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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마태복음 나무............... 조회 수 2529 추천 수 0 2009.03.27 19: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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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5:21∼28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http://je333.com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28절)

상당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던 핫산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현자를 찾아가 그의 문하생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핫산은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스승은 그가 아직도 속세에서 가지고 있던 오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핫산이 속해 있던 높은 계급의 특권이나 부의 잔재가 아직도 그의 의식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에게 작은 깨달음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스승은 그를 불러 말했습니다.
"핫산아, 시장에 가서 양의 내장 40킬로그램만 사오도록 하여라. 그러나 반드시 등에 메고 돌아와야 한다."
핫산은 즉시 마을의 한쪽 끝에 있는 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내장을 산 핫산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내장을 메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흘러내리는 핏물은 순식간에 핫산의 머리에서 발끝까지를 얼룩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몰골로 마을의 절반을 가로질러 돌아가야 하는 핫산은 난감한 심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아직도 돈 많은 세력가로 알고 있었으므로 길에서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핫산은 무관한 척, 태연한 척 걷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모욕감으로 얼룩져가고 있었습니다. 핫산이 힘겹게 사원으로 돌아왔을 때, 스승은 내장을 부엌으로 가져가서 요리사에게 전해주고 모든 제자들이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수프를 끓이라고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요리사는 그렇게 많은 양의 내장을 끓여낼 만한 큰 냄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문제란 말인가?" 핫산을 바라보면서 스승이 다시 말했습니다.
"핫산아, 지금 당장 정육점에 가서 큰 냄비를 빌려오도록 하여라." 정육점은 마을의 반대편 끝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핫산은 피로 얼룩진 흉측한 모습으로 이번엔 반대쪽 마을을 가로질러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길에서 사람을 마주칠 때마다 핫산은 매번 심한 모욕감으로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핫산은 스승이 시킨 대로 커다란 냄비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더러워진 몸을 씻으러 부리나케 세면장으로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스승은 핫산을 다시 불러 말했습니다.
"핫산아, 지금 당장 시장으로 가거라. 그리고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혹시 등에 짐승의 내장을 지고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도록 해라."
핫산은 스승이 시키는 대로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혹시 조금 전에 등에 짐승의 내장을 지고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다거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핫산이 사원으로 돌아오자 스승은 이번에는 정육점 방향으로 가면서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라고 했고, 이번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피로 얼룩진 채 큰 냄비를 들고 가는 사람을 아무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핫산이 이 얘기를 스승에게 전했을 때 스승이 말했습니다.
"이제 알겠느냐? 아무도 너를 보았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너는 사람들이 형편없는 네 모습을 보고 너를 비웃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아무도 네 모습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다만 네 스스로가 남의 시선을 대신하여 네 시선으로 너를 바라보았을 뿐이다.” 저녁이 되자 스승은 큰 잔치를 준비하고, 모든 제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은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마음껏 들라. 이 수프는 핫산의 자존심과 명예로 만든 수프다.”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남의 시선은 실제로는 우리 자신의 시선입니다.
우리는 간혹 자존심이 상해서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좀더 자세히 묵상하면 의외로 매우 단순한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정과 가족간의 관계 및 평화보다도 내 자존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할 경우에는 주님보다도 내 자존심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때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일들이 우리 안에서, 또 삶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외모에 대한 상처가 있는 사람은 외모에 대하여 자존심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돈에 대한 상처가 있는 사람은 돈에 대하여 자존심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미인에게는 못 생겼다는 말이 큰 상처가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외모에 대한 상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상처는 자존심을 공격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자하고, 온유하고, 사랑이신 주님의 말씀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말씀을 하십니다. 자신의 딸을 치유해 달라고 찾아온 이방 여인에게 당시의 유대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냉대를 합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개’로 비유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왜 그러셨을까요? 아마도 이 여인은 자존심이 상당히 강한 것같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에 대한 상처가 자존심으로 작용했던 듯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주님의 이런 태도에 담담히 고백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여인에게 주님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자기 자존심보다도 주님을 더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 때문에 불순종한다면 내 자존심이 어느새 우상이 되어 있는 것이겠지요.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만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자존심 상하는 것은 못참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사람들에게는 꼭 자존심 상할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이 사람들은 자존심 때문에 관계를 파괴하고,일을 버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자존심보다 소중한 주님을 만나지 않고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실상과 증거는 내 자존심보다도 주님이 더 소중함을 고백할 때 비로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존심! 이것이 주님보다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초등학생 어린이가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며 100만원짜리 수표를 꺼냈습니다. 종업원은 어린아이가 너무 큰 돈을 가지고 있는것이 이상하여 부모에게 확인을 한 다음 물건을 팔 수 있다고 하면서 아이의 어머니 손전화번호를 물어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의 엄마가 하는 말입니다.
"그까짓 100만원짜리 수표를 냈다고 확인 전화를 하다니... 도대체 우리 아이를 뭘로 보는 거에요? 아이의 자존심을 구기지 마세요." 와~ 정말 대단한 어머니이십니다. 자식에게 100만원씩 쓸 수 있는 돈을 주는것도 놀랍고, 어릴적부터 아이의 자존심을 빡쎄게 세워주는 모성애도 눈물겹네요. 도대체 얼마나 잘 사는 부자이기에...
하지만 한달 월급이 100만원이 안되는 아르바이트 종업원의 자존심은 그날 무참하게 짓밟혔답니다. 이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자존심'이란 말 그대로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자존심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짓을 안 할 것이며 자존심이 있다면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며 자존심이 있다면 양심을 파는 짓은 안 할 것이며 자존심이 있다면 열심히 일해서 구차하게 살지 않을 것이며 자존심이 있다면 쩨쩨하지 굴지 않을 것이며 자존심이 있다면 자신의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자존심이 강한 것은 '콧대가 높은 것'과는 다릅니다. 교만하고 무례하고 건방지고 도도하고 남을 깔보는 것은 그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쫌팽이 마음입니다. 쫌팽이 같은 마음과 자존심을 혼동하지 마세요 자존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존경과 사랑, 가치, 능력 등에 대한 평가입니다. 자존심을 높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칭찬과 격려입니다. 자녀들은 칭찬과 격려 속에서 자존감이 키워집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디슨의 어머니를 봅시다, 에디슨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로부터 바보 멍청이라며 퇴학당했습니다. 퇴학맞고 집에 오는 자녀들을 반가이 맞을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디슨의 어머니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에디슨을 힘있게 안으며 "세상 사람이 다 너를 바보 멍청이라고 조롱해도 하나님은 너를 조롱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너를 조롱하지 않는 것 같이 나도 너를 조롱하지 않는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한 작은 동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열네 살 된 윌리암이라는 소년은 동리에서 평판이 대단히 나빴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지도를 할 수 없었던 거칠고 못된 소년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많은 학생들에게 점차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학교 당국에서도 큰 문제였습니다. 그때에 새로 부임해 온 교사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이 새 교사는 윌리암 소년에 대한 말을 듣고 그를 한 번 지도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동료 교사들은 모두 말렸습니다. 공연히 봉변이나 당할터이니 손을 대지 말라고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교사는 윌리암 소년을 차근차근 관찰해 가면서 그의 형편과 성격을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희망이 없다고 낙인이 찍히고 틀임없이 악한 사람이 될 곳이라는 인정을 받고 있는 윌리암 소년을 친절과 이해와 끈기로 지도해 갔습니다. 교사는 못된 그 소년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선과 악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참된 자존심과 포부를 넣어 주었습니다. 그 교사는 눈물로 씨를 뿌린 것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뿌려진 씨앗이 싹을 트고 땅에 뿌리를 내고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년은 나쁜 버릇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밤잠을 안 자며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는 대학에 진학을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우등이라는 명예로 졸업을 했습니다. 윌리암은 계속 법률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결국 미국 대법원의 부판사가 되었습니다. 윌리암은 뉴욕 주의 주지사가 되었고 드디어는 미국의 국무장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려서 몹쓸 인간으로 점찍혀 버림받았으나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 한 교사의 지도로 이처럼 위대하고 뜻 있는 일생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영국 어느 가정에서 치약 하나 때문에 이혼하고 가정이 파괴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자는 대범하고 한편 부주의한 여자인 반면에 남자는 꼼꼼하고 실수를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치약을 사용할 때 여자는 치약의 중간을 아무렇게나 꾹 짜서 퍽 집어던지는 반면에 남편은 치약의 꼬리부터 차근차근 눌러 사용하기 때문에 아내에게 왜 그렇게 쓰느냐고 잔소리를 하면 아내는 뭐 치약 하나가 얼마나 한다고 잔소리를 하느냐고 덤벼들곤 했습니다. 서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싸우곤 하다가 이혼하고 아이들은 고아원에 가고 귀한 가정 하나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부부가 서로 똑똑한 체하고 자존심만 세우려 들면 그 가정은 파괴되고 맙니다. 서로 서로 똑똑한 체하고 상대방의 잘 잘못만 따지고 옳고 그른 것만 따지려 들면 그 가정은 죽고 맙니다.
누군가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참지 못하고 싸워서라도 끝까지 사과를 받아내야 속이 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방 눈치를 살피며 아무 소리도 못하고 사는 사람에 비하면 자신을 지키고 주장하는 것이 무척 당당해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은 너무 자신이 없고 두렵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으면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과잉 방어하고 공격하는 일종의 심리적 방어 기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자신감이란 환경과 상대방에 의해 자신이 평가되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와 의미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날 무시하더라도 결코 자신의 존엄성이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에 의해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상대방의 평가를 무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창조주 하나님이 주시는 의와 존귀함을 지닌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긍심을 가질 때 상대방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속어에는 ‘제 잘난 멋에 산다’는 말도 있습니다. 메추라기도 사냥꾼을 붙들고 내 새끼는 숲속에서 제일 예쁘게 생겼으니 잡지 말라고 부탁한다는 우화도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자존심에 관한 것들입니다. 우리들은 보통 자존심은 내가 나를 높이는 것으로 알기 쉽습니다. 남에게 짓밟히거나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것은 진정한 자존심이 아닌데 말입니다. 우리가 아는 자존심은 자기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우고 자기 이익을 지키고 대인관계에서 자기를 방어하고 자기를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존심이라기보다 자기중심주의적 사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존심은 남의 침해에 반격하여 일어나는 무기가 아니라 고유한 생명 그 자체요, 특성이며 빛깔인 것입니다. 참된 의미에서 자존심은 자기가 자기 모습을 지키고 세상에 물들지 않으려는 거룩한 정신입니다. 비록 오늘 불우하더라도 자기 능력을 인정하며 자족할 줄 압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을 위해 영원한 것과 바꾸지 않습니다. 금이나 은을 위해 자기의 바른 생각을 꺾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거룩한 자존심인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자존심을 가진 사람은 가치 기준을 스스로 정할 뿐 남을 자기 삶의 표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저 남의 모습을 자기 반성의 거울로 받아드릴 뿐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음을 알고 남을 원망하거나 책임을 전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시한 사람들은 자기 자존심을 지키느라 흔한 말로 오리발을 내밉니다. 어떤 일도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더러운 자존심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존심은 곤궁에 처했을 때 그 무게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열등의식이 있는 사람은 피해의식에 젖어 있어 그 열등의식을 호도하고 감추기 위해 이상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러면 그것을 자기의 자존심으로 오해합니다. 이런 변질된 자존심 때문에 자기도, 남도 불행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자존심의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남도 사랑합니다. 거룩한 자존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 앞에서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구차한 삶을 위해 아부하지도 않고 불의와 재물과 명예와 권력 앞에서도 꺾이지 않습니다. 그런 친구를 한 명을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유달리 많이 받았으나 형제들의 미움을 사 애굽상인에게 팔려가 종이 됩니다. 종살이를 하는 중 주인 여인에게 유혹을 받으나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것으로 미움을 사 무고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애굽을 다스리는 총리가 됩니다. 이 사람의 자존심이 거룩한 자존심인 것입니다. 형제들이 팔았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고생을 해도 누구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임금에게 아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신앙만 지켰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지키니 자존심도 지켜진 것입니다. 거룩한 자존심은 신앙을 지킬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한1서 3:1)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로마서 8:17)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벧전2:9)
자신의 의미와 가능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큰일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자각은 자신의 잠재력을 능률화하고 극대화하는 기초가 됩니다. 비록 우리는 연약하지만 우리를 강하게 만드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요, 택하신 족속이며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모든 일들은 정말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그분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긍지와 거룩한 자존심은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는 때로는 나의 자존심이나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신앙과 용기를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때로 자존심의 문제로 상처받고, 상처 주기도 하면서 고통 당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 자존심보다 소중한 주님을 발견하게 하소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녀가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성도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섬기는 아름다운 관계를 이루어가게 하소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데 더욱 힘을 기울이도록 해주시고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수많은 선교사님들을 돕는 일에 힘쓸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이 모든 일의 주인이시오니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자존심

성경: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마18:15)

어떤 선교원에 특별한 교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은 선생님과 아이가 일대 일로 만나는 곳입니다. 아무리 말을 듣지 않는 아이라도 선생님과 단 둘이 앉아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거기서는 아이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비록 자신이 잘못했더라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지적받으면 큰 상처를 받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교회 공동체에서 형제의 죄를 다룰 때 신중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고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의 잘못을 떠들며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혜롭게 일대 일로 만나 오직 그를 죄에서 구원하려는 마음으로 사랑의 권고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만나서 잘못을 깨닫게 하셨고 우리는 그 참사랑을 알고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범한 형제를 찾아갈 때 조용히, 그리고 혼자서 사랑을 안고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 기도: 다른 사람에게 충고를 할 때는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하게 하소서.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주님을 위해서는 나의 자존심을 버릴 각오가 되어있는가?
0 과거에 자존심이 상했던 경험을 이야기 해보세요
0 나는 이타적인 자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하는가?
0 지금 내 안에 없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0 내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비치고 있는가?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 자존심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자존심'이란 말 그대로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자존심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할 짓을 안 할 것이며
자존심이 있다면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며
자존심이 있다면 양심을 파는 짓은 안 할 것이며
자존심이 있다면 열심히 일해서 구차하게 살지 않을 것이며
자존심이 있다면 쩨쩨하지 굴지 않을 것이며
자존심이 있다면 자신의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자존심이 강한 것은 '콧대가 높은 것'과는 다릅니다.
교만하고 무례하고 건방지고 도도하고 남을 깔보는 것은
그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쫌팽이 마음입니다.
쫌팽이 같은 마음과 자존심을 혼동하지 마세요

* 예화(2): 겸손과 호의

마빈 토케이어가 편집한 탈무드에 시집가는 딸에게 보내는 현명한 어머니의 글이 실려있습니다.

"내 딸아! 만약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다룰 것이다. 그러나 네가 노예 여자처럼 행동하려고 하면, 남편은 너를 노예처럼 다룰 것이다. 만약 네가 너무 자존심이 높아서 그에게 봉사를 게을리 한다면
그는 너를 하녀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만약 남편이 그의 친구를 방문할 때는, 그를 목욕탕에 들어가게 해서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여 방문토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남편으로부터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다. 항상 가정에 신경을 쓰고, 그의 소지품을 소중하게 해라. 그는 기뻐서 너의 머리 위에 관을 바칠 것이다."
모든 관계를 파괴하는 가장 큰 원수는 바로 '교만'입니다. 반대로 모든 관계를 친밀하게 만드는 비결은 '겸손'과 '호의'일 것입니다.

* 예화(3): 멋진 부모의 10계명

1. 늘 긍정적인 말로 자녀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십시오.
2. 부모의 목표만을 강요하지 말고 자녀의 꿈을 존중하십시오.
3. 그리스도를 닮는 생활의 본을 자녀에게 보이십시오.
4. 자녀들을 무시하지 말고 인격적인 한 사람으로 여기십시오.
5. 일시적인 감정으로 자녀에게 매를 들지 마십시오.
6. 자녀에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지 마십시오.
7. 자녀의 요구를 무조건 거절하기 보다 선별하여 판단할 줄 아는 식견을 가지십시오.
8. 부모도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자녀 앞이라도 사과하십시오.
9. 자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자존심이 상할 만한 언행을 삼가십시오.
10. 자녀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문제와 고민을 들어주는 친구가 되십시오.

4. 찬송: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1.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2. 왜 내게 굳센 믿음과 또 복음 주셔서 내맘이 항상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3.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4. 주 언제 강림하실지 혹 밤에 혹 낮에 또 주님 만날 그곳도 난 알 수 없도다

[후렴]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5. 금언
0 자존심은 어리석은 자가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다.(헤로도토스)
0 자존심은 악마의 화원에 피는 꽃이다.(영국 격언)
0 자존심은 맑은 미덕의 원천이다. 허영심은 거의 모든 악덕과 못된 버릇의 원천이다.(샹폴)
0 전쟁은 자존심의 아들이며, 자존심은 부자의 딸이다.(스위프트)
0 자존심은 미덕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은 많은 미덕의 어버이이다.(라콘)
0 자존심 없는 사람처럼 비굴하고 가엾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자존심은 오만한 자세가 아니라 자신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과 행동이다.(백락준)
0 자존심은 배타가 아니다. 또한 교만도 아니다. 다만 자기 확립이다. 자기 강조다. 자존심이 없는 곳에 얄미운 아첨이 있다. 더러운 굴복이 있다. 넋빠진 우상숭배가 있다. 위대한 개인, 위대한 민족이 이 자손심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다.(이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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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3 열왕기하 나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file 왕하6:14-19  이정수 목사  2010-08-20 2530
14552 시편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Where Is Justice?) 시52:1-9  김영봉 목사  2013-09-16 2529
14551 고린도전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다"(Our Toils Are Not In Vain) 고전15:50-58  김영봉 목사  2013-09-16 2529
14550 요한복음 은혜와 진리가 만날 때(When Grace Meets Truth) 요1:14  김영봉 목사  2013-01-24 2529
14549 빌립보서 자족의 능력 빌4:10-13  김동호 목사  2013-01-10 2529
14548 신명기 하나님이 생명이다 신30:15-20  정용섭 목사  2011-03-07 2529
14547 창세기 하나님께서 길을 막으실 때 ..... 창27:30-40  이정원 목사  2010-02-12 2529
» 마태복음 자존심 마15:21∼28  한태완 목사  2009-03-27 2529
14545 마태복음 삶의 우선 순위를 정하라 마6:33  조용기 목사  2008-09-23 2529
14544 에배소서 달라진 나를 발견하자 엡6:10-20  하용조 목사  2013-07-03 2528
14543 마태복음 메시아는 비밀이다 마17:1-9  정용섭 목사  2011-03-07 2528
14542 창세기 하나님의 얼굴 창32:23-33  정용섭 목사  2010-03-30 2528
14541 히브리서 믿음의 실상 히11:1~2, 17~19  노희정 형제  2008-08-25 2528
14540 사도행전 좋은 교회 행20:28-31  이상호 목사  2013-06-12 2527
14539 시편 동굴과 터널 시23:4-6  조용기 목사  2012-07-04 2527
14538 시편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 하소서! 시51:10  이정수 목사  2010-07-08 2527
14537 역대하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대하20:5~12  박노열 목사  2009-12-13 2527
14536 사도행전 일어나야 할 사람 행3:1-10  김필곤 목사  2009-11-28 2527
14535 욥기 시련과 연단 욥23:10  한태완 목사  2007-11-11 2527
14534 역대하 교만하여 진 웃시야. 대하26:4-12  한태완 목사  2007-11-07 2527
14533 시편 주께서 복 주시기를 시128:1-6  류공석 목사  2013-03-15 2526
14532 고린도후 영적인 사람의 4대 특징 고후3:12-18  이한규 목사  2011-06-16 2526
14531 시편 여호와의 산 시온의 찬가 시48:1-14  한태완 목사  2011-05-12 2526
14530 마태복음 너희는 마음에 두려워하지 말라! 마10:29-31  이정수 목사  2010-09-18 2526
14529 잠언 복 받을 성도의 자세 잠8:14-36  민병석 목사  2010-04-25 2526
14528 열왕기상 임종 때 남긴 마지막 말 [1] 왕상 2: 1- 10  한태완 목사  2014-03-27 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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