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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행복

마태복음 나무............... 조회 수 1873 추천 수 0 2009.03.27 19: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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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3-12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어느 교회 여성도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학교에 같이 다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늘 밝게 웃고 늘 감사하고 찡그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삶도 여유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 친구 집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청소가 안됐노라고 굳이 다음에 오라고 했지만 왠지 난 그 날 그 친구 집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 친구에겐 예쁜 딸들이 셋 있는데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예쁜 친구가 사는 집은 상상이 안될 만큼 허름한 집이었습니다. 10평도 안되는 초가집에 달랑 방 한 칸에, 벽은 여기저기 허물어져 방바닥에서 흙이 밟혔습니다. 아이들 책상도 하나 없고 장롱은 문짝이 떨어져 이불이 곧 쏟아져 나올 것 같았습니다. 난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친구는 늘 밝게 웃었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편은 늘 이른 새벽에 나가 공사현장에서 밤늦게 돌아옵니다. 그러나 이전에 진 빚이 있어서 벌어오는 돈은 생활비로 쓰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음날 친구는 일하는 곳에서 월급 30만원을 받았는데 아이들이 거의 1년 동안 고기를 못 먹었다며 택시를 타고 돈 30만원을 농협에서 찾아서 바로 닭갈비를 먹으러 갔답니다. 날아갈 듯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며 엄마는 오늘만큼은 아이들 먹고 싶은 만큼 실컷 먹게 하리라고 다짐하고 닭갈비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들뜬 나머지 30만원이 든 지갑을 택시에 그대로 둔 채 내려서 식당으로 갔습니다.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하려는데 그 때서야 지갑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집으로 걸어서 아이들과 돌아오면서 엄마도 아이들도 함께 울었답니다. 집에 돌아와 늘 먹던 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했습니다. 특히 막내는 그 날 먹지 못한 닭갈비 때문에 엉엉 울다가 잠이 들었답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나도 울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당장 닭갈비 먹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남편의 차로 그 친구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닭갈비집에 가서 그렇게 먹고 싶었던 닭갈비를 실컷 먹여주었습니다. 그렇게 맛있게, 행복하게 먹는 걸 처음 보았습니다. 언젠가 친구가 아이들이 입던 작은 옷을 누군가에게 보내야겠다고 챙기자 막내딸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엄마! 우리도 나누어 줄 게 있다니 행복해요!" 라고.
가진 돈을 빼앗길까 전전긍긍하고 재산을 좀더 불리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돈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다 부자는 아니지요. 비록 가진 재물은 적지만 늘 만족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진정한 마음의 부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언젠가 런던 타임스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조사한 바 있습니다.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1위는 해변에서 한 소녀를 위해 모래성을 쌓고 있는 소년, 2위는 아기를 목욕시키고 젖을 먹이는 엄마, 3위는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내고 막 수술실을 나서는 의사, 4위는 땀 흘리며 도자기를 빚는 공예가였습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큰 욕심 없이 가난한 마음으로 자신의 소임을 즐기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행복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내 마음 상태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과 생각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행복의 가장 큰 조건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니라” 여기서의 ‘가난’은 외부의 도움이나 자비에 의존하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할 만큼의 철저한 가난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4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겸손 단순 수용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허물, 연약함, 한계성을 알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오직 예수뿐입니다. 그의 삶은 단순합니다. 남의 충고나 도움을 기꺼이 수용합니다. 언제든 진실함으로 주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과연 당신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까? 가난한 심령인지 아닌지 다음의 질문으로 점검해보십시오. 나는 인간의 죄인됨과 한계를 인정하는가? 충고나 도움을 고맙게 받아들이는가? 이웃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가? 권위에 대해 기꺼이 순종하는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간절히 기도하는가? 진정 가난한 자만이 천국을 경험할 수 있고 이 땅에 천국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부한 자는 그 마음에 자기 의, 자기 가치관, 자기 철학, 자기 주장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진리를 발견할 수가 없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1890년 조선 땅에서 선교하던 언더우드 일기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어둠과 가난에 묶여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주여,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순종할 때 주님께서 일을 시작하시며 그 하시는 일을 우리가 볼 수 있는 날이 올 줄 믿나이다. 지금은 경계와 의심,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 찬 곳이지만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주소서.”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천국을 소유하며 그로 말미암아 오늘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계속 확장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위해서 뛰어다닙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라면 앞뒤 가리지 아니하고 매달립니다. 마치 인생의 목표가 행복을 얻는데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가 이디에 있습니까?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행복을 찾아가는 길을 잘못 선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행복을 가져다줄 줄 알고 있습니다. 명예와 권세가 행복을 가져다 줄줄 알고 부지런히 쫓아다닙니다. 그러나 돈과 명예와 권세가 행복을 가져다 줍니까? 세상부귀 영화를 다 누려본 솔로몬 왕이 말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리고 선진국 국민이 결코 후진국 국민보다 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여러 가지 조사에서도 입증되었습니다. 로버트 우스터 교수가 전 세계 54개국을 대상으로 어느 나라 사람들이 행복을 가장 크게 느끼는지 행복지수를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장 천재지변이 많은 나라인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1위였습니다. 그들이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했습니다. 54개국 중에서 미국은 몇 번째인지 아십니까? 46번째 입니다. 한국은 23번째입니다.
이 자료는 잘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마음과 성품에 달려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고, 긍휼하고, 청결하고, 화평할 때 반드시 참행복이 찾아옵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가난'일 것입니다. 어느 유명한 사상가가 이렇게 외쳤습니다. '가난해지지 않도록 결심하십시오. 가난은 행복의 적입니다.' 이 한마디가 현대인들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난은 악인 것도 같습니다.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들고 갖가지 사회악을 키우는 온상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가난이라는 용어를 긍정적인 의미로써 서슴치 않고 사용하고 계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누가복음에는 심령이라는 말이 빠져 있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6:2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부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성경구절은 없습니다. 산상수훈을 듣기 위해서 예수님 앞에 온 사람들 대다수가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않았습니까? 집도, 재산도, 가정도, 직업도 다 내 버려서 빈털터리가 되어 주님을 따라가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부자가 가난한 자보다 결코 더 의롭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1976년은 중국 전체가 먹을 것이 없어서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을 때입니다. 중국 당산시에는 인구 70만 명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대 지진이 일어나서 24만2천명이 죽었습니다. 가히 저주라 할 만한 대 재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었던 일본대사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그 참화 속에서 훔치는 사람도 없었고 남을 해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위험을 무릎쓰고 위기에 처한 남의 생명과 재물을 구하러 서로 불 속에 뛰어들었으며 자신이 먹기에도 부족한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더라는 것입니다. 강제된 행위가 아니라 자유의사에 의한 행위라는 데서 외국인 목격자들은 경악을 했습니다. 같은 해 세계 최고의 부를 자랑하는 미국 뉴욕시에서 12시간의 정전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신문, 방송에서는 그 상태를 '연옥'이라고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전등이 꺼져서 자신의 얼굴이 타인에 의해서 식별되지 않게 되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그들은 남의 재산을 파괴하고 약탈하고 방화하고 강간을 하고 서로 찌르고 죽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최첨단 시스템이나 제도를 자랑합니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봅니다. 어느 편이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정말 어느 쪽이 무시당해야 할 사람들입니까?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돈을 벌고 부유한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어떤 불의와 타협을 해야만 하는 사회 구조적인 악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불의와 짝하면서 부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불의와 결별하고 차라리 가난하게 살면서 하나님과 더 깊은 영적인 관계를 가질 것인가? 신약성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불의보다는 가난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실제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가난한 자는 부자보다도 예수님을 더 쉽게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일본보다도 한국 교회가 부흥되었던 이유도 가난과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가난한 자가 예수님을 믿기 쉽습니다. 지금도 교회안에는 가난한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저도 부자였다면 아마 목사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3,24)
이 말씀은 영적인 부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가난한 자가 구원받기가 훨씬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가난해서 예수 믿지 않으면 살맛이 없어 믿게 되신 분들이 계신다면 하나님 앞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가난해서 예수 믿은 사람은 감사해야 합니다. 동시에 가난한 자는 부자보다 마음을 쉽게 비울 수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심령의 가난을 쉽게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이나 사람 앞에서 잘났다고 자랑할 거리가 별로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가난 때문에 실제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도 생명을 걸고 믿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교양이 아닙니다. 생존에 관계되는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도 이렇게 고생하며 서글프게 사는 것도 억울한데 예수님을 믿지 못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다면 억울해서 어떻게 삽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을 생사의 문제로 생각하고 열심을 냅니다. 그렇다면 그 가난은 복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을 비우면 주님이 그 마음에 임하셔서 다스리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세상과 연합하여 거기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며, 하나님의 의지하며 그에게 헌신하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므로 가난을 표시하는 히브리어 '아니' 는 겸손과 충성으로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34편 6절에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하였고, 시편 35편 1절에 여호와 같은 자 누구리오...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시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믿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는 독립하게 되고 하나님에 게는 온전히 예속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자녀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 혜를 받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만날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어주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매일의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비결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늘의 창고로부터 흘러나오는 행복과 은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모든 것을 맡기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누리는 행복입니다. 시편 103편 13절에 보면 아버지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고 하였습니다. 부모에게 의지하는 자녀는 의식주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부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어린애가 옷이 떨어졌으면 근심을 합니까? 부모가 책임집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런 것은 의지할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 걱정하는 것이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생활을 맡으신 분이므로 우리는 염려나 걱정을 전부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께 예속되나 세상에서 독립하고, 하나님께 항복하나 세상에서 자유합니다. 오늘 이 시대는 많은 사람이 자기를 믿고 자기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 없이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슬픈 일은 자기의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해 나간다는 이 시대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비극 속에서 세기적인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요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할 때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은 자기의 덕행과 재물에는 자신을 가지고 탐욕에 넘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처분해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는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슬픈 듯이 가버렸다고 성경은 말씀하였습니다. 왜요? 그는 자기를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잘났다고, 자기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이 가난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너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주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마음이 부한 사람은 천국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저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자기의 전적인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때 얻는 특권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 속지 마십시오. 천하의 영광을 다보여 주면서 여기에 행복이 있다고 하던 사탄의 말에 속지 마십시오. 돈은 그 자체로서는 악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와 돈이 주님 앞에 가는데 장애물이 된다면, 부와 돈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천국을 내 마음에 소유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면 그것은 불행한 것입니다. 재물은 적당히 가지면 됩니다. 그 이상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일용할 양식이면 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행복은 재산이 늘어나면서 함께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6:7-10)
속지 마십시오. 부자가 행복한 것 아닙니다. 차라리 가난한 자가 행복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행복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장애가 되는 부를 쌓아 놓고 계신다면 하나님 앞에 내 놓으십시오. 이 세상 떠날 때 가지고 갈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십시오. 그 대신 여러분의 마음에 천국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물질적으로 부하든 가난하든 큰 문제가 안됩니다. 물질이 많아도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돈 때문에 천국을 소유하지 못하는 불행을 안고서 신앙 생활을 하려고 든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 돈을 쓰고 마음에 천국을 소유하는 쪽이 훨씬 낫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에 주님을 모시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을 위해 아름답게 한 생을 드린다면 그 행복은 영원한 저 나라에까지 이어질 줄 믿습니다.
끝으로 성경 야고보서 5장 1절부터 8절까지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 기도: 오! 하나님 나를 기억하고 위해서 기도해주는 나의 부모와 가족과 친구들과 사랑하는 자들을 축복하시기 원합니다. 아무도 자기를 기억해줄 사람이 없고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해줄 사람이 없는 자들과, 노약자들과 외롭고 쓸쓸한 자들과 사랑할 대상도, 사랑해줄 사람도 없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내가 특별히 기억하여 기도해야 할 질병과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과, 그의 삶이 지금 위기에 처해 있는 자들 그리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자들과 두려움 가운데 있는 자들, 참회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 자들 그리고 절망 가운데 빠져 있는 자들에게 긍휼과 은총을 베푸시옵소서. 이 시간 내게 당신의 모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나의 모든 죄를 회개하는 마음과 당신 안에서 참다운 평안을 누리는 마음을 허락하옵소서 당신의 사랑에 의지하여 간구하오니 이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불행한 사람들의 몇가지 공통점

불행한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완벽주의자는 불행하다.그는 모든 걱정을 껴안고 인생을 살아간다.
둘째,항상 남과 비교하려 한다.마음 속에 끓어오르는 경쟁심은 평안을 앗아간다.
셋째,자기 자신만이 가장 옳다고 생각한다.아무도 이런 사람과는 함께 지내려고 하지 않는다.그래서 늘 고독하다.
넷째,작은 일에 신경을 집중시킨다.이런 사람의 표정은 항상 불만과 우울함으로 가득차 있다.
다섯째,매사에 의심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여섯째,이웃을 위해 절대로 사랑과 물질을 베풀지 않는다.한번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밖으로 나올 줄을 모른다.
사람은 더불어 살때 행복을 느낀다.그리고 삶의 과정을 통해 참행복을 누린다.행복은 무엇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다.오늘의 삶이 비록 구차하게 여겨질수 있으나 사실은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숨어 있다.
영화의 결론을 알면 무슨 재미가 있는가.인생도 마찬가지다.오늘에 충실한 사람이 행복의 열매를 수확한다.

2. 묵상 및 토론
0 나는 현재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
0 내 마음이 가난합니까? 부합니까?
0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행복에 관하여 이야기 해보세요.
0 내 생애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있는가?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 가난이 재산

리빙스톤을 아십니까? 아프리카의 개척 선교사 리빙스톤 말입니다. 그는 유명한 선교사였습니다. 리빙스톤은 스코틀랜드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가난한 장사꾼이었습니다. 리빙스톤은 자라면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방직공장에 다니며 틈틈히 글을 익히며 공부를 하였습니다. 월급을 받으면 어머니에게 다 갖다 드리고, 용돈 몇 푼만 갖는 것을 허락 받아 그것으로 책을 사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책을 읽을 시간도 많지 않아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책을 읽었습니다. 밤에 늦게 집으로 돌아와서도 다른 사람들은 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는 혼자 촛불을 밝혀 놓고 날이 훤이 밝아오도록 책을 읽었습니다. 주일은 어머니와 함께 꼭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신앙을 본받아 신앙심이 어려서부터 두터웠습니다. 어려서부터 리빙스톤의 꿈은, "미개한 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테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 공부를 해아 한다는 것을 알고 그 방면으로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결국 리빙스톤은 열심히 노력하여 그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훗날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의 가난과 고생이 아프리카 선교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내가 죽어서 만일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역시 가난한 집에 태어나 고생하며 자라고 싶습니다."

* 예화(2): 가난과 행복

1976년은 중국 전체가 먹을 것이 없어서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을 때입니다. 중국 당산시에는 인구 70만명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대 지진이 일어나서 24만2천명이 죽었습니다. 가히 저주라할 만한 대 재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었던 일본대사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그 참화 속에서 훔치는 사람도 없었고 남을 해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위험을 무릎쓰고 위기에 처한 남의 생명과 재물을 구하러 서로 불속에 뛰어들었으며 자신이 먹기에도 부족한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더라는 것입니다. 강제된 행위가 아니라 자유의사에 의한 행위라는데서 외국인 목격자들은 경악을 했습니다.
같은 해 세계 최고의 부를 자랑하는 미국 뉴욕시에서 12시간의 정전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신문, 방송에서는 그 상태를 '연옥'이라고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전등이 꺼져서 자신의 얼굴이 타인에 의해서 식별되지 않게 되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그들은 남의 재산을 파괴하고 약탈하고 방화하고 강간을하고 서로 찌르고 죽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최첨단 시스템이나 제도를 자랑합니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봅니다. 어느 편이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정말 어느 쪽이 무시당해야 할 사람들입니까?

* 예화(3): 진정한 성공

벤자민 플랭클린 (B.Franklin)은 말하기를 "돈은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고, 앞으로도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 할 것입니다. 또 돈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올 줄 알지만 아무런 행복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돈은 맏이 벌수록 더 큰 돈을 벌려고 합니다. 돈은 공허를 메우기 보다는 차라리 또 하나의 공허를 낳는다" 고 하였습니다.
죤.디 록펠러 (J.D.Rockefeller)는 말하기를 "가장 가난한 사람은 돈밖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권세와 명예에다 가치를 둡니다만 진정한 성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4. 찬송: (48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5. 가난에 관한 성경말씀:
0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이니라(렘22:16)
0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후9:9)
0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21:13)
0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잠14:31)
0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줄 지식이 없느니라(잠29:7)
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갈2:10)
0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북이 있는 자니라(잠14:21)
0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잠22:9)
0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
0 사람의 재물이 그 생명을 속할 수는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잠13:8)
0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시82:3)
0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5:16)
0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2:7)
0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소망이 있고 불의가 스스로 입을 막느니라(욥5:16)

6. 금언:
0 가난 보다 더 나은 교육은 없다.(콘스휠드)
0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명예라고는 셍각지 말라(탈무드)
0 가난은 불행한 것이 아니다. 가장 불행한 것은 자기 재산 이상의 것을 바라는 그 것이다.(세네카)
0 가난은 죄악이 아니다.(죠지 허버트)
0 가난이 있는 곳에 신들이 존재할 것이다.
0 가난한 자의 생애는 죄악이다.(바빌로니아 율법서)
0 가난(빈곤)은 절제의 어머니이다.
0 가난은 수치가 아니라 쓰라린 것(독일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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