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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칼럼니스트모임 COLUMNIST 1999.09.19 창간 2005년 1월 31일
박연호 (칼럼니스트)
신군부의 폭압으로 국민 대부분이 꿈을 잃고 망연자실한 가운데 접어든 1980년대 초였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가혹하게 진압한 군부는 곧 이어 각 일터의 강제해고, 언론사 통폐합 등 폭력적 조치를 잇따라 발동, 재갈을 물리고 족쇄를 채웠다. 전 세계의 비난과 조롱, 무산된 민주화의 꿈, 숨통을 조이는 공포분위기, 모진 세월을 살아야 하는 무력감, 절망감 그리고 분노로 허우적대던 시절이었다. 미래, 희망 같은 것은 꿈조차 꿀 수 없었다. 꿈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군부의 집중포격을 맞은 언론계는 더 심했다. 동료들이 보이지 않는 폭력에 의해 쫓겨나고, 남은 이들은 강제 통폐합에 따른 억압과 굴욕, 두려움으로 뒤숭숭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사회 공동체의 꿈은 물론 개개인의 꿈도 단번에 박살난 것이다.
군부실세에 줄을 대 이른바 '잘 나가던' 언론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기 영혼을 그렇게 밀거래하는 것도 그들 나름으로는 꿈이었을 것이다. 독버섯처럼 강한 독성으로 주변에 많은 해독을 끼치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러나 언론계 종사자 대부분은 건전한 꿈을 가꾸어야 할 직장이 그 모양이니 뇌사상태에 빠진 듯 했다. 직장이 아니라 중환자실이었다. 내일과 미래를 생각하는 자체가 두렵고 괴로웠다.
그런 때 우리들 몇이 미세한 희망의 실마리를 찾고, 미약하나마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뜻밖에도 회사부근 조그만 분식점에서였다. 주인은 당시 30대 중반의 젊은이였다. 좁은 골목 안에 자리잡은 그의 가게는 위치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항시 손님들이 많았다. 그래 봐야 6, 7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곳이지만...
그 집 김밥이나 국수가 괜찮아서 간다고들 하지만 인스턴트 식품이나 다름없는데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는가. 굳이 다른 점이라면 이웃가게들은 문도 열지 않는 이름 아침부터 부지런을 떠는 정도일까 별다른 특징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속 깊은 곳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주인의 꿈과 열정이었다. 그는 손님이 없어도 의자에 앉는 법이 없었다. 서서 칼질을 하거나 이것저것 손질하면서 시선은 항시 바깥 골목으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자기 집에 오는 손님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행인에게도 웃는 낯으로 인사를 했다. 그 부근을 처음 지나간 사람은 저 사람 약간 맛이 간 게 아니냐고 생각할 정도였다.
종일 서 있으면 힘들텐데 왜 좀 앉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꿈을 꾸기 때문에 피로하지 않다고 했다. 신파조 대답이 우스워 머쓱해진 우리에게 그는 말했다. 남쪽지방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불우한 청소년들이 으레 그렇듯 무작정 상경, 이리저리 떠돌다 일식집에 들어갔다. 운이 좋아 요리도 배웠다. 그리고 분식집을 냈는데 장래 꿈은 일식집이라는 것이다. '너무 야무진 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말이 워낙 진지했다.
아무리 조그만 분식집이지만 일식집 경영의 모든 기초는 그곳에 다 있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손님이 있건 없건 주인이 앉아 있으면 긴장이 풀리므로 계속 서서 일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였다. 누구에게나 웃으며 인사를 하는 것은 친절 서비스의 훈련이었다. 단골이 무슨 이유로든지 한번 떠나면 되돌리는데 평균 5년이 걸리므로 한번 온 손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의 분식집을 미래의 일식집으로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긴다고 했다. 꿈이 그에게 활기와 탄력을 불어 넣어준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의 거장 F. 크라이슬러(1875~1962)가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끝없는 관심, 지속적인 노력 그리고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꿈을 실현시켜준다"고 대답했다. 크라이슬러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지만 분식점 주인은 그 세 가지를 그대로 실행하고 있었다.
독재와 폭력의 격랑 속에서 휩쓸리며 자신도 모르게 유실되어 가고 있던 우리에게 그의 꿈은 매우 시사적이었다. 밖에서 먼저 희망의 끈을 절단했는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놓았는지부터 반성하게 만들었다. 외적 상황이 어렵다고 자신의 계발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각자의 내부로 눈을 돌렸다. 차츰 기운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며 국민을 독려, 패전조국 덴마크를 절망에서 구해낸 달가스의 말로 스스로를 달래고 다잡아 나갔다.
그것은 분노를 삭이고 무의미한 불평을 줄이며, 정신건강을 양호한 상태로 유지하게 해주는 에너지요 활력소였다. 그에 힘입어 우리는 지독히 암울하고 험난했던 80년대를 무사히 건넜다.
그 80년대가 저물어가던 어느 날 시내 중심가를 지나가는데 누가 불렀다. 뒤돌아보니 그 분식집 주인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입만 벌리고 있자 자기 뒤쪽을 가리켰다. 드디어 일식집을 냈다는 것이다. 중심가의 고급 일식집이었다. '너무 야무진 것 같던 꿈'을 그는 보란 듯이 실현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가혹하고도 잔인한 시기를 살고 있다. 내일과 희망을 얘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지경이다. 생계형 범죄, 생활고로 인한 자살 등이 날로 늘고 있어 민심이 흉흉하기 짝이 없다. 원인은 다르지만 외형은 80년대 못지 않아 절망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한창 일해야 할 사람들이 일터에서 쫓겨나며, 학교를 나온 젊은이들이 사회에 첫발조차도 내딛지 못하는 고통과 절망의 상황이다. 새해라고 해서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이런 판국에 꿈을 말한다는 것은 허망한 잠꼬대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바로 이래서 꿈이 절대 필요하다. 이 질곡에서 벗어나게 해 줄 열쇠는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명한 인사들처럼 거창한 꿈이면 좋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실현가능성이 높고 자기 수준에 맞는 꿈이어야 한다. 복권, 경마 등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은 꿈이 아니라 망상이다.
꿈은 자신의 운명을 남이 아닌 자기가 경영하게 해주는 나침반이다. 이것이 없으면 자신을 통제할 수 없고 조류에 떠밀려 표류할 뿐이다.
미국의 저명한 영문학자로서 출세가도를 달리던 돈 슈나이더가 느닷없이 실직을 한 뒤 수년동안 1백1번이나 교수직 재취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결국 실패로 끝나고 목공으로 새출발한 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발견했다. 이 과정을 기록한 '절벽산책'에서 불행의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통제력을 잃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절망의 바닥에 갇혀 있을수록 꿈을 키우며 자신을 통제하고 이끌어 나가야 한다. 출구 없는 터널은 없다. 참고 전진하면 언젠가는 절망을 뒤로 하고 밝은 곳으로 나가게 마련이다. 꿈은 그걸 인도하는 안내자이다. 그가 당신의 2005년을 윤기와 탄력있는 해로 만들어 줄 것이다.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꿈, 그것이 없으면 식물인간과 다를 바 없다.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고 내일도 없다.
격월간 '전파' 1.2월호(2005.01)
박연호 (칼럼니스트)
신군부의 폭압으로 국민 대부분이 꿈을 잃고 망연자실한 가운데 접어든 1980년대 초였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가혹하게 진압한 군부는 곧 이어 각 일터의 강제해고, 언론사 통폐합 등 폭력적 조치를 잇따라 발동, 재갈을 물리고 족쇄를 채웠다. 전 세계의 비난과 조롱, 무산된 민주화의 꿈, 숨통을 조이는 공포분위기, 모진 세월을 살아야 하는 무력감, 절망감 그리고 분노로 허우적대던 시절이었다. 미래, 희망 같은 것은 꿈조차 꿀 수 없었다. 꿈은 그야말로 사치였다.
군부의 집중포격을 맞은 언론계는 더 심했다. 동료들이 보이지 않는 폭력에 의해 쫓겨나고, 남은 이들은 강제 통폐합에 따른 억압과 굴욕, 두려움으로 뒤숭숭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사회 공동체의 꿈은 물론 개개인의 꿈도 단번에 박살난 것이다.
군부실세에 줄을 대 이른바 '잘 나가던' 언론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기 영혼을 그렇게 밀거래하는 것도 그들 나름으로는 꿈이었을 것이다. 독버섯처럼 강한 독성으로 주변에 많은 해독을 끼치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러나 언론계 종사자 대부분은 건전한 꿈을 가꾸어야 할 직장이 그 모양이니 뇌사상태에 빠진 듯 했다. 직장이 아니라 중환자실이었다. 내일과 미래를 생각하는 자체가 두렵고 괴로웠다.
그런 때 우리들 몇이 미세한 희망의 실마리를 찾고, 미약하나마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뜻밖에도 회사부근 조그만 분식점에서였다. 주인은 당시 30대 중반의 젊은이였다. 좁은 골목 안에 자리잡은 그의 가게는 위치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항시 손님들이 많았다. 그래 봐야 6, 7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곳이지만...
그 집 김밥이나 국수가 괜찮아서 간다고들 하지만 인스턴트 식품이나 다름없는데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는가. 굳이 다른 점이라면 이웃가게들은 문도 열지 않는 이름 아침부터 부지런을 떠는 정도일까 별다른 특징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속 깊은 곳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 주인의 꿈과 열정이었다. 그는 손님이 없어도 의자에 앉는 법이 없었다. 서서 칼질을 하거나 이것저것 손질하면서 시선은 항시 바깥 골목으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자기 집에 오는 손님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행인에게도 웃는 낯으로 인사를 했다. 그 부근을 처음 지나간 사람은 저 사람 약간 맛이 간 게 아니냐고 생각할 정도였다.
종일 서 있으면 힘들텐데 왜 좀 앉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꿈을 꾸기 때문에 피로하지 않다고 했다. 신파조 대답이 우스워 머쓱해진 우리에게 그는 말했다. 남쪽지방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불우한 청소년들이 으레 그렇듯 무작정 상경, 이리저리 떠돌다 일식집에 들어갔다. 운이 좋아 요리도 배웠다. 그리고 분식집을 냈는데 장래 꿈은 일식집이라는 것이다. '너무 야무진 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말이 워낙 진지했다.
아무리 조그만 분식집이지만 일식집 경영의 모든 기초는 그곳에 다 있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손님이 있건 없건 주인이 앉아 있으면 긴장이 풀리므로 계속 서서 일하는 것도 그 중의 하나였다. 누구에게나 웃으며 인사를 하는 것은 친절 서비스의 훈련이었다. 단골이 무슨 이유로든지 한번 떠나면 되돌리는데 평균 5년이 걸리므로 한번 온 손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의 분식집을 미래의 일식집으로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긴다고 했다. 꿈이 그에게 활기와 탄력을 불어 넣어준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의 거장 F. 크라이슬러(1875~1962)가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끝없는 관심, 지속적인 노력 그리고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꿈을 실현시켜준다"고 대답했다. 크라이슬러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지만 분식점 주인은 그 세 가지를 그대로 실행하고 있었다.
독재와 폭력의 격랑 속에서 휩쓸리며 자신도 모르게 유실되어 가고 있던 우리에게 그의 꿈은 매우 시사적이었다. 밖에서 먼저 희망의 끈을 절단했는지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놓았는지부터 반성하게 만들었다. 외적 상황이 어렵다고 자신의 계발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각자의 내부로 눈을 돌렸다. 차츰 기운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며 국민을 독려, 패전조국 덴마크를 절망에서 구해낸 달가스의 말로 스스로를 달래고 다잡아 나갔다.
그것은 분노를 삭이고 무의미한 불평을 줄이며, 정신건강을 양호한 상태로 유지하게 해주는 에너지요 활력소였다. 그에 힘입어 우리는 지독히 암울하고 험난했던 80년대를 무사히 건넜다.
그 80년대가 저물어가던 어느 날 시내 중심가를 지나가는데 누가 불렀다. 뒤돌아보니 그 분식집 주인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입만 벌리고 있자 자기 뒤쪽을 가리켰다. 드디어 일식집을 냈다는 것이다. 중심가의 고급 일식집이었다. '너무 야무진 것 같던 꿈'을 그는 보란 듯이 실현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가혹하고도 잔인한 시기를 살고 있다. 내일과 희망을 얘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지경이다. 생계형 범죄, 생활고로 인한 자살 등이 날로 늘고 있어 민심이 흉흉하기 짝이 없다. 원인은 다르지만 외형은 80년대 못지 않아 절망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한창 일해야 할 사람들이 일터에서 쫓겨나며, 학교를 나온 젊은이들이 사회에 첫발조차도 내딛지 못하는 고통과 절망의 상황이다. 새해라고 해서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이런 판국에 꿈을 말한다는 것은 허망한 잠꼬대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바로 이래서 꿈이 절대 필요하다. 이 질곡에서 벗어나게 해 줄 열쇠는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명한 인사들처럼 거창한 꿈이면 좋겠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실현가능성이 높고 자기 수준에 맞는 꿈이어야 한다. 복권, 경마 등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은 꿈이 아니라 망상이다.
꿈은 자신의 운명을 남이 아닌 자기가 경영하게 해주는 나침반이다. 이것이 없으면 자신을 통제할 수 없고 조류에 떠밀려 표류할 뿐이다.
미국의 저명한 영문학자로서 출세가도를 달리던 돈 슈나이더가 느닷없이 실직을 한 뒤 수년동안 1백1번이나 교수직 재취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결국 실패로 끝나고 목공으로 새출발한 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발견했다. 이 과정을 기록한 '절벽산책'에서 불행의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통제력을 잃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절망의 바닥에 갇혀 있을수록 꿈을 키우며 자신을 통제하고 이끌어 나가야 한다. 출구 없는 터널은 없다. 참고 전진하면 언젠가는 절망을 뒤로 하고 밝은 곳으로 나가게 마련이다. 꿈은 그걸 인도하는 안내자이다. 그가 당신의 2005년을 윤기와 탄력있는 해로 만들어 줄 것이다.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꿈, 그것이 없으면 식물인간과 다를 바 없다.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고 내일도 없다.
격월간 '전파' 1.2월호(2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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