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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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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거룩, 공의 그리고 생명
***이글은 불교를 사탄이라고 한 글을 읽고 반박한 글임***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4:11]”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17:25~2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2:17]”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눅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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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 : 3]”
제가 전에 다니던 교회 금요 철야예배에 열심히 출석할 때입니다. 하루는 젊은 부목사께서 설교하시면서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이 추천하는 기도방법은 위의 예레미야서의 기도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적당히 소리 내어 기도하는 방법이 좋은 기도라고
설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 다른 부목사님이 들어오셔서 역시 기도방법을 설명하면서 위의 마태복음의 기도 방법을 추천하시며 기도는
골방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사실 두번째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기도 방법이 옳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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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기도하면서 부르짖기도 하고 때로는 골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기도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으나 사나 부르짖어야 한다고 하고, 아니면 죽으나 사나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해야 한다고 한다면,......
성경이 그렇게 융통성(집합의 포함 관계로 정의 한다면 유통성은 도덕 율과 원칙을 포함 한다고 할 수 있다) 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죽으나 사나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마6;3]” 이렇게 주장한다면, 세상의 등불이 되어야 하는데 무엇으로
세상의 등불[마5:15,16,엡5:8,9]이 되겠습니까???
나는 유일한 진리를 믿는 택한 백성이니 너희와는 다르다고 목에 힘을 주어서 등불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남을 사탄으로 몰아세우고, 남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남는 것은 북아일랜드와 같은 금세기 가장 추악한 종교전쟁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위의 니느웨에 대한 성경 말씀[욘4:11]을 보면,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성경 말씀[고전12:6]에서도 역시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들에게는 요나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욘3;5]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 같은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위의 바울의 말을 빌리면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17:25~27]”라고 말하고 있듯이 그들은 하나님을 스스로 발견할 것입니다.
------->원불교에서 성경 말씀을 인용하는 것이나, 기독교와 불교의 친밀한 유대관계가 마지막 때에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들과는 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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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선한 것을 진리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천지 간에 선한 것이 무엇입니까???
선하신 분은 오직 사랑이신 야훼 하나님[시25:8,요10:11,14,요일4:8] 외에는 없으십니다.
“야훼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 하시리로다[시25:8”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2]”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결국 그들은 선을 지향하는데 그 목표가 하나님인 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
여기에 대한 바울의 성경 말씀도 있습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행17:22,23]”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을 전도의 목표로 삼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오심의 이유’이신 병든 자들인 것입니다[막2:17]
개뿔도 잘나지도 않으면서,....그들을 사탄이라고 한다면 그들을 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이 참으로 선하다면 성경 말씀에 따라 그들은 온전한 선을 찾고 말 것입니다.
그들을 적으로 삼으면 그들을 실족시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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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며, 하나님은 사랑[요일4:8]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심으로 가슴아파하며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랑은 생색내기입니다.
------->“회칠한 무덤 같다”[마 23 : 27]는 성경 말씀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랑하였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심으로 가슴아파하며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사도요한은 그의 요한일서[요일4:7,8]에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눅6:27]”하시고, “남을 비판하지 말라[마6:37]”하시며, “듣고도 행치 않으면 주초 없이
지은 집[눅6:49]”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수고[살전1:3]”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살전1:3]”
예수님께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눅6:27]”고 하신 말씀을 우리 생활 가운데에서 음미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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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드려야할 거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이름’으로 드리는 산제사[롬12:1]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이 누구입니까???
이방인을 제물[롬15:16]로 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 전도이며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 : 1]”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하려 하심이라 [롬15:16]”
또한 바울은 고린도교인에게[고전9:17~22]스스로 거룩한 척하지 말고, 자신을 낮추어 그들을 구원하는데 힘쓰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종이 되고, 유대인이 되고, 율법아래에 있는 자가 되고, 약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 자신도 자기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고전4:3].
판단은 하나님께 맡겨야하는 것입니다.------.그들이 사탄인지 아닌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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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의 공의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신데 어찌하여 “거지 나사로가 있고 부자가[눅16:19,20]”있습니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눅16:25]”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실천해야할 공의는 ‘위로’와 ‘고통’의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위로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고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스스로를 낮추어 고통[눅16:20]가운데 그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에게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을 전함으로써 그들을
"음부에서의 고통[눅16:23]"으로부터 구원에 들게 하는 것 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고통가운데 위로를 받고 그들은
구원받아서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이 참으로 큼[눅16:20]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스스로 고통가운데(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로 내려오지 않으면
그들은 음부에서 고통 가운데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 가운데 스스로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을 사탄으로 취급하고 버려둔다면 우리에게도 위로가 없으며,
그들은 음부에서 고통 받게 함으로써 위로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공의의 실천인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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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그런데 이 말씀만을 믿지 않는 사람이 보면 실소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만을 의심 많은 사람이 보면, “어떻게 한사람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있으며, 생명이 될 수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답할 수 없는 생명은 우리가 “그들에게 생명이 없다고” 말할 경우의 생명은 그러하다고 할 수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은 ‘죽어서 살리는 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우리가 그들을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들을 사탄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을 사탄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을 죽이는 것이므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도적이 된다는 뜻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0,11]”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스스로 본을 보였기 때문에,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받은[요10:27,28] 우리는 당신의 명대로 행[15:14]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예수님처럼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5]
그렇다면 누구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는 것입니까????
그들을 사탄취급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오히려 목숨을 버려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그들에게 생명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사탄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 생명이 없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10:31~33]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살려 주는 영이 되시므로[고전15:45]”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요10:27,28,29]같이,
우리도 그들을 사랑하여 누구도 빼앗을 수없는 생명을 얻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7~29]”
신영록/건축구조기술사
***이글은 불교를 사탄이라고 한 글을 읽고 반박한 글임***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4:11]”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17:25~2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2:17]”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눅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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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 : 3]”
제가 전에 다니던 교회 금요 철야예배에 열심히 출석할 때입니다. 하루는 젊은 부목사께서 설교하시면서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분이 추천하는 기도방법은 위의 예레미야서의 기도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적당히 소리 내어 기도하는 방법이 좋은 기도라고
설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 다른 부목사님이 들어오셔서 역시 기도방법을 설명하면서 위의 마태복음의 기도 방법을 추천하시며 기도는
골방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사실 두번째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예배를 마치고 나오면서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기도 방법이 옳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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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기도하면서 부르짖기도 하고 때로는 골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기도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으나 사나 부르짖어야 한다고 하고, 아니면 죽으나 사나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해야 한다고 한다면,......
성경이 그렇게 융통성(집합의 포함 관계로 정의 한다면 유통성은 도덕 율과 원칙을 포함 한다고 할 수 있다) 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죽으나 사나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마6;3]” 이렇게 주장한다면, 세상의 등불이 되어야 하는데 무엇으로
세상의 등불[마5:15,16,엡5:8,9]이 되겠습니까???
나는 유일한 진리를 믿는 택한 백성이니 너희와는 다르다고 목에 힘을 주어서 등불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남을 사탄으로 몰아세우고, 남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남는 것은 북아일랜드와 같은 금세기 가장 추악한 종교전쟁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위의 니느웨에 대한 성경 말씀[욘4:11]을 보면,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성경 말씀[고전12:6]에서도 역시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들에게는 요나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욘3;5]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 같은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위의 바울의 말을 빌리면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17:25~27]”라고 말하고 있듯이 그들은 하나님을 스스로 발견할 것입니다.
------->원불교에서 성경 말씀을 인용하는 것이나, 기독교와 불교의 친밀한 유대관계가 마지막 때에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들과는 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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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선한 것을 진리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천지 간에 선한 것이 무엇입니까???
선하신 분은 오직 사랑이신 야훼 하나님[시25:8,요10:11,14,요일4:8] 외에는 없으십니다.
“야훼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 하시리로다[시25:8”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2]”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결국 그들은 선을 지향하는데 그 목표가 하나님인 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
여기에 대한 바울의 성경 말씀도 있습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행17:22,23]”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을 전도의 목표로 삼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오심의 이유’이신 병든 자들인 것입니다[막2:17]
개뿔도 잘나지도 않으면서,....그들을 사탄이라고 한다면 그들을 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이 참으로 선하다면 성경 말씀에 따라 그들은 온전한 선을 찾고 말 것입니다.
그들을 적으로 삼으면 그들을 실족시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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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며, 하나님은 사랑[요일4:8]이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심으로 가슴아파하며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랑은 생색내기입니다.
------->“회칠한 무덤 같다”[마 23 : 27]는 성경 말씀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랑하였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심으로 가슴아파하며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한 사도요한은 그의 요한일서[요일4:7,8]에서,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7,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눅6:27]”하시고, “남을 비판하지 말라[마6:37]”하시며, “듣고도 행치 않으면 주초 없이
지은 집[눅6:49]”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수고[살전1:3]”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살전1:3]”
예수님께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눅6:27]”고 하신 말씀을 우리 생활 가운데에서 음미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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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드려야할 거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이름’으로 드리는 산제사[롬12:1]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이 누구입니까???
이방인을 제물[롬15:16]로 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 전도이며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 : 1]”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하려 하심이라 [롬15:16]”
또한 바울은 고린도교인에게[고전9:17~22]스스로 거룩한 척하지 말고, 자신을 낮추어 그들을 구원하는데 힘쓰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종이 되고, 유대인이 되고, 율법아래에 있는 자가 되고, 약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 자신도 자기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고전4:3].
판단은 하나님께 맡겨야하는 것입니다.------.그들이 사탄인지 아닌지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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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의 공의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신데 어찌하여 “거지 나사로가 있고 부자가[눅16:19,20]”있습니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눅16:25]”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실천해야할 공의는 ‘위로’와 ‘고통’의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위로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고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스스로를 낮추어 고통[눅16:20]가운데 그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에게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을 전함으로써 그들을
"음부에서의 고통[눅16:23]"으로부터 구원에 들게 하는 것 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고통가운데 위로를 받고 그들은
구원받아서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이 참으로 큼[눅16:20]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스스로 고통가운데(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로 내려오지 않으면
그들은 음부에서 고통 가운데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 가운데 스스로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을 사탄으로 취급하고 버려둔다면 우리에게도 위로가 없으며,
그들은 음부에서 고통 받게 함으로써 위로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공의의 실천인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겠습니까???
.................................................................................................................................................
생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그런데 이 말씀만을 믿지 않는 사람이 보면 실소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만을 의심 많은 사람이 보면, “어떻게 한사람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있으며, 생명이 될 수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답할 수 없는 생명은 우리가 “그들에게 생명이 없다고” 말할 경우의 생명은 그러하다고 할 수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은 ‘죽어서 살리는 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우리가 그들을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들을 사탄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을 사탄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을 죽이는 것이므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도적이 된다는 뜻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0,11]”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스스로 본을 보였기 때문에,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받은[요10:27,28] 우리는 당신의 명대로 행[15:14]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예수님처럼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12;25]
그렇다면 누구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는 것입니까????
그들을 사탄취급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오히려 목숨을 버려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
그들에게 생명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사탄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 생명이 없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10:31~33]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살려 주는 영이 되시므로[고전15:45]”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요10:27,28,29]같이,
우리도 그들을 사랑하여 누구도 빼앗을 수없는 생명을 얻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7~29]”
신영록/건축구조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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