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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KBS 사장의 기독교신앙 (당시 한겨레 논설주간)
굉장히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컸다.
배냇 신자였고 어려서부터 정말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사건이 하나 있었다.
학교에서든 교회에서든 가장 친한 친구와 만들던 학생회 신문에
강원룡 목사의 글을 게재한 적이 있었다.
우리 교회는 그 때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헌금 강요가 심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헌금 할당을 하고 매주 주보에 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란을 떨면서
헌금을 한 부자보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더 높게 평가하신다고 했는데,
어떻게 헌금을 강요할 수 있는가에 대해 친구와 나는 분개했었다.
바로 그 때 강원룡 목사가 한국 기독교의 부패에 대해 썼던 것이다.
우린 강원룡 목사가 누군지도 몰랐었다.
그 일로 교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장로님이셨던 아버님은 어느 날 새벽기도회를 다녀오시더니 막 야단을 치셨다.
당장 그 신문을 회수하라고 했다.
그 일로 나는 교회에서 치리를 당했다.
그 친구는 교회를 떠났고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서울에 와서는 영락교회를 다녔다.
대학교 3학년 때 회의가 많이 왔다.
이건 답이 아니지 싶었다.
교회를 안 다니다가 그 뒤 안병무 박사를 만나게 됐고,
향린교회를 나가면서 성서를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그 때가 1969년이다.
향린교회에서 출석하고 난 1년 뒤 대학부 학생 10명이 영락교회를 탈출했다.
그 때 탈출한 친구 중 하나는 작년인가 올해에 향린교회 장로가 되었다.
안병무 박사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스승이다.
열심히 성경강좌를 들었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나는 그 분에게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문제,
그러니까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배웠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
언론의 자유를 압살한 정치권력의 불의,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게 아니라 칼을 주러 오셨다는 말씀을 배웠다.
기독교는 나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중략)
나는 살아오면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셨을까?
생각하며 흐트러진 자세를 다졌다.
- '복음과상황' 2000년 1월호 에서 -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야되는 이유)
☞ 한국일보 여론조사
☞ 한겨레 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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