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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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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2년 6월 9일 주일설교 |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농부가 소를 사면 소가 밭을 잘 가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시험해 봅니다. 목동이 말을 사면 그 말이 잘 달리고 순응하는지 않는지 시험해 봅니다. 오늘날 우리 생활에 편리를 주는 여러 가지 기계나 기구를 살 때도 잘 작동을 하는지 우리는 시험을 해보고 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조차도 취직을 하려면 시험을 치게 됩니다. 시험의 목적은 성품이나 능력이나 기능이 좋은지 나쁜지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을 시험해 볼 수 있을까요? 정말로 천부당 만부당한 소리인 것입니다. 피조물이 인간이 불완전한 인간이 창조주시오, 완전하신 하나님을 시험한다니 너무나 황당하고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에게 시험을 당치 않으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9절에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종종 불완전하고 무능력하고 무식함에도 불구하고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시며 완전하신 하나님을 시험해 보려고 황당한 짓을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1.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이스라엘 백성들
첫째로, 우리 성경에 보면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에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멸망을 받고 말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들어온 이후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며 얼마나 장엄합니까? 그 창일한 홍해수와 모세의 지팡이 하나를 통해서 갈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육지같이 홍해를 건너는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과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스루광야에 들어가서 사흘길을 걸어가도 물이 없어 목이 말라죽을 때 연못물을 발견했으나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기도하며 하나님이 나무가지를 지시한지라 가지를 꺽어 던지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들은 다 목마름에서 구원함을 받을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광야를 300만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을 먹고 지납니까? 그러나 농사짓지 아니하고 추수하지 아니해도 하나님께서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매일같이 하늘양식인 만나를 보내 주셔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이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기적입니다. 사람이 하늘양식을 먹고 살은 것입니다. 또 그들이 고기가 필요할 때는 하나님이 메추라기를 보내셔서 코에서 메추라기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을 때까지 먹을만한 메추라기를 잡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에 관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무지하거나 의심할수 있는 처지가 못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체험하고 그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출애굽기 17장 7절에 보면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성경 출애굽기 17장 7절에는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그들이 므리바에 왔을때 물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황막한 광야요, 바위투성이고 그 백성들은 물이 없어 갈하고 짐승들도 물을 마시지 못해서 비틀비틀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모여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주실 것을 능히 알고 믿어야 했었습니다. 너무나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많이 체험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시험했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지 우리 한번 시험해 보자. 하나님께서 메마른 땅에서 물을 나게 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 시험해 보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달라 들었을 때 얼마나 마음에 괴심하게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시험을 당하신 하나님은 물은 주셨으되 그 대신 아말렉의 공격으로 벌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물을 마시고 난 다음에 곧장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침공해 들어와서 그들은 생존이 위협받는 무시무시한 시험을 당하고 벌을 받은 것이 성경에 기록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면 반드시 하나님께 꾸중을 듣고 채찍을 맞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민수가 21장 4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또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그래서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원망 불평을 하면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싫어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이번에 불평할때도 과연 노하실까 어디 한번 해보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떨면서 그들이 불평과 원망을 하지 말아야 되겠는데 어디 이번에도 하나님이 불평을 하면 우리에게 진노하시는가 한번 시험해 보자. 그래서 그들은 말하기를 “광야에서 우리 죽겠다. 식물도, 물도 없다. 만나도 싫다. 모세야 왜 우리를 광야로 데려와서 이 고생을 시키느냐”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시험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선 불뱀을 보내셨습니다. 불뱀이 이스라엘 백성을 물매 수없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해 보고 난 다음에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모세에게 나와서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한 죄를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명하시사 불뱀을 놋으로 만들어서 나무에 매달아 그를 쳐다보는 자마다 고침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서 나무에 매달아 높이 세워 놓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바라볼 때 독에서 해방되고 살아났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고도 무사히 통과될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시험을 당하시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푸시기는 하지만 반드시 대가를 받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시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너무나 위대하시고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이 너무나 무지막지하고 불완전하고 형편없는 우리가 시험대에 앉아서 하나님을 시험받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말 불경한 짓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시험한 이방 선지자 발람
둘째로, 우리가 성경에 보면은 이방 선지자 발람이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종국적으로 멸망을 받은 사실을 볼수 있습니다. 모압왕 발락이 전진해 오는 이스라엘을 막기 위해서 이방 선지자 발람을 청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에 있는 선지자, 유대인이 아니면서 야웨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 예언한 사람이 발람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발람이 축복하면 축복을 받고 저주하면 저주를 받으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서 오는 중에 모압땅을 통하게 되었는데 모압왕 발락이 두려워해서 선지자 발람을 청해서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이기도록 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압왕 발락이 보낸 사자들이 발람의 집에 도착했을 때 집에 머물게 하고 발람이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민수기 22장 12절에 보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밤에 말씀하기를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들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가지도 말고 저주도 말라. 그 백성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발락이 보낸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못가라신다. 그러므로 발락왕이 그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준다해도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갈수 없다.” 이 사자들이 돌아가서 모압왕 발락에게 이 사실을 말하매 발락왕이 더 높은 귀족들을 대표단을 만들어서 또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발람이 한번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했으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 것을 알았은즉 그대로 알고 돌려보내야 되는데 이 밤에 우리 집에 머무소서. 하나님이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내가 또 한번 기도해 보겠습니다. 왜! 선지자 발람은 모압왕 발락이 초청을 해서 상급을 많이 주겠다 하니까 욕심이 생기고 탐심이 생겨서 하나님을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의 마음이 달라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민수기 22장 19절로 20절에 보면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하나님! 왜 일구이언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발람이 시험하기 때문에 하나님 발람을 멸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시험을 하는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벌하는데 하나님이 분명히 저주하지도 말고 가지고 말라 내가 그 백성은 축복한 백성이라 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음에 더 큰 약속과 더 큰 선물을 주겠다고 오라는 초청을 받자 또다시 그들은 그 귀족들을 머물게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하나님 마음이 달라진지 안달라진지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왜냐! 가는길에 발람을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아~ 발람이 기분이 좋아서 말을 타고 종자를 데리고 그 사자들과 함께 걸어가는데 아 갑자기 말이 길에서 밭으로 뛰어 들거든 그래서 말을 때렸습니다. 때려서 길로 오니까 길 옆에 있는 담에 막 기대어서 타고 있는 발람의 다리를 상하게 했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서 지팡이로 말을 때리니까 말이 이제는 가지 않고 꿇어앉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발람이 화가 나서 말을 때리니까 말이 갑자기 말을 합니다. “왜 나를 세 번이나 때리느냐?” “너가 나를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때린다.” “내가 언제 평생을 당신이 타고 다녔는데 불순종한 적이 있더냐” 그런데 하나님이 눈을 뜨게 하시니까 이 발람이 보니까 천사가 칼을 들고 골목길에 서 있습니다. 만일 말이 그렇게 하지 않고 바로 걸어갔더라면 그는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고 불순종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람이 “내가 범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노하실 줄 몰랐으니 내가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내친김에 가거라.” 그래서 그는 가서 이제 이스라엘을 저주해 보려고 합니다. 거듭거듭 그는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첫 번째 그는 발락왕과 그 신하들과 함께 바알산당에 올라가서 일곱단을 쌓고 숫송아지 일곱, 숫양 일곱을 준비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저 멀리서 바라보고 저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신이 임하여서 저주대신에 축복을 하고 말았습니다. 민수기 23장 7절로 12절에 "발람이 노래를 지어 가로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편 산에서 데려 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처 할 것이라 그를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 이스라엘 사분지 일을 뉘 능히 계수할꼬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 하매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 하라고 그대를 데려 왔거늘 그대가 온전히 축복하였도다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저주하라고 데려오니까 온전히 축복하고 말았습니다. 이 말씀에 놀라운 말이 있잖습니까?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는 백성을 내가 어찌 저주하며 하나님이 축복한 백성을 어떻게 내가 저주하겠느냐? 그쯤 되었으면 그냥 돌아가야 되요. 그런데 그는 발락왕에게 말하기를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다른 편에서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그곳에 또한 제단을 세워 가지고 일곱단을 쌓고 숫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준비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장소가 달라지면 하나님 마음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장소를 바꾼다고 달라지겠습니까? 그곳에 가서도 하나님은 온전히 성령으로 임하셔서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모압왕 발락이 손바닥을 치면서 “내가 저주하라고 불렀는데 또 축복했다. 또 축복했어.” 그러니까 세 번째, 이 발람이 하나님을 시험해 봅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요번엔 부울산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또다시 일곱단을 쌓고 숫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준비해서 재물을 드리고 기다리는데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셔서 이제는 전에 보다 더 놀랍게 축복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 발람이 하나님을 한번 시험하고 두 번 시험하고 세 번 시험해도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로 나중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 올 때 이방 선지자 발람은 이스라엘의 칼날에 맞아 죽었습니다.
여러분! 탐욕 때문에 하나님이 안된다는 것을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어 보려고 거듭거듭 애를 쓴 대표적인 타락한 선지자가 바로 발람인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
셋째로, 오늘 예수님을 시험한 우리 마귀를 한번 보십시다.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그 근본적인 세력은 마귀입니다. 예수님께서 40주야를 금식하신 후에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가 말하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 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것은 시험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분명하게 하나님께로부터 지시를 받아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해 보라 정말 하나님이 너를 아들로 만들었으면 돌덩이도 떡을 만들 수 있지 않느냐? 시험해 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험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마귀의 입을 막아 버렸습니다.
마귀는 또다시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워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순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네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닐 수도 있다. 네가 진짜 하나님 아닐 수도 있다. 아들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기 위해서 한번 높은 뾰죡한 탑에서 뛰어 내려 보라. 하나님이 사자를 명하사 너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해주시면 네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일 것이다. 하나님 한번 시험해 보라. 예수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시기를 “기록하였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세 번째 마귀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이면서 말하기를 “너가 내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인데 내게 절하는 자에게 주겠다” 하실 때 예수님이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은 오직 섬기고 경배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분명히 들으셨습니다.
마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시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험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마귀는 자꾸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했습니다.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 시험하면 그 결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하나님의 아들됨이 참인지 거짓인지 시험해 보라고 하는 원수 마귀는 악한 마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한결같이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시험을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과연 살아 계시는지 시험해 보자. 하나님이 과연 응답해 주시는지 시험해 보자. 그것은 하나님을 희롱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양천대교구 장미경 성도가 간증한 것을 보면, 결혼한지 일년이 훨씬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검사해 본 결과, 불임이 진단되었습니다. 무배란 월경과 왼쪽 나팔관이 막혀 아이를 가질수 없다고 병원에서 말을 하므로 부부간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호르몬 치료, 한약, 침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어서 포기를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심적 부담과 고통이 너무 컸습니다. 미지근한 신앙을 회개하고 기도로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성경 말씀을 읽고 그러면 결혼했는데 하나님이 반드시 자녀를 선물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말씀을 통해서 마음속에 생겨나자 마음에 안정과 평안을 얻었습니다. 교회에서 설교 말씀을 듣고 소망을 가지고 응답받기 위해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새벽기도, 교회예배, 셀모임, 성경도 통독하기 시작하고 주님이여 자식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원에 들어가서 2주일간 집중기도할 때 성령세례도 받고 방언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몸이 약한 곳 먼저 치료하신 후에 자녀를 주신다는 그러한 마음에 고요하고 잠잠한 음성과 확신을 받았는데 그 말씀대로 약한 방광과 위, 자궁염증까지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8년째 되는 작년 첫주일 3부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제가 그렇게 말하더랍니다. “오늘 불임이 든 자매님이 잉태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그 순간에 믿음이 들어와서 “할렐루야! 내가 응답을 받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서 그 다음 입덧이 생기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한 결과에 임신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밤 0시 기도를 하며 아이낳기 몇주전 성경을 두 번 완독했습니다. 8년만에 건강한 딸을 낳아 지금 잘 키우고 있습니다. 사람으론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할 수 있는데 이분이 8년동안 부부간에 하나님을 시험치 아니하고 한결같은 믿음으로 주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세 번씩 8년동안 간절히 자녀 줄 것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 앞의 태도는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버티고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 믿음데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럼 어떤 행동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재차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마귀가 자꾸 재촉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성수주일을 한번 시험해 보라. 주일 안가도 되지 않느냐?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예배봐도 되고, 또 우리 가족들끼리 모여서 그저 가정예배 보면 되지 뭘 주일날 꼭 교회에 나가야 되느냐? 이사야 56장 2절에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큰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교회갈 것 있느냐? 굳이 이날을 지킬것이 무었이냐? 그러므로 어디 하나님을 시험해 보자. 우리 가정제단 쌓고 적당히 주일을 놀고 지내자. 그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반드시 신앙 잃어버리고 나중에 낭패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를 시험해 봅니다.
“십일조 안내도 뭐 일본 사람들은 잘살던데 뭐 우리가 꼭 십일조 내야 되느냐?” 요사이 일본이 경제적으로 파탄에 이른 것은 확실하잖아요. 그러나 십일조 안내는 사람이 잘살고 못살고 그것을 비교하면 안됩니다. 십일조는 반드시 물질적인 관계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내가 인생을 함께 산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예수님 안 믿는 사람이어야 하나님 계신 것을 믿지도 아니하고 인정도 아니하고 하나님과 함께 안 사니까 하나님을 공경하지 못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십일조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하나의 방편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십일조를 안내고도 예수를 잘 믿을 수 있고, 십일조 안내고도 축복 받을수 있으니까 어디 한번 시험해 보자. 한번 안내보고 견뎌보자. 마귀가 시험해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거 굉장히 시험을 당합니다. 십일조 나중에 안내고 난 다음에 그건 꼭 물질적인 시험이 아닙니다. 영적인 시험이 다가오고, 신앙이 떨어지고 가정적인 풍파가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음란과 세속의 삶을 시험해 보자. 우리 예수 믿는다고 해서 뭐 오직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거룩하게 살 것이 뭐냐, 이 세상이 세속과 방종으로 꽉 들어 차니까 뭐 적당히 예수 믿으면서도 음란하고 세속적인 삶을 한번 살아보자 하나님이 과연 징계를 내릴지 아닐지 보자. 시험해 보자. 오늘날 그런 성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교회에는 그냥 왔다 갔다 하면서 세상과 취해 살면서 한번 살아보자. 과연 하나님이 진노할 것인가? 고린도전서 3장 16절로 17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디모데후서 2장 21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믿고 순종하고 사는 것이 헛되다. 세상에 취하여 부정부패를 같이 하고 음란방탕으로 사는 것이 지혜롭다. 이렇게 하나님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왜 하나님을 시험치 말아야 하는가?
넷째로, 왜 하나님을 시험치 말아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진실함을 의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치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면 하나님이 이 말하고도 또 변화되어서 다른 말을 하실지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시험해 보자. 하나님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기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시편 33편 4절에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고 말했습니다.
민수기 14장 22절로 23절에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치 말아야 됩니다.
또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어 보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달라질 수 있을는지 자꾸 시험해 봅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변역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면 탐욕으로 말씀을 대적합니다. 욕심이 생기니까 하나님을 자꾸 시험해서 변경시킬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내 욕심의 도구와 수단으로 삼으려고 하는 발람 선지자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나님이 일단 말씀하셨으면 말씀에 서야지 욕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바꿀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또 하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그 근본이 마귀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마귀의 궤궤에 빠져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께 심판당하고 하나님 진노를 받도록 유도를 하기 위해서 자꾸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9절로 11절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적당히 세상과 타협해서 살아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보자. 하나님 말씀은 안된다고 하지만 우리 실제로 그런지 안그런지 한번 시험해 보자. 이것은 하나님의 채찍과 심판을 유도하려는 마귀의 궤궤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너희중에 이와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종종, 쉽게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합니다. 착하고 진실하여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기 보다는 항상 자기의 탐욕과 정욕에 이끌려 하나님을 의심하고 자기 뜻대로 하나님을 이끌려고 시도합니다. 그 때문에 우리의 삶에 많은 슬픔과 고통이 다가옵니다. 왜냐! 하나님을 시험하려다가 오히려 시험에 빠져서 하나님의 채찍과 진노를 당하여서 고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감히 전지전능, 무소부지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을 불완전하기 짝이없는 인간이 시험해 보려고 하는 그러한 황당무계한 짓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성경에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뭐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인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것이란 것은 참이요, 진리요, 절대로 시험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도 진실이요, 참이요, 시험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믿는자는 영생에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벌에 지옥불에 떨어진다는 것도 참이요, 시험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진실하고 참된 진리의 말씀이므로 그를 시험의 대상으로 삼고 시험해 볼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한 믿음으로 믿지 않고 시험해 보고 하나님을 시험해 보고 오히려 스스로 시험에 빠져서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있고 겪은 체험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죄가 있으면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순전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음위에 서게 도와 주시옵소서. 의심하지 말고 믿음위에 서서 믿음과 순종의 생활을 하게 도와주옵시고 하나님을 광야에서 열 번이나 시험하다가 버림을 받고 멸망 받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되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농부가 소를 사면 소가 밭을 잘 가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시험해 봅니다. 목동이 말을 사면 그 말이 잘 달리고 순응하는지 않는지 시험해 봅니다. 오늘날 우리 생활에 편리를 주는 여러 가지 기계나 기구를 살 때도 잘 작동을 하는지 우리는 시험을 해보고 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조차도 취직을 하려면 시험을 치게 됩니다. 시험의 목적은 성품이나 능력이나 기능이 좋은지 나쁜지를 알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을 시험해 볼 수 있을까요? 정말로 천부당 만부당한 소리인 것입니다. 피조물이 인간이 불완전한 인간이 창조주시오, 완전하신 하나님을 시험한다니 너무나 황당하고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에게 시험을 당치 않으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9절에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종종 불완전하고 무능력하고 무식함에도 불구하고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시며 완전하신 하나님을 시험해 보려고 황당한 짓을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1.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이스라엘 백성들
첫째로, 우리 성경에 보면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에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멸망을 받고 말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들어온 이후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며 얼마나 장엄합니까? 그 창일한 홍해수와 모세의 지팡이 하나를 통해서 갈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육지같이 홍해를 건너는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과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스루광야에 들어가서 사흘길을 걸어가도 물이 없어 목이 말라죽을 때 연못물을 발견했으나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기도하며 하나님이 나무가지를 지시한지라 가지를 꺽어 던지니 물이 달아졌습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들은 다 목마름에서 구원함을 받을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광야를 300만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을 먹고 지납니까? 그러나 농사짓지 아니하고 추수하지 아니해도 하나님께서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매일같이 하늘양식인 만나를 보내 주셔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이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기적입니다. 사람이 하늘양식을 먹고 살은 것입니다. 또 그들이 고기가 필요할 때는 하나님이 메추라기를 보내셔서 코에서 메추라기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을 때까지 먹을만한 메추라기를 잡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에 관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무지하거나 의심할수 있는 처지가 못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체험하고 그 안에서 살았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출애굽기 17장 7절에 보면 맛사에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성경 출애굽기 17장 7절에는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그들이 므리바에 왔을때 물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황막한 광야요, 바위투성이고 그 백성들은 물이 없어 갈하고 짐승들도 물을 마시지 못해서 비틀비틀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모여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주실 것을 능히 알고 믿어야 했었습니다. 너무나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많이 체험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시험했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지 우리 한번 시험해 보자. 하나님께서 메마른 땅에서 물을 나게 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 시험해 보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달라 들었을 때 얼마나 마음에 괴심하게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시험을 당하신 하나님은 물은 주셨으되 그 대신 아말렉의 공격으로 벌을 하셨습니다. 그들이 물을 마시고 난 다음에 곧장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침공해 들어와서 그들은 생존이 위협받는 무시무시한 시험을 당하고 벌을 받은 것이 성경에 기록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면 반드시 하나님께 꾸중을 듣고 채찍을 맞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민수가 21장 4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또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그래서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원망 불평을 하면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싫어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이번에 불평할때도 과연 노하실까 어디 한번 해보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떨면서 그들이 불평과 원망을 하지 말아야 되겠는데 어디 이번에도 하나님이 불평을 하면 우리에게 진노하시는가 한번 시험해 보자. 그래서 그들은 말하기를 “광야에서 우리 죽겠다. 식물도, 물도 없다. 만나도 싫다. 모세야 왜 우리를 광야로 데려와서 이 고생을 시키느냐”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시험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선 불뱀을 보내셨습니다. 불뱀이 이스라엘 백성을 물매 수없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해 보고 난 다음에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모세에게 나와서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한 죄를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명하시사 불뱀을 놋으로 만들어서 나무에 매달아 그를 쳐다보는 자마다 고침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서 나무에 매달아 높이 세워 놓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바라볼 때 독에서 해방되고 살아났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고도 무사히 통과될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시험을 당하시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푸시기는 하지만 반드시 대가를 받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시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너무나 위대하시고 전지전능, 무소부재 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이 너무나 무지막지하고 불완전하고 형편없는 우리가 시험대에 앉아서 하나님을 시험받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말 불경한 짓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시험한 이방 선지자 발람
둘째로, 우리가 성경에 보면은 이방 선지자 발람이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종국적으로 멸망을 받은 사실을 볼수 있습니다. 모압왕 발락이 전진해 오는 이스라엘을 막기 위해서 이방 선지자 발람을 청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에 있는 선지자, 유대인이 아니면서 야웨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 예언한 사람이 발람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발람이 축복하면 축복을 받고 저주하면 저주를 받으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서 오는 중에 모압땅을 통하게 되었는데 모압왕 발락이 두려워해서 선지자 발람을 청해서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이기도록 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압왕 발락이 보낸 사자들이 발람의 집에 도착했을 때 집에 머물게 하고 발람이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민수기 22장 12절에 보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밤에 말씀하기를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들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가지도 말고 저주도 말라. 그 백성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발락이 보낸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못가라신다. 그러므로 발락왕이 그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준다해도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갈수 없다.” 이 사자들이 돌아가서 모압왕 발락에게 이 사실을 말하매 발락왕이 더 높은 귀족들을 대표단을 만들어서 또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발람이 한번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했으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 것을 알았은즉 그대로 알고 돌려보내야 되는데 이 밤에 우리 집에 머무소서. 하나님이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내가 또 한번 기도해 보겠습니다. 왜! 선지자 발람은 모압왕 발락이 초청을 해서 상급을 많이 주겠다 하니까 욕심이 생기고 탐심이 생겨서 하나님을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의 마음이 달라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민수기 22장 19절로 20절에 보면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하나님! 왜 일구이언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발람이 시험하기 때문에 하나님 발람을 멸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시험을 하는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벌하는데 하나님이 분명히 저주하지도 말고 가지고 말라 내가 그 백성은 축복한 백성이라 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음에 더 큰 약속과 더 큰 선물을 주겠다고 오라는 초청을 받자 또다시 그들은 그 귀족들을 머물게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하나님 마음이 달라진지 안달라진지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왜냐! 가는길에 발람을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아~ 발람이 기분이 좋아서 말을 타고 종자를 데리고 그 사자들과 함께 걸어가는데 아 갑자기 말이 길에서 밭으로 뛰어 들거든 그래서 말을 때렸습니다. 때려서 길로 오니까 길 옆에 있는 담에 막 기대어서 타고 있는 발람의 다리를 상하게 했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서 지팡이로 말을 때리니까 말이 이제는 가지 않고 꿇어앉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발람이 화가 나서 말을 때리니까 말이 갑자기 말을 합니다. “왜 나를 세 번이나 때리느냐?” “너가 나를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때린다.” “내가 언제 평생을 당신이 타고 다녔는데 불순종한 적이 있더냐” 그런데 하나님이 눈을 뜨게 하시니까 이 발람이 보니까 천사가 칼을 들고 골목길에 서 있습니다. 만일 말이 그렇게 하지 않고 바로 걸어갔더라면 그는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고 불순종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람이 “내가 범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노하실 줄 몰랐으니 내가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내친김에 가거라.” 그래서 그는 가서 이제 이스라엘을 저주해 보려고 합니다. 거듭거듭 그는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첫 번째 그는 발락왕과 그 신하들과 함께 바알산당에 올라가서 일곱단을 쌓고 숫송아지 일곱, 숫양 일곱을 준비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저 멀리서 바라보고 저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신이 임하여서 저주대신에 축복을 하고 말았습니다. 민수기 23장 7절로 12절에 "발람이 노래를 지어 가로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편 산에서 데려 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처 할 것이라 그를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 이스라엘 사분지 일을 뉘 능히 계수할꼬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 하매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 하라고 그대를 데려 왔거늘 그대가 온전히 축복하였도다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저주하라고 데려오니까 온전히 축복하고 말았습니다. 이 말씀에 놀라운 말이 있잖습니까?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는 백성을 내가 어찌 저주하며 하나님이 축복한 백성을 어떻게 내가 저주하겠느냐? 그쯤 되었으면 그냥 돌아가야 되요. 그런데 그는 발락왕에게 말하기를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다른 편에서 이스라엘을 바라보면서 그곳에 또한 제단을 세워 가지고 일곱단을 쌓고 숫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준비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장소가 달라지면 하나님 마음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장소를 바꾼다고 달라지겠습니까? 그곳에 가서도 하나님은 온전히 성령으로 임하셔서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모압왕 발락이 손바닥을 치면서 “내가 저주하라고 불렀는데 또 축복했다. 또 축복했어.” 그러니까 세 번째, 이 발람이 하나님을 시험해 봅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요번엔 부울산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또다시 일곱단을 쌓고 숫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준비해서 재물을 드리고 기다리는데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셔서 이제는 전에 보다 더 놀랍게 축복해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 발람이 하나님을 한번 시험하고 두 번 시험하고 세 번 시험해도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로 나중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 올 때 이방 선지자 발람은 이스라엘의 칼날에 맞아 죽었습니다.
여러분! 탐욕 때문에 하나님이 안된다는 것을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어 보려고 거듭거듭 애를 쓴 대표적인 타락한 선지자가 바로 발람인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
셋째로, 오늘 예수님을 시험한 우리 마귀를 한번 보십시다.
바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그 근본적인 세력은 마귀입니다. 예수님께서 40주야를 금식하신 후에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가 말하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 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것은 시험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분명하게 하나님께로부터 지시를 받아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해 보라 정말 하나님이 너를 아들로 만들었으면 돌덩이도 떡을 만들 수 있지 않느냐? 시험해 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험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마귀의 입을 막아 버렸습니다.
마귀는 또다시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워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순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네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냐? 아닐 수도 있다. 네가 진짜 하나님 아닐 수도 있다. 아들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기 위해서 한번 높은 뾰죡한 탑에서 뛰어 내려 보라. 하나님이 사자를 명하사 너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해주시면 네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일 것이다. 하나님 한번 시험해 보라. 예수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시기를 “기록하였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세 번째 마귀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이면서 말하기를 “너가 내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인데 내게 절하는 자에게 주겠다” 하실 때 예수님이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은 오직 섬기고 경배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분명히 들으셨습니다.
마태복음 3장 16절로 17절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시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험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마귀는 자꾸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했습니다.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 시험하면 그 결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하나님의 아들됨이 참인지 거짓인지 시험해 보라고 하는 원수 마귀는 악한 마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성하든지, 쇠하든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한결같이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시험을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과연 살아 계시는지 시험해 보자. 하나님이 과연 응답해 주시는지 시험해 보자. 그것은 하나님을 희롱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양천대교구 장미경 성도가 간증한 것을 보면, 결혼한지 일년이 훨씬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검사해 본 결과, 불임이 진단되었습니다. 무배란 월경과 왼쪽 나팔관이 막혀 아이를 가질수 없다고 병원에서 말을 하므로 부부간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호르몬 치료, 한약, 침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어서 포기를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심적 부담과 고통이 너무 컸습니다. 미지근한 신앙을 회개하고 기도로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성경 말씀을 읽고 그러면 결혼했는데 하나님이 반드시 자녀를 선물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말씀을 통해서 마음속에 생겨나자 마음에 안정과 평안을 얻었습니다. 교회에서 설교 말씀을 듣고 소망을 가지고 응답받기 위해 다니엘처럼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새벽기도, 교회예배, 셀모임, 성경도 통독하기 시작하고 주님이여 자식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원에 들어가서 2주일간 집중기도할 때 성령세례도 받고 방언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몸이 약한 곳 먼저 치료하신 후에 자녀를 주신다는 그러한 마음에 고요하고 잠잠한 음성과 확신을 받았는데 그 말씀대로 약한 방광과 위, 자궁염증까지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8년째 되는 작년 첫주일 3부예배 신유기도 시간에 제가 그렇게 말하더랍니다. “오늘 불임이 든 자매님이 잉태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그 순간에 믿음이 들어와서 “할렐루야! 내가 응답을 받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서 그 다음 입덧이 생기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한 결과에 임신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밤 0시 기도를 하며 아이낳기 몇주전 성경을 두 번 완독했습니다. 8년만에 건강한 딸을 낳아 지금 잘 키우고 있습니다. 사람으론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할 수 있는데 이분이 8년동안 부부간에 하나님을 시험치 아니하고 한결같은 믿음으로 주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세 번씩 8년동안 간절히 자녀 줄 것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 앞의 태도는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버티고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 믿음데로 될찌어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럼 어떤 행동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재차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마귀가 자꾸 재촉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성수주일을 한번 시험해 보라. 주일 안가도 되지 않느냐?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예배봐도 되고, 또 우리 가족들끼리 모여서 그저 가정예배 보면 되지 뭘 주일날 꼭 교회에 나가야 되느냐? 이사야 56장 2절에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큰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교회갈 것 있느냐? 굳이 이날을 지킬것이 무었이냐? 그러므로 어디 하나님을 시험해 보자. 우리 가정제단 쌓고 적당히 주일을 놀고 지내자. 그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시험해 보는 것입니다. 반드시 신앙 잃어버리고 나중에 낭패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를 시험해 봅니다.
“십일조 안내도 뭐 일본 사람들은 잘살던데 뭐 우리가 꼭 십일조 내야 되느냐?” 요사이 일본이 경제적으로 파탄에 이른 것은 확실하잖아요. 그러나 십일조 안내는 사람이 잘살고 못살고 그것을 비교하면 안됩니다. 십일조는 반드시 물질적인 관계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내가 인생을 함께 산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예수님 안 믿는 사람이어야 하나님 계신 것을 믿지도 아니하고 인정도 아니하고 하나님과 함께 안 사니까 하나님을 공경하지 못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십일조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하나의 방편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십일조를 안내고도 예수를 잘 믿을 수 있고, 십일조 안내고도 축복 받을수 있으니까 어디 한번 시험해 보자. 한번 안내보고 견뎌보자. 마귀가 시험해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거 굉장히 시험을 당합니다. 십일조 나중에 안내고 난 다음에 그건 꼭 물질적인 시험이 아닙니다. 영적인 시험이 다가오고, 신앙이 떨어지고 가정적인 풍파가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음란과 세속의 삶을 시험해 보자. 우리 예수 믿는다고 해서 뭐 오직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거룩하게 살 것이 뭐냐, 이 세상이 세속과 방종으로 꽉 들어 차니까 뭐 적당히 예수 믿으면서도 음란하고 세속적인 삶을 한번 살아보자 하나님이 과연 징계를 내릴지 아닐지 보자. 시험해 보자. 오늘날 그런 성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교회에는 그냥 왔다 갔다 하면서 세상과 취해 살면서 한번 살아보자. 과연 하나님이 진노할 것인가? 고린도전서 3장 16절로 17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디모데후서 2장 21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믿고 순종하고 사는 것이 헛되다. 세상에 취하여 부정부패를 같이 하고 음란방탕으로 사는 것이 지혜롭다. 이렇게 하나님을 시험해 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왜 하나님을 시험치 말아야 하는가?
넷째로, 왜 하나님을 시험치 말아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진실함을 의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치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면 하나님이 이 말하고도 또 변화되어서 다른 말을 하실지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시험해 보자. 하나님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기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시편 33편 4절에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고 말했습니다.
민수기 14장 22절로 23절에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치 말아야 됩니다.
또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어 보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달라질 수 있을는지 자꾸 시험해 봅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변역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면 탐욕으로 말씀을 대적합니다. 욕심이 생기니까 하나님을 자꾸 시험해서 변경시킬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내 욕심의 도구와 수단으로 삼으려고 하는 발람 선지자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나님이 일단 말씀하셨으면 말씀에 서야지 욕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바꿀려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또 하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그 근본이 마귀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마귀의 궤궤에 빠져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께 심판당하고 하나님 진노를 받도록 유도를 하기 위해서 자꾸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9절로 11절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적당히 세상과 타협해서 살아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보자. 하나님 말씀은 안된다고 하지만 우리 실제로 그런지 안그런지 한번 시험해 보자. 이것은 하나님의 채찍과 심판을 유도하려는 마귀의 궤궤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너희중에 이와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종종, 쉽게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합니다. 착하고 진실하여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기 보다는 항상 자기의 탐욕과 정욕에 이끌려 하나님을 의심하고 자기 뜻대로 하나님을 이끌려고 시도합니다. 그 때문에 우리의 삶에 많은 슬픔과 고통이 다가옵니다. 왜냐! 하나님을 시험하려다가 오히려 시험에 빠져서 하나님의 채찍과 진노를 당하여서 고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감히 전지전능, 무소부지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을 불완전하기 짝이없는 인간이 시험해 보려고 하는 그러한 황당무계한 짓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성경에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뭐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인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것이란 것은 참이요, 진리요, 절대로 시험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도 진실이요, 참이요, 시험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믿는자는 영생에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벌에 지옥불에 떨어진다는 것도 참이요, 시험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진실하고 참된 진리의 말씀이므로 그를 시험의 대상으로 삼고 시험해 볼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한 믿음으로 믿지 않고 시험해 보고 하나님을 시험해 보고 오히려 스스로 시험에 빠져서 수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있고 겪은 체험이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은혜를 죄가 있으면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순전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음위에 서게 도와 주시옵소서. 의심하지 말고 믿음위에 서서 믿음과 순종의 생활을 하게 도와주옵시고 하나님을 광야에서 열 번이나 시험하다가 버림을 받고 멸망 받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되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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