느끼고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나무숲 뒤에 숨고 벌거벗은 수치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육신만 벌거벗은 것이 아닙니다. 양심이 벌거벗은 고통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아담의 후손들의 양심은 심한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죄가 들어와서 양심을 부패시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양심의 꾸짖음 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되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은 약한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이 약해졌어요. 죄로 말미암아 약해지는 것입니다.
(고전8:7-12)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악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 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약해진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이 약해지니까 강한 소리를 말하지 못합니다. 양심이 희미한 소리를 말할지라도 마귀와 죄가 강하게 반발을 하면 양심이 물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화인 맞은 양심이 있습니다. 얼굴은 사람이나 마음은 짐승과 같은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딤전4: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불로 달군쇠로써 확 도장을 찍어 보십시오. 그 도장을 찍힌 살갖은 다 불타 버리는 것입니다. 양심이 죄악으로 화인을 맞았으니 이제는 양심의 반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외식하고 거짓말해도 조금도 마음에 저항을 느끼지 않는 인면 수심의 마음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 더러운 양심이 있습니다.
(딛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고 말했습니다.
더러운 양심, 양심이 더러워지니까 더러운 귀신하고 교제를 합니다. 양심이 맑고 깨끗하면 성령과 교통하겠지만 양심이 더러우니까 끼리끼리 모이니까 더러운 귀신하고 같이 합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세상에 더러운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운 귀신에게 점령당해서 여러 가지 더러운 일을 하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악한 양심이 있습니다.
(히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했는데 양심의 악, 악한 마음, 악한 마음은 악한 양심은 악한 마귀가 들어와서 일합니다. 악은 자기를 괴롭히고 남을 괴롭힙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악이 얼마나 가득합니까? 오늘날 친부모도 악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자식을 푸대접하고 버립니다. 부모로써 자식을 학대, 굶기고, 때리고, 방임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아요. 보건복지부가 아동학대 예방신고전화 운영한지 한해 동안에 전국 17개 센터에서 신고된 4천건이 넘는데 그중 절반이상이 심한 아동학대로 판정이 되었습니다. 어떤 집은 평소 12살된 아들을 자주 때렸으며 이사갈 때 버려놓고 가족만 이사가 버렸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이사를 가다니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또 한집은 13살, 12살, 5살 어린 세딸만 단칸방에 남겨주고 아버지는 가출하고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번 집에 와서 돈 만원만 주고 갑니다. 막내가 화상을 입어도 붕대만 감고 병원에 못 가서, 진물이 나는데 방은 춥고 어두워서 5월인데도 불구하고 손가락에 동상이 걸려 있었습니다. 이것은 악한 양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마귀가 그를 통해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합니다. 자기 친자식에게도 이렇게 하거든 이웃과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행패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와같은 양심이 회복이 되면은 점점 양심이 뚜렷한 소리를 발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보혈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고 거듭나게 되면 양심이 새롭게 되고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능력으로 죽은 양심이 살아나고 양심이 새롭게 되면 양심의 소리가 들립니다. 주께서 보혈로 씻고 성령으로 새롭게 한 양심은 선한 양심이 되는 것입니다.
(딤전1:5)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 거늘" 그렇게 말했습니다. 선한 양심은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가게 하고 사랑을 나누게 해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선해야죠. 악한 사람 만나면 정말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도 선한 남편 만나야 되고, 부인도 선한 부인 만나야 되고, 자식들도 선한 자식을 거느린 부모는 마음에 평안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은 언제나 평안을 가져오지만 악은 화를 가져오고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보혈로 씻은바 곧 성령으로 새롭게 되면 착한 양심이 됩니다.
(딤전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 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착한 양심, 착한 양심은 우리를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착한 양심은 자기 스스로 마음이 착해서 이웃사람들에게 섬기고, 봉사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착한양심 이것은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사는 양심입니다. 그 다음에는 보혈로 씻고 성령으로 새로워 지면 깨끗한 양심이 됩니다.
(딤전3: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
깨끗한 양심은 이제 더러운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에도 더러운 것을 용납할수 없고 가정이나 사회 더러운 곳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마음이 깨끗한 양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 깨끗한 양심이 더러움과 함께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청결한 양심이 있습니다.
(딤후1:3)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 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라고 말한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는데 마음이 청결해 지면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서 함께 교통하므로 하나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마귀와 세속을 따라 살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 양심이 더러워지고 악해지고 화인을 맞게 된 양심으로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해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양심이 회복되어 선한 양심, 착한 양심, 깨끗한 양심, 청결한 양심이 되어서 양심이 살아서 고함치게 되면 마음에 갈등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죄와 불의와 추악이 꽉 들어찬 세속과 마귀가 점령한 세상속에 사니까 우리의 삶속에 갈등이 말로 다할수 없습니다. 세상에 다가오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세상 자랑의 유혹이 너무나 심한데 그 유혹에 저항해서 구원받고 보혈로 씻은 살아난 양심은 선한 양심이요, 착한 양심이요, 깨끗한 양심이요, 청결한 양심이 저항을 하고 고함을 치니까 마음속에 갈등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19세기 미국의 작가 에드가 엘렌 포어의 작품중에 보면 주인공은 아무도 모르게 사람을 죽여서 자기집 지하실에 묻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죽은 사람 심장고동 소리가 그의 귀에 똑똑히 들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는 간담이 서늘했으며 온몸이 식은땀으로 줄줄 흘렀습니다. 자나깨나 지하실에 파묻어 버린 죽은 사람의 심장의 고동소리가 자기 귀에 들린다는 것입니다. 귀를 막아도 잠을 자도 계속 들려오는 그 섬뜩한 고동치는 소리를 피할래야 피할길이 없었습니다. 그는 괴로워 죽을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 소리가 지하실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가슴에서 울리는 자기 심장의 고동소리인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책감 때문에 피할수 없는 양심의 고통을 묘사한 것입니다. 세상사람 모두를 속일수는 있어도 자신의 양심은 속일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죄짓고는 못산다. 죄책감은 반드시 심신의 심각한 고통과 질병을 유발한다는 것을 이 소설가는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귀를 막아도 속에서 외치는 양심의 소리 때문에 항상 우리는 양심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왜 우리는 갈등을 느끼게 되느냐? 겉사람과 속사람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겉사람만 살았고 속사람은 죽었습니다. 영원히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으므로 무엇이든지 가능합니다. 겉사람은 세속과 마귀와 짝을 짓고 살기 때문에 갈등이 없어요. 혼자살 때 갈등이 없지만 결혼을 하고 남편이 들어오고 아내가 들어오면 갈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사람이 함께 살려니까 서로 마음을 조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지요. 제게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마음이 편안했는데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무서운 갈등이 있다고... 그건 당연한 이치다. 한사람을 위해 살때는 자기 멋대로 사니까 자기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자기 자고 싶은 시간에 자고 자기가 먹고 싶은 시간에 먹지만 두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못해요. 이러므로 서로 충돌되고 갈등이 있죠. 우리가 겉사람만 살때는 죄악을 따라 마귀를 따라 사니까 갈등이 없지만 속사람이 살아나니까 겉사람에 대해서 저항을 하므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롬7:22-24)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성경에 보면은 싸움이 내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 지체속에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에 법과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싸움이 있습니다. 싸움이 있으니까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죠. 위대한 바울선생 같은 사람도 탄식해서 말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속에서 싸움이 있으니까 마음이 곤고할 수밖에 없고 갈등에 휩싸일 수밖에 없죠. 여러분 겉사람이란 육신의 사람을 말합니다. 감각적이고 본능적이고 탐욕과 유혹에 허약한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육신의 사람을 유혹하여 언제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세상 자랑을 따라서 살게 하고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어서 5장 19절로 21절을 보면 육신의 사람이 하는 일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신의 사람이 가는 길이 바로 이 길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보혈로 씻고 성령이 오셔서 거듭나게 되면 속사람이 살아 납니다. 신령한 사람이 살아납니다. 그 신령한 사람속에는 살아 있는 양심이 활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고 보혈로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양심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사람속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성전삼고 거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풍성히 부어주사 은혜를 입어 성결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말씀 그래도 성결한 영인 것입니다. 성결한 영이 우리 마음속에 거하죠. 옛날에는 더러운 영이 거했는데 다 쫓아내고 성결한 영이 들어와 있죠. 그것도 우리 마음속에는 진리의 말씀이 와서 있습니다.
(엡4:23-24)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는데 이 진리의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니 자! 겉사람과 속사람이 이제는 대결을 하고 싸우고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이와같은 뚜렷한 겉사람과 속사람이 나에게 함께 있으니 내게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 선생같이 위대한 그리스도인도 그 속에 맹렬한 싸움이 있었다고 스스로 고백을 했습니다.
(롬7:18-24)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 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러분 바울 선생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도가 이러한 적나라한 마음의 고통을 고백했으니 얼마나 솔직한 분이신 것입니까?

그럼 셋째로,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되겠습니까?

불광동에서 제게 질문한 자매에게 드린 저의 대답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그 자매님에게 “자매님! 구원은 일회적이고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은 영원한 것입니다.”
(히10:12-14)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예수님의 제사는 영원한 제사요, 옛날 구약시대는 죄를 지을때마다 속죄제물 드리고, 속건제물 드리고, 매일 번제물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렸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당신 자신을 영원한 속죄제물, 영원한 속건제물, 영원한 화목제물, 영원한 번제물로 드렸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서 용서받고 구원받는 것은 영원이 용서받고 구원받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에는 영원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10:17-18)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우린 다시 제사드릴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한번 십자가에 못박혀 영원한 죄물이 되셨습니다. 그 보배로운 피로 영원히 우리 죄를 용서하고 사해버렸습니다. 의롭다 하셨으니 다시 제사드릴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내가 조금만 이루었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반쯤 이루었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모두다 깨끗이 이루었다. 우리 개인의 죄의 빚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영원히 청산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전쟁과 전투는 다릅니다. 제2차 대전때 연합군은 독일과 일본에 대하여 확실하게 온전히 승리함으로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전쟁중 많은 지역 전투에서는 패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태평양 전쟁때 하와이에서 일본 사람에게 크게 당했고, 필리핀 군도도 일본사람에게 패해서 내어주고 태평양상의 여러섬도 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전투에는 많이 졌으나 2차대전이란 그 전체 전쟁은 이겨 버리고 만것입니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했습니다. 독일도 그렇게 했습니다. 전투에는 여러번 이겼어도 전쟁에 져버렸습니다. 그와같이 인류구원의 전쟁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확실하게 온전히 승리하여 종결지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인간구원은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전쟁은 끝났습니다. 구원의 전쟁에 왈가왈부할 것이 없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인생들이 예수를 구주로 모시면 그로써 구원은 종결된 것입니다. 그 이상 우리가 아무것도 보탤수도 없고 뺄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의 전쟁은 이미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성시켜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우리의 삶속에는 아직도 육신과 마귀에 대한 전투가 계속되고 이기고 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이미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속에는 아직 자질구레한 전투가 계속됩니다.
(엡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 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이미 구원받아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씨름은 계속하고 있어요. 우리속에 늘 씨름은 계속했습니다. 그 씨름은 전투지 전쟁은 아닙니다. 전쟁은 이미 이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전투는 아직까지도 계속하고 씨름은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구원과 우리의 씨름은 관계가 없습니다. 구원과 관계없는 전투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미 끝났습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 <구원은 이미 끝났습니다> 말씀하세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문제는 이미 끝나고 만 것입니다.
(골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압도적이고 종결적인 승리를 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속사람과 겉사람의 전투는 살아있을 동안에 계속 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을 동안에 우리 살아 있는 양심과 육신과 싸우고 겉사람과 속사람과의 싸움은 계속해서 우리속에서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곤고하고 갈등을 느끼고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는 성수주일하고 성령충만하고 말씀충만으로 속사람이 힘을 얻어 점점 겉 사람을 자꾸 항복시켜 나가는 도리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엡5:8-10)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이처럼 빛의 자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천국행과 부끄러운 상처투성이의 천국행은 결국 전투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속사람이 많은 승리를 하고 거룩함을 달성하고 천국갈때는 천국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있을 것입니다. 천당 들어갈 때 주님과 천사들이 박수를 치고 환영할 것입니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 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렇게 성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고전15:41)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 광이 다르도다" 다같이 예수 믿어도 여러분 하늘 나라에 다같이 올라가도 영광이 다르다. 다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과 별들의 영광이 다른것처럼 천당간다고 영광이 같을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천국행과 부끄러움과 상처투성이의 천국행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사람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천국가면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도들과 천사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수없이 이 세상 삶의 전투에서 져서 상처투성이 되면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 승리로 구원받았지만 그 삶은 전투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온전신에 붕대를 감고 크러치를 의지해서 쩔뚝거리며 천당에 들어가는 형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고전3: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 서 얻은것 같으리라"
불 가운데서 구원 얻은 것 같이 모든 것은 불타 버리고 겨우 생명만 건진다는 것입니다.
(요일2: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부끄럽지 않게 주님 앞에서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전투에서 수없이 지면은 우린 부끄러움의 구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갈등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안 받았으면 갈등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죽은 양심에 마귀와 죄악이 다스리는 겉 사람을 도우려 사는데 무슨 갈등이 있어요. 여러분 마음속에 갈등이 있고 싸움이 있다는 것 자체는 여러분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났고 양심이 살아났고 속 사람이 살아났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성도들이 느끼는 그 깊이 있는 마음에 갈등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법정에서 우리를 꾸짖는 선하고 맑은 양심과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될 것은 우리 마음의 갈등은 죽을때까지 있을 것입니다. 마음에 싸움은 마지막 관속에 들어갈 때까지 있을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어찌할수 없이 겪어야 될 싸움입니다. 바울선생 조차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구원의 전쟁에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우리는 압도적으로 이미 구원은 받아 놓고 그 다음에 싸움은 계속하는 것입니다. 전투는 계속하는 것입니다. 많이 이기면 이길수록 영광과 존귀와 칭찬이 있을 것이요, 많이 지면 질수록 부끄러움의 상처투성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하나님께 헌신하여 능력과 힘을 얻어 매일 우리 삶의 전투에서 이겨, 영광과 칭찬과 상급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영혼속에 끊임없는 갈등이 있고 우리의 신앙 생활속에
하루도 쉬지 않는 싸움이 있습니다. 겉사람과 속사람의 싸움이요,
살아있는 양심과 세상과 싸움입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은 불가피,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몸부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고
우리는 날로날로 하나님 말씀과 성령님의 도우심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 속사람이 이기고 양심이 승리하는 삶을 살아 주님앞에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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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2 누가복음 용서의 능력 눅17:1-4  정용섭 목사  2008-08-25 2039
981 열왕기하 삶의 중심 왕하5:20-27  정용섭 목사  2008-08-25 2141
980 사도행전 언어의 한계와 존재론적 능력 행2:1-13  정용섭 목사  2008-08-25 1979
979 마가복음 예수의 권위 막1:21-28  정용섭 목사  2008-08-25 2045
978 고린도전 종교와 철학을 넘어서 고전1:22-25  정용섭 목사  2008-08-25 1663
977 에스겔 세계, 계시, 하나님 겔39:25-29  정용섭 목사  2008-08-25 1804
976 시편 긍휼을 베푸시는 주께 감사하라 시145:9-21  유경재 목사  2008-08-25 2048
975 누가복음 기도와 활동의 조화: 자매회의 영성 눅10:38-42  노종숙 언님  2008-08-25 1730
974 마태복음 이렇게 기도하라 마6:5-6  류상태 형제  2008-08-25 1887
973 전도서 코헬렛의 회고 전1:1-11  김기동 자매  2008-08-25 2073
972 누가복음 예수 따르미 정체성 눅14:26-27  조혜자 자매  2008-08-25 1872
971 창세기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창45:1-5  홍순택 형제  2008-08-25 1639
970 마가복음 사람을 위하여 막2:23-28  류상태 형제  2008-08-25 1688
969 마태복음 다 내게로 오너라 마11:28-30  오강남 교수  2008-08-25 1989
968 히브리서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히12:1-3  이정숙 교수  2008-08-25 2771
967 히브리서 믿음의 실상 히11:1~2, 17~19  노희정 형제  2008-08-25 2528
966 마가복음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요 막4:24-25  백소영 교수  2008-08-25 2523
965 에스겔 화해의 도 겔37:15-23  홍근수 형제  2008-08-25 1748
964 누가복음 영생과 선한 사마리아인의 집중(력) 눅10:25-37  이은선 교수  2008-08-25 4008
963 룻기 두 과부 이야기 룻1:15-17  김기동 자매  2008-08-25 3042
962 누가복음 시중드는 이로 오신 예수 눅22:4-27  홍주민 목사  2008-08-25 1874
961 요한일서 사랑과 노동 요일4:7-8  배현주 교수  2008-08-25 2107
960 호세아 도마의 질문 호6:1~3  왕대일 목사  2008-08-25 2588
959 아모스 신앙생활의 기초와 기본 암3:1-13  박봉수 목사  2008-08-25 3635
958 골로새서 속지 말라 골2:6-8  강종수 목사  2008-08-24 2747
957 아가 떠남에서 돌아오라 아5:2-6:13  박봉웅 목사  2008-08-22 2227
956 아가 솔로몬의 연의 행렬 아3:6-5:1  박봉웅 목사.  2008-08-22 2015
955 아가 주님의 방문 모습 아2:8-3:5  박봉웅 목사  2008-08-22 1678
954 아가 내마음에 사랑하는 자 아1:1-2:7  박봉웅 목사  2008-08-22 2543
953 시편 가난하고 상한마음 시109:22  김남준 목사  2008-08-22 2155
952 요한계시 연단과 믿음 계3:18  김남준 목사  2008-08-22 2573
951 고린도후 연단과 의뢰 고후1:8~9  김남준 목사  2008-08-22 1751
950 빌립보서 연단과 충성 빌2:22  김남준 목사  2008-08-22 2336
949 잠언 온전한 삶과 연단된 마음 잠17:3  김남준 목사  2008-08-22 2446
948 시편 온전해진 자의 섬김을 받으심 시101:6  김남준 목사  2008-08-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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