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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작용, 생명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두나}

칼럼수필 신영록............... 조회 수 1683 추천 수 0 2008.12.11 20: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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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작용, 생명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
1.선한 상호 작용
2.생명의 관계

***참조 문헌***
1.SQ 사회지능(대니얼 골먼/웅진)
2.나는 매일 죽는다(이중표/규장)
3.무례한 기독교(리처드 마우/ IvP)
4,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김영사)
5.끝나지 않은 길, 고통에서 자기완성으로(M. 스캇 펙/소나무)

2.생명의 관계

예수님께서 올바른 ‘선한 상호작용’에 의한 ‘감정 이입’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예를 성경에서 찾아보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4,15]”
-------> 이것은 전형적인 관심의 표명, 즉 예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여기 성경의 말씀을 보면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계신다.
이 모습을 보면, 보통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당신은 ‘생명’이시므로 이 ‘생명’을 우리에게 주는 방법이 바로 ‘본’을 보이는 방법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급기야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시는 ‘본’을 보임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 되시는가???
하나님과 죄 많은 우리의 관계가 회복되는 이 위대한 ‘선한 상호작용’이라는 생명의 관계를 처음 시작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는 바로 살리는 영[고전15:45]이시며, 생명 되시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중보(mediator:중개자)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신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딤전2:5,6]”
“For there is one God and one mediator between God and men, the man Christ Jesus, who gave himself as a ransom for
all men--the testimony given in its proper time. [NIV, Timothy 2:5,6]”

그러한 생명을 받은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우리는 바로 그 생명을 우리의 십자가인, ‘본’을 보이는 선한 상호작용에 의한 감정 이입적 공명을 통하여 우리의 이웃에게 ‘전염’
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올바른 감정이입적 공명을 통한 선한 상호작용을 하기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하는가???

그것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고,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 속에 죽기까지 스스로를 희생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다른 사람에게 본을 보이는 방법이외에는 다른 방법이란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행동으로 보여서 참으로 부끄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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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는 말은 ‘진정한 순종’을 필요로 하는데,
성경 주석에 보면, 이것은 ‘완전한 자기헌신’으로부터 가능하다는 것이다.

‘완전한 자기헌신’에 대해서 지구촌 교회 이동원 목사님은 ‘통전적 헌신’이라고 정의하셨다.
이 말은 부족한 중에도 통째로 전체를 드리는 헌신을 의미하는 말씀이라고 하신 것 같다.

그러므로 자기부정, 완벽한 자기헌신, 진정한 자신의 낮춤으로부터 나오는 순종이라는 ‘본을 보일 때에 인간과 인간 간에 그리고
우리와 예수님간의 선한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십자가' 라고 생각된다. ‘
따른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숭고함을 따른다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이 말을 다시 예수님께서 행하신 바에 따라 생각해 본다면,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Logos)이신 하나님께서,
갈릴리의 참으로 보잘 것 없는 피조물인 어부들의 발을 씻겼다[요13:14,15]는 사실이다. 발을 씻긴다는 의미는 가장 낮은 종이
자기 주인에게 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바로 가장 완전한 헌신을 의미한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행동을 하셨는가???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행위로서,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러한 본을 보이는 행동은,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하는 싸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빛과 어둠, 예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간의 싸움을 의미한다.
------->‘본’을 보이는 행동과 이 싸움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
“Do not suppose that I have come to bring peace to the earth. I did not come to bring peace, but a sword.[NIV, Matthew 10:34]”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5~39]”

위의 성경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화평을 주러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더욱이 “사람들에게
자기 부모들과도 불화”하게 하려고 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서점가에서 반기독교 정서를 대표하는 책인 ‘만들어진 신’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전 세계적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는 파괴와 전쟁에서
존경할 만한 것이 있는가??? 하고 묻고 있다.”
비록 그의 질문이 반종교적 선동을 위해서 던지는 주장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없다’이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관계한 수많은 폭력과 파괴와 살육의 근거가 된 성경 말씀은 위의 성경말씀[마10:34]에 근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무슨 말씀인가???

이사야서[사9:6]의 예수님을 지칭하는 예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평강의 왕’으로 오신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들에게는 평화가 되신다[눅2:14]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약속하셨다[요14;2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그런데 어떻게 ‘검’을 주러오셨다고 말씀하고 계시는가???
이 성경 말씀만을 보면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분쟁의 왕’으로 오신 것 같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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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하신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고, 그 다음이 부모와 자식이다. 물론 인간됨이 온전한 사람은 부모와 자식을 우선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만약에 사랑하는 자식이 아프리카나 중동으로 선교를 나간다고하면,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당신이 예수 믿는 분이라 하여도, 가지 못하게 말릴 것이다.
어느 선교사님이 간증을 하실 때, 선교에 대한 몇 가지 권면의 말씀을 하셨다.

그중에 기억나는 말씀이“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라” 그리고 “친척이나 가족이 말리는 곳으로 가라”였다. 못 가게 말리는 분은 사랑하는 가족이다.
또한 가족 때문에 못가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사람의 원수가 자기집안 식구”라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성경에도 보면 베드로와 예수님 간에 이런 논쟁이 있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못하게 말린다.
이렇게 말리는 행동은 부모가 자식을 위험한 지역에 못 가게 말리는 행동과 같으므로,
예수님은 이러한 베드로의 마음을 사람의 사사로운 감정의 일로 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원수인 사단으로 보신 것이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16:22,23]”

사실 분당 샘물교회 단기 선교 팀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 되었을 때도, 우리나라 교회에서 단기 선교 팀을 비난한 이유도,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에 비난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가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라, 갔다고 비난했다. 가지 못하게 말리는 행동은 그래도 인간적 사랑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으나,
갔다고 욕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온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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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주러 오셨다는 말씀은 무슨 말씀일까???

위의 마태복음 16:2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또한 예수님께서는“너희에게 검을 주러 왔다[마10:34]”고
말씀하시고 그 아래10:38절에서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며,
그 뒤의 10:39절에서 결론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말씀은 ‘검’과 ‘부모’ ‘자식’을 거쳐서 ‘자기 십자가’로 돌아왔다. 그리고 십자가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의미하며,
이러한 희생은 본을 보이시는 행동[요13:14,15]으로 부터 시작되고 있다.
즉 ‘검’은 ‘본’을 보이는 행동(십자가 희생 포함)과 관계가 있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다는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예수님처럼 싸워서 이겨야하는 싸움,
즉 적그리스도와, 어둠과, 마귀의 자녀와의 싸움에서 예수님의 방법으로 싸워서 이겨야하고,
예수님의 방법으로 싸울 때만이 이길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예수님도 한 알의 밀이 되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요 12:24,25]”

다시 말해서 적그리스도와 어둠과 마귀에게 속한 자들과 싸울 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발을 씻기는” 것과 같은 자기희생적 방법으로만이
승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검’이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검’은 성령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

이 ‘검의 칼날’은 적을 향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한다.
십자군 전쟁을 포함하여 역사적으로, 그리고 오늘날 전 세계 분쟁지역에서 종교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거의 모든 전쟁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또한 우리는 알아야한다.

------->도킨스의 질문은, 인간의 행위로부터 추론하여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이러한 질문을 던진 것 같다.
그러나 이들 전쟁과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그는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인간의 파괴적 속성은 종교적 문제가 아니고 인간 자체의 문제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간과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검의 칼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확실히 알고 있는 바울 사도는 자기를 쳐서 주님 앞에 복종하는 일에 조금의 긴장감도 늦추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6,27]”

별세 신앙으로 유명한 이중표 목사님은 그의 저서(나는 매일 죽는다/규장)에서“십자가는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요,
구경하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십자가는 자기 죽음을 선언하는 형틀이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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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하트마 간디는 “우리는 증오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했으며, KKK 단의 폭탄 테러에 대해서 분노한 지지자들에게, 루터 킹 목사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마26:52].’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말하며, ‘증오를 사랑으로’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증오를 사랑으로’는 진정한 ‘선한 상호작용’의 추구이며, 또한 예수 십자가 보혈의 정신을 의미하며, 이러한 정신은 바로 예수님께서
칼끝을 우리 자신에게 향한 ‘검’을 우리에게 주신 의미가 된다.
------->‘증오를 사랑으로’라는 ‘자기희생’을 통한 ‘선한 상호작용’에 의해서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루터 킹이 남긴 유산은,
그가 죽은 지 40년이 되는 2008년 오늘의 미국을 참으로 위대하게 만들었다.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금융위기는, 감히 생각해 보건데, 이 위대한 유산을 꽃피우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의 조연으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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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검’을 주러 왔다고 해서 부모와 자식이 예수 믿지 않는다고, 어머니가 절에 다닌다고, 칼로 위협한다고 해결이 되겠는가???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말하며, 협박(?)한다고 해결이 되겠는가???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말은 성경에 있는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주는 것이지,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말이 협박이 되어서 우리가 원하는 바에 대해서, 오히려 역효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 말을 듣고 기분 나빠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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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전도했지만 예수님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후배가 있는데, 이 후배는 그 성품이 참으로 온유하고 참을성이 강하다. 아무리
화가 나도 숨을 깊이 한번 들어 마시고 참는다. 자기형님의 보증을 섰다가 쫄딱 망했는데도 결코 자기 형님을 원망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겉보기에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지하 단칸방에서 참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지만,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솔직하게 인간적으로 말하면 나는 그의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후배를 만나면 종종 하는 말이 있는데, 지금은 후배가
이렇게 어렵게 살고 있지만, 반드시 큰돈을 벌 것 이라고 말을 하곤 한다.
나보고 ‘형이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면,.......성경에서 “온유한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마5:5]”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땅이 무엇인가???, 영적으로는 약속된 새 땅[계21:1]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땅은 부를 상징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시37:11]”

그런데 하루는 그 후배를 만났는데 무척 화가 나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어제 퇴근 후 집에 가는데 전철역에서 노방 전도하는 사람이
자기에게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아저씨!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가요!!! ‘지옥 간다.’는 말에 화가 나서, 오던 길을 되돌아가서 그 사람을 한방 먹이려고, 가까이 갔다가 참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폭행사건이 얼마 전에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 사건에서 전도자는 자기는 사랑을 전하려고 했는데, 폭행을 당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적어도 폭행한 사람의 귀에 들린 ‘지옥 간다.’는 말은 협박이나 저주로 들렸음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전도 방법은 오히려 사랑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고,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평가해 본다.

------->기차역에서 마이크 잡고 큰 소리로 전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나의 지인들의 평가를 들어보면, 두 가지 평가가 공존하고 있었다.

기독교에 대해서 대체로 호의적인 사람은 “눈이오나 비가 오나 그분 참 대단하다”는 평가를 하고, 이와 달리 “그 사람 미친 사람 아니야,....???”하는
평가가 극명하게 대조되었다. 같은 예수 믿는 사람들 간에도 그들에 대한 평가는 극히 대조를 이룬다.

같은 교회에 다니든 교인이 이 문제에 대해서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러한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빛을 발할 수도 있다. 전도자가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 하고
큰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삶에 지쳐 고통 가운데 처해있는 길가든 사람이 듣고, 어릴 때 다니든 주일 학교를 생각해 내고 교회로,
위로 받기위해서 하나님을 찾아 돌아 올 수도 있다.

상당히 많은 경우, 멀리서 들리는 은은한 찬송가 소리를 따라 발길을 교회로 향했다고 하는 간증을 들어 본적이 있다.
이러한 외침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고 외친 세례 요한의 외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회개하라 지옥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도 세례요한과 동일한 말씀의 선포[마4:17]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도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는 ‘천국의 선포’로부터 시작되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세계의 도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같은 ‘사랑’과 ‘본’을 보이는 정신 가운데에서 임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반대가 되는, 말씀의 선포는(그것이 진리라 하드라도) 기독교에 대해서 혐오감을 갖게 하는 데 일조 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랑과 생명의 역사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심판의 역사를 가지고 사랑의 역사를 증거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또한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의 심판’의 선언은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지,
징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전도는 구원과 희망의 선포로부터 시작되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바로 ‘천국의 선포’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흑암(사망의 땅, 지옥)에 앉은 백성에게 닥아 오는 ‘빛의 선언’인 것이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4: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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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깁슨이 제작하고 감독한 “The Passion of the Christ”란 영화를 보면, 예수님께서 빌라도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장면에서
마귀가 예수님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 뒤를 왔다 같다하면서 돌아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오던 어떤 꼬마가 자기 어머니에게, 엄마! 그 귀신이 왜 사람들 주위에 돌아다니느냐고 물으니,
그 어머니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싫어서 그것을 방해하려고 그런단다. 라고 말했다.

이 말씀은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어머니는 교회에 다니면서 배운 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 승리한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마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을 반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마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이 자기에게 승리가 되는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오히려 마귀는 패배하고 예수님이 승리하신 것이다.

------->이것이 ‘자기희생’이라는 위대한 정신이 가르쳐 주는 영적 법칙이다.
------->이것이 바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요12:24]” 영적법칙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리고,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는[요12:25]” 영적법칙이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2:15]”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이 역설을 그 꼬마에게 설명하는 것은 무척어렵다고 생각된다.
-------> 이러한 의미에서 그 어머니의 설명이 꼬마에게는 정답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죽는 것이 이긴다.------->이것이 ‘검’이다. 그 어떤 ‘검’보다 강한 ‘검’이 되는 것이다.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라.------->이것 역시 그 어떤 ‘검’ 보다 강한 ‘검’이 되는 것이다.

국민일보 2007년 12월27일 미션 라이프 첫머리 기사이다.
“국민일보 선정 올해의 기독인물, 아프간 아름다운 양보 이지영”
“이지영(36)씨는 탈레반이 석방기회를 주자 함께 있던 김경자, 김지나 씨에게 양보해 세계인들에게 한국 기독교인의 참사랑을 보여 줬다.”
------->이것이 ‘검’이다. 그 어떤 ‘검’보다 강한 ‘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검이 바로 ‘생명의 검’이 되고, ‘성령의 검’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6,17]”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이 말은 잘못 말하면 살리는 ‘검’이 아니라 죽이는 ‘검’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이 말을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진리임에는 틀림이 없을지라도,......
그 말을 할 때는 올바른 ‘감정 이입’이 되도록, 말하는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영화를 보든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나쁜 사람을 지칭하여 말할 때 “그 ××는 지옥가야 해”, 아니면 “이××야 지옥이나 가!!!”라고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라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이 들으면, 이러한 저주의 말로 듣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불교 믿으면 지옥 간다.” 는 말도 똑같은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지구촌 교회 이동원 목사님은 불교에 대해서, 문화와 윤리, 도덕적 측면에서“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씀하셨다.” 온전한 사고란, 생각의 방향이 이러해야 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이러한 남을 보는
사고가 ‘나’ 아닌 ‘남’과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한 상호작용’의 추구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러한 사고가 리처드 마우가 ‘무례한 기독교’(IvP)에서 언급했듯이,
“그들도 하나님의 신실하고 창조적인 자녀로서 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우리의 이웃으로 인정하는 자세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장소와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두려움’을 가지고 말해야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뱀같이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마10:16]”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5~8]”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는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것 같이, ‘사랑의 본’을 보이는 ‘감정 이입적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의미와 부활의 의미를 믿는 믿음 안에서 관계가 유지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는, 인간<--->예수님(성령님)<--->하나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한 상호작용’에 의한
‘생명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5]”

신영록/건축구조기술사


댓글 '2'

신영록

2008.12.11 20:55:20

'나' 아닌 '남'이 하나님의 신실하고 창조적인 자녀로서 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이웃인가???아닌가???를
판단하는 행위도 게을리 해서는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워낙 '이상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선지자인 척 구원자 인척 '미혹하는 때' 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4:1]"

신영록

2008.12.11 20:57:45

지난 월요일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머리기사입니다.
대구 영신중, 고교 재학생 335명 자발적 세례 받다. 그런데 이 학교의 신앙교육 비결을 들어보자.
---------->교목실장 양순주 목사에 따르면 "불교등 다른 종교를 무시하면 학생들이 반발한다."면서
"반대로 타 종교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면 오히려 학생들이 기독교에 대해 마음을 여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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