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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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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촛불문화제의 반향이 일파만파 퍼져가는 것이 무척 우려됩니다. 이렇게까지 확대될 필요가 없는 일인데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정부에서의 잘못된 대응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초기에 충분히 진화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대통령을 위시해서 관련된 모든 정부의 책임자들이 솔직하고 진솔하게 국민들과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을 통치의 대상으로서만 아니라, 오히려 세계화의 험난한 파고를 같이 헤쳐나갈 파트너로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취임선언문에서 밝혔던 것처럼, ‘섬기는 리더쉽’이란 말과 개념을 소개한 것이 국민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선언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컴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섬김보다는, 자신들의 소리를 진정으로 ‘들어주면서 섬기는’ 그런 섬김을 원합니다. 촛불문화제사태가 그런 ‘섬김의 리더쉽’을 가진 대통령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한 여학생이 ‘대통령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 안 다닐까 봐 걱정’된다고 하였는데, 너무 지나친 걱정이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대통령 때문에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 때문에 교회를 다니게 된다거나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는 것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대통령 때문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 때문에 교회를 다니게 되는 것이 참신앙입니다. 이런 기회가 그 여학생이 그런 참신앙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2.
기독교인들이 현실과 정치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관심을 갖는 기독교인들이 모두 하나같이 획일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촛불집회 같은 것에 참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을 것이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도 있을 것입니다. 참석하는 것이 옳다고 보면서도 폭력이 행사되는 것을 반대할 수 있고, 기도하는 것이 최우선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이 획일적으로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기독교적입니다. 그러한 생각은 민주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할 생각입니다. 각자의 양심을 따라서 판단할 일입니다. 참석하는 사람도 참석하지 않는 사람을 탓해서 안될 것이요, 참석하지 않는 사람도 참석하는 사람을 두고 탓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문제는 각자의 양심을 따라서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각자의 양심을 존중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촛불집회에 참석해서 기도할 수도 있고, 기도의 골방에서 혼자라도 촛불을 들고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학생들과 기독교사들은, 무엇보다도, 건전한 시민의식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고, 이럴 때에, 군중심리에 휩쓸리거나 나약한 개인주의에 빠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기독교사들은, 기독학생들이 이 두 가지 잘못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각자의 양심을 따라서 학생들이 분별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평소에 건전한 기독시민으로서 현실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하고 행동해야 할 지를 교육시켜 왔다면, 이럴 때, 각자의 양심을 따라서 판단하고 분별하여 행동케 함으로, 지난 주일 있었다는 모 교회 고등부에서의 기독교사들과 학생들이 서로 다투었던 일과 같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3.
제가 삼일교회 부임한지 6개월인데, 이 기간 동안의 목회활동을 평가받는다면 억울할 것입니다. 한 교회가 변화되는데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국가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더욱이나 이명박정부는 출발부터 악재가 겹쳐 있었습니다. 그것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명박대통령의 국정운영 3개월을 평가하기는 아직 시기상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이명박대통령이 탄핵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가 ‘대통령’으로서 그러한 것이지 ‘장로’로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명박대통령이 ‘장로’라는 것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가 ‘대통령’으로서 잘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는 타종교인들도 동시에 아우러야 할 ‘대통령’입니다. 아직 기독교국가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적 관점으로 어떤 정책을 실현해 가려고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장로’라는 그의 직분이 정국운영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의 콘스탄틴황제로 인하여 초대교회에 핍박이 면하여졌지만, 오히려 복음은 그 생명력을 상실해 버린 유례가 있음을 한국기독교인들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장로대통령’ 때문에 한국교회가 복음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 더 염려됩니다. 주님께서 우리 나라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4.
자신이 평생을 CEO로서 살아온 것이 그의 국정운영스타일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이명박대통령으로서는 참 억울할 것입니다.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신의 스타일로 굳어져 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지적들이 있을 때에 그것을 귀담아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귀담아 듣게 된 것들을 잘 활용해서 그 스타일에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소견을 강조하고 설득하려고 하기 전에, 국민들의 소리를 많이 들으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소통’의 문제는, 인류의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자기 주변에 자기 사람들을 두려는 것이 인생의 본능일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국가의 통치자로서 오히려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을 자기 주변에 두고 그 의견을 자주 청취하려고 하는 것도 오히려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종교계의 원로들의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니라, 시장바닥에서 터져나오는 소리들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듣게 된 소리들에 대해서 너무 자주 직접 반응하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소리들을 직접 자주 듣되, 간접적인 방편으로 그 소리들을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인의 장막’이 쳐지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인의 장막’ 그 넘어에서 들려지는 소리들이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이명박대통령이 그런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믿고 또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이명박대통령이, 장로로서, 기독교인으로서, 현안들을 지혜롭게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보다도 오히려 대통령으로서 지혜롭게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국정을 운영하는 가운데서 불가피하게 자신의 신앙을 표명해야 할 때에는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기독교인임과 장로임을 국정운영마다 표명하면서 운영해서는 안 되고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서울시는 하나님께 봉헌한다’ 와 같은 말을 서울시장으로서 공개석상에서 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하나님께 봉헌합니다’는 식의 말을 대통령으로서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런 결심을 표명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결심으로 진실되게 행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장로로서의 이명박장로와 대통령으로서의 이명박대통령을 너무 중첩시켜서 기대하는 것은 별로 유익이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장로로서 지혜롭게 현안들을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은, 저로서는, 공사를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아는 것에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5.
도움이 필요한 곳에 타종교의 사람들보다 기독교인들이 발벗고 나서는 일들이 많다고 하는 것은 참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사회전반에 걸쳐 제 목소리를 내야 할 부분에서는 주춤하다’고 하였는데, '사회전반에 걸쳐 제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명확치가 않습니다. 제가 해석하기로는, 어떤 잇슈들이 사회전반적인 영향력을 가질 때에 어떤 류의 단체적이면서 집단적인 시위와 행동에 있어서 일치를 보여주는 일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저로서는 그런 전제가 과연 바람직한가 혹은 성경적인가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전반에 대해서, 각각의 잇슈들에 대해서 기독교적 시각을 성경을 통해서 제시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이것을 ‘제목소리’로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런 ‘기독교적 시각’에 대해서 일치된 의견을 갖기 위해서 합의하는 과정이 기독교계에 먼저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기독교언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역할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없이 지르는 ‘제목소리’는 ‘제목소리’에 그쳐버리겠지요. 공허한 울림이 되기 쉽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NGO들로서 충분히 사회저변에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발벗고 나서서 봉사하였다고 생각하고 그러므로 이제는 ‘제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로서는 아직 기독교회가 이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렇게 하면 그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 그 자체가 기독교계의 ‘제목소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각 기독교인들과 교회들이 각 사회의 기층에서 수행해가면서, 이제 기독지성들이 사회전반과 잇슈들에 대해서 기독교적 관점을 갖기 위해서 합의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는가, 지금 현단계로서 기독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제목소리가 제목소리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전반과 각각의 잇슈들에 대한 일치된 합의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http://cafe.daum.net/12reformedfaith1/8MA7/63
촛불문화제의 반향이 일파만파 퍼져가는 것이 무척 우려됩니다. 이렇게까지 확대될 필요가 없는 일인데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정부에서의 잘못된 대응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초기에 충분히 진화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대통령을 위시해서 관련된 모든 정부의 책임자들이 솔직하고 진솔하게 국민들과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을 통치의 대상으로서만 아니라, 오히려 세계화의 험난한 파고를 같이 헤쳐나갈 파트너로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취임선언문에서 밝혔던 것처럼, ‘섬기는 리더쉽’이란 말과 개념을 소개한 것이 국민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선언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컴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섬김보다는, 자신들의 소리를 진정으로 ‘들어주면서 섬기는’ 그런 섬김을 원합니다. 촛불문화제사태가 그런 ‘섬김의 리더쉽’을 가진 대통령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한 여학생이 ‘대통령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 안 다닐까 봐 걱정’된다고 하였는데, 너무 지나친 걱정이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대통령 때문에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 때문에 교회를 다니게 된다거나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는 것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대통령 때문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 때문에 교회를 다니게 되는 것이 참신앙입니다. 이런 기회가 그 여학생이 그런 참신앙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2.
기독교인들이 현실과 정치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관심을 갖는 기독교인들이 모두 하나같이 획일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촛불집회 같은 것에 참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을 것이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도 있을 것입니다. 참석하는 것이 옳다고 보면서도 폭력이 행사되는 것을 반대할 수 있고, 기도하는 것이 최우선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이 획일적으로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비기독교적입니다. 그러한 생각은 민주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할 생각입니다. 각자의 양심을 따라서 판단할 일입니다. 참석하는 사람도 참석하지 않는 사람을 탓해서 안될 것이요, 참석하지 않는 사람도 참석하는 사람을 두고 탓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문제는 각자의 양심을 따라서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각자의 양심을 존중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촛불집회에 참석해서 기도할 수도 있고, 기도의 골방에서 혼자라도 촛불을 들고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학생들과 기독교사들은, 무엇보다도, 건전한 시민의식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고, 이럴 때에, 군중심리에 휩쓸리거나 나약한 개인주의에 빠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기독교사들은, 기독학생들이 이 두 가지 잘못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각자의 양심을 따라서 학생들이 분별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평소에 건전한 기독시민으로서 현실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하고 행동해야 할 지를 교육시켜 왔다면, 이럴 때, 각자의 양심을 따라서 판단하고 분별하여 행동케 함으로, 지난 주일 있었다는 모 교회 고등부에서의 기독교사들과 학생들이 서로 다투었던 일과 같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3.
제가 삼일교회 부임한지 6개월인데, 이 기간 동안의 목회활동을 평가받는다면 억울할 것입니다. 한 교회가 변화되는데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국가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더욱이나 이명박정부는 출발부터 악재가 겹쳐 있었습니다. 그것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명박대통령의 국정운영 3개월을 평가하기는 아직 시기상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이명박대통령이 탄핵의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가 ‘대통령’으로서 그러한 것이지 ‘장로’로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명박대통령이 ‘장로’라는 것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가 ‘대통령’으로서 잘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는 타종교인들도 동시에 아우러야 할 ‘대통령’입니다. 아직 기독교국가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적 관점으로 어떤 정책을 실현해 가려고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장로’라는 그의 직분이 정국운영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로마의 콘스탄틴황제로 인하여 초대교회에 핍박이 면하여졌지만, 오히려 복음은 그 생명력을 상실해 버린 유례가 있음을 한국기독교인들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장로대통령’ 때문에 한국교회가 복음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 더 염려됩니다. 주님께서 우리 나라와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4.
자신이 평생을 CEO로서 살아온 것이 그의 국정운영스타일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이명박대통령으로서는 참 억울할 것입니다.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신의 스타일로 굳어져 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지적들이 있을 때에 그것을 귀담아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귀담아 듣게 된 것들을 잘 활용해서 그 스타일에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소견을 강조하고 설득하려고 하기 전에, 국민들의 소리를 많이 들으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소통’의 문제는, 인류의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자기 주변에 자기 사람들을 두려는 것이 인생의 본능일지 모르겠습니다만, 한 국가의 통치자로서 오히려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을 자기 주변에 두고 그 의견을 자주 청취하려고 하는 것도 오히려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종교계의 원로들의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니라, 시장바닥에서 터져나오는 소리들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듣게 된 소리들에 대해서 너무 자주 직접 반응하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소리들을 직접 자주 듣되, 간접적인 방편으로 그 소리들을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인의 장막’이 쳐지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인의 장막’ 그 넘어에서 들려지는 소리들이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이명박대통령이 그런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믿고 또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이명박대통령이, 장로로서, 기독교인으로서, 현안들을 지혜롭게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보다도 오히려 대통령으로서 지혜롭게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큽니다.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국정을 운영하는 가운데서 불가피하게 자신의 신앙을 표명해야 할 때에는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기독교인임과 장로임을 국정운영마다 표명하면서 운영해서는 안 되고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요구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서울시는 하나님께 봉헌한다’ 와 같은 말을 서울시장으로서 공개석상에서 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하나님께 봉헌합니다’는 식의 말을 대통령으로서 공개적으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런 결심을 표명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결심으로 진실되게 행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장로로서의 이명박장로와 대통령으로서의 이명박대통령을 너무 중첩시켜서 기대하는 것은 별로 유익이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장로로서 지혜롭게 현안들을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은, 저로서는, 공사를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아는 것에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5.
도움이 필요한 곳에 타종교의 사람들보다 기독교인들이 발벗고 나서는 일들이 많다고 하는 것은 참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사회전반에 걸쳐 제 목소리를 내야 할 부분에서는 주춤하다’고 하였는데, '사회전반에 걸쳐 제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명확치가 않습니다. 제가 해석하기로는, 어떤 잇슈들이 사회전반적인 영향력을 가질 때에 어떤 류의 단체적이면서 집단적인 시위와 행동에 있어서 일치를 보여주는 일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저로서는 그런 전제가 과연 바람직한가 혹은 성경적인가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전반에 대해서, 각각의 잇슈들에 대해서 기독교적 시각을 성경을 통해서 제시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이것을 ‘제목소리’로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런 ‘기독교적 시각’에 대해서 일치된 의견을 갖기 위해서 합의하는 과정이 기독교계에 먼저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기독교언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역할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없이 지르는 ‘제목소리’는 ‘제목소리’에 그쳐버리겠지요. 공허한 울림이 되기 쉽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NGO들로서 충분히 사회저변에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발벗고 나서서 봉사하였다고 생각하고 그러므로 이제는 ‘제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로서는 아직 기독교회가 이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렇게 하면 그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 그 자체가 기독교계의 ‘제목소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단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각 기독교인들과 교회들이 각 사회의 기층에서 수행해가면서, 이제 기독지성들이 사회전반과 잇슈들에 대해서 기독교적 관점을 갖기 위해서 합의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는가, 지금 현단계로서 기독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제목소리가 제목소리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전반과 각각의 잇슈들에 대한 일치된 합의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http://cafe.daum.net/12reformedfaith1/8MA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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