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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과부 이야기

룻기 김기동............... 조회 수 3042 추천 수 0 2008.08.25 14:4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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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룻1:15-17 
설교자 : 김기동 자매 
참고 : 새길교회2005. 5. 8] 주일설교/ 김기동(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박사과정) 
성서에는 여성의 이름을 가진 책이 두 권 있는데 룻기와 에스더서입니다. 원래 히브리 성서에서 룻기와 에스더서는 5개의 작은 두루마리로 이루어진 성문학집 메길로트의 첫부분 그리고 마지막 부분을 이루는 문학서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읽는 성서에서는 그 시대적 배경에 따라 룻기는 사사기 뒤에, 에스더서는 역대기 뒤에 오게 되었습니다. 룻기가 사사시대에서 왕국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다윗의 족보를 담고 있다는 점이 아마도 이런 위치를 차지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 족보에 의하면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입니다. 그런데 정작 룻기 마지막에 나오는 다윗의 족보에서는 룻의 이름이 빠져 있습니다. 이후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족보를 이야기할 때를 제외하고 룻의 이름은 룻기 외에 성서 어디에도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살몬-보아스-오벳-이새 그리고 다윗에 이르는 그 가계도에서 룻이 차지할 자리는 없습니다. 그야말로 룻기는 ‘이야기’입니다. 할머니들이 손자손녀에게 고리짝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들려주시던 그런 이야기입니다. 오늘 저는 룻기가 들려주는 그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사사 시대, 유다 베들레헴 출신 한 가족이 기근을 피해 이방 땅 모압으로 이주해갔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 그리고 그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었습니다. 성서는 그들이 임시로 거처를 옮긴 것이라고 말하지만, 적어도 두 아들이 모두 모압 여성들과 결혼하고, 그 후 10년 넘게 모압에서 산 것을 보면 아마도 더 낳은 삶을 찾아 이민을 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 가족은 엄청난 일을 당합니다. 먼저 가족의 아버지인 엘리멜렉이 죽고 그 뒤를 따라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죽고 말았습니다. 먹을 것을 찾아, 생명과 행복을 찾아 떠난 그 곳에서 그 가족은 이제 멸절의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과부로 남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그 두 며느리 룻과 오르바의 삶에서 희망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과부로 산다는 것은 빈곤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구약성서에서 과부, 고아, 그리고 이방인은 이웃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약자 중에 약자로 나옵니다. 나오미는 이제 그 약자 중에 약자인 과부가 되었고, 게다가 모압 땅에서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오미가 고향이 다시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유다로 돌아갈 것을 결심했다고 하지만, 아마도 그 결심 이면에는 과부로서, 이방인으로서 모압 땅에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겠다는 두려움, 그래도 고향에 가면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가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작용했을 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두 며느리였습니다. 나오미가 그 두 며느리에게 말하는 것을 보건대 아마도 모압의 관습에서 과부의 재혼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길 떠나는 시어머니와 동행한 두 며느리는 모압 국경에 이르러 시어머니로부터 이런 권고를 받습니다. ‘너희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사랑과 희생만으로도 너무 고맙다. 하나님이 너희들을 축복해 주실거야, 이젠 친정으로 돌아가서 재혼하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해라’ 그들이 유다 땅으로 나오미와 함께 간다는 것은 과부도 모자라서, 이젠 이방인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땅에서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대도 착하기 그지없는 이 두 며느리들은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노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두 며느리의 삶을 책임질 수 없는 시어머니 나오미는 제발 돌아가 달라고, 내 마음이 너무 괴롭다고, 하나님이 나의 삶을 송두리 채 산산조각 낸 것 같으니, 이젠 나에게서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다고 그 심정을 토로합니다. 길거리에서 세 여인이 울며불며 가라, 가지 않겠다고 실랑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실랑이 끝에 오르바는 시어머니의 권고에 순종하여 작별 인사를 한 후 친정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룻은 오히려 더 나오미를 붙잡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을 또 다시 이렇게 타이릅니다. “보아라, 네 동서는 저의 겨레와 신에게로 돌아갔다.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그런데 룻의 대답이 기가 막힙니다. “나더러 어머님 곁을 떠나라거나 어머님을 뒤따르지 말고 돌아가라고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님이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이 머무르시는 곳에 나도 머무르겠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내 겨레이고, 어머님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입니다.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곳에 나도 묻히겠습니다. 죽음이 어머님과 나를 떼어놓기 전에 내가 어머님을 떠난다면 주님께서 나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더 내리신다 하여도 달게 받겠습니다.”(16-17절) 떠나기는커녕 가는 곳마다, 머무르는 곳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겠노라고 마치 무슨 비장한 선언문을 낭독하듯이 이야기합니다. 룻은 선택의 기로에서 이렇게 나오미와의 한 가족됨을 재천명하고 결국 나오미를 따라 이방 미지의 땅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두 과부로 이루어진 가족’ 사실 그 당시 ‘가족’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베들레헴 땅에서 이 두 과부 가족이 ‘진정한’ 가족을 이루게 되는 과정을 그리게 됩니다. 나오미가 그 가족의 대를 이을 아들을 그 친척 보아스와 룻에게서 얻게 된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룻이 낳은 오벳으로 인하여 이제 모든 것을 잃고 탄식하며 괴로워하던 나오미는 생기와 가족을 되찾게 되었고, 룻은 불쌍한 이방인 과부가 아닌 당당한 한 가족의 여주인이 되었습니다.

흔히 룻의 헷세드(사랑)는 부모 사랑, 효도의 모범이라고들 합니다. 물론 룻의 효도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훌륭한 것입니다. 효도에는 부모와의 관계가 전제됩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룻의 고부관계는 끊어질 가능성이 더 많았습니다. 오르바가 나오미의 권고대로 떠남으로써 그 관계가 끊어졌듯이 말입니다. 그렇다고 오르바가 불효한 며느리였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르바는 오르바대로 할 만큼 다했고, 그리고 자기의 길을 간 것뿐이었습니다. 룻도 충분히 자기의 길을 갈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식적인 것일텐데,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의 가족의 끈을 놓지 않고 오히려 공고히 했습니다. 룻은 ‘어머니와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겠어요’라는 직접적인 표현과 함께 우리가 보기에 조금은 생경한 말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합니다. “어머니의 민족이 나의 민족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히브리어로 이 표현은 ‘어머니의 민족 나의 민족, 어머니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동사 없는 명사구로,  ‘…되겠다’라는 미래완료형이 아니라, 단언적 진술입니다. 이것은 A=B라는 동일성, 하나됨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젠 모압인이 아닌 유대인, 모압의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야웨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 살겠다는, 나오미와 떼어놓을 수 없는 유대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건 스스로 택한 모험입니다. 나오미가 유대로 돌아감으로써 과부이긴 하지만 이방인의 설움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충분히 과부로서의 삶을 탈피할 수 있는 룻이 나오미를 따라 유대땅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과부의 고난의 삶에다가 이방인으로서의 괴로움까지 덧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머니의 민족이 나의 민족이다’라고 스스로 말한다 해도, 유대땅에서 룻은 모압인, 이방인의 굴레를 벗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실 나오미와 룻의 연대성은 룻의 희생적이고 자발적인 의지에서 비롯한 것이었습니다.

사회적 약자 과부로서 나오미와 룻이 혈연관계가 아니면서도 가족 연대를 이룬 것에는 서로를 받아들이는 사랑과 한 하나님 야웨 신앙이 그 기저에 깔려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두 과부의 가족으로의 연대는 이스라엘의 민족 정체성과 맥을 같이 합니다. ‘히브리’는 민족 개념이 아닙니다. 옛 문헌에서 이 말은 그저 노예계층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히브리민족, 야곱의 12아들로 이루어진 한 민족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야웨 하나님 앞에서 주체적 집단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감사의 고백에서 출발합니다. 그들은 노예였고, 도시국가에서 쫓겨나거나 도망쳐 나온 소농이었고, 정착할 곳 없는 유목민이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척박한 산지에서 서로 만나 애굽에서 노예였던 자들을 탈출시켜 주신 하나님을 들었고, 그 해방의 하나님이 바로 자신들도 해방케 해주신 그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뭉쳤습니다. 그저 버려진 자들이 서로 같은 처지를 위로하며 함께 집단을 이룬 것이 아니라, 한 가족, 한 민족, 그리고 야웨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이 무지랭이와 같은 자들의 한 가족, 그리고 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 안에서의 정체성은 생존을 위협하는 많은 위험들을 극복해 내어 연연히 그들의 삶을 이루어 내는 힘이 되었습니다. 나오미와 룻, 두 약하디 약한 과부의 연대 또한 그와 같이 하나님이 도우시리라는 신념과 시어머니를 위하는, 그리고 며느리를 위하는 서로를 향한 희생과 사랑이 생존의 원동력으로 작동하였습니다.

희망 없어 보이는 이들이 살아간 이 생존방식에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전쟁과 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그 어려운 때가 지났다고, 그 때와는 비교할 수없이 지금이 더 살기 편하고 좋다고들 하지만 왠지 사람들은 더 많이 상실감을 느끼고 또 예전보다 오히려 더 살기 어려워졌다고들 말하기까지 합니다. 남부럽지 않은 많은 재물을 가진 자,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자, 온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만 같았던 유명인, 그들은 어느 날 자살자로 신문의 한 면을 장식합니다. 그런가 하면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누이들이 감옥처럼 창살처진 좁은 방에 갇혀 몸 팔며 근근이 살아가다가 급기야 불길에 휩싸여 한 많은 삶을 마감하고 만 안타까운 이야기도 듣습니다. 지난 어린이날, 어떤 아이들은 어른들의 사랑에 또 하루의 즐거운 날을 보내는 반면, 같은 아이인데도 이방 근로자의 불법 체류아이들은 그날도 불안해하며 좁고 어두운 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밤늦게 돌아올 부모를 무료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삶의 모습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합니까? 혹 그저 그런 불행의 주인공 되지 않음에 감사해한다든지, 혹은 측은지심을 발휘하여 몇 푼의 동정을 주고는 내할 바 다했다고 하지는 않습니까?

나오미와 룻, 두 과부의 연대는 오늘 우리가 우리 이웃들과 함께 해야 할 그 모습입니다. 과부된 나오미는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다, 이젠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 즉 괴로움이라고 부르라. 그녀의 외침은 바로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그녀에게 룻은 기꺼이 삶의 버팀목이 되고자 했습니다. 아직 젊고, 아이도 없는 과부, 재혼하면 얼마든지 자기 땅에서 새로운 행복을 영위할 수 있었던 룻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과 야웨 하나님 신앙으로, 절망에 빠진 나오미와 연대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셨고, 그 가족 연대 안에 미래를 허락하셨습니다.

이웃과의 연대는 단순히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기득권을 포기하고, 먼저 다가가고, 그래서 그들과 하나 되어 함께 하는 것입니다. 마치 룻이 하였던 것과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룻은 그 사랑이 일회적이거나, 일시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다 땅에 도착한 후, 곧장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하기 위해 밭에 나가 기꺼이 떨어진 이삭을 주웠고, 시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라.” 십계명 중 제6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서로 사랑하고 서로 하나 되어 살아가야 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십계명은 그야말로,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알려주는 명령입니다. 1~4계명까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지에 대해, 5~10계명까지는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중 첫 계명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입니다.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증거, 탐냄, 이러한 것들이 인간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것들보다 앞서서 부모공경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으면서도 사실 그건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아기를 사랑하는 것은 본능이지만,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윤리와 도덕을 전제합니다. 부모의 은혜와 공경의 당위성을 깨달은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뒤집어 보면 얼마나 부모를 학대하고, 미워하고, 싫어함으로서 그 가족간, 인간간의 단절을 초래했으면 이렇게 십계명의 첫 순서에까지 나왔겠습니까?

룻은 우리에게 인간 유대관계의 전형을 시어머니 나오미에 대한 공경과 사랑에서  보여줍니다. 룻이 보여준 공경과 사랑은, 단순히 효도함의 의미를 넘어서서 인간 사이의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 지, 인간과 인간이 어떻게 서로 화합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상대적으로 더 가지고 누리는 자가 어떻게 약자와 하나 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과부로 살 수 밖에 없었던 나오미에게 스스로 과부로 남기를 자처한 룻의 이 사랑의 연대는 단순히 사랑의 상징으로 끝나지 않고, 절망의 삶을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러한 변화의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부모에게 받기만 하던 내손을 내밀어 사랑과 공경의 온기를 전해주었으면 합니다. 호랑이보다, 귀신보다 이젠 사람이 더 무섭다고 서로 문을 꼭꼭 잠그려 하는 이 때, 우리의 문을 먼저 활짝 열었으면 합니다. 자리와 명예, 나의 것에 연연한 나머지 남을 돌보기는커녕 짓밟기 일쑤인 지금, 예수의 삶을 따르는 우리가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들에게 먼저 다가가 친구와 가족이 되었으면 합니다. 룻이 나오미와 기꺼이 함께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나오미와 룻의 연대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기꺼이 고통의 삶을 택하여 진정한 연대의 모습을 보여준 룻처럼,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기꺼이 인간되신 예수처럼, 예수 따르미인 우리 또한 이 땅, 이 시대 고통 받는 이웃들과 하나 되어 변화와 희망의 통로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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