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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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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조용기 목사 |
참고 : | 2002년 6월 16일 주일설교 |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예절』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예절은 인간관계를 원만히 맺어가는 필수조건입니다. 부부간에도 예절이 있어야 되고, 부모 자식간에도 예절이 있어야 됩니다. 형제간의 예절, 스승과 제자, 친구 등등, 사회의 모든 인간관계는 합당한 예절로 원만하게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과 인간관계에는 말할 필요조차 없이 엄격한 예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예절을 범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빠지거나 단절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예절을 지켜야만 할까요?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가져야될 제일 첫째의 예절이요, 덕목인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데서 그 타락한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시고 너무나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밀히 해주시고 사랑해 주시니 그만 하나님을 얕잡아 보았습니다. 이것이 큰 죄였습니다. 하나님의 지엄하신 명령을 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희롱과 논쟁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마귀가 와서 “정말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 그러니까 하와가 하는 말은 “모든 실과를 다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는 먹지 말라. 죽을까 하노라.” 하나님이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지 어디 죽을까 하노라 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중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얕잡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논쟁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결국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가 그 실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타락했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하나님 말씀 앞에 떨고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은 마음이 결국 마귀의 궤궤에 넘어지고 타락하게 만든 것입니다.
둘째 아담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논쟁거리로 삼지 않고 일의 종결로 삼았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절로 39절에 보면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모든 힘을 다 기울였습니다. 똑같이 시험을 당했으나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희롱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을 변하여 떡덩이로 만들어 먹으라"고 할 때 단호하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나님 말씀을 존중히 여겼습니다. 높은 성 뾰충탑 위에 올려놓고 “뛰어 내려라. 하나님이 천사를 명하여 너 발이 돌이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렇게 해줄 것이라”고 그럴 때 주님은 단호하게 “내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나님 말씀을 희롱과 논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온천하 만국의 영광을 다보이면서 내게 절하면 이것을 네게 주리라” 하실 때 “사탄아 물러가라. 내 하나님만 경외하고 저를 섬기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두려워했습니다.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 말씀을 중하게 여기고 희롱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가장 중대한 덕목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려 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이방인이라도 창세기 20장 1절로 12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할때 그랄왕 아비멜렉이 가만히 보니까 아브라함과 같이 있는 여인이 굉장히 아름답거든 “누구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습관대로 “내 누이동생입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습관적인 죄를 벗어나지 못해요. 바로왕에게도 자기 아내를 여동생으로 얘기해서 시집 보냈다가 겨우 살아났는데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또 그랄왕 아비멜렉 앞에서도 자기 아내 사라를 자기 여동생이라고 했습니다. 또 사라에게 “정말 오빱니까?” 하니까 “예, 우리 오빠입니다.” 그래 또 시집갔어요. 그런데 그 밤에 아비멜렉의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네가 데려온 이 여인은 아브라함의 아내라. 네가 이 여인에게 손대면 너와 네 식구는 다 죽여 버리겠다.” 너무 놀래서 아비멜렉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의로운 자도 죽이십니까? 나는 분명히 모르고 그렇게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자기 동생이라고 말하고 그 여인도 자기 오빠라고 말해서 나는 죄없이 이 여자를 취했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근본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지 않고 이 여자를 취했으므로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너를 경고한다. 그 아내를 빨리 돌려 줘라. 돌려주지 아니하면 너와 네 식구들은 다 죽을 것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서 아비멜렉이 너무 놀라 신하들을 불러서 이 말을 하니 온 신하들이 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떨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어떻게 해서 네가 이렇게 했느냐? 왜 나와 네 온 식구들을 다 죽게 만들려고 했느냐?” 그때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이 나라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죽이고 내 아내를 빼앗을까 싶어서 내가 그렇게 했다.” 여기에 보십시오.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아무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살인도 간음도 도적질도 거짓말도 무엇인지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양심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운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인간의 양심은 활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이 땅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나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을까 싶어서 그렇게 했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비멜렉과 그 식구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떨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범죄하지 않게 지켜 주셨고 살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큰 축복을 주셨는데 야곱도 역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28장 10절로 17절에 보면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도망 가다가 해가 지자 돌베개를 베고 잘 때 꿈에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고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는데 천사가 그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그 위에 보좌에 하나님이 앉아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나는 야웨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띠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했습니다.
야곱은 인본주의적인 사람이라 인간의 지혜와 수단과 방법으로 살아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지만 그러나 그 근본적인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형 에서는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앞에 떨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팔십이된 모세를 택해서 사용했을까요? 모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가 팔십이 되어 자기의 장인 이드로의 양무리를 끌고 호렙산 주위에서 양을 치다가 보니 가시떨기에 불이 붙었습니다. 보통 광야에는 메마르기 때문에 가스떨기에 불이 붙는 것은 종종 있지만은 불이 붙으나 가시떨기가 타지를 않습니다. 놀래서 구경하려고 갔을 때 하나님께서 가시떨기 가운데서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만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습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떨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귀하게 사용하시고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모세를 비방한 아론과 미리암을 보십시오. 모세가 구스여인을 취하여 아내로 삼자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향하여 비난하고 공격을 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민수기 12장 8절로 10절에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문둥병이 들었는지라"고 말했습니다. 아론과 미리암은 모세가 자기들 밑 동생이기 때문에 모세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이 사용하는 종이었습니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해서 아내로 삼은 것은 잘못한 일이었습니다. 아내를 취하려면 이스라엘 여인을 취해야지 구스여인을 취한 것은 잘못한 일이겠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사용하는 종이기 때문에 모세를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을 비방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그 아론과 미리암을 쳐서 미리암이 문둥병 환자가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대적한 아말렉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피곤하고 힘들 때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존망지추에 처했습니다. 겨우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세의 기도를 통해서 아말렉의 공격을 물리칠수 있었습니다. 신명기 25장 17절로 19절에 보면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 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 할찌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아말렉은 그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 하라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떠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을 섬기는 예절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22편 23절에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찌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찌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찌어다"라고 말했습니다. 야웨를 두려워하는 너희로... 이것이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이 해야될 마땅한 도리인 것입니다.
시편 31편 19절로 20절에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주를 두려워 하는 자를 위해서 쌓아 두신 인생, 은혜 곧 인생에 베푸신 은혜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도 존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말씀 앞에 떠는 자는 하나님은 존귀하게 여겨 주시고 하나님이 품에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예절의 제일 첫째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며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시고 섬길 때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부모를 섬기는 자녀들도 한집에 살면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그 며느리가 환영을 받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며 사는 사람들은 먼저 생각이 경건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3절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 우리들은 마땅히 우리의 생각속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한 것처럼 이러한 것은 생각에서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정결하고 경건해야 하나님을 공경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에 성도다운 말을 해야 하지요. 하나님을 항상 모시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우리의 말에 성도다운 면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4절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우리가 우리의 일반생활에 더러운 농담하고 어리석은 이야기하고 희롱하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 믿는 백성으로서의 존경심을 상실하면 하나님을 곤경하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말에 소금 치듯하여 말 자체가 경건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입술의 고백인데 신앙의 향기가 그 속에 가득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은 생각이 경건해야 되고 우리말이 성도다운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은 말할 필요없이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5절로 11절에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 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을 사는 당연한 행동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이 세상에 음행하고 더러운 일하고 탐욕을 행하고 우상숭배하고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 사람들이 우릴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손가락질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꼬락선이 보라. 예수 믿는 사람이 저 짓을 한다.” 결국은 욕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께 돌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자녀들도 굉장히 그들 행동거지에 조심하고 경건하게 살아야 되는 것처럼 하물며 하나님을 모시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거룩해야 되고, 우리의 말과 삶이 공손해야 되고, 행동이 깨끗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재물로 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만 와서 입술로 주여! 주여!하고 교회 밖에 나가면 생각도 말도 행동도 세상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형식과 의식만 취하는 것이 종교가 아닙니다. 주를 믿는 사람은 주를 믿는 사람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여 하나님을 공경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의 기본적인 예절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택하시고 크게 축복해준 다윗이 하나님 공경에 실패하여 그 이후로 크나큰 시련과 환란을 당한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의 충성스러운 병사인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았습니다. 우리아를 일선에 보내서 칼에 맞아 죽게 하고 그 아내를 빼앗아서 자기 소유로 삼았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바로 그 행동은 하나님을 없신여긴 행동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무엘하 12장 9절로 12절에 보면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을 공경해야 마땅할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했는데 그 충성스러운 병사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아 간음하고 그 결과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을 때 하나님은 바로 다윗에게 말씀하기를 “너희 행동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또 나를 업신 여긴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하고는 천양지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보복을 받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택하신 내 마음에 합당한 자라는 다윗조차도 그가 하나님 말씀을 업신 여기고, 하나님을 업신여겼을 때 하나님의 보복을 받아서 그는 훗날에 큰 시련과 환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동을 결코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바로 시편 1편 1절로 2절에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지금도 살아있는 다섯 사람에게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가 하고 물었더니 그들은 모두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열심히 살았더니 대통령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단순한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고 열심히 살았더니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당선된 뒤 소원이 뭐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부모님을 더욱더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미국 역대 대통령 어머니들은 거의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려서부터 철저히 대통령이 된 아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도 어머니를 존경하고, 어머니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그들의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를 기쁘게 해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거늘 하물며 부모의 부모인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경하면 어찌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성경에는 “자녀들아 주안에서 내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에 부모를 공경해도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부모인 하나님을 공경하는데 어떻게 잘되지 않고 장수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우리가 마음속에 깊이 생각해 봐야 될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을 섬기는 예절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즐거워합니다. 사랑하는 상대를 그리워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지요. 애인을 사랑하면 애인을 그리워하고, 자식을 사랑하면 자식보기를 부모님 늘 그리워하지요. 친구를 사랑하면 친구 만나기를 그리워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즐거워합니다. 왜 교회에 나옵니까? 하나님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 교회를 사모하고 사랑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시편 73편 25절에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늘에는 주외에 누가 있고, 땅에는 주밖에 사모할자가 없다. 세상은 다 변화무쌍하지만 하나님은 변치 않고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그리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늘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랑하는 자와 멀리 떨어져 있기를 원하는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사랑 하는자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항상 전화하고 항상 편지하지 않습니까? 요새는 인터넷으로 언제나 소식을 전하고 받고 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면 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어떻게 하면 함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즉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안에 계시고 말씀이 하나님 안에 있으므로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므로 늘 하나님과 함께 있으며 또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끊임없이 기도하므로 하나님과 함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하고, 예배하고, 찬송하면 하나님이 함께 있지 않습니까?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오늘 주일 여러분이 이 자리에 와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이 자리에 와서 함께 계신 것입니다. “너희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와 이 자리에 같이 오셔서 거처를 함께 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늘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이 그 성품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만 받고 사랑하는 자에게 섬기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그것은 탐욕이요 사랑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얼마나 사랑을 통해서 자식을 섬기지 않습니까? 또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면 부모를 섬겨야 됩니다. 요사이 자식들이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 때문에 부모를 섬기지 않아요. 부모를 돌보지 않아요. 자식에게 버림받은 부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부모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사랑하면 자기를 희생하고 섬겨야 돼요.
이번에 축구경기를 통해서 우리 한국 국민들이 나라를 얼마나 사랑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재확인 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코리아, 코리아. 저는 여태까지 살아도 그런 것 처음봤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온국민 전체가 모든일을 제켜놓고 텔레비젼을 통해서 전광판을 통해서 축구를 구경했습니다. 나라사랑이 하나가 되어...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시간제켜 놓고 물질 들여서 하나로 뭉쳐서 그들은 대한민국, 대한민국하고 응원을 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 없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시간 내어서 성수주일하고 물질드려서 십일조 드리고 섬기고, 그리고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내가 수고를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를 위해서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돈벌어서 아내에게 갖다 주고 아내를 즐겁게 해주려고 하는 것이고,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면 어찌하든지 남편을 잘 섬겨서 기쁘게 하고 건강하게 하고 잘살 수 있게 할까 있는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섬기는 것이 사랑이지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탐욕이요,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섬길 때 그 마음속에 가장 큰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내어서 섬기고, 물질을 드려서 섬기고 수고를 해서 섬기면 마음에 큰 행복과 기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자랑하게 되죠.
시편 34편 2절에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랑합니다. 자식 사랑하면 자식자랑하지 않아요? 팔푼이라는 말들으면서도 자기 아내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아내를 자꾸 자랑해요. 좋아하는데 자랑하게 되지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은 일어서나 앉으나 자랑 할것이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했습니다. 우리도 일어서나 앉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될것입니다.
넷째로, 우리 하나님을 섬기는 공경하는 예절로서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냥 나가면 안돼요. 감사하면서 나가야 돼요.
시편 100편 1절로 5절에 "온 땅이여 어호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 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따라서 말씀해 주십시오. 감사하므로(감사하므로) 그문에 들어가며(그문에 들어가며) 찬송하므로(찬송하므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대저 야웨는 선하시니(대저 야웨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찬송하면 하나님 궁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감사해야 하나님 앞에 들어가는 문이 열리고, 찬양해야 하나님 궁전에 들어갑니다. 늘 울고, 짜고, 찡그린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문이 닫혀 버리고 궁전에 들어가 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그렇게 좋아합니다. 찬양하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감사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영화로움을 느낍니다. “야~ 자식 잘두었다. 내 백성 잘두었다. 내 백성 보아라.” 하나님이 영화로움을 느낍니다. 여러분 우리가 칭찬들으면 영화로움을 느끼지 않습니까?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고 영화로움을 느끼지 않습니까?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이 가만히 있을수가 없어요.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요.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13장 12절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있는 것을 감사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이 더주시고 있는 것을 가지고도 원망, 불평하면 있는 것도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감사는 언제나 우리에게 플러스 인생을 살게 하고 원망과 불평은 마이너스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항상 없는 것을 강조하고, 원망하다가 멸망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로 11절에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항상 없는 것을 보고 강조하고 원망하다가 멸망당하고 말은 것입니다. 우리는 없는 것을 찾아서 원망하지 말고 있는 것을 찾아서 감사할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찾아 감사하고 나쁜 것만 찾아 원망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감사해야 변화가 다가오지 원망, 불평하면 퇴보하고 마는 것입니다. 완전한 인생이란 이땅에 없지요. 무엇이든지 우리가 있는 것으로 자꾸 감사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이 더주시고 더주시어서 변화의 역사를 가져와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강북성전에 민기숙 집사님 간증을 보면은 작년 12월 갑자기 마른기침이 잦아졌습니다. 혹시 해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폐암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암은 이미 왼쪽 유방과 뼈속까지 다 퍼졌습니다. 더는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최악상태라며 퇴원해서 집에가서 죽을 준비를 하라고 병원에서 말했습니다. 모든 것을 원망하고 그리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다가 왔습니다. 셀원들과 교구식구들이 집에 찾아와서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자며 위로해 주고 매일 예배를 드리며 뜨겁게 기도해 주었습니다. 허약해서 금식할수 없기 때문에 집사님들이 대신 해서 성도들이 릴레이식으로 금식을 해주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병원에서 3개월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했는데 성도들의 끈질긴 기도가 계속되면서 근육에 힘이 붓기 시작하고 소망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금년 1월 강북성전 예배때 제게 안수기도를 받고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고쳐 주셨다. 나도 살수 있다는 믿음과 감사가 솟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습니다. 환경적으로 볼 때 절망인데 마음속에 믿음과 감사가 솟아올랐습니다. 그동안 온전히 하나님 섬기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살려 주시면 온전히 섬기며 이젠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하나님께 서약을 했습니다. 4월말에 죽음을 준비하라던 병원에 찾아가서 상태를 다시 검사해 줄 것을 의사에게 요청하니까 집사님이 건강하게 보여도 워낙 상태가 나빴기 때문에 의사들은 반신반의하며 검사를 해주었는데 며칠후 결과가 나왔는데 왼쪽 유방과 뼈속까지 전이되었던 암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병든것만 보면 원망, 불평하고 낙심하여 포기할 수 있었으나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감사하자.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를 갖자.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신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살아 남고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갖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주시고, 없는 것을 바라보고 원망, 불평하는 사람은 하나님은 있는 것도 다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살아 남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찬미하였으므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인격적으로나 행위로 우리보다 위대하고 나은점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고 깨어졌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많이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윗이 내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이에요. 범사에 감사하는 것. 좋을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범사란, 나쁠때도 감사할 때 잘될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잘 안될때도 감사하고 건강할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병들때도 감사, 직장이 있을때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직장을 잃어 버렸을때도 감사,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섬기는 데는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절이 있다는 것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떨고 하나님을 공경하여 우리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을 경건하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섬기고 봉사하며 감사를 많이 드려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이 근본적인 예절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 근본적인 예절을 지킬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화평해 지고 하나님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우리를 영접해 주시고 우리에게 넘치는 은총과 복을 주실 것입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말고, 형식적으로만 기독교신자가 되지 말고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예절을 지키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고 종교적인 의식과 형식을 취하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근본적인 예절에 빚나간 행동을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요사이 자녀들이 부모 앞에서 자식으로서 예절을 지키지 않으므로 많은 가정에 우환과 환란이 있는 것처럼 오늘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성하지 못하고 심판을 받고, 성도들이 축복받지 못한 것은 하나님 앞에 바르게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이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듣고 떨게 도와 주시옵시고,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공경하여 언어, 심사, 행동을 경건히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은혜를 한없이 감사드리고 사는 근본적인 예절을 지키는 예절바른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예절은 인간관계를 원만히 맺어가는 필수조건입니다. 부부간에도 예절이 있어야 되고, 부모 자식간에도 예절이 있어야 됩니다. 형제간의 예절, 스승과 제자, 친구 등등, 사회의 모든 인간관계는 합당한 예절로 원만하게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과 인간관계에는 말할 필요조차 없이 엄격한 예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예절을 범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빠지거나 단절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예절을 지켜야만 할까요?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가져야될 제일 첫째의 예절이요, 덕목인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데서 그 타락한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시고 너무나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밀히 해주시고 사랑해 주시니 그만 하나님을 얕잡아 보았습니다. 이것이 큰 죄였습니다. 하나님의 지엄하신 명령을 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희롱과 논쟁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마귀가 와서 “정말 동산에 있는 모든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 그러니까 하와가 하는 말은 “모든 실과를 다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는 먹지 말라. 죽을까 하노라.” 하나님이 반드시 죽으리라고 했지 어디 죽을까 하노라 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중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얕잡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논쟁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결국에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가 그 실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버리고 만 것입니다. 타락했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하나님 말씀 앞에 떨고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은 마음이 결국 마귀의 궤궤에 넘어지고 타락하게 만든 것입니다.
둘째 아담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논쟁거리로 삼지 않고 일의 종결로 삼았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절로 39절에 보면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존경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모든 힘을 다 기울였습니다. 똑같이 시험을 당했으나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희롱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돌을 변하여 떡덩이로 만들어 먹으라"고 할 때 단호하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나님 말씀을 존중히 여겼습니다. 높은 성 뾰충탑 위에 올려놓고 “뛰어 내려라. 하나님이 천사를 명하여 너 발이 돌이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렇게 해줄 것이라”고 그럴 때 주님은 단호하게 “내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나님 말씀을 희롱과 논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온천하 만국의 영광을 다보이면서 내게 절하면 이것을 네게 주리라” 하실 때 “사탄아 물러가라. 내 하나님만 경외하고 저를 섬기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두려워했습니다.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 말씀을 중하게 여기고 희롱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가장 중대한 덕목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려 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이방인이라도 창세기 20장 1절로 12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할때 그랄왕 아비멜렉이 가만히 보니까 아브라함과 같이 있는 여인이 굉장히 아름답거든 “누구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습관대로 “내 누이동생입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습관적인 죄를 벗어나지 못해요. 바로왕에게도 자기 아내를 여동생으로 얘기해서 시집 보냈다가 겨우 살아났는데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또 그랄왕 아비멜렉 앞에서도 자기 아내 사라를 자기 여동생이라고 했습니다. 또 사라에게 “정말 오빱니까?” 하니까 “예, 우리 오빠입니다.” 그래 또 시집갔어요. 그런데 그 밤에 아비멜렉의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네가 데려온 이 여인은 아브라함의 아내라. 네가 이 여인에게 손대면 너와 네 식구는 다 죽여 버리겠다.” 너무 놀래서 아비멜렉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의로운 자도 죽이십니까? 나는 분명히 모르고 그렇게 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자기 동생이라고 말하고 그 여인도 자기 오빠라고 말해서 나는 죄없이 이 여자를 취했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근본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지 않고 이 여자를 취했으므로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너를 경고한다. 그 아내를 빨리 돌려 줘라. 돌려주지 아니하면 너와 네 식구들은 다 죽을 것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서 아비멜렉이 너무 놀라 신하들을 불러서 이 말을 하니 온 신하들이 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떨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어떻게 해서 네가 이렇게 했느냐? 왜 나와 네 온 식구들을 다 죽게 만들려고 했느냐?” 그때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이 나라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죽이고 내 아내를 빼앗을까 싶어서 내가 그렇게 했다.” 여기에 보십시오.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아무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살인도 간음도 도적질도 거짓말도 무엇인지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양심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운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인간의 양심은 활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이 땅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나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을까 싶어서 그렇게 했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비멜렉과 그 식구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떨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범죄하지 않게 지켜 주셨고 살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큰 축복을 주셨는데 야곱도 역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28장 10절로 17절에 보면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도망 가다가 해가 지자 돌베개를 베고 잘 때 꿈에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고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는데 천사가 그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그 위에 보좌에 하나님이 앉아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나는 야웨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띠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했습니다.
야곱은 인본주의적인 사람이라 인간의 지혜와 수단과 방법으로 살아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지만 그러나 그 근본적인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형 에서는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앞에 떨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팔십이된 모세를 택해서 사용했을까요? 모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가 팔십이 되어 자기의 장인 이드로의 양무리를 끌고 호렙산 주위에서 양을 치다가 보니 가시떨기에 불이 붙었습니다. 보통 광야에는 메마르기 때문에 가스떨기에 불이 붙는 것은 종종 있지만은 불이 붙으나 가시떨기가 타지를 않습니다. 놀래서 구경하려고 갔을 때 하나님께서 가시떨기 가운데서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만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습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떨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귀하게 사용하시고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모세를 비방한 아론과 미리암을 보십시오. 모세가 구스여인을 취하여 아내로 삼자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향하여 비난하고 공격을 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민수기 12장 8절로 10절에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문둥병이 들었는지라"고 말했습니다. 아론과 미리암은 모세가 자기들 밑 동생이기 때문에 모세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이 사용하는 종이었습니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해서 아내로 삼은 것은 잘못한 일이었습니다. 아내를 취하려면 이스라엘 여인을 취해야지 구스여인을 취한 것은 잘못한 일이겠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사용하는 종이기 때문에 모세를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을 비방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그 아론과 미리암을 쳐서 미리암이 문둥병 환자가 되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대적한 아말렉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피곤하고 힘들 때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존망지추에 처했습니다. 겨우 하나님의 도움으로 모세의 기도를 통해서 아말렉의 공격을 물리칠수 있었습니다. 신명기 25장 17절로 19절에 보면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 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기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사면에 있는 모든 대적을 벗어나게 하시고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 할찌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아말렉은 그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 하라고 말했었습니다.
하나님을 참되게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떠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을 섬기는 예절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22편 23절에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찌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찌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찌어다"라고 말했습니다. 야웨를 두려워하는 너희로... 이것이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이 해야될 마땅한 도리인 것입니다.
시편 31편 19절로 20절에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주를 두려워 하는 자를 위해서 쌓아 두신 인생, 은혜 곧 인생에 베푸신 은혜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도 존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말씀 앞에 떠는 자는 하나님은 존귀하게 여겨 주시고 하나님이 품에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예절의 제일 첫째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며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시고 섬길 때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부모를 섬기는 자녀들도 한집에 살면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그 며느리가 환영을 받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며 사는 사람들은 먼저 생각이 경건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3절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 우리들은 마땅히 우리의 생각속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한 것처럼 이러한 것은 생각에서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정결하고 경건해야 하나님을 공경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에 성도다운 말을 해야 하지요. 하나님을 항상 모시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우리의 말에 성도다운 면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4절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우리가 우리의 일반생활에 더러운 농담하고 어리석은 이야기하고 희롱하고 그렇게 해서 하나님 믿는 백성으로서의 존경심을 상실하면 하나님을 곤경하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말에 소금 치듯하여 말 자체가 경건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입술의 고백인데 신앙의 향기가 그 속에 가득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은 생각이 경건해야 되고 우리말이 성도다운 말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은 말할 필요없이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5절로 11절에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 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을 사는 당연한 행동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이 세상에 음행하고 더러운 일하고 탐욕을 행하고 우상숭배하고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 사람들이 우릴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하나님께 손가락질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꼬락선이 보라. 예수 믿는 사람이 저 짓을 한다.” 결국은 욕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께 돌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고 사는 자녀들도 굉장히 그들 행동거지에 조심하고 경건하게 살아야 되는 것처럼 하물며 하나님을 모시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해서는 생각이 거룩해야 되고, 우리의 말과 삶이 공손해야 되고, 행동이 깨끗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재물로 드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만 와서 입술로 주여! 주여!하고 교회 밖에 나가면 생각도 말도 행동도 세상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종교라는 것은 형식과 의식만 취하는 것이 종교가 아닙니다. 주를 믿는 사람은 주를 믿는 사람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여 하나님을 공경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의 기본적인 예절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택하시고 크게 축복해준 다윗이 하나님 공경에 실패하여 그 이후로 크나큰 시련과 환란을 당한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의 충성스러운 병사인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았습니다. 우리아를 일선에 보내서 칼에 맞아 죽게 하고 그 아내를 빼앗아서 자기 소유로 삼았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바로 그 행동은 하나님을 없신여긴 행동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무엘하 12장 9절로 12절에 보면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을 공경해야 마땅할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했는데 그 충성스러운 병사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아 간음하고 그 결과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을 때 하나님은 바로 다윗에게 말씀하기를 “너희 행동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또 나를 업신 여긴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하고는 천양지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보복을 받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택하신 내 마음에 합당한 자라는 다윗조차도 그가 하나님 말씀을 업신 여기고, 하나님을 업신여겼을 때 하나님의 보복을 받아서 그는 훗날에 큰 시련과 환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동을 결코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바로 시편 1편 1절로 2절에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지금도 살아있는 다섯 사람에게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가 하고 물었더니 그들은 모두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열심히 살았더니 대통령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주 단순한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고 열심히 살았더니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당선된 뒤 소원이 뭐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부모님을 더욱더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미국 역대 대통령 어머니들은 거의 독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려서부터 철저히 대통령이 된 아들에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도 어머니를 존경하고, 어머니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그들의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를 기쁘게 해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거늘 하물며 부모의 부모인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경하면 어찌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성경에는 “자녀들아 주안에서 내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상에 부모를 공경해도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부모인 하나님을 공경하는데 어떻게 잘되지 않고 장수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우리가 마음속에 깊이 생각해 봐야 될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나님을 섬기는 예절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즐거워합니다. 사랑하는 상대를 그리워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지요. 애인을 사랑하면 애인을 그리워하고, 자식을 사랑하면 자식보기를 부모님 늘 그리워하지요. 친구를 사랑하면 친구 만나기를 그리워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즐거워합니다. 왜 교회에 나옵니까? 하나님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 교회를 사모하고 사랑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시편 73편 25절에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늘에는 주외에 누가 있고, 땅에는 주밖에 사모할자가 없다. 세상은 다 변화무쌍하지만 하나님은 변치 않고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그리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늘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랑하는 자와 멀리 떨어져 있기를 원하는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사랑 하는자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항상 전화하고 항상 편지하지 않습니까? 요새는 인터넷으로 언제나 소식을 전하고 받고 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면 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어떻게 하면 함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즉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안에 계시고 말씀이 하나님 안에 있으므로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므로 늘 하나님과 함께 있으며 또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끊임없이 기도하므로 하나님과 함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하고, 예배하고, 찬송하면 하나님이 함께 있지 않습니까?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오늘 주일 여러분이 이 자리에 와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이 자리에 와서 함께 계신 것입니다. “너희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와 이 자리에 같이 오셔서 거처를 함께 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늘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이 그 성품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만 받고 사랑하는 자에게 섬기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그것은 탐욕이요 사랑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얼마나 사랑을 통해서 자식을 섬기지 않습니까? 또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면 부모를 섬겨야 됩니다. 요사이 자식들이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 때문에 부모를 섬기지 않아요. 부모를 돌보지 않아요. 자식에게 버림받은 부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것은 부모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사랑하면 자기를 희생하고 섬겨야 돼요.
이번에 축구경기를 통해서 우리 한국 국민들이 나라를 얼마나 사랑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재확인 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코리아, 코리아. 저는 여태까지 살아도 그런 것 처음봤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온국민 전체가 모든일을 제켜놓고 텔레비젼을 통해서 전광판을 통해서 축구를 구경했습니다. 나라사랑이 하나가 되어...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시간제켜 놓고 물질 들여서 하나로 뭉쳐서 그들은 대한민국, 대한민국하고 응원을 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 없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시간 내어서 성수주일하고 물질드려서 십일조 드리고 섬기고, 그리고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내가 수고를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를 위해서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돈벌어서 아내에게 갖다 주고 아내를 즐겁게 해주려고 하는 것이고,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면 어찌하든지 남편을 잘 섬겨서 기쁘게 하고 건강하게 하고 잘살 수 있게 할까 있는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섬기는 것이 사랑이지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탐욕이요,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섬길 때 그 마음속에 가장 큰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내어서 섬기고, 물질을 드려서 섬기고 수고를 해서 섬기면 마음에 큰 행복과 기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자랑하게 되죠.
시편 34편 2절에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랑합니다. 자식 사랑하면 자식자랑하지 않아요? 팔푼이라는 말들으면서도 자기 아내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아내를 자꾸 자랑해요. 좋아하는데 자랑하게 되지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은 일어서나 앉으나 자랑 할것이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했습니다. 우리도 일어서나 앉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될것입니다.
넷째로, 우리 하나님을 섬기는 공경하는 예절로서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그냥 나가면 안돼요. 감사하면서 나가야 돼요.
시편 100편 1절로 5절에 "온 땅이여 어호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 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따라서 말씀해 주십시오. 감사하므로(감사하므로) 그문에 들어가며(그문에 들어가며) 찬송하므로(찬송하므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대저 야웨는 선하시니(대저 야웨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찬송하면 하나님 궁전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감사해야 하나님 앞에 들어가는 문이 열리고, 찬양해야 하나님 궁전에 들어갑니다. 늘 울고, 짜고, 찡그린 얼굴을 가지고 있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문이 닫혀 버리고 궁전에 들어가 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그렇게 좋아합니다. 찬양하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감사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영화로움을 느낍니다. “야~ 자식 잘두었다. 내 백성 잘두었다. 내 백성 보아라.” 하나님이 영화로움을 느낍니다. 여러분 우리가 칭찬들으면 영화로움을 느끼지 않습니까?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고 영화로움을 느끼지 않습니까?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이 가만히 있을수가 없어요.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요. 감사하는 자는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13장 12절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있는 것을 감사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이 더주시고 있는 것을 가지고도 원망, 불평하면 있는 것도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감사는 언제나 우리에게 플러스 인생을 살게 하고 원망과 불평은 마이너스 인생을 살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항상 없는 것을 강조하고, 원망하다가 멸망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로 11절에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항상 없는 것을 보고 강조하고 원망하다가 멸망당하고 말은 것입니다. 우리는 없는 것을 찾아서 원망하지 말고 있는 것을 찾아서 감사할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찾아 감사하고 나쁜 것만 찾아 원망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감사해야 변화가 다가오지 원망, 불평하면 퇴보하고 마는 것입니다. 완전한 인생이란 이땅에 없지요. 무엇이든지 우리가 있는 것으로 자꾸 감사하고 찬양하면 하나님이 더주시고 더주시어서 변화의 역사를 가져와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강북성전에 민기숙 집사님 간증을 보면은 작년 12월 갑자기 마른기침이 잦아졌습니다. 혹시 해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폐암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암은 이미 왼쪽 유방과 뼈속까지 다 퍼졌습니다. 더는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최악상태라며 퇴원해서 집에가서 죽을 준비를 하라고 병원에서 말했습니다. 모든 것을 원망하고 그리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다가 왔습니다. 셀원들과 교구식구들이 집에 찾아와서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자며 위로해 주고 매일 예배를 드리며 뜨겁게 기도해 주었습니다. 허약해서 금식할수 없기 때문에 집사님들이 대신 해서 성도들이 릴레이식으로 금식을 해주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병원에서 3개월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했는데 성도들의 끈질긴 기도가 계속되면서 근육에 힘이 붓기 시작하고 소망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금년 1월 강북성전 예배때 제게 안수기도를 받고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고쳐 주셨다. 나도 살수 있다는 믿음과 감사가 솟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습니다. 환경적으로 볼 때 절망인데 마음속에 믿음과 감사가 솟아올랐습니다. 그동안 온전히 하나님 섬기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살려 주시면 온전히 섬기며 이젠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하나님께 서약을 했습니다. 4월말에 죽음을 준비하라던 병원에 찾아가서 상태를 다시 검사해 줄 것을 의사에게 요청하니까 집사님이 건강하게 보여도 워낙 상태가 나빴기 때문에 의사들은 반신반의하며 검사를 해주었는데 며칠후 결과가 나왔는데 왼쪽 유방과 뼈속까지 전이되었던 암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병든것만 보면 원망, 불평하고 낙심하여 포기할 수 있었으나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감사하자. 긍정적인 마음의 자세를 갖자.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신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살아 남고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갖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주시고, 없는 것을 바라보고 원망, 불평하는 사람은 하나님은 있는 것도 다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살아 남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 찬미하였으므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인격적으로나 행위로 우리보다 위대하고 나은점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고 깨어졌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많이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윗이 내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이에요. 범사에 감사하는 것. 좋을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범사란, 나쁠때도 감사할 때 잘될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잘 안될때도 감사하고 건강할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병들때도 감사, 직장이 있을때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직장을 잃어 버렸을때도 감사,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섬기는 데는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절이 있다는 것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떨고 하나님을 공경하여 우리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을 경건하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섬기고 봉사하며 감사를 많이 드려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이 근본적인 예절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 근본적인 예절을 지킬 때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화평해 지고 하나님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우리를 영접해 주시고 우리에게 넘치는 은총과 복을 주실 것입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말고, 형식적으로만 기독교신자가 되지 말고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예절을 지키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고 종교적인 의식과 형식을 취하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근본적인 예절에 빚나간 행동을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요사이 자녀들이 부모 앞에서 자식으로서 예절을 지키지 않으므로 많은 가정에 우환과 환란이 있는 것처럼 오늘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성하지 못하고 심판을 받고, 성도들이 축복받지 못한 것은 하나님 앞에 바르게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이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듣고 떨게 도와 주시옵시고,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공경하여 언어, 심사, 행동을 경건히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은혜를 한없이 감사드리고 사는 근본적인 예절을 지키는 예절바른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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