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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기도의 훈련

수도관상피정 리처드 포스트............... 조회 수 2804 추천 수 0 2009.03.28 21: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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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도의 훈련

리차드 포스트  Celebration of discipline, (권달천. 황을호 역)
  ?영적훈련과 성장? (생명의 말씀사, 2006, 2판 42쇄). pp. 29~

기도의 훈련
나는 너희가 간구하는 근거가 되며, 너희가 그 근거를 갖는 것이 나의 뜻이다. 내가 너희로 그것을 원하게 한 후에야, 내가 너희로 간구하도록 한 후에야 너희는 그것을 간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간구하지 않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 노리지의 줄리안 (Juliana of Norwich)

기도는 우리들로 하여금 영적 생활의 최전방에 서게 한다. 모든 영적 훈련 중에서 기도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기도가 우리를 아버지와 영원한 교제 가운데로 이끌기 때문이다. 묵상은 우리를 내적 삶으로 인도한다. 금식은 하나의 부수적인 수단이다. 공부는 우리의 지성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우리들로 하여금 인간 심령의 가장 깊고 가장 높은 행위 속에 들어가게 하는 것은 기도의 훈련이다. 진정한 기도는 생활을 변화시키고 또 생활을 창조한다. 월리엄 캐리(William Carey)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기도-은밀하고 열렬한 믿음의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밑뿌리에 있다."1)

기도하는 것은 변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데 사용하시는 중요한 수단이다. 우리가 변화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 생활의 큰 특징인 기도를 버릴 것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수록 우리의 부족함을 더 잘 보게 되고, 그리고 그리스도와 일치하기를 더욱더 원하게 된다. 월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는, 삶에서 우리가 할 일은하나님의 "사랑의 들보"를 짊어지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피하기 위하여 얼마나 자주 도피처를 만드는가? 하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서서히 그리고 자비롭게 우리들이 숨어 있는 장소를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주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그 숨어 있던 장소에서 나와 자유롭게 되도록 하신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올바르게 구하는 일은 정욕이 변화되는 일을 포함한다. 진정한 기도를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원하게 되며, 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게 된다. 기도할 때 우리는 사물을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에서 보는 법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은 모두 다 기도를 그들의 삶의 주된 일로 보았다. 마가복음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다윗의 마음은 잠의 유혹에서 떠나도록 하였다.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시 63:1). 사도들이 다른 중요하고 필요한 일에 힘을 기울이도록 유혹을 받았을 때, 그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사역에 계속적으로 자신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다(행 6:4).

마틴 루터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루에 세 시간씩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그는 또 다음 말을 영적 좌우명으로 여겼다. "기도를 잘하는 사람은 연구를 잘한다."2)

요한 웨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은 오직 기도에 응답하여 일하신다."3) 웨슬리는 하루에 두 시간을 기도하는 일에 바침으로 그의 확신을 뒷받침하였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의 생애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기도에 있다. 그의 일기는 기도와 금식과 묵상에 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오두막에 홀로 있기를 즐겨 한다. 나는 이 날을 하나님 앞에서 은밀히 금식하고 기도하는 날로 떼어 놓았다."4)

믿음의 최전방에서 탐험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그들의 의 변두리에 덧붙은 작은 습관이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이며 그들의 가장 생산적인 시기의 가장 진지한 일이었다. 월리엄 펜은 조지 폭스(George Fox)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기도에 뛰어났다‥‥‥내가 보고 느낀 자태 가운데서 가장 위엄 있고, 가장 활기 있고 가장 존경할 만한 자태는 그의 기도하는 자태였다."5)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은 기도하는 그 거룩한 일을 하기 위하여 하루에 일곱 차례씩 물러가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자정에 기도하고, 새벽에 다시 기도하고, 그 다음에는 아홉 시에, 또 열두 시에, 세 시에, 여섯 시에, 밤 아홉시에 기도하였다.

인도의 존 하이드(John Hyde)는 "기도하는 하이드"6)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기도가 그의 생애를 지배하는 특징이 있었다. 내면적인 삶 깊은 곳에 도전한 사람들 모두에게 있어서 기도는 호흡이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그러한 모범에 용기를 얻기보다는 오히려 실망한다. 그들 "믿음의 영웅들"이 체험한 것은 우리들이 체험하는 것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실망하기가 쉽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을 자책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서 우리를 만나신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점진적으로 깊은 데로 들어가게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따금씩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갑자기 올림픽 마라톤에 나갈 수는 없다.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동안의 연습과 준비가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점진적인 발전을 해 나갈 때 일년 후에는 보다 더 성공적인 기도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우주의 모든 것이 이미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처음부터 낙심하기가 쉽다. 우리는 이렇게 침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성경은 결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에 나타난 기도자들을 보면 그들은 그들의 기도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가운데 기도하였다. 사도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고전 3:9)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건의 결과를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닫힌 세계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이 아니라 스토아 철학이다. 현상태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체념하도록 강조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라 에픽테투스(Epicte -tus) 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모세는 그가 상황을 바꿀 수 있고, 심지어 하나님의 마음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담대하게 기도하였다. 사실상 성경은 우주가 열려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고, 하나님은 자신의 변함없는 사랑을 따라 마음을 늘 바꾸신다는 것을 말해준다(출 32:14 ; 욘 3:10).

이 사실은 우리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가져다주는 동시에 중대한 책임을 부여하기도 한다. 우리는 미래를 결정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 우리가 올바르게 기도하면 역사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 우리는 기도로써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이 가장 숭고한 인간의 행동을 배우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자극을 받아야 할까?

기도는 이렇게 대단하고 광범위한 주제이기 때문에 기도의 모든 면을 한 장에서 다루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기도에 관하여 정말로 좋은 책들이 많이 저술되었다. 가장 좋은 책 중 하나가 앤드류 머리(Andrew Hurray)의 고전적인 책 ?그리스도의 기도 학교에서?(With Christ in the School of Prayer -생명의 말씀사 역간)이다.

기도의 방법을 알기 원한다면 광범위하게 책을 읽고 깊은 체험을 하는 것이 좋다. 한 측면에 한정하는 일이 흔히 명백성을 증대시키기 때문에 본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함으로 어떻게 영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지를 배우는 데 한하도록 하겠다. 현대인들은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최선의 힘을 이 과업에 바쳐야 한다.

기도를 배울 것

진정한 기도는 배워야 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요청하였다.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눅 11:1). 제자들은 항상 기도를 하여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기도의 질과 양은 그들로 하여금 기도에 관하여 그들이 아는 것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도록 만들었다. 그들의 기도가 변화를 일으키려면 몇 가지 배워야 할 사항이 있었다.

기도에는 배움의 과정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자유함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배우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묻고, 실험하고, 심지어 실패할 수도 있었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열성적으로 많은 것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지만 얻은 것은 아주 적었다. 그렇지만 이때 나는 무엇인가 과오를 저지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무엇인가 다른 것을 배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복음서에서 기도에 관한 모든 말씀을 취하여 따로 모았다. 내가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었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응답받지 못한 기도에 대해 내가 배운 변명과 합리화가 잘못되어 있든지,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의 무력한 체험에 일치되지 않고 나의 체험이 예수님의 말씀에 일치되게 하도록 기도를 배우기로 결심하였다.

예수님의 기도에서 가장 놀라운 특징은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이라는 말로 결론을 내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사도들이나 선지자들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는 그와 같이 하지 않았다. 그들은 믿음의 기도를 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성령 속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특정 상황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의 기도는 너무나도 적극적이어서 종종 "걸어라", "나아라", "일어서라" 등 직접적이고도 권위 있는 명령 형태를 취하였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거기에는 우물쭈물한다거나 실험적으로 한다거나 반신반의하는 그런 여지가 없었다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즉 거기에는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이 없었다.

물론 "만일 주의 뜻이라면"이라고 기도하는 것이 적합한 때와 장소가 있다. 예를 들면 인도를 구하는 기도를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알고 싶어한다. "주의 뜻은 무엇입니까?" "주께서는 무엇을 기뻐하십니까?"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주의 나라를 확장시킬 수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삶 전체에 걸쳐이루어져야 할, 뜻을 구하는 기도이다.

그리고 포기의 기도에서는,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나 길과 배치될 때는 언제든지 우리의 뜻을 포기한다. 분명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적 욕구가 방해하는 경우를 누구나 경험한다. 그런 때는 주님이 동산에서 하신 기도,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를 따라야 한다.

배우면서 나는 기도에 있어서 나보다 더 큰 힘과 효과를 체험하는 사람들을 찾았다. 그리고 또 기도에 관한 좋은 책들을 읽음으로써 과거의 기도의 거장들의 체험과 지혜를 찾았다. 나는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구약의 기도의 용사들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그와 동시에 나는 변화가 발생할 것을 기대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하기 전에 완전해지거나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너무나 감사히 여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시작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포시드(P. T. Forsythe)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기도와 신앙생할의 관계는 최초의(독창적인) 연구와 과학 사이의 관계와 같다."
7) 나는 내가 성령의 학교에서 "최초의(독창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 것같이 느꼈다. 그 체험은 말로 다할 수 없이 감격적이었다. 실패처럼 보이는 체험이 모두 새로운 배움의 과정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언제나 함께하시는 스승이셨으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은 점진적으로 나의 체험에 적용되었다.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기도하는 일이 배우는 과정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기도를 거짓되다고 또는 비현실적이라고 포기해 버리는 오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켰는데도 화면이 나오지 않을 때 우리는 전파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바로잡을 수 있다. 우리는 화면을 전달하는 그 신비로운 힘의 흐름을 무엇이 차단하고 있는지를 발견할 때까지 플러그나 스위치 등을 조사한다. 우리는 텔레비전이 작동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함으로써 제대로 고쳐졌는지를 알 수 있다.

기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에 우리의 요구 사항이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우리가 올바르게 기도하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고장"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기도를 그릇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우리들 속에 무엇인가가 변화되어야 할지도, 우리가 배워야 할 새로운 기도의 원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들은 후에 필요한 조정을 한다. 그리고 다시 시도한다. 우리는 텔레비전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가 응답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배우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측면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과 접촉하는 일이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이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실제로 접촉이 되어 있지 않은데도 접촉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이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텔레비전의 많은 프로그램은 당신의 방을 통과하고 있지만 텔레비전 채널이 거기에 맞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 프로그램을 잡지 못한다.

사람들은 모든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되풀이하고 있는데도 아무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접촉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먼저 정신을 집중하고 하나님의 조용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호흡에 맞추는 것은 신령한 일이다. 이 신령한 일이 없으면 기도는 헛된 반복에 그치고 만다(마 6:7).

성공적인 중보 기도를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떤 사람이 기도를 하였는데, 처음에는 기도는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점점 더 조용하게 되어서 결국 기도는 듣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8)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것은 중보의 기도에 필요한 전주곡이다. 중보의 기도를 하는 일은-때때로 믿음의 기도라고 일컬어진다-아버지의 지시를 구하는 기도를 계속적으로 드리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듣고, 알고, 그리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는 항상 믿음의 기도에 선행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배우는 데 있어서 그 출발점은 하나님의 인도를 듣는 데 있다. 처음에는 아주머니의 관절염치료를 위해 20년 동안이나 해온 기도를 보류해 두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육체적인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항상 가장 어려운 것부터 먼저 기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귀를 기울이고 들을 때 우리는 감기나 혹은 귀앓이 같은 작은 문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은 문제에 있어서의 성공은 우리들로 하여금 보다 더 큰 문제에 대한 자신을 가지게 한다. 우리가 고요한 가운데 귀를 기울이고 듣는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때로 우리는 이 어린이를 위하여 혹은 저 가정을 위하여 기도할만한 믿음이 없다고 염려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염려를 버려야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을 통하여 위대한 기적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찾아가서 기도해 주겠다고 하는 그 용기가 일반적으로 충분한 믿음의 증표이다. 흔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믿음이 아니라 동정심이다. 기도를 하는 사람과 기도를 받는 사람 사이의 순수한 동정심이 흔히 변화를 일으킨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셨다는 말씀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동정심이 신약성경의 모든 치료에 있어서 명백한 특징이었다.

우리는 "물질"로서의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께서 주신 동정심과 관심을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가지고 있다면 기도할 때 우리의 믿음은 자라나고 강해질 것이다. 사실 우리가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우리 자신의 힘으로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주기를 원하게 된다. 바로 그 원하는 마음이 우리들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만든다.

 동정심을 내적으로 느끼는 일이 "이것이 너의 기도 제목이다"하는 가장 명확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지시이다. 묵상을 하는 시간에 당신의 마음속에 중보의 기도를 위한 강권과 정확성에 대한 확신과 성령의 감동이 발생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내적인 긍정이 당신에게 그 사람이나 혹은 그 상황을 위해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승인이다. 만약 당신의 마음에 어떤 무거운 느낌이 수반된다면 당신은 그 문제를 보류해 두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위해서는 다른 그 누구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만드실 것이다.

기도의 언덕

우리는 기도를 너무 복잡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기도를 배워야 하는 것으로 알게 되면 기도를 복잡하게 만들기가 쉽다. 기도를 복잡하게 만들면 만들수록 사람들이 기도를 배우려고 우리에게 더욱더 의존하기 때문에 그런 유혹에 빠지기가 쉽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린이가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나오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어린이가 아버지와 교통하는 일에 있어서의 특징은 솔직과 정직과 신뢰이다.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시는 이유는 자녀가 구하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그 친밀함에는 엄숙함과 미소, 그 둘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이 영혼에게 미소를 보내고 그리고 그 영혼이 하나님께 미소의 반응을 나타낼 때 그 영혼은 인격의 열매를 맺는다."9)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어린이는 점심이 주어진다는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가운데 점심을 요청한다. 또 그는 내일 샌드위치를 먹지 못하리라는 염려 때문에 오늘의 샌드위치를 감추어 둘 필요가 없다. 어린이의 생각에는 샌드위치가 무한히 공급된다. 어린이는 아버지에게 말하는 일에 대하여 어렵게 생각하거나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어린이는 자신의 요구를 말하는 것을 난처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아주 간단한 것이라도 아버지께 가져가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들은 또한 상상의 가치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준다. 묵상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기도하는 일에 있어서도 상상은 힘 있는 도구이다. 우리는 상상으로 기도하는 것을 수준 이하의 것으로 여겨 꺼려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린이들에게는 그와 같은 망설임이 없다.

아빌라의 테레사도 역시 그와 같은 망설임을 가지지 않았다. 테레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것이 나의 기도의 방법이었다. 나는 나의 이해력으로 생각할 수 없으므로, 내 속에서 그리스도를 그려 보려고 하였다‥‥‥ 나는 이러한 단순한 일들을 많이 하였다‥‥‥ 나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나의 영혼이 많은 것을 얻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나는 기도가 무엇인지를 모르고도 기도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10)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성 조엔(Saint Joan)에서 아크의 조엔은 그녀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때 회의주의자들은 그녀에게 그 음성은 그녀의 상상에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하였다. 조엔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상상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방법입니다."

상상은 종종 믿음의 문을 연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어진 가정이 회복되거나, 병든 사람이 낫는 것을 보여 주신다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고 믿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은 이와 같은 일을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상상으로 기도하는 일에 잘 응한다.

한번은 내가 몹시 아픈 여자 아기를 위해 기도하려고 한 가정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 아기의 오빠가 방 안에 있었는데, 그는 네 살이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동생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아이는 아주 기뻐하였다. 나도 역시 기뻐하였다. 어린이들의 기도가 특별한 효력을 나타내는 일이 흔히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내 옆 의자에 올라앉았다. 이때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우리 재미있는 일을 생각해 볼까? 잘 들어봐.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니? 그러니까 예수님이 바로 저 건너편 의자에 앉아 계신다고 생각하는 거야.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기를 기다리고 계셔. 우리가 예수님을 볼 때 줄 리가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보다 예수님의 사랑은 참 놀랍구나 하고 생각하는 거야. 예수님께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셔서 우리들에게로 오실 거야. 그러면 우리 둘이서 손을 줄리 몸에다 얹어 놓는거야.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예수님께서는 손을 우리들 손 위에 얹으실 거야. 예수님으로부터 빛이 나와서 너의 동생 줄리에게 흘러 들어가고 줄리는 낫게 돼. 그리스도의 빛이 나쁜 병균과 싸워서 마침내 병균이 모두 물러나 버린다고 생각하렴. 이제 되었지!"

그 어린이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함께 어린이같이 기도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본 그대로 될 것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드렸다. 나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또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날 아침에 줄리가 완전히 나았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하고자 한다. 우리는 사실이 아닌 어떤 것을 상상 속으로 불러내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님을 조종하여 무슨 말을 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와 정반대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할 일을 말씀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노리지의 줄리안이 한 말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간구하는 근거이시다. 우리는 전적으로 그분을 의지한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 마음에 넣어 주신 것을 반영하는 행동일 뿐이다.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롬 8:26) 성령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면 생각도 모습도 말도 모두 헛것이다.

교실에서 문제를 겪는 어린이들은 기도에 신속하게 반응을 나타낸다. 나의 친구 하나는 정서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는 그 어린이들을 위하여 기도를 시작하기로 결심하였다. 물론 그는 어린이들에게 그런 계획을 말하지 않고 기도하는 일을 시작하였다.

어린이들 가운데 하나가 책상 아래로 기어 들어가 태아와 같은 자세를 취하였을 때 나의 친구는 그 어린이를 팔에 안고 그리스도께서 그 어린이의 상처와 자기 증오를 치료해 주시기를 말없이 기도하였다. 그 어린이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기 위하여 그 친구는 교실을 걸으면서 그의 일상적인 임무를 계속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기도를 하였다.

잠시 후에 그 어린이는 편안한 자세로 그의 책상에 앉게 되었다. 때때로 나의 친구는 그 어린이에게 경주에서 이기는 기분이 어떠한지를 생각해 본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만약 그 어린이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나의 친구는 그 어린이에게 많은 친구들이 기뻐하며 응원하는 가운데 결승선을 통과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라고 권면하였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 어린이는 자아 수용을 강화하는 일과 아울러 그 기도 계획에 협력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해 학년말에 두 어린이를 제외한 모든 어린이가 정규 학급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물론 우연의 일치라는 것도 없지 않다. 그러나 월리엄 템플(William Temple)은 그가 기도를 하였을 때 우연의 일치는 훨씬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결혼 생활이 건전하고 온전하며 영구적인 것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결혼 생활이 심한 어려움에 부딪혀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남편 되는 사람이 다른 여자와 좋지 못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 당신이 그 가정을 위하여 30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기도할 계획을 세우기 바란다. 그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난 것을 실망하고 크게 후회하는 모습을 상상하라. 그 부정한 관계가 그 남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을 그려 보라. 그 남편이 문에 들어서서 그의 아내를 바라보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그려보라. 그들이 함께 산책을 하면서 여러 해 전에 그러했던 것과 같이 서로 정다운 사랑을 하는 것을 그려 보라. 그들이 점점 더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서로를 아끼는 것을 그려 보라.

당신은 상상 가운데서 그 남편과 다른 여자 사이에 큰 벽돌담을 세우도록 하라. 그 남편과 아내를 위해서는 깊은 관심과 사랑이 있는 가정을 건설하도록 하라. 그 가정을 그리스도의 평화로 채우도록 하라.

당신 교회의 목사와 교회 예배는 기도 속에 잠겨 있어야 한다. 바울은 그의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그의 교인들에게 그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스펄전은 성공의 원인을 그의 교회의 기도에 돌렸다. 프랭크 라우바하는 그의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대단히 민감하여 여러분들이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압니다. 만약 여러분들 가운데 한사람이 나를 넘어지게 하면 나는 그것을 느낍니다. 여러분들이 나를 위하여 기도할 때, 나는 기이한 능력을 느낍니다. 목사가 설교를 하는 동안에 교회의 모든 교인들이 열성으로 기도하면 기적이 발생합니다."11) 예배 시간이 여러분의 기도에 잠겨 있도록 하라. 높은 곳에 계시는 주님을 영상으로, 그리고 주님의 임재가 성전에 가득한 것을 그려라.

만약 성적(性的) 탈선이 있을 경우에도 진정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다. 성(性)은 마치 강물과 같은 것이다. 강물은 그 강의 올바른 통로에 있을 때 유익하고 복된 것이다. 그러나 강물이 제방 위를 넘을 때는 위험한 것이다. 그릇된 성적 욕구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방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일생 동안 결혼 생활을 통하여 함께 사는 것이다. 성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강물이 제방을 넘쳐흐르는 것을 영상으로 그리면서 주님께 그  강물이 본래의 통로로 돌아가도록 해주시기를 요청해야 한다.

당신의 자녀들은 당신의 기도를 통하여 변화를 받을 수 있고 또 변화를 받아야 한다. 자녀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적합한 시간을 택하여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기 바란다. 또한 자녀들이 밤에 잠을 잘 때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기 바란다.

한 가지 좋은 방법은 자녀들의 침실로 들어가 잠을 자는 자녀에게 당신의 손을 가볍게 얹고 기도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손이 당신의 손을 통하여 홀러 들어가서 그날 당신의 자녀가 체험한 모든 정서적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상상하기 바란다. 주님의 편화와 기쁨이 그 자녀에게 가득 차도록 하라. 잠자는 동안에 그 어린이는 기도에 대하여 아주 수용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향에 담을 쌓는 경향이 있는 의식적인 마음이 편히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으로서 당신은 어린이들을 당신의 팔에 안고 축복함으로써 놀라운 일을 행할 수 있다. 성경에 보면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를 예수님께 데리고 나왔는데, 그렇게 한 것은 예수님께서 어린이들과 논다든지 혹은 어린이들을 가르친다든지 하는 그런 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손을 어린이에게 얹고 축복하시게 하려는 것이었다(막 10:13-16).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축복하는 법을 알고 있는 어른들에게 축복을 받는 어린이는 복 있는 어린이다.

라우바하는 그가 기도에 관하여 쓴 많은 책 가운데서 "순간 기도"라고 하는 탁월한 개념을 개발하였다. 그는 "누구든지 기도하게 되는 것을 '보기' 위하여, 그리고 모든 사람이 기도하는 것을 '듣기' 위하여"12)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고 결심하였다. 사람들을 향한 열성적이고 정직한 순간 기도는 대단히  감격적인 것이며 놀라운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나는 순간 기도를 해보았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주님의 기쁨과 주님의 임재 의식이 발생하기를 속으로 구하면서 그 타전 기도를 해보았다. 때로는 사람들이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또 때로는 사람들이 뒤를 돌아다보면서 인사를 받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버스 속이나 혹은 비행기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통로를 걸어가시며 사람들의 어깨에 손을 대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의 가장 큰 기쁨은 너를 용서하고 너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는 일이다. 너는 봉오리 속에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있다-네가 만약 '예'라고 말하기만 하면 내가 그 봉오리를 싹트게 하겠다. 네가 만약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한다면 나는 너의 삶을 다스리기를 기뻐한다."

라우바하는 우리가 만약에 만나는 로든 사람들에게 타전 기도를 실험한다면 그리고 그 결과를 서로 말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만약에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계속적으로 그와 같은 기도를 한다면 한기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하나의 기도가 결합할 대 마치  물방울이 모여서 대항할 수 없는 대양을 만드는 것과 같이 큰 역사를 나타낼 것이다."13)

우리는 기도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려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서는 안 된다. 기도는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이다-우리는 일을 하고 싶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 수가 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얼마 동안 그 일을 계속하면, 우리는 그 일을 하고 싶은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우리는 피아노 연습을 하고 싶지 않은 감정을 느끼는 일이 있다. 그러나 일단 얼마 동안을 연습하고 나면 피아노를 치고 싶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도의 근육은 얼마 동안 준비 운동을 필요로 한다. 일단 중보 기도의 혈액이 흐르기 시작하면 우리는 기도를 하고 싶은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일이 우리의 시간을 너무 빼앗을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일은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시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14)

기도는 일에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 일과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로써 모든 일을 시작하고 진행한다. 기도와 행동은 결합된다.

토마스 켈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우리의 정신적 삶을 한꺼번에 하나의 이상의 수준에 머물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한 수준에서는 우리가 모든 외적 일의 요청을 생각하고, 논의하고, 이해하고, 계산하고, 그리고 대처한다. 그러나 외적인 것 배후에 있는 보다 더 깊은 수준에서는 우리가 또한 기도하며, 찬양하고, 경배하며, 거룩한 영감을 받아들일 수 있다."15)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이 있다. 우리의 마음의 열망을 테이트(Tait) 대감독의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보다 더 고귀하고 보다 더 깊고 그리고 보다 더 진실한 기도의 삶을 원한다."16)


1)  E. M. Pounds, power through prayer (기도의 능력-생명의 말씀사 역간), Chicago : Moody Press, n. d.,   p.23.
2) E. M. Pounds, power through prayer (기도의 능력-생명의 말씀사 역간), Chicago : Moody Press, n. d.,   p. 38.
3) ibid,  p.38, 77.
4) ibid.,   p.41, 54.
5) ibid., p. 13.
6)  Prayer Hyde, 기도의 사람 하이드 - 생명의 말씀사 역간.
7) Thomas Melton, Contemplative Prayer(Garden City, New York: Doubleday, 1969), p.11.
8) Soren Kierkegaard, Christian Discourses, trans. Walter Lowie(Oxford : Oxford University Press, 1940), p.324.
9) Meister Eckhart, Meister Eckhart, trans. C. de B. Evans, Vol.1(London : John M. Watkins, 1956), p.59.
10) Lynn J. Radcliffe, Making Prayer Real(New York Abington-Cokesbury Press, 1952) . p.214.
11) Frank C. Laubach, Prayer the Mightiest Force in the World (New York : Fleming H. Revell, 1946),   p.31
12) Frank C. Laubach, Learning the Vocabulary of God(Nashville : Upper Room, 1956), p.33.
13) Bounds, op. cit, p. 83.
14) Thomas R. Kelly, A Testament of Devotion (New York : Harper & Brothers, 1941), p,124.
15) ibid., p. 35.
16) Bounds, op. cit., p.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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